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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항전차

last modified: 2015-04-12 16:31:07 by Contributors

Contents

1. 기본 개념
2. 등장
3. 안습의 개발사
3.1. A9, A10
3.2. 크리스티형 전차 A13 시리즈
3.3. 순항전차 Mk.VI (A15) 크루세이더
3.4. 순항전차 Mk.VII(A24) 카발리어
3.5. 순항전차 Mk.VIII(A27L) 센토어
3.6. 순항전차 Mk.VIII(A27M) 크롬웰
3.7. 순항전차 (A30) 챌린저
3.8. 순항전차 (A34) 코메트
3.9. 최후의 순항전차, A41 센추리온
4. 영연방군
4.1. 캐나다: 램 순항전차
4.2. 오스트레일리아의 센티넬 순항전차
5. 이야기거리
6. 다른 나라의 유사한 모델

MBT이전의 전차분류
체급별 전차
경전차 중(中)전차 중(重)전차 초중전차
기타 전차 분류 순항전차 보병전차

제2차 세계대전기의 영국군 기갑장비
전차경전차테트라크, 비커스 Mk. E
순항전차크루세이더, 크롬웰, 챌린저, 코멧
보병전차마틸다 I / II, 발렌타인, 처칠
랜드리스 전차M3 스튜어트, M3 리 / 그랜트, M4 셔먼(파이어플라이), 17pdr SP M10 아킬레스
시험 차량TOG1, TOG2*, A39 토터스, A38 발라이언트, A33 엑셀시어
대전차 자주포아처, AEC Mk I 건 캐리어
퍼니전차공병전차, 교량전차, 구난전차, 지뢰제거전차, 화염방사전차
자주포 섹스턴, M7 프리스트, 비숍
장갑차 캥거루 APC, 라핀, 브렌건 캐리어, 임러 장갑차, 벤트리 장갑차, AEC 장갑차, 이 장갑차, 버 장갑차, 버릿
정찰 차량 임러 딩고, 버 정찰차, 버 LRC, 리스 LRC

1. 기본 개념

전차의 한 갈래. 영국군의 전차 운용체계의 하나로, 보병과 함께 움직이며 화력 지원을 하는 종래의 전차와는 달리, 적 전선을 돌파하거나 우회하면서 중심부를 타격 섬멸하며 퇴각하는 적을 추격하는 개념으로, 전간기에 등장하여 제2차 세계대전에 활약했다. 활약은 무슨

일단 전간기 서방 열강국가들이 전차의 운용법에 고심했던 흔적이라고 볼 수 있다. 즉, 보병전차에 상대되는 개념이며, 전통적인 보병 중심의 전술 체계에서 탈피하여 과거 기병이 수행했던 임무를 계승했다고 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당시 기준으로 고속성능이 요구되었으며, 대신에 장갑 방어력은 극초기 모델의 경우 총탄과 포탄의 파편 정도를 견딜 수준에 지나지 않을 정도로 경시되었다. 따라서 이름이 무색하게도 초기형 순항전차는 경전차보다 한단계 위 정도의 능력을 가진다.

2. 등장

전간기 동안 세계최고의 전차 개발, 생산, 수출국의 위치를 차지한 영국은 1차대전식의 육상전함을 탈피한 여러 종류의 전차들을 개발하였으며, 점차적으로 전차의 성능이 향상되면서 미래의 전차는 기존의 전차들처럼 참호를 돌파하고 보병을 지원하는 육상전함 내지는 이동 토치카의 역할을 벗어나 보다 새롭고 다양한 역할이 가능할 것이라는 발상이 나타나게 된다.

이러한 이론은 풀러, 호바트, 리델 하트등에 의해 점차적으로 완성되어 갔으며, 영국 육군내에서 전차의 운용을 놓고 종래의 보병 지원용 이동 토치카 주의와 새로운 고속전차의 이론이 충돌하면서 결국 영국의 차기 전차 개발은 보병전차와 순항전차로 이원화 되기에 이른다. 이에 따라서 1936년 최초의 순항전차 Mk.1(A9)이 등장한다.

3. 안습의 개발사

그러나 순항전차의 개발은 초기부터 난항을 거듭하게 된다.

3.1. A9, A10

(ɔ) King nothing from


A9, 즉 순항전차 Mk.1은 외양부터 리벳접합에 기관총탑이 있는 구식이며, 현가장치는 신뢰성은 좋지만 순항전차용으로 쓰이기에는 반응속도가 느렸다. 게다가 상용 버스 엔진을 그대로 가져다 쓴 엔진은 출력이 부족했다. 덕분에 최초의 순항전차로서는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40km/h의 최고 속력을 기록했다.

가장 큰 문제점은 A9의 장갑이 최대 13mm였다는 것이다. 게다가 많은 부분은 고작 6~7mm의 장갑이라 사실상 양철조각이나 다름없었다. 덕분에 20mm 기관포를 장비한 2호 전차도 운이 좋으면 A9을 격파할 수 있었다. 그리고 독일군 보병이 주력으로 쓰던 37mm 대전차포 Pak 36에게도 손쉽게 격파당했다.

게다가 장갑이 빈약하면 화력으로 적이 공격하기 전에 선제공격해서 제압하는 방법을 쓰기도 어려웠다. 일단 앞서 말했듯이 순항전차치고는 속도가 그렇게 좋지도 않은데다가 주포인 2파운더는 동급의 전차포중에서 관통력이 높았지만, 고폭탄이 없어서 보병 및 비장갑목표물에 대한 공격능력이 제로에 가까웠으며, 부무장인 기관총의 경우, 기관총 자체는 준수하지만 기관총탑에 제대로 된 배기시설이 없어서 조금만 사격을 지속하면 화약연기로 인해 사수가 호흡곤란이 올 지경이었으니 사실상 무용지물에 가까웠다.[1]

더욱 한심한 것은 A9을 개발한 비커즈 사에서 보병전차랍시고 개발했던 A10이었다.

(ɔ) from


보병전차의 개발을 의뢰받자, A9에서 기관총탑을 떼고 장갑을 좀 더 달아서 30mm를 채운 다음 보병전차랍시고 내놓은 것. 급히 전력을 확대하느라 호구스러웠던 당시의 영국 육군조차도 보병전차라기에는 장갑이 부실하고[2], 속력만큼은 확실하게 보병전차 수준으로 떨어진[3] 이 고물을 제식 보병전차로 채용하는 것을 거부했고, 결국 "중순항전차" 하는 이름으로 소수 한정 채용하는데 그쳤다.

3.2. 크리스티형 전차 A13 시리즈

그런데 A9과 A10이 모습을 드러낸 1936년 영국의 기갑부대 총감 마텔 소장은 BT시리즈의 우수한 기동성에 주목하고 그 근원인 크리스티형 전차를 도입할 것을 강력하게 건의한다. 그에 따라 크리스티 현가장치를 기반으로 한 신형 순항전차 Mk.3(A13)가 1937년 모습을 드러낸다.

(ɔ) from


크리스티 현가장치를 적용하고 보다 강력한 엔진을 장착한 A13은 A9보다 우수한 최고 속력과 기동력을 보유했지만, 역시 13mm라는 최대장갑수치로는 방어력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아 증가 장갑이 추가된 A13 Mk.2, 순항전차 Mk.4가 등장한다.

(ɔ) Palmer F E (Lieut); No 1 Army Film & Photographic Unit. from


Cruiser Mk IV는 무늬만 순항전차였던(혹은 무늬만 보병전차였던?) A10과 동급의 방어력을 갖추고도 최고속력 48km/h를 기록해 나름 우수한 성능의 순항전차로서 기대를 받았다.

그러나 프랑스 전역과 북아프리카, 그리스 등지에 투입된 4종의 순항전차들은 어느 전선에서도 독일군에게 특별한 인상을 주지 못했다. 경장갑인 A9, A13뿐 아니라 나름 중장갑이라던 A10, A13 MK.II 역시 독일군의 전차와 대전차포에 손쉽게 파괴되었고, 오히려 둔중하지만 중장갑인 보병전차 마틸다II쪽이 독일군에게 진짜 위협이 되었다.

이 때문에 영국은 차기로 개발중이던 순항전차 A14와 A16 계획을 취소했다. 막 개발을 시작한 참이라 완성까지 시간이 오래 걸려 전차의 공백이 생길 것을 우려했고, 또한 완성되더라도 예상 성능이 전장 상황의 요구에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평가가 나왔기 때문이다. 그 대신 A13을 바탕으로 개량모델, A13 Mk.III를 등장시키는데, 이 전차, 즉 커버넌터 순항전차의 개발은 2차대전 영국 육군 최악의 결정이 된다.

(ɔ) Official photographer from


일단 개발 주체가 이제까지 A13 시리즈를 개발, 생산한 너필드사가 아닌 LMS(London, Midland and Scottish Railway)사였는데, 이 회사는 기본적으로 철도회사 였다. 물론 초기 전차들이 기관차 개발사 등에서 개발된 경우는 많고, LMS가 중장비를 개발, 생산한 경험이 있는 기업체이기는 했지만, 문제는 전차 개발 및 생산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영국 육군은 이 전차를 시제차는 커녕 설계도가 채 완성되기도 전에 양산 계획부터 잡아버렸다. 결국 커버넌터는 용적이 큰 엔진을 무리하게 낮은 차체에 끼워 맞추기 위해 라디에이터와 냉각용 흡기구를 엔진 근처가 아닌 운전석 옆에 장착하는 병크 설계로 과열과 고장이 잦고 조종수가 냉각장치에서 발생한 증기로 화상을 입는 등 문제가 속출했다.

전쟁성은 개량으로서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판단하여 계속 생산을 강행했으나 1943년 1월까지 1,711대까지 생산했으면서도 결국 여러가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생산 전량이 훈련용으로 돌려지는 쾌거(?)를 이룩하여 가뜩이나 주름투성이인 영국 전시경제에 빚만 늘려주는 꼴이 되었다. 그래서 영국군 소속으로 손실된 커버넌터는 단 1량으로, 캔터베리 대폭격 때 독일 폭격기의 폭탄을 맞은 것이며, 그나마 전차 부족이던 오스트레일리아군이 훈련용으로 수령한 커버넌터 중 극소수를 일본군 상대로 사용한게 실전의 전부이다.

3.3. 순항전차 Mk.VI (A15) 크루세이더

영국군의 순항전차중 최초로 그나마 볼만한 전차였지만, 커버넌터를 상당부분 답습한 차량으로 잔고장과 과열이 밥먹듯이 일어나는 등 영 좋지 않았다. 자세한 것은 해당 항목 참조.

3.4. 순항전차 Mk.VII(A24) 카발리어

크루세이더가 아직 채 완성되지 않았던 1940년말, 6파운드포 탑재를 전제로 한 신형 순항전차계획이 수립되었다. 결국 이전까지의 전차는 상황에 쫒겼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요구 사항은 6파운드포 또는 그 이상의 주포를 운용할 수 있는 3인승 포탑, 76mm이상의 장갑, 보다 강력한 엔진, 그리고 24t 이내의 중량이었다. 이에 따라 처칠을 만든 벅스홀은 처칠 보병전차의 축소형인 A23을, 크루세이더 전차를 만든 너필드측은 크루세이더의 확대형인 A24를 내놓는다. 너필드의 A24는 당시 롤스로이스에서 개발중이던 멀린엔진의 전차용 엔진을 탑재할 예정이었기 때문에, 복잡하고 비효율적인 처칠의 엔진과 구동장치와 현가장치를 그대로 옮겨온 A23에 비해 높은 평가를 받았고, 따라서 차기 순항전차의 승자는 너필드의 A24가 되었다.

그러나, 당시는 아직 영국 본토 항공전(Battle of Briton)이 한창이던 상황이라, 롤스로이스는 멀린의 증산에 바빠 멀린 개조 전차 엔진의 개발은 지지부진했고, 너필드쪽은 자기들이 라이센스권을 가진 리버티 엔진을 더 많이 만들기를 바라고 있었기 때문에, 실제 완성된 A24, 순항전차 MK VII "크롬웰 전차"는 크루세이더 전차의 크리스티 현수장치를 기초로 만드어진 차체에 리버티 엔진을 장비한 채로 완성되었다.

1942년 완성된 시제차량은 영국 육군의 요구대로 6파운드포와 보다 강화된 리버티 엔진, 그리고 76mm 두께의 전면 장갑을 갖추었지만, 중량은 예정보다 늘어나 26.9t이 되었다.

그러나, 크루세이더의 것을 개량한 신형 전차의 현가장치는 늘어난 중량을 견디지 못하여 고장이 속출했고, 리버티 엔진의 출력 부족으로 속력도 영국 육군의 순항전차 요구치에 못미치는 도로상 39km/h의 저속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완성된 미티어 엔진을 장착하자, 이 전차의 구동장치와 부조화를 일으키기만 했다.

결국 생산된 모든 A24는 진정한 크롬웰 전차가 등장한 후에 카발리어로 개명당하고 훈련용으로 돌려지거나 포병의 관측차량으로만 사용되었다.

3.5. 순항전차 Mk.VIII(A27L) 센토어

너필드의 A24가 결국 실패작으로 판명되자, 신형 순항 전차를 위한 개량은 당시 영국 최대의 자동차 회사였던 레이랜드에게로 넘어간다. 레이랜드는 크루세이더의 것과 다르지 않았던 카발리어의 현수장치와 변속기를 신형으로 교체하였고, 엔진 구획도 재설계하여 보다 미티어 엔진과 조화가 된 신형 차체를 내놓는다.

다만, 아직 개발 단계였던 멀린의 차량형이 실패할 것을 우려한 영국 육군 전차 위원회는 [4] 때문에 신형 차체에 리버티 엔진형과 멀린의 차량형인 미티어 엔진형을 각각 만들도록 했고, 때문에 A27의 리버티 엔진형, 즉 A27L(liverty) "크롬웰" 이 등장한다.

그러나, 리버티 엔진은 출력이 부족했기 때문에 이제는 순항전차로 명함을 내밀기에는 부끄러운 43km/h의 속력만을 기록했으며 1942년 말까지 950대가 생산되었다.

진짜 크롬웰(A27M(meteor))의 본격적인 등장이후 크롬웰에서 센토어로 개명된(A24는 카발리어로 개명) A27L은 94mm곡사포를 장착한 CS 모델이 노르망디 상륙 작전에 투입되어 크롬웰과 함게 실전을 치렀다.


  • 노르망디 상륙 버전의 센토어 CS(close-support). 포탑 외부의 눈금은 상륙정에 실려있는 상태에서 정장이 목측으로 관측한 목표를 전차장에게 지시하여 화력 지원하기 편하도록 그려놓은 것이다.

그러나 이 역시 크롬웰 94mm포 버전이 등장하면서 교체되었다.

일부 센토어는 미티어 엔진으로 엔진을 바꾸고 크롬웰로 개명하여 진짜 크롬웰과 혼용되기도 했다.

3.6. 순항전차 Mk.VIII(A27M) 크롬웰

영국전차답지 않게 잔고장이 없고 고속성능을 자랑하며, 공수주가 조화를 이루었으나, 이미 비슷한 성능의 M4 셔먼이 대량조달되던 상태였다. 해당 항목 참조.

3.7. 순항전차 (A30) 챌린저

크롬웰의 공격능력 향상을 위해 17파운더를 부착했으나, 대실패. 해당항목 참조.

3.8. 순항전차 (A34) 코메트


제원
중량 33t
전장 6.55m
전폭 3.04m
전고 2.67m
승무원 5명
장갑 최대 102mm
주무장 77mm HV
부무장 7.92mm Besa MG 2정
엔진 Rolls-Royce Meteor Mark III V12 (600hp)
출력비 18 hp/t
현가장치 크리스티 현가장치
항속거리 250km
속도 51km

크롬웰 전차는 순항전차의 본 개념에 어울리게 고속이었고, 장갑도 종래의 순항전차와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튼튼하게 만들어졌으며, 신뢰성과 내구성도 우수한 카베난터, 크루세이더와는 다르다, 카베난터, 크루세이더와는 전차 였으나, 대전 후기에 사용하기에는 개발 계획부터 6파운드포를 상정한 것이라, 이후 75mm포로 강화 되었음에도 여전히 화력이 부족했다.[5] 또한 크롬웰을 화력지원하기로 계획되었던 챌린저는 사실상 실패작을 억지로 운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대량생산되지 않았다.

챌린저의 실패로 문제의 근원인 거대한 17파운드포를 크롬웰급 전차로는 장비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직시한 영국 육군은 화력이 감소하더라도 좀더 작고 가벼운 포를 개발하게 된다. 이에 따라서 17파운더의 약화 버전인 77 mm HV포가 개발되었다. 이를 탑재하는 신형 포탑과 크롬웰 후기형 차체를 기반으로 코메트 순항전차가 개발되었다.

화력에서는 4호 전차 후기형, 셔먼 76mm포 탑재형, T-34/85과 대등하거나 그 이상이었으며, 종합성능에서도 4호 후기형을 능가하고 셔먼, T-34후기 모델과 동급 이상이었다. 그러나, 전쟁 말기에 투입이 시작되어 활약의 기회는 적었고, 좀더 빨리 투입 되었더라도 티거판터에 비해서는 화력과 방어력에서 불리했기 때문에 높은 전과를 올리기는 힘들었으리라고 추정된다.

전후에도 생산되어 코메트 순항전차의 총 생산 댓수는 1,186대에 달한다. 종전 후에는 핀란드 등으로 수출 되기도 했다.

월드 오브 탱크에서는 영국 전차 트리의 7티어 중형전차로 등장하며 고삐풀린 망아지 같던 크롬웰의 미칠듯한속력이 어느정도 줄어든 대신 수직안정기가 달리기 때문에 준수한 기동간 사격능력을 보여주며 또한 동티어 최상급의 dpm을 자랑한다. 덕분에 높지만은 않은 관통을 가지고도 한번 측후면을 잡으면 고티어 전차도 순삭할 정도.

3.9. 최후의 순항전차, A41 센추리온

순항전차이기는 하지만 사실상 보병전차와의 통합형인 MBT에 해당된다. 성능좋고 공수주가 조화를 이루었으며, 17파운더 포를 제대로 장착하여 화력도 상당했지만... 이미 종전 직전이라 제2차 세계대전에는 제대로 참가하지 못했다. 자세한 것은 해당 항목 참조.

4. 영연방군

4.1. 캐나다: 램 순항전차

(ɔ) Canadian government employee from


전투 중량:12.3톤
주무장:6파운더
장갑:최대 87mm
주행거리:232km
최고 속도:40km

이름의 어원은 숫양을 뜻하는 ram에서 따왔다.

캐나다는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초부터 영국제 발렌타인이나 처칠 등을 생산할 정도로 우수한 공업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다만, 그 생산량 대부분은 영국군에서 쓰거나 소련에 공여되었기 때문에 실제 캐나다군은 자국내에서 생산된 차량의 극히 일부만을 배치받았다.

그러나, 대전이 격화/장기화되면서 캐나다는 단지 영국의 무기 공장의 역할뿐 아니라 병력까지 유럽에 투입하게 되었고, 이 때문에 캐나다군은 충분한 전차를 확보할 필요가 생겼다. 이때 캐나다는 이왕 전차를 확보하는 김에 직접 만들 결심을 하게 된다. 1940년 여름, 실제로 2개 기갑사단의 창설이 결정되면서 약 1000대 정도의 전차 수요가 발생하자 캐나다측은 미제 M3 리 중전차의 차체를 기반으로 한 자국산 전차의 개발을 시작한다.

미제 M3가 주포인 75mm포를 차체에 부착하여 사격 범위가 제한되는 것을 본 캐나다군은 이런 삽질을 하지 않기 위해, 당시 영국에서 개발된 우수한(개발당시 기준으로) 6파운더를 장비한 회전식 포탑이 달린 전차를 개발하기로 결정하고 1941년 1월 본격적인 개발에 착수한다.

그러나, 팀킬달인이었던 영국의 수상 윈스턴 처칠의 오판으로 영국군은 전차 주포를 2파운드포로 통일하고, 전차 탑재용 6파운드포의 생산을 중지시켰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램의 최초모델은 주포로 2파운더를 사용하게 된다. 다만, 이후에 6파운드포를 사용할 것을 예정하고 충분히 여유를 두고 포탑과 포가를 설계해두었다.

1941년 6월, 시제전차가 등장했고, 연말까지 2파운드포를 탑재한 순항전차 램 MK I이 50대 양산되지만, 당시 캐나다의 철강 기술로는 충분한 강도의 고경도강 생산이 어려웠기 때문에 차체와 포탑의 장갑부는 미국 기업에 생산을 의뢰하여야 했다. 그리고 영국군이(실제로는 처칠이) 실전경험을 통해 2파운드포로는 전투력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6파운드포 생산을 재개함에 따라, 6파운드포로 강화된 램 MK II의 생산이 시작되고, 1943년 7월까지 1900대 가량 생산된다.

램 순항전차는 캐나다 육군의 주력 전차로 제4, 제5캐나다 기갑사단과 함께 영국에 도착하여, 캐나다군의 훈련기간 동안 사용되었다. 하지만 캐나다군이 노르망디에 투입되기 전에 더 우수한(그리고 미국에서 대량으로 원조한) 셔먼이 도입되고, 캐나다 본국에서 그리즐리라는 이름으로 셔먼의 라이센스 생산을 시작하면서 결국 캐나다 군의 전차는 셔먼으로 대체되었기 때문에 실전에 투입되지는 않았다. 램 자체의 성능은 썩 나쁘지 않았지만 셔먼의 본의아닌 팀킬(?)로 실전에 배치될 기회를 놓친 셈이다.
잉여화된 램은 최초의 전차 개조 APC램-캥거루로 개조되거나 섹스턴 자주포로 개조되어 실전에 투입되었다. 원판이 평작인 관계로 개조된 차량들도 썩 나쁘지 않은 평가를 받았다고 한다.

4.2. 오스트레일리아의 센티넬 순항전차

5. 이야기거리

대전 중반, 특히 처칠 초기형이 삽질을 시작한 무렵부터 영국군 내에서는 보병전차의 폐지가 논의되었으며, 이후 차기 전차의 개발방향은 순항전차로 선회한다. 결국 영국 최초의 주력전차센츄리온은 순항전차 개발계획에서 출발했던 것.

그러나 실전에서 순항전차는 크롬웰 전차의 등장 때까지 안습의 길을 걸었다. 초기 모델들은 방어력이 너무나 약해서 적진돌파가 거의 불가능했으며, 카베난터는 급한 개발과정으로 인해 실전에 쓸 수 없는 전차였고, 크루세이더 전차는 그나마 카베난터보다는 나았지만 역시 문제투성이 물건이었다. 크롬웰 전차는 그나마 쓸만한 차량이었지만, 고속성능을 제외하면 셔먼과 큰 차이도 없었다.

결국 보병전차가 운용계획이 구닥다리였다면, 순항전차쪽은 운용계획은 현대적이었지만 군의 요구 성능과 조달 계획부터 글러먹었던 것.

그리고 대전 이후 영국군의 주력전차는 순항전차의 후계를 표방[6]하면서도 당대 최대의 장갑방어력과 당대 최저의 기동력을 보유하고 있다. 이거 혹시....

6. 다른 나라의 유사한 모델

  • 프랑스군보병전차의 상대적 개념으로 기병전차를 운용했다. 소뮤아 S-35 참조.

  • 소련군은 프랑스군과 비슷하게 경전차를 보병전차로 운용하면서 영국군 초기 순항전차와 여러모로 유사한 쾌속전차를 운용했다. BT 전차 참조.

  • 미군의 중(中)전차들은 영국에 공여되는 대로 순항전차를 운용하는 기갑부대로 돌려졌다. 그리고 성능면에서 대부분의 순항전차보다 전반적으로 더 나았다. 안습.

  • 독일군3호 전차 역시 기동성을 중시했다는 점에서 순항전차와 맥을 같이한다. 하지만, 영국의 순항전차들이 고전을 면치 못했던 것과 달리,3호 전차적절한 화력과 적절한 방어력을 갖추어 스펙 성능에서 우월한 적 전차들도 충분히 상대할 수 있었다. 다만 이건 독일군의 우수한 전차병의 노력이 상당부분 작용한 것이며, 결국 이들도 판터같은 신형전차를 개발함과 동시에 88mm 대공포를 비롯한 대전차포에 많이 의지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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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이 기관총탑은 모양만 조금 바뀌어서 크루세이더 전차에도 탑재되었으나, 역시 동일한 문제가 발생해서 철거당하고 만다.
  • [2] 당시 영국 육군의 요구 사항은 전면장갑 60mm였으나 A10은 그 절반의 장갑만 붙여 놓고 보병전차라고 우겼다.
  • [3] 도로에서의 속력이 25km/h 정도...
  • [4] 리버티 엔진의 생산권을 가진 너필드의 뒷 공작도 있었다는 설이 있다.
  • [5] 관통력만 비교하면 75mm포가 오히려 6파운드 포보다 떨어진다는 평가도 있다.
  • [6] 별도의 이름이 붙은 순항전차는 모두 C로 시작하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데, 영국의 각세대 주력전차도 그 이름이 C로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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