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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칼튼

last modified: 2015-03-28 10:27:43 by Contributors


이름 Steven Norman Carlton
생년월일 1944년 12월 22일
국적 미국
출신지 플로리다마이애미
포지션 투수
투타 좌투좌타
프로입단 1963년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자유계약
소속팀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1965~1971)
필라델피아 필리스(1972~1986)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1986)
시카고 화이트삭스(1986)
클리블랜드 인디언스(1987)
미네소타 트윈스(1987~1988)

필라델피아 필리스 영구결번
No.32

1972년 메이저리그 내셔널리그 사이 영 상
퍼거슨 젠킨스
(시카고 컵스)
스티브 칼튼
(필라델피아 필리스)
톰 시버
(뉴욕 메츠)
1977년 메이저리그 내셔널리그 사이 영 상
디 존스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스티브 칼튼
(필라델피아 필리스)
게일로드 페리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1980년 메이저리그 내셔널리그 사이 영 상
브루스 수터
(시카고 컵스)
스티브 칼튼
(필라델피아 필리스)
페르난도 발렌수엘라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1982년 메이저리그 내셔널리그 사이 영 상
페르난도 발렌수엘라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스티브 칼튼
(필라델피아 필리스)
데니
(필라델피아 필리스)

Contents

1. 개요
2. 선수 생활
2.1.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시절
2.2. 필라델피아 필리스 시절
3. 스타일
4. 이모저모

1. 개요

메이저리그 역대 최고의 왼손 투수 계보를 잇는 선수. 197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당대에 최고의 왼손 투수로 군림한 선수다. 레프티 그로브 - 워렌 스판의 뒤를 잇는 선수로서 사이 영 상 4회 수상에 빛나는 메이저리그 최고의 왼손 투수. 메이저리그 역대 왼손 투수 최다승 2위 및 최다 탈삼진 2위의 기록을 가지고 있다.

아울러 만패에 빛나는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암흑기를 끝내고 빛나는 영광의 시절을 이끄는 주역으로, 역대 최고 수준의 3루수 거포 마이크 슈미트와 함께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투/타 최고 레전드로 꼽히고 있다. 당연히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 헌액자.

통산 성적은 329승 244패 평균자책 3.22 4,136 탈삼진. 역대 좌완투수 중 300승과 3000K를 모두 달성한 선수는 둘밖에 없는데 나머지 한 선수는 랜디 존슨이다.(둘 다 3000K를 훌쩍 뛰어넘는 4000K를 달성.)

2. 선수 생활

2.1.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시절


1944년에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서 태어나 플로리다에서 야구를 배워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에 입단하기에 이른다. 초년병 시절에도 뛰어난 스터프를 바탕으로 주목받는 선수였고, 1960년대 밥 깁슨이 리그를 호령하던 카디널스의 전성 시절에 한 몫 하면서 1967년 월드시리즈 우승 반지를 차지하기에 이른다. 카디널스에서 7년을 뛰면서 77승을 거두었지만, 이 시점의 그를 평가하자면 냉정하게 말해 준수한 젊은 선발 투수 정도.

물론 평균자책을 보면 2점대 중반부터 3점대 중후반까지 지금 보기에는 나쁘지 않아 보이지만, 1960년대 메이저리그는 사상 최고의 투고타저의 시대이기 때문에 3점대 중후반의 평균자책은 대단히 평범한 수치였다. 그래도 1969년에는 17승에 2.11의 평균자책을 기록하며 두각을 나타냈고, 세인트루이스에서의 마지막 시즌에는 20승 투수가 되었다.

하지만 팀에서는 그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지 않았고, 실제로 1969년을 제외하면 조정평균자책이 에이스라 할 정도로 높은 편은 아니다. 게다가 카디널스에는 전설의 에이스 밥 깁슨이 이미 있었기 때문에 칼튼을 고액 연봉까지 줘가며 지킬 필요는 없었다.[1] 결국 그의 재능이 더 발전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는지, 칼튼이 연봉을 더 올려달라고 하자, 세인트루이스는 1971시즌을 마친 후, 칼튼을 필라델피아 필리스로 트레이드했고, 이는 카디널스 역사상 최악의 실수로 남게 되었다.

2.2. 필라델피아 필리스 시절


칼튼의 트레이드가 실수였다는 것은 트레이드가 된 바로 다음 해인 1972년에 입증되었다. 칼튼은 346이닝을 던지며 27승 10패 평균자책 1.97 310 탈삼진을 잡아내면서 사이 영 상의 주인공이 되었다. 이 괴물같은 수치도 수치지만, 진짜 놀라운 사실은 이 해에 이놈의 만패팀이 거둔 성적은 고작 59승뿐이었다는 것. 그리고 그가 한 완투는 41번의 선발 등판에서 무려 30번. 진짜 칼튼 혼자 팔빠져라 던지면서 거둔 수치였다. 참고로 칼튼을 뺀 나머지 투수들이 기록한 평균자책은 4점대. 그리고 이 해부터 미친듯한 질주가 시작되었다.

팔꿈치가 좋지 않아 3년 정도 고생했지만, 1977년 23승 10패 평균자책 2.64로 부활에 성공하며 다시 사이 영 상을 득템. 그리고 1980년에 다시 24승 9패로 역시 사이 영 상을 또 다시 득템, 마지막으로 1982년에 23승을 거두면서 본인 커리어의 마지막 사이 영 상이자 통산 4번째 사이 영 상을 획득했다. 1980년의 경우 304이닝을 던졌는데, 이후로 점점 투수들의 분업화와 5인 로테이션 체제가 정착되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역사상 최후의 300이닝 돌파를 달성한 선수로 기록에 남았다. 정리하자면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 칼튼이 리그를 지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탈삼진 능력이 빼어나서 필라델피아에서 다섯 번의 탈심진왕에 올랐다. 선수 생활 후반부에는 놀란 라이언게일로드 페리와 치열한 통산 탈삼진왕 경쟁을 펼치며 전설적인 대투수 월터 존슨의 기록을 넘었다. 이 치열한 경쟁은 먼저 게일로드 페리가 떨어져 나가고, 라이언과 칼튼의 대결이 되었는데, 최후의 승자는 칼튼이 은퇴한 후로도 5년을 더 뛰며 5,000 탈삼진을 넘긴 라이언. 칼튼은 대신 왼손 투수 최다 탈삼진 기록을 가졌다가 이 또한 랜디 존슨에 의해 깨졌다.

그가 미친듯이 팔 빠져라 던지는 사이 팀 전력이 좋아지면서 마침내 필라델피아는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 영광의 세월을 보낸다. 이 시기 6번의 PO에 나가는데, 칼튼은 모두 등판했다. 초기에는 PO에서 다소 부진했지만, 점차 이 또한 나아지면서 1980년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사상 첫 월드시리즈 우승에 한 몫 했다.

아쉽게도 필라델피아에서 은퇴하지는 못했는데, 말년에 부진하자 필라델피아가 가차없이 방출해 버린 것. 그 뒤 여러 팀을 떠돌아다니다가 결국 1988년 조용히 은퇴를 선언했다.

3. 스타일


메이저리그 역사에 최고로 손꼽히는 슬라이더가 그의 주무기였다. 각이 크고 예리한 슬라이더를 바탕으로 타자를 농락했는데, 원래는 직구와 커브만 가진 평범한 투수였지만, 슬라이더를 장착하고 백도어 슬라이더까지 구사하면서 오른손 타자들을 꼼짝 못하게 만들며 자신의 전성기를 열었다. 역대 최고의 슬라이더를 던졌다고 평가받고 있으나 밥 깁슨은 자기 슬라이더가 더 낫다면서 칼튼의 HoF 헌액식 때 "좌완 중에서만 최고"라고 놀렸다.~~ 물론 깁슨과 칼튼은 우완과 좌완에서 역대 최고의 슬라이더로서 꼽히는데엔 전문가들의 이견이 없다. 물론 팬들의 기억이 선명하기로는 현시대 투수인 랜디 존슨이 있긴 하지만... 칼튼은 한 인터뷰에서 자신이 좋은 슬라이더를 던질 수 있는지에 대해 확신이 없었는데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시절인 1968년 일본팀과 친선경기를 하던 중 오 사다하루가 앞선 타석에서 홈런을 치자 그를 위협하려고 처음으로 몸쪽 슬라이더를 던져본 것이었다고 말했다. 오 사다하루가 어깨쪽으로 날아오는 그 공을 보고 몸을 뒤로 피하는데도 공 궤적이 휙 변해 스트라이크존에 꽂히는 걸 보고 칼튼은 내가 멋진 슬라이더를 가졌구나라고 비로소 확신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때부터 전설적인 슬라이더의 봉인을 풀었다고. 타자들을 구위로서 찍어누르는 타입이었기 때문에 많은 삼진을 기록할 수 있었고, 동시에 완투형 투수로서 1967년부터 1982년까지 무려 16년 연속 10완투 이상 기록한 선수였다.

그가 이런 스태미너와 구위를 가질 수 있었던 것에는 투수로서 거의 최초로 웨이트 트레이닝을 적극적으로 했기 때문으로 꼽힌다. 그는 근육을 단련하기 위해 꾸준하게 웨이트 트레이닝을 했고, 그 결과 체력과 함께 강속구를 얻을 수 있었다. 아울러 쿵푸를 즐기면서 몸의 유연성과 근육을 단련했고, 철사장을 통해 왼손을 단련했다고 한다. 요컨대 당대에 이미 따를 자가 없는 훈련량을 보여줬다.

그리고 강속구와 슬라이더의 조합으로 타자를 농락했지만, 수비력도 괜찮은 편이었다. 특히 왼손 투수로서 견제 실력이 빼어나서 타자들의 도루를 억제할 수 있었는데, 대신에 이 견제가 보크와 견제의 아슬아슬한 경계에 있었기 때문에 통산 보크 순위에서 압도적인 1위를 달리고 있다. (90개로 2위와 무려 2배가 넘는다.) 대신에 이 빼어난 견제 실력은 통산 견제사 부문에서도 역시 압도적인 1위를 가져다 주었다. (통산 144개.)

4. 이모저모

기자와 사이가 정말 안 좋은 것으로 유명했다. 그래서 필라델피아 시절에 단 한 마디도 인터뷰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오죽하면 영어를 정말로 못하는 멕시코 출신 레전드 페르난도 발렌수엘라와 묶여서 "내셔널리그엔 영어를 못하는 투수가 둘 있다"는 소리를 듣기까지 했을 정도. 그래도 마지막 필라델피아에서 방출될 때, "그동안 필라델피아 팬들이 성원해 주신 것에 대해서 감사한다."는 멘트는 남겼지만. 워낙 필라델피아의 언론과 팬들이 극성맞은 면이 있어서 그랬다고 하는 편이 맞을 듯. 필라델피아 필리스 항목에서도 언급되었지만, 필라델피아 경찰서를 배경으로 하는 미드 콜드케이스에서는 칼튼과 마이크 슈미트는 필리스 역사에 남을 프랜차이즈 스타인데도 이놈의 필리들이 워낙 극성맞아놔서 툭하면 그놈의 칼튼 그놈의 슈미트 하면서 욕먹는다(...)


은퇴 후, 95%가 넘는 득표율로 한 번에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고, 아울러 그의 등번호 32번은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영구결번으로 지정되었다.(로이 할러데이는 필리스에 와서 34번으로 옮겼다.) 오늘날에는 필리스는 물론 MLB에서도 손꼽히는 역대급 레전드로 존경받고 있기에 현역 시절처럼 잠깐 못한다고 극성맞은 필리들에게 욕먹거나 그러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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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당시에는 밥 깁슨이 부상 때문에 커리어를 길게 가져가지 못하리라고 예상하지 못하던 시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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