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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인트 폴 대성당

last modified: 2015-10-20 20:23:07 by Contributors

영어 : Cathedral Church of Paul the Apostle
프랑스어 : Cathédrale Saint-Paul de Londres

측면에서 본 모습
서쪽 현관

기본 정보
위치 영국 런던
종교 성공회
홈페이지 공식 홈페이지
건축 정보
축성 1708년 10월
건축가 크리스토퍼 렌
양식 영국 바로크
착공 1675년 6월 21일
완공 1711년 12월 25일
건축 내역
길이 158m
신랑 너비37m
익랑 너비75m
높이 111m
외부 돔 높이 / 직경 85m / 34m
내부 돔 높이 / 직경 68m / 31m
시계탑 높이 67m

Contents

1. 개요
2. 역사
2.1. 과거의 대성당
2.2. 현재의 대성당
3. 건축
3.1. 고딕 vs 바로크
3.2. 돔 건설
3.3. 의장
3.4. 불굴의 의지의 상징
4. 기념비와 무덤
5. 기타

1. 개요


영국 성공회성당이자 런던 주교좌가 있는 곳으로, 시티오브런던의 러드게이트 힐에 있다. 크리스토퍼 렌이 설계한 이중구조의 거대한 도 유명하고, 길이를 비교했을 때 158.1m로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대성당이며, 이는 바티칸성 베드로 대성당 다음가는 규모이다.

제일 처음 세워진 건 604년으로, 몇 차례의 화재와 재건을 반복했으며 지금과 같은 모습의 대성당이 완성된 것은 1711년이었다. 왕실의 결혼식이나 국장과 같은 국가적인 행사가 거행되는 장소이자 위인들의 무덤으로 사용되고 있어 웨스트민스터 사원과 더불어 영국의 역사를 함께한 공간이다. 필립 시드니(1586), 호레이쇼 넬슨(1806), 아서 웰즐리(1853), 로버트 네이피어(1890), 프레더릭 로버츠(1914), 윈스턴 처칠(1965)의 국장이 여기서 거행되었으며 2013년에 세상을 떠난 마거릿 대처의 장례식도 국장에 준하는 규모로 거행되었다. 1981년 7월 29일 찰스 왕세자다이애나비가 결혼식을 올린 곳이기도 하다.

남측면에는 스 강이 있으며 강 건너 맞은편에는 새로운 런던의 명물인 테이트 모던 미술관이 있으며 둘 사이를 밀레니엄 브릿지가 연결해주고 있다.[1] 성당 주변에 돔보다 높은 건물을 짓지 못하도록 법으로 규정되어 오늘날 런던의 스카이라인을 형성하고 있다.

2. 역사

2.1. 과거의 대성당

런던 대화재로 전소되기 전의 모습

기록에 의하면 대성당이 세워지기 전 그 자리에는 다이애나 신전이 있었다고 한다. 604년 색슨족에 의해 처음으로 성당이 세워졌지만 각각 962년, 1087년, 1136년에 발생한 화재로 전소되었다가 복구되기를 반복했다. 13세기 중엽부터 확장 공사에 들어가 1314년에 건설이 마무리되었으나 1561년 벼락을 맞아 가운데 있던 첨탑이 파괴되었고, 결국 한 세기가 지난 1666년에 일어난 런던 대화재[2]로 잿더미가 되었다. 고생한다

2.2. 현재의 대성당

크리스토퍼 렌 경(Sir Christopher Wren)
1632년 10월 20일 ~ 1723년 2월 25일
전소된 대성당의 재건을 위해 구성된 왕립 위원회는 1669년 7월 30일에 건축가이자 천문학자인 크리스토퍼 렌에게 재건축을 맡겼는데, 그는 런던 대화재 이전인 1661년에 대성당의 수리를 위한 조언을 한 적이 있었다. 렌의 성 베드로 대성당을 본딴 바로크식 설계에 대해 찰스 2세는 웅장함을 살린 것에 만족하며 지지를 표했지만 왕립위원회에서는 바로크 설계가 가톨릭적이라는 이유로 고딕으로 바꿀 것을 강요했다. 가톨릭 성당의 돔을 따라하는 것은 가톨릭과 결별한 성공회를 국교로 하고 있던 영국인의 감정으로써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었다. 그러나 렌은 고딕식으로 성당 설계를 승인받고는 독단적으로 바로크 양식으로 공사를 강행하였고, 결국 대부분의 공사가 끝나자 왕립위원회에서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 때문에 세인트 폴 대성당은 고딕 양식으로 지어진 성당들이 즐비한 영국에서 유일하게 을 얹은 바로크 양식의 성당이 되었다. 1675년에 첫 번째 돌이 놓여지고 나서 1708년에 마지막 돌이 얹혀졌고, 영국 의회는 1711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에 대성당 건설이 마무리되었다고 공식 발표했다. 공사에 들어간 비용은 1716년 집계로 109만 5,556파운드에 달했다.

크리스토퍼 렌은 당시 성당을 설계하면서 건물 설계 자체보다 런던의 직위 높은 돌대가리들과 말쟁이들을 설득하고 그들의 압력에 맞서 견뎌내느라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다. 끔찍할 정도로 복마전이었다고. 그래서 그런 그가 이후 엄청나게 장수한 것(91세)을 불가사의하게 생각한 사람도 많았던듯. 이처럼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끔찍하게 고생하고도 신기하게 장수한 사람으로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도 있다.

세인트 폴 대성당은 단 한사람의 건축가의 책임 아래 건립된 대성당이라 할 수 있는데, 크리스토퍼 렌이 공사의 설계부터 완공까지 살아서 직접 담당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약 한 세기 뒤, 오귀스트 드 몽페랑이 성 이사악 대성당을 설계해 40년 동안 공사한 끝에 완성함으로써 렌의 뒤를 이었다.

고딕과 바로크가 혼재된 독특한 양식과 거대한 돔은 프랑스 건축가들에게도 상당히 인상깊게 다가왔고, 자크 제르맹 수플로의 설계로 지어진 팡테옹 등의 설계에 상당한 영향을 주었다. 드럼의 열주가 인상적인 돔의 형태는 미국 의회의사당의 돔 형태에도 영향을 주었다.

3. 건축

3.1. 고딕 vs 바로크

그리스 십자가 평면의 첫 번째 설계도(左)와 이를 바탕으로 만든 '그레이트 모델'(右)

렌이 제일 처음 제출한 설계안은 그리스 십자가 평면구조를 바탕으로 곡면으로 된 벽체에 코린트 양식 박공지붕으로 장식한 정면과 지붕 위에 거대한 돔을 얹은 바로크 양식에 충실한 것이었다.

르네상스의 영향이 이어져 고딕 양식을 불완전한 것으로 보았던 17세기 유럽의 풍조에 공감한 렌은 자신의 계획을 왕립 위원회에 납득시키기 위해 당시 돈으로 500파운드나 들여 길이 6m, 높이 4m에 달하는 목조 모형을 1673년 만들었다. 렌의 설계를 충실하게 반영한 '그레이트 모델'은 오늘날 세인트 폴 대성당의 다락방에 보관되어 있다.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렌의 첫 번째 설계안은 국교가 성공회였던 영국의 시각에서 봤을 때 그리스 십자가를 연상시키는 평면과 거대한 돔이 성 베드로 대성당으로 대표되는 가톨릭의 색채를 물씬 풍긴다고 해서 퇴짜를 맞았다.

왕립 위원회의 승인을 받은 두 번째 설계도. 일명 '워런트 설계(warrant design)'

렌은 하는 수 없이 기존의 설계안에서 한발 물러나 왕립 위원회의 요구를 절충한 두 번째 설계안을 제출해 인증을 받았다. 그러나 기존의 거대한 돔 대신 고딕식 첨탑을 변형시킨 높다란 탑이 추가된 설계는 렌의 마음에 들지 않았고, 그는 건설에 착수하면서 '워런트 설계'를 무시하고 자신이 이상적으로 생각한 바로크 양식대로 공사를 강행했다. 그 결과 나중에 완성된 세인트 폴 대성당은 '그레이트 모델'에 가까운 모습으로 지어지게 되어 바로크 양식의 돔과 고딕 양식의 십자가형의 구조가 결합되었다. 다만 공사를 진행하면서 불완전한 지반과 무거운 돔, 나중에 성당의 실체를 보게된 위원회의 중징계를 피하기 위해 그레이트 모델과 워런트 설계를 절충해서 지어 바로크 건축 양식과 고딕 건축 양식이 융합된 형태로 바실리카에서도 사용된 전통적인 장당식을 채택해 약 152m의 장대한 신랑 중간쯤의 좌우에 짧은 수랑[3]을 내물리게 했다.

형태로는 바로크 건축 양식이지만 전체적으로 보아 고딕-바로크의 절충적인 인상을 씻을 수는 없는데, 그래도 회당부를 누르는 압도적인 원개의 비율은 고전적인 열주와 박공에 의한 단정한 서쪽 정면 등을 감안했을 때 역시 원안의 정신이 반영된 것을 엿볼 수 있으며, 서쪽 정면의 좌우를 굳히는 쌍탑의 바로크풍 형태도 엄격한 고전성과 환상적인 바로크와의 조화가 추구되었고 2층에서도 고딕 양식의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

1921_saint_paul.jpg
[JPG image (155.9 KB)]
공중에서 본 모습

지면에서 본 세인트 폴 대성당의 모습은 유럽의 다른 바로크 양식의 성당들과 다를바가 없어 보이지만 사실 2층은 가림막이라 할 수 있는 가짜벽으로, 2층 창문쪽을 가까이에 본다면 유리창이 아닌 교묘하게 조각된 것을 알 수 있다. 이 가짜벽은 고딕 성당의 2층 벽을 지지대 역할을 한 플라잉 버트레스를 가리기 위한 것으로 2층이 무거운 돔에 위해 붕괴되는 것을 막기 위한 방책이었지만 플라잉 버트레스를 추한 형상으로 혐오스럽게 보았던 렌은 가짜벽을 만들어 가리게 되었다. [4]

3.2. 돔 건설

돔의 횡단면도

렌은 전통적인 건설 순서에 따라 성가대석을 먼저 만들지 않고 성가대석, 신랑, 측랑 등 성당 전체에 대한 공사를 동시에 진행했다. 성당 건설이 일부분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진행되면 공사 비용이 한도를 초과하더라도 의회가 반 이상 지어진 성당을 부수고 계획을 백지화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배째라 더구나 렌이 이상하리만큼 너무나 돔에 집착했기에 가능한 짓이었다.

문제는 돔을 건축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다는 것이었다. 상술대로 지반이 엄청 불안정했다. 사실 렌은 성당을 세우기 전 지반을 단단히 다지기는 했는데 돔이 세워질 터의 지반이 예상보다 약했다는 게 함정이었다. 허나 이미 건물은 돔만 남긴 채 완성되기 일보직전이라 결국 렌은 돔 건설을 감행해야 했다.

돔의 외형은 로마의 성 베드로 대성당의 돔을 면밀히 연구한 것을 기초로 열주식 드럼 돔을 올리기로 결정했으나 이번엔 돔의 무게가 문제였다. 돔이 생각보다 무거워서 그 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드럼이 붕괴될 것을 예측한 렌은 파리의 바르 드 그라스 성당의 이중돔을 도입했고 거기에 한층 더 발전해 벽돌조 돔의 천장 위에 목조 돔의 지붕, 그리고 그 위에 세운 채광탑을 지탱하기 위한 벽돌조의 절두원추형의 볼트를 만들어 돔 전체를 삼중각의 구조의 공법으로 돔을 완성시키는데 성공한다. 여기에는 렌의 친구이자 현미경을 개량해 복합현미경을 만든 것으로 유명한 화학자·물리학자·천문학자 로버트 훅도 참여해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했다. 양 끝이 고정된 쇠사슬을 아래로 늘어뜨리면 쇠사슬 자체의 무게에 의해 현수선을 그리게 되는데, 이때 아래로 늘어진 쇠사슬을 그대로 뒤집으면 현수선이 흐트리지지 않고 유지되는 것을 발견해 친구인 렌에게 조언한 것.

3.3. 의장

다만 이 성당이 바로크식에 가깝다고는 하지만 실내 장식 등에 있어서는 바로크식에 비해 다소 수수한 편. 유럽의 대륙국가, 특히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경우 바로크 양식의 장식은 회화, 조각, 공간이 일체화된 화려함을 보이는 반면 영국의 경우 다소 수수하고 절제된 경향을 보여준다. 세인트 폴 대성당의 장식 역시 화려하긴 하지만, 다른 바로크 양식의 성당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장식이 절제된 느낌을 주는 편.

성당 내부는 호화스러운 장식으로 그린링 기번스(Grinling Gibbons, 1648.4.4~1721.8.3)의 목세공과 제임스 손힐 경(Sir James Thornhill, 1675/1676.7.25~1734.5.4)이 돔에 그린 프레스코와 모자이크로 된 벽화로 마무리되었고 기부 내측의 회랑은 원형의 벽을 타고 작은 소리도 전하기 때문에 '속삭임의 회랑'이라고 한다.

3.4. 불굴의 의지의 상징

St Paul's Survives 대성당이 쓰러지지 않아

영국 본토 항공전이 격화되어 런던 대공습이 시작된지 114일째가 되던 1940년 12월 29일, 독일 공군의 폭격은 세인트 폴 대성당에도 엄습해 그 주변에만 29발의 폭탄이 떨어졌다. 이 중 단 하나만이 대성당의 돔을 뚫고 떨어졌지만 다행히 터지지 않았기 때문에 소방대가 목숨을 걸고 그 폭탄을 치우는데 성공했다.[5] 주변 건물들이 폭격으로 무너져 화염에 휩싸이고 잿더미가 되었지만 그 와중에도 대성당만이 포연 속에서 굳건하게 버텼는데, 데일리 메일의 사진작가 허버트 메이슨이 회사 옥상에서 바로 이 장면을 촬영했다. 전쟁 중에 도망 안가고 사진 찍는 불굴의 의지

이전부터 런던의 명물로 시민들의 사랑을 받던 세인트 폴 대성당은 이 사진으로 인해 단순한 명소를 뛰어넘어 대공습에도 무너지지 않는, 영국인이 가진 불굴의 의지를 상징하게 되었다.

4. 기념비와 무덤

크리스토퍼 렌 호레이쇼 넬슨 아서 웰즐리

내부에는 호레이쇼 넬슨, 웰링턴 공작 아서 웰즐리 등 영국의 위인들이 안장되어 있으며 수많은 기념비로 가득하다. 재건된 이곳에 제일 먼저 매장된 사람은 1723년 2월 25일에 9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대성당의 설계자인 크리스토퍼 렌 경인데, 그의 무덤이 있는 지하실의 벽면에는 다음과 같은 라틴어 묘비명이 새겨져 있다.
 
SUBTUS CONDITUR HUIUS ECCLESIÆ ET VRBIS CONDITOR CHRISTOPHORUS WREN,
QUI VIXIT ANNOS ULTRA NONAGINTA, NON SIBI SED BONO PUBLICO.
LECTOR, SI MONUMENTUM REQUIRIS CIRCUMSPICE
Obijt XXV Feb: An°: MDCCXXIII Æt: XCI.
(여기 이 토대에 이 교회와 도시의 건축가이며
사익이 아니라 공익을 위하여 90년 넘게 살았던 크리스토퍼 렌이 누워 있다.
읽는 이여, 그의 기념비를 찾고자 하거든 그대의 주위를 둘러보라.
1723년 2월 25일, 91세를 일기로 사망.)
 
안장된 인물들은 사망일을 기준으로 정리.
이름 출생 사망 비고
랭커스터의 블랑슈(Blanche of Lancaster) 1345.3.25 1368.9.12 헨리 4세의 어머니
곤트의 존(John of Gaunt) 1340.3.6 1399.2.3 헨리 4세의 아버지
존 네빌(John Neville) 1493.11.17 1543.3.2 3대 라티머 남작 [6]
앤 허버트(Anne Herbert) 1515.6.15 1552.2.20 펨브룩 백작부인 [7]
존 네빌(John Neville) 1520 1577.4.22 4대 라티머 남작
조지 가드너(George Gardiner) 1535? 1589 사제
프랜시스 월싱엄(Francis Walsingham) 1532 1590.4.6 국새상서
사이먼 배스커빌(Simon Baskerville) 1574 1641.7.5 의사
제러마이아 클라크(Jeremiah Clarke) 1674 1707.12.1 작곡가·오르가니스트
크리스토퍼 렌(Christopher Wren) 1632.10.20 1723.2.25 건축가·천문학자
조슈아 레이놀즈(Joshua Reynolds) 1723.7.16 1792.2.23 초상화가
조너선 배티실(Jonathan Battishill) 1738.5 1801.12.10 작곡가·키보디스트·테너
알렉산더 웨더번(Alexander Wedderburn) 1733.2.3 1805.1.2 상원의장
호레이쇼 넬슨(Horatio Nelson) 1758.9.29 1805.10.21 해군제독
존 오피(John Opie) 1761.5.16 1807.4.9 초상화가·풍속화가
커스버트 콜링우드(Cuthbert Collingwood) 1748.9.26 1810.3.7 해군제독
로버트 마일른(Robert Mylne) 1733.1.4 1811.5.5 건축가
존 레니 1세(John Rennie the Elder) 1761.6.7 1821.10.4 토목기사
조지 댄스 2세(George Dance the Younger) 1741.4.1 1825.1.14 건축가·측량사·초상화가
헨리 퓨절리(Henry Fuseli) 1741.1.7 1825.4.17 화가
윌리엄 카네기(William Carnegie) 1756.4.10 1831.5.28 해군제독
토머스 애트우드(Thomas Attwood) 1765.11.23 1838.3.24 작곡가·오르가니스트
조지프 말로드 윌리엄 터너(J. M. W. Turner) 1775.4.23 1851.12.19 화가
아서 웰즐리(Arthur Wellesley) 1769.5.1 1852.9.14 육군원수·총리 [8]
헨리 하트 밀먼(Henry Hart Milman) 1791.2.10 1868.9.24 역사가·성직자
헨리 멜빌(Henry Melvill) 1798 1871.2.9 성공회주교
에드윈 랜시어(Edwin Landseer) 1802.3.7 1873.10.1 화가·조각가
존 헨리 폴리(John Henry Foley) 1818.5.24 1874.8.27 조각가
조지 크룩섕크(George Cruikshank) 1792.9.27 1878.2.1 풍자화가·삽화가·판화가
에드워드 헨리 파머(Edward Henry Palmer) 1840.8.7 1882.8 동양학자
헨리 바틀 프레어(Henry Bartle Frere) 1815.3.29 1884.5.29 식민지총독
로버트 네이피어(Robert Napier) 1810.12.6 1890.1.14 군인·해양학자
존 에버렛 밀레이(John Everett Millais) 1829.6.8 1896.8.13 화가
조지 그레이(George Grey) 1812.4.14 1898.9.19 군인·탐험가·식민지총독
아서 설리번(Arthur Sullivan) 1842.5.13 1900.11.22 작곡가
맨델 크라이턴(Mandell Creighton) 1843.7.5 1901.1.14 역사가·성공회주교
조지 윌리엄스(George Williams) 1821.10.11 1905.11.6 YMCA의 창설자
가닛 울슬리(Garnet Wolseley) 1833.6.4 1913.3.25 육군원수
프레더릭 로버츠(Frederick Roberts) 1832.9.30 1914.11.14 육군원수
헨리 윌슨(Henry Wilson) 1864.5.5 1922.6.22 육군원수
루이스 크라이턴(Louise Creighton) 1850.7.7 1936.4.15 작가 [9]
렉산더 플레밍(Alexander Fleming) 1881.8.6 1955.3.11 세균학자 [10]
맥스 비어봄(Max Beerbohm) 1872.8.24 1956.5.20 수필가·패러디작가·풍자화가
윌리엄 레이드 딕(William Reid Dick) 1879.1.13 1961.10.1 조각가
헨리 무어(Henry Moore) 1898.7.30 1986.8.31 조각가

5. 기타

닥터후 뉴 시즌 8 에피소드 1 '심호흡(Deep Breath)'에서는 우주선 마리 앙투아네트호의 태엽로봇이 탈출정을 타고 날아갈 때 세인트 폴 대성당의 돔 곁을 지나가는 모습으로 나왔다. 그리고 뉴 시즌 8 에피소드 11 '어두운 물(Dark Water)'에서는 3W라는 유령회사가 있는 곳으로 나온다. 그리고 거기서 나오는 것들은… 여기에 뉴 시즌 8 에피소드 12 'Death in Heaven'에서는 입구에서 나온 그것들이 돔의 지붕이 열리면서 영국 전역으로 날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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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밀레니엄 브릿지는 대성당의 고전미와 미술관의 모더니즘으로 런던의 복합성을 잘 느낄 수 있게 해주는 명소다.
  • [2] 1666년 9월 2일에 시작되어 5일 동안 런던시의 4/5를 불태운 화재였다. 이후 영국에서는 건물을 석재로 건축하도록 법이 만들어지고, 세계 최초의 소방조직/소방차/화재보험이 만들어졌다. 쥐가 다 불타 죽어서 1665년 17,440명이 사망한 흑사병이 종료되는 일도 있었다.
  • [3] 교차랑의 남북양단 부분을 말함
  • [4] 여담으로 르네상스와 바로크 건축의 시각에서 플라잉 버트레스 등을 혐오스럽게 보았던 가장 큰 이유로는 플라잉 버트레스가 높은 벽을 지탱하기 위해 억지로 사용된 미봉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르네상스와 바로크 건축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이중 돔 구조나 세인트 폴 대성당의 가짜 벽을 보면 진실된 구조라는 시점에서 볼 때는 아이러니함이 느껴진다.
  • [5] SF 작가 코니 윌리스의 단편 화재감시원(Fire Watch)은 이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이 작품은 휴고상과 네뷸러상을 수상하는 위엄을 달성하며 작가는 일약 SF계의 총아로 떠오른다.
  • [6] 그의 세 번째 아내가 헨리 8세의 마지막 아내인 캐서린 파이다.
  • [7] 캐서린 파의 여동생.
  • [8] 1대 웰링턴 공작.
  • [9] 맨델 크라이턴의 아내.
  • [10] 리소자임, 페니실린의 발견자. 1945년 노벨 생리학·의학상을 공동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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