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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피 마르소

last modified: 2015-03-28 14:29:14 by Contributors

Contents

1. 개요
2. 일생
3. 작품
3.1. 배우로서
3.2. 작가와 감독으로

1. 개요

여학생.jpg
[JPG image (297.13 KB)]



Sophie Danièle Sylvie Maupu "Marceau"
1966년 11월 17일 -
키 175cm

1980~1990년대의 대한민국 책받침 청소년들을 사로잡은 외국 미인 여배우(브룩 실즈, 피비 케이츠, 왕조현 등등)들 중 하나. 1966년 11월 17일생.

국내의 한 인터넷 사이트에서 실시한 미인 투표에서 1위로 뽑힌 적이 있다. 한국에서는 2000년대 이후로 프랑스 영화는 거의 개봉되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인지도는 웬만한 미국 배우 못지 않다.

특징은 동안. 2015년 기준 한국나이 50세다! 우리나라의 Top 2 미중년 여배우 김희애, 김성령과 또래뻘이 된다.


20대와 같은 청순미를 기대할 수는 없지만 기품이 느껴지는 미모이다.

소피(所避)가 오줌을 뜻하는 말이기 때문에 과거에는 이것 관련 개드립도 있었다. 소피 마렵소. 요즘은 자주 쓰지 않는 말이기 때문에 안 통한다.

2. 일생

파리에서 소피 다니엘 실비 모퓌(Sophie Danièle Sylvie Maupu)라는 이름으로 가게 종업원인 시몬 모리세(Simone Morisset)와 트럭 운전수인 브누아 모퓌(Benoît Maupu) 사이에서 둘째 아이로 태어났다. 유년 시절 마르소 가족은 노동자 계급의 삶을 살았는데, 이것은 그녀에게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다. 그래서 그런지 프랑스의 백인 우월주의 극우정당인 FN(국민전선)이 예상을 뒤엎고 랑스 사회당을 이기고 대통령 결선투표(1, 2위가 다시 붙는 제도.)에 오르자 소피 마르소는 이를 적극 반대하는 운동에 뛰어들었다.[1] 그녀는 주중에 가족의 식당 일을 도왔으며, 주말에는 에손(Essonne) 주의 베르 르 프티(Vert-le-Petit)에 위치한 작은 집인 라 카반(La Cabane)에서 지냈다. 9살 때 부모는 이혼했다.

1980년 2월, 그녀와 그녀의 어머니는 10대를 위한 모델 에이전시를 찾고 있었고 마르소는 그녀의 사진을 에이전시에 가지고 갔으나 아무 것도 올거란 생각을 하지않고 있었다. 같은때 클로드 피노토(Claude Pinoteau) 감독 영화 (La Boum, the party)의 캐스팅 감독이었던 프랑수아즈 메니드레(Françoise Menidrey)는 프로젝트를 위해 모델 에이전시에 추천할 것을 물어봤다. 수많은 면접을 거친 후, (Gaumont)[2] 영화사의 감독인 알랭 푸아레(Alain Poiré)는 마르소와 장기 계약을 맺었다.

라붐1 주제가인 리얼리티.

10대 청춘물인 라붐(1980년)은 프랑스에서 450만의 관객을 불러들일 정도로 대히트했고, 속편격인 라붐 2(1982년)도 프랑스와 유럽에서 매우 큰 성공을 거두었다. 특히 애들이 참 쑥쑥 자란다.. [3] 주제가 "Reality"(라붐 1), "Your eyes(라붐 2)"이 오히려 대한민국에서 영화보다 더 알려졌다.

라붐 1,2는 KBS-1에서 더빙 방영한 바 있고 유콜잇 러브는 1989년 개봉했으며 1990년대 초반에 KBS 일요특선으로 더빙 방영한 바 있다. 세 작품에서 성우는 송도영이 도맡았다.

2010년대에 EBS에서 소피 마르소 특집으로 라붐1, 라붐 2, 유 콜 잇 러브를 원어판으로 방영한 바 있다. 팬들은 그저 울지요... 그밖에 2013년 11월 롯데시네마에서 라 붐 1과 유 콜잇 러브를 디지털 리마스터링해서 상영했다.

1981년, 그녀는 프랑스 가수 프랑수아 발레리(François Valéry)와 같이 델라노에(Delanoë) 작사의 곡인 "Dream in Blue"로 가수 데뷔했다.

1982년, 16세가 된 그녀는 고몽과의 계약을 100만 프랑스 프랑으로 올려 계약하고, 대부분의 돈을 받게 되었다. 라 붐 2를 비롯한 여러 영화에 주연이 된 그녀는 1984년에 Fort Saganne(제라르 드파르디외와 카트린 드뇌브와 공동출연), Joyeuse Pâques(행복한 부활절)에 출연하며, 1985년에는 영화 "L'Amour Braque"와 "Police", 1986년에는 "Descente aux Enfers"(한국 개봉명 : 지옥에 빠진 육체)에 출연한다. 여담이지만 이 영화에서 라 붐에서 아버지역으로 나왔던 클로드 브라쇠르(Claude Brasseur)와 부부로 나오며 전신누드가 포함된 정사신을 펼쳐서 그녀의 청순한 모습을 기억하던 한국팬들을 충격과 공포에 빠뜨린 적이 있다. 이 때 나이가 만 20세. 라붐의 성공으로 "아이돌"로 각인되었던 그녀의 이런 노출연기는 매우 이례적이고 충격적이었다.

1988년, "L'Etudiante"(한국개봉명: 유 콜 잇 러브)과 Chouans에 출연했다. 노르웨이의 여가수 캐롤라인 크루거(Karoline Krüger)[4]가 부른 'You call it love'가 잔잔히 깔리는 오프닝은 그야말로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급이었다. 마스크와 모자를 벗고 드러내는 소피 마르소의 자태는 클로즈업에도 아름다운 얼굴선과 함께 깨끗한 피부를 자랑하며 뭇 남성들의 가슴에 불을 질렀다. 소피 마르소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가장 대표적인 장면이 아닐까 싶다.

Chouans에서도 그녀의 역할로 국제 로맨틱 영화 페스티발에서 최고의 로맨틱한 여배우로 이름을 굳혔다. 그 정도가 어느 정도였나면 당시 미인 여배우로는 만렙의 위치인 미국의 여배우인 브룩 실즈(Brook Shields)에 대한 대항마 취급이었다. 하지만 브룩 실즈가 90년대 들어서 철저하게 잊혀진 거와 달리 그녀는 꾸준히 연기를 하며 헐리우드까지 진출하여 계속 활동하고 있다.

1989년, 그녀의 남자친구인 안제이 주와프스키(Andrzej Żuławski, 1940.11.22- )가 감독한 영화 "Mes nuits sont plus belles que vos jours"(내 밤은 네 낮보다 더 아름다워)에 출연했다. 1990년, 그녀가 만든 회사의 3번째 필름인 "Pacific Palisades" 와 "La Note Bleue"에 출연했다. 1991년, 마르소는 유리디체(Eurydice)의 극장에 투자해 최고의 신인 여배우를 위한 상인 몰리에르 상을 받았다.

1993년 영화 팡팡(Fanfan)과 1994년의 "La Fille de D'Artagnan"(달타냥의 딸)을 기점으로 덜 드라마틱한 영화를 만들게 된 마르소는 유럽과 해외에서 유명해졌으며 그녀는 피그말리온의 엘자 돌리틀 역으로 연극으로 돌아왔다.

마르소는 1995년 멜 깁슨 감독, 주연의 "브레이브 하트"에서 이사벨 공주 역으로 미국을 포함한 국제적 인지도를 얻게 되었고 유명한 프랑스 영화감독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Michelangelo Antonioni)와 빔 벤더스(Wim Wenders)와 함께 영화 Beyond the Clouds에서 국제적 배우로서 호흡을 맞췄다.

1997년, 그녀는 영국에서 윌리엄 니콜슨과 영화 "Firelight"를, 프랑스에서 베라 벨몽드와 영화 Marquise을 촬영하고 버나드 로즈와 안나 카레니나(Anna Karenina)를 찍었다.

1999년 한여름 밤의 꿈에서 히폴리타를 연기했으며, 007 영화 "The World Is Not Enough(국내에는 007 언리미티드)"에서 악당 본드걸인 엘렉트라 킹을 연기했다. 2000년에 그녀는 남자친구인 안제이 주와프스키와 팀을 이뤄 영화 "La Fidélité(한국개봉명: 피델리티)"를 찍었다.

그녀보다 26살 연상인 폴란드 출신의 영화감독, 안제이 주와프스키와 17년간 관계를 맺어왔으며 1995년 6월에 아들 뱅상(Vincent)이 태어났다. 2001년 마르소는 그와 이혼해 프로듀서 짐 렘리와 사귀면서 그녀의 두번째 아이인 줄리엣이 2002년 런던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현재 미국계 프랑스 동료배우 하이랜더크리스토퍼 램버트[5]와 연애중. 그는 미국 여배우 다이안 레인의 전남편이기도 하다.

2002년 영화 <사랑한다고 말해줘/Parlez-moi D'amour> 를 감독하여 몬트리올 국제영화제 감독상을 받기도 했고 2007년에 2번째 감독 영화 <트리비알>을 감독하며 크리스토퍼 램버트와 주연도 맡았다. 이처럼 청순하기만한 얼굴과 달리 직접 영화감독을 맡기도 하고 '거짓말장이'라는 제목의, 여배우를 주인공으로 한 반자전적인 소설을 쓰기도 하는 등 지적인 면도 많이 갖추고 있다. 그녀가 출연한 영화중에는 영어로 된 작품도 많은데 영어대사를 완벽히 소화해 내는것으로 보아 영어능력도 수준급인 듯.

그녀가 출연한 영화가 국내에서 더빙되어 방송될 때 전담은 송도영으로 잘 어울린다는 평이다. 다만 과거에 방영된 라 붐 2[6]와 유 콜 잇러브에서는 故 정경애가 맡았다.

2009년에는 디올의 화장품 광고 모델로 발탁되었다. 참고로 1989년에 이미 국내 화장품 광고(드봉)로 티브이 모델[7]로 나온 바 있다. 이 때 한국 스탭들과 같이 뒤풀이를 했는데 한국인들은 소피 마르소가 술을 못하거나 아니면 한두잔 할 줄 알았는데, 매실주를 한 병 다 마시고도 전혀 술기운이 돌지 않는 것을 보고 놀랐다고 한다... 와인을 물처럼 먹는 프랑스인이니...

프랑스 전 대통령 프랑수아 미테랑과 함께 방한한 적이 있었는데 소피 마르소를 보기 위해 몰려든 군중을 보고 프랑수아 미테랑은 그 사람들이 다 자기를 보러 온 줄 착각하고 통역사 최정화 씨에게 "마드모아젤, 내가 한국에서 이렇게 인기가 있는 줄은 몰랐소."라고 대단히 흡족해했다고 한다(...).

3. 작품

3.1. 배우로서

La Boum(라 붐, 파티), 1980, La Boum 2, 1982: 빅 베레톤
Fort Saganne, 1984: Madeleine de Saint-Ilette
Joyeuses Pâques(행복한 부활절), 1984: 줄리
L'Amour braque(광기의 사랑), 1985: 마리
Police(경찰), 1985: Norya
Descente aux enfers(지옥으로의 강하), 1986: Lola Kolber
L'Étudiante(여학생), 1988: 발렌틴 에즈퀴라
Chouans!, 1988: Céline
Mes nuits sont plus belles que vos jours(나의 밤은 당신의 낮보다 아름답다), 1989: Blanche
Pacific Palisades, 1990: Bernadette
Pour Sacha(사챠를 위해), 1991: 로라
La Note bleue(푸른 노트), 1991: Solange Sand
Fanfan(팡팡& 알렉상드르), 1993: Fanfan
La Fille de d'Artagnan(달타냥의 딸), 1994: Eloïse d'Artagnan
브레이브 하트(Braveheart), 1995: 이사벨라 공주
Beyond the Clouds(Al di là delle nuvole), 1995
Anna Karenina, 1997: Anna Karenina
Marquise(1997, 베라 벨몽드와 같이): Marquise du Parc
Firelight(1997, 윌리엄 니콜라스와 같이): Élisabeth Laurier
Lost & Found, 1999: Lila Dubois
A Midsummer Night's Dream, 1999: 히폴리타
007 언리미티드(007: The World Is Not Enough), 1999: 엘렉트라 킹
La Fidélité(충성), 2000: Clélia
Belphégor, Le fantôme du Louvre(벨페고르, 루브르의 유령), 2001: 리사
Alex and Emma, 2003: Polina Delacroix
Je reste!, 2003: Marie-Dominique Delpire
Les clefs de bagnole(자동차 열쇠들), 2003
A ce soir, 2004: Nelly
안소니 짐머, 2005: 키아라 만초니
La Disparue de Deauville, 2007: Lucie/Victoria
Les Femmes de l'Ombre(피메일 에이전트), 2008
LOL(크게 웃다), 2008
De l'autre côté du lit, 2008
Don't Look Back, 2009
L'age De Raison(디어 미), 2010

3.2. 작가와 감독으로

L'Aube à l'envers(단편), 1995
Speak to Me of Love, 2002
La Disparue de Deauville,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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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보신탕을 야만적이라고 비난하는 브리지트 바르도는 이런 인종차별적인 정당을 골수적으로 지지한다. 반면 지네딘 지단은 부모님이 알제리 출신이라서 그런지(지단 본인은 마르세유 출신이다.) 국민전선을 극구 반대하면서 혹여 장 마리 르펜이 당선되면 은퇴해 버리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1998 프랑스 월드컵 우승 당시에도 르펜은 대놓고 아프리카계를 욕했다는 것....) 투표 결과 크 시라크가 80% 득표로 연임..
  • [2] 프랑스의 배우인 레아 세두는 이 회사의 CEO인 니콜라스 세두의 증손녀다.
  • [3] 그러나 라붐 1은 대한민국에서 당시 개봉하지 않았고, 비디오로 나오고 80년대 중순 KBS를 통하여 더빙 방영되었다가 2013년이 되어서야 정식 판권을 받아 디지털 리마스터링으로 정식 개봉했다. 라붐 2는 만들어진지 4년만인 1986년에야 개봉했으나 그다지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인지도 있는 배우 중의 하나였다.
  • [4] 한국에선 유 콜 잇 러브로 너무 알려져있는데 그녀는 이 노래로 알려진 것을 그다지 반기지 않는다. 2000년대 중순에 유럽 및 여러 나라 노래에 대한 책자에서 그녀를 노르웨이까지 가서 취재한 것을 보면 한국에선 이 노래가 유명하다고 하자 그녀는 씁쓸한 얼굴을 보여줬다고 한다.
  • [5] '하이랜더' 시리즈의 주인공 코너 맥클라우드 역을 맡았던 배우이다. 프랑스 배우인 탓에 크리스토퍼 랑베르라는 프랑스 발음으로 알려지기도 했으나 고향은 미국이며 프랑스계가 아닌 배우로 프랑스로 활동 중이다.
  • [6] 1989년 KBS에서 방영되었는데 그냥 라 붐으로 방영되었다. 라 붐 2가 라 붐보다 한국에서 훨씬 일찍 개봉되었는데 당시에는 라 붐이 개봉되지 않았었다.
  • [7] 당시 개런티 2억을 받았는데 말이 많았는데 참고로 당시 한국 영화 평균 제작비였기 때문이다. 더불어 당시 외국인 모델로 가장 시초로 일컫어지는 주윤발은 5천만원을 받았다고 한다. 강남의 30평짜리 아파트 한채 가격이 5천만원정도 하던 시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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