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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해

last modified: 2015-04-03 21:12:11 by Contributors

이름 송해(宋海). 본명은 송복희(宋福熙)
출생 1927년 4월 27일, 황해도 재령군
신체 160cm, 58kg, A형
학력 해주예술학교 성악과
데뷔 1955년 '창공악극단'
취미 운동
종교 불교


첫번째 짤에서...
너 임마 한대만 맞자!
차타고 전직한 사람이 뵙는분
으억 죄송합니다 형님!

2013년 영자의 전성시대 촬영 중.

현역으로 활동중인 대한민국의 모든 연예인 중 최고령자. 체 게바라보다 1년 먼저, 마릴린 먼로휴 헤프너,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보다 1년 후에 태어났다. 그리고 부시 1세지미 카터미국 대통령보다 겨우 3살 어리다.

6.25 전쟁 당시 대한민국 나이로 24세.

2015년 현재 89살의 현역 방송인. 구봉서 형님 오해해서 죄송합니다!

1927년 4월 27일생으로, 황해도 재령군 출신의 코미디언MC가수. 그간 1927년생으로 활동했으나 MBN의 영자의 전성시대 1화에서 제대로 된 나이를 밝혔다. 봉서야 미안하다 내가 형이다. 구봉서가 1945년 태평양가극단에서 악사생활로 연예계 데뷔를 해서 선배대우는 계속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힐링캠프 2014년 9월 15일 분에 출연해서 자신은 1927년생이 맞다고 인증했다. 영자의 전성시대 출연 때는 약간 착각한듯 하다. 봉서형님 죄송합니다.

본명은 송복희. 그것도 福복 자라고 한다. 고향은 황해도 재령군이며, 어릴적부터 끼많은 개구쟁이로 동네에서 유명하셨다고. 가족으론 엄하신 아버지 / 항상 가족들을 챙기시던 어머니 / 학생이였던 형 / 여동생이 있었다고 한다. 형은 자신이 해주예술학교에 입학할 즈음에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자신의 갈길을 가겠다고 집을 나갔다고 한다.

1.4 후퇴 이전 시기에 자경 활동을 위해 집을 떠나 나왔다. 여기서 자경단이란 우리가 흔히 접했던 치안대 내지는 구월산 유격대류의 비정규 군사집단이다. 그런데 이게 북한군의 진주로 피난길이 되고 말았다. 즉, 실향민으로 바닷길을 건너오면서 바다 해(海) 자를 예명으로 쓰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전쟁으로 월남한 후 통신병으로 복무했다고 한다. 참고로 놀러와 300회 특집에서도 통신병으로 복무하면서 1953년 휴전 메시지 타전에 관한 에피소드를 소개하기도 했다. 그때 통신병으로 근무하는 동안 쓰던 모스 부호를 아직까지도 알고 있다. 이게 더 ㅎㄷㄷ.

북한 해주음악전문학교 성악과를 전공한 바 있어 남한에서 그 전공을 살린 것으로 보인다. 본인의 회고에 따르면, 본래는 '창공악극단'이란 이름의 순회 악단에서 가수를 했는데, 악단 공연의 특성상 진행을 하면서 입담을 살려 분위기를 띄우는 역할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MC 경험을 쌓게 되었다고 한다.

현재 전국 노래자랑MC다. 한국의 현역 방송인중 최고령인 인물. 특히 어르신들에게 인기가 높다. 90대에 가까운 나이에도 '오빠'로 불리는 남자. 국민오빠. 자타칭 "일요일의 남자". 이외에 앨범도 내고 개인 콘서트를 여신적도 있을만큼 노래실력이 수준급.

코믹 프로그램을 할 때는 주로 고학력자를 풍자한 캐릭터를 주로 연기했다. 포지션은 츳코미. 당시 출연한 코믹 프로그램. 배삼룡.구봉서 선생도 보인다. [1]

말 그대로 전국 노래자랑이다보니 괴짜들도 한 두번씩 출연하기 마련인데, 가장 유명한 케이스로 2010년의 벌을 온 몸에 붙이고 나온 양봉업자가 있었다. 이때 송해가 보여준 대처능력은 관록이 무엇인지 보여주면서 동시에 대인배 인증. 저 방송 직후에 KBS 시청자 게시판은 대인배 송해를 찬양하는 글과 저런 사람을 왜 내보냈냐는 글이 반반이었다(...).

과거 동양방송의 라디오 생활정보 프로그램 '가로수를 누비며'의 진행을 맡으면서 운전자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누렸으며 이때 운전자들이 교통 통신원을 조직하여 그 제보를 활용한 시스템은 현재 각종 라디오 프로그램 및 각종 교통방송에서도 활용하고 있다. 다만 1987년(혹은 1974년) 외아들의 오토바이 교통사고 이후 그 충격으로 한동안 모든 방송 활동을 중단하면서 17년동안 맡아온 진행자 자리에서 내려오게 된다. 경향신문 1989년 8월 3일자 기사에 의하면 송해가 1989년 7월 1일에 '가로수를 누비며'의 진행을 그만뒀다고 했는데 이 사건 이후로 그만 둔 것으로 보인다.


한때 자살 시도도 했었으나 소나무 가지에 걸려서 살아났다고 한다. 지금도 마음의 상처가 아물지 않아서 아들이 죽은 장소인 한남대교(제3한강교)는 절대 가지 않는다고 한다. 이때 이미 당시 예순셋의 나이였다.

이후 마음을 추스리고 1988년부터 진행을 맡게 된 프로그램이 KBS 1TV의 전국 노래자랑. 전국노래자랑은 한국인들의 많은 사랑을 받아 일본, 미국, 평양(2003년)에서까지 공연했다. 하지만 평양 공연 때 북한에서 그의 한국전쟁 참전경력을 문제 삼아서 출입이 어려웠다. 앞서 나왔듯이 한국전쟁 당시 자경단 활동에 참여했다. 어느정도 활동을 했는지는 자세히 밝혀져 있지 않지만, 북한에서는 신천군 사건 관련하여 당시 자경단이나 치안대 활동을 매우 부정적으로 평가한다.

실책이자 흑역사가 하나 있다면, 1996년 11월 8일 MBC 뉴스데스크의 《카메라 출동》에서 송해가 경로잔치에 출연해 8만원짜리 건강보조식품을 만병통치약인 것처럼 속여 28만원에 사도록 부추겼다는 내용의 보도를 했고(카메라 출동 영상),#1 관련 연예인들과 함께 검찰에 소환되어 조사를 받은 후#2 같은 해 12월 7일 불구속 기소되었다.#3. 송해와 선배거나 동기급인 고 배삼룡이나 구봉서같은 이들도 비슷한 일을 당했다. 지난 2003년에 이런 일로 입건 비슷하게 되기도 했다. 이 사건은 MBC에서 보복성으로 보도를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언젠가는 밝혀질 일이었지만...)이상용 공금횡령 누명 사건 참고.

이전판 위키에서 이 사건과 더불어서 전국노래자랑 진행을 그만둔 사건과 연계를 지은 글을 썼는데, 전국노래자랑을 일시로 그만둔 것은 1994년 4월 5일이다. # 후임으로 김선동 KBS 아나운서가 맡았다. 그러나 송해 특유의 재치있는 전국노래자랑 진행에 추억을 갖고 있는 시청자들의 외면(시청률 하락) 및 항의로 6개월 만인 그 해 10월부터 진행자로 복귀하였다. # 그리고 약장수 사건은 위에서 서술한 것 처럼 1996년에 일어났다.

송해에게는 세 가지가 없다고 한다. 바로 자동차, 휴대 전화, 큐카드. 큐카드는 대본 등이 쓰여진 종이. 즉흥적으로 관객과 교감하기 위해서 안 쓴다고... 그리고 몇 년 전의 방송에서 촬영이 있는 곳의 전날에 미리 내려가서 그 동네 목욕탕에서 주민들과 함께 목욕하면서 교감을 가진다고 밝힌 바 있다. 여기에 하나 더 붙이면 안티팬, 인터넷 투표에서 '안티팬 가장 없는 가수'로, 조용필, 현숙과 함께 꼽혔다고 한다.

실향민이기 때문에 일생의 소원은 자신의 고향인 북한 땅의 황해도 해주에서 전국 노래자랑을 진행해보는 것이라 한다. 평양에 가면서 이북 땅을 밟기는 했으나 고향에는 아직도 못 돌아가고 있으니.

그의 전국 노래자랑 무대를 거쳐서 스타가 된 케이스가 좀 있다. 김혜연, 박상철, 홍석천, 소희 등등....

전국 노래자랑을 진행하다 나가사키에서 왔다는 일본인을 보고 "아, 그 핵 떨어진 곳?(...)" 드립을 쳐서 사람들을 충공깽에 빠뜨렸다. 으아아...

대단한 주당이라고 한다. 후배 연예인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게 '송해 선생님과의 술자리'라고 하니 말 다한 셈. 퀴즈쇼 사총사에서 자신의 주량이 소주 다섯잔이라고 했지만 故 김인협 단장이 소주 5병이라고 증언하였다. 7.5배 뻥튀기. 물론 더 적게 과장됐을 수도 있겠지만…. 예능 프로그램에서 한 번 이상은 언급하는게 술자리 이야기인데 하나같이 깨알이 넘치게 재미있다.

대표적인 사례들:
  • 제주도에서 친한 사이인 방송인 상벽(1947년생)과 술자리를 가졌는데 상벽이 먼저 술에 취해서 송해가 업고 숙소로 온 적도 있다.

  • 전국노래자랑을 녹화하기 전날에 해당 지역의 자치단체장이 마련한 술자리에서 술을 많이 권해 송해와 자치단체장 모두 술에 취해 다음날 녹화에 지장이 생길 뻔한 일도 있다고 한다. 이런 일이 자주 있었다고...

  • 전국노래자랑 악단장인 신재동이 녹화 전날에 제작진과 송해와 함께 술자리를 가졌는데 송해의 주량을 따라가지 못한 신재동은 숙소의 아무 방이나 들어가서 숨어버렸다. 그리고 송해는 마스터키를 들고 숙소의 방문 하나하나를 다 따가면서 신재동을 찾았다고 한다. 리얼 호러.


2011년 추석을 목표로 단독 콘서트를 준비해 성공리에 서울 공연을 마치고 10월까지 전국 순회공연을 진행했다. 생애 첫 콘서트이며 이름하여 '(나팔꽃 인생 60년) 송해 빅쇼', 당시 만 84세의 나이로 최고령 단독 콘서트부문 세계 기네스북 기록 등재를 추진했지만 등재되지는 못했다. 1922년 생인 크리스토퍼 리옹부터해서 1915년 엘리 웰라치, 1914년 만 로이드, 1908년 뇰 드 올리베리아, 1910년 이제 라이너 등 90대 이상 뮤지션은 그 외에도 적지 않다.

2010년대 들어서면서 CF에 간간히 출연하고 있는데, 강호동과 함께 인제약의 잇몸치료제인 잇몸튼튼 이가탄탄이가탄 CF를 찍었고, 2012년에는 기업은행 홍보대사에 위촉되어 출연하고 있다. 특히 기업은행 광고의 경우, 어르신들에게 '기업은행에 기업이 아닌 개인이 예금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드린 것만으로도 막대한 규모의 예금이 들어오고 있다고 하며, 직접적으로 송해 광고를 보고 찾아왔다는 사람들도 상당히 많다고 한다. 노인들 사이에 이 분의 힘이 얼마나 되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 여담이지만 같이 CF를 찍은 김유빈 어린이와의 나이 차는 80살이다. 김유빈 어린이가 2005년 생.


오래살면 이렇게 자신과 시대가 다른 사람과 파트너가 되는 일도 발생합니다.


참고로 전원주와 12살 차이다. 오래살면 이렇게 연하 연예인과 쉽게 파트너가 가능해집니다.


조선노동당 창건 기념식에 참가했다는 루머가 있다. 오른쪽은 이건희.

사실북한군 장관(인민무력부장)이었던 영춘 차수다. 참고로 김씨 3대 오른쪽에 서 있는 사람은 북한군 총참모장이었던 이영호 차수. 만 76세(1936년생)라니 송해보다 무려 11세 어린 셈. 다만 평양 방문시에도 영춘과 대면할 기회는 없었고, 말로만 닮은 사람이 있다는 말을 듣다가 승승장구에 출연했을 때 사진을 보고 닮았다는 것을 인정. '출세하는 얼굴인가 보다'라든가 '아우야!' 라든지 '왜 내가 있을 자리에 자네가 거기 있어?'라는 드립코멘트를 남겼다.


그리고 그 둘의 만남... 위 사진은 TV조선토크쇼 노코멘트 송해 편에서 등장했다.

2012년 9월 22일 전국 노래자랑 녹화 촬영 때 돌연 불참을 하였다. 이유는 바로 피로 누적. 그것도 녹화 때 리허설을 하다가 피로누적과 통증호소 등으로 바로 병원으로 이송되었다고 한다. 일각에서는 80대의 최고령인 점 때문에 와병설(臥病說)이 있는게 아니냐는 우려도 있었지만 다행히 건강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88세라는 최고령의 나이 때문에 건강에 대한 불안은 여전히 주목받을 일. 해당 녹화 진행은 전국 노래자랑의 단골 심사위원인 작곡가 이호섭 씨가 하였다. 그리고 추석특집 외국인 노래자랑에도 불참하여 허참씨가 진행하였다. 2012년 11월 18일에도 개인 사정으로 불참하고, 호섭씨가 녹화를 진행하였으나, 다음 주 진행에는 문제가 없다고 한다.

아무래도 고령인지라, 가끔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기라도 하면 철렁하는 가슴을 쓸어내린다는 네티즌들이 많다. 예시.

2013년 12월 8일 방송된 도전 1000곡류담과 함께 출연. 우승까지 하셨다!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에서 6.25 전쟁 당시 무전병으로 근무중 휴전선언 모스보호를 한 것이 알려졌다. 유튜브 보기.

석옥이 여사와의 사이에서 1남 2녀가 있었는데 사고로 외아들을 잃은 후 두 딸의 가족과 지금까지 한 동네에 살고 있다고 한다. 외손주가 세 명 있는데 큰 외손녀는 명문대를 졸업하고 현재 금융감독원에서 일하고 있다고. 관련 기사

대구광역시 달성군2016년 말까지 옥포면 기세리 옥연지 일대에 송해공원을 조성한다고 밝혔다. 원래 이 공원은 옥연저수지를 이용한 단순한 경관 공원으로 조성키로 했으나, 2011년 달성군 명예군민, 2012년 달성군 명예홍보대사 위촉 이력이 있는데다가, 석옥이 여사가 옥포면 기세리 출신인 점 등을 활용해 송해공원으로 탈바꿈하게 됐다고 한다. 달성군은 공원명칭 및 성명권, 초상권 사용에 대한 협의와 관련, 본인이 최종적인 동의를 해옴에 따라 공원 착공에 나서기로 했다. 송해공원에는 산책로를 비롯해 쉼터, 송해 흉상 등이 들어설 예정이며 방문객이 산책로를 거닐면 공원 곳곳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송해 음성을 들을 수 있다고 한다. 이밖에 사후엔 유품을 모은 '송해 기념관'을 짓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본인은 황해도 재령군 출신이지만 그의 부인인 석옥이 여사는 옥포면 기세리 출신이라고 한다. 기세리는 전체 40여 가구의 주민들 모두가 석씨인 충주 석씨 집성촌으로 알려져 있다. 달성군수에게 '사후에 부부가 처가 쪽에 묻히겠다.'는 뜻도 전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1983년 장인과 처남의 묘소가 있는 옥포면 기세리에 유택 차원의 526㎡ 규모 토지도 매입했다고 한다. 송해공원이 조성되면 이 곳에서 전국노래자랑 달성군 편을 유치하는 것을 추진하다고 한다.

불후의 명곡 전설을 노래하다 2015년 3월 19일 방영분에 황해도 대표로서 특별 출연하였다. 역대 최고령 게스트. 분위기는 말 그대로 폭발적. 우승은 하지 못했지만 정말 인상적인 무대를 보여주셨다. 부른 곡은 자신의 이야기를 닮은 유랑청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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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당시의 목소리와 지금 목소리가 거의 똑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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