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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단 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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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ɔ) United States Central Intelligence Agency from


(ɔ) from

국토 대부분이 사막과 사헬지역. 무진장 푸르른 남쪽과 대조된다

(ɔ) Vzb83 from


아랍어 : جمهورية السودان (줌후리야트 아스-수단)
영어 : Republic of the Sudan
독일어 : Der Sudan[1]

Contents

1. 개요
2. 수단의 역사
2.1. 전근대사
2.2. 근현대사
3. 독립 이후의 역사
4. 남수단 문제
4.1. 넓은 땅과 넘치는 자원
4.2. 한국과의 관계


1. 개요

아프리카 대륙에서 세번째로 넓은 나라이자, 세계에서 16번째로 넓은 나라.[2] 정식국명은 '수단 공화국'이다. 수단이란 아랍어로 흑인의 땅(بلاد السودان, bilād as-sūdān)이라는 의미이다. 수도는 하르툼(Khartoum, الخرطوم‎). 국토면적은 188만 6,068㎢. 2008년의 인구는 약 3000만 명이었다. 공용어는 아랍어이지만, 영국의 지배로 영어도 쓰이고 있다.

국제 테러조직인 알 카에다의 본거지 중 하나를 제공했다는 점, 기독교를 믿는 흑인 주민들에 대한 무차별 학살과 내전(대표적으로 르푸르 학살), 1989년 쿠데타로 집권 후 20년이 넘게 독재 중인 마르 알 바시르(عمر البشير) 대통령[3] 등으로 인해 안 좋은 쪽으로 명성이 높은 나라. 실제로 1991년 고국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추방당한 오사마 빈 라덴은 5년이나 수단에 거주하기도 했다(이후 아프가니스탄으로 넘어감). 다만 한국에서는 현재의 남수단 지역에서 활동한 이태석 신부의 활동으로 이미지가 조금 낫긴 하다.

북쪽에는 이집트리비아, 서쪽은 차드, 동쪽은 에리트레아에티오피아, 남쪽은 중앙아프리카공화국남 수단 공화국과 접경해 있다. 동북쪽의 일부 지역만 홍해에 접경해 있으며, 홍해 건너편에는 사우디아라비아가 있다.

나라를 관통해서 나일 강이 흐르며 수도 하르툼에서 남수단을 지나는 백나일 강과 에티오피아를 지나는 청나일 강이 하나로 합쳐진다. 누비아 사막(사하라 사막 동단)의 건조하고 황량한 땅에 주로 이슬람교를 믿는 아랍계 주민들이 거주한다.

기독교나 토착신앙을 믿는 남쪽의 흑인들(당시 수단 전체 면적과 인구의 1/4을 차지)이 남수단(South Sudan)을 건국할 때까지 내전과 학살이 끊이질 않았다. 뒷부분 참조.

2. 수단의 역사

  • 편의상 남수단 지역의 역사까지 포괄적으로 설명합니다.

2.1. 전근대사

수단은 이집트, 에티오피아와 함께 인류 역사에서도 매우 빠른 시기에 농경이 시작된 지역이었다. 기원전 3000년 경 말부터는 이집트와 교류의 흔적이 나타나며, 기원전 2500년 경부터는 집트 고왕국과 무역하여 이집트 벽화에 누비아 노예나 병사가 나타나는 한편 카르마(Karmah, 혹은 Kerma)라는 정체가 성장했으나, 집트 신왕국이 회복되면서 투트모세 1세 이후 이집트에 점령되었다. 이후 북부의 누비아 사막 지대에서 이집트의 행정 아래에서 존재하다가, 신왕국이 무너진 11세기 경 마침내 독립하여 기원전 9세기 경 쿠시(Kush) 왕조를 건설한다.

쿠시 왕조는 기원전 8 ~ 7세기 경 나파타(Nafata)를 수도로 하여 번영하면서 이집트를 점령하여 제 25왕조를 건설하며 이집트 문명을 이끌정도로 강성했으나, 현재의 시리아 지방을 놓고 아시리아와 분쟁을 벌이다가 패퇴하여 기원전 7세기 후반 경에 이집트 지역은 상실하게 된다. 이후 이집트에게 한 차례 침공을 당하고 블레미스(Blemmyes) 등의 유목 민족에게 압박을 받으면서 수도를 메로에(Meroe)로 옮긴다.

메로에의 쿠시 왕조는 이후 야금야금 북쪽으로 성장하며 무역으로 호황을 누리고 자신들의 피라미드를 건립하는 등의 유산을 남겼으나, 기원전 2 ~ 1세기 경 로마 제국과 충돌하면서 쇠퇴 국면으로 접어든다. 이후 1 ~ 2세기 경 이미 지리멸렬해진 수단 지역을 에티오피아의 악숨(Aksum) 왕조가 공격하면서, 350년 경 쿠시 왕국은 무너진다.

쿠시가 무너진 이후 그 자리에는 노바디아(Nobadia)와 마쿠라(Maquria[4])가 세워졌는데, 이들은 비잔티움 제국유스티니아누스 1세테오도라가 보낸 사절을 맞아들여 단성론 계통의 크리스트교로 개종한다. 7세기 중엽에는 마쿠라가 노바디아를 병합하는 한편, 마쿠라보다 남쪽 지방에서 알와/알로디아(Alwa/Alodia)가 대두하는데 알와에 대해서는 비교적 기록이 미약해 정확한 것을 알 수 없다. 다만 알와도 크리스트교를 받아들여 후에 남수단 지역의 종교에 영향을 미쳤고, 마쿠라와 이중 왕조 형태로 존속되던 기간이 있지 않았냐는 추정도 있다.

마쿠라는 이어 7세기 경 등장한 이슬람 세력의 침입을 받았으나, 바크트(Baqt)라는 평화 조약을 맺으면서 이슬람의 격풍에서 수 세기간 안전할 수 있었다. 이후 12세기 경까지 마쿠라는 비교적 안정된 상황에서 파티마 왕조 등의 이슬람과 교역하며 호황을 누렸으나, 아이유브 왕조맘루크 왕조 등 이슬람 세력의 공격이 재개되면서 혼란에 빠져든다. 잠시간 맘루크 왕조에게 점령되었던 마쿠라는 토착 세력이 결집하여 국가를 다시 회복했으나, 15세기 초반에 잦은 혼인을 통해 마쿠라를 잠식해온 아랍계 민족이 왕위를 계승하면서 수단 북부는 이집트 지역에 편입된다.

한편 남쪽에서도 알와가 분열하여 소국들이 난립하는 상황 속에서 16세기 초반 푼지(Funj) 세력에 의해 센나르(Sennar) 술탄국이 세워지고, 17세기 초반에는 수단 서부에 다르푸르(Darfur) 술탄국이 세워지면서 비교적 남쪽 지역도 이슬람교의 영향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센나르의 남쪽에서는 여전히 크리스트교 혹은 토착 유일신 신앙을 믿고 있던 쉴루크(Shilluk), 딩카(Dinka) 등의 부족이 센나르와 투쟁하면서 현재 수단의 구도가 대략적으로 완성된다. 17세기 수단 지역은 기병을 중점으로 한 군사력과 군주가 직접 관리하는 캐러밴 무역으로 흥성했지만, 18세기에 들어서면 내전으로 인해 두 술탄국 모두 국세가 위축되었다.

2.2. 근현대사

전근대에도 '이집트가 흥하면 수단이 위축되고, 수단이 흥하면 이집트가 위축된다'는 식의 구도가 이어졌던 것처럼, 19세기 수단의 구도를 대대적으로 바꿔놓은 것도 무함마드 알리 치하의 이집트였다. 무함마드 알리는 1821년 수단 지역으로 진격하여 센나르 술탄국을 멸망시키고 수단 지역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하였으며, 1874년에는 이집트 세력이 진입하여 르푸르 술탄국도 멸망시켰다.

그러나 다르푸르 세력은 이집트에 대한 항거를 계속하는 한편 영국과 손을 잡아 왕조를 복원했고, 나머지 수단 지역도 이슬람교의 구세자 신앙인 흐디 운동에 의해 1880년대 무함마드 아흐마드 알마디가 탈환하여 칼리프국을 세운다. 수단 본토에선 이스마일 파샤를 주축으로 하는 이슬람권 군주 지배를 더 받아들였기에 영국으로선 이집트 측의 지배를 내세웠지만 실패한 것. 심지어 영국은 고든 총독이 살해당하고 효수되는 굴욕까지 겪으며 하르툼을 내주어야 했다. 이렇게 이집트(그리고 그 뒤의 영국)의 지배는 종결되지만, 이미 1882년 이집트를 보호국화한 영국은 결국 원수를 갚기 위해 1890년대 남하하기 시작하고, 마흐디 신국은 한마디로 개박살이 난다.

한편으로 서아프리카의 광대한 지역을 식민지화한 프랑스가 동진을 시작했는데, 영국과 프랑스의 이해가 충돌한 1890년대 후반의 상황을 잘 알려주는 사건이 바로 파쇼다 사건(1898년)이었다. 프랑스가 급작스레 남부 수단의 쇼다에 국기를 게양한 이 사건은 식민지를 확대할 만큼 확대해 식민지에 대한 야욕이 열강 간의 충돌을 부를 지경이 된 당시 상황을 잘 보여주는 사건으로 알려져 있지만, 한편으로는 수단과 에티오피아의 근대사를 가르는 순간이기도 했다. 항목 참조.

한편 1880~1890년대 이 시기의 "수단 전쟁"의 역사를 다룬 책인『카르툼』이 2013년 12월 발매되었다. 흥미가 있다면 읽어 보는 것도 좋을 듯. 리뷰기사

3. 독립 이후의 역사

수단은 이집트가 1922년 독립하자 이집트-영국의 공동통치령이 되었으며, 1951년 나세르가 수단의 유일 종주국을 주장하다가 결국 나세르와 영국과의 협상으로 1956년에 자치령에서 독립하여 독립국이 되었다. 독립 후 랍연맹(AL)에 가맹하고 국제적으로 반(反)이스라엘 기치 하에 이집트 등과 협력했으나 1977년 이후 이집트가 친미 등으로 돌아서자 양국 관계는 금이 가기 시작, 현재까지도 수단은 이집트와 영토분쟁으로 갈등이 크다.[5]

독립 직후부터 남수단의 봉기로 1차 수단 내전(1955년~1972년)이 터졌다. 1969년 이후 15년간 이슬람 사회주의자인 파르 누메이리 대통령이 독재를 했고, 1983년 샤리아법을 꺼내들었다. 결국 그해 2차 내전이 터졌고, 1985년 쿠데타가 발생했다. 하지만 군부 세력 역시 수단인민해방군(SPLA)와 평화협상을 추구하면서도 그 진행에 소극적이었고, 북수단 지역의 샤리야법을 유지시켰다.

1989년, 껍데기라도 유지되던 사디크 알 마흐디 총리와 움마당 세력 연정이 쿠데타로 축출되고 이슬람 근본주의 정당인 NIF의 지원을 등에 업은 신 군부의 오마르 알 바시르 대령이 집권했다. 오마르 알 바시르는 노동조합, 정당, 기타 비종교 조직을 모두 폐지시키고 투석형, 손 절단 형 등의 샤리아 법을 강화시켰으며, 대통령수상 군 최고 사령관을 겸임했다. 2차 내전은 2005년까지 이어졌다.

미국에겐 악의 축 급으로 골칫거리였던 나라. 1990년대 후반,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 시절에 수단에 미군이 폭격을 할 정도로 반미 국가였다. 문제는 이 폭격으로 박살낸 곳이 남수단 근처의 제약공장으로 미국은 화학무기 공장이라고 주장하며 공습했지만 드러난 진실은 남수단 쪽의 유일한 제약공장으로 많은 약품 생산이 중단되었고 남수단에서 아이들이 주로 이 피해로 백신을 투여받지못해 사망하는 일이 벌어졌다.[6] 이후 수단은 미국이 무서워 직접적으로 적대하지는 못했다.

이 사건을 두고 미국에서도 말이 많았는데 윈스키와의 불륜으로 곤란해진 백악관이 관심을 돌리고자 의도적으로 저지른 짓이라는 소문이 많았고 헐리우드에선 이걸 토대로 더 독이라는 영화까지 만들어졌을 정도이다. 이런 국제적 비난 속에 미국은 제약품을 지원했는데 이거야말로 병주고 약주기.

4. 남수단 문제

북부의 사막-사헬 지대에 거주하는 아랍계 주민은 보다 안락한 거주지를 찾아 해마다 남쪽으로 이주하고 있으며, 이 때문에 수많은 충돌이 일어났으나 정권은 항상 아랍계 수중에 있었기 때문에 흑인들은 많은 차별과 박해를 받았다. 게다가 종교마저 달랐으니...

결국 1978년에는 북남끼리 따로 분리하려고 했다가, 남부 수단에서 석유 및 자원들이 가득 발견되면서 이것을 노린 북부에서 반대하는 바람에 분리문제도 백지화되었다...거기에 1983년에는 샤리아(이슬람법)가 국가 포괄적 헌법으로 공포되어 반발이 격화되어 종족 대결이 경화되었다. 이 때 시작된 2차 내전은 북부의 수단 정부가 반란군을 단단히 조져 독립할 생각은 꿈도 못꾸게 하려고 남부를 무자비하게 공격해 무려 250만(!) 명의 희생자를 낳았다.[7] 하지만 남부는 독립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고 피로 얼룩진 내전 끝에 결국 2011년 1월 9일부터 15일까지 남부 수단 독립 국민투표가 진행되었다.

결과는 2월 24일에 발표되었는데, 남부 수단 선거감시위원회에 따르면 2월 19일까지만 해도 219만표가 개표되어 분리독립을 위해서는 필요한 총 180만표를 넘어샀다. 무려 99%가 분리독립에 찬성한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7월 9일 독립했고, 국명은 '남수단 공화국(The Republic of South Sudan)'. 수단 정부도 남부 문제가 어지간히 골아팠던지 독립을 승인하고 말았다.

2003년 2월의 '다르푸르 학살' 때는 정부의 지원/묵인 하에 잔자위드(아랍인 민병대)가 흑인 주민들을 무차별 학살하여 국제적 논란을 빚었으며 UN의 제재도 받았다. 이 때 수단을 탈출한 난민들은 옆나라인 차드에 거주하고 있으며,[8] 생계는 매우 열악하지만 수단에 돌아갈 날은 요원하다. 안 그래도 차드도 못 사는 나라이며 이 나라도 기상이변으로 나날이 사막화가 늘어나기 때문에 차드까지 고생하고 있다. 문제는 이곳은 독립한 남수단이 아닌 별도의 지역이다!

수단은 아랍나라들 지원에 힘입어 제법 도시들도 갖추고 무장이나 여러가지로 앞선 반면, 남수단은 흑인들이 여러 부족으로 나뉘어지고 종교도 기독교 같은 종파끼리도 부족으로 나누면서 소규모적인 내전을 벌이기에 힘이 통합되지 못했다. 게다가 정부도 힘이 미약해 이 부족들을 제대로 통제를 못한다. 그래서 더더욱 북부 수단에게 밀리고 있다.[9]

하지만 수단도 남수단보단 덜하다고 해도 역시 내부적 갈등이 없진 않다. 같은 이슬람도 흑인과 아랍인들의 갈등이 커졌고 다르푸르 학살도 그 여파로 벌어진 일이다. 이것이 남수단을 완벽하게 제압하지 못한 원인도 된다.

세계에서 내전 당시 북부 수단을 비난하면서도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했던 게, 아랍 나라들이 지원하면서 외교적으로 맞섰기 때문이다. 자꾸만 북부 수단을 압박하자면 아랍 나라들은 그동안 아프리카에서 벌어진 수많은 학살 -이를테면 르완다 학살-을 조장한 유럽의 식민지 시절 문제부터 해결하라고 윽박지른다. 알 자지라 방송은 북부 수단 지도자인 오마르 알 바시르를 비난하면서도 그만 비난하면 안된다면서 그런 미국이니 유럽 열강들도 아프리카와 그 수단에서 벌인 일들을 생각하면 오마르와 다를 거 없다고 보도[10]했다. 이 와중에 알제리에 위치한 서사하라 임시정부 및 소말릴란드에서 남부 수단의 독립을 지지하고 있어서 새로운 갈등이 야기되고 있다.

하지만 갈등은 끊이지 않고 있다. 독립 직전인 5월 20일, 수단군(SAF)이 석유자원이 풍부한 아비에이 지역을 무력 점령하면서 다시 문젯거리가 되었다. 이판사판인지 SAF는 UN헬리콥터까지 공격을 받았다는 모양. 유엔이 다시 개입하여 수단군은 철수했다. 사실 이 지역은 남북수단의 국경지대인데다가 남수단 최대부족인 딩카족의 발상지인 동시에 수단 유목민들의 주요 건기 피난처라 답이 안나오는 상황이다. 유목민을 선거인으로 치면 독립이 안되고, 그렇다고 일년 내내사는 남수단 사람들로만 선거를 해도 문제가 생기는 상황.

4.1. 넓은 땅과 넘치는 자원

남겨진 수단의 미래도 밝지않다. 2010-2011 아랍권 민주화 운동의 영향으로 23년째 집권하는 오마르 알 바시르 대통령에 대한 반발도 크게 일어났고, 실제로 2011년 2월 여기서도 민중시위가 벌어졌지만, 지금은 상대적으로 잠잠한 상태가 되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정치상황이 불안하며 치안도 좋지못해 수단은 막장국가로 손꼽히고 있다.

남수단이 석유를 상당부분 가져갔지만, 땅이 넓다보니 아직도 자원은 풍부하고, 이것이 도리어 내전과 외침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뭐 남수단도 부족 및 자원 문제로 내전 원인이 되기에 서로 같은 문제로 고생 중이지만) 천연가스, , , 망간, 아연, , , 우라늄, 청동, 코발트, 니켈 같은 자원이 아주 풍부하며 나일강을 주축으로 면화생산이 활발해 수출도 많이 한다. , , , 사탕수수 같은 농작물 재배도 활발하여 음식물도 상당수 자급자족 되기에 안정만 찾으면 경제적으로 발전 가능성이 풍부한 나라이다. 단, 이건 농작물의 경우엔 사막 위주의 수단보다는 남수단이 낫다.

4.2. 한국과의 관계

한국과는 1977년에 수교하였으며 2011년 남수단이 공화국으로 분리독립한 이후에도 외교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1978년 무역경제협정, 1979년 문화협정, 1991년 항공협정 가서명을 체결하였다.

북한은 1969년에 수교하였으며 역시 남수단이 공화국으로 분리독립한 이후에도 외교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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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다른 국가들이 대부분 여성형 명사임에 반해 특이하게도 수단은 남성형 명사이다. 그밖에도 소수의 이슬람 국가들이 남성형 명사를 가지고 있다.
  • [2] 남수단 독립 전에는 국토면적이 250만 6,000㎢로 아프리카에서 가장 넓은 나라이자 세계에서 10번째로 넓은 나라였으나, 2011년 7월 9일 남 수단 공화국의 독립으로 아프리카에서 가장 넓은 나라는 알제리가 되었다. 또한 전세계에서도 알제리, 콩고민주공화국, 그린란드, 사우디아라비아, 멕시코, 인도네시아에 밀려 국토 면적 순위가 10위에서 16위로 떨어졌다.
  • [3] 게다가 다르푸르 학살로 국제 형사법원에 의해 인종학살 전범이 되었다.
  • [4] 혹은 동골라/둔쿨라(Dongola/Dunqula)라고도 한다. 동골라는 마쿠라의 중심지였다.
  • [5] 남수단을 이집트가 가장 빨리 인정한데는 그런 원인이 있다.
  • [6] 이슬람 강경파의 테러를 막고자 했다는 명분이지만 전혀 명분상 도움도 못 되었고 열악했던 남수단만 피해를 당했다. 북수단 쪽은 이미 여러 곳의 제약공장을 따로 두고 있으며 아랍 자본으로 필요한 의약품을 충분히 갖추고 있기에 행여나 미군이 공습해도 별다른 피해가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남수단에선 하나뿐인 제약공장인지라 약과 백신을 구할 유일한 곳이었다. 그 피해는...지금까지도 거론될 정도이다! 덕분에 당시 남수단 저항군 조직을 이끌던 존 가랑은 남수단이 독립한다면 미국에게 이 보상을 반드시 받겠다고 천주교 자원봉사단 의사에게 분노했을 정도이다. 정확한 아동 사망자는 파악도 안되었으나 최저 7천에서 최대 3만 정도 아이들이 사망했다고 추정된다. 더불어 일부에선 되려 클린턴이 아랍권 눈치를 보며 남수단을 테러범으로 몰아 저지른 짓이 아니냐는 반발까지 있었을 정도로 미국의 실패한 공격이다.
  • [7] 그것도 반란군보다 민간인들의 피해가 더 심했다.
  • [8] 1980년대에는 에티오피아에 거주했으나 공교롭게도 멩기스투 정권이 끝장나면서 수단 난민들까지 에티오피아 안에서 내전으로 대거 학살당했다...사회주의에 친소 정책을 취하여 미국이 눈엣가시처럼 여기던 멩기스투였으나 수단 난민들에겐 잘 대해주었다고 한다.
  • [9] 남부 수단에서 의료봉사를 하는 천주교 신부가 쓴 책을 보면 이슬람 흑인들이 치료받는 북부 수단 병원들은 시설도 좋고 의약품도 넉넉한 반면, 기독교인 흑인들은 기독교인 의료시설에서 부족들끼리 싸우면서 나중에는 병원까지도 다른 부족을 치료해주었다고 총질까지 하는 막장행태를 보였단다. 심지어 북부 수단군의 압도적인 폭격을 받아가면서도 흑인들끼리 다른 부족들이 총격전을 벌였을 지경.
  • [10] 이게 양비론이니 물타기라고 할 수도 없는게 지금도 아프리카 각지에서 프랑스,독일,영국같은 나라들이 옛 식민지이던 나라에서 경제 및 여러 분야에서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기에 현지인들이 이를 갈고 있다. 막장 독재자 로버트 무가베가 바로 이런 현지인들의 증오를 이용하여 독재정권 명분화를 내세우기도 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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