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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쇄원

last modified: 2014-11-03 23:37:13 by Contribu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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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ents

1. 개요
2. 역사
3. 찾아가기
3.1. 교통편
3.2. 입장료
3.3. 인근 관광지
3.4. 편의시설
4. 소쇄원의 구성
4.1. 소쇄원 48영
5. 기타



瀟灑園

1. 개요

조선 중기에 건축된 한국 전통의 별서정원. 전라남도 담양군 남면 지곡리에 있다. 근처에 전라남도 교육연수원이 있다. 다듬지 않은 자연과 어울어진다는 조선시대의 특유의 문화를 대표하는 곳이다. 조선시대 별서 양식 중에서 그나마 제대로 유지되고 있는 대한민국 내 몇 안 되는 정원이기 때문에 조경시험에서 자주 나오는 이름들 중 하나다.

2008년 5월 2일부로 사적에서 명승으로 재분류되었다.

2. 역사

소쇄원은 조선 중기의 선비 산보에 의해 건축되었는데, 양산보는 본래 조광조의 제자였으나 조광조가 기묘사화로 죽음을 당하자 세상에 미련을 두지 않고 고향인 담양으로 내려와서 은둔하면서 지었다고 한다.

정확한 건축연대는 논란이 있다. 호남의 대표적 유학자인 하서 인후가 지은 "소쇄원 즉사"가 지어진게 1528년이고, 송강 정철이 지은 "소쇄원제 초정"이라는 시에 의하면 소쇄원은 정철이 태어난 해에 지어졌다라고 언급했다. 정철은 1536년에 태어났기 때문에 그때 완성된것인가라는 추측이 나온다.

하지만 면앙정 이 소쇄원을 두고 지은 시가 1534년에 나왔기 때문에 적어도 정철의 언급은 착오로 보인다. 대체적으로 김인후의 시를 바탕으로 해서 1520년대 중후반부터 건축이 시작되어 1536년 정도에 완공되었을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본래 은둔을 위해 지어진 건물이지만, 워낙 풍경이 좋은 곳이라 수많은 문인들이 이곳을 찾았고 문학과 학문연구의 산실이 되었다. 김인후, 정철, 송순 이외에도 의병장으로 유명한 제봉 고경명, 이황과의 사단칠정 논쟁으로 유명한 유학자 기대승 등도 소쇄원을 찾아와서 양산보와 교분을 나누고 시를 지었다고 한다.

양산보는 죽으면서 유언으로 어느 언덕이나 골짜기를 막론하고 나의 발길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으니 이 동산을 남에게 팔거나 양도하지 말고 어리석은 후손에게 물려주지 말것이며, 후손 어느 한사람의 소유가 되지 않도록 하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양산보의 후손들은 그의 유언을 철저하게 지켜서 소쇄원을 지켜왔다.[3]

그러나 정유재란때 왜군이 담양으로 쳐들어와서 소쇄원을 불질러 양산보가 지은 소쇄원은 소실되어 버렸다. 그 이유는 칠천량 해전으로 원균이 수군을 말아먹고 전라도가 왜군의 침입을 받게 된 탓이다. 원균을 죽입시다 원균은 나의 원수

이후 양산보의 손자인 양천운이 소쇄원의 복구를 시작해서 고손자인 양경지때에 상당부분 복구되었으며 하지만 수많은 조선 중기 학자, 문인들이 보고 즐기던 경치와 정원이 소실되고 이후에 재건된 것이 지금까지 보존되고 있다는 점에서 안타까운 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래도 다행인게 1548년 김인후가 소쇄원 48영이라는 제목의 시에서 꽤 자세하게 서술한 탓에 상상 정도는 가능하다는 점이며 1775년 소쇄원도라는 판화를 통해 소쇄원 48영과 비교할 수 있는 그림자료도 존재해서 원형 자체를 생각조차 어려운 다른 한국 내 정원양식들보다는 그나마 상황이 나은 편이라고 할 수 있다.

광주 충효동의 벽당, 송순이 지은 앙정등과 함께 가사문학권으로 지정되어 있다.

3. 찾아가기

3.1. 교통편

광주광역시에서 이곳으로 가는 버스는 광주 버스 충효187이 있다. 운행 간격은 2014년 2월 기준 1시간이다. 광주 시내에서 주요 승/하차 정류장으로는 북구청, 교육대가 있다.

탑승 전에 먼저 목적지를 기사님께 말씀드리자. 시외계 운임 문제도 있고, 기사님 나름대로 운행에 많이 참고한다.

하차 단말기 도입 전에는 앞문으로 하차하면서 교통카드 단말기에 카드를 접촉시켜 시외계 초과운임을 지불했거나, 미리 목적지를 말해 시외계 운임을 포함해서 한번에 지불했다. 하차 단말기 도입 이후로 어떻게 되었는지는 추가바람.

정류장 이름이 소쇄원이기 때문에, 놓치지 않고 내릴 수 있다.

3.2. 입장료

후손들이 소쇄원을 꾸준히 유지/보수하고 있으며, 수익을 위해서가 아닌 유지비 명목의 입장료를 받는다. 입장할 때 사유지임을 알리는 표지판을 볼 수 있다.

2014년 기준 성인 1000원.

3.3. 인근 관광지

소쇄원 주변은 가사문학의 중심지로, 문인들이 시를 짓던 정자들이 많이 있다. 대부분은 직접 출입이 가능하며, 특별한 입장료는 없다. 다만 정자와 정자 사이의 거리는 도보로 걷기에 조금 멀 수도 있다. 막상 가도 크게 볼 건 없으나, 그 당시 사람들이 이런 느낌으로 글을 썼을 거란 느낌을 상상해보면 좋다.

특별히 안내 표지판이 없어 길을 잃은 경우에는 구글 지도로도 찾을 수 있다.[4] 고등학교때의 가사문학을 잘 공부해두면 묘하게 여행에 도움이 된다.

근처에 가사문학관이 있으며, 입장료를 내고 입장할 수 있다.

참고로 같은 담양에 있는 죽녹원까지 거리는 상당하다.

3.4. 편의시설

소쇄원 내에는 특별한 편의시설이 없다. 밖으로 나와 길을 건너서 저수지 방향으로 가다보면, 간단한 분식을 취급하는 매점 겸 휴게소가 있다.

점심 시간을 끼워 이동을 한다면 도시락이나 간단한 요기거리를 챙기는 게 좋다.

입구에서 잠깐 걸어가면 한정식 식당이 있으므로 점식/저녁은 걱정 할 이유는 없다.

4. 소쇄원의 구성

  • 제월당
  • 광풍각
  • 대봉대
  • 고암정사
  • 부훤당

4.1. 소쇄원 48영

하서 김인후가 1548년에 지은 시로서 건물,지형,식생,동물,공간 등의 구성요소와 사용모습 등을 그리고 있어서 불타 없어지기 전의 소쇄원을 대략적으로나마 추정할 수 있게 해준 자료들 중 하나.


5. 기타

사진빨을 더럽게 못 받는 곳 중 하나. 인공적이지 않은 자연 친화적인 정원이라 아름다운 구도를 잘 포착하지 않으면 그냥 산에 정자 하나 세워둔 것처럼 찍히기 쉽다. 또한 정원이 다 그렇듯이 계절에 따라서 분위기가 천차만별.

소쇄원을 처음 들어갔을 때 나오는 대나무 숲 때문에 죽녹원으로 오해받는 경우가 드물게 있다. 차를 끌고 왔다면 모를까, 여기에서 죽녹원으로 이동하는 건 쉽지 않으니 주의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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