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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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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ents

1.
2.
3.
4.
4.1. 역대 황제

1.

춘추시대에 존재하던 소국으로 장강 지류인 운수 유역에 자리잡은 후작의 작위를 받은 제후국이었다. (周) 왕실과는 인척관계이며 중원에 위치한 국가로 (楚)나라와 인접하였다.

초(楚)의 협박으로 주(周)왕실에 초(楚)나라의 작위를 올려줄 것을 요청하였지만 거절당하였고 초(楚)의 공격으로 멸망한다.

2.

춘추시대에 존재하던 소국으로 성은 규씨.

순 임금의 후손이 분봉받은 제후국으로 지금의 산동성 영양현 일대를 영토로 두고 있었으며 (魯)와는 가까운 위치에 있어 노(魯)의 공격으로 인해 노(魯)의 속국으로 전락하였다.

(齊)의 환공이 노(魯)를 회맹에 참여시켜 굴복하게 하기위해 공격하자 항복하였으며 이후 제(齊)로부터 노(魯)가 되찾아 다시 노(魯)의 부용국이 되었으며 이후의 기록은 찾아볼 수 없다.

3.

춘추시대에 존재하던 소국으로 지금의 호북성 수현 남쪽 일대에 위치하고 있었으며 (楚)의 문왕 때 초(楚)의 공격을 받아 속국이 되었다.

이후에 춘추 말기에 (吳)의 공격을 받아 순복했다고 하나 속국이 된 것인지 멸망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4.

중국의 역사
남북조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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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세기 후반(581년)의 영역

남북조시대 이후 세워진 첫 통일왕조. 황제의 민족적인 선조는 선비족으로 추정된다.[1][2] 문제 양견에 의해 건국되었다. 이후 문제의 둘째 아들인 양광이 뒤를 이어 양제에 즉위하였다. 이 과정에서 문제를 양광이 암살했다는 의혹도 있었다.

양제는 즉위 이후 대운하를 비롯한 수많은 토목사업을 벌였으며, 용선을 타고 지방으로 자주 유람을 다니는 등 꽤나 사치스러운 행태를 보였다. 또한 남북조시대 동안 무너진 주변국과의 질서 회복을 위해 돌궐과 서역에 위치한 토욕혼(土谷渾)을 정벌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양제는 얼어죽을 뻔했지만...

자꾸만 쌀쌀맞게 구는 고구려를 혼내주기 위해 동서를 막론하고 유사이래 최대규모로 일컬어지는 113만 병력을 동원해 고구려에 대한 원정을 시도한다. 이는 수 중심의 천하관 확립과 관계가 있다. 고구려는 고분고분하지 않았고 수 양제가 돌궐의 계민가한을 방문했을 때 고구려 사신을 목격함에 따라 고구려돌궐의 연계를 경계하게 된다.
하지만 을지문덕을 비롯한 고구려군의 맹렬한 저항과 내정불안으로 인해 3차례의 원정이 모두 실패로 돌아간다. 이 때문에 국가 재정은 파탄났고, 곳곳에서 반란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수양제는 강도로 피난가게 되고 결국 618년 우문화급의 반란군에 의해 양제가 효수되면서 멸망한다.

주변국에도 널리 퍼진 과거제도를 최초로 시행하는 등 남북조시대 종결의 상징적인 국가이지만 고구려 원정 이후의 안습한 최후 때문에 국내의 인식은 거의 '중간보스 1', '고구려는 이 덩치 큰 놈한테서 국가를 수호하였으나 국력은 약화되었다' 정도에 불과하다.


수나라때 세워진 운하.

그렇지만 수는 이후 중국역사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율령의 핵심인 3성6부제, 과거제의 원형이 만들어졌다. 수문제와 수양제가 굴착한 운하는 상업이 발달함에 따라 중국경제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수나라가 중요한 이유는 바로 중국의 재통일이었다. 후한 말기의 황건적의 난 이후로 삼국시대오호십육국시대, 남북조시대 등을 거치며 400년간 혼란의 연속이었던 중국 대륙을 평정하여 이후 당나라의 전성기에도 영향을 미쳤다.[3]

4.1. 역대 황제

대수 재위기간 묘호 시호 성명 연호 능호
- - 태조
(隋太祖)
무원황제
(武元皇帝)[4]
양충(楊忠) - - -
초대 581~604 고조
(高祖)
문황제
(文皇帝)
양견(楊堅) 개황(開皇, 581~600)
인수(仁壽, 600~604)
태릉(太陵)
2대 604~618 세조
(世祖)
명황제
(明皇帝), [5]
양광(楊廣) 대업(大業,605~618)[6] 양제릉(煬帝陵)
임시 618 진왕(秦王) 양호(楊浩) - -
- - 세종(世宗) 효성황제(孝成皇帝)[7] 양소(楊昭) - -
3대 617~618 - 공황제
(恭皇帝)
양유(楊侑)[8] 의녕(義寧,617~618) 장릉(莊陵)
임시 618~619 - 월왕(越王), 황태주(皇泰主)[9] (楊侗) 황태(皇泰, 618~6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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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modified 2015-04-11 20:5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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