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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last modified: 2015-04-09 13:15:24 by Contributors

MLB 내셔널리그
중부지구 소속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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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Saint Louis Cardina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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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워키 브루어스
(Milwaukee Brew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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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 컵스
(Chicago Cu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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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시내티 레즈
(Cincinnati Re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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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츠버그 파이리츠
(Pittsburgh Pira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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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rom
모자 로고[1] 구단 로고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St. Louis Cardinals
창단 1882년
연고지 미주리세인트루이스
구단 연고지 변천 세인트루이스 (1882~)
구단명 변천 세인트루이스 브라운스타킹스(St. Louis Brown Stockings)(1882)
세인트루이스 브라운스 (St. Louis Browns) (1883~1898)
세인트루이스 퍼펙터스 (St. Louis Perfectos) (1899)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St. Louis Cardinals) (1900~)
홈 구장 스포츠맨스 파크 (Sportsman's Park) (1882~1892, 1920~1966)
로비슨 필드 (Robison Field) (1893~1920)
부시 메모리얼 스타디움 (Busch Memorial Stadium) (1966~2005)
부시 스타디움 (Busch Stadium) (2006~)
구단주 윌리엄 O. 드윗 주니어 (William O. DeWitt, Jr.)
사장 윌리엄 O. 드윗 3세 (William O. DeWitt III)
단장 존 모젤리악 (John Mozeliak)
감독 마이크 매시니 (Mike Matheny)
월드 시리즈 우승
(11회)
1926, 1931, 1934, 1942, 1944, 1946, 1964, 1967, 1982, 2006, 2011
내셔널리그 우승
(19회)
1926, 1928, 1930, 1931, 1934, 1942, 1943, 1944, 1946, 1964, 1967, 1968,
1982, 1985, 1987, 2004, 2006, 2011, 2013
지구 우승
(12회)
1982, 1985, 1987, 1996, 2000, 2002, 2004, 2005, 2006, 2009, 2013, 2014
와일드카드 획득
(3회)
2001, 2011, 2012
홈페이지
유니폼
원정 얼터네이트

Contents

1. 개요
2. 연혁
2.1. 아메리칸 어소시에이션의 강자.
2.2. 초기 전성기
2.3. 스탠 뮤지얼의 시대
2.4. 밥 깁슨과 1960년대의 영광
2.5. 화이티 볼(Whiteyball)
2.6. 1990년대의 짧은 암흑기
2.7. 2000년대 : NL 중부지구의 강자
2.8. 2008년~ : 지속가능한 강팀으로
2.8.1. 2010년
2.8.2. 2011년 : 11번째 우승을 차지하다.
2.8.3. 2012년
2.8.4. 2013년 : 다시 한 번 우승
2.8.5. 2014년
2.8.6. 2015년
3. 이모저모
3.1. 구단운영
3.2. 팬덤과 라이벌리
3.3. 홈 구장 부시 스타디움
3.4. 영구결번
4. 계약중인 마이너리그 구단
4.1. 트리플 A
4.2. 더블 A
4.3. 싱글 A
4.4. 루키


1. 개요

11회 우승 플래그 그동안 모은 반지들

MLB의 프로야구단. 내셔널리그 중부지구 소속. 연고지는 세인트루이스.

내셔널리그의 전통적인 강팀. 팀명인 카디널스는 wikl:"앵그리버드 시리즈/캐릭터" 앵그리버드홍관조라는 뜻이다. 현재 카디널스의 문양의 기초를 만든 사람은 팀에 공헌이 가장 큰 인물 중 한 명인 브랜치 리키다. 별명은 'Red Birds'. 카디널스를 줄인 약자인 카즈(Cards)로 불리기도 한다.이 양반 말고[2]


훌륭한 성적의 명문팀으로, 2014년 기준으로 메이저리그에서 뉴욕 양키스(27회) 다음으로 월드시리즈 우승 경험이 많은(11회) 팀[3]이며, 내셔널리그 월드시리즈 최다 우승 팀이다.[4] 국내에서는 뉴욕 양키스, 보스턴 레드삭스, LA 다저스 등 대도시 연고팀들에 비해 인기가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편이나 미국에선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전통의 명가로 팬과 선수들의 존경을 받는 팀으로, 평균관중수도 메이저리그 상위권이다.[5]

사실 구단의 지출 규모는 뉴욕 양키스나 보스턴 레드삭스 같은 빅마켓 구단에 비할 바는 아니나 리그 중상위권[6]을 유지하고 있으며, 우수한 팜시스템과 트레이드 수완, 선수 관리 등으로 페이롤 대비 성적이 굉장히 좋다. 좋은 성적과 훌륭한 명성으로 팬이나 선수나 워낙 충성도가 높아 중상위권의 지출 규모를 유지하면서, 연봉 디스카운트를 감내하고라도 오겠다는 선수들을 적절하게 영입해 나가는 선순환이 안정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세인트루이스 항목을 보면 나오지만, 이 도시는 인구도 많지 않을 뿐더러 역사적인 도시이긴 하지만 전성기 때보다 인구도 아주 적고 범죄율도 높은, 망한 도시에 가까운 곳이다. 국내 야구팬들은 그걸 몰라요 도시를 먹여 살리는 야구팀인 셈이다.

다만 중계권 계약 시기를 잘못잡는 바람에 애틀란타와 함께 바닥을 기는 중계권료(연간 1400만 달러)가 구단의 발목을 잡고있다[7]. 하지만 2017년이 되면 계약이 만료된다. 애틀랜타는 2031년까지

긴 역사를 통틀어 로저스 혼스비, 지 딘, 스탠 뮤지얼, 밥 깁슨, 아지 스미스, 알버트 푸홀스 등 손꼽히는 유명 선수들을 배출하였다. 이들이 특정 시기에 몰려 있는 것도 아니고 20세기 초부터 현재에 이르까지 면면히 배출되어 왔다는 것이 또한 전통의 강호로서의 자랑거리.

또 다른 자랑거리는, 월드 시리즈에서 '뉴욕 양키스'를 2번 이상 만난 팀 중 유일하게 전적이 우세하다는 것(3승 2패). 내셔널리그에서 카디널스, 자이언츠, 다저스를 3대 명문이라 할 수 있는데, 나머지 두 팀이 번갈아 가며 양키스전 5연패를 찍는 등 우승 반지 13개를 헌납했고, 결국 뉴욕에서 입지를 잃어 연고지를 이전한 것과 상당히 비교되는 부분이다.

해야갤에서는 약관조라 놀림받는다. 홍관조+약=약관조[8]

그리고 모르는 사람들이 꽤 많은 사실이지만 최초로 방한경기를 가진 MLB 팀이다. 날짜는 1958년 10월 21일.

2. 연혁

2.1. 아메리칸 어소시에이션의 강자.

세인트루이스 브라운스 로고 당시의 선수들

원래는 내셔널리그가 아니라 내셔널리그의 대립체로 생겨난 아메리칸 어소시에이션 소속이었다. 이 리그에서 상당한 실력을 보여주면서 1888년, 1887년, 1886년, 1885년, 총 4번의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이 때가 1880년대인데, 이 시기에 내셔널리그에서 강호로 군림한 팀이 바로 시카고 컵스. 그래서 도시 간의 라이벌 의식(당시에는 세인트루이스도 시카고와 함께 중서부 지역을 대표하는 도시였다.)과 양 리그의 자존심도 걸리고 해서 이 두 팀은 서로 정규시즌에는 만나는 일이 없었지만, 이벤트 형식으로 맞붙기도 했고, 그 결과로 오늘날까지도 서로 불구대천의 라이벌이다.


세인트루이스의 내셔널리그 편입 이후 100주년 기념 패치.
하지만 경기 불황과 리그 간의 대결에서 결국 내셔널리그만 살아남고 아메리칸 어소시에이션이 1891년 파산하는 것으로 사라지면서 1892년 결국 내셔널리그로 편입되었다. 그리고 이 때 이후로 초기의 전성기와는 거리가 멀게 되었다.

초기엔 세인트루이스 브라운 스타킹스(Brown Stockings)라고 불렀으나 1883년부터 세인트루이스 브라운스로 줄였다.[9]

세인트루이스 퍼펙터스 로고 당시의 선수들 당시 야구선수 카드[10]

그리고 1899년 잠깐 세인트루이스 퍼펙터스(St. Louis Perfectos)로 고쳤다가, 바로 이듬해인 1901년에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로 다시 바뀐다.

2.2. 초기 전성기

1926년 월드시리즈 포스터 우승반지 우승기념패치

1920년대 들어서부터 메이저리그의 전설적인 2루수 로저스 혼스비가 등장하면서 팀은 다시 상승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혼스비는 역대 최강의 공격력을 자랑하는 2루수로 팀을 이끌면서 팀의 성적 향상에 크게 기여했다. 그가 선수 겸 감독으로 활약한 1926년에는 마침내 월드시리즈 첫 우승에 성공했다. 상대가 베이브 루스, 루 게릭과 같은 전설적인 선수들이 최전성기를 구가하던 뉴욕 양키스였기 때문에 그 우승의 의미는 더욱 컸다.

하지만 본격적인 전성기의 시초는 천재적인 단장 브랜치 리키에 의해 만들어졌다. 1919년에 팀의 감독 겸 단장으로 부임했던 그는 1925년 로저스 혼스비에게 감독 자리를 내주고 단장 자리에만 집중했다. 그리고 현재 메이저리그 모든 팀들이 채택하는 팜 시스템을 고안했다. 과거 메이저리그는 마이너리그와 전혀 별개의 존재로 마이너리그에 유망한 선수가 등장하면, 이 선수를 가지고 돈싸움을 벌여서 이기는 쪽이 데려가는 구조였다. 도시가 크지 않아 돈싸움에 불리하던 세인트루이스의 상황상 돈을 많이 쓸 수 없었기 때문에 통채로 마이너리그 팀을 산 후, 직접 계약한 선수들을 보내서 훈련시키는 방법을 쓴 것이다. 이 방법이 제대로 통하면서 세인트루이스는 무수한 인재들을 얻었다.

1931년 월드시리즈 오피셜 프로그램 우승반지 우승기념패치
1934 년 월드시리즈 포스터 우승반지 우승기념패치

첫 성과는 1934년에 나왔는데, 지 딘을 필두로 한 선수들은 거친 플레이와 매너로 악명이 높았지만 실력 하나는 마이너리그부터 길러져서 당대 최고 수준이었고, 이를 기반으로 1928, 1930, 1931, 1934년 내셔널리그를 제패했고, 이 중 1931년과 1934년에는 각각 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디트로이트 타이거스를 제압하면서 월드시리즈 우승에 성공했다.

소총부대 주요 인물들의 카드[11]

이 시기의 선수들을 가르켜서 개스하우스 갱(Gashouse Gang)이라고 칭한다. 왜냐하면 플레이가 더러우면서 거칠었고 경기 후에는 폭음과 파티로 밤을 지새는 일이 잦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2.3. 스탠 뮤지얼의 시대

개스하우스 갱의 거친 매너로 메이저리그를 제패하던 시기가 지나자 한 동안 잠시 주춤한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브랜치 리키가 만들어 놓은 팜 시스템에서는 꾸준히 인재들이 쏟아져 나왔다. 비록 리키는 1945년을 끝으로 브루클린 다저스로 떠나지만 그가 만들어 놓은 기반으로 인해 세인트루이스는 더 강력해질 수 있었다. 그 결과물의 대표적인 선수가 메이저리그 역사에 손꼽히는 강타자이자 가장 존경받는 선수 중 한 명인 스탠 뮤지얼이다.

1942년 월드시리즈 오피셜 프로그램 우승반지 우승기념패치
1944년 월드시리즈 오피셜 프로그램[12] 우승반지 우승기념패치

뮤지얼을 필두로 강력한 타선을 구축하면서 1940년대 초반을 완전히 카디널스의 패권으로 장식하는데, 1942년, 1943년, 1944년 내셔널리그 3연패 및 1946년 리그 우승으로 내셔럴리그에서 위세를 떨친 후, 1942년과 1944년, 1946년에는 월드시리즈 우승에도 성공하며 이 시기를 자신들의 시기로 만들었다. 1942년과 1943년에는 뉴욕 양키스와 승패를 주고 받았고, 1944년에는 역사상 처음이자 (아마도) 마지막이 될[13] 세인트루이스 시리즈를 치러 세인트루이스 브라운스를 누르고 우승에 성공했다. 사실 이 시기의 영광의 근원은 제2차 세계대전와중에 우수한 선수들이 징집되었지만, 스탠 뮤지얼이 가정 형편 때문에 1945년에 이르러서야 징집된 행운도 따랐다.

1946년 월드시리즈 오피셜 프로그램 우승반지 우승기념패치

그러나 1946년 전쟁이 끝나고 모든 메이저리거들이 돌아온 시즌에서 보스턴 레드삭스를 누르고 우승에 성공하면서 그들의 우승이 단순한 시대적인 운의 산물은 아님을 증명했다.

이 경기에서 가장 유명한 장면이 7차전 3:3으로 맞선 상황에서 에노스 슬라터가 보스턴의 유격수 자니 페스키의 방심을 틈타 평범한 단타때 홈까지 질주해서 결승 득점을 올리는 장면이다. 일명 광란의 질주(Mad Dash)라 불리는 이 장면으로 인해 카디널스는 보스턴을 누르고 우승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우승을 끝으로 세인트루이스는 1950년대는 우승과 인연을 맺지 못했다. 스탠 뮤지얼은 건재했지만, 이 시기 전열을 정비하고 도약하는 브루클린 다저스뉴욕 자이언츠의 위세에 눌린 것이 가장 컸다.

2.4. 밥 깁슨과 1960년대의 영광

1954년 세인트루이스 브라운스가 볼티모어로 떠나면서 유일한 세인트루이스 팀이 된 카디널스는 1950년대를 넘어 1960년대 다시금 정상에 올랐다. 트레이드를 통해 영입한 전설적인 대도(大盜) 루 브록과 당대 최강의 에이스 밥 깁슨을 앞세워 리그를 평정한 것. 브록은 잊혀졌던 도루의 가치를 재발견하면서 리그 최고의 타자 중 한 명으로 성장했고, 무엇보다 밥 깁슨은 최강의 완투형 투수이자 강심장으로 1960년대 세인트루이스가 차지한 두 차례 월드시리즈에서 모두 7차전 승리를 책임졌다.

1964년 월드시리즈 오피셜 프로그램 우승반지 우승기념패치
1967년 월드시리즈 오피셜 프로그램 우승반지 우승기념패치

1960년대 카디널스는 총 세 번의 리그 우승을 차지하는데, 각각 1964년과 1967년, 그리고 1968년이 그것이다. 이 중 1964년에는 뉴욕 양키스를, 1967년에는 보스턴 레드삭스를 누르고 월드시리즈 우승에 성공했다. 모두 7차전까지 가는 대접전이었고, 마지막 7차전 승리를 책임진 선수는 밥 깁슨이었다. 1968년에도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와 7차전까지 가는 대접전을 벌였는데, 1968년 평균자책 1.12[14]로 리그 MVP에 오른 밥 깁슨이 나와 시리즈 내내 호투하고 또 한 번 마지막 7차전을 마무리 하러 올라왔지만, 중견수 커트 플러드의 실책성 수비로 결승점을 내주며 결국 패배, 1968년은 월드시리즈 우승에 실패했다.

그리고 이 해를 끝으로 팀은 조금씩 하향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조 토레가 나와 리그 MVP도 차지했지만, 결정적인 실수는 연봉 문제로 인해 갈등을 빚던 왼손 투수 스티브 칼튼필라델피아 필리스로 트레이드 시킨 것. 칼튼은 필라델피아에서 에이스로 도약했고, 반대로 세인트루이스는 밥 깁슨의 뒤를 이을 에이스를 그렇게 놓쳤다.

2.5. 화이티 볼(Whiteyball)

1970년대를 놓쳤지만, 1980년대 들어 명장 화이티 허조그의 부임 이후 팀은 다시 안정세를 찾았다. 그가 주창한 화이티 볼은 일종의 스몰볼로 작전 야구와 탄탄한 수비를 기반으로 안정적인 투수력으로 점수를 지켜내는 야구였다. 화이티 볼의 선봉장은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에서 트레이드 해 온 수비의 마법사 아지 스미스. 전 소속팀에서 공격력이 약하다고 트레이드된 아지 스미스는 특유의 수비를 보여주면서 동시에 공격력도 향상되며 화이티볼의 핵심으로 자리잡았다.

(ɔ) from
1982년 월드시리즈 오피셜 프로그램 우승반지 우승기념패치

1982년 지구 우승을 차지하고 필라델피아 필리스를 누르고 월드시리즈에 올라 밀워키 브루어스를 제압하고 15년만의 월드시리즈 우승에 성공했다. 이 당시 팀 홈런은 겨우 67개로 216개였던 밀워키에 미치지 못했지만, 투수력과 강한 수비력을 앞세워 우승에 성공했다. 아지 스미스가 이끄는 수비력이 좋았고, 마무리 브루스 수터가 이끄는 불펜도 훌륭한 편이었다.

이 때의 성공을 바탕으로 1985년과 1987년에도 월드시리즈에 올랐다. 그러나 1985 월드 시리즈에서는 6차전 우승까지 아웃카운트 단 하나 남은 상황에서 나온 심판의 어이없는 오심으로 우승을 날리면서 캔자스시티 로열스에게 패한다. 명백한 아웃을 세잎으로 판정[15][16]하면서 끝내기 안타를 맞고 6차전을 졌는데, 동점이 된 상황에서 벌어진 7차전 주심은 바로 6차전 오심의 주역이었던 것. 결국 평정심을 잃고 7차전은 0-11로 대패하면서 우승을 내줬다. 그리고 1987년에는 미네소타 트윈스와 만나 홈에서 벌어진 3경기는 모두 이겼지만, 미네소타의 홈빨에 밀리며 원정 4경기를 모두 패하면서 결국 월드시리즈 우승을 내줬다.

2.6. 1990년대의 짧은 암흑기

1990년대에는 팀 성적이 좋지 않았다. 지구우승도 한번밖에 못하고 5할을 넘나들었으니 앞뒤의 전성기에 비하면 암흑기가 맞다. 다른 약팀들은 웁니다 화이티 허조그가 은퇴한 후, 팀에서 MVP를 차지했던 조 토레가 부임했다. 그러나 허조그의 스몰볼도 한계가 보였고, 새로운 형태의 야구를 구사하기에는 조 토레는 아직 각성하지 못했다. 결국 토레의 부임 6년은 완전히 실패로 돌아갔다. 이후 1995년 자케티가 단장으로 부임하고, 1995 시즌 중반 조 토레가 해고되고 1996년 팀은 오클랜드에서 큰 성공을 거둔 감독 토니 라 루사를 영입했다. 이들은 1996년 깜짝 지구우승을 해냈지만 라 루사라고 당장 별 볼일이 없는 팀을 강호로 만드는 재주가 있지는 않았다.

이 시기 그래도 볼만한 것은 마크 맥과이어의 홈런 쇼였다. 1997년 오클랜드에서 트레이드해온 맥과이어는 팀의 암흑기를 지탱했으며, 당시 세인트루이스의 부시 스타디움을 찾은 관중들은 순전히 이 홈런을 보려고 온 것이었다. 1998년에는 새미 소사와의 경쟁 끝에 70호 홈런을 치면서 로저 매리스의 61호 홈런 기록을 경신한 것이 그 백미. 당시에는 컵스가 강팀이었고 세인트루이스가 바닥이어서 맥과이어는 팀성적 상관없이 맘껏 홈런을 치면서 유리하게 경쟁할 수 있었다.[17] 하지만 이 모두 이제는 약물 빨로 밝혀지면서 의미를 잃었다.

2.7. 2000년대 : NL 중부지구의 강자

카즈는 2000년에 드디어 95승을 따내며 전시즌 대비 20승을 더 올렸다. 단장 자케티는 1999년이 끝나고 오프시즌에 부상으로 부진했던 베테랑들을 여럿 데려왔는데 이들은 모두 부활했다. 콜로라도에서 왕창 깨졌던 대릴 카일이 다시 20승을 거뒀고 함께 데려온 부진했던 마무리 데이브 베레스도 좋은 모습을 보였다. 부상으로 37경기밖에 소화못한 페르난도 비냐는 탑 리드오프 2루수가 되었고 무엇보다 역시 1999년 55경기밖에 못 나섰던 짐 에드먼즈는 이적 첫해 42홈런, 골든글러브, MVP 4위를 차지한다. 여기에 감독 토니 라 루사의 지도력도 큰 도움을 준 것은 물론이다. 팀 구성에도 빅뱃을 좋아하는 라 루사 감독의 성향에 맞게 타선은 엄청난 파워를 발휘했다.

동시에 팜에서도 뛰어난 선수들이 나왔으니 스캇 보라스의 농간에 필리스와 트러블을 일으켰던 슈퍼 유망주 J.D. 드류가 2000년부터 활약하기 시작했고 2001년에는 메이저리그 역사에 남을 괴물이 등장했다. 2000년에는 챔피언십에서 무너졌고 01년에는 커트 실링랜디 존슨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를 디비전 시리즈에서 만나 혈전을 벌였다. 푸홀스가 랜디 존슨에게 홈런을 빼앗는등 디백스와 대등한 경기를 벌였지만 토니 워맥에게 5차전 스퀴즈 실패 후 끝내기 안타를 맞으면서 무너졌다.

2002년에는 에이스 대릴 카일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는 충격이 있었지만 맷 모리스가 2001년에 이어 에이스로 자리잡았고, 그 이후에도 스캇 롤렌래리 워커와 같은 강타자들을 보강하는가 하면 선발 디 윌리암스와 우익수 지 샌더스 등 소소한 영입도 좋은 결과를 냈다. 2002년 97승 이후 2003년 85승으로 주춤했다가 2004년 105승, 2005년 100승으로 최강의 전성기를 맞는다. 특히 2004년, 에드몬즈, 스캇 롤렌, 알버트 푸홀스 등의 리그 정상급 클린업에 니 워맥드가 렌테리아의 테이블 세터진에 더해서 래리 워커지 샌더스가 가세한 2004년의 타선은 그 옛날 베이브 루스루 게릭이 버티던 뉴욕 양키스의 'Murderer's Row(살인타선)의 재림'이라고 불리우며 상대팀의 공포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18]


2004년 당시 타선 멤버들. 수비형 포수 마이크 매시니가 걸맞지 않지만 넘어가자

그러나 포스트시즌 성적은 좋지 않아 2004년에는 드디어 월드시리즈에 올라왔지만 보스턴 레드삭스에 시리즈 4연패로 시원하게 털렸다. 당시 보스턴의 밤비노의 저주를 깰 것인가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어 대부분의 언론에서는 대놓고 보스턴 편을 들었다. 아니 세인트루이스가 월드시리즈 올라온 것 자체에 관심이 없었다. 그저 들러리 신세.(...) 심지어 휴스턴 애스트로스와 펼친 숨막히는 명승부도 같은 시기 벌어진 뉴욕 양키스보스턴 레드삭스의 명승부에 묻혔다(...) 안습. 2005년에는 내셔널리그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휴스턴 애스트로스와 리턴매치를 벌여 이번에는 패했다. 알버트 푸홀스가 휴스턴 마무리 브래드 릿지의 멘탈을 박살낸 인상적인 홈런을 때려냈다. 그러나 자케티 단장의 성향상 유망주는 항상 부족했고 2006년부터 팀이 한계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간신히 포스트시즌 지출은 했지만 겨우 83승.

2006년 월드시리즈 오피셜 프로그램 우승반지 우승기념패치

그런데 오히려 이번에는 월드시리즈 패권을 차지했다. 이 해 정규시즌 성적은 타선은 6위에 투수진은 9위에 불과했다. 에드몬즈스캇 롤렌의 전성기가 지났고 아직 야디어 몰리나는 OPS가 .595에 불과한 수비형 포수로 믿을 만한 선수는 알버트 푸홀스뿐. 투수진은 특히 선발진이 리그 12위로 처참하게 무너졌는데 에이스 크리스 카펜터와 2선발 제프 수판 외에 야심차게 영입한 마크 멀더가 완전히 무너진 것을 포함 나머지 선수들의 성적이 끔찍했고, 9월에 마무리 이스링하우젠이 부상으로 시즌을 접어서 뒷문에도 비상이 걸린 상태. 아무도 카디널스의 우승을 예상하지 못했다. 83승이 보여주듯 이 해에 중부지구 팀들이 집단 삽질이 아니었다면 지구 우승도 불가능했다.

하지만 막상 플레이오프를 시작하니, 정규시즌 8승 14패 5.76으로 방출당하지 않은게 이상한(...) 제프 위버가 부활하여 기존의 카펜터, 수판과 튼튼한 선발 3인방을 구축했고, 당시 갓 데뷔하여 불펜투수로 시즌을 뛰던 아담 웨인라이트가 마무리 자리를 완벽하게 메웠으며, 데이빗 엑스타인이 월드시리즈 MVP를 받는가 하면 수비형 포수였던 몰리나는 .358/.424/.547로 중심타선급 활약을 하며 챔피언십 7차전 9회초 극적인 투런 홈런을 쳤다. 한마디로 단체로 미쳤다. 그들의 2006년 우승은 역대 우승팀 중 정규시즌 성적이 가장 나빴던 것이다. 100승을 거두면서 가장 잘 나갔던 2005년에는 정작 휴스턴 애스트로스에게 지면서 월드시리즈 문턱에서 좌절했으니 그야말로 야구 몰라요. 당시 우승후보 0순위였던 뉴욕 메츠와의 내셔널리그 챔피언십은 사상 최고의 명승부 중 하나로 손꼽힌다. 메츠는 이 이후로 어메이징 DTD로 2014년 현재까지 포스트시즌을 밟지 못하고 있다.

기대하지 않았던 우승 후 FA인 제프 수판과 제프 위버가 팀을 떠나고[19] 크리스 카펜터마저 부상으로 시즌아웃된 선발진은 더 심한 막장이 되었고(...)[20] 2007년 그들은 1999년 이후 8년만에 처음으로 5할에 실패한다. 게다가 1995년부터 팀의 전성기를 이끈 명단장 트 자케티가 라 루사 감독과의 마찰로 팀을 떠났다. 하지만 꼬꼬마 몰리나와 웨인라이트가 성숙하고 푸홀스는 여전했으며, 무엇보다 존 모젤리악이 새롭게 단장이 되면서 팀색채를 바꾸기 시작했다.

2.8. 2008년~ : 지속가능한 강팀으로

2000년대 10년간 카즈는 6번 지구우승을 했지만 자케티 시절 대형 선수들을 많이 데려오다 보니 유망주가 항상 부족했고 그 결과 2006-2007년에 부진했다면, 2008년 모젤리악 체제부터는 유망주들을 체계적으로 육성시키기 시작했다. 지속 가능한 강팀으로 발돋움하기 시작한 것. 자세한 것은 아래의 구단운영 항목 참조.

특히 2005년부터 주전 포수가 된 야디어 몰리나는 역대 최고 수준의 수비형 포수로 유망주 투수들이 팀에서 자리잡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 유망주들 외에 맷 홀리데이 등 외부영입도 성공하면서 2008년 5할을 넘기고[21] 2009년엔 91승으로 다시 지구 우승에 성공했다. 다만 플레이오프는 디비전 시리즈에서 맷 홀리데이히 드랍 더 볼과 함께 다저스에게 3패로 스윕당했다.

2009년 말, 약물 논쟁으로 명예가 실추된 마크 맥과이어를 타격코치로 영입하기로 해 논란이 일었다. 라루사 감독 및 현재 팀의 상징인 알버트 푸홀스가 나서서 지원사격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비열한 방법으로 스스로 몰락한 영웅을 보는 미국인들의 시선은 싸늘하기만 한 듯. 그래도 친절한 카디널스 팬들은 기립박수로 왕년의 영웅을 환영해줬다.

2.8.1. 2010년

2010 시즌에는 사이영 컨텐더 원투펀치 크리스 카펜터애덤 웨인라이트의 활약에 래드 페니의 깜짝 활약, 기존의 최고 3,4번 콤비 알버트 푸홀스맷 홀리데이의 활약에 이은 최고 유망주 비 라스무스의 폭발로 무난하게 NL 중부지구 우승을 할 것으로 보였는데 푸홀스가 생각보다 부진하고 할러데이가 삽을 푸고 있는 형편이라.. 하위 타선과 상위타선의 불균형이 심해지면서, 상대적으로 강해진 신시내티에게도 밀리는 상황이었다. 카펜터와 웨인라이트는 잘하지만 페니는 초반에 승을 쌓지 못한 나머지 츤츤댔다. 불안요소는 커리어 말년에 마무리를 맡아 용케 오래는 하는데 왠지 불안불안한 이언 프랭클린과 그와 함께하는 불펜진. 반면 가장 큰 수확은 전혀 기대하지 않았지만 거의 ROY를 노릴 정도의 활약을 보여주면서 실질적인 3선발 역할을 하는 이메 가르시아, 그리고 롤렌이 떠난 이후 고질적 문제였던 3루를 책임지는 데이비드 프리즈의 발굴이다. 결국 타선의 불균형을 극복하지 못한 채 신시내티 레즈에게 지구 우승을 내줬고, 피터지게 싸우던 NL 동부의 애틀란타에게 와일드카드마저 무난하게 뺏기면서 시즌을 마감했다.

2.8.2. 2011년 : 11번째 우승을 차지하다.

2.8.4. 2013년 : 다시 한 번 우승

3. 이모저모

3.1. 구단운영

개념있는 경영진과 유능한 프런트가 만나면 뭘 해도 잘 풀린다는 것을 보여준다.

2000년대 후반과 2010년대에 들어서 자체생산 신인들이 쏟아져 나오자 카디널스의 구단운영이 가장 이상적이라는 이야기가 많이 나오고 있다. 특히 자체 생산선수로 로스터의 대부분을 채우고도 월드시리즈에 오른 2013년부터는 이런 분위기가 거의 일반화되는 분위기이고, 카디널스가 명문으로 유지하는 배경은 탁월한 팜 시스템 덕분이다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으며 리그위키에도 그런 이야기가 많은데...

정작 이런 것에 가장 당혹스러워하는 것은 년차가 있는 카디널스 팬들이다. 왜냐하면 2000년대 초중반만 하여도 카디널스는 팜이 허접한 팀하면 5손가락에 꼽히던 팀이었기 때문이다. 이 이유는 당시 카디널스의 팀 전력이 컨텐더에 미치지 못했기 대문에 전력보강을 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었고 여기에 박차를 가한 것이 단장이던 월트 자케티의 지론인 유망주는 유망주일 뿐이다였다. 자케티는 팀의 유망주들을 트레이드 해서 즉시 전력감을 모으는 경향이 있었고, 이게 감독 토니 라 루사와 조화가 되면서 팀 전력을 컨텐더의 위치로 자리잡게 만들었다. 즉 이 시기의 카디널스는 드래프트에 적지 않은 돈을 쓰지만 그렇게 특색이 있는 드래프트를 했던 것은 아니고, 그렇게 모은 하이 실링 유망주의 상당수를 다른 팀의 즉전감과 바꾸는 형태의 팀이었다. 이 과정에서 팜랭킹은 착착 떨어져갔지만, 트레이드 성공신화를 써나가던 자케티여서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지시한 구단주 빌 드윗 주니어는 지속가능한 성공모델을 위해서 개혁을 준비하고 있었고, 이는 자케티의 모델이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던 2003년부터 시작되었다. 그리고 이 변화에 선봉장으로 등장한 인물이 당시 부단장 존 모젤리악과 스카우팅 디렉터 제프 러나우로, 이들은 세이버매트릭스의 접목을 시도한 인물들이기도 하다. 2007년은 이 두 세력이 정면 충돌한 시기로, 구단 전체가 반으로 쪼개져서 대립이 이뤄졌다. 그리고 여기서 패배한 것은 월트 자케티였는데, 일단은 마크 멀더를 영입하면서 댄 하렌을 보낸 트레이드가 결국 실패작으로 결론이 나왔고[22], 팀 성적 역시 승률 5할을 밑돌았기 때문이었다. 이 과정에서 이전에 자케티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던 라루사 감독마저도 자케티와 사이가 벌어져서 자케티로서는 버틸 재간이 있을 수 없다. 결국 2007 시즌 종료 후 자케티는 해임되어서 지구 라이벌 신시네티 레즈의 단장으로 옮겨갔고, 카디널스의 단장직은 임시단장을 거친 모젤리악이 승계하게 된다. 그리고 이 과정의 진정한 승자는 누구도 아닌 구단주 빌 드윗 주니어였다.

그리고 이렇게 형성된 구단주 빌 드윗 주니어, 단장 존 모젤리악, 스카우팅 디렉터 제프 러나우, 감독 토니 라 루사 체제가 2010년대의 현행 카디널스 체제를 완성해갔다고 보면된다.

그리고 이 시기에 카디널스의 팜과 드래프트 성공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가 되었고, 다른 구단과 차이를 보여준 것이 하나 있는데 바로 직무성실성, 근면성으로 번역되는 워크에식(Work Ethic)의 강조이다[23][24]. 사실 이 워크에식의 화신이었던 인물을 꼽자면 전 감독 토니 라 루사였다. 라루사이즘의 창시자로 꼽힐 정도로 혁신적인 동시에 보수적인 면모도 있었던 라 루사는 이걸 무척이나 중시했던 경우로, 검증된 미래의 올스타로 꼽히던 콜비 라스무스와 비교해서 툴적인 평가는 떨어졌지만 워크에식이 좋았던 존 제이 같은 선수를 중시하는 운영을 했다[25]. 그런데 이게 성과가 괜찮게 나오고, 반면에 신체적 기술적 능력만 보고 뽑았던 선수들의 성장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자 드래프트 전략마저도 이쪽으로 선회하게 되었다. 모젤리악과 러나우를 굳이 분류하자면 세이버 매트리션에 가까운 스타일인데, 여기에 워크에식의 강조가 더해지면서 드래프트 경향성이 확정된 것이다. 여기에 어차피 되지 않는 부분(하이 실링 로 플로어, 하이 포테션 로 툴)의 비중을 줄이고 잘하는 부분에 집중한 결과, 마이너 팜이 저평가받는 것에 비해서 메이저리그 안착률을 높이는 결과로 이어진 것이다.

이 드래프트와 팜 시스템이 갖춰지면서 팀의 강점으로 떠오른 부분이 재정적인 부분이다. 위의 전략으로 팀의 코어 선수들과 중하위권 뎁스를 자체생산 선수들로 채울 수 있게 되면서 부가적인 지출을 확 줄일 수 있었고, 여기에 더해진 것이 바로 페이롤 유동성의 강조이다. 초장기 계약을 맺은 선수가 먹튀가 되면 팀이 휘청거리는 상황에서, 바닥을 기는 중계권료로 버티는 카디널스의 경우는 위험요소를 배제하기 위해서 페이롤 유동성을 강조하는 정책을 시행했다. 그러면서도 컨텐더의 지위를 유지하게 해주는 것이 앞서 언급한 팜시스템으로, 팜시스템을 통해서도 전혀 메울 수 없는 부분과 부족한 부분에만 단기적으로 적정한 금액의 FA를 영입해서 컨텐더의 지위를 유지하는 전략을 시행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게 어느 정도 자리 잡은 2014년 시점에서 보자면, 팀에 생길 수 있는 모든 악재가 동시다발적으로 터지지 않는 이상 팀이 망하기도 어렵고, 설혹 그런 악재가 터진다고 하여도 그로 인한 암흑기가 오랫동안 지속되지 않을 수 있는 구조가 성립되었다고 볼 수 있다. 즉 카디널스의 구단운영이 메이저리그 모든 구단의 롤모델이라고 불리는 것은 사실 이 때문으로, 현재 컨텐더 지위를 보장하는 팀 전력과 미래의 성적으로 기대케 하는 팜시스템, 그리고 이걸 받쳐주는 재정적인 부분이 모두 안정적이자 유기적으로 돌아가는 체제인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단장인 모젤리악,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걸 사실상 주도하고 기획한 구단주가 버티고 있기 때문에 유지가능한 성적이 가능한 것.

물론 이런 훌륭한 선수 육성과 드래프트 시스템을 가진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에게도 흑역사는 있다. 세인트루이스에 지명받아 1965~1971년까지 뛰면서 77승을 거뒀지만 투고타저 시대에 3점대 평균자책점에 밥 깁슨이라는 에이스와 비교해 더는 성장할 수 없고, 기대치를 낮게 봐 페이롤을 아낄 겸 해서 한 좌완 투수를 필라델피아 필리스로 트레이드 시켰는데, 그는 훗날 명예의 전당까지 입성한 스티브 칼튼으로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대표적 실책으로 평가받는다.

3.2. 팬덤과 라이벌리

팬들의 매너가 좋기로 유명하다. 보통 "우리동네 팀 아니면 다 나쁜 놈. 저놈들이 이겨서 희희낙락하는 꼴은 눈에 흙이 들어가도 못 봐!"의 정서가 대부분인 미국 프로야구에서 자기 홈구장에서 우승을 확정지은 상대 팀에게 관중들이 격려와 축하의 박수를 보내주는 거의 유일한 팀.[26] 단, 오랜 세월의 전통적 라이벌인 시카고 컵스에게만은 얄짤 없다. 아무리 매너 좋은 카디널스 팬들도 시카고 컵스와 그 팬들에게 만큼은 가차없는 야유를 퍼붓는다. 1998 시즌 새미 소사마크 맥과이어의 홈런경쟁이 상당히 치열했던 것도 이런 분위기 때문이었다. 여담으로 1980년대에 컵스가 가끔 포스트시즌에 진출했을 때 그때까지도 컵스는 낮경기만을 고집해 야간경기를 카디널스의 홈구장 부시 스타디움에서 치룰뻔 하기도 했다. 그때 다른 팀 홈구장에서 경기를 했다면... 더 이상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하지만 2000년대 후반 들어 컵스영 좋지 않은 모습을 보이는 가운데 오히려 카즈 팬들의 동정을 받는 지경이 되자, 메인 라이벌리는 밀워키 브루어스, 신시내티 레즈로 옮겨간 상황이다.

밀워키 브루어스와의 라이벌리가 본격적으로 불탔던 것은 2011 시즌이었다. 당시 카즈와 맥주네 두 팀은 시즌 내내 중부지구 우승 타이틀을 놓고 다퉜고 결국은 포스트시즌 NLCS에서 만났다. 이는 1982년 월드 시리즈 이후에 만나는지라 많은 관심을 얻기도 했다. 최근 카즈와 맥주네의 라이벌리에 대해 올드 스쿨의 야구를 지향하는 카디널스와 악동 이미지를 내세우고 있는 브루어스의 대립이라는 평을 듣고 있다. 또한 조 토레 감독은 '자주 격돌하노라면 태워버려야 할 장작이 많이 생기기 마련'이란 얘기를 하기도.

신시내티 레즈와는 전성기가 서로 엇갈리는 통에 라이벌리가 형성되지 않았지만,[27] 2010년대 들어 두 팀의 관계는 급격히 험악해졌다. 그 원인은 TLR와의 힘겨루기에서 밀려나 카디널스를 떠난 트 자케티 現 레즈 단장이 많이 데려간 카디널스 출신 선수들스캇 롤렌이나... 라이언 루드윅이나... 물론 이들이 라이벌리의 진정한 주역은 아니지만브랜든 필립스의 핵이빨.

인터리그 라이벌로는 캔자스시티 로열스가 있다. 세인트루이스와 캔자스시티는 주경계에 걸친 분단도시라 양쪽을 잇는 국도 이름을 딴 I-70 시리즈로 불린다.[28]

한국에서의 팬 숫자는 MLB팀 중에서는 나름 상위권을 찍어주고 있다. 꾸준한 호성적과 '고효율' 이미지가[29] MLB 팬들에게 크게 어필을 한 것으로 추측된다. 물론 한국인 선수가 뛰고 있는 다저스나 텍사스보다는 한참 팬수가 딸린다(...) 다만 한국인 선수 혹은 소속팀과 이런저런 악연이 묘하게 존재한다. 당장 유명한 것만 나열해봐도.....

1. 1999년. 박찬호에게 따끈따끈한 만두를 대접.
2. 2013 정규시즌. 신시내티와의 지구 우승 경쟁.
3. 2013 포스트시즌. NLCS에서 다저스와 격돌.
4. 2014 정규시즌. 다저스와 빈볼시비.
5. 2014 포스트시즌. NLDS에서 다저스와 격돌.
6. 2014 시즌 이후. 지구 경쟁팀인 피츠버그가 강정호 영입.

이러한 악연 때문인지 팬들도 자조적으로 매국노의 구단(...)이라며 드립치고 있다. 심지어 해야갤에선 이미 공식.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서로간에 농담으로 하는 말이며 이 팀을 응원한다고 매국노가 되지는 않는다. 따가운 눈초리를 받을 뿐 다만 매국구단이라는 농담을 농담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지의 여부는 개인마다 다르니까 가려가면서 농담하자(...)

3.3. 홈 구장 부시 스타디움

자세한 것은 항목을 참조할 것.

3.4. 영구결번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영구결번
1 2 6 9 10 14
아지 스미스 레드 션디엔스트 스탠 뮤지얼 에노스 슬로터 토니 라 루사 켄 보이어
17 20 24 42 45 85
디지 딘 루 브록 화이트 허조그 재키 로빈슨
브루스 수터
밥 깁슨 어거스트 부시

  • 로저스 혼스비(Rogers Hornsby): 사상 최고의 공격력을 자랑한 2루수. 다만 인성은 쓰레기였다고 한다. 뭐 그래도 2930안타와 301홈런에 1584타점, 통산 0.358 타율은 무시할 수 없긴 하다. 그가 뛴 시대에는 등번호가 없어서 결번은 하지 않고, 기념만 하는 중이다.

  • 1. 아지 스미스(Ozzie Smith): 역대 최고의 수비를 자랑하는 유격수. 별명은 오즈의 마법사. 사상 최고의 수비력을 바탕으로 1980년대 팀을 이끌었고, 명예의 전당에도 90%가 넘는 득표율로 입성했다.

  • 2. 레드 션디엔스트(Red Schoendienst): 2루수로 2449안타를 치면서 1946년 팀의 월드 시리즈 우승을 이끌었고, 코치와 감독으로 팀에 돌아와 세 번의 월드시리즈 우승(1964, 1967, 1982)에 기여했다. 명예의 전당에 베테랑 위원회의 추천으로 입성.
  • 6. 스탠 뮤지얼(Stan Musial): 별명은 더 맨(The Man). 통산 타율 0.331, 3630안타와 475홈런, 1951타점을 기록하며 카디널스 프랜차이즈의 어지간한 타격 기록은 죄다 가지고 있는 사나이로, 발전 없는 어떤 노안의 강타자가 카디널스를 떠난 이후론 그를 넘어설 카디널스 타자는 당분간 나타나지 않을 것으로 보이기에 그의 프랜차이즈 기록들은 불멸의 기록으로 남게 될 가능성이 높다. 전 미국 팬들의 존경과 사랑을 한 몸에 받은 선수로 통산 MVP 3회에 올스타전에 무려 24회 출전했다. 당연히 명예의 전당 멤버고, 미국 국민훈장도 받았다.

  • 9. 에노스 슬로터(Enos Slaughter): 포지션은 우익수로 통산 타율은 0.300. 2382안타를 친 허슬 플레이어. 1946년 월드시리즈에서 평범한 단타 때, 1루에서 홈까지 파고든 "광란의 질주"로 유명하다. 베테랑위원회를 통해 명예의 전당 입성.

  • 10. 토니 라 루사(Tony La Russa): 라루사이즘의 창시자. 2차 세계대전 이후 현대 야구사에 한 획을 그은 명장으로, 카디널스에서 16년을 감독으로 재직하면서 2번의 월드시리즈 우승, 세 번의 내셔널리그 우승, 7번의 지구 우승, 8번의 PO 진출, 2번의 100승 시즌을 만든 한 시대를 풍미한 감독으로, 2011년 우승을 끝으로 은퇴한 뒤 2012년 영구결번.

  • 14. 켄 보이어(Ken Boyer): 카디널스에서 3루수 10년간 활약하며 1964년 MVP를 차지하고, 그 해 월드시리즈 우승까지 이끌었다. 감독으로도 잠시 활약했고, 그 공로로 영구결번되었다. 하지만 명예의 전당에는 헌액되지 못하였다.

  • 17. 디지 딘(Dizzy Dean): 1930년대 개스하우스 갱의 에이스로 한 시대를 풍미한 투수. 사실 괴짜로 더 이름이 높다. 부상 때문에 커리어가 그다지 길지는 않다. 은퇴 후에는 카디널스와 같은 동네의 브라운스에서 거성 해설로 명성을 날리기도 했다. 브라운스 선수들을 너무 까서 '야, 시바. 내가 지금 던져도 그것보다 잘한다.'라고 말했다가 빡친 브라운스에서 '말로만 털지 말고 와서 한번 던져보시져?'라고 반응하여 은퇴 6년 후인 1947년 브라운스의 시즌 마지막 경기에 등판한 적도 있다. 딘은 그 경기에서 4이닝 3안타 1볼넷 무실점의 피칭을 했다.
    통산 150승에 불과하지만 전성기가 너무 화려해서 명예의 전당에 투표로 입성했다.

  • 20. 루 브록(Lou Brock): 통산 3023안타에 938도루를 기록한 원조 대도. 도루 기록은 훗날 리키 헨더슨에 의해 깨지지만 타이 콥의 도루 기록을 먼저 깬 것이 바로 루 브록이다. 팀의 전성기와 함께 하며 맹활약. 당연히 명예의 전당에 입성.

  • 24. 화이티 허조그(Whitey Herzog): 통산 1281승을 기록하며 1980년대 세인트루이스 감독으로 팀의 성공을 이끈 명장. 명예의 전당에도 입성한 감독이다.

  • 42(공동)
    • 브루스 수터(Bruce Sutter): 통산 300세이브를 기록한 구원 투수. 다만 그가 던질 때는 1이닝 마무리가 아니라 길게 던지는 마무리 시절이었기에 세이브 숫자가 적어보일 뿐이다. 1979년 사이 영 상 수상자이자 명예의 전당에 입성한 선수. 스플리터를 잘 구사한 선수였다.
    • 재키 로빈슨(Jackie Robinson): 전 구단 영구결번.

  • 45. 밥 깁슨(Bob Gibson): 세인트루이스에서만 뛰며 1960년대와 1970년초까지 위력을 떨친 에이스. 1968년 세운 평균자책 1.12라는 대기록과, 두 차례의 사이영상, 한 차례 MVP, 그리고 무엇보다 월드시리즈 7차전에서 두 번 승리를 기록하는 등, 시대를 지배한 완투형 투수.

  • 85. 어거스트 부시(August "Gussie" Anheuser Busch, Jr.): 팀의 구단주로 새 구장도 짓고, 카디널스를 미국에서도 존경받는 야구팀으로 만든 공적으로 영구결번되었다.
참고로 85는 부시가 선수로 뛴적이 있어서 생긴 결번이 아니라 어거스트 부시의 85세 생일을 기념하는 의미에서 영구결번된 데서 나왔다.

잭 벅(Jack Buck): 1954년부터 2001년까지 스포츠캐스터로 활약하며 세인트루이스 지역의 중계를 한 그가 2002년 타계하자 기리고 있다. 그의 아들 역시 스포츠 중계 캐스터로 일하는데, FOX 스포츠에서 월드시리즈 등의 전국 방송 중계를 담당한다. 바로 조 벅.

이 밖에, 마크 맥과이어의 25번은 맥과이어가 타격코치로 돌아올 때까지 아무에게도 지급되지 않았다.[30] 또, 2002년에 심장마비로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카디널스의 에이스 럴 카일의 57번, 80년대를 대표하는 스 콜먼만 아니었어도.. 테이블세터였던 리 맥기의 51번은 지금까지 아무도 사용하지 않고 있다. 2007년에 교통사고로 사망한 불펜투수 조시 행콕의 32번도 2012년까지 비공식 영구 결번이었으나 2013년에 롭 존슨, 2014년부터 맷 애덤스가 사용하고 있다.

4. 계약중인 마이너리그 구단

4.1. 트리플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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멤피스 레드버즈
Memphis Redbirds
창단 1998년
계약년도 1998년
소속 리그/지구 퍼시픽 코스트 리그/아메리칸 컨퍼런스/북부지구
연고지 테네시 주 멤피스
홈구장 오토존 파크

4.2. 더블 A

스프링필드 카디널스
Springfield Cardinals
창단 2005년
계약년도 2005년
소속 리그/지구 텍사스 리그/북부지구
연고지 미주리 주 스프링필드
홈구장 헤이먼스 필드

4.3. 싱글 A

팜비치 카디널스
Palm Beach Cardinals
창단 2003년
계약년도 2003년
소속 리그/지구 플로리다 스테이트 리그/남부지구
연고지 플로리다 주 팜 비치
홈구장 로저 댄 스타디움

© from
피오리나 치프스
Peoria Chiefs
창단 1983년
계약년도 2013년
소속 리그/지구 미드웨스트 리그/서부지구
연고지 일리노이 주 피오리나
홈구장 도저 파크

스테이트 컬리지 스파이크스
State College Spikes
창단 1981년
계약년도 2013년
소속 리그/지구 뉴욕 펜 리그/핑크니 지구
연고지 펜실베이니아주 스테이트 컬리지
홈구장 메들러 필드 앳 리브르노 파크

4.4. 루키

존슨 시티 카디널스
Johnson City Cardinals
창단 1937년
계약년도 1937년
소속 리그/지구 애팔래치안 리그/서부지구
연고지 테네시 주 존슨시티
|| 홈구장 || 하워드 존슨 필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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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원정경기에서는 남색바탕에 글자색이 빨간색인 모자를 사용기도 하며, 홈경기에서 일요일에는 남색 바탕에 우측의 구단로고가 들어간 모자를 사용한다.
  • [2] 한편 류현진의 MLB 진출 이후로, 카디널스를 '세인트'라는 별명으로 부르는 사람들이 늘었다. 이 별명을 사용하면 MLB 뉴비 취급당하며 실제로도 초보팬들이 그런 경향이 있으므로, 혹시 MLB 입문한지 얼마 되지 않았다면 조심하는 것이 좋다. 물론 무슨 별명으로 팀을 부르던 그건 자유이지만, 괜히 망신 당하는 일은 없도록 하자.
  • [3] 1위 양키스 27회, 2위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11회, 3위 오클랜드 어슬레틱스 9회. 양키스와 카디널스만이 두 자릿수 우승기록을 가지고 있다.
  • [4] 2013년 신시내티 레즈에서 뛰면서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 여러 번 대결한 추신수는 '야구 잘하는 팀이다.'라는 한마디로 이 팀을 표현했다.
  • [5] 사실 세인트루이스는 광역도시권(Metropolitan) 인구수는 2012년 기준 2,795,794명으로 미국내 19위에 불과하다. 그러나 홈경기 평균관중수는 2010년부터 2014년까지 차례대로 30개팀 중 4-6-6-2-2위를 기록한 명실상부한 인기팀이다.
  • [6] ML 30개 팀 중 10~15위
  • [7] 이와 반대되는 케이스가 타이밍 잘잡아서 돈벼락을 맞은 다저스
  • [8] 실제로 믿으면 곤란하다. 이는 푸홀스가 약졸스로 놀림받는 것에서 시작된 것. 토니 라 루사 감독도 뛰어난 약사 정도의 취급을 받는다(...) 이런 별명이 붙은 이유에는 마이너리그에서 매우 저조하다든지, 아니면 도저히 뒤집힐 것 같지 않은 선수들이 카디널스에 와서 폭발하는 일이 많아서 그렇다. 약물의 아이콘이 있었던 팀이기도 하고, 2013 시즌 끝나고는 약물 전과가 있는 쟈니 페랄타를 영입했다 유례에서 알 수 있다시피 진지하게 약물구단이라고 까는 별명은 아니고, 장난삼아 놀리는 것에 가까우므로 괜히 카디널스팬이 처음 해야갤을 방문했다가 깜짝 놀라는 일은 없도록 하자. 해야갤에서 카디널스는 '선수들의 약냄새가 경기장내에 진동해서 관중들마저 발기부전에 걸리는 팀(...)', '포스트시즌이 되면 몰래 준비한 특제 약물을 먹이는 팀', '도핑테스트에 걸리지 않는 특제 약물을 개발하여, 지하에 위치한 비밀공장에서 생산하는 팀'이다. 특히 PS 경기에서 승리하면 "과학의 힘" 드립이 나온다. 게다가 하필이면 미주리는 미국 제약산업의 중심지 당연히 이는 농담.
  • [9] 추후에 동명의 팀이 세인트루이스에 다시 생기는데, 이 팀은 지금의 볼티모어 오리올스다.
  • [10] 자세히보면 로고를 프린트하거나 바느질한 것이 아니라 천에 그린 다음에 끈으로 고정 시켰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11] 1934년 월드 시리즈 우승 기념으로 재발매된 카드들이다. 좌측상단부터 순서대로 프랭크 프리쉬Frankie Frisch(선수겸 감독이었다), 레오 듀로셔Leo Durocher, 제롬 '디지' 딘JEROME DIZZY DEAN, 빌 할라한BILL HALLAHAN, 제임스 '텍스' 칼튼JAMES TEX CARLETON, 짐 '리퍼' 콜린스JIM RIP COLLINS, 짐 무니JIM MOONEY. 디지 딘의 동생 폴 딘의 모습이 없는 것이 아쉽다.
  • [12] 이 삽화가 세인트루이스 브라운스의 로고이다.
  • [13] 세인트루이스에 새 팀이 생기면 마지막은 아닐 수 있지만, 그럴 가능성이 적으므로
  • [14] 믿기지 않겠지만 이는 라이브볼 시대에 나온 기록이 맞다. 역대 MLB 단일 시즌 ERA에서 4위에 올라있는 기록으로, 상위 10위 기록들 중 유일한 라이브볼 시대 기록이다. 참고로 이 해 NL ERA가 2.99였고, AL에서는 칼 야스트렘스키가 3할 1리 타격왕이 되었는데, 2할 타격왕이 나올 가능성이 제기되기까지 했다고.
  • [15] 이것을 메이저리그에서는 the Call이라고 부른다! 메이저리그에서 the라는 수식어가 붙는 표현들이 어떤 것들인지 알면 그 심각성을 알 수 있다.
  • [16] 하지만 여기서 확실히 해야 할 것은 이 오심이 있게 전에 로열스의 명백한 세잎을 아웃으로 판명한 탓에 로열스가 한 점을 손해본 것도 있다. 물론 이 오심이 경기 막판에 벌어진 탓에 사람들의 기억 속에는 이것만 남게 됐지만.
  • [17] 컵스는 1998년 한 해만 90승을 기록하여 90년대 유일하게 이때만 포스트시즌에 나갔다.
  • [18] 2004년 팀 고의사구 순위에서 MLB 전체 2위 팀이다. 1위가 배리 본즈의 무더기 고의사구로 넘사벽의 153개의 고의사구를 이룩한(...)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임을 감안하면 사실상 MLB 최강의 타선이었다 봐도 무방하다.
  • [19] 둘 모두 밀워키 브루어스, 시애틀 매리너스에서 각각 먹튀가 되었다.
  • [20] 9년간 불펜투수로만 뛰었던 브래든 루퍼를 선발로 바꿔야만 했을 정도. 루퍼는 선발로 그럭저럭 해주긴 했다.
  • [21] 중심타자 라이언 루드윅, 마무리 라이언 프랭클린, 선발투수 카일 로쉬 등등. 2000년에 좌완 에이스였던 릭 앤키엘이 이 때 주전 중견수로 뛰기도 했다. 자세한 것은 릭 앤키엘 항목 참조.
  • [22] 마크 멀더는 2006년 우승에는 공헌했지만 2007년부터 부상에 시달리면서 먹튀가 되었다. 그리고 오클랜드로 보낸 댄 하렌은 에이스급으로 성장하면서 사이영 컨텐더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 [23] 여기에 메이크업을 더하면, 인터넷에서 소위 말하는 멘탈이 된다.
  • [24] 그리고 이 워크에식을 강조하는 팀이 메이저리그에 또 하나 있으니, 바로 보스턴 레드삭스이다. 세이버매트릭스와 함께 워크에식인 메이크업과 같은 정신적인 부분을 동시에 추구한다는 점에서 두 팀은 놀라울 정도로 닮아있다. 그리고 여기에는 유능한 단장과 이를 지원한 능력있는 구단주가 있으며, 이 결과로 이 2팀은 2010년대 가장 성공한 2팀이 되었다. 그 결과가 2013년 월드시리즈를 포함한 성과들이다.
  • [25] 결국 콜비 라스무스는 줄어드는 플레잉 타임에 대한 불만을 노골적으로 터트리면서 토니 라루사가 경질되거나 라스무스가 트레이드 되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고 스캇 롤렌 때와 마찬가지로 라스무스가 트레이드 되면서 마무리 된다.
  • [26] 아이러니하게도 연고지 세인트루이스 자체는 팬들 매너와 상반되게 디트로이트, 오클랜드와 함께 범죄율이 높기로 악명 높은 도시다. 자세한 건 세인트루이스 항목 치안 부분 참조.
  • [27] 카즈는 1960년대, 레즈는 1970년대가 최대 전성기였고, 그 이후에도 두 팀은 딱히 대립할 만한 일은 크게 없을 정도였다.
  • [28] 비슷한 예로는 고속도로로 차를 타고 막히지 않게 40분 정도면 도착할 수 있는 다저 스타디움과 애너하임 구장을 각각 홈구장으로 쓰는 지역 라이벌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와 애너하임 에인절스의 프리웨이 시리즈.
  • [29] 물론 이 구단은 돈이 없는 팀이 절대 아니다. 다만 페이롤에 비해 좋은 효율을 뽑아내고 있을 뿐.
  • [30] 비록 맥과이어는 약쟁이였지만, 지금도 카디널스 선수들에게 존경을 받는다. 맥과이어는 끝까지 사실을 숨기려 했던 새미 소사나, 여전히 뒤가 구린 배리 본즈, 로저 클레멘스보다는 좀 더 솔직했다. 무엇보다 타격코치로서의 맥과이어의 지도 능력은 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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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modified 2015-04-09 13: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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