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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일럼 재판

last modified: 2014-12-31 18:45:37 by Contributors

The Salem Witch Trials.

Contents

1. 개요
2. 경과

1. 개요

미국이 아직 영국식민지였던 1692년,[1] 매사추세츠 주의 항구도시 세일럼(Salem)에서 벌어진 일련의 마녀사냥 및 재판.

미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흔치 않은 미국의 흑역사 중 하나이며, 미국 종교사 최악의 흑역사이다. 희생자도 적지 않지만, 무엇보다 종교자유를 찾아서 신대륙으로 건너간 미국 초기의 개척민들이 다름아닌 종교를 이유로 마녀로 낙인찍힌 사람들을 배척하고 억압했다는 사실 덕분에 흑역사로 손꼽힌다. 이 재판으로 19명이 사형당하고 140여 명이 체포당했다.

2. 경과

발단은 새로 부임한 목사 새뮤얼 패리스의 이 아픈 일이었다. 당시에 치료를 하던 의사는 증상이 낫지 않자 "이게 다 마을에 숨어있는 마녀들 때문이다!"란 진단을 내렸다.[2] 곧 목사의 아프리카노예 출신 하녀가 마녀로 지목되고 고문을 견디지 못한 하녀의 진술로 다른 사람들이 끌려오고 그들의 자백으로 다른 사람들이 끌려 오는 식으로 마녀혐의자가 늘어나더니 결국은 목사였던 조지 버로스조차 유력인사들이 제출한 탄원서에도 불구하고 처형당하게 된다.

마녀 재판이 일어나자 세일럼의 유력가문들은 정적을 해치우는 데 이를 이용하기도 했다. 유력가문중 하나인 퍼트넘가의 앤 퍼트넘은 딸들과 함께 법정에서 마치 마녀의 저주라도 받은 듯한 연기를 해내 남편의 정적을 처리하려 했다. 이 연기가 얼마나 요란했는지 다른 도시에서 구경꾼들이 몰려 올 정도 였는데, 결국 1706년 퍼트넘은 이 때의 행동에 대해 공개사과하는 처지가 된다.

결국 여자 13명, 남자 6명이 참수당하고 남자 한 명은 압살당했다.[3] 주민들이 서로를 믿지 못하게 되자 도시가 불안에 떨었지만 세일럼 내부에서는 도저히 분위기를 진정시킬 수가 없었다. 결국 이 상황을 견디다 못한 세일럼 주민 일부가 외부에 도움을 요청했다. 1692년 10월 마침내 매사추세츠 총독 윌리엄 핍스(William Phips) 경[4]이 허깨비를 증거로 채택함을 금지하고 곧 세일럼의 마녀재판법정을 해산시켰다. 그리고 10년 뒤에는 세일럼에서 있었던 마녀재판을 불법으로 선언한다. 덤으로 이전에 재판으로 죽은 사람들도 사면받았다.

유럽의 마녀사냥 전성기와 비교하면 매우 뒤늦은 시기로, 본토(?)인 유럽에서마저도 그런 것이 없던 시기에 한 큐가 터진 만큼 후폭풍도 컸다. 러브크래프트는 '네크로노미콘의 역사'(History of the Necronomicon)에서 세일럼 재판도 마치 네크로노미콘으로 말미암은 일인 양 슬쩍 언급했다.[5] 러브크래프트가 그런 암시를 자기 작품에 쓴 데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사건은 마을 전체를 광풍으로 휘몰았기 때문에 재판이라는 행정적 절차보다는, 세일럼이라는 마을 공동체 전체에 눈을 돌려야 한다. 당시 사정을 다룬 논문이나 책이 많지는 않으나 꾸준히 나온다.

이에 대한 비판을 가장 강력하게 나타냈던 가장 유명한 작가가 새니얼 호손이다. 그의 외할아버지가 바로 이 재판의 판사였으며, 그는 외할아버지가 저지른 이 일을 평생 부끄러워하였다. 그의 대표작 <주홍글씨>, <영 굿맨 브라운(Young Goodman Brown)>, <메리 마운트의 5월제 기둥(The Maypole of Merrymount)> 등의 작품에서 개인을 억압하는 청교도 사회의 경직성이 잘 드러난다.

훗날 미국의 극작가 서 밀러매카시즘선풍[6]을 보고 '세일럼의 마녀들'이라는 희곡을 썼는데 장폴 사르트르가 이를 기초로 시나리오를 쓴 영화가 1957년에 레몽 룰로 감독에 의해 영화화되고 1996년 니컬러스 하이트너가 감독한 크루서블의 시나리오는 밀러 자신이 직접쓰기도 했다. 뮤지컬 마녀사냥도 세일럼의 마녀들을 기초로 만들어 진 것인데 초연된 다음해 퓰리처 상을 받았다. 남을 파멸시키기 위해 악마화 되어가는 인간군상의 묘사가 뛰어난 작품이다. 2014년, 이 희곡을 기초로 한 미드 'Salem'이 방영되었다.

미국정부나 반미활동위원회는 세일럼의 마녀들이 매카시즘 비판을 위해 쓰여진 것을 알고 불쾌해 했지만 1957년 매사추세츠 주 정부는 1692년 세일럼에서 있었던 마녀재판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과했다. 무려 265년 만의 일이며, 어지간한 일은 다 씹는[7] 미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다섯 개의 흑역사 중 하나이다. 심지어 위에 언급된 것처럼 미국이 독립되기 전 사건임에도![8]

사회에 광기가 휘몰아칠 때 이를 억제하기가 얼마나 힘든지 보여준다. 그리고 200년이 지난 뒤의 사코와 반제티 사건을 보면 역사는 반복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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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미국 독립전쟁이 1775년에 시작됐고 독립선언문 발표는 1776년에 있었다. 미국 독립이 완전히 인정받음은 1783년 리 조약에서부터다.
  • [2] 과학적 원인에 대해서는 설이 분분하다. 맥각균에 오염된 호밀빵을 먹어서 맥각 중독에 걸렸기 때문이라는 설, 인디언 공격에 대한 집단 히스테리라는 설, 일종의 뇌염이 유행했기 때문이라는 설 등 의견이 많다. 일부 역사학자들은 질병 등이 원인이 아니라 순수하게 질투광기가 발작의 원인이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 [3] 법정에 출두하는 걸 거부하다 강제로 끌려가 가슴에 바위를 올리는 린치를 당했는데 이틀동안이나 고통 받다 죽었다. 혐의는 마녀집회에 음식을 제공했다는 것이었다고..
  • [4] 생몰년 1651-1695. 사망 당시 만 44세. 1692년부터 94년까지 메사추세츠의 첫 번째 총독으로 재임했다. 당시 미국이 영국의 식민지였기 때문에 영국 법으로 임명된 총독이 있었다.
  • [5] 해당 구절을 인용하면 이와 같다. "1500~1550년 사이에 이탈리아에서 출판된 (네크로노미콘의) 그리스어 판본은 1692년에 어느 세일럼 주민의 장서실에서 불타 소실되었다고 보고되었다." 1692년 세일럼이라고 밝혔기 때문에 세일럼 재판을 가리킴이 분명하다.
  • [6] 밀러 또한 매카시 선풍에 걸려 고생한 바 있다.
  • [7] 미 정부는 멕시코 침공, 베트남 전쟁을 공식적으로 잘못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 [8] 나머지 넷은 네이티브 아메리칸 학살과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일본계 미국인 차별정책인 행정명령 9066호, 정신 나간 세뇌실험인 MK울트라터스커기 매독 임상실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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