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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last modified: 2015-03-21 11:26:16 by Contributors

Contents

1. 묘호의 한 종류
1.1. 세종의 묘호를 받은 군주
1.1.1. 조선 세종영문예무인성명효대왕 이도
1.1.2. 의 세종
1.1.3. 전한의 세종
1.1.4. 서진의 세종
1.1.5. 후조의 세종
1.1.6. 의 세종
1.1.7. 전량의 세종
1.1.8. 전진의 세종
1.1.9. 남제의 세종
1.1.10. 북위의 세종
1.1.11. 북제의 세종
1.1.12. 북주의 세종
1.1.13. 후량의 세종
1.1.14. 의 세종
1.1.15. 남조의 세종
1.1.16. 후주의 세종
1.1.17. 오월의 세종
1.1.18. 의 세종
1.1.19. 의 세종
1.1.20. 의 세종
1.1.21. 의 세종
2. 다른 뜻
2.1. 행정복합도시
2.2. 남극에 위치한 대한민국의 연구기지명
2.3. 신라 상대등 세종(노리부)
2.3.1. 화랑세기의 세종
2.3.1.1. 선덕여왕(드라마)의 등장인물
2.4. 서울에 소재한 대학교
2.5. 고려대학교와 홍익대학교의 제2캠퍼스
2.6. 대한민국로펌
2.7. 패밀리 테니스 3D의 주인공


  • 천명을 이어받아 이를 바꾸지 않았음을 라 한다(承命不遷曰世).
  • 만물 사방을 비추었음을 라 한다(景物四方曰世).
  • 그늘(은택)을 남겨 시대를 크고 아름답게 하였음을 라 한다(貽庥奕葉曰世).

1. 묘호의 한 종류

世宗. 시법에서 세(世)란 글자는 위의 의미와 같이 선시(善諡) 중에서도 극찬에 속한다. 마찬가지로 세조(世祖) 또한 조, 종의 차이가 있을 뿐 의미는 같지만 세종대왕의 아들이자 같은 묘호를 받은 세조는 조카의 왕위를 빼앗은 찬탈을 저질렀고, '세'란 묘호를 받기에는 그 업적도 너무 미치지 못하는지라 후세 사람들에게는 어거지로 올려진 묘호 취급을 받는다.

태조가 국가를 창건하고, 태종이 국가의 질서를 잡고 왕조가 길게 이어지도록 기틀을 잡았기 때문에 얻는 묘호라면, 세종은 국가의 전성기를 적극적으로 이끌어내거나, 전성기를 맞이하도록 만든 경우에 얻는 묘호로서, 위상 면에서는 태조나 태종과 비슷한 대접을 받을 수준으로 다른 묘호들보다 위상이 높다. 사실 세종의 묘호를 받을 수준의 국왕이나 황제라면 국가를 창건했으면 태조, 그 다음대라면 태종의 묘호를 받을 가능성이 높다.

이런 이유로 인해 세종의 묘호를 받은 군주들은 대부분 유능하며, 국가도 대외적으로나 대내적으로나 전성기를 맞이하여 가장 강력했던 시대로 기억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예외도 있다

1.1. 세종의 묘호를 받은 군주

1.1.1. 조선 세종영문예무인성명효대왕 이도

조선의 제4대 임금. 세종대왕 참고.

1.1.2. 의 세종

  • 24대 정왕(定王) 재(載)

1.1.3. 전한의 세종

1.1.4. 서진의 세종

1.1.5. 후조의 세종

  • 추존 황제 원황제(元皇帝) 석조갈주(石周曷朱)[1]

1.1.6. 의 세종

  • 초대 헌무황제(獻武皇帝) 모용덕(慕容德)

1.1.7. 전량의 세종

  • 5대 명왕(明王) 장중화(張重華)

1.1.8. 전진의 세종

  • 초대 경명황제(景明皇帝) 부건(苻健)[2]

1.1.9. 남제의 세종

  • 추존 황제 문황제(文皇帝) 소장무(蕭長懋)[3]

1.1.10. 북위의 세종

  • 8대 선무황제(宣武皇帝) 원각(元恪)

1.1.11. 북제의 세종

  • 추존 황제 문양황제(文襄皇帝) 고징(高澄)[4]

1.1.12. 북주의 세종

  • 2대 명황제(明皇帝) 우문육(宇文毓)

1.1.13. 후량의 세종

  • 2대 효명황제(孝明皇帝) 소규(蕭巋)

1.1.14. 의 세종

  • 추존 황제 효성황제(孝成皇帝) 양소(楊昭)[5]

1.1.15. 남조의 세종

  • 2대 흥종왕(興宗王) 라성염(羅盛炎)[6]

1.1.16. 후주의 세종

역대 후주의 황제
1대 태조 곽위 2대 세종 시영 3대 공제 시종훈

©

Wang Qi (1529 - 1612)
(Life time: author died 400 years ago)

from
묘호 세종(世宗)
시호 예무효문황제(睿武孝文皇帝)
연호 현덕(顯德 954년 1월 ~ 959년 6월)
시(柴)/곽(郭)
영(榮)
생몰기간 921년 10월 27일 ~ 959년 7월 27일
재위기간 954년 2월 26일 ~ 959년 7월 27일

후주의 제2대 황제.

이름은 곽시영(郭柴榮). 921~959(재위: 954~959) 오대십국시대 후주의 건국자 곽위의 양자이다. 대개의 경우 후계가 없어 양자를 들일때 성씨가 같은 방계를 들이는게 보통이지만 특이하게 곽시영은 곽위의 아내의 조카, 다시말해서 곽위의 처조카이다. 이유는 곽시영의 비범한 능력을 곽위가 미리 알아봤기 때문. 원래 이름은 시영(柴榮). 고모부의 성인 곽위의 곽(郭)씨성을 받고 양자가 되었으나, 고모부가 죽은뒤 도로 시(柴)씨 성으로 돌아왔다. 곽위가 죽자 35세의 나이로 제위를 계승했다. 곽위의 눈은 틀리지 않았는지 이 시대 최고의 명군으로 뽑히는 인물이다. 즉위하자마자 거란과 결탁한 후한 유숭의 공격을 받았는데 조광윤의 활약으로 이를 격퇴했다. 이 여세를 몰아 분열된 중국의 통일사업를 계획하고 착수하여 후촉과 남당을 멸망시켜 장강 이북의 패권을 쥐었다.

내정적으로도 많은 개혁 정책을 실시해 농업, 조세 제도, 법제 개편 등의 주목할 만한 업적을 남겼다. 이렇듯 나라를 잘 이끌어 나간 명군으로 북방의 를 공격하여 연운 16주를 수복하기 위해 북정 길에 올랐으나 갑자기 병으로 쓰러졌고, 돌아오는 길에 제위 5년만인 39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이후 일곱살 아들이 제위를 계승했으나 곧 군부의 장수들이 장군 조광윤을 황제로 옹립[7]하여 나라가 들어서게 되었다.

현덕 2년(955), 잔혹한 불교 탄압 정책으로 삼무일종의 마지막을 장식한다. 삼무일종에 대한 설명은 세조 항목의 북위 태무제 참고. 덕분에 그래서인지 몰라도, 송조 이후로는 불교 색체가 당대보다 상당히 연해진다.

흔히 '시세종(柴世宗)'이라고 불리며 수호지에 등장하는 소선풍 시진의 조상이 되는 인물로 송나라의 전신인 후주를 부강하게 만들었다는 점에서는 사실상 송나라의 기초를 마련한 인물이다. 요절만 안하고 후계자만 적절했어도, 중원통일은 시씨가 했을 지도 모를일이다. 조광윤 또한 그의 수하로 시작해 세종의 전폭적인 신뢰 지지를 받으며 군공을 세웠고 시세종에 강한 충성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8] 나라 건국 후에도 다른 막장 선양과는 달리 시세종과 그 후손들을 우대하여 시씨들은 송대에 많은 단서철권을 받거나 황실이 도망갈 때 끼워주거나(...)하는 등, 특권을 받으며 번성하게 된다. 덕분에 포청천만 개고생 그리고 송나라 망할 때 조씨랑 같이 바다에서 다이빙



1.1.17. 오월의 세종

  • 2대 문목왕(文穆王) 전원관(錢元瓘)

1.1.18. 의 세종

요의 역대 황제
2대 태종 야율요골 3대 세종 야율올욕 4대 목종 야율술률

묘호 세종(世宗)
시호 효화장헌황제(孝和莊憲皇帝)
연호 천록(天祿, 947년 9월 ~ 951년 9월)
거란어 야율(耶律)
거란어 올욕(兀欲)
중국어 원(阮)
생몰기간 919년 1월 29일 ~ 951년 10월 7일
재위기간 947년 5월 16일 ~ 951년 10월 7일

요나라의 제3대 황제로 태조의 장남이자 황태자였던 야율배[9]의 장남이다. 숙부 태종은 그를 길렀으며 그의 사후 즉위했다.

1.1.19. 의 세종

1.1.20. 의 세종

1.1.21. 의 세종

2. 다른 뜻

2.1. 행정복합도시

2.2. 남극에 위치한 대한민국의 연구기지명

2.3. 신라 상대등 세종(노리부)

한자로 훈차하면 세종(世宗)이 되고, 음차하면 노리부(弩里夫)가 된다. 노종(奴宗), 노부(奴夫), 내부(內夫), 내례부(內禮夫)라고도 한다.

금관가야의 마지막 임금인 해왕의 장남이자 김무력의 맏형. 그러니까 김유신의 큰할아버지다...

사실 이상의 노리부=세종은 흥왕 순수비 등 금석문에도 자주 등장하며 삼국사기 삼국유사에도 다수 나오는 것으로 보아 금관가야의 정통 후손임에도 당시 신라에서 엄청나게 출세한 비중 있는 인물이었는데, 아래의 세종은 당 박창화화랑세기를 쓰면서 이 사실을 모르고 그만 병크냈다는 것이 정설. 따라서 화랑세기 위서론의 또 하나의 중요한 근거로 쓰인다.

화랑세기를 지지하는 이종욱 교수는 삼국유사 삼국사기가 잘못된 거고 오히려 화랑세기로 보완된다...는 입장인데, 생각해봐라, 삼국유사+삼국사기랑 화랑세기랑 어느 쪽이 파워가 더 센지. 이에 대해 김태식 교수 입장은 황종이랑 거칠부가 싸운다는 말과 같이 무리한 주장이라고 일축.

2.3.1. 화랑세기의 세종

진위가 의심되는 화랑세기에 등장하는 신라시대 인물. 우산국 정벌로 유명한 이사부의 아들. 어머니는 진흥왕의 어머니이자 법흥왕의 딸인 지소태후. 아버지가 다른 형 진흥왕이 친동생처럼 대했다고 한다.

처음에 미실과 혼인했으나 미실이 지소태후에게 쫓겨나자 융명을 정실로 삼았다. 미실이 사다함과 사귀자 괴로워하는 세종을 보다못한 지소태후가 미실을 다시 불러들였으나, 미실은 첩이 된 것이 싫어 세종을 멀리 했다. 이에 미실이 정실이 되고 융명은 둘째 부인이 되었다.

사다함이 죽을 때 세종을 풍월주로 추천해 사다함의 뒤를 이어 6세 풍월주가 되었다.

아내 미실이 궁에 들어가 왕을 모시고, 그외에도 여러 남자와 사통했는데도 오히려 부인에게 정절을 지킨 대인배. 미실이 사도황후와 동침하라고 했는데도 거절했다가 미실이 계속 청하자 어쩔 수 없이 동침했다고 한다. 심지어 풍월주가 잠시 폐지되고 원화가 부활했을 때 불만을 터뜨리는 낭도들에게 "원화(미실)은 내 옛 부인"이라며 따를 것을 종용했다.

화랑세기에서는 '화랑 중의 화랑', '화랑의 전형'이라고 칭송했다.

아들이자 11세 풍월주 하종은 사다함이 미실의 품으로 들어오는 꿈을 꾸고 낳았다고 하는데, 사다함을 매우 닮아서 실은 사다함의 아들이라는 소문이 나돌았다고 한다.

2.3.1.1. 선덕여왕(드라마)의 등장인물

내, 내가 칼빵을 맞다니

11번에서 기원했다. 선덕여왕(드라마)에 나오는 인물로, 아들 하종과 함께 화랑세기에서 나오는 것과는 성격이 많이 다른 편이다.
배우는 독고영재. 태왕사신기에서 고국양왕 같은 캐릭터를 연기했던 것과는 달리 이번엔 정 반대인 속물적인 연기를 하고 있다.

6대 풍월주 출신이고, 미실에게 있어 정식 남편이자 첫번째 남편 되겠다. 신라 시대 왕이나 왕족에게 색공을 바치면 그 남편의 신분이 상승했기 때문에 자연히 자신도 신분이 높아져 끝내 화백회의의 짱인 상대등까지 올라갔다. 마누라를 잘 둔 건지 운이 좋은 건지 아무튼 마누라 한 명 잘 둬서 나름대로 인생 대박 난 케이스다.

명문 가문에서 태어나 자랐으며 자기 자신도 나름대로 능력이 있는지라 귀족들 사이에서의 영향력이 크기 때문에 미실파 내부에서도 영향력이 크다. 형식적으로는 확고부동의 no.2.

그러다 보니, 황후가 되고 싶은 미실에게 빌붙어서 자신도 왕이 되고 싶다는 꿈을 구게 된다. 미실에게도 황후가 되는데 그것이 나쁘지 않기에 천명공주 사후 나름대로 밀어 주기도 했다.

그러나, 사람이 상당히 속물적이고 시야가 좁은지라 아들인 하종이 막장 찌질이로 성장하는데 큰 기여를 했다. 이 밖에도 하종, 미생 다음으로 뻘발언을 하기 때문에 미실을 피곤하게 하는 존재.[10] 철저하게 미실의 명령에 따르는 설원과는 달리 자신이 왕위에 오르고자 하는 욕심도 있어 덕만의 월식 쇼 직전 하종이 꾸민 혁거세 예언 곰탕 모드를 좋은 계책이라 칭찬하기도 한다. 결국 미실은 심각한 고민은 정부인 설원에게 하고 있으니 정식 남편으로 입지가 상당히 메롱이 됐다.

덕만이 왕실로 돌아온 후엔 덕만의 미실 앤드 귀족 관광 보내기 모드에 아들 다음으로 피곤해 하는데, 능력이 후달린 건지 화백회의 수장이면서도 공주를 알력으로 입을 막게 하지도 못한다.

결국 미실이 춘추를 왕으로 밀겠다고 하자, 내심 아쉬워 하면서도 춘추를 설원의 손녀와 결혼시키지 않는 조건하에 승인해 줬는데, 김춘추가 바로 보량을 보쌈해 가자 아주 단순하게 낚여서 부화뇌동한다. 결국 보종에게 납치되는 등, 아내의 정부랑 내전을 심하게 하다가 결국 각성한 미실이 '내가 왕이 될 거야'를 외치니 아내를 위해 왕좌에 대한 꿈을 접고 설원과도 일단은 화해했다. 결국, 미실의 군사 정변 음모에서 자신의 몸을 받쳐(혹은 자해) 미실의 쿠데타에서 제일 중요한 명분을 만들게 해 주었다.

아내 덕분에 높은 자리까지 왔는데 능력이나 인품이나 크지 못하면서 배포는 큰 바람에 자신뿐만 아니라 남들까지 피곤하게 하는 타입이다.

이 드라마에서 설원, 미생과 함께 젊어보여서 실제 나이를 짐작하기 힘들게 만들고 있는 인물 중 한 명(참고 링크). 참고로 사실 당시의 결혼 연령을 생각해보면 10대 정도 된 손녀가 있다 해도 보통 4,50대라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연상하는 할아버지, 할머니보다는 약간 젊은 편이긴 하지만, 설원이나 미생은 둘째쳐도 세종의 나이는 42회 시점에서 대충 잡아도 60대 전후는 될 거란 계산이 가능하다.

결국 미실이 죽은 뒤 구차하게 목숨 보전하기 싫다며 자진 낙향하여 극중에서 리타이어하고, 구 미실파 생존자들의 정신적 지도자는 설원이 맡게 된다. 그리고 세월이 흐른 후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세상을 떠난 듯. 그런데, 그 아들은 자기 기일날까지 술이나 퍼 먹으며 그 나이까지 찌질하게 살고 있으니 말 그대로 안습.

2.4. 서울에 소재한 대학교

세종대학교 항목 참조.

2.5. 고려대학교와 홍익대학교의 제2캠퍼스

고려대학교의 제2캠퍼스는 위치한 지역을 따라 서창캠퍼스로 불러왔으나 2008년 3월 종캠퍼스로 이름을 변경하였다. 2011년 홍익대학교 조치원캠퍼스도 따라서 세종 캠퍼스로 이름을 변경하였다. 이름을 물론 위쪽 단락의 세종대학교가 미친듯이(...) 항의했으나 별 성과없이 묻혔다. 안습...

2.6. 대한민국로펌

김앤장, 광장, 태평양, 율촌과 함께 대한민국 5대 로펌이다.

2.7. 패밀리 테니스 3D의 주인공

항목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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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석륵이 추존
  • [2] 이후에 고조(高祖)로 추존
  • [3] 소보권이 추존
  • [4] 북위 문선제가 추존
  • [5] 수 공제가 추존
  • [6] 5대 귀의왕 피라각(皮羅閤)이 추존
  • [7] 진교병변이라고 한다. 송 태조 조광윤도 세종의 휘하에서 장군으로 많은 군공을 세웠다.
  • [8] 이 덕분에 시영은 죽기전 조광윤에게 거의 모든 군권을 넘기고 황실을 보호해 달라며 죽는다. 결과적으론 나라는 선양으로 빼았겼지만 그래도 절반은 맞았다.
  • [9] 의종 문헌흠의황제로 추존
  • [10] 하종은 그렇다 치더라도 미생은 나름대로 도움이라도 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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