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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유

last modified: 2015-03-04 11:38:07 by Contributors

순유(荀攸, 157년 ~ 214년)는 후한 말기 군벌인 조조를 섬겼던 군사(軍師)로, (字)는 공달(公達)이다. 시호는 경후(敬侯).

같이 조조를 섬겼던 순욱의 7촌 조카로[1] 순담(荀曇)의 손자이고, 순이(荀彝)의 아들이자, 순집(荀緝), 순적(荀適)의 아버지이다.

삼국지연의에서는 조조의 연주목 시절 순욱과 같이 조조의 연주목 시절에 합류한 것으로 되어있지만, 실제 역사상으로는 하진이 정권을 잡았을때 원소 등에게 천거되어 황문시랑에 임명되나, 이후 동탁이 정권을 잡자 그 횡포에 분노하여 동탁을 암살할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사전에 발각되어 감옥에 투옥돼 사형이 결정되었다가, 사형이 집행되기 전에 동탁이 왕윤에게 암살당했기 때문에 풀려날 수 있었다. 이후 활동할 수 있는 곳을 찾아 자신이 원하던 촉군태수(蜀郡太守)가 되려 했으나, 유언이 이미 교통로를 끊어버렸기에 형주에 머물게 되었다. 그리고 헌제를 자신의 본거지로 맞이한 조조에게서 편지가 오고, 군사로써 그를 섬기게 되었다.

남양에 주둔한 장수를 공격할 때, "유표가 장수에게 식량 공급을 계속해주진 않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서로 사이가 멀어질테니, 출병을 늦춘다면 유표가 장수를 돕지 않을 것입니다" 라고 진언했는데, 이를 듣지않고 출병을 서두른 조조는 과연 가후의 군략 + 유표의 원군 콤보에 패퇴하고 만다 (...) 이후 퇴각전에서 복병을 준비해 1차 추격을 차단하는데, 가후가 패잔병을 이끌고 온 장수에게 2차 추격을 진언하고 결국 2차 추격전에서는 조조군이 큰 피해를 입고 만다.

아무튼 이후 여포 토벌, 관도대전조조의 중요한 전투 대부분에 군사로써 종군하여 조조에게 항상 적절한 조언을 하였다. 하비성을 수몰시킨 것은 그와 곽가가 의논하여 낸 계책이며, 관도 전투의 전초전인 백마 전투에서는 원소군의 기병대장 문추를 죽이는 공적을 세웠다. 그 때문에 조조의 최측근으로써 항상 곁에 있었고 그 신임이 특히 두터웠다고 한다.

적벽 전투에서도 순유는 적이 화공을 준비하려는 책략을 알아채고 이에 대한 대비책을 준비하라고 조언하였으나, 이미 압도적인 병력 차이로 밀어붙이고 있던 조조는 승리를 자신했기에 순유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후 사태는 순유가 걱정한 대로 화공에 의해 조조군이 대패하고 말았다.

214년 조조 토벌에 종군하던 시기 병으로 인해 쓰러져 얼마안가 진중(陣中)에서 사망했고, 경후(敬侯)라는 시호가 내려졌다. 조조는 순유에 대한 이야기를 할때마다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죽기 전 친구인 종요에게 자신의 경험을 담은 병법, 전략을 담은 책을 주었는데, 훗날 이 책은 분실되었다고 한다.

순유는 조조의 패업을 지탱했던 명군사였다. 조조의 최측근이면서도 사치를 부리는 일도 없었고, 언제나 겸손하고 친절하여 친구가 많았다고 한다. 특히 종요와는 절친하여 순유가 죽을 때, 남겨진 아이들의 뒷바라지를 종요에게 맡기겠다고 유언하였다. 허나 두 아들 순집, 순적이 요절하여 순유의 집안은 위상이 추락하고 만다. 훗날 순유의 손자 순표(荀彪)[2]가 성인이 된 후 다시 순유의 가문을 부흥시켰다.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에서는 최후가 조금 달리 표현되었는데, 214년 조조가 위왕(魏王)에 오르는것을 반대한 것이 조조의 노여움을 사서 순유는 얼마안가 충격으로 병사했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정사(正史)에서는 조조가 왕이 되는것을 찬성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다.[3]

순유는 그가 해놓은 업적에 비해서 저평가를 받는 편이다. 7촌 아저씨 순욱의 공이 워낙 크므로 책사 중 부동의 1위이기는 하지만, 순유는 군략부분에서 최고의 공적을 쌓았음에도[4] 조조의 다른 개성있는 군사들인 가후, 곽가, 순욱 등에게 밀리는 듯한 인상이 강하다.(...)지못미 그러나 실제 기록을 볼 때 조조군 진영 안에서 순유의 공을 능가할 만한 참모는 순욱 밖에 없다. 조조군 참모들의 공적을 매긴다면 부동의 1위인 순욱 다음 가는 위치에 있는 인물이다. 대중들의 인식에 있어 순욱도 본래 공적에 비해서 존재감이 낮은 편이지만 그래도 나름 대략적인 이미지는 있는데, 순유는 가후, 곽가에게 밀리고 존재감도 적고(...)진짜 안습이다..
순욱의 아들 순찬은 순유가 신중하고 눈에 띄지 않게 행동하므로 도가의 사상에 의거해 '아버지 순욱보다 순유가 더 훌륭하다'는 발언을 한 적이 있는데, 이를 볼 때 실제로 그다지 눈에 띄는 언행을 하는 타입은 아니였던 것 같다.

미디어 믹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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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가족 관계만 놓고 봤을때는 조카였지만 나이는 순욱보다 6살 많았다. 이들과 비슷한 관계로는 후기 오나라의 손량&손준이 있다. 대신 이쪽은 나이 차가 순욱&순유의 4배인 24살(...)이다.
  • [2] 순유의 두 아들 순집, 순적 중에 누구의 아들인지는 모른다.
  • [3] 사실, 실제 역사상의 입지와 정황 상 전자보다 후자가 훨씬 확률이 높다. 일단 순욱처럼 숙청당했다는 기록도 전혀 없고, 조조의 헌제 옹립 시점부터 병사할 때까지 활약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 [4] 순욱의 군략이 순유에 비해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단지 순욱이 맡은 내치가 워낙 중요했기에 전장에 직접 많이 나서지 않았을 뿐이다. 실제로 조조는 전장에 나가서도 중요한 일을 결정하기 전에 편지로 순욱의 조언을 구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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