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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진컴퓨터랜드

last modified: 2015-03-29 08:10:20 by Contributors


우리가게 이름 세진컴퓨터
1992년에 설립되어 2000년에 파산대한민국컴퓨터전문 유통업체.

사진의 촬영시점은 96~97년 이후로 추정된다.[1]

90년대 중후반 중고딩 컴덕들의 전당이던 컴퓨터 전문매장. 아직도 주로 가던 세진컴퓨터랜드 매장에 대한 향수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남아있다. 한창 잘나가던 때는 세진때문에 동네 컴퓨터매장들도 값을 내려파는 수밖에 없었을 정도로 잘 나갔다. 그 정도로 저렴한 가격을 앞세워 컴퓨터를 팔았다. 저렴한 가격을 어필하기 위해 자주 바겐세일을 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온갖 명목으로 '세일기간'이 1년 내내 끊이지 않게 되었다.

한상수 사장이 부산에서 대우통신 대리점으로 창업한 것이 최초였다.[2] 이후 폭발적으로 성장하여 서울에도 진출하는 등 전국적인 컴퓨터 전문매장이 되었으며, 무서운 기세로 매장을 확장해 나갔다. 이는 2011년 기준으로 비교하자면 카페베네의 확장과 맞먹는 속도였는데, 카페베네가 프랜차이즈형 카페인 데 반해 세진컴퓨터랜드는 컴퓨터를 파는 곳이었음을 감안하면 얼마나 공격적이고 무모한 확장이었는지를 능히 짐작할 수 있다. 처음에는 다른 회사의 컴퓨터 및 주변기기, 소프트웨어 판매만 했으나 나중에는 자체 브랜드PC 판매도 했다.[3]

지점 하나하나가 상당히 컸는데 오직 PC와 그 관련제품만 팔았다. 가전제품 양판점인 하이마트나 전자랜드21 정도 되는 매장에서 컴퓨터만 판매한다면 비슷한 규모일 듯.

오늘날에는 지방에서도 인터넷으로 간단히 가격을 비교하며 카드로 택배주문할 수 있지만, 당시에는 지방에서 용산제 컴퓨터를 구입하려면 용산의 매장 전화번호를 구해서 전화를 걸어 주문을 한 다음 은행에 가서 무통장입금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비교적 용산 수준에 가까운 저렴한 가격에 매장에서 실물을 보고 살 수 있다는 것은 지방 소비자들에게 대단한 메리트였다.

뿐만 아니라 용산에 비해 훨씬 더 훌륭한 쇼핑경험을 제공했다. 서비스 수준에 있어서는 재래시장과 대형마트 정도의 차이가 있었는데 몇 가지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 친절 교육을 받은 직원들이 접객을 했다.
  • 호객행위를 하지 않았다. 용산처럼 욕설 같은 것은 상상할 수도 없었다.
  • 깔끔한 매장에 누구나 집어볼 수 있도록 각종 물건이 진열되어 있었다.
  • 정찰제였기 때문에 누구나 바가지 걱정없이 안심하고 살 수 있었다.[4]
  • 결제는 나갈 때 일괄로 한 번만 하면 되었다.
  • 무료 컴퓨터 교실을 상시적으로 운영했다.
  • 정품 윈도우를 설치했다.
  • 컴퓨터 구입 고객에게 평생 무상 A/S를 제공했다.
오늘날 아이코다나 컴퓨존 같은 업체들이 서비스를 우위로 영업하는 업체들이 나타났지만 여전히 세진의 수준과 규모에는 미치지 못한다.

당시 나름대로 유명했던 자체 브랜드로는 고급형으로 세종대왕 시리즈와 보급형으로 진돗개 시리즈가 있었다. 국민PC가 등장하고서는 그쪽에 집중하였으나 이후 대기업들의 PC가격 인하로 국민PC의 설 자리가 없어지자 덩달아 큰 타격을 입었다. 광고모델로는 진돗개와 강호동이 있었다. 또 "세종대왕문맹 없는 나라를 만들었습니다, 세진은 컴맹 없는 나라를 만들겠습니다." 광고 캠페인도 있었다.세진대왕

어린 강호동의 모습(…)

너무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만 하다가 어느날 흔적도 없이 파산하고 말았다. 직접적인 원인은 끝없이 매출이 성장하지 않으면 망하는 입경영에 있었다. 외상으로 물건을 들여 싸게 팔고 그 매출액을 기반으로 다시 물건을 외상으로 들여오는, 물건이 잘 팔리지 않으면 즉각 부도가 나는 환경이었기 때문에 과다한 광고비를 집행하였고 이것이 외상과 함께 누적 적자를 가중시키는 원인이 되었다. PC를 팔아 남는 이익금을 제조사에게는 한푼도 주지 않고 전부를 매장수 확대와 마케팅에 써버렸다.

1995년 1차로 부도위기를 겪은 뒤 지분의 51%를 당시 대우그룹의 컴퓨터관련 사업을 담당하던 대우통신에게 넘겨 대기업의 후광을 빌어 경영하였으나[5] 경영악화가 만성화되던 1997년 2월, 대우통신에게 완전 매각되어 회생할 뻔 했다.[6] 그러나 이후 대우그룹 해체 과정에서 대우통신을 통한 자금조달과 경영지원이 불가능해진 것이 결정타가 되어 2000년 7월 1차 부도 후 9월에 법원의 파산선고를 받고 망했다.[7]

망하기 전에 직영매장을 정리하고 프렌차이즈화 하는 것으로 경영방침을 전환했는데[8], 파산 시점에 직영점 52개를 포함해 258개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었다.

한상수 사장은 전형적인 카리스마적 리더였다고 하며, 그런 부류의 창업자가 흔히 그렇듯이 그런 기질들 덕분에 빠른 확장이 가능했고 결국 그 독단에 발목을 잡히게 되었다. # 또 한상수 사장은 다혈질로서 직원폭행사건 등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다. # 여담으로 링크의 기사를 보면 네티즌이라는 말 대신 통신인이라는 말이 쓰여 시대(PC통신 시절)를 느낄 수 있다.

현재 본사[9]가 있던 건물은 그대로 있으나 세진컴퓨터랜드의 흔적조차도 없고, 단지 경영학 교재에 대표적인 경영 실패 사례로 그 흔적을 남겼다. 안습.

세진전자와는 이름 때문에 같은 계열사로 혼동하기 쉬우나 절대 관계없는 회사이다.

당시 만들어냈던 자체 브랜드 PC의 경우 케이스가 경이로운 내구성을 자랑하기 때문에 가끔 컴덕들이 진돗개 케이스를 찾아다니기도 한다. 사실 내구성이라면 세종대왕이 甲 대우를 받지만 이 쪽은 너무 옛날 제품이라 규격 때문에 현시점에서 써먹긴 힘들다.

또, 여담으로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영화동 117-3번지 네이버, 다음 지도 검색 결과는 세진컴퓨터랜드로 나오지만 간판은 세진컴퓨터인 작은 가게가 있는데 저 세진컴퓨터랜드와는 관계없다. 네이버 거리뷰 다음 로드뷰 설마 한상수 씨가 재기를 위해 다시 차린 가게일 리는 없겠지? 다만, 저 인근에 실제 세진컴퓨터랜드 매장이 있었다. 거리 사진에서 오산 방향으로 올라가다 좌측으로 모 요양병원이라고 쓰여 있는 건물이 예전 세진컴퓨터랜드 매장 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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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CI모양을 자세히 보면 후기형으로 바뀐 것을 알 수 있다. 96년 이전까지는 구 CI를 사용.
  • [2] 2000년 파산할 때까지 끊임없이 얽힌 대우통신과의 인연의 시작이 여기에 있었다.
  • [3] 하지만 서울에 매장을 개설한 1995년을 기준으로 매출의 절반 이상을 대우통신의 제품이 차지했었고, 1차 부도 위기를 겪은 1995년 11월 기사를 뒤적거려보면 업계 종사자들은 좀 커다란 대우통신 대리점으로 생각하기도 했다는 걸 알 수 있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다 1997년 대우통신이 경영권을 인수하면서 대우통신의 제품비중이 더 커졌다. 대우통신은 PC사업을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삼성, LG, 삼보 같은 다른 PC제조사들과는 달리 대리점 유통망이 전무했기 때문에 때문에 전국적인 유통망을 유지하기 위해서 유독 관대했었던 것도 사실이다. 특히 1993년에 삼성, LG, 삼보는 외상거래가 일정기간 지속되자 대금지급이 될 때까지 일시적으로 거래를 끊기도 했었다. 그때 다른 제조사들과 함께 거래를 끊었다면 (세진은 그때 망했겠지만) 대우그룹은 1조원정도의 손실을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 [4] 부품 구성에 사기를 치지도 않았다. 90년대 용산에서는 이런 일이 심심치 않게 있었다.
  • [5] 보유지분이 적음에도 불구하고 이때부터 1997년초까지는 한상수사장이 계속 경영했고, 대우통신이 지급 보증을 서는 등 아낌없이 경영 지원에 임했다.
  • [6] 49%의 한상수사장의 지분을 대우통신 임원들이 분산 매수해 공정거래법상 계열사가 아닌 것처럼 위장하기도 했다.
  • [7] 파산 당시 세진컴퓨터랜드의 자산은 780억원에 불과하였으나 부채는 4,800억원에 달했다. 4,800억원 중 대우통신의 몫이 4,000억원 이상이었는데(...), 대우통신도 대우그룹 해체에서 비롯된 청산과정이 진행 중이었기 때문에 세진컴퓨터랜드는 망하지 않을 방법이 없었다. 주거래은행이었던 한빛은행의 여신은 전체의 1%도 되지않는 30억원, 말하자면 대부분의 부채가 외상값(...)이었다는 것이다.
  • [8] 프랜차이즈점의 서비스는 직영점보다 나빴다. 정책상 AS는 무상인데도 요금을 청구한다든지, 방문설치기사의 친절도가 떨어진다든지 하는 등으로 평판을 깎아먹는데 크게 일조했다.
  • [9] 주소는 서울시 강서구 염창동 206-15, 16번지(옛날 주소 출처)인데 지금은 없는 주소다. 네이버 지도에선 검색 결과가 없고, 다음 지도에선 염창동 209번지를 가리켰다가 현재는 208-15와 208-17번지를 가리킨다. 현재는 염창동 260-15번지인데 옛날의 그 건물은 온데간데없고, 지금은 다른 건물이 있다. 틀린 게 있다면 수정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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