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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오군

last modified: 2014-06-24 16:05:48 by Contributors

束伍軍

조선 후기 속오법에 따라 편성된 군사 제도와 이를 토대로 창설된 군대의 명칭.

임진왜란은 조선 역사에 있어서 최초로 전면전, 총력전의 양상을 띤 전쟁이었고 조총같은 신무기와 새로운 전술이 등장한 전쟁이었다. 따라서 조선은 포수를 양성한 필요성을 느꼈고 전국적으로 군사조직을 재건하려 하였다.

이런 필요성에 따라 창설된 것이 중앙군에는 훈련도감, 지방군으로는 속오군이었다. 1594년 (선조 27년) 유성룡의 건의로 처음 창설되었고 진관체제가 재정비되면서 전국적인 편성이 이루어졌고, 정유재란 때 왜군을 저지하는데 효과를 발휘하였다.

각 지방의 주민은 대부분 속오군에 편성되었는데 이들은 농일치제에 따라 평시에는 농사와 훈련에 전념하다가 유사시 소집되어 국방에 동원되었는데 물질적 급여는 없었고 부분적으로 보인의 지급이 이루어졌다. 다시말해 전국의 남성을 사실상 예비군화 시켜놓고 국가의 월급은 없었다는 말. 속오군 제도 자체가 돈은 없는데 군대는 보유해야 하니 생긴 제도인만큼 월급을 준다는 것은 애초부터 논외의 일이었다.

겨울철 농한기에 속오군을 소집하여 무예훈련과 진법훈련을 시행하였고 이들을 이끄는 영장(營將)은 무관이 임명되었고 군사훈련에만 종사하였다. 이런 영장제도가 실시되면서 지방의 수령이 독점했던 행정권과 군사권이 일부 분리되었다. 수령은 속오군의 소집과 동원만을 전담하고 훈련과 실전 부분은 영장이 전담한 것이다.

그러나 이후 재정문제와 무관의 부족 등으로 전담영장제도가 폐지되면서 속오군의 훈련은 유명무실해졌고, 훈련하려고 모여도 양란 전처럼 훈련보다는 곽 수리 등 여러 잡일에 동원되는 모습을 보였다. 여기에 농민들의 경제적 문제와[1] 운영경비가 부족해짐에 따라 소집훈련이 거의 폐지되다시피 했고 영조 이후에는 속오군에 양인은 거의 빠져나가고 천인만이 남아 아예 국가 공식문서에조차 천예군(賤隷軍)[2]이라 기록될 정도가 되었다.

거기에 중앙군과 감영, 병영, 수영에서 다투어 군적 자원을 확보하려 하면서 이미 속오군에 편제된 사람들을 이중으로 편제하여 이중부담이 지워지고 점차 속오군은 제2의 군세처럼 되어 양인은 쌀 20두, 천인은 15두를 납부하고 군역을 면제받으려 하였다. 이로 인해 이인좌의 난이나 홍경래의 난 같은 대규모 반란을 맞았을 때 지방에서는 동원가능한 병력이 없어 초기에 진압하지 못하고 의병과 중앙군의 지원으로 난을 진압하여야 했다.

비슷한 것으로 능로군(能櫓軍)이란 것이 존재했다. 이들은 해리(海利)만을 담당했고, 1년에 한 번 점검사열이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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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농민들이 자기 스스로 먹거리와 활동경비를 가지고 와서 군복무를 하는 게 속오군이니, 자연히 농민이 기근 등으로 경비를 부담할 여력이 없는 상태가 되면 운영이 제대로 될 수가 없다.
  • [2] 해석하자면 천한(賤) 종(隷, 혹은 죄인)들의 군대라는 뜻.면제받지 못한 죄인. 예나 지금이나 군인은 참 서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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