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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 기사단

(ɔ) Thomas Andrew Archer, Charles Lethbridge Kingsford from


Contents

1. 개요
2. 역사
2.1. 탄생
2.2. 거대 금융기관이 된 기사단
2.3. 몰락
3. 타국의 상황
4. 평가
5. 자크 드 몰레의 저주
6. 직급 및 계급 체계
7. 가상 매체에서의 모습
7.1.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템플 기사단

1. 개요

Knights Templar

십자군 전쟁 당시 활약한 기독교 계열 기사단.

정식 명칭은 그리스도와 솔로몬 성전의 가난한 전우들(라틴어: Pauperes commilitones Christi Templique Solomonici). 그 외에도 성당 기사단, 신전기사단, 템플기사단, 성전 수도회, 청빈 기사단 등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영어 계열에서 잘 나오는 'Templar'도 이들을 말하거나 그걸 본딴 것이다. 성전기사단이라는 한글명은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산'에 위치해 있는 '성전(聖殿)'에서 유래하였다. 성스러운 전쟁이라는 뜻의 성전은 아니다.

상징은 흰색 바탕에 그려진 붉은 십자가.[1] 적십자?

일단 대외적으로는 '청렴한 기사'라는 이미지로 선전하고 있었던 것 같으며, 위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한마리에 기사 둘이 타는 황당한 상징도 있었다. "우리는 말 하나를 기사 둘이서 같이 탈 정도로 존내 가난함."빈데레?이라는 컨셉을 잡은 것으로 보인다. 물론 실제로 이렇게 타지도 않았고 저 로고 덕택에 남색 이미지가 덧칠되기도 했다. 거기다 나중에는 가난하기는 커녕 많은 기부금과 기사들의 유산을 상속하여 부유해졌고, 이를 바탕으로 거대 금융자본으로 성장했다.

구호기사단과 달리 프리메이슨과 함께 음모론단골로 등장하는 떡밥으로 많이 쓰인다. 대표적으로 다빈치 코드에서도 떡밥으로 활용되었다. 푸코의 진자는 성전기사단의 음모론을 한번 더 비틀어서 만든 걸작이다. 특히 푸코의 진자는 성전기사단의 역사로 논문을 쓰던 주인공 까소봉의 입을 빌려 성전기사단의 역사적 사실과 후세에 덧붙여진 이야기를 구분하여 잘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관심이 있다면 읽어봄직 하다.[2]

2. 역사

2.1. 탄생

1차 십자군 전쟁의 성공으로 예루살렘은 기독교도의 손아귀에 들어왔으나 서남아시아 내 기독교도 병력은 충분한 건 아니었고, 주변엔 적들이 철철 넘치는지라 성지는 불안정한 상태였다.

유럽에서 예루살렘으로 오가는 성지 순례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1119년 말엽, 프랑스 귀족으로 샹파뉴의 기사였던 위그 드 파앵(Hugues)의 주도로 뜻을 함께하는 8명이 모여 구호기사단과 같은 형식의 9인의 기사단을 조직하였다. 이 소식을 들은 예루살렘의 왕 두앵 2세는 예루살렘 성전의 언덕에 기사단의 거처를 마련해 주었는데 그 터가 옛날 솔로몬왕의 성전(Temple)이 있었던 자리였기 때문에 기사단의 이름을 성전기사단이라고 짓게 되었다. 1128년, 시토회 수도사 베르나르두스(Bernardus)의 지지를 받아 교황 노켄티우스 2세에게 정식으로 승인을 얻었다.

2.2. 거대 금융기관이 된 기사단

기사단은 많은 입단자들과 후원자들을 바탕으로 조직을 확대해 나갔으며, 2차 원정이 끝날 때를 즈음하여 프랑스에 광활한 영토를 얻을 수 있었다. 스페인, 프랑스, 영국의 왕과 대귀족들은 기사단에게 귀족 지위, 성, 영주권, 영지를 발급하였다.

특히 조직 확대과정에서 입단자들의 재산을 맡아 이를 바탕으로 금융업을 벌이면서 엄청난 양의 재정을 확보했고 순례자들의 예금을 맡아 두는 현대로 치면 다국적 은행같은 시스템을 구축하게 되었다. 왜 다국적 은행 같은 시스템이 되었냐 하면, 이들의 영지와 자산이 유럽에서 중동까지 군데군데 떨어져서 이어져 있었기 때문에, 이 창고들을 연결망과 운반 조직으로 연결핻어야 유럽에서 중동까지 병참 지원을 원할하게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왕들이나 순례자들은 이 시스템을 자신들도 이용하길 바랬고, 귀중한 금은 자산을 보관해주는 성당기사단은 은행과 같은 역할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막대한 부를 축적한 기사단은 유럽중동 각지에 광활한 영지와 독자적인 함대까지 만들었고 정부에 자금을 빌려줄 정도로 위세를 높였다. 최전성기에는 키프로스섬 전체를 소유했다고 하며 파리에 있는 지부는 프랑스의 비공식 재무성이라는 말까지 있었다고 한다.

2.3. 몰락

십자군 전쟁이 살라흐 앗 딘의 지도 아래 이슬람군의 우세로 기울면서 성전기사단은 존립 근거가 희박[3]해지고, 돈 많은 특권집단 정도로 변질되고 있었다.

1207년, 교황 인노켄티우스 3세는 기사단을 "변절자, 교회를 불명예스럽게 하고, 악마적인 교리를 신봉한다."고 비난했다. 당시 소문에 따르면 1304년에 에스키유(Esquiu)라는 자가 성전기사단의 비밀을 아라곤의 제임스 2세에게 폭로하였고, 이는 프랑스의 필리프 4세에게 전해졌다고 한다.

13세기 말 프랑스왕 필리프 4세("공정왕" [4])는 아비뇽에 유수중이던 꼭두각시 교황 레멘스 5세를 이용해 성전기사단에게 남색, 악마 숭배같은 반기독교 행위의 죄를 물어 모조리 잡아들인 뒤 이단 심문을 실시했다.

1307년 8월, 성전기사단의 최고 지도자 자크 드 몰레(Jacques de Molay)는 기사단의 조사가 필요하다는 점에 동의하였는데, 필리프 4세는 동시에 성전기사단에 자신의 첩자사실 어쌔신를 잠입시켰다. 9월에 필리프 4세는 영토에 있는 모든 성전기사단을 체포하라고 명령했다. 10월 13일 새벽에는 아무 것도 모르던 성전기사단원은 포위되어 감옥에 보내졌으며, 필리프 4세는 다른 왕들에게도 편지를 보내서 성전기사단을 탄압하라고 요청했다.

혹독한 고문을 당한 기사단원들은 자백을 하게 되는데 그 내용은 성전기사단은 사실 마숭배를 했다는 것이다. 자백 내용에 따르면 이들은 입회식에서 세 번 예수를 부인(베드로:어?)하고, 입회식에서 십자가상을 밟고 예수의 얼굴에 침을 뱉어 모욕을 했다. 그 다음에는 나체가 되어서, 상급자에게 다가가 첫번째로 척추의 아랫부분, 두번째로 배꼽, 마지막으로 입에다가 키스를 하여 의식을 마치게 된다.

체포된 기사단원들은 혹독하게 고문을 당했는데, 수감된 기사단원 가운데 35명은 파리에서, 25명은 상스(Sens)에서 죽었다. 파리에서 체포된 138명의 기사단원 가운데 단 4명만이 죄를 부인하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그리스도를 부인하고 십자가에 침을 뱉었다고 인정했다. 3/4 정도는 음탕한 키스를 했다는걸 인정하였지만, 남색을 지시받았따는 자백은 절반 정도만 했다. 아주 극소수만이 바포메트를 보았다고 증언했다.

자백이 나온 바포메트의 모습은 다양했는데, 위그 드 패로(Hugues de Pairaud)라는 성전기사단의 감찰관은 네 발 달린 스핑크스라고 증언하였고, 에르볼레(Guillaume de Herblay)는 나무로 되어 있고 금과 은으로 덮혀 있다고 했으며, 투르(Jean de Tour)는 나무 판자에 색칠된 얼굴이라고 했다. 기지(Raoul de Gizy)는 "악마처럼 끔찍하게 생긴 것"이라고 주장했다.

1310년 4월, 30개월 동안 감옥에 갇혀 있던 기사단원들 가운데 자백한 자들은 교회와 화해하는 조건으로 풀려났으나, 자백을 철회한 54명은 화형당했다. 결국 1312년 공의회에서 교황은 성전기사단의 해체를 결정하였다. 1314년 기사단의 네 지도자(자크 드 몰레, 패로, 고네뷰(Geoffroy de Gonneville), 샤르네(GeoFfroy de Carnay))는 종신형을 언도받았는데, 패로와 고네뷰는 선고를 받아들였으나 자크 드 몰레는 갑자기 고문으로 허위 자백을 했다며 이를 거부하고 자백을 부인했다. 샤르네도 이에 동조하여, 기사단장 자크 드 몰레와 샤르네는 산채로 화형에 처해졌다.

3. 타국의 상황

영국에서는 1308년 1월 10일 체포령이 내려졌고, 시칠리아에서는 1월 24일, 키프로스에서는 5월 27일에 체포령이 내려졌다. 스페인에서는 요새에서 저항하기도 했으나 11월 2일에 토벌되었다.

기사단은 1312년 정식으로 해체되었으나, 프랑스를 제외한 다른 나라들에서는 그다지 탄압이 없었기 때문에 살아남은 이들은 이름을 바꾸고 잠적하거나 다른 기사단에 흡수되는 형태로 사라지게 되었다. 특히 이슬람과의 최전선에서 국토회복운동이 진행 중이던 포르투갈 지부는 국왕의 중재를 받아 이름을 그리스도 기사단으로 바꾸고 계속 활동해 나간다. 대항해시대에는 항해왕자 엔리케를 비롯한 왕족들이 그리스도 기사단의 그랜드 마스터가 되고, 바스코 다 가마 같은 유능한 탐험가들이 기사단원이 되어 바다로 진출해 포르투갈의 융성에 한 몫 거들게 된다. 현대에도 그리스도 기사단은 존속 중이며, 포르투갈 대통령이 그랜드 마스터다.

스코틀랜드로 간 기사단들이 나중에 프리메이슨의 기원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진실은 저 너머에...


4. 평가

필리프 4세가 갑자기 성전기사단을 잡아들인 이유가 불분명했기 때문에 이 사건은 이후 수없이 많은 추측을 낳았는데 현재 일반적인 평가로는 재정궁핍에 시달리던 필리프 4세가 최대 채권자였던 성전기사단의 채무를 없애고, 이들의 재산을 몰수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오늘날의 연구에 따르면 그렇게 몰수된 많은 재산들이 왕실이 아닌 구호기사단과 같은 다른 조직으로 흘러들었다는 점을 들어 정치적인 목적이 더 큰 것이 아닌가 하는 의견도 제시되고 있다. 요컨데 국민국가의 관점에서 보나 왕권강화의 관점에서 보나 프랑스 왕의 입장에서 군사력, 재력, 종교적 권위까지 모두 갖추고 있는데다가 국제적인 영향력까지 행사하고 있는 성전기사단은 언젠가는 반드시 숙청해야 할 대상이었다.

5. 자크 드 몰레의 저주

마지막 기사단장이었던 자크 드 몰레는 불에 타 죽으면서 "프랑스 왕과 교황이 1년 안에 주님 면전으로 끌려나와 자기 앞에서 죄를 고백하게 될 것이다!", 즉, 왕과 교황이 죽을 거라고 저주를 퍼부었다고 전해진다.[5] 그런데 실제로 필리프 4세와 클레멘스 5세 모두 1년도 안 되어서 죽었다. 자크 드 몰레가 필리프 4세의 세 아들들(루이, 필리프, 샤를)에게도 저주를 퍼부었다는 말도 있는데[6] 실제로 필리프 4세의 세 아들들의 자손들은 모두 요절하거나 대가 끊겨 결국 모두 족멸했다.[7] 물론 그 저주가 사실이라는 증거도 없고 저주 탓이라는 얘기는 없으나, 필리프 4세가 죽고 세 아들들과 손자가 차례차례 뒤를 이었으나, 모두 아들없이 죽어 카페 왕조가 무너지고 만다.

  • 장남 루이 10세("완고왕"): 필리프 4세의 뒤를 이었으며 아들 장 1세가 태어나기 죽에 죽었다. 딸 잔느가 있었으나, 살리카법의 확대 해석으로 즉위하지 못했다. 하지만 잔느는 오래 살았고 나바라의 여왕으로 즉위하여 후손을 남겼다.
  • 차남 필리프 5세("장신왕"): 조카 장 1세의 뒤를 이었으나, 외아들 필리프가 1살의 나이로 사망했다. 다만 딸 네 명은 모두 오래 살아서 시집갔고 그 중 이사벨은 후손도 남겼다.
  • 삼남 샤를 4세("미남왕"): 형 필리프 5세의 뒤를 이었으나, 외아들 샤를이 태어나자마자 죽었고[8] 딸 세 명도 모두 요절하거나 후손을 남기지 못했다.
  • 손자 장 1세("유복자왕"): 루이 10세의 유복자로 아버지 루이 10세가 죽기 전에 이미 뱃속에서 왕위 계승자로 결정났었다. 따라서 태어나자마자 왕에 즉위했지만 갓난아기가 뭘 할 수 있을리가 없어 삼촌 필리프(필리프 5세)가 섭정을 맡았다. 그러나 생후 5일만에 사망했다.[9]

마지막 왕이었던 샤를 4세마저 죽자 필리프 4세의 혈족 중에서 3명이 왕위 계승을 주장했다.

  • 필리프 드 발루아: 필리프 4세의 동생 샤를 드 발루아의 아들이자 필리프 4세의 조카.
  • 잉글랜드 왕 에드워드 3세 : 필리프 4세의 차녀이자 샤를 4세의 누나 이자벨의 아들로 필리프 4세의 외손자.
  • 나바라 왕 펠리페 3세: 필리프 4세의 동생 루이 데브뢰의 아들로 필리프 4세의 조카인 동시에 루이 10세의 사위.[10] 필리프 4세의 조카사위인 동시에 손녀사위가 된다.

결국 필리프 드 발루아가 왕위 계승을 해서 필리프 6세가 되어 발루아 왕조를 세웠으나, 이 문제는 에드워드 3세의 반발을 사서 백년전쟁의 단초가 된다.

이렇다 보니 프랑스 혁명으로 부르봉 왕조가 몰락한 것이 성전기사단을 계승한 프리메이슨의 음모 때문이라는 음모론 떡밥까지도 존재한다. 루이 16세의 목이 떨어질 때 누군가 "자크 드 몰레, 이제 네 복수가 끝났다!"라고 외쳤다던가?[11]

6. 직급 및 계급 체계

  • 기사단장: 성전기사단의 총지휘관
  • 집사장: 성전기사단 내의 기사단장 아래의 2인자이자 행정업무를 담당
  • 원수: 성전기사단의 군대를 지휘
  • 부원수: 성전기사단의 군대에 소속된 보병대를 지휘
  • 기수: 기사단에 소속된 평민기사들을 지휘
  • 보급감: 기사단의 보급을 담당
  • 지역 사령관: 기사단령에 소속된 각지역을 담당
  • 성주: 지역 사령관 아래에서 각 성의 기사들과 병사들을 지휘
  • 기사: 귀족출신 기사
  • 평민기사: 비귀족출신의 기사

7. 가상 매체에서의 모습

이름만 보면 거룩한 기사단 같은 이미지지만 음모론과 결합해 많은 미디어에선 그야말로 악의 축으로 그려놓는 게 허다하다.

킹덤 오브 헤븐에서는 악역 기 드 뤼지냥이 이끌며 구호기사단과는 달리 이슬람교도들을 인정하지 않고 무자비하게 도륙내는 모습을 보인다. 이 때 이들이 "신이 그것을 원하신다!(God wills it!)"고 외치는 장면은 광기로 가득차 보인다. 구호기사단 또한 기독교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성전기사단의 저 외침에는 효과적으로 반박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작중에서 발리앙의 아버지 고드프루아와 함께 등장하는 구호기사단원은 "신앙은 믿을게 못되오"라는 대사로 시작해서 "야만적인 학살을 자행하는 자들 중 너무 많은 이8들에게서 신앙으로 가득찬 눈을 보았다"는 식으로 말하는데 그 학살을 자행하는 자들이 이 성전기사단원들이다.
작중 예루살렘 왕국은 온건파인 보두앵 4세가 통치하고 있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유럽인과 아랍인이 서로 어울려 사는 이상적인 정책을 펼치고 있었는데 성전 기사단만 계속 아랍인 이슬람교도들을 학살하고 있었기 때문에 학살범 기사들이 처형당하는 장면도 등장한다. 성전 기사단이 이러는 이유는 이슬람교도들을 여전히 적으로 보고 '주의 뜻에 따라' 모두 없애버려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현정권에 반항함과 동시에 아랍세계를 도발해서 전쟁을 흭책했던 것이다. 그런 주제에 군사적 역량은 떨어지는지(...) 전쟁이 결정되자 신나서 출병하긴 했는데 무작정 행군만 하다 물부족으로 허덕이며[12] 살라딘에게 대패한다. 예루살렘 왕국에 있던 성전 기사단원들은 하틴의 뿔 전투에서 전멸한 것으로 보인다.

다나카 요시키아르슬란 전기에 나오는 '템페레시온스'도 이를 모티브로 삼은 것으로 보이는데, 피에 굶주린 살육자로 나온다. 실제로 십자군 전쟁에 착안해 쓴 소설이니... (주인공 아르슬란은 아랍계가 아니라 파르스(페르시아)계로 설정되어서 아랍 나라와 차이가 있긴 하지만.)

유명한 온라인 덕후게임 마비노기에서는 성전기사단이라는 이름이 그대로 등장한다. 일반인들은 정체조차 모르고 비밀에 싸인 집단으로 등장하는데,그런데 밀레시안 주위의 인물들은 모두 다 알고있지 이것은 마치 달사의 세계랄까 혹은 흡혈귀가 판치는 세계에 등장하는 종교집단과 매우 흡사하다. 자신들의 말로는 라이미라크 교단의 검이라고... 이러한 설정때문인지 어느 마비노기 게임소설에서는 대놓고 성전기사단을 악의 축으로 끼어넣기도 하는등, 여러모로 마비노기 세계 내에선 밀레시안과 대립하는 존재로 부각된다.

영국 걸작 어드벤처 게임 브로큰 소드 시리즈(동서게임채널에서 파검이란 제목으로 CD로 낸 바 있다.)에서도 현대까지 남아서 전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성물을 모으면서 자신들을 방해하거나 취재하는 이들을 가차없이 제거하는 비밀조직으로 나왔다.

한국 만화 연신기 히네시스에서도 근미래 세계에 서양갑옷 입고 나와 창칼 휘둘러대다가도 총을 쏘는 패거리로 나왔다.

한국 소설 켈다마에서는 기사단장 화형의 비보를 접한 기사들이 신을 저주하며 악마와 그 앞잡이 가롯 유다를 섬기는 아켈다마 기사단으로 180도 전향한 후, 오늘날까지 유럽의 정치, 경제, 문화계의 흑막으로 암약하고 있다...는 설정이었으나 소설 속에서 실제 보여주는 행동은 미녀들을 납치해다 조교해서 성노예로 만들거나 인신 공양이나 일삼고 있었다.

스페인 좀비 영화 시리즈인 블라인드 데드 시리즈에선 한술 더떠 살아생전 두 눈이 불에 지져진 뒤 사형당했다가 세월이 지나 좀비로 부활해 사람들을 잡아죽이고 다닌다. 줄줄이 시리즈로 나오며 호평받은걸 보면 성전기사단이 좀비로 나와도 별 거리낄 건 없는 모양이다. 1971년에 1편이 나왔는데 두 눈이 없다보니 소리만 듣고 사람을 공격한다. 이 소리로 주로 사냥감을 알아차리는 좀비란 설정도 많은 영향을 준다. 그런데 좀비임에도 어찌 말까지 구해서 잘만 타고 다니며 사람을 죽이는데 기사(?)답게 사람을 칼로 목을 베어버리기도 한다.

성전기사단의 흰 옷과 그 위에 그려진 붉은 십자가는 아래 항목의 기사단의 모티브가 되었다.
미니어쳐 게임 인피니티에서는 판오세아니아기사단 중 하나다. 항목 참조.

킹덤 언더 파이어나이트 템플러가 바로 성전기사단이다. 물론 이름만 빌려온 유닛. 초창기엔 개사기유닛으로 유명했고 마구 너프를 먹은 이후에도 여전히 강력했다. 해당 항목 참고.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2에선 살라딘 캠페인과 바바로사 캠페인에 등장하는데, 사기종족인 튜튼족이다. 바바로사에선 1번만 나오고 게다가 동맹이니 별 상관은 없지만, 살라딘 캠페인에선 3번에 걸쳐 등장하며 게다가 적이다. 뭐 사라센 문명도 약체는 아니지만, 특수 유닛인 맘루크가 기병 상대로만 강력하여 튜튼족 특수 유닛인 흉악한 방어력을 가진 보병을 상대하기가 까다롭다.짤짤이로 끊어먹을 순 있지만, 짤컨할 동안 상대가 가만히 있진 않으니까 더구나 난이도가 극악인 3번과 6번 미션에 나오는지라 상대하기 버겁다. 기본적으로 1:4, 1:5의 비율로 적을 상대하는 미션들이라...

폴라리스 랩소디에서는 애져버드라는 이름으로 오마쥬되어 나온다. 이 단체의 최후가 딱 성전 기사단의 최후와 판박이. 그래도 성전기사단과 달리 완전히 멸망하지 않고 용병단으로 바꾸어 살아남다가 휘리 노이에스에 대항해 폴라리스를 도우려는 퓨아리스 4세의 의도로 '바이올 기사단'이라는 이름으로 부활한다. 하지만 막상 폴라리스에 도착하고 나서는 노스윈드 해적단들이 악마와 연계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바로 배신을 때리지만.

스타크래프트에 등장하는 프로토스의 군대인 기사단(Templar) 역시 성전기사단을 모티브로 한 것이다.

헬싱에서는 제13과 이스카리오테라는 비슷한 이름의 교황청 특무 기관이 있긴 하지만, 정작 제대로 된 기사단은 5권 즈음 런던 침공을 위해 모일 때 3천 명이 등장한다. 이른바 제9차 공중 기동 십자군 레콘키스타[13]. 참여 인원은 다음과 같다.

  • 쿨란테 검의 벗 수도 기사회 340명
  • 카라트라바 라 누에다 기사단 118명
  • 성 스테파노 기사단 토스카 군단 257명
  • 마르타 기사단 2,457명

이로써 총 3,172명이 참전했다. 그리고 모조리 깨졌다. 확실히 이스카리오테 제13과는 다르다. 하지만 실상은 이놈이나 저놈이나 광신도인 건 매한가지. 다만 이스카리오테가 교황의 지시를 받아 이단을 색출하고 제거하는 암살자 집단이라면 위의 기사단은 진짜 교황청 직속 사병 집단과 다름이 없다. 암살단과 템플러가 손을 잡았다


내셔널 트레져에서는 이집트보터 고대 로마에 이르기까지 고대 제국들의 보물이 모여진 솔로몬의 신전을 발견한 십자군 기사들이 보물을 유럽으로 옮긴 이후에 이 보물들을 지키기 위해 결성했으며, 그들의 후예들이 미국으로 보물과 함께 이주하며 프리메이슨을 결성한 것으로 나온다. 또한 보물이 개인이 아닌 인류 모두의 것이라는 모티브를 보면 기존의 악역 이미지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도시전설 창작물인 SCP 재단 세계관에서는 세계 오컬트 연합의 일원으로 나온다. 항목 참조.

7.1.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템플 기사단

사실 이 항목이 만들어진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로, 항목이 분리되기 전에는 역사 속 템플러에 대한 내용보다 이쪽 내용이 훨씬 충실했다(...). 이 게임에서 템플 기사단은 인류 최초의 살인(카인이 아벨을 살해한 성경 속 살인)이 일어난 순간부터 존재했고, 인류를 지배하여 자신들이 원하는 유토피아로 인도하기 위해 역사 속에서 암약하다가, 십자군 시대에 최초로 성전 기사단의 형태로 역사에 모습을 드러냈다. 실제 역사에서처럼 공식적으로는 1300년대 초에 몰락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지금까지도 정체를 숨기고 세계를 뒤에서 조종하는 비밀결사이다. 자세한 내용은 템플 기사단 항목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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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성 조지의 십자가라고 불린다. 잉글랜드의 상징이기도 한 이 십자가는 흰 바탕에 붉은 십자가라는 색상을 제외하고는 다양한 형태로 가지는데, 성전 기사단은 Cross pattée라고 불리는 끝이 굵은 형태의 문양을 주로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 [2] 프리메이슨의 일부 핵심인물들이 성전기사단원을 자처한다.
  • [3] 당시 전투에서 기사단의 총장이 포로가 되면서 항복보다 죽음을 택하는 성전기사단의 명예가 실추된다.
  • [4] 영어로는 "The fair" 인데 중세에는 공정하다는 의미보다는 아름답다는 의미로 쓰였으니 "미남왕"으로 해석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 필리프 4세는 돈을 많이 쓰는 것으로도 유명했는데 그 돈 중에 상당수는 본인의 미모를 꾸미기 위해 쓰였다.
  • [5] 어쌔신 크리드: 유니티의 프롤로그에서 이 장면이 묘사되는데, 암살단이 이를 뒤에서 획책하고 거든 것으로 나온다.
  • [6] 어쌔신 크리드: 유니티의 프롤로그에서는 가문이 대대손손 13대까지 저주받으리라라고 한 것으로 묘사된다.
  • [7] 다만 차녀 이사벨라는 영국에드워드 2세에게 시집을 가서 2남 2녀를 낳았다. 이사벨라는 무시무시한 여걸로 무능한 남편 에드워드 2세를 유폐하고 죽였는데 일설에는 때려죽였다고도 한다. 자세한 것은 브레이브 하트 항목 참조. 그녀의 장남 에드워드 3세는 에드워드 2세의 뒤를 이었으며 백년전쟁을 일으키게 된다.
  • [8] 마차사고가 나서 급히 제왕절개를 통해 출산시켰는데 어머니 마리아, 샤를 모두 사망했다.
  • [9] 섭정을 맡은 필리프 5세가 손을 썼다 카더라라는 설이 있으며 심지어 형 루이 10세가 요절한 것도 필리프 5세의 짓이라는 설이 있다. 하지만 정황이나 심증만 약간 있으며 결정적인 증거는 없다. 하지만 만약 정말 필리프 5세가 관여한 것이라면 프랑스수양대군이 되는 셈이다.
  • [10] 루이 10세의 외동딸 잔느와 결혼했다.
  • [11] 물론 카페 왕조와 부르봉 왕조가 혈족 관계이긴 하지만 애초에 부르봉 왕조의 시조 앙리 4세는 카페 왕조 루이 9세의 먼 후손이다. 반면 필리프 4세는 루이 9세의 손자다. 따라서 카페 왕조의 필리프 4세와 부르봉 왕조의 루이 16세는 거의 남이나 다름없다.
  • [12] 출병한 기사단원들이 물부족으로 허덕이고 지쳐가는 모습이 아랍군 진영의 풍족하고 생생할 모습과 대조적으로 교차해서 보여준다. 대화 내용에서 유추해보면 살라딘의 군대는 강을 따라 행군했기 때문에 물이 풍족했으나 무식한 기사단은 무작정 사막 한가운데로 내달렸기 대문에 물부족에 시달린것으로 보인다.
  • [13] 스페인어로 재정복이라는 뜻이다. 8차 십자군 당시의 표제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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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modified 2015-09-26 21: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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