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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진우(야구)

last modified: 2015-04-14 00:39:02 by Contribu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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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잡?

한화 이글스 영구결번
No.21

성구회
회원번호 기록 가입년도 비고
1 210승[1] 2006년 최초 창립멤버 3인

이름 송진우(宋津宇)
생년월일 1965년 2월 16일[2]
국적 대한민국
출신지 충청북도 증평군[3]
학력 세광고-동국대
포지션 투수
투타 좌투좌타
프로입단 1988년 드래프트 1위
소속팀 빙그레/한화 이글스(1989~2009)
지도자 경력 한화 이글스 투수코치(2011~2014)[4]

1999년 한국프로야구 플레이오프 MVP
유지현(LG 트윈스) 송진우(한화 이글스)
박석진(롯데 자이언츠)
정민태(현대 유니콘스)
심정수(두산 베어스)

2002년 한국프로야구 투수 골든글러브 수상자
신윤호(LG 트윈스) 송진우(한화 이글스) 정민태(현대 유니콘스)

빙그레 이글스 등번호 1번
이광길(1986~1988) 송진우(1989) 지화동(1990~1994)
빙그레/한화 이글스 등번호 21번
안성수 송진우(1990~2009) 영구결번

초대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 회장
선수협 결성 송진우(2000) 이호성(2001)

송진우 선배님 같은 분들에 대해 욕하는 사람들도 있다. 대부분 야구로 최고가 된 사람들에겐 적이 많더라.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선배님 같은 분들은 철저하게 야구를 잘하기 위해 모든 것을 바쳤다. 그 과정에서 당연히 서운해 하는 사람들도 생겼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야구 선수다. 야구 잘 하는 것이 먼저다. 스스로 참고 자제하며 대기록을 세운 선배님이다. 난 정말 송진우 선배를 존경한다. -한화 김태균이 한 프로그램의 인터뷰서 한 말

Contents

1. 소개
2. 아마추어 시절
3. 프로 시절
4. 지도자 시절
4.1. 2012 시즌
4.2. 2013 시즌
4.3. 2014 시즌
5. 해설가 시절
5.1. 부정투구 고백 논란
6. 2012년 한-일 레전드 매치
7. 기록
7.1. 연도별 주요 기록
7.2. 그가 쌓은 금자탑
7.2.1. 최고령 기록
7.2.2. 송진우가 한국 최초로 달성한 기록들
8. 기타

1.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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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 통산 최다승, 최다패[5][6] 최다 이닝, 최다 탈삼진 투수.
한국의 게일로드 페리사이 영
마운드의 교과서

한화 이글스 소속의 야구 선수. 현역 시절 등번호는 21번[7]. 한화 이글스 뿐만 아니라 한국프로야구의 살아있는 전설, 대인배 오브 대인배이며, 서클체인지업의 1인자이기도 하다.

한국프로야구 한정 유일의 투수 FA 성공사례

2011 시즌부터 한화 이글스 투수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으며, 2014 시즌 종료 후 팀을 나와 KBS N 스포츠 해설위원이 되었다.

2. 아마추어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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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광고시절부터 뛰어난 좌완투수로 주목받았고 2학년때 황금사자기에서 세광고의 첫우승을 일궈냈다. 그러나 3학년때 부상을 입은 상태에서 무리한 출전을 강행하여 준우승을 이끌었지만 동국대로 진학한 이후 3학년 때 까지 투수로는 그리 많은 경기를 뛰지 않았다. 오히려 야수로서 타격재능이 꽤 좋아서 코너 외야수나 중요한 상황에서 대타로 기용되기도 했다.[8] 야수로서 수비는 한국의 매덕스라 불리는 급. 기교파 투수로 변한후 공배합에 따라 다음의 수비위치를 정확하게 잡는다. 투수 직선타구, 투수 앞 땅볼, 번트 병살 처리는 역대 최고급. 끊임없는 노력으로 대학 4학년 때 재기에 성공.

3. 프로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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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에 출전시키기 위한 협회의 강제적인 유보로 인해 프로행이 1년 늦춰진 송진우는 1989년 빙그레 이글스에 입단한다. 그 이전인 1988년에 한국실업리그세일통상 야구단에 입단했다.[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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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단 첫 해부터 송진우는 자신의 기량을 증명한다. 첫 데뷔전을 완봉으로 장식하며 그 해 기록 방어율 2.81에 9승 10패 9세이브, 그리고 그 다음 해 사람들의 "2년차 징크스"를 보란듯이 뒤엎으면서 방어율 1.82에 11승 7패 27세이브를 기록했다. 데뷔 4년동안 50승을 거둬 매년 평균 10승 이상을 올리면서 자신의 능력을 보여 주었다.

1991년 한국시리즈 3차전에서는 8회 투아웃까지 퍼펙트로 막아냈으나, 대타 정회열이 때린 파울플라이를 잡지 못하고 결국 볼넷으로 살아나가면서 깨졌고, 이어 홍현우한테 안타를 맞고 노히트 노런 무산, 장채근한테 싹슬이 2루타를 맞으며 패전투수(...)가 되었다.

1992년에는 선발-마무리 할것없이 경기에 나가. 구원왕과 다승왕을 동시에 차지했으나, 당시 김영덕 감독이 이를 위해 지나친 밀어주기를 해서 본인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세간의 비난을 받기도 한다.[11] 그 해 골든 글러브는 염종석이 차지.

1997년을 기점으로 송진우는 통산 100승을 기록했지만 6승 12패 방어율 4.60으로 내리막을 걸었고,[12] 방어율이 4.79으로 치솟은 1998년에는 언론에선 은퇴를 거론하기도 했으며[13], 시즌이 끝나자 구단은 그를 애리조나 교육리그로 보냈을 정도다.[14] [15] 하지만 그 교육리그에서 서클체인지업[16]을 배우게 되는데 이를 바탕으로 기교파 스타일로 변화하게 되고[17], 1999년엔 가장 많은 이닝을 소화하면서 15승 5패 6세이브 평균자책점 4.00를 기록하며[18] 2선발로서 18승을 기록한 1선발 정민철, 14승을 기록한 3선발 이상목과 함께 한화의 우승을 이끈다.

그리고 이후 송진우의 서클체인지업은 역대 최고의 명품 서클체인지업으로 평가받으며, 원래 슬라이더가 주무기였던 송진우의 새로운 주무기가 된다.[19][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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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서클체인지업 그립

2000년 5월 18일 해태전에서 최고령 노히트노런을 기록했다..[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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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6월 3일, LG전에서 투수로서는 거의 있을 수 없는 끝내기 안타를 쳐냈다. 그것도 2001년 다승왕, 구원왕, 승률 1위를 기록한 신윤호에게 말이다. 역시 기록의 사나이다

2002 시즌 개막전을 완봉으로 장식하며 시작. 시즌 3승을 올린경기에서 당시 선동열이 가지고 있던 최다승기록 146승을 뛰어넘었고 5월 19일 삼성과의 경기에서 150승을 기록했다. 결국 이 해에 18승을 거두면서 최고령 다승왕 최다 이닝 투구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골든 글러브를 수상하였다.[23] 2004시즌 KIA와의 경기에서 만 37세 7개월로 최고령 완투승기록을 세웠고 2005시즌에는 만 39세6개월로 최고령 완봉기록을, 그리고 대망의 2006 시즌 8월 29일 개인통산 200승을 달성하면서 200승-100세이브를 동시에 달성, 일본프로야구 에나쓰 유타카에 이어 세계 두 번째로 200승 100세이브를 기록하였다. 3번째 달성은 존 스몰츠. 같은 해 9월 24일에는 최고령 선발승(40세 7개월 8일) 기록도 세웠다.[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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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2006년 한국시리즈 기간 중에 부상으로 시즌아웃된 이후 또 한 차례 부진을 겪게 되어 2007 시즌에는 주로 중간 계투요원으로 나와 2구원승을 거두는 데 그쳤고, 2008년에는 선발로 복귀하여 팀 타선의 지원을 받지 못하는 등 승운이 따르지 않아 6승에 그쳤으나 팀 내에서 류현진 다음으로 많은 이닝을 소화하는 등 꾸준히 활약했다. 2009년에는 중간계투로 다시 전환하여 4월 8일 두산 베어스 전에서 구원승을 올려 최고령 승리투수 기록을 다시 갱신했다.

2008년 6월 6일 대전구장에서 우리 히어로즈(현 넥센 히어로즈)를 상대로 선발 등판하여 8회 마지막 아웃을 남겨놓고 송지만 선수와 대치(송회장vs송집사). 이 대결을 삼진으로 장식하며 대망의 2000 탈삼진을 달성했으며, 3,000 이닝 등판이라는 또 다른 대기록을 4월 9일 두산전에서 이대수를 우익수 플라이로 잡아내며 달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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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8월 16일, 본인의 명성에 걸 맞는 피칭을 더 이상 할 수 없다고 판단, 팀 리빌딩에 맞춰 후배들에게 기회를 주고자 가족 그리고, 구단과의 상의를 통해 은퇴를 선언했다.[25] (그런데 재밌는 건 은퇴경기 당시 불펜피칭 자체는 한화 내 어지간한 다른 투수들보다 공 끝이 더 좋았다는 것(...). 몸 관리를 어떻게 한건지 짐작조차 가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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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경기는 2009년 9월 23일 LG 홈경기전에서 은퇴경기 겸 은퇴식을 가졌다. 또한 그의 등번호 21번도 영구결번으로 지정되었다. 21번이 영구결번으로 지정된것은 박철순 이래 두번째. 단 한 타자(박용근)만을 3구로 상대해 내야안타를 맞고[26] 그의 21년간의 프로야구 활약은 마무리되었다. 후에 박용근 자신은 투수앞 땅볼 치려고 했는데 그게 안타가 되었다고는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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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가십시오, 송 회장님. 그 동안 열심히 하셨습니다.

4. 지도자 시절

칰무원 2호기

2010년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코치 연수를 받았다. 근데 선수시절부터 한솥밥을 먹은 적 없던 이승엽과 처음으로 한솥밥을 먹게 되었다.(거기에 김현욱도 같이 끼어 들었다...) 앞으로 코치로 활동하게 될 그를 기대해보자.

2010년 연수 코치를 마친 뒤 플레이오프 3차전에서 조성민과 같이 잠실구장을 방문하였다. 오오 송회장!

코치연수를 마치고 돌아와서 2010년 12월 7일부로 한화 이글스의 투수코치로 임명되었다. 2군에 있다가 1군으로 복귀한 김혁민이 인터뷰를 하면서 2군 송진우 코치에 대해서 말하는데, 2군 선수들에게 한자를 가르치고 목표를 쓰게 하면서 후배(제자?)들의 마인드를 다잡고 있다고 한다. 참고로 김혁민은 실수로 목표를 쓴 종이를 숙소에 두고 왔는데 그 날 2시간동안 러닝만 했다고(...) 2군에서 올라온 김혁민이 바로 자리를 잡은걸 보면 호랑이 코치로 2군에서 후배들을 잘 양성하고 있는 중으로 보인다.[27]

김혁민에 이어서 신주영을 2군에서 올려보냈는데 이쪽도 준수한 불펜으로 자리를 잡아가는 수순으로 보이며 하나 둘 투수들을 자리잡게 만들고 있다.

괴물투수의 파츠 중 제구력 파츠와 서클체인지업 파츠를 붙여주었다

4.1. 2012 시즌

2012년 7월 6일, 한화 이글스의 1군 투수코치가 되었다. 1군 투수코치였던 정민철은 송진우가 담당했던 육성군(2군) 투수코치가 되었다. 즉, 두사람의 역할 교체.

그 다음날인 7월 7일, 8연패로 허덕이던 한화 이글스의 연패를 끊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 선발이 잘 뛰어도 불펜과 마무리가 말아먹어 패배를 기록하던 것을 하나하나가 신의 한수 같은 교체 타이밍으로 박찬호의 승리와 바티스타의 세이브를 동시에 챙겨주었다.

4.2. 2013 시즌

그러나 2013년 현재 팀의 선발로테이션과 불펜진이 아예 붕괴되고 혹사가 지속되자. 송진우의 대한 평가는 매우 안 좋다. (심지어 한화 이글스 갤러리에서 김응용, 김성한 다음으로 엄청 까이고 있으며, 그의 별명은 진우이다.) 한용덕 코치의 빈 자리와 함께 이대진이 초보 코치라 도움을 거의 못 받는 부분이 큰 것으로 보인다.

결국 7월 18일 자로 2군 투수코치로 내려가게 되었고, 그를 대신해 정민철 2군 투수코치가 1군에 올라왔다. 지난 시즌에 이어 이번 시즌에서도 서로 보직을 맞바꾸게 되었다.

4.3. 2014 시즌

올해에도 그다지 좋은 평가는 많이 받지 못했다. 그리고 10월 27일 한화는 송진우와 재계약을 하지 않기로 결정해 레전드는 그렇게 씁쓸하게 팀을 떠났다.

5. 해설가 시절

팀을 떠난 이후, 조성환과 함께 KBS N 스포츠 해설위원으로 합류했다.

5.1. 부정투구 고백 논란

2015년 4월 9일, 삼성과 롯데 경기 중계중에 한 발언이 문제가 되었다.
https://youtu.be/eCHgZ02Hmgk

(6회초 볼넷으로 출루한 손아섭이 배트 손잡이 부분에 테이핑을 한 것을 보고 송진우가 이것이 일종이 루틴이냐고 묻자 조성환이 타구의 비거리를 좀 더 늘리고 싶다는 생각에 했다고 답변한 이후)

송진우 : 뭐 저 같은 경우는 시합 들어가기 전에 항상 글러브를 거 바셀린으로다가 닦곤 했어요. 어 성적이 좋아서 그런지 계속 했었고. 바셀린으로 닦다 보니까 포수한테 공이 날아올때 공이 좀 끈적끈적해서 손에 그 달라붙는 느낌이 있었죠. 너무 좋았어요.


조성환 : 부정.. 부정 투구 아닙니까?

송진우 : 어, 일단 한번도 안걸렸고. 그 정도 갖고는 부정투구라는 생각은 사실 안해봤어요.

자기 자신은 적발되지 않았기에 부정투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했지만 항상, 달라붙는 느낌 등의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공에 의도적으로 변화를 주기 위해 바셀린을 발랐다고 보여지며, 이는 빼도박도 못할 부정투구이다. 제 2의 게일로드 페리가 될 기세 바세린송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

첨언하자면 원래 글러브를 바세린으로 닦는 것은 정상적인 행동이다.[28] 가죽이 거칠어진 부분에 바세린을 발라서 손질하는 것은 사회인 야구 등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일인데, 문제는 글러브 손질시 바세린을 듬뿍 발라놓는 게 아니라 천이나 휴지 등에 묻혀서 그걸로 글러브를 닦아주는 것이란데 있다. 그리고 닦은 뒤 바로 쓰는 게 아니라 통풍되는 곳에 일정 시간 보관해놓는다. 이렇게 정상적으로 글러브를 닦아줄 경우 바세린은 곧 마르고 끈적끈적함은 느낄래야 느낄 수가 없게 된다. 끈적끈적함을 느낄 정도라면 글러브 손질후 바세린을 제대로 닦아내지 않은 채 일부러 묻히고 나왔다는 말이 되고 이는 빼도박도 못할 부정투구가 맞다.

6. 2012년 한-일 레전드 매치


2012년 7월 20일, 한-일 레전드 매치에 9회말 마무리 투수로 등판. 아직도 제구가 되는 130이 넘는 공을 뿌리는 모습을 선보였다. 용덕매직도 그렇고, 한화 레전드들의 내구력이란 거 참... 그냥 현역 뛰시죠(...)...

7. 기록

7.1. 연도별 주요 기록

  • 투수 성적
역대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1989 빙그레 이글스 35 156⅔ 9 10 9
(3위)
- 0.474 2.81 116 7 93 97 57 49 1.302
1990 50
(2위)
128⅓ 11 7 27
(1위)
- 0.611 1.82
(2위)
80 2 54 102 29 26 1.044
1991 36 184⅓ 11 10 11 - 0.524 2.78 142 13 72 126 67 57 1.123
1992 48
(1위)
191⅓ 19
(1위)
8 17
(1위)
- 0.704
(5위)
3.25 157 17 101 130
(4위)
79 69 1.328
1993 25 72⅔ 7 7 8 - 0.500 3.72 64 8 35 53 40 30 1.321
1994 한화 이글스 33 133 9 10 10 - 0.474 3.92 119 10 64 90 76 58 1.338
1995 26 183 13 8 0 - 0.619 3.20 165 11 79 121 78 65 1.311
1996 31 213
(3위)
15 9 0 - 0.625 3.25 185 18 94 160
(4위)
80 77 1.263
1997 27 146⅔ 6 12 0 - 0.333 4.60 156 17 61 73 85 75 1.398
1998 24 114⅔ 6 10 0 - 0.375 4.79 125 19 46 72 66 61 1.465
1999 35 186⅔ 15
(5위)
5 6 - 0.750
(4위)
4.00 180 24 64 132 99 83 1.291
2000 28 135 13 2 4 1 0.867
(1위)
3.40
(5위)
121 19 61 105 60 51 1.311
2001 37 185⅓
(3위)
10 8 2 0 0.556 3.84 181 20 95 139
(3위)
99 79 1.441
2002 31 220
(1위)
18
(2위)
7 0 0 0.720
(5위)
2.99
(2위)
199 16 65 165
(3위)
82 73 1.150
2003 42 129⅔ 9 7 7 2 0.563 3.12 111 9 46 93 48 45 1.165
2004 28 172
(5위)
11 8 1 0 0.579 3.61 162 19 51 100 73 69 1.198
2005 23 127⅔ 11 7 0 0 0.611 3.81 126 13 49 88 61 54 1.316
2006 26 147⅓ 8 8 0 0 0.500 3.60 147 10 56 94 64 59 1.317
2007 42 35⅔ 2 2 1 10 0.500 4.54 34 5 11 29 19 18 1.234
2008 31 132⅔ 6 8 0 2 0.429 4.48 141 13 68 73 72 66 1.530
2009 14 7⅓ 1 0 0 2 1.000 7.36 7 2 7 6 7 6 1.909
KBO 통산(21시즌) 672 3003
(1위)
210
(1위)
153 103 17 0.579 3.51 2718 272 1272 2048
(1위)
1341 1170 1.290

  • 타자 성적
역대기록
년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삼진
1991 빙그레 이글스 1 1 0.000 0 0 0 0 0 0 0 1
1992 1 1 0.000 0 0 0 0 0 0 0 0
1994 한화 이글스 1 1 0.000 0 0 0 0 0 0 0 1
2001 2 1 1.000 1 0 0 0 1 0 0 0
통산(4시즌) 5 4 0.250 1 0 0 0 1 0 0 2

완투, 완봉기록
년도 완투 완봉
1989년 5완투 2완봉
(8위)
1991년 11완투
(4위)
1완봉
1992년 4완투 1완봉
(10위)
1994년 3완투 0완봉
1995년 7완투
(7위)
1완봉
1996년 5완투
(4위)
0완봉
1997년 5완투
(3위)
1완봉
(4위)
1998년 1완투 0완봉
1999년 8완투
(1위)
2완봉
(1위)
2000년 2완투
(6위)
1완봉
(1위)
2001년 1완투
(8위)
0완봉
2002년 8완투
(1위)
1완봉
(4위)
2003년 1완투
(8위)
0완봉
2004년 1완투
(5위)
0완봉
2005년 1완투
(5위)
1완봉
(2위)
2008년 1완투
(6위)
0완봉
통산 64완투
(7위)
11완봉

역대수상
년도 수상내용
2002년 골든글러브 투수부분 수상

7.2. 그가 쌓은 금자탑

송진우의 통산 기록들은 진짜 깨지기 힘든 대기록들이다. 200승도 힘든데, 200승 100세이브를 한데다가 3,000이닝은 불멸의 기록이 될 듯하다. 피칭 스타일을 바꿔가면서 이렇게 롱런한다는 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다. 그리고 피네스(제구력 중심)피처라고 해서 롱런하는 것도 아니다. 손민한이 부상으로 신음한 것이나 배영수가 구위를 잃고 나서 어중간한 피칭스타일 때문에 몇 년간 고생하는 걸 보면 더더욱. 통산 다승 2위인 정민철 역시 구위를 잃고 나서 고생하다가, 피칭 스타일을 바꿔 성공하는 듯 했지만 결국 롱런에 실패했다.[31]

한국프로야구에서 활동했던 좌완투수 중에서는 송진우가 100승을 처음으로 돌파했고, 그 다음으로 100승을 넘긴 선수는 장원삼이다.

그리고, 송진우의 기록들이 깨지기 힘든 또다른 이유는 이 기록을 위협할만한 A급 투수라면 대한민국에 남질 않고 미국이나 일본으로의 해외진출을 모색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당장 팀 후배였던 어떤 괴물 소년만 보더라도...

어찌보면 누적기록보다 훨씬 더 대단한 사실은, 송진우는 1980년대, 1990년대, 그리고 2000년대까지 최고수준의 투수로서 군림했다는 사실이다. 1980년대 프로야구의 자료화면을 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냉정하게말해 그 시절의 한국프로야구는 깡마른 아저씨들이 엉성한 자세로 운동하던 낮은 수준의 리그였다. 이미 요즘야구 수준의 인프라를 갖추었던 미국이나 일본의 1980년대와 비교가 불가능한 케이스인 것이다. 그 시절 데뷔했던 '대졸'에다가 '아마야구에서 1년꿀었던' 소모되기 쉽던 '투수'가심지어 혹사도 당했던 1990년대도 아니고 2000년대까지 우락부락한 용병들과약쟁이들과 겨루며 최 정상급 투수로 활약했다는것은 정말 믿기 힘든 사실이다.

7.2.1. 최고령 기록

무려 21시즌, 만 43세가 될때까지 현역 생활을 했기에 다수의 최고령 투수 기록을 보유중이다. 참고로 송진우는 호적상으로는 1966년 2월 16일 생으로 되어 있는데, 실제로는 1965년생이다.[32] 이 기록들은 호적상 나이를 기준으로 한다. 이 기록들도 깨기 힘든데 거기에 1년 더하면 더 어려워 진다.

이 기록에 근접한 선수로는 2013년 기준 최향남[33]류택현선수 밖에 없다. 둘다 1971년생. 다만 2014년 기준으로 최향남은 고양 원더스에 소속되어 있고, 류택현은 4월 3일에 1군 엔트리에서 빠진 상태라 기록 갱신은 힘들 것으로 보인다.

  • 최고령 경기출장 (43세 2개월 10일)[34], 2009년 4월26일 잠실 두산전
  • 최고령 홀드 (43세 1개월 26일), 2009년 4월11일 대전 롯데전
  • 최고령 구원승 (43세 1개월 23일), 2009년 4월8일 대전 두산전
  • 최고령 선발승 (42세 6개월 28일), 2008년 9월13일 문학 SK전
  • 최고령 완투승/완봉승 (39세 6개월 23일), 2005년 9월8일 문학 SK전
  • 최고령 노히트노런 (34세 3개월 2일), 2000년 5월18일 광주 해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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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2. 송진우가 한국 최초로 달성한 기록들

  • 150승[35]
  • 160승[36]
  • 170승[37]
  • 180승
  • 190승
  • 200승
  • 210승
  • 2000삼진
  • 3000이닝
  • 200승 - 100세이브 [38]
  • 다승 - 구원왕 동시 석권 (1992년) [39][40]

8. 기타

  • 별명은 송골매, 송회장님(초대 선수협 회장을 역임), 송덕스(송진우 + 메이저 리그 노장 투수 그레그 매덕스의 합성).

  • 아들이 두명 있는데 둘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야구 선수로 활동 중이다. 둘다 좌완투수. 유전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한 번은 아들을 보러갔을때 아들이 야구부에서 포수를 보고 있었다고 한다. 보통 도루저지에서의 불리함 때문에 좌투에게는 포수를 시키지 않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아들이 포수를 보고 있어서 감독에게 이유를 물어보니 홈에서 2루까지 송구가 가능한 사람이 아들밖에 없어서 시켰다고 하는 이야기. 역시 피는 못속이나보다. 장남 송우석이 2012년 드래프트에 참가하였으나 지명받지 못하였으며, 이후 한화에 신고선수로 입단하였다. 차남 송우현은 2015년 드래프트에서 6라운드에 넥센 히어로즈에 지명되었다.

  • 200승 혹은 300세이브, 2000안타를 기록해야 가입할 수 있는 한국판 명예의 전당인 성구회의 1호 회원. 양준혁, 전준호와 함께 창립 멤버다.

  • 비단 이런 성적으로뿐만 아니라, 선수권익보호를 위한 선수협 창설의 주역 중 한명으로 참여하여 현재의 선수협을 만들어 내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이후 긴급 구조 SOS의 PD는 송진우 코치가 선수로서 은퇴하기 전에 예전 선수협과 관련된 만남에 대한 글을 올리며 경의를 표했다. 회장님의 짜증

협상 테이블에서 입 다물고 앉아 있기만 해도 고액의 연봉이 보장될 그들이 왜 이렇게까지 나서게 되었을까. 저는 뭔가 엄숙한 발언 내지는 숨겨진 속사정을 기대하면서 선수협 회장님 송진우 선수에게 그 이유를 물었는데 송진우 회장님은 갑자기 짜증을 버럭 냈습니다.

"고액 연봉자들이 왜 이러느냐구요? 그 질문 백번도 더 듣겠네. 아니 당연히 우리가 총대를 메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게 그렇게 이해 안돼요? 연봉 천 만원 받고도 감사합니다 하는 애들이 이런 거 할 수 있겠어요? 우리한테도 지금 이렇게 대하는데 걔들이 나서 봐요. 어떻게 되나."

  • 반면 강병규가 트위터에 쓰는 선수협 관련 트윗들을 보면 양준혁에 의해 반 강제로 선수협 회장을 맡은 듯한 뉘앙스가 풍긴다. 전체적인 트윗 글을 유추해 보면 양준혁어용몸빵 정도로 쓰인 듯 하다. 진실은 저 너머에.
  • 깨끗하고 점잖은 이미지의 소유자이지만 2006년 한화vs현대전에서 안영명이 빈볼성 투구로 김동수 선수에게 싸대기를 맞아 벤치클리어링이 일어나자 불같이 뛰쳐나와 이단옆차기를 작렬해 벌금 100만원의 징계를 받은 적이 있다. 이는 원래 난투극이 벌어져도 신발에 박힌 스파이크 때문에 선수가 다칠 확률이 높아져서 발차기는 금기시하고 있기 때문[41](박찬호 또한 발차기 때문에 중징계와 역대 MLB 난투극 Best10에 올랐다. 다만 이 사건에는, 송회장님은 당일 선발투수가 아니었기 때문에 스파이크 달린 야구화가 아닌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덕분에 송진우는 이때 사건 딱 하나로 역대 프로야구 난투극 Best장면때마다 항상 등장한다(...). 여담이지만 이때 이단옆차기를 맞은 것은 김동수도 아니고 벤치 클리어링 말리러 나간 송지만(...). 게다가 송지만은 한화에 있다 현대로 트레이드되어 송회장과도 한솥밥을 먹은 사이였기 때문에 조금 억울했다고 한다. 고의로 그런 건 아닌데... 당시 송진우의 인터뷰는 이랬다.

"다른 데였으면 참았을 것이다. 그런데 주먹이 얼굴로 갔다. 어떤 언론에서는 나보고 품위 없다고 하던데, 후배가 얼굴에 주먹으로 맞고 있는데 가만 있는 것이 선배로서의 품위인지는 잘 모르겠다."

  • 2011년 7월 1일 오후 9시 부인상을 당했다.

  • '개마고원'이라는 한식집을 운영하고 있다. 한식집 이름은 온게임넷 스타리그 공식 맵인 개마고원에서 따왔다고 인터뷰에서 말했다. 그러나 현재는 없어졌다. 아무래도 고기집 경영이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인듯 하다. 가 본 사람들의 증언에 따르면 가격이 상당히 비쌌다고 한다. 다만 가격은 그 식당의 위치가 한 몫 한듯. 대전광역시의 손 꼽히는 부촌인 유성구 도룡동에 위치했었다[42].

  • 위에서도 나왔지만 의외로 스타리그를 자주 즐겨보는 스덕이라고 한다. 2009년 당시 인터뷰에서도 아발론 MSL 우승자인 김윤환에게 축하한다는 말까지 남겼을 정도로 즐겨본다고 한다.[43] 스타 실력도 꽤 되는지 한화 선수들이 인터뷰에서 스타크래프트 잘하는 사람으로 언급한 적도 있을 정도.

  • 2010년 10월 30일(천하무적 야구단 2010년 11월 20일 방영분) 뇌경색으로 투병 중인 KIA 타이거즈김동재 코치의 쾌유를 위한 구회 올스타와 천하무적 야구단의 자선 경기가 열렸는데, 일구회의 선수로 참가했다. 포지션은 당연히 투수였으며, 마지막 이닝인 7회초 7:7 동점 무사 3루의 위기상황에서 구원 등판하였다. 천무단은 은퇴한지 1년 밖에 안된 현역이나 다를바 없는 송진우 코치를 투입하는 것은 반칙이나 다름없다고 씨알도 안먹힐 항의를 하였지만, 항의는 기각되고 그대로 진행되었다. 역시나, 3타자를 땅볼, 삼진, 삼진으로 간단히 막으며 건재함을 과시하였다. 경기는 7회말 무사 만루 찬스에서 한대화 감독이 끝내기 안타를 치면서 8:7 로 일구회 올스타가 승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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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년 4월 10일, 마구마구2014 1주년 기념방송 예고대로 02 송진우(가명:박흥진)의 엘리트 카드가 업데이트되었다.[44]
  • 컴퓨터 마구마구에서도 엘리트가 추가됬는데 연도는19승에 17세이브를 거두면서 다승,구원왕을 동시석권한 92년도로 추가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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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유일한 다승기록 가입자
  • [2] 호적상으로는 1966년생이나 실제로는 1965년생
  • [3] 출생 당시에는 괴산군이었다.
  • [4] 2010년은 요미우리 자이언츠 코치연수기간.
  • [5] 사실 승수가 워낙 넘사벽인데다가 선발로 롱런하면서 매년 8-10패 이상 거두다보니 이렇게 된 것. 쉽게 말해 뛴 경기가 넘사벽급으로 많으니 단순히 숫자로 보면 패도 많은 것이다. 시즌 기록이라면 몰라도 통산 기록이라면 불명예 기록이라고 할건 아니다.
  • [6] 멀리 갈 것도 없이, 메이저리그 통산 최다승 투수인 사이 영은 동시에 메이저리그 통산 최다패 투수이고, 마찬가지로 일본프로야구 통산 최다승 투수인 가네다 마사이치또한 일본프로야구 통산 최다패 투수이다.
  • [7] 빙그레 입단 당시에는 1번을 달았다. 2년차이던 1990년부터 21번을 달고 은퇴할 때까지 바꾸지 않았다. 그 후로는 모두가 아는대로 영구결번.
  • [8] 야수로도 뛰었으면 대성했을 것이라는 게 중론. 대학야구에서 대타로 나올 때 홈런을 자주 기록했으며 프로에 와서도 대타로 자주 기용되기도 했다. 실제로도 송진우는 끝내기 안타를 기록한 적도 있다. 2001년 6월3일 LG전에서 9회말 7-7 동점 상황인 9회말 1사2, 3루에서 대타로 나서 당시 강력한 중간계투였던 신윤호를 상대로 우전 끝내기 안타를 때리는 깜짝쇼를 연출했다. 투수가 안타를 친 사례는 여러 번 있으나 끝내기 안타는 송진우가 최초이자 유일한 기록이다. 통산 8타수 4안타의 뛰어난 타격재능을 보였다.
  • [9] 세일통상의 오너는 재일교포로 당시 KBO의 제8구단으로 참여하는 것을 목표로 시험삼아 실업리그에 뛰어들었다. 당시 송진우를 비롯 대학야구 최고의 선수들을 영입하여 논란을 일으켰다. 하지만 세일통상 팀은 창단 4개월 만에 해체하게 된다. 야구단에 지나치게 돈을 쓴 것이 오너의 분노를 샀기 때문이라는 설이 유력하며, 그 직후 회사도 사라지고 말았다. 이 때문에 송진우와 해명(현 두산 베어스 코치)은 소속 팀이 없는 상태에서 올림픽에 출전하게 된다.
  • [10] 사실 프로 직행이나 다름 없었던 송진우가 실업팀에 입단하게 된것은 88올림픽에 출전하기 위해서 프로팀에 가지 못하고 1년 실업팀을 전전하게 된 것이었다. 82년 최동원, 이해창, 임호균, 김재박등과 같은 케이스. 당시에는 프로선수는 올림픽에 출전 할 수 없었다.
  • [11] 이로 인해 한희민과 18승이었던 이강철이 피해를 보았다. 송진우는 인터뷰에서 밀어주기는 나쁜 짓이다란 말을 남겼다.
  • [12] 선발과 마무리를 겸업하며 지나친 이닝을 소화한 후유증으로 구속과 구위가 꾸준히 줄어들었는데 150km에 육박하던 구속이 32세이던 97년에는 140km를 잘 넘기지 못했다. 누가 보기에도 완연한 쇠퇴기였다.
  • [13] 더군다나 이 해에 외국인 선수제도가 도입되면서 많은 외국인 타자가 들어왔는데 이들은 긴 리치를 활용해 슬라이더를 걷어내며 빠른공-슬라이더 조합의 투피치 들에게 특히 강했다. 더군다나 국내타자들 마저 외국인 타자에 자극을 받아 웨이트 트레이닝을 강화하며 타격기술을 향상시켜 1999년은 역대 최고의 타고투저로 남게된다.
  • [14] 애리조나 교육리그는 20대 초반의 선수들을 기본기 위주로 가르치며 실전감각을 쌓게 하는 곳인데, 참가선수 연령이 20대 중반을 잘 넘기지 않는다. 30대 선수에게 교육리그에 참가하라는 얘긴 굉장히 모욕적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오지발령 실제로 송진우는 그 때 은퇴를 심각하게 고려했었다고 한다.
  • [15] 박정진의 경우에도 2009년 방출대상에 올랐다가 한대화 감독이 부임하면서 기회를 얻었는데, 구단은 그를 애리조나 교육리그로 보내버렸다. 거기서 뭘 배워오라는 것보다는 루키들을 상대로 마지막 테스트를 해보려는 의미였던듯. 송진우나 박정진 모두 결과가 좋았던 점에서 최소한 정신 재무장 효과는 있는 것 같다.
  • [16] 당시 교육리그 의 한 순회 코치가 젊은 선수들에게는 일일이 지시하며 가르쳤는데, 송진우 나이를 물어보더니 이게 좋을 것 같다며 서클체인지업 그립만 가르쳐주고 훈련에 일체 간섭하지 않았다고 한다.
  • [17] 이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박찬호나 배영수의 경우에서처럼 제구도 필요없이 힘으로 던져대던 파워피쳐가 자신의 약해진 구위를 인정하고 노화를 받아들인다는 건 굉장히 힘든 일이다. 하지만 송진우는 단순히 기교파로 변신하는 정도에 그친 것이 아니라 당대 투수 중 최고의 제구력을 인정받기까지 했다. 하일성에 의하면 심판들도 겨울동안 쉬게 되면 스트라이크존에 대한 감각이 무뎌져서 각팀의 스프링캠프에 찾아가 감각을 익히곤 하는데 송진우의 공을 보면 스트라이크와 볼의 경계에 대한 감이 잡기 좋다고 했다. 그만큼 스트라이크존 끄트머리에서 공 반개씩 넣고 빼는 제구에 능수능란 했다는 얘기다.
  • [18] 평균자책점이 다소 높기는 했지만, 이 때는 역대 최강급의 타신투병 시즌이었다. 그걸 감안하면 매우 준수한 평균자책점이었다.
  • [19] 정작 송진우는 은퇴경기 해설에서 송진우를 구원해 등판한 류현진의 체인지업이 더 낫다고 평했다. 팔스윙의 균일함에서 류현진이 더 낫다고. 일본 진출 전의 구대성에게 가르쳐주어, 구대성의 주무기가 되기도 하고, 이것을 구대성은 류현진에게 전수하였다. 이 얼마나 훈훈한 계보인가
  • [20] 당시 언론에서는 송진우의 체인지업을 언급할 때마다 애리조나 교육리그를 들먹이곤 했었는데, 정작 송진우 본인은 한 인터뷰에서 자기는 교육리그에서 그립만 배웠을 뿐이고, 실제로 쓰는 방법은 제이미 모이어에게서 배웠다고 했다. 당시 제이미 모이어는 시애틀의 선발투수로 이따금 박찬호와 선발 맞대결을 펼치며 국내 TV에도 중계되곤 했었다. 송진우보다도 3살이나 더 많은 투수가 140이 안되는 구속에 서클체인지업을 활용하며 메이저리그 2선발로 맹활약하는 걸 TV로 보고 많은 것을 배웠다고 한다. TV만 보고도 그렇게 배울 거 같으면 류현진 던지는 걸 눈 앞에서 보고도 못배우는 한화 투수들은 도대체 뭐냐? 참고로 당시 시애틀 1선발은 랜디 존슨
  • [21] 송진우를 비롯해 크게 떨어지는 체인지업을 활용하는 외국인 투수들이 좋은 성적을 거두자, 수많은 국내투수들이 체인지업을 익히게 됐고 이는 2000년대 중반 투고타저가 극심해지는 주요 원인이 된다.
  • [22] 2000년도 첫 노히트 노런이자 2014년6월 24일 찰리 쉬렉이 5,150일만에 다시 노히트 노런을 기록할 때까지 KBO의 마지막 노히트 노런이었다. 다만, 국내 투수들 중에서는 여전히 마지막 노히트 노런.
  • [23] 남들은 보통 은퇴를 고려하는 36세에 220이닝을 던졌다는 것 자체가 이미 괴물이다. 게다가 노쇠화를 심하게 타는 투수라는 보직을 감안한다면 더더욱 놀라운 일...
  • [24] 최고령 선발승은 2008년 9월 13일까지 갱신되었다.
  • [25] 은퇴를 앞두고 박동희 기자와 인터뷰에서, 2군에 내려가 보름 정도 지냈을 때, 1군에 다시 못 올라갈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한다. 그리고 100일이 지나도 아무런 소식이 없어 결국 손을 들고 은퇴선언을 한 것이라 말했다.
  • [26] 투수 오른쪽 빠른 내야 땅볼이었다. 현역 시절 또 다른 내야수라 할 정도로 투수 수비의 일인자였던 송진우였다면 충분히 잡을 수도 있었으나, 아무래도 오랫만의 등판인데다가 나이가 나이인지라 공을 놓쳐버리고 내야안타를 허용하고 말았다. 여담으로 만약 국내 골든글러브가 수비만을 평가하는 상이었다면 그 상은 송진우가 현역시절 독차지했을 가능성이 크다. 간결한 투구 후 빠른 수비동작, 번트 수비에 맞선 정확하고 빠른 송구로 선행주자를 잡아내는 것은 그의 전매특허. 전문가들이 수비를 잘하는 투수를 논할 때 빠지지 않는게 송진우다. 이래저래 한국의 그렉 매덕스라는 닉네임이 잘 어울린다.
  • [27] 김혁민이 1군에 올라와 선발테스트를 받는다는 소식을 듣자 팬들은 몇년째 테스트만 하냐며 미덥지 않은 반응이었다. 하지만 지옥에서 돌아온 (최훈 카툰에서도 언급한) 김혁민을 보며 팬들은 감격... 그 이후로도 송진우가 올려보낸 2군 투수는 1군에 올라오자마자 활약하는 기적같은 모습을 보였고, 그들은 인터뷰에서 한결같이 송진우 코치에게 감사를 표현했다
  • [28] 글러브 외에도 소가죽 제품을 바세린으로 관리하는 것은 흔한 일이다.
  • [29] 사실 통산 최다승에 가려져서 그렇지 통산 최다패도 송진우의 몫이다. 이는 20년 동안 선수 생활을 꾸준히 지속했기에 쌓인 어쩔 수 없는 기록이라 보면 된다. 메이저리그 최다승 투수인 사이 영은 그와 동시에 최다패 투수이기도 하다.
  • [30] 최다패 2위인 김원형도 선수 생활을 근 20년 가까이 해서 그런 것도 있지만, 당시 최약체인 쌍방울 레이더스와 그 쌍방울 선수들을 인수한 SK 와이번스의 초창기를 지낸 탓도 크다.
  • [31] 다만, 미국 MLB에는 송진우 선수의 기록을 무색케할 괴물들이 넘쳐난다. 일단 전설 그 자체인 사이 영(7356이닝, 511승, 2803K)은 논외로 치더라도, 현시대의 괴물로 랜디 존슨(4135이닝, 303승, 4875K). 그렉 매덕스(5008이닝, 355승, 3371K), 로저 클레멘스(4916이닝, 354승, 4672K) 등이 버티고 있다. 거기에, 톰 글래빈(305승), 커트 실링, 페드로 마르티네즈, 마이크 무시나, 케빈 브라운, 제이미 모이어, 앤디 페팃 등등 200승 투수가 넘쳐난다. 참고로 MLB에는 300승 투수만 23명이 있다. 그러나 메이저리그도 과거에는 투수 굴려먹기가 심했다는 것과 양 리그간에 경기수 자체가 차이가 난다라는 것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메이저리그 자체가 1시즌 160게임 이상을 치르고, 1980년대엔 거의 사라졌지만 1970년대만 해도 1시즌에 40번 선발등판한 기록이 꽤 나오고, 사이 영의 시절에는 70번(...) 선발등판에 시즌 50승(...)을 기록한 것도 있다. 초창기, 그러니까 시카고 컵스가 우승하던 시절(...)로 더 올라가 보면 장명부의 막장 기록을 1.5배로 가볍게 능가하는 1시즌 600이닝 기록이 흔하게 나오기까지 한다. 이 기록은 모두 공식기록으로 취급받고 있다.그리고 그러거나 말거나 여기는 MLB가 아니다. 크보지
  • [32] 이 당시는 유아 사망이 워낙 흔했기에, 아이가 태어나더라도 1년 정도 경과를 보고 건강하다 싶으면 그제서야 호적에 올렸었다.
  • [33] 실제로 2012년에 최고령 세이브 기록을 경신하였고, 2013년에 최고령 승리투수 2위를 기록하였다.
  • [34] 투수 타자 모두 포함해서 최고령 기록
  • [35] 150승대의 투수론 이강철이 유일하다.
  • [36] 160승대의 투수론 정민철이 유일하다.
  • [37] 이젠 송진우 본인 말곤 170승 이상을 달성한 사람이 없다.(...)
  • [38] 메이저리그에선 존 스몰츠만이 달성한 대기록이다.
  • [39] 송진우 이외의 선수들 중에선 구대성(1996년, 한화), 신윤호(2001년, LG)만이 달성한 기록. 김영덕 감독의 밀어주기 논란이 있긴 하지만....
  • [40] 이 기록은 구원승과 세이브를 합쳐서 세이브포인트(SP)로 구원왕 타이틀을 결정했던 2003년도까지만 적용된다. 세이브만으로 최다세이브 수상자를 결정하는 2004년 부터는 다승-구원 동시 석권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 [41] 이 때 금기시 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발차기를 하였는지에 대해서는 한국교원대학교에서 강연을 할 때 밝힌 바가 있는데, 본인이 사람 얼굴에 손찌검을 하는 것을 매우 모욕적인 행동이며, 해서는 안 될 행동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너무 흥분을 해서였다고 한다. 당시 강연에서 이 에피소드를 예로 들며 나중에 선생님이 되셔서 절대로 아이들에게 손찌검은 하지 말라는 당부를 하였다. 본인은 차라리 빠따로 엉덩이 치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고(...)
  • [42] 물론 입지가 그 식당의 가격의 전부를 결정하지는 않지만.
  • [43] 정작 당사자인 김윤환은 맥심과의 인터뷰에서 본인은 야구에 관심이 없다고 했으며, 심지어 송진우를 보고 농구선수냐고 물어보기까지 했다(…).
  • [44] 다른 신규 엘리트는 95 전준호(가명:박현석), 06 권오준, 89 박정현(가명:김석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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