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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인석

last modified: 2015-01-14 19:45:41 by Contribu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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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다시 볼 수 없을 현대캐피탈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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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심판되시겠다[1]

이름 송인석
생년월일 1978년 8월 14일
출신학교 대전중앙고등학교-서울시립대학교
포지션 레프트
신체조건 196cm , 90kg
소속팀 현대자동차서비스/천안 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2001~2011)
화성시청(2011~2013)

현대캐피탈의 리즈 시절을 이끈 멤버 중 한명으로 포지션은 레프트, 별명은 송스타였다. 김상기와 더불어 마지막으로 활동했던 서울시립대학교(서울특별시청) 출신의 배구 선수였다.

아마추어 시절

송인석은 대전중앙고등학교 1학년부터 배구를 시작했으며 포지션은 센터였다. 배구 명문인 대전 중앙고 소속이었지만 늦깎이였기 때문에 미완의 상태에서 고교를 졸업하고 한양대학교, 성균관대학교 등의 입학 제의는 오지 않아 1997년 서울시립대학교에 입학했다.

한때 1989년 대통령배 3차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고 삼용, 서남원, 이성희 등 한국의 1989년 유니버시아드 우승을 이끈 멤버를 배출하기도 한 서울시립대학교지만 창단 당시나 그 때나 스카웃에는 한계가 있어서 다른 학교가 다 스카웃하면 남아있는 선수들을 키우는 2진급 학교였다. 송인석도 그랬는데 당시 서울특별시청 배구단의 종옥 감독은 늦깎이 치고는 기본기가 갖춰져 발전 가능성이 높은데다 잠재성이 높은 송인석을 눈여겨보고 서울시립대학교 2학년 때부터 그를 레프트 공격수로 전향시켰다.

이것이 매우 성공적이었다. 위 언급하듯 고교 최고의 선수 스카웃은 불가능했기 때문에 항상 중요한 순간 거포 부재로 무너졌던 서울시립대학교는 196cm의 아마도 학교 역사상 최장신 날개 공격수인 송인석이 주포 역할을 하면서 어느정도 결정력을 갖추게 되었고 세터 동엽과 대각의 만능 레프트 승용이 활약해 주면서 실업 팀을 상대로도 선전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고, 특히 같은 시기 강만수 감독이 이끌던 현대캐피탈은 동엽의 현란한 토스웍과 송인석, 승용의 활약 때문에 시립대에게 엄청나게 고전했었다.

현대캐피탈 시절

현대캐피탈이 강만수 감독때 서울시청에 고전한 악연 때문인지 강만수 감독은 송인석과 정승용을 높이 평가했고 그 덕에 송인석은 2001년 2차 2순위로 현대캐피탈에 입단했다. 강만수 감독은 196cm의 장신에 서울시청의 토탈배구에 맞게 수비력도 어느정도 갖춘 만능 플레이어로 송인석을 높게 평가했다.

강만수 감독 시절에는 주포로써 기회를 얻었지만 송만덕 감독이 취임하자 모교 한양대 출신을 중용한 덕에 주전에서 밀려나게 된다. 송만덕 감독이 사임하고 김호철 감독이 취임했을 때 외국인 선수 시스템이 정착하여 송인석은 공격력을 중시한 김호철 감독의 팀 컬러에 맞게 숀 루니의 대각을 받치는 수비형 레프트 역할을 주문받았다. 불같은 김호철 감독과는 달리 조용한 타입인 송인석은 달라진 팀 컬러에 적응하는데 어려움을 겪긴 했지만 송인석과 오정록으로 수비안정에 성공하면서 숀 루니를 중심으로 한 현대캐피탈의 V리그 2연속 우승에 조연 역할을 충실히 했다.

2007~2008 시즌 숀 루니가 러시아 리그로 떠난뒤 제대로 대체자를 구하지못한 현캐는 용병이 없는 순수 국내 선수들로만 경기를 치르게 되었는데, 이때 송인석은 다시 박철우와 함께 좌우쌍포 역할을 맡게 된다. 처음에는 예상대로 고전했으나 특유의 집중력을 발휘하며 3위까지 올라오는 저력을 발휘했다. 시즌중 영입한 호드리구까지 복근부상으로 주저앉으면서 사실상 국내 선수로만 경기를 하게 된 07~08시즌에 송인석은 정규리그 전 경기에 출전하여 총 462득점(공격성공 403점, 서브에이스 22점, 블로킹 37점)을 올렸고 공격성공률도 47.92%를 기록하였다. 수비에서도 뛰어난 실력을 보여주며 리시브성공률 63.88%, 세트평균 1.67개의 디그를 성공하였다.

07~08시즌 본인 최고의 한해를 보냈지만, 08~09시즌은 개막 직전 연습경기에서 어깨부상을 당해 전력에서 이탈했고 어깨부상 이후 쭉 하락세를 타면서 이전과 같은 만능 공격수의 위력을 잃고 현캐팬들에게 심하게 까였다. 이 시절 현캐는 문성민이 가세했지만 외국인 선수에서 재미를 보진 못했고 오정록이 부상으로 은퇴한 이후 제대로 수비가 돌아가지 않았기 때문에 팀의 살림꾼 역할을 했던 송인석의 부진이 경기력 하락의 원인으로 지목되었던 것.

송인석은 2009년 2월 7일 천안 유관순체육관에서 열린 NH농협 08~09시즌 V-리그 수원 KEPCO 빅스톰과의 경기에서 역대 프로배구 통산 세 번째로 1,500점을 돌파하였지만 더 이상 팀의 중심은 아니었다. 결국 2010~2011 시즌 후 재계약에 실패하여 V리그를 떠나 실업 리그 팀 화성시청에서 잠시 활동한 뒤 현역 선수생활을 정리하고 KOVO 심판으로 전향했다.

기타

송인석의 별명인 송스타는 송인석이 팀의 중심으로 활약하던 05~06시즌 김호철 감독이 소극적인 성격의 송인석을 독려하기 위해 송스타라는 별명을 밀어주면서 자리잡았다. 원래는 무명인 서울시청때 2001년 유니버시아드 대표로 차출되었을때 후배 선수가 부른게 처음이었는데 본인은 부르지 말라고 했지만 김호철 감독이 송인석의 자신감을 키우기 위해 계속 밀어주면서 별명으로 굳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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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사진 좌측부터 前 현대-한전-대한항공 센터 신경수, 송인석, 前 KGC인삼공사 레프트 김은영, 前 대한항공 라이트 김민욱이다. 모두 2014년부터 심판 아카데미에 참가한 전직 선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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