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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전

last modified: 2015-04-10 18:32:57 by Contributors

Contents

1. 개요
2. 유명 시가전
3. 관련 문서


1. 개요

급격한 도시화가 이루어진 현대 사회에서는 도시의 각종 건물들과 고층 빌딩 등은 시야의 확보와 뛰어난 엄폐 진지의 기능을 해줄 수 있으며, 이에 따라 건물을 엄폐삼아 적을 저지하고 또 그를 소탕하는 시가전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전투 개념이 등장하게 된다. 이러한 시가전은 앞으로의 전쟁에서도 가장 중요한 형태의 전쟁이 될 것이다. 즉 도시나 마을별로 상대의 영토를 침략하는 것이 아닌, 건물 하나씩 점령해나가는 전쟁이 되는 것. 그래서 만에 하나 한국전쟁이 다시 벌어져 전국토가 쑥대밭이 된다고 하더라고 서울이 완전히 함락당할 일은 없다고 한다. 고층빌딩 하나하나가 요새가 될 수도 있으니.[1][2]

하지만 점령하지는 못하더라도 도시의 기능을 마비시키기 위해 포병 화력은 어쨌든 도시를 공격하고 이로 인하여 민간인 피해자가 엄청나게 발생한다. 우수한 병기를 갖추었다고 하더라도 결국 시가전에서 건물의 적병을 소탕하는 것은 보병이 담당하게 되므로 공격하는 측도 상당한 부담이 되며 야전에서 나오는 사상자보다 시가전에서 나오는 사상자가 압도적으로 많다는 이야기도 있다. 대표적으로 스탈린그라드 전투가 있는데, 패배를 거듭하여 무기도 변변치 않고 훈련도 제대로 못 받은 소련군이 승승장구를 거듭하던 독일군을 상대로 몇 달 동안 양측 모두 수십만명의 사상자를 내는 소모전을 벌이면서 방어해냈다. 그리고 여기서 소모된 전투력 때문에 결국 독일군이 전략 목표도 달성하지 못하고 골골대다가 이후 패주하기 시작한다.

아예 도시를 포위해버리고 자원 공급망들을 싹다 끊어버려서 굶겨버리는 것으로 전투없이 점령을 시도할 수 있기도 하다. 이 경우에도 민간인 피해를 피할 수가 없다. 도시 기능이 마비되니 당연하다. 옛날 요새를 점령하는 공성전 방식이 현대에 와서 뜬금없이 부활한 셈. 다만 이 경우에는 도시 자체가 요새들의 집합체가 되는 샘이며, 포위 작전도 훨씬 복잡해진다. 또 옛날 공성전과 다르게, 시가전은 도시 전체를 여러 방어진지가 모여있는 것으로 치므로 하나의 도시를 점령 및 방어하기 위해 종심 전투가 적용된다 할 수 있다.

전차가 위력을 발휘하기 힘든 전투이기도 하다. 먼거리에서 포를 쏘아 화력을 발휘하고, 기동성을 바탕으로 적을 향해 돌격하는게 전차의 주특기인데 이 두가지가 다 막혀 버린다. 시내의 건물은 그 자체로도 포의 발사범위를 좁히고, 파괴되면 잔해들이 생겨서 자연 바리케이드가 되어 버리기 때문에 전차 지휘관들은 시가전을 가장 꺼린다고 한다.

미군은 시가전 사상률을 20%로 잡고 있으며(분대원이 10명일 때 2명은 죽는)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별도의 시가전 훈련소를 만들고 운영하고 있다. SWAT 역시 대표적으로 시가전에 특화된 작전 수행을 위해 훈련을 받으며, 건물 안에서 방마다의 안전확보를 위한 진입 절차, 건물 외부를 확인할 때의 안전 절차 등을 중요하게 교육 및 훈련한다. 방 내부 진입시와 베란다의 경우 사상률이 가장 높은데 방으로 들어갈 때는 안쪽에서 노리고 있는 경우가 위험하고 베란다는 머리 내밀고 나가면 저격당하기 때문으로 반드시 벽에 붙어서 나가도록 교육 및 훈련시킨다. 또 한가지 더 건물 내에서 건물밖으로 사격할 때 절대 총구가 구멍을 넘어가서는 안된다고 가르치는 데 적의 입장에서 위치 파악이 쉽기 때문이라고 한다. 해서는 안되는 것들이 엄청나게 많이 존재하는 것…

또한 미군은 건물 점령을 위해 사다리를 담당해서 들고 다니는 병사도 있고, 미국 해병대에서 산탄총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도어 브리칭을 위해서이며 이스라엘제 M100 총류탄을 브리칭용으로 사용할 정도로 신경쓴다.
JSA 경비대는 미군과 비슷하게 시가전 대비 건물 진입 훈련을 하는데, 특수부대와 해병대를 제외한 나머지 한국군은 제대로 된 시가전 훈련이 없으니 북한과의 전쟁 혹은 해외파병으로 대규모 시가전이 벌어질 경우 많은 사상자가 나올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최근 이를 보완하기 위해 신막사 건설이 완료되면 구막사를 시가전 훈련장으로 사용하자는 의견이 제시되었다. 또 2차 KCTC 훈련장에는 시가전 시설도 추가할 것이라고 한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2차 세계대전 이후 현대전에서 마천루가 넘쳐나는 대도시 규모로 시가전이 벌어진 경우는 없다. 그러나 마천루가 아니더라도 도시에서 시가전이 벌어지는 경우는 웬만한 전장에서 대부분 찾아볼 수 있게 되었다.

레닌그라드 공방전, 스탈린그라드 전투, 바르샤바 봉기에서 드러났듯 도시는 포위당해 외부로부터 격리될 경우 물자 보급에 상당한 난항을 겪을 수 밖에 없고[3], 더욱이 도시의 규모에 비례해 그 정치적, 경제적 비중은 커질 수 밖에 없으니 독소전의 동부전선 급의 너죽고 나죽자 하는 전멸전쟁이 펼쳐지지 않는 한, 적이 주요 도시에 접근하기[4] 전에 외교적 수단으로 전쟁이 종결될 가능성 또한 크다고 볼 수 있다. 영토전쟁 개념이 희박해진 현대에는 더욱 더.

이러한 시가전에서의 피해 규모 및 지나치게 높은 난이도 때문에 최근의 전쟁에서 시가전이 벌어지는 경우는 대부분 적의 수도를 눈앞에 두고 벌이는 결전(베를린 시가전)이나, 주민들이 말라죽건 말건 적이 굴복할 때까지 눈 하나 깜박 안해도 상관없는 전면전 상황이 아닌 국제 사회의 시선과 주민들 입장을 고려해야만 하는 안정화작전 상황(이라크, 아프간전)에서 이뤄지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그렇지 않은 경우는 굳이 도시를 점령하지 않고 대신 도시에 물자를 공급하는 루트를 차단. 철저하게 봉쇄한 다음 항복을 권하는 쪽으로 가는 경우가 많다. 도시는 그 자체로 최소 수십만, 많게는 수백만이 거주하는 거대한 소비 집단이기 때문에 아무리 평소 쌓아둔 것이 많아도 주요 보급 루트를 끊은 채 작정하고 포위하면 얼마 가지 않아 전부 다 식량 및 물 부족으로 굶어죽기 때문이다.

물론 시가지에 배치된 부대도 어떻게든 보급선을 확보하기 위해 반격에 나설 테니 이 경우 도시를 포위하는 군대의 규모가 일정 수준 이상이 되어야 한다. 소설 의 경우 한국군이 평양 포위에 동원한 병력은 무려 11개 사단에 달했다.[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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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단 자발적으로 백기를 들 가능성은 있다. 굳이 적군 입장에서 서울을 함락시키기보다는 서울로 물자를 공급하는 주요 도로를 모두 차단하고 말려 죽이기를 시전할 수 있기 때문. 다만 이건 북한군 정도의 수준으로는 절대 불가능하고 러시아군이나 미군 정도는 되어야 가능하다.
  • [2] 잘 모르겠으면 콜 오브 듀티: 모던 워페어 3의 첫 미션 검은 화요일을 참고할 것. 끝내 뉴욕은 함락당하지 않고 버텨냈으며 미군은 건물을 이용해 헬리콥터와 기갑부대의 공격을 피했다. 정작 요새처럼 쓰는 건 러시아군이었던 것 같지만
  • [3] 스탈린그라드 전투때 공중보급 드립을 쳤지만, 6군이라는 규모가 꽤 큰 군대의 보급을 공군으로만 한다는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그리고 바르샤바 봉기의 경우는 아예 독일군에 포위된 상태에서 자체적으로 도시 내에서 우물까지 파면서 필사적으로 보급을 했음에도 수많은 봉기군과 시민들이 전염병과 기아로 사망했다.
  • [4] 대한민국 같이 수도가 전선 겨우 수십 km 후방에 위치한 특이한 경우가 아니라면, 대도시 근방에 적 주력이 도달하는 것을 막지 못했다는 것은 이미 상당히 밀리고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 [5] 다만 이 경우는 평양 점령이 목적이었고, 실제 상황에서는 굳이 대도시를 점령하기 위해 큰 희생을 치를 이유가 없으니 1~2개 사단으로 간단히 봉쇄만 하고는 지하 통로에서의 교전만 일부 진행. 주전력은 평안북도에 집결한 북한군 전략예비의 격멸에 투입될 것이다.
  • [6] 다만 이 전투는 모가디슈를 점령하는 게 목적이 아니라 아이디드와 그 측근들만 압송하는 게 목적이라 반군에 비해 크게 나을 게 없는 화력으로 맞선 게 피해를 늘린 요인이다.
  • [7] 국제 사회의 시선과 주민들의 생활을 고려해서 미군 피해가 늘어날 것을 알면서도 전통적인 포격 및 도시 봉쇄 전략을 사용하지 않고 바로 시가전을 강행한 측면도 있다.
  • [8] 최근에는 폭격과 포격만 죽어라고 하고 도시 진입은 하지 않는다.
  • [9] 그 무시무시한 나치 독일군도 이곳에서는 그냥 소모품에 불과했다.
  • [10] 무기 상으로만 보면 독일군은 수백여 대의 전차와 장갑차를 보유하고 봉기군은 10명당 1명 꼴로 소총이나 기관단총, 수류탄 등으로 무장했지만 2달에 걸친 혈전 결과 독일군과 폴란드 봉기군 손실이 비등할 정도로 독일군도 매우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덤으로 시민 사망자도 25만여 명에 달해 유럽 전선에서 벌어진 단일 민간인 학살로는 최악의 수치였다.
  • [11] 본래는 대규모 포격과 도시 봉쇄를 통한 물자난으로 체첸 측의 투항을 유도했으나 여의치 않은데다가 국민들에게 뭔가 보여줘야 했던 러시아군이 1999년 12월부터 강행한 전투. 사전 포격과 작전 준비가 철저했기에 1차 전쟁 때처럼 어처구니없는 삽질은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시가전인지라 상당한 인명 손실을 입었다.
  • [12] 이 전투는 2차대전의 레닌그라드나 스탈린그라드 전투보다 더 긴 시간 포위당했다.
  • [13] 경찰의 강경진압으로 시가전에 버금가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 [14] 해당항목 참조. 시가전에 적합하게 설계된 도시이다.
  • [15] 매뉴얼 책자에 시가전에서 활약하면서 주목받았다는 내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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