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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대교 붕괴사고

last modified: 2015-04-02 15:47:58 by Contribu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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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이후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와우 아파트 붕괴사고와 함께 붕괴사고로는 큰 인명피해를 안긴 사건이며 한국인의 고질병 안전불감증의 대표적 사례. 고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쓰고 있던 김영삼 정권 시대의 굵직한 기록으로 남겨진 참사다.[1]

씁쓸한 이야기지만 32명의 사망자 수만으로 본다면 광복 이후의 인명참사 규모로 10위권에 들어가지도 못하는 그리 큰 사고라 생각이 들지 않을 수도 있지만, 초거대 도시 한복판에 있는 멀쩡한 한강 다리가 갑자기 스스로 무너져 내릴 수 있다는 도저히 믿을 수 없을 정도의 큰 충격과 황당함을 안겨준 사고[2]였기 때문에,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급으로 지금도 국민들의 뇌리속에 상당히 강하게 박혀있는 대형 사고라고 할 수 있다.

2014년 10월 21일을 기해서 사고가 발생한지 벌써 20년이 지났다. 아직도 현실은 시궁창

Contents

1. 사고 개요
2. 사고의 원인
3. 조치 및 경과
4. 여파
5. 기타
5.1. 정치사회에서
5.2. 대중문화에서


1. 사고 개요

1994년 10월 21일 금요일, 오전 0시 20분경과 오전 2시 30분 경 세로 1.3m x 2m 크기의 철판이 성수대교 상판 이음새에 깔려 있음을 운행하던 운전자들에 의해 목격된다. 이는 상판 이음새 부분의 틈새가 심하게 벌어진 것을 덮기 위한 서울시 당국의 땜질식 응급 조치였던 것이었다. 하지만 상판의 이음새 균열은 시간이 갈 수록 더욱 커져, 사고 당일 새벽 6시경에 성수대교를 통과하던 차량의 운전자의 경우 이음새가 너무 벌어져 차량 운행시 충격이 너무 커서 서울시 당국에 직접 전화로 신고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시는 안일한 생각으로 교량진입 통제 등의 긴급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결국 당시에는 상상도 못할 일이 터지고야 말았다.

1994년 10월 21일 오전 7시 48분경에 성수대교의 제10·11번 교각 사이 상부 트러스 48m가 붕괴한다. 사고부분을 달리던 승합차 1대와 승용차 2대는 현수 트러스와 함께 한강으로 추락했고, 붕괴되는 지점에 걸쳐 있던 승용차 두대는 물속으로 빠졌다. 한성운수 소속 16번 서울 시내버스[3]는 붕괴 부분에 걸쳐있다가 차체가 뒤집어지면서 추락했다.

최종적으로 버스 1대, 승합차 1대, 승용차 4대 등 모두 6대의 차량과 49명의 탑승자가 추락했고 이중 32명이 사망했다. 시내버스가 전복되어 추락하는 바람에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는데, 참사 발생 시각이 하필 아침 출근이나 등교시간이었던 만큼 등교하던 학생들을 비롯해 출근하던 직장인, 교사 등 평범한 이들이 한 순간의 참사로 불귀의 객이 되어 버린 안타까운 사연들이 가득했다.

아침에 등교하던 무학여중[4] 학생 1명과 무학여고 학생 8명이 이 시내버스를 타고 가는 중이었는데, 이번 참사로 인해 9명의 꽃다운 나이의 여학생들이 한꺼번에 세상을 떠나게 되어 무학여중고는 한동안 초상집 분위기였다.[5] 무학중(전 무학여중)과 무학여고는 2013년 현재까지도 추모일을 지정하여 학생들의 넋을 기리고있다. 서울교육대학교 재학생이던 이승영(당시 21세)씨의 경우 역시 시내버스에 탑승했다 사고로 사망하였는데, 사후 장기기증을 원했던 고인의 뜻을 가족들이 지켜주려 했으나 사망 직후 6시간 이내였던 장기기증 시한을 넘기고서 시신이 수습되어, 결국 고려대 의과대학에 시신을 해부 실습용으로 기증하는 것으로 대신하여 고인의 뜻을 기렸다.[6]


2. 사고의 원인

공식적으로 발표된 성수대교 붕괴의 원인은 크게 두 파트로 분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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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교량 최초 시공사인 동아건설의 책임 부분
  • 유효 단면적의 감소와 응력집중을 유발하게 한 용접시공의 결함과 제작오차 검사 미흡[7]

2. 교량 보수 및 관리 기관인 서울특별시의 책임 부분
  • 피로균열의 진전을 예방하지 못한 점검 및 유지관리 미비
  • 급속도로 증가하는 차량 통행량에 대비하지 못함[8]
  • 피로균열을 가속화시키는 규정이상 중량차량 통행 규제 소홀[9]

이 붕괴사고는 서울시의 책임이 더 크다는 것이 일반적인 법적 견해였다. 동아건설이 성수대교를 건설하고 5년간 안전을 관리하는 계약을 충분히 이행했고 그 이후에는 서울시가 안전관리를 맡게 됐으므로 서울시가 사고 이전에 성수대교에 대한 안전조치를 할 의무가 있었는데 그 의무를 전혀 이행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3. 조치 및 경과

사고 당일 이영덕 국무총리가 김영삼 대통령에게 사직서를 제출하여 수리되었으며, 오후 7시에 참사의 책임을 물어 이원종 서울특별시장이 문책성 경질되었고, 당시 경북지사였던 우명규 지사가 서울특별시 시장으로 긴급 임명되었다. 그러나 우명규 신임 시장이 성수대교 건설당시 서울시 책임자였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근 열흘만에 자진 사퇴하고[10], 다음 달 3일 최병렬이 새로 부임되었다.[11]

성수대교의 붕괴로 인명피해도 컸지만, 가뜩이나 통행량이 많은 서울지역에 주요 한강 교량이 끊겨서 교통체증도 심각할거라 예상했었고, 서울시에서는 군당국과 협의하여 군사작전용 부교 설치까지도 검토했었다.[12] 하지만 다행히도 시민들의 자발적인 대중교통 이용 협조와 더불어 우회도로로 통행량이 잘 분산되어 생각보다 큰 체증이나 문제점은 발생하지 않았다.

사고 직후 서울시는 전문가들의 자문을 받아 정리 및 수습이 완료되는대로 3개월 안에 성수대교의 붕괴부분을 재시공하고 완벽히 보수하여 재개통하겠다는 계획을 골자로 한 발표를 했다가 시민들에게 거센 항의를 받은 후 철회하였다.

동아건설은 사고 직후에는 자신들은 성수대교 시공 후 5년 간 하자보수를 성실히 해 왔기 때문에 직접적인 책임이 없다는 식으로 약간 발뺌하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고 결국 사과광고를 일간지에 게재하였고, 사고 수습이 마무리 되는대로 1,500억원을 들여 전면 재건설하고, 한강교량의 전면 보수 및 관리를 위해 100억원을 서울시에 이를 기부하겠다고 발표하였으나, 이미 악화될 대로 악화된 여론에 다시 한 번 뭇매를 맞았다.

결국 시민들의 정서를 감안해 새로 건설하는 방향으로 결정되어 1995년 4월 26일부터 현대건설이 새로 건설하기 시작해, 1997년 7월 3일에 완성되어 차량통행이 재개되었다. 이 재시공의 특징은 해외 감리업체인 High Point Rendel 社가 국내 최초로 해외 감리업체 자격으로 시공 감리에 참여하여, 국내 감리회사와 공동으로 시공감리 업무를 담당하기도 했다.[13]

사고 발생 7년 후, 법원은 본 사고의 직접적 원인이 동아건설의 부실시공 때문이라고 확정 판결을 내렸다.

4. 여파

이후 이듬해에 삼풍백화점 붕괴사고까지 일어나면서 1980년대와 1990년대 초에 지어진 건물들에 대한 공포와 회의적 시각이 확산되었다. 이로 인해 대한민국 정부는 전국의 모든 건물들에 대한 안전 평가를 실시했고 그 결과는 다음과 같이 충격과 공포였다.

  • 전체 고층 건물의 1/7(14.3%)은 개축이 필요한 상태였다.
  • 전체 건물의 80%은 크게 수리할 부분이 있었다.
  • 전체 건물의 2%만이 안전한 상태였다.

흠좀무...특히 한강에 있는 다리들 역시 안전성이 의심되면서 한강의 모든 다리들의 안전성을 조사한 적이 있는데, 서울 지하철 2호선의 서쪽 철교인 당산철교가 안전성에 문제가 있다는 판정을 받았고,[14] 붕괴된 성수대교와 마찬가지로 전면 재시공에 들어가게 된다. 덕분에 당산역은 뜬금없이 두단식 승강장 역으로 바뀌고, 합정역은 회차선 놓고 뜯어내는 기간 동안 폐쇄크리를 맞고, 2호선은 잠시 고리가 끊긴 적이 있었다.

당산철교만큼은 아니었지만 이 사건 이후 광진교한남대교, 양화대교도 재시공되거나 전면보수에 들어갔다. 광진교는 이 사건 이전부터 다리가 너무 낡아서 재시공 이야기가 끊임없이 나오던 다리였고, 한남대교도 이전부터 상판에 구멍이 뚫리는 등 문제가 있던 다리였다. 양화대교는 큰 문제는 없었지만 너무 낡아서 붕괴위험이 있다는 결론이 나왔다. 결국 광진교는 철거 후 완전히 재시공했고, 한남대교는 확장도 할 겸 하류 쪽에 새 교량을 건설하고 기존 교량은 상판을 뜯은 뒤 재시공, 양화대교도 상판을 뜯은 뒤 재시공했다.

덧붙여, 이 사건의 판례[15]가 법학계에서도 논란거리를 불러 일으켰다. 어마어마한 부실 공사 사건이었기에 사고의 책임을 책임자들이 확실하게 져야 했음에도 기존의 판례로는 책임자들에게 피해를 추궁하기 어려웠기에, 대법원에서는 공모공동정범[16][17] 과실범의 공동정범이라는 대한민국의 법적 통설에서는 종래 부정하였던 개념을 동원하여 설계 및 시공 관련자를 싸그리 잡아넣었기 때문.

해당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 사건 성수대교와 같은 교량이 그 수명을 유지하기 위하여는 건설업자의 완벽한 시공, 감독공무원들의 철저한 제작시공상의 감독 및 유지·관리를 담당하고 있는 공무원들의 철저한 유지·관리라는 조건이 합치되어야 하는 것이므로, 위 각 단계에서의 과실 그것만으로 붕괴원인이 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합쳐지면 교량이 붕괴될 수 있다는 점은 쉽게 예상할 수 있고, 따라서 위 각 단계에 관여한 자는 전혀 과실이 없다거나 과실이 있다고 하여도 교량붕괴의 원인이 되지 않았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붕괴에 대한 공동책임을 면할 수 없다고 봄이 상당하다 할 것이다.
 
이 사건의 경우, 피고인들에게는 트러스 제작상, 시공 및 감독의 과실이 인정되고, 감독공무원들의 감독상의 과실이 합쳐져서 이 사건 사고의 한 원인이 되었으며, 한편 피고인들은 이 사건 성수대교를 안전하게 건축되도록 한다는 공동의 목표와 의사연락이 있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므로, 피고인들 사이에는 이 사건 업무상과실치사상등죄에 대하여 형법 제30조 소정의 공동정범의 관계가 성립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로 인해 해당 판례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었는데, 주로 당 판례에서 나타난 과실범의 공동정범에 관해 비판이 이루어진다. 그러한 비판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공모공동정범을 인정한다 쳐도 최소한 공모(혹은 행위지배)는 있어야 하는데, 다수의 과실범 같이 법적 주의의무를 위반한 실수들 때문에 범행이 일어난 경우, 서로 간의 암묵적인 동의나 묵시적 행위는 있었을지언정, 공동정범 개념에서 말하는 것과 같이 구체적인 합동의 실행 사실은 있을 수 없기에 과실범의 공동정범이란 개념은 있을 수가 없다는 이야기.

하지만 그런 학설과는 달리, 대법원은 구체적인 범행의도를 가지고 범행을 한 사실이 없더라도 그들 간의 행위를 묵인한 탓에 일어날 사건 결과를 피고인들이 예상할 수 있었다면 과실범도 공동정범이 인정된다는 입장을 밝혔으니, 합리적인 결론이긴 해도 법학적인 통설, 즉 공동정범 이론이 발전되어 학설적으로 지배적 이론이 된 '기능적 행위지배설'[18]과는 대치되는 결론이다. 더 쉽게 말하자면 고의는 최소한 결과발생에 대한 의지가 있어야 성립하는 것인데, 그런 의지요소가 없는 과실범이 공범으로 범죄를 저지르겠다는 기능적 역할분담을 한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성립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다만, 해당 개념을 학설대로 엄격히 적용한다면 당 사건의 책임자들은 과실은 분명히 인정되지만, 누가 구체적으로 결과발생에 가장 중요한 원인이 되었는지를 입증하지 못한다면 현행 형법상 해당 범죄의 미수로 처벌될 뿐이다. [19] 그런데 과실범의 미수범은 현행법상 처벌 규정이 없으므로, 잘못한 사람은 있는데 책임자 전원이 형법상 무죄라는 결론을 수긍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이런 결론은 죄형법정주의의 원칙상으로는 맞는 것이지만, 일반 국민의 법감정으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것이었다. 즉, 이와 같은 중대한 사건에 기존의 법적 안정성을 해치지 않기 위해 엄격하게 해석하여 전원 무죄를 선고했다가 발생하는 법감정의 동요와 법에 대한 불신은 오히려 향후의 법적 안정성을 더 크게 해칠 위험성이 있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대법원은 '적극적 의견'을 내세우면서 일부 실행에 가담자 전원의 연대책임을 원칙으로 하는 공범 규정을 끌어들인 것이다. 아주 거칠게 풀어쓰자면, '너희 각각이 이 사고의 모든 원인이라곤 말 못해도, 각자의 행위가 더해져서 결과가 발생한 것은 명백하니 너희는 전부 유죄 '라는 것이다.

이는 기존의 판결이나 다수설과는 시각차가 있더라도 실질적 법치주의를 위해선 그런 판결이 필요하다고 본 것이고, 그런 이유로 판례의 결론을 지지하여 과실범의 공동정범을 인정하는 학자들도 있다. 덧붙여, 판례를 비판하는 학자들도 그렇게 판례의 결론이 나오게 된 당시 시대상황과 국민들의 법감정을 이해하고는 있다. 단지, 판례가 당시의 구체적 타당에만 몰두하여 과실범의 공동정범을 인정할 때 좀 더 구체적이고도 명확한 법이론을 제시하지 못한 것에 대해 아쉬워하는 것이다.

5. 기타

사고 차량 중 한 승합차에 경찰의 날을 맞아 우수 중대로 선정되어 표창을 받기 위해 본대로 가던 의경들이 타고 있었는데, 이들이 사고 발생 후 헌신적으로 피해자들을 구조했다.[20]

사고 초기에 119, 112 신고 당시에 늑장대응을 했다고 비판을 받기도 했는데 그도 그럴 것이 갑자기 다리 한가운데가 뚝 끊어졌다고 말해서 처음에는 믿지 못했다고. 하긴 이게 정말 현실성 없는 사건이기는 하다.

결정적인 붕괴 원인이 과도한 하중으로 인한 교량 구조물 피로였던 만큼, 한강 교량에 통행하는 차량을 대상으로 과적차량 단속이 체계적으로 시행되기 시작하였다. 한강 교량을 비롯해 전국의 교량점검 또한 대대적으로 이루어졌다.

교량의 점검을 행하는 회사에서 감리업무를 하고 있다는 모 인물의 말로는 사고 이후 새로 지어진 성수대교는 사고의 여파로 인해 특수관리대상으로 분류되어서 한강에 있는 교량 중 가장 철저하게 점검되고 있다.

다리에 구멍이 났다는 제보로 나갔는데 무너진 상판 위로 버스가 추락해 있었다. 상상도 못했던 상황... 할말도 없고, 도망가고 싶었다. 그렇게 7시간 동안 중계차를 탔다.
-양찬승 기자[21]

MBC 뉴스데스크에서는 사고가 나기 1년 전부터, 한강교량의 보수 및 관리가 매우 부실하여 붕괴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보도를 시리즈로 내 보낸 적이 있다. 물론 그 당시 집중적으로 보도 했던 부분은 교각 구조물 아랫부분의 침식 및 구조강성 약화 문제로서, 성수대교 붕괴 원인의 직접적인 부분과는 별로 관계가 없지만, 전반적으로 교량 보수가 시급하다는 진단 및 붕괴의 위험성도 무척 강조했고, 특히 이러한 문제점에 대해 서울시 당국에 공식적으로 문제제기를 했지만, 오히려 서울시의 안일한 대처와 반응을 보이기만 해, 고발성격으로 이들의 인터뷰를 뉴스에 보도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시 당국은 이런 참사가 나기까지 교량의 위험성을 방치 하였고, 참사 이후 MBC에서는 이 보도를 다시 방송해 주면서, 결국 서울시 당국은 붕괴사고 책임에서 빼도 박도 못하게 되었다.[22]

사고 이후로 서울 시내 인문계 고등학교 입학생의 학교 배정 최우선 원칙으로 절대 한강을 건너게 하지 않는다는 조항이 새로 생겨 거의 10여년간 유지되었다가 사라졌다.[23] 여기서 사망한 학생들은 이후 명예 졸업장을 받기도 했다.

그리고 13년이 지나고 미국에서 비슷한 사고가 일어났었다. 해당항목 참고.

32명의 사망자 중에는 필리핀 국적의 외국인도 1명 포함되어 있었다. 이역만리 객지까지 와서 이 무슨 날벼락...

이 사고로 무학여고에 다니던 딸을 잃은 아버지 장 모씨는 사고 5년 후인 1999년 8월 18일, 성수대교 북단에 건립된 희생영령 위령비 앞에서 농약을 마시고 스스로 목숨을 끊어서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참고로 이 위령비의 정확한 위치는 한남로 방면 강변북로 쪽인데, 위령비와 주차장 사이는 자동차 도로로 막혀있어 접근이 쉽지 않을 뿐더러 위령비를 관리하던 공무원조차도 현재는 모두 퇴직한 상황이라 제대로 관리조차도 되지 못하고 방치되어 있다고 한다. 잊혀진 참사... 잡초에 묻힌 위령탑

당시, 학교로 등교하던 딸을 참사로 잃은 어느 아버지를 참사 당일 MBC에서 취재를 했는데, 당국의 무관심과 무책임한 대처에 분노와 울분으로 가득찬 아버지의 인터뷰 내용이 꽤 섬뜩했다. 10분부터

"앞으로 이런 일이 얼마든지 올 수 있어! 올 수 없다고 장담 못 해! 미리미리 방지한다고 하지만 이미 늦은거야...!"

실제 성수대교 붕괴 참사 이후에 이보다 인명피해 규모가 훨씬 큰 참사(대형사고)들이 속출했다.
주호 유람선 화재참사, 대구 지하철 공사장 가스폭발 참사, 서해 페리호 침몰사고,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그 이후 1999년 씨랜드 청소년수련원 화재사건과 2003년 지하철에서 발생한 대구 지하철 참사. 그리고 2014년 경주에서 발생한 경주 마우나리조트 붕괴사고와 진도에서 발생한 세월호 침몰사고 그리고 뒤이어 발생한 판교테크노밸리 축제 환풍구 붕괴 사고.
2014년도에는 이때처럼 사고가 너무 많아서 생존이 2014년 목표라는 말까지 나온다.
예언에 가까운 수준이며 안타깝게도 현재진행형이다.

2013년 국내야구 갤러리 등에서 LG 트윈스를 비하하는 지역드립으로 이 사건을 빗대어 성수물회 드립을 쳐서 논란이 되었다.


여담이지만 서울시내버스의 경우 일부 잔존해 있던 88년 이전 출고분으로 해당 사고차량의 도색과 동일한 보라돌이 색[24][25]이 적용된 차량들도 사고 당시를 떠올리게 한다는 일부 반응에 95년 냉방화를 전후로 조기 퇴역하면서 90년대 후반에는 1988 서울올림픽에 맞춰 도입되었던 4종 파스텔톤 도색과 냉방화에 맞춰 도입된 몬드리안 도색 차량만 공존하게 된다.[26]

5.1. 정치사회에서

대통령 김영삼은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고 사고로 숨진 고인들의 명복을 빌고 유족들에게 위로를 보냄과 동시에 차후 이러한 붕괴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그리고 그에 대한 책임으로 이원종 서울시장을 전격 경질하고 경북도지사로 있던 우명규 도지사가 서울시장으로 긴급임명되어 서울시 행정 및 성수대교 참사를 책임지게 하였고 경북도지사에는 심우영 총무처 차관이 긴급 임명하게 되었다. 또 이영석 국무총리 역시 책임을 지고 총리직에서 사임하는 등 정부 및 행정인사들도 문책을 받거나 사임을 요청했으나 대통령이 사고를 수습해야하는 책임을 처리해야하기 때문에 이를 반려하였다.

5.2. 대중문화에서


DJ DOC의 정규 2집에는 이 참사를 모티브로 한 '뉴스속보'와 '성수대교'라는 제목의 트랙들이 특별히 수록되어 있다. '뉴스속보'는 '성수대교'의 인트로 성격의 곡으로 실제 참사 당일 MBC 뉴스데스크 보도실황을 그대로 녹취 한 것이고, '성수대교'에서는 참사를 일으킨 당국의 무책임한 태도와 희생자와 유족의 슬픔을 가사로 표현했다. 현 사회의 황금만능주의를 제대로 까는 가사로 쓰여있다.

1절: 우리들은 이제 더이상 용서할 수 없다 그 어떤 변명 핑계 용납할수 없다 무너져 버린 다리에 끊어져 버린 꿈 무너져 버린 사랑 무너져 버린 믿음 어른들의 치졸함에 누명을 쓰고 가버린 친구들을 우리들은 기억해야 한다 아니꼽고 치사하고 유치하고 비겁한 와-
 
2절: 무학여고 졸업식에 싸늘하게 비어있는 8개의 빈 자리에 눈물젖은 흰 국화 그들을 대신해서 졸업장을 받았고 교우들은 먼저 간 친구의 이름을 부르며 서로를 부둥켜 안고 울어야만 했다 어느 아버지는 졸업식을 빠져나와 성수대교 한복판에서 딸의 이름을 통곡하며 부르짖으며 와 -
후렴: 1994 부실공사 추방원년 1994

다음 해, 후렴은 무색해졌다


이 실화를 바탕으로 뮤직 비디오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조관우의 5집 타이틀곡 '실락원'이 그것으로, 당시만 해도 배우였던 유인촌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탤런트 박시은이 각각 아버지와 딸 역으로 연기했다. 조관우의 미성과 유인촌의 열연이 어우러지면서 눈물 없이는 볼 수 없을 만큼 사고 당시의 유족의 아픔이 생생하게 녹아 있다.

영화 타짜에서는 고니가 성수대교 붕괴를 전하는 뉴스를 보면서 평경장에게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겠다고 한탄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러자 평경장은 넌 세상이 아름답고 평등하다고 생각하냐며 고니에게 묻자 고니는 당연히 그래야 하는 거 아니냐고 반문한다.
그러자 평경장 曰 세상이 아름답고 평등하면 우린 뭘 먹고 사니? 연습이나 하라우~
그리고 정마담의 나레이션이 이어진다.
"다음 해에 서울에서 백화점이 무너졌을 때, 고니는 더 이상 놀라지 않았어요."

당시 아이큐 점프에 연재 중이던 만화 달숙이에서 '성수대교에서 억울하게 죽은 사람'으로 졸다가 정류장 지나친 사람, 벨 고장난 줄 모르고 계속 벨 누르다 정류장 지나친 사람, 껌팔이를 꼽는 고인드립 개그가 나오기도 했다.[27] 지금이었으면 "부적절하다며" 폭풍같이 까였겠지만 그냥 조용히 묻혔다.

다음 만화속세상에서 연재됐던 이림 작가의 '봄, 가을'이란 웹툰에서 주인공 이봄이 이 사고로 아버지를 잃는다.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를 다룬 다음 만화속세상의 웹툰 삼풍에서도 강북에서 다리를 건너서 강남으로 학교를 다니던 여학생의 이야기로 짤막하게 언급된다.

윤철감독이 아마추어 시절 이 사고로 숨진 여학생의 이야기를 토대로 단편영화를 제작하기도 하였다.

국산 애니메이션 헬로 카봇 25화에서도 이 다리와 비슷한 교량이 무너진 장면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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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물론 성수대교는 박정희 정권 시절에 만들어진 것이고, 대통령이 건설에 직접 관련될 리가 없으니 김영삼 전 대통령 입장에서는 다소 억울할 수도 있다. 일단 그동안의 급속한 발전으로 인해 누적된 문제가 이 때 한꺼번에 터져나온 것으로 보면 될 것이다.
  • [2] 물론 그 이전인 1992년에도 해 창선대교 붕괴사고, 행주대교 붕괴사고 등 다리가 무너지는 사고가 없진 않았으나, 서울 한복판에서 한강의 주요 다리가 무너지는 사고는 처음이었기에, 앞의 두 사고에 비해 임팩트가 컸다.
  • [3] 당시 사고차량은 88년형 BS105L였으며, 노선형태는 현재의 145번과 유사함.
  • [4] 2004년에 남녀공학으로 전환되었다.
  • [5] 한 학교기관에서 사망자가 너무나 많이 나왔기에, 참사의 책임이 있는 성수대교의 시공사 동아건설은 3억원을 학교에 기부하여 생활관을 지어주기도 하였다.
  • [6] 고인의 모친은 고인의 보상금을 기반으로 교회를 통해 장학회를 운영하여 어려운 형편의 신학도들의 장학금 지급 및 강원도 전방부대에 이동도서관 차량 기증 등의 선행을 베풀기도 했다.
  • [7] 성수대교는 설계 당시 도시 미관을 생각하여 70년대 당시 국내에서는 파격적인 공법이었던 트러스 공법으로 설계 및 시공 되었는데, 건축구조물의 경우 파격적이고 수려한 미관을 가지는 만큼 구조물의 안정성은 떨어지기 마련인데, 성수대교 역시 예외는 아니었던 것이다.
  • [8] 하루 통행량이 8만대 정도로 예상하고 설계했던 교량이었지만, 붕괴 당시 실제 하루 통행량은 2배가 넘는 16만대 이상이었다.
  • [9] 성수대교는 1970년대 당시 법규에 따라 탱크가 다닐 수 있을 정도로 18톤 하중으로 설계되었지만, 성수대교 북단에는 바로 삼표레미콘 공장이 있어서, 대당 중량이 최대 25톤에 이르는 레미콘 믹서트럭 차량들이 아무런 규제 없이 성수대교를 마음대로 휘젓고 다녔는데, 이런 차량들에서 발생하는 하중으로 인한 교량 피로 누적이 참사에 큰 영향을 미쳤던 것이다.
  • [10] 사고 당시 시기가 지방자치제 부활 이전(정부수립 직후인 1949년부터 1961년까지 실시되었으나, 5.16 쿠데타 이후 폐지)이어서, 지역민들의 선거로 뽑는 민선체제가 아닌 정부에서 임명하는 방식의 관선체제로 지자체장이 선발되었기 때문에 이런 발빠른 인사 이동이 가능했다.
  • [11] 참고로 최병렬의 경우 서울특별시의 마지막 관선시장이었다. 성수대교 붕괴참사를 계기로 부실시공을 막겠다는 의지표명으로 나름대로 의지를 가지고 일했지만, 임기 종료 하루를 앞둔 1995년 6월 29일 서울 강남 한복판에서 '사고 공화국'의 대미를 장식한 참사가 발생하였고, 민선으로 당선된 조순 신임 시장의 취임이 곧바로 예정되어 있었기에 경질까지는 안되었지만 그 역시 서울시장으로서 대형참사의 책임을 안고 불명예스럽게 이임을 하게 된다.
  • [12] 물론 부교 자체가 일반차량 통행용이 아닌 군사작전용이기 때문에 훈련된 병력이 아니면 교량 통행에 있어서 안전 문제도 있었고, 결정적으로 부교가 왕복 2차선의 성수대교의 절반 규격의 교량이었기 때문에 설치효과도 미비할 것이고 군사작전이나 보안상 문제가 될 소지도 있기에 결국 철회되었다.
  • [13] 당시 부실시공이 국내 감리사와 시공사의 담합이나 뇌물수수 등의 비리에서도 비롯되기 때문이었는데, 가양대교 시공시에는 성수대교 재시공 때보다 더 심해서 아예 해외 감리업체가 단독으로 감리업무를 담당 했을 정도로 국내 감리업체에 대한 정부의 불신이 무척 심각했었다. 이는 국내 감리업계가 얼마나 부패해 있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으로서 국가적으로 개망신이었던 것이다.
  • [14] 상태가 매우 심각해서 성수대교가 안 무너졌으면 당산철교가 먼저 무너졌을 거란 이야기까지 있었다. 사실 당산철교는 워낙 상태가 심각해서 이미 성수대교 사고 전부터 위험성이 몇번 보도되기도 할 정도였다. 그 덕분에 성수대교 붕괴 전에도 이례적으로 지속적인 관리가 이뤄지고 있었고 지하철공사에서도 당산철교 통과시 서행 운행하고 있었기 때문에 붕괴를 막을 수 있었다. 와우아파트 붕괴사고를 겪은 적이 있는 최일구 기자는 아예 당산철교에 올라가 위험부위를 몸소 보여 주며 보도한 적이 있다.
  • [15] 국가법령정보센터 사이트의 97도1740 판례 참조
  • [16] http://100.naver.com/100.nhn?docid=16113 참조
  • [17] 환주관 살인사건 공모공동정범 이론은 주로 고의범에서 범행에 직접 가담하지 않은 배후자를 처벌하기 위해 나온 이론으로서, 애초에 사망사고에 대한 적극적 고의가 없었던 이 사건에 적용될 이론은 아니다.
  • [18] 간단히 쓰자면, '가해자들이 각자 범죄를 일으킨 기능을 맡음으로써 결과적으로 그들의 행위가 합쳐져 당 범죄행위의 전부를 지배한 결과가 나온다면 해당 가해자들은 공범이 된다'는 학설이다.
  • [19] 형법 제19조(독립행위의 경합) : 동시 또는 이시의 독립행위가 경합한 경우에 그 결과발생의 원인된 행위가 판명되지 아니한 때에는 각 행위를 미수범으로 처벌한다.
  • [20] 사고발생 20주년으로 JTBC 뉴스룸에서 이들 중 한명과 인터뷰를 진행하였는데 이들은 사고발생후 며칠간 경찰병원에 입원한거 말고는 아무런 피해보상이나 추가적으로 받은 치료가 없었다고 하며 이들 역시 트라우마에 아직도 시달리고 있다고 한다.
  • [21] 당시 현장에서 사고소식을 전달하던 MBC 기자.
  • [22] 이걸 조사-취재-보도한 양반이 최일구이다. 무릎팍도사에 나와서 어렸을적 집이 무너진 트라우마가 있어서 건물 부실에는 분노한다...는 식으로 밝힌 적이 있다.
  • [23] 2010학년도부터 고교 선택제가 시행되면서 공식 폐지. 단, 이전부터 성동구 지역의 학생 일부가 강남의 압구정고나 현대고로 배정되기도 했다(이는 성동구 일부 지역의 고등학교 부족문제에 기인하며, 성수대교 붕괴사고 이전의 배정방식과는 방향이 반대이다).
  • [24] 그 보라돌이가 아니다!
  • [25] 해당 도색은 1985년 3월부터 도입된 도색으로 당시 노선별 적/청색 정류장 분리 정차제도에 따라 제정된 도색이다. 하지만 보라색을 음산하게 여겼던 반응 등으로 3년도 안되서 1988년 올림픽때 밝은 색 계통의 4종 파스텔톤 도색이 도입되는 계기가 되었으나 도색 유지보수가 간편해서 운수사에서는 나름 선호한 바 있었고 88년 이후에 출고한 차량임에도 일부러 재도색하는 일도 있었다. 사고를 당한 해당 차량의 도색도 같은 케이스
  • [26] 이게 별거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사실 당시 사고차량에 적용된 도색은 성수대교 붕괴사고 이전에도 88년 4월 1일 19명의 사망자를 낸 천호대교 버스 추락 사고의 사고차량에도 적용된 도색이었기에 어떤 이들에게는 사고 당시를 떠올리는 등 꺼림칙한 느낌이 들 수도 있는 부분이었다. 이 사고 이후 사고차량과 동종 차종인 BS105L을 운행하는 업체들은 BS105L 만큼은 88년 이전 출고차라도 밝은색의 4종 파스텔톤 도색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서 재도색한 경우도 있었다. 이에 대해서는 PTSD 항목과 재개통한 성수대교의 도장이 기존의 하늘색에서 붉은색으로 바뀐 점, 무엇보다 JR 후쿠치야마선 탈선사고때 207계의 후속으로 도입 예정이었던 321계 전동차 뿐만 아니라 동종 차량인 207계의 도색을 전부 바꾸게 된 이유를 생각해보면 이는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 [27] 사실 성수대교 사고 이전부터 '버스 사고가 났을 때 가장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이란 제목으로 나돌아다니던 개그를 활용한 것이다. 다른 버전에서는 버스 놓칠 뻔 했다가 간신히 탄 사람, 버스 잘못 탔다가 죽은 사람, 내일이 결혼식인 사람 등을 꼽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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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modified 2015-04-02 15:4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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