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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록스

last modified: 2015-02-17 00:22:10 by Contributors

The Strokes


보컬 줄리안 카사블랑카스
기타 앨버트 해먼드 주니어
기타 닉 발렌시
드럼 파브리치오 모레티
베이스 니콜라이 프레이처

스트록스는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내 음악관을 형성시킨 밴드다.
알렉스 터너

훤칠한 키와 멋진 외모, 그리고 뛰어난 패션센스 덕에 록밴드 치고는 여성팬들이 무척 많은 편이며 그들로부터 각각 줄스, 닉, 알비김경식, 니콜라이, 팹 등의 애칭으로 불린다. 1998년에 데뷔한 포스트 펑크 리바이벌 밴드. 포스트 펑크 리바이벌이라는 장르를 개척한 밴드. 등장 당시 '락의 구세주'라는 소리를 들었다.

2001년 출시한 데뷔앨범 Is This It은 그야말로 전세계 평단의 호평을 받으며 롤링스톤지 선정 2000년대 최고의 앨범 2위, 역사상 최고의 데뷔앨범 8위에 선정되는 등 뉴욕 출신의 엄친아들로 구성된 밴드이다. 링크 링크 이게 얼마나 대단한 거냐면 2000년대 상업적으로 제일 성공한 밴드들 중 하나인 콜드플레이도 2000년대 최고의 앨범 리스트에서 최고 순위가 21위다... 그만큼 Is This It의 음악적 가치와 파급력이 넘사벽이라는 것.[1] 무엇보다도 이 앨범을 통해 2000년대 초중반의 록 씬을 포스트 펑크 리바이벌로 지배했으며, 미국이 브릿팝 시절 영국에 뺏긴 록 음악의 주도권을 다시 가져왔다는 평가를 받는다.[2] 이후 오히려 영국쪽에선 개러지록을 표방하는 아류 밴드들이 무척 많이 생겨났다. 또한 영국에서 더 많이 사랑 받았던 뉴욕밴드.[3] 악틱 몽키즈가 스트록스 빠였고 그들을 보며 밴드를 시작했다는 사실은 유명하다.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더 이상 할 것이 없어 힙합같은 장르와의 융합을 통해 꺼져가는 생명력을 유지하던 음악의 판도를[4] 단숨에 초기 리셋시킨 앨범으로 평가받는다. 게다가 그 어느 누구도 "이제 이런 음악의 유행이 올 것이다..." 라는 예상조차 하지 못했던 시기에 전혀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5] 록음악의 판도에 대단한 영향을 끼쳤다.

록음악의 흐름에 있어서 스트록스가 얼마나 중요한 밴드인가 하는 것은 사실 논쟁의 여지가 있고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다. 우선 포스트 펑크 리바이벌, 혹은 개러지 록 리바이벌 자체가 평론가들이 대단히 호평한 데 반해, 상업적인 파급력이 상당했지만, 특히 미국에서는 평론가들이 이야기한 그 정도는 아니었다.[6] 또한 포스트 펑크 리바이벌을 시작한 밴드를 누구냐고 봐야 하는가에 대해서도 화이트 스트라입스를 더 쳐주는 의견도 있다. 적어도 미국에서의 상업적 성공은 화이트 스트라입스를 통해 시작되었고 스트록스의 성적은 좀 민망한 수준이니까.[7] 하지만 그래도 충분히 대단하고 한 획을 그은 밴드임은 확실하다.

1997년에, 최초의 모델 매니지먼트사를 설립하였던 존 카사블랑카스의 아들, (그래서 부유할 수 밖에 없었던) 줄리앙 카사블랑카스를 중심으로 뉴욕에서 친구 닉, 니콜라이, 팹을 만나 4인조 밴드를 결성하였던 것이 시초. 이후에 앨버트 해먼드 주니어[8]가 영입되어 현재의 라인업이 완성되었다. Is This It이 데뷔 앨범치고는 너무 큰 하이프와 인기를 받아 마치 스트록스가 갑자기 짠 하고 탄생한 밴드 같아 보이겠지만 말이 부유층 자제들이지 실제로 밴드 생활에서 그들의 부모들이 금전적인 지원을 해주는 일은 전무했기에 초기의 데모송들은 카세트테이프 형태로 밖에 가지고 있을 수 밖에 없었고 수많은 기획사들로부터 거절당하는 무명생활을 보내야 했다. 더군다나 미국의 기획사는 좀 더 트렌디한 음악을 하라고 압박을 계속 넣었다고...

위에서 언급되었든 자국인 미국, 뉴욕보다 오히려 영국인디씬에서 엄청난 인기를 얻게 되었는데 미국에선 별 반응없던 3곡 짜리 데모테이프를 듣고 영국에서는 곧바로 스트록스를 불러들여 NME 표지 모델로 바로 써버렸다.[9] 이후 NME가 사생팬을 자처할 정도...

Is This It은 2000년대 전세계 록씬을 완전히 뒤엎어 버리는데 심하다 싶을 만큼 미니멀리즘에 입각해있는 연주와 마치 루 리드를 연상시키는 줄리안의 나른한 보컬은 발매 당시에도 호불호가 나뉘긴 했지만 어찌되었든 밀레니엄 시대에 새로운 록음악의 방향성을 제시한 것은 확실하다. 멤버들에 따르면 직접적으로 미국 인디 록 밴드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줄리안의 인터뷰에 따르면 그냥 벨벳 언더그라운드를 따라했다고(...)

대부분의 곡은 보컬 줄리안 카사블랑카스에 의해 만들어지며 전반적으로 그의 독재적인 조율 아래 곡이 연주된다. 닉 발렌시와 앨버트 해먼드 주니어의 유려한 기타 리프 등은 모두 줄리안이 만들어준 대로 친다는 것은 유명한 사실.[10] 다만, 멤버들의 개인 솔로 활동과 다른 일정으로 미뤄진 끝에 마침내 2011년 출시된 4집 Angles는 모든 곡작업이 밴드 멤버 5명의 적절한 참여 아래 이루어졌다. 연주파트 멤버들이 반주를 만들면 그 위로 줄리안이 보컬을 입히고 그 줄리안의 보컬에 대해 멤버들이 이런저런 조언과 수정을 가하고 각자 주어진 구역의 리프라든지 전체 분위기, 믹싱들을 조율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마저도 줄리안과 나머지 멤버들이 메일로 서로의 녹음 작업을 주고 받으며 만든 것이라고... 이 Angles의 결과물에 대하여 줄리안은 "만약 그 전처럼 내가 모든 것을 통제했다면 들어가지 않을 요소들이 많지만 이것이 스트록스가 생존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라며 다소 모호한 입장을 취했다. [11]

2013년 3월 26일에 5집 Comedown Machine을 발매하였다. One way trigger라는 곡을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선공개하였는데 마치 A-Ha를 연상시키는 신디사이저 리프와 팔세토 창법으로 노래하는 줄리안의 보이스 때문에 대부분의 팬들은 뻑킹테크노! 등을 외치며 멘붕에 빠졌었던 상태. 이후 첫싱글로 내어놓은 All the time으로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지 모른다는 떡밥을 던지며 본격적인 팬들과의 밀땅 시작... [12]

앨범이 나오자마자 호불호가 심하게 갈리는 편. 1,2집때의 B급 스튜디오 앨범을 컨셉으로 한 레트로한 사운드와 80년대 신스팝의 작곡론을 결합시킨 작품이며 1-2-3-4 트랙으로 이어지는 라인이 수려하다는 평. 이번 앨범이 현재 레이블 RCA에서 내놓는 마지막 앨범이어서 그런지, 아니면 그냥 나름의 전략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번 앨범의 경우는 성의없다고 느껴질 싶을 정도로 대외적인 홍보나 투어를 자제하고 있다. 사실 인터뷰에서 상업적인 면에만 끝없이 파고드는 RCA에 이골과 화가 나 마지막 계약인 이번 앨범에는 홍보나 투어를 안했다고 한다. 이 앨범 후 줄리안의 솔로 활동때의 레이블로 옮겨갈 것이라는 것도 밝혔다. 또한 이때 줄리안의 아버지가 거의 오늘 내일 하는 지경이라 투어를 돌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고 한다. 결국 2013년 여름 어느 날, 운명함.

이런 와중에 해체설이 나돌기 시작했으나 2014년 여름을 목표로 새 앨범 작업에 들어가있다는 트윗이 있었다.

어쨌든 여러모로 포스트 펑크 리바이벌씬의 시작이자 마지막인 밴드인 셈. 포스트 펑크 리바이벌 류 밴드들이 다 그렇지만 예전만하지 못하다는 평을 듣지만 이 씬의 시작을 장대히 열었던 Is This It 앨범의 주인공이란 사실만으로 록 음악 역사에 길이 남을 밴드인 것만은 확실하다. 앞으로 2000년대를 이야기할때 그 시작을 열 밴드중 하나라는 것만으로도 스트록스의 존재가치는 충분하다는 것.[13]

줄리안 카사블랑카스는 미국에서 신(Shin)이라는 이름의 갈비집을 배우 제라드 버틀러, 유명 프로듀서 마크 론슨, DJ 스티브 아오키 등과 함께 운영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근데 이집 망한지 오래됐다. 또한 2006년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을 위해 첫 내한 했을 때는 삼겹살 집에 들러 불판 위에 김치를 굽거나 상추쌈을 싸서 멤버들에게 주는 등 한국친화적인 모습을 보여주기도. 때문에 주인집 할머니 어디서 그렇게 먹는걸 배웠냐며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는 후문이 있다... 대학 시절 룸메이트가 한국인이라 평소에 한국 노래를 많이 들어왔다 하며 내한 공연 당시 쉬는 타임에 서태지의 우리들만의 추억을 잠시 불러 수많은 한국팬들을 설레게 하기도 했었다.

줄리안은 다프트 펑크Random Access Memories 앨범의 수록곡 Instant Crush에 피쳐링으로 참가하고 뮤직비디오도 찍었는 데, 유튜브 조회수가 스트록스 노래 최고의 조회수를 자랑하는 You Only Live Once보다 더 높다.(...) 폐수에 잠겨가는 록 밴드와 화재에 녹아들어가는 밀랍인형 커플(?)의 차이

2014년 6월 2일, 뉴욕에서 근 3년만의 라이브를 재개했다. 전성기 때의 활력을 되찾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14년 9월 23일, 줄리안이 그의 프로젝트 그룹 Julian Casablancas + The Voidz로 새로운 앨범 Tyranny를 발매했다. 스트록스는 점점 미궁속으로 이때쯤 낸다던 스트록스 앨범은? 사실상 줄리안의 독재체재가 끝난 스트록스에서 하기 힘들 실험적인 곡 들이 많다. 중독적인 기타 리프에 신시자이어음이 첨가되어 신비로운 느낌을 준다. Nintendo blood, Where no eagles fly, Johan Von Bronx, Business dog등 좋은곡들이 많다. 특히 Human sadness는 호불호가 갈리나 대부분 줄리안이 만들어낸 걸작으로 평가받고있다. 허나 앨범이 너무 난해하다는 평이 대부분...

Discography
Is This It (2001)
Room on Fire (2003)
First Impressions of Earth (2006)
Angles (2011)
Comedown Machine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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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하지만 콜드플레이와의 비교는 의미가 없는게, 롤링스톤지 자체가 저런 순위를 매기면서 해당 음반의 상업적 성공은 그다지 고려하지 않는다.
  • [2] 출처 추가바람
  • [3] 미국에선 Last Nite가 빌보드모던락 차트 5위에 오른 것이 최고의 성공
  • [4] 이 글의 수정자는 너무 단정적으로 말하는 경향이 있으니 걸러 들을것. 이 당시 락의 쇠락이 눈에 띄긴 했었지만 그래도 여러 많은 좋은 밴드들이 있었다.
  • [5] 이런 하이프는 스트록스 본인 스스로도 예상하지 못했다. 자세한 것은 위에 언급한 링크 참조
  • [6] 영국에서는 상황이 다르다.
  • [7] 화이트 스트라입스의 상업적인 성공, Seven Nation Army는 Is this it 이후에 나타났지만 이미 그 전부터 활동은 상당히 하고 있었다.
  • [8] 아버지 앨버트 해먼드는 라디오헤드의 히트송 Creep의 공동작곡가로 등록되어 있는 사람이다. Creep 자체가 그가 작곡한 홀리스의 곡인 The Air That I Breathe의 반주를 따라한 곡이라 라디오헤드가 알아서 크레딧에 등록시켰기 때문.
  • [9] 주변 관계자들의 말(출처 추가바람)로는 NME 표지 사진을 처음 그들의 카메라 앞에 서던 그때만큼 그들이 즐거워 보인 적이 없었다고 한다. 마치 밴드의 최종목표가 어느 잡지 표지 모델 한 번 해보는 것이 다였다는 것처럼...
  • [10] 대부분 키보드 같은걸로 데모를 찍은 다음에 멤버들에게 들려주는 방식이었다고 한다.
  • [11] 이때 그리고 기타리스트 앨버트의 약물문제가 있었다고 한다.
  • [12] 근데 이건 4집 Angles 때도 있었던 일이다. 선공개 한 노래 Undercover of Darkness 는 완전히 스트록스 사운드를 표방해 평론가들과 팬들을 설레게 만들었으나, 본 앨범이 나오자.. 음..
  • [13] 신보들 나올때마다 제발 Is This It 처럼 만들어줘 라는 리플들이 괜히 나오는 것은 아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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