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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노

last modified: 2015-04-05 23:19:58 by Contributors

信濃, Shinano.

Contents

1. 지명 시나노
2. 항공모함 시나노
2.1. 제원
2.2. 개요
2.3. 전함으로서의 개발
2.4. 제2차 세계대전 군함중 최대의 항공모함
2.5. 항공모함으로서의 성능
2.6. 최단명 항공모함의 어이없는 최후
2.7. 참담한 평가
2.8. 기타 트리비아
2.9. 매체에서의 등장


1. 지명 시나노

일본의 옛 지명. 신슈(信州)라고도 한다. 타케다 신겐의 활동 무대로도 유명. 현재의 나가노 현.

2. 항공모함 시나노

근현대 전쟁사상 가장 불운한 군함을 들자면 0순위로 지명될 배. 이름의 유래는 1.

2.1. 제원


  • 중량 : 63,000t (기준배수량), 73,000t (만재배수량)
  • 전장 : 266m
  • 전폭 : 40m
  • 흘수 : 10.8m
  • 추진력 : 150,000shp
  • 동력기관
    • 보일러 : 로호함본식 보일러 12기
    • 터빈 : 함본식 증기터빈 4기
    • 스크류 : 3엽 프로펠러 방식 스크류 4기 (직경 6m)
  • 속도 : 27knots
  • 항속거리 : 27knot로 10,000해리 (19,000km)
  • 승무원 : 2,400명 (정규인원)
  • 무장
    • 대공포 : 2연장 127mm 40구경 대공포탑 16기 (총 32문)
    • 대공기관포 : 단장 25mm 기관포좌 145기 (총 145문)
    • 대공로켓 : 28연장 127mm 대공로켓 12기 (총 336문)
  • 장갑 : 측면장갑 205mm[1], 격납고갑판장갑 190mm, 비행갑판장갑 80mm
  • 함재기 : 42기 (운용가능상태)[2]

2.2. 개요

일본해군의 항공모함. 역사상 최대의 전함 야마토급 전함의 3번함을 항공모함으로 설계 변경한 것이라, 수치상의 스펙은 엄청나다. 다만 함선으로서의 수명이 너무 짧고 제대로 싸워보기는커녕 바다 멀리 나가본 적도 없이 미군에게 당하고 말았다. 이를테면 덩치값도 못하고 사라진 신세였지만 전쟁 말기 막장행보 일본군병크실공사가 누적될대로 누적된게 주변 상황이었던만큼, 이 배가 세상에 탄생했다는 그 자체야말로 이미 사망 플래그는 예정된 비극이자 불가피한 운명이었던 셈이다.

2.3. 전함으로서의 개발


시나노는 야마토급 전함의 3번함으로서 여러가지 변화된 설계를 보였다.
일단 대다수의 기존 장갑이 감소했다. 측면, 갑판, 포탑 등 대부분의 영역에서 장갑을 10~20mm 가량 줄여서 현측 400mm 갑판 190mm 바벳 540mm로 감소했다. 이는 장갑이 야마토급이 필요로 하던 방어력 이상으로 두껍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수중 방어력은 증가되어서, 기존의 야마토급에서 사용한 이중 방어체계에 25mm DS 강판을 부착하고 기관부 등 주요 부분에는 12mm DS를 더 붙여서 200kg까지 버틸 수 있던 어뢰 방어력을 300kg까지 버티게 끌어올렸다.
부무장 12.7cm 포는 10cm/65 98식 양용포로 변경하려했다. 이 부포는 더 작은 구경임에도 12.7cm보다 오히려 탄속도 빠르고 사거리도 길며 대공 한계 고도, 연사속도 등 모든 면에서 우세했다. 이런 연장 10cm 포가 12기, 25mm 기관포 96기의 탑재까지하면 상당한 대공능력을 보여줬을 것이라 예상된다. 그러나 10cm 양용포는 예산 부족과 제작의 난점으로 탑재 취소. 세부 제원

2.4. 제2차 세계대전 군함중 최대의 항공모함

Example1.jpg
[JPG image (42.87 KB)]

야마토와 시나노의 상부 비교
앞서 언급된대로 기본 설계상으로는 역사상 최대를 자랑하던 야마토급 전함의 3번함이 될 예정이었다 (1번함은 야마토, 2번함은 무사시). 그런데 일본군이 자랑하던 항모 기동함대가 1942년 6월 미드웨이 해전에서 개발살당하자 "야마토급 3번함"은 설계를 변경, 항공모함으로 개조하기로 한다. 개조 재료는 운류급 항공모함에 쓰일 것들을 유용하기로 결정되었으며, 그 결과 5002호와 5005호가 건조 중지되었다.

기존배수량 6만2천톤에 만재배수량 7만 1890톤. 참고로 크고 아름다운 걸 선호하는 미국 해군이 같은 기간에 내놓은 에식스급 항공모함도 만재배수량으로 3만6천여톤에 불과했고 전쟁이 끝나자마자 등장한 미드웨이급 항공모함도 몸집불리기 개장공사를 하기 전에는 6만톤에 간신히 턱걸이하는 정도였다. 미군이 이 기록을 깨는건 2차대전 종결후 십여년 뒤 8만톤짜리 포레스탈급 항공모함의 출현을 기다려야 했다.

참고로 포레스탈급은 길이만 300m 이상에, 애초에 경사비행갑판과 폐쇄식 격납고를 갖추는 등 처음부터 현대화 설계로 만들어진 최초의 항공모함이다.

2.5. 항공모함으로서의 성능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시나노는 전장 약 263m로 길이 등의 절대수치는 사실 야마토급과 동일하다. 부피만으로 보면 미군이 막 쏟아냈던 에섹스급(숏 약 265m, 롱 약 270m)하고 비슷한 정도이지만 배수량이 저렇게 차이가 나는 이유는 시나노의 함체가 방어장갑을 미친듯이 둘러친 야마토급의 전함 함체를 그대로 유지했기 때문. 방어장갑을 희생하면서 오로지 항공기의 탑재운용에 목숨거는 여타 제대로 만들어진 항모와는 몸무게가 격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초기안에는 야마토의 함체를 이용해 불침항공기지라는 개념으로 사용하려했다고 한다. 격납고에는 자기 방어용 전투기만 싣고 장갑은 전함 수준으로 유지해서 최전선에 돌격해서 뇌격기와 급폭기를 보급해주는 해상 기지의 개념이었다고 한다. 이를 통해 정규 항모들은 장거리에서 함재기만 보내서[3] 아웃 레인지 전법을 적극적으로 이용할 수 있을것으로 기대되었으나, 일본 군부에선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래서 일반 항공모함으로 개장을 하게됬지만, 설계는 갑판장갑은 일러스트리어스급 장갑 항공모함을 참고해서 만들어졌고, 20mm 강철판 위에 75mm 장갑을 올린 구조로 만들어 상당히 강한 방어력을 가졌다. 초기에는 갑판 전체를 4000m에서 투하한 800kg짜리 폭탄까지 버티게 만드려했지만 변경해서 급강하 500kg 폭탄 폭격까지 방어 가능하고, 후방 함재기 격납고의 상부는 800kg 폭탄까지 방어가 가능하다고 한다. 함체도 다이호의 방어력만큼 장갑을 둘러서 200mm급 중순양함 포탄까지 방어가 가능했다. 그리고 함재기는 모자라지만 폭탄, 어뢰, 연료는 다이호 비슷하게 탑재 가능했다. 800kg 폭탄 또는 500kg 폭탄 90발, 250kg 폭탄 468발, 60kg 폭탄 468발, 45cm 항공 어뢰를 탑재할 수 있었다고 한다. 쇼카쿠보단 적고 다이호보다는 약간 적은 수준. 덩치는 훨씬 큰 주제에 다이호보다도 적다는게 안습하지만.. 연료 탱크 주위는 다이호과 연료 폭발로 침몰한 뒤 콘크리트를 넣어 굳혔다. 그리고 기뢰와 어뢰 방어를 위해 야마토급의 이중 방어를 삼중 방어로 증설했다.

그러나 지나치게 무거운 비행갑판은 결국 함의 밸런스를 무너뜨릴 우려로 격납고를 조그맣게 한 층밖에 설치못하는 결과를 낳게되었다. 연료 탱크 주위를 콘크리트로 굳힌건 불필요한 배수량 증가로 보는 견해가 많다. 그리고 위의 모든 장갑도 활약 못하고 어뢰 방어체계도 제대로 활약 못하며 어뢰에 격침당했다.

게다가 대폭 개장하기엔 돈과 시간 문제가 있는 이유겸 강인한 방어력을 유지하기 위해 전함의 중장갑 함체를 유지하다보니 내부의 공간활용에도 난점이 있었다. 안정성을 위해서 오직 한 층의 격납고를 만들게 되었고 그나마도 전방은 정비, 저장 시설로 이용되었다. 결국 그 덩치에도 불구하고 함재기 실 탑재수는 발진 및 착함이 가능한 전투 대기 상태에서 42기, 갑판에 함재기를 올려서 탑재를 해도 렛푸 25기, 류세이 25기, 사이운 7기를 넣어 57기[4]가 들어갈 정도로 덩치에 비해 함재기 탑재수가 적었다. 그나마 이런 격납고도 측면에 장갑조차 없었다. 기본적으로 개방식 격납고를 채택했기 때문이다. 물론 측면장갑은 폭격으로는 맞지 않고 함포로 근접사격을 당할 때 방어에 쓰이니 왠만하면 쓸 일도 없고 폭탄, 어뢰를 갑판에서 장비하니 유폭위험은 낮다.

물론 모든 걸 다 포기하고 꽉꽉 우겨넣는다면야 139기가 들어가지만 이 경우에는 입항할 때까지 함재기를 발진시킬 수가 없으며 항공모함이 아니라 수송선일 뿐이다. 이에 반해 에식스급은 우겨넣으면 발진 가능한 상태로 100기 이상 싣고 다녔다는 기록도 있다. 바로 렉싱턴[5]이 그 기록의 주인공(…). [6]

그래도 비행갑판 폭은 엄청나게 넓었기에 함재기의 이착함 능력만큼은 어느 정도 보장되었을 것이다.[7] 실제 일본군은 시나노를 최전선에 투입하기 보다는 육지와 최전선 중형 항모들 사이에 두고, 육지로부터 보충되는 항공기들이 잠깐 들러 대기하거나 재급유를 받고 가는 '중계 플랫폼' 개념으로 운용하려고 했다는 설도 있다.

또한 제원에서 볼 수 있듯이 대공무장이 굉장히 많다. 적의 공습에는 상당히 대응하기 용이했을것이다. 물론 일부 더 강한 대공무장을 가진 야마토조차 폭격과 뇌격으로 격침됬으니 미국의 압도적 제공권하에선 그렇게 의미 없겠지만 항공모함으로서는 거의 사상 최대라고 부를 정도의 대공무장을 갖췄다.

그리고 기존의 전훈을 반영한 개선사항이 상당수있다. 대표적으로 함재기 급유와 탄약 보급을 갑판상에서 하는 것이 있다. 기존의 갑판 아래에서 정비는 폭격을 맞을시 탄약과 기름이 한번에 터져서 항모를 통째로 말아먹는 문제점이 있었다. 이를 고치기 위해 도입한 것이 갑판에서의 함재기 정비이다. 격납고는 외부와 연결되는 셔터를 올리고 내릴 수 있게해서 필요할시는 셔터를 내려 외부와 차단하고, 함재기에 불이 붙는 등 사태가 생기면 셔터를 올리고 함재기를 버릴 수도 있었다.

또한, 기존의 일본 항모들과 달리 다이호와 같이 대표적으로 비교적 큰 함교를 사용해 함제기 관제가 용이해졌다. 그리고 그 함교는 미국이나 영국의 항모같이 연돌과 일체화되서 함 내부가 40도 가까이 치솟는 카가나 난기류를 발생시키던 다른 함의 문제점이 상당수 해결되었다. 그리고 함재기는 7.5톤짜리까지 착함시킬 수 있는 어레스팅 와이어를 장착했고, 갑판 일부가 사용불능이 되어도 나머지로 착함이 가능하도록 앞쪽에도 추가배치했다. 항공모함으로의 개장이 제대로 되었다면 충분히 괜찮은 성능의 항공모함이었겠으나...

2.6. 최단명 항공모함의 어이없는 최후

본 함선의 건조가 시작된 게 1940년 5월이지만 야마토 급의 방어력과 항속력이 너무 과대하다는 군령부의 지시로 설계가 일부 변경되는 바람에 공사는 3번함인데도 불구하고 수 개월의 시간을 까먹으며 지지부진 하다가 1941년 미국과의 전쟁이 시작되면서 건선거를 비울 수 있을 정도까지만 작업하고 진수 후 방치한다는 처분이 내려졌다.

그런데 미드웨이 해전에서의 패전으로 인해 항모가 보다 많이 필요하게 되자 1942년 9월 이후 설계를 바꾸어 항모로서 건조를 재개했다. 그러나 1943년 7월 구축함과 잠수함 및 전시수송선 건조에 집중한다는 방침으로 인해 다시 건조가 취소되었다가 악화되어 가는 전황으로 인해 다시 건조가 속행되면서 작업을 서둘러, 예정대로라면 1945년 2월에나 완성하려 했던걸 1944년 10월 8일에 진수, 11월 19일 군항 요코스카(橫須賀)에서 취역. 요코스카 기지가 미군의 공습으로 위험했기 때문에 마무리 공정과 함재기의 인수를 위해 일본 서부 세토내해에 자리잡은 구레(吳)기지로 이동하기로 한다.

취역 9일 뒤 11월 28일 4척의 구축함을 동반해서 출항했으나, 1척은 요코스카 항의 초계 범위까지만 호위했으므로 사실상 세 척의 구축함을 동반하여 출항했다. 그 중 한 척이 불침함 유키카제]. 하지만 당시 일본 주변 해역은 미 해군 잠수함대의 독무대나 다름 없었으니, 거대한 덩치의 시나노는 애써 시간과 비용을 들여 미군에게 선사한 어뢰 표적일 뿐이었다. 잠수함으로서 단일 수상함정 격침 최대기록을 수립할 명예를 안게 될 주인공은 발라오급 SS-311 아처피시 (Archerfish).[8]

출항 이튿날인 1944년 11월 29일, 시나노는 하필이면 레이더가 맛이 가서 완벽하게 떠 있는 표적 상태가 됐던 아처피시를 포착했지만, '저 놈은 미끼고 주변에 미국놈들 배가 더 숨어있을거다!'라는 함장의 판단 하에 호위 구축함들에게 요격을 지시하지 않았다고 한다. 어쨌든 함장 조지프 F. 엔라이트 소령과 휘하 승조원들은 끈질기게 미행하고 기다기를 반복한 끝에 새벽 3시 15분, 6발의 어뢰를 쏴서 그 중 네 발이 시나노에 맞은 것을 확인하고서 잽싸게 그 자리를 벗어났다.

그 후 오전 9시에 모든 동력이 나가버렸고, 결국 오전 10시 57분, 시사노는 전복되면서 선미부터 침몰하였다. 와카야마현 기이(紀伊)반도 남방 50km 해역에서 항로의 절반을 지나왔을 뿐인 시나노는 명색이 항모라면서 실전에서 함재기 한번 날려보지 못하고, 단지 함재기 이착함 실험을 단 한번 경험한 것으로 군함으로서의 생애를 겨우 열흘만에 마치는 전무후무한 기록의 주인공이 되고 말았다. 당연히 그 모든 광경을 유유히 지켜보던 아처피쉬는 마침 추수감사절도 맞이했고 해서 승무원 모두가 칠면조 바비큐를 자르면서 자축했다고 한다.

이미 10시 18분에 전원 탈출 명령을 내렸던 아베 함장은 배와 운명을 같이 하는 것을 택했다. 그는 이함을 거부하고 배와 함께 가라앉았다. 항해사 두명도 아베 함장 옆에 남을 것을 결심하였고 그와 운명을 같이 했다.

같은 급의 전함 무사시가 어뢰 20발, 야마토가 어뢰 12발까지 명중당한데다가 급강하 폭격기들한테도 흠씬 두들겨 맞고서야 가라앉은 것에 비하면 겨우(!) 어뢰 4발에 격침당한 것이 안습 그 자체였다. 이는 시나노가 항모로 개장되면서 장갑이 줄어든 것도 기여하긴 했다. 그리고 피격에 의한 피해는 크지 않았지만 하필 어뢰 명중 당시 잠수함 및 어뢰를 회피하기 위해 시나노가 낼수있던 최고 속도(18노트: 설계상 최고속도는 27노트였지만 밑에도 있듯 보일러부품문제라던지 프로펠러 샤프트 베어링 문제로 최고 18노트뿐이 낼수없었음)로 달리고 있었고 함장이 생각하기에 '이 정도는 버티겠지? 더 맞기 전에 빨리 도망가자!' 하고 그냥 달렸더니 그 수압으로 인해 부실공사된 격벽들이 붕괴되면서 침수... 거기에다가 긴급공사로 인해 방치된 각종 자재와 전선이 얽혀있어서 격벽에 달린 문을 폐쇄할 수 없는 경우도 많았다. 더욱 큰 문제는 보일러에 사용할 민물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보일러에서 증기가 된 물은 터빈으로 공급되어 동력을 만들어내는데, 증기 상태의 물을 냉각해서 다시 액체 상태로 돌려주는 복수기가 고장난 것. 바닷물을 이용해서 보일러를 냉각시킬 수도 있었으나 이렇게 작동시킬 경우 수리에는 엄청난 시간이 걸리므로 보류. 결국 동력마저 정지하고 말았다.

더욱이 시나노 내 승조원들이 시나노에서 제대로 훈련받은 인원들이 아닌지라 사고 발생때 우왕좌왕 한 것도 피해규모를 키웠다.

어뢰가 명중된 것이 새벽 3시 15분이고 시나노의 모든 동력이 정지된 때가 오전 9시, 퇴함결정이 10시18분, 침몰한 시간이 10시57분(55분이라는 설도 있음)이니 어뢰 명중후에도 상당 시간동안 바다 위에 떠 있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만약 미군 수준의 응급복구 실력이 있었다면 침몰하지 않았을 가능성도 높다. 군함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대미지 컨트롤 능력이 없었다는 이야기.

항공모함 어뢰 4발 맞고 침몰한 자체가 굉장한 문제라는 것은 아니다. 사실 다른 대다수의 항모가 어뢰 4발에 맞으면 침몰하는게 굉장히 정상적인 상황이다. 4발을 맞고도 비교적 정상적인 이동이 가능하단 자체가 항모치곤 훌륭한 맷집이다. 문제는 이놈은 타 항모의 수 배에 달하는 사이브에 장갑을 떡칠한 항모인데 그정도 공격에 피해를 제어하긴 커녕 확대시켜서 격침된 것..

2.7. 참담한 평가


▲시나노를 재현한 프라모델.

정리하자면 본 함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건조된 최대의 함정이었고, 격침당한 최대의 함정이기도 했으며[9], 정작 군함으로서의 생애는 취역 후 열흘, 처녀항해 시작후 17시간이라는 최단명을 기록하였다는 점에서 특기할 만하다. 이 때문에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면 남겨진 실물 사진보다 일러스트나 플라모델 이미지가 더 많을 정도. 안습(…) 맨 위의 사진도 그림이다…….


▲가장 유명한 시나노의 실제 사진.

아처피쉬가 격침 시키기 직전에 찍은 사진이라고 알려졌지만 아처피쉬가 시나노를 추적하고 격침시킬 당시 시각은 저녁~한밤중이었다. 위의 사진은 시나노가 건조지인 요코스카 해군공창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치바현 다테야마 앞바다에서 시험항해를 했을 때의 사진이다. 또한 시나노를 촬영한 사진은 건조도중의 모습을 찍은 것까지 포함해서 몇장 더 있지만 사진이 수록된 책은 1980년대에 나온 중고서적으로 가격도 고가라 직접 구해서 보기는 힘들다.

여담으로 맨 위에서 전쟁 말기 막장행보 일본군병크가 누적되어 시나노가 세상에 탄생했다는 그 자체야말로 이미 사망 플래그라고 되어 있는데, 이게 과장이 아닌 것이 전쟁 말 막장상황이 아니었다면 시나노가 격침 될 일은 없었을 것이다. 일단 건조일정을 급하게 단축시키다 보니 보일러 부품이 부족해 12개의 보일러중 3개만 가동되고 있었기 때문에 최고 속도가 27노트에서 20노트로 줄었다. 게다가 부품의 질도 좋지 않아 18노트 이상을 유지하면 베어링이 과열되는 문제가 있어서 잠수함같은 느린 적함선도 따돌리기 힘들었다. 또한 1,147개의 방수 격실 대부분이 테스트를 거치지 않았고 대부분의 수병들이 기초적인 훈련밖에 받지 못하였다.

더 까자면 비슷한 처지의 다이호보다 훨씬 더 병맛이었다. 일단 함재기 탑재량부터가 시나노가 자신의 배수량의 절반밖에 안되는 다이호보다 약 10여기 더 적다. 여기에 더해서 다이호가 방어중시로 건조되었다는 사실을 상기해보면 이게 얼마나 큰 단점인 지 알 수 있다. 운용면에서도 다이호는 최소한 제대로 된 항공전에 투입되었으니 승조원들의 훈련도라든가 공사완성도는 시나노보다는 나았을게 뻔하고...[10] 무엇보다 다이호는 마지막으로 제대로 된 함재기를 갖추었으나 시나노는 제대로 된 함재기도 갖추지 못했다는 것이다. 당초에는 완성 이후 N1K-J 시덴의 함재기 버젼이 탑재될 예정이었으나, 이 함이 침몰하면서 백지화. 마지막 순간에도 구레로 개장을 끝내러[11]가면서 MXY-7 오카 유인 로켓 50기를 수송하고 있었다.[12] 속력도 다이호보다 6노트나 느린건 덤. 유일한 장점이 될 수 있던 것은 야마토급의 선체를 바탕으로한 항모를 초월한 엄청난 장갑이겠지만 최후를 보면 알다시피 막장스러운 건조 상태로 인해 아무짝에 소용이 없었다. 차라리 야마토나 무사시만큼의 탱킹이라도 했으면 맷집은 봐줄만 했겠지만...

시나노의 함장인 아베 대좌는 이와 같은 점들을 지적하며 상부에 항해 일정 연기를 요청하였지만 당시 막장을 자랑하던 연합함대 사령부와 일본 대본영이 이를 귓등으로라도 들어주었을 리가 없었고, 결국 시나노는 23시 20분 경 예상했던대로 주축 베어링이 위험 수준으로 과열되어 속도를 18노트로 감속할 수밖에 없었고 어뢰와 잠수함의 위협을 상정했기 때문에 지그재그 항법으로 기동한 덕분에 실제 속도는 더 떨어졌다. 아처피쉬의 최고 속도는 19노트를 약간 상회했기 때문에 따라잡혀서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거기다가 호위함들은 레이테 만 해전에서 겨우 살아돌아온 구축함들이어서 청음기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군령부가 성능이 과대하다면서 일본해군의 함정설계를 담당한 함정본부의 반대를 뭉개고 설계변경을 관철시키지 않았다면 설계명 110호함 시나노는 1, 2번함의 건조경험을 살릴 수 있는 3번함이라는 특성을 살려 건조속도에 탄력이 붙어서 1942년 3월 이전에 진수를 마쳤을 것이다. 당연히 수밀격벽이나 보일러들도 제대로 완성되었을 것이고. 결국 시나노의 침몰은 예정되어 있던 결과이다.

2.8. 기타 트리비아

  • ||"저 일본배와 닮은 것은 없는데요."
"닮은 것이 없다니! 이리줘. 내가 한번 찾아보지."(조지프 F. 엔라이트)||
아처피시 함장인 조지프 F. 엔라이트는 당당하게 상부에 항공모함을 격침시켰다고 보고했으나 한동안 인정받지 못하고 "중순양함 격침한 걸로 하지?"라는 말만 듣다가 수 개월 후에야 인정받았다. 일본의 암호통신을 해석한 결과 격침시킨 함이 '시나노'라는 것은 파악됐는데, 당시 일본의 정규항모들은 '하늘을 나는 짐승'에서, 순양함들은 '산'이나 '강'에서 이름을 따오고 있었던지라, 시나노가 원래는 전함으로 건조됐다는 것을 알리가 없는 미 사령부가 일본에 시나노라는 이름의 강이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선 "니네가 격침시킨거 항모가 아니라 순양함 아님?"이라는 결론을 내버린 것. 또 하나의 이유는 "그렇게 큰 항공모함이 어디 있냐?"는 점이었다. 미국이 그전까지 시나노에 대해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으며 일본의 기밀 유출 방지가 효과가 있었다는 뜻도 될 듯. 일본군의 기밀 유출 방지가 얼마나 철저했는지 아처피쉬가 시나노를 추적할 당시 적함식별교범에 시나노와 닮은 것이 하나도 없었다고 한다(당연한 얘기겠지만). 설상가상으로 엔라이트는 시나노를 발견한 후 그 모습을 그림으로 그려놨는데, 그걸 쓰레기통에 버렸기에 증거로 제출할 수도 없었다. 다행히도 수병 하나가 이 그림을 쓰레기통에서 꺼내서 보관했고, 덕분에 이 그림은 상부에 증거품으로 제출되었다.
사실이 확인되기 전까지는 중순양함 아니냐는 말도 들었지만, 이후 아처피시가 세계 최대의 항모를 잡았다는 사실을 확인한 미 해군은 이들에 대한 보상으로 전후 항복 조인식에 아처피시와 그 승조원들을 참석시켜 줬다.
자세한 내용은 엔라이트가 쓴 《나는 시나노 호를 격침시켰다》라는 책에 나오니 참조.

  • 시나노 격침 일화가 국내에 알려지게 된 계기도 '리더스 다이제스트' 한글판 1988년 12월호에 이달의 북다이제스트 코너에 이 책의 축약본이 실린 것이 계기로 보인다. 실제로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시나노 격침 일화는 상당수가 리더스 다이제스트에 실린 내용을 그대로 타이핑한 것이니... 더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다면 도서관들을 뒤져서 리더스 다이제스트 1988년 12월 호를 찾아보자. 상당히 재미있다.

  • 2차 대전이 끝난 뒤 현대전에서 대형 함선이 격침된 예는 1982년 포클랜드 전쟁에서 영국 잠수함 컨커러(Conqueror)가 아르헨티나 순양함 헤네랄 벨그라노(General Belgrano, 미국제 브루클린급, 배수량 1만2천톤)를 가라앉히고, 아르헨티나도 미사일로 영국군 수송선 애틀랜틱 컨베이어(징발된 민간선박, 1만5천톤)를 침몰시킨 경우가 있다. 다만 군함과 민간선박은 배수량 측정기준이 다르다. 좀 더 상세히 설명하자면 군함은 물에 집어넣었을때 밀려나는 물의 양을 재는 Displacement 개념을 쓰는 반면, 민간 선박은 기본적으로 여객/화물선이므로 적재량/용적과 들어가는 건재를 기준으로 계산한다. 그래서 여기에 언급된 숫자만으로 우열을 비교하기는 곤란하다.

2.9. 매체에서의 등장

  • 코만도스 시리즈 중 코만도스 2에선 시나노와 그 것이 정박해있는 항구를 배경으로 한 미션이 나온다(일본군 배경 마지막 미션). 여기선 항구의 시설물들을 다 개발살 낸 뒤 코만도들이 시나노에 잠입한다. 그런데 다른 미션들과 달리 이 미션은 보너스 미션과 본 미션의 스토리가 연결된다. 뭔 이야기냐면 보너스 미션에선 코만도들이 항공모함의 비행기들을 다 고장낸 뒤 탈출하는 내용이 나오기 때문. 이 미션 클리어 후 미군이 시나노를 개발살 내는 영상이 나오는데, 보너스 미션을 클리어 안해도 이 영상이 나온다. 따라서 유저들은 코만도들도 시나노와 함께 수장된거 아니냐는 오해를 하게 된다(…). 물론, 역사적 사실과 관계없는 창작된 것임을 매뉴얼에 밝히고 있다.

  • 함대 컬렉션에서도 차후 등장할 예정이다. 캐릭터 디자인과 대략적인 스펙 책정은 전부 끝난 상태인데, 정작 그렇게 떡밥을 던져 놓고 2015년 4월 기준으로 장장 1년 8개월 동안 소식이 없다. 자세한 것은 시나노(함대 컬렉션) 항목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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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개장 전 기존에 이미 장갑을 붙인곳엔 400mm
  • [2] 139기를 수송상태로 싣고다닐수있다고 한다. 아예 정비나 보급도 불가할정도로 수송선같이 싣는 것을 말하는듯.
  • [3] 일본 항공기들이 방어력까지 희생해가면서 얻은 매우 긴 항속거리를 이용해 적기가 도달하지 못할 곳에서 공격하는 전술
  • [4] 이중 갑판에는 렛푸 1기, 류세이 7기, 사이운 7기가 올라간다. 물론 이렇게 운용하면 갑판이 좁아진다. 갑판폭이 넓으니 착함이 불가능하진 않지만..
  • [5] 산호해 해전에서 격침당한 CV-2의 함명을 이어받았다.
  • [6] 물론 미군의 함재기들은 날개를 접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못 접는 놈들이 문제 같은데 사실 일본 정규항모가 대체로 탑재기 수가 적은 이유가 날개가 안접히기 때문이다(...)
  • [7] 비행갑판 폭이 넓으면 이착함에 큰 도움이 된다. 1 항공전대의 항공모함들이 5 항공전대의 항공모함들보다 파일럿들에게 호평받은 부분도 바로 이 부분이었다.
  • [8] 배수량 7만톤은 웬만한 전함 두 세척 아니면 중순양함 예닐곱척, 경순양함이라면 10척쯤은 잡아야 채울 수 있는 숫자이다. 아처피쉬는 어뢰 한 방으로 태평양 전쟁에서 활동한 모든 미해군 잠수함 중 최대 실적을 올렸다.
  • [9] 게다가 이 기록은 대규모 세계대전이 다시 발발해서 니미츠급 항공모함이라도 격침당하지 않는이상 영원히 남을 기록이라는게 더 안습.
  • [10] 다이호는 어뢰 1발에 침몰했으나 사실 방어력 문제가 아니라 자체 구조 병크 및 통풍삽질로 펑! 다만 이건 어떻게 보면 시나노처럼 훈련부족으로 볼 수 있다.
  • [11] 개장도 완료되지 않은 상태로 격침당한거다(...) 이것이 시나노의 탑재기 수가 적은데 상당히 공헌했다..
  • [12] 이 오카는 탄두와 연료가 채워져있지 않았기에 물위에 떴고, 승조원 일부가 여기에 매달려 목숨을 건진다. 이들은 나중에 오카 개발자와 만났을 때 "덕분에 살았다"며 감사를 표했는데, 오카 개발자들의 표정이 복잡해졌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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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modified 2015-04-05 23: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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