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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폴란드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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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샤바 근방에서 폴란드군에게 노획된 붉은군대 군기

Contents

1. 개요
2. 전개

1. 개요

소련-폴란드 전쟁은 1919년 2월부터 1921년 3월까지 벌어진 전쟁이다. 이 전쟁은 서방측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유럽의 정치사와 군사사에서 매우 중요한 사건 중 하나다. 정치적으로는 소련의 군사적 혁명 수출 계획이 좌절되어 세계혁명을 주장하는 트로츠키의 영구혁명론 대신 스탈린의 '먼저 우리식대로 잘 살아보자'는 일국사회주의가 득세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이 전쟁은 기병의 기동력에 의해 승패가 결정되었는데, 이 때문에 소련에서는 이 때의 전훈을 가지고 종심 전투 이론을 개발하게 된다.

2. 전개

폴란드는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독일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으로부터 독립을 이루었다[1]. 반면 소비에트 러시아는 당시 러시아 혁명적백내전이 시작되어 나라 꼴이 말이 아니었다. 레닌이나 트로츠키 같은 혁명가들은 서유럽에서 혁명이 벌어지지 않는 한은 소련의 지위는 위험하다고 보았기 때문에 서유럽으로 가는 통로인 폴란드는 반드시 확보해야 했다. 그러나 폴란드는 자신의 독립을 위협하는 소련의 혁명 수출에 휘말리려고 하지 않았으며, 이로 인해 필연적으로 충돌이 있을 수 밖에 없었다. 국경 부근에서는 소련군과 폴란드군 사이에 잦은 교전이 벌어졌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본격적인 전쟁은 폴란드군이 소련을 침공함으로서 시작되었다. 1919년, 폴란드는 친폴란드 우크라이나인들의 원조요청을 받고 한창 내전이 벌어지던 우크라이나를 침공해서 승리를 거두었다. 여기에 폴란드의 지배를 원치 않는 우크라이나 공산주의자들이 소비에트 러시아에 구원을 청했고[2], 이에 붉은 군대가 개입하게 되었다. 반격은 성공적이어서, 소련군은 폴란드-우크라이나 국경을 넘어서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까지 진출했다. 더욱이 소련은 폴란드를 넘어 독일까지 진출, 독일 공산당을 원조하여 정권을 장악하려는 구상도 하였는데[3], 이것이 서방 자본주의 국가들이 폴란드를 원조하는 계기가 되었다.[4]

폴란드군은 수도 바르샤바 근처에서 진격하던 소련군의 허술한 남쪽 측변을 돌격대로 들이받아 포위 격멸시키는 작전으로 대승했고[5], 이를 기점으로 전세는 다시 역전되어 폴란드에 유리하게 되었다. 소련측은 폴란드 말고도 각지의 반란군에 시달리고 있었기 때문에[6] 폴란드와의 전쟁에만 신경쓸 수가 없었기 때문에 일단 1920년 10월에 정전을 했고, 이후 협상에서 폴란드에 대폭 양보해서 강화조약을 맺었다. 이것이 바로 1921년 맺어진 리가 조약이다.

바르샤바 전투의 패인을 둘러싸고 국방장관 레프 트로츠키, 전선 사령관 미하일 투하체프스키는 명령을 듣지 않고 제멋대로 지휘권을 행사한 정치장교 이오시프 스탈린과 크게 싸웠고,[7] 이게 스탈린 집권 후에 대숙청의 한 원인이 된다. 당장 트로츠키는 당내 권력투쟁에서 패배하고 축출된 뒤 암살당했고, 투하체프스키는 전간기 소련 육군의 비약적인 발전을 이끌었음에도 대숙청으로 처형당했고, 심지어 그의 군 경력에 흠집을 낸 폴란드인들은 카틴 학살로 보복당한다.[8] 뒤끝 쩐다...

이 전쟁에서 폴란드는 큰 영토를 할양받았으나 그 영토의 태반은 폴란드인이 살고 있는 영토가 아니라 우크라이나의 영토였다. 역사적으로 우크라이나는 몽골 침입으로 키예프 공국이 멸망한 이래 동부는 전통적으로 몽골 제국과 그 후계의 지배를 받아오다 러시아에 넘어갔고, 서부는 리투아니아의 지배를 받다 폴란드-리투아니아 치세에 폴란드의 지배로 넘어갔다.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이 망하면서 전 우크라이나를 러시아가 지배했으나 폴란드가 부활하면서 다시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배를 주장했고, 러시아는 러시아대로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배를 회복하고자 했기에 양국은 우크라이나를 두고 대립했다.
서부에서는 서부대로 단치히나 포메른 지방을 빼앗긴 독일이 폴란드에 이를 갈고 있었다.[9] 그래서 독일-소련은 폴란드에 관한 태도에 있어서는 견해가 일치했고 이것이 히틀러 집권 이전까지 양국의 군사협력을 이끌었다.

히틀러는 집권 후, 처음에 소련과 적대정책을 취했으나 폴란드를 침공하기 전 소련과 독소 불가침조약을 맺고 폴란드를 반분하기로 밀약을 했다. 1939년 9월 1일 독일의 폴란드 침공이 벌어지자 소련은 뒷짐지고 구경하고 있다가, 폴란드군의 전열이 거의 무너진 9월 17일 폴란드의 동부를 침공했다. 폴란드는 동부에서 방어선을 구축하려했으나 뒤통수를 친 소련에게 무너졌고, 소련은 침공명분을 '폴란드에게 빼앗긴 우크라이나의 반을 수복한다'고 선전했다.

1945년 나치 독일이 패망한 이후, 연합국으로서 대지분을 가지고 있던 소련은 폴란드의 영토반환 요구를 무시하고 이때 수복한 영토를 확정했고, 대신에 폴란드는 독일의 동부영토를 대거 할양받았다. 덕분에 폴란드의 영토는 전쟁 전과 확연히 달라지게 된다. 사실 그 영토에 사는 사람들이 대부분 우크라이나인이었기 때문에 폴란드는 본의 아니게 역사상 처음으로 단일 민족국가를 이루게 되었다. 근데 얻은 서쪽 땅은 전통적인 독일 땅 물론 이때 폴란드 귀속 영역권에 거주하던 독일인들은 모조리 독일로 추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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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정확히는 18세기 독일 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러시아 제국의 세 차례에 걸친 폴란드 분할에 의해 각 국가에 귀속되었던 영토 중, 러시아령 폴란드가 1차대전 후반기에 소비에트 러시아가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으로 독일에게 넘어갔고, 다시 동맹군이 패전함으로써 독일 제국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지배하고 있던 폴란드령을 포기함으로써 독립할 수 있었다.
  • [2] 당시는 아직 소비에트 연방이 건국되기 전이었다.
  • [3] 독일은 제2제국시절부터 사회주의 사상의 중심지였으며, 특히 당시 바이마르 공화국에서는 전쟁 책임론과 사회적 혼란에 힘입어 공산당이 약진하고 있었다.
  • [4] 사실 군사원조 자체는 폴란드 독립 직후부터 프랑스에 의해 계속 이루어지고 있었다. 나폴레옹 전쟁 이래로 폴란드인들이 계속 복무해왔던 인연으로 프랑스는 폴란드에 대하여 매우 우호적인 입장이었고, 그래서 1차대전중 프랑스군에 복무한 폴란드인(약 20여만 명에 달했다)들을 종전으로 남아도는 잉여 군수물자와 군사고문단과 함께 본국으로 돌려보내 신생 폴란드군을 구성할수 있도록 했다. 그래서 당시 폴란드군의 사진이나 기록화를 보면 죄다 프랑스 군복을 입고 있는것을 볼 수 있다.
  • [5] 위의 내용을 보면 폴란드가 서방 연합국의 도움을 받은 덕분에 겨우 승리한 것으로 착각할 수 있겠지만, 실상에 있어 당시 바르샤바의 작전은 폴란드가 입안한 것이었고, 모든 병력은 폴란드 병사들이었다. 물론 이전에 프랑스에서 건너온 폴란드 자원병(폴란드 출신 프랑스 이민자와 폴란드 출신 독일군 포로로 구성된)과 각종 물자, 프랑스 장교들이 상당한 도움이 되기는 했지만, 이 승리의 주연은 단연 폴란드와 독립 영웅 유제프 피우수트스키였다.
  • [6] 이 당시 적백내전은 절정으로 치닫고 있었다. 영국의 지원으로 백군이 대대적인 반격을 한 시기가 폴란드 전쟁의 분수령이 되었다.
  • [7] 여기에 대해서는 다른 설도 있는데, 당 차원에서 결정한 전략이 전선을 확대해서 폴란드 곳곳에 혁명을 전하고, 소수민족의 혁명을 유도하는 것이라, 스탈린의 잘못이라기보다는 전선을 지나치게 확대한 트로츠키와 레닌의 책임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애초에 주변국에 혁명의식을 퍼트리는 것이 트로츠키가 구상한 방식. 어쨌든 이 사건 때문에 스탈린과 트로츠키는 불구대천의 원수가 된다. 그리고 투하체프스키의 지휘에도 문제가 있었다.
  • [8] 마지막은 진담 반 농담 반의 이야기이고, 카틴 학살은 폴란드의 엘리트층을 제거함으로써 민족주의적인 성향을 약화시키고, 전후 소련의 지배를 용이하게 하려는 목적이 더 컸다.
  • [9] 그런데 해당 지역은 1772년 폴란드 분할 이전 폴란드 영토였고, 인구 비율로 따져봐도 대부분 폴란드인이었다. 애초에 1795년 제 3차 폴란드 분할로 나라가 멸망한 지 123년 만인 1918년에 국가 재건에 나서는 폴란드에게 있어 베르사유 조약에서 인정된 바다로의 폴란드의 출구는 약속된 것이었다. 폴란드가 과거 자신들의 영토였던 그단스크와, 그 주변 지역 및 연결 통로를 먹는 것은 당연했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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