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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 루멧

last modified: 2015-03-25 22:04:59 by Contribu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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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dney Lumet (1924. 6. 25 ~ 2011. 4. 9)

Contents

1. 소개
2. 이력
3. 대표작

1. 소개

미국 국적의 감독이자 극작가. 57년 감독직을 시작한 이래 장르를 가리지 않고, 많은 작품을 감독하여 약 50여편 이상의 영화에 감독, 혹은 극작가로 이름을 올렸다. 연간 1편 이상을 연출한 참으로 부지런한 감독이라 할 만하다. 타고난 이야기꾼이자, 사회비판과 뉴욕 소재의 드라마에는 대가라 불러도 지나치지 않을만한 감독이다. 로저 이버트는 그를 두고, '훌륭한 (영화)기술자이자, 동시에 따뜻한 인본주의자.'으로 평하기도 했다. 또한, 배우들이 선호하던 감독으로서 헨리 폰다, 말론 브란도, 폴 뉴먼, 윌리엄 홀든, 알 파치노, 숀 코네리, 서린 햅번 등 헐리우드의 기라성같은 배우들이 그와 함께 했다. 가장 많이 출연한 배우는 5편을 함께한 숀 코네리. 그는 시드니 루멧을 자신이 좋아하는 감독들 중 한명으로 꼽았다.

연극, 희극 연출에서 출발하여 TV 드라마 연출을 거쳐 영화 연출로 옮겨온 이력을 소유하고 있다. 이 때문인지 그의 첫 작품인 <12인의 성난 사람들>은 영화임에도 연극적인 분위기가 상당히 강하다. 이외에도 테네시 윌리엄스의 <지옥의 오르페우스>(1959), 아서 밀러의 <다리에서 본 전망>(1962), 진 오닐의 <밤으로의 긴 여로>(1962), 안톤 체호프의 <갈매기>(1968), 피터 셰퍼의 <에쿠스>(1977) 등을 연출하며 연극을 영상화하는 데 노력하기도 했다.

2. 이력

1924년 필라델피아에서 유태인의 아들로 태어나 뉴욕에서 자랐다. 4살 때부터 아역배우로 활동하기도 했으며, 15살이던 39년에 아주 짧은 길이의 간단한 영화를 만들기도 했다. 42년에 제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입대하여 인도버마에서 레이더 수리병으로 복무하기도 했다.

연극무대의 연출부터 시작한 시드니 루멧은 1950년 친구인 율 브리너의 도움으로 TV연출로 진출했다. 그는 능수능란한 연출로 곧바로 TV 연출계의 신성으로 떠올랐으며, CBS에서 많은 드라마를 감독했다. 이러던 중 헨리 폰다의 선택을 받아 연출을 맡게 된 57년 작 <12인의 성난 사람들>은 베를린 영화제 황금곰상을 수상하는 등 비평적으로 대성공을 거두었고, 단숨에 그를 유명 감독으로 올려놓았다.

시드니 루멧은 다른 감독들의 독단적이고 고집스러운 연출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촬영감독, 각본가, 배우들과 같이 논의하면서 아이디어를 공유하길 주저하지 않았다. 그리고 본 촬영 전에 미리 엄격하게 리허설을 가지면서 배우들과 조율을 맞춘다는 것도 특징.[1] 상술했던 기라성 같은 배우들이 선호하는 이유는 이러한 면에서 기인한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영화 속에서 배우들의 숨겨진 면을 최대한 끌어내는데 능통했다. 이런 연유로 그는 배우들 사이에서 '배우들의 감독(an actor's director)'으로 불리웠으며, 한 평론가는 '루멧에게 쓸만한(Good) 배우들을 줘봐라, 그럼 그는 그 배우들이 훌륭한(Great) 배우가 될수 있는 자질을 찾아낼 것이다.'라고 평하기도 했다.

이처럼 루멧 자신이 배우 선정에 까탈스러운 편은 아니어서, 상대적으로 네임밸류가 떨어지는 배우나 구설수가 많던 배우도 곧잘 캐스팅해서 썼다. 액션에 특화된 배우로 여겨지던 빈 디젤을 법정물인 <Find Me Guilty>(2006)에 주연으로 세워서 빈 디젤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게 했고, 섹시스타의 상징이던 샤론 스톤을 <Gloria>(1999)에 주연으로 세워 강인한 여전사를 연기시키기도 했다. 또한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토마스 크라운 어페어>로 유명세를 탔지만, 촬영장에서의 괴팍한 성격[2]으로 악명을 떨친 페이 더너웨이는 루멧과 만난 76년작인 <네트워크>를 통해 더너웨이의 최고연기를 선보였다는 평과 함께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할 수 있었다.

마틴 스콜세지우디 앨런처럼 시드니 루멧도 뉴욕에서의 촬영을 매우 선호했다. 이는 그가 가진 할리우드에 대한 거부감이 컸는데, 그의 중후반기 영화 중 다수가 뉴욕을 소재로 하고 있다. 우디 앨런처럼 뉴욕을 매우 좋아해서 뉴요커로 칭하기도 했을 정도다. 루멧은 '나는 우디 앨런의 영화 속 세계관을 좋아한다. 그리고 뉴욕이 가진 수많은 면들, 이를테면 범죄와 예술, 지적 교양과 부패, 아름다움과 추함. 이 모든 것이 나에게는 영감이 된다. 이 도시가 리얼리티로 가득하다면, 헐리우드는 그저 판타지로 충만한 곳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데뷔년인 57년 이후 80년대까지 왕성하게 활동했지만, 88년 작인 <허공에의 질주> 이후로는 상대적으로 주춤하게 된다. 특히 99년 샤론 스톤을 주연으로 한 리메이크작인 <글로리아>가 흥행과 비평 양쪽으로 처절하게 망하면서 이제 '시드니 루멧도 갈데까지 갔다.'는 평까지 듣게 될 정도였다. 고령인 나이도 있고, 말년의 여러 작품의 실패로 인해 2000년대 들어서는 연출작이 거의 없다. 2004년의 HBO TV영화인 <스트립 서치>나 2006년작인 <Find Me Guilty>정도를 찍었지만, 크게 부각되진 못했다. 이대로 커리어를 마무리하나 했던 노장은 2007년 <악마가 너의 죽음을 알기 전에>의 비평적인 성공을 통해 그의 존재감과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시선이 여전하다는 것을 다시금 보여줬다. 그의 유작이 된 이 작품은 에단 호크, 필립 세이무어 호프만, 알버트 피니[3], 마리사 토메이 등이 출연했으며, 여러 평론가들이 선정하는 2007년에 나온 영화 Top10에 여러 번 선정되는 등,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2011년 4월 림프종 때문에 86세의 나이로 맨하탄의 저택에서 숨을 거두었다. 그와 친했던 우디 앨런은 그를 두고 '뉴욕 필름메이커의 정수'라 칭송했고, 마틴 스콜세지도 그의 영화를 두고 '우리의 통찰력은 그가 만든 <형사 서피코>, <뜨거운 오후>, <도시의 제왕> 같은 들로 인해 더욱 깊어지고, 넓어졌다.'라 말했다. 당시 뉴욕 시장이던 마이클 블룸버그도 그를 '우리 도시의 위대한 사관(史官)' 이라 칭했다. 스티븐 스필버그는 '영화계에서 가장 뛰어난 감독 중 한 사람'으로, 알 파치노[4]는 '그가 남긴 훌륭한 유산을 통해 많은 이들이 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는 내게 있어 가장 세련되고, 사려깊은 사람으로 기억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아카데미에는 <12인의 성난 사람들>(1957)[5], <뜨거운 오후>(1975)[6], <네트워크>(1976)[7], <심판>(1982)[8]을 통해 감독상[9]에 4회, 그리고 <도시의 제왕>(Prince of the City, 1981)으로 각색상에 1회, 총 5회 노미네이트 되었다. 가장 아까운 해는 대체로 10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된 76년의 <네트워크>로 보는데, 훗날 후일담에 따르면 루멧도 시상식이 끝나고 나서 이 결과에 불같이 화를 냈다고 한다. 앞서 열린 골든 글로브에서는 감독상을 수상했기 때문에 본인도 기대감이 꽤나 컸던 모양인듯 하다. 결국 2004년에 아카데미에서 평생 공로상을 수여해서 노감독의 마음을 달래주긴 했다. 이거 먹고 떨어져라 루멧 자신도 내심 감독상을 못 받은게 아쉬웠는지, 공로상 관련 인터뷰에서 '감독상 한번 받고 싶었었는데 젠장, 진짜 하나 정도는 줄만 하지 않았냐?'[10]라며 농담 섞인 말을 하기도 했다.

3. 대표작

  • 1957년 12인의 성난 사람들
  • 1960년 도망자(The Fugitive Kind)
  • 1962년 밤으로의 긴 여로(Long Day's Journey into Night)
  • 1964년 전당포 업자(The Pawnbroker)
  • 1964년 핵전략사령부(The Fail-Safe)
  • 1972년 형사 서피코(Serpico)
  • 1974년 오리엔트 특급살인
  • 1975년 뜨거운 오후(Dog Day Afternoon)
  • 1976년 네트워크
  • 1981년 도시의 제왕(Prince of the City)
  • 1982년 심판(The Verdict)
  • 1988년 허공에의 질주(Running on Empty)
  • 2007년 악마가 너의 죽음을 알기 전에(Before the Devil Knows You're De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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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가령 데뷔작인 <12인의 성난 사람들>은 2주 간 치밀하게 진행된 리허설 덕분에, 정작 본 촬영은 약 3주만에 끝이 났다. 이렇게 엄격한 리허설은 배우의 연기력을 극대화하려는 감독의 노력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부족한 예산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고육지책이기도 했다.
  • [2] 영화 차이나타운을 찍을때는 심지어 감독인 로만 폴란스키와도 으르렁댔고, 두 사람은 지금도 이 이야기하는 걸 매우 꺼려할정도로 사이가 최악이다. 더너웨이가 오줌을 컵에 담아 폴란스키에게 뿌린건 유명한 일화.
  • [3] 시드니 루멧의 74년 작품인 오리엔트 특급살인에서 에르퀼 푸아로를 연기했다.
  • [4] <뜨거운 오후>, <형사 서피코> 2개의 작품을 함께 했다. 루멧은 알 파치노의 메소드 연기를 극찬한 바 있고, 서로의 사이도 친밀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아카데미 공로상 수상때 시드니 루멧을 직접 소개했다.
  • [5] 수상은 콰이 강의 다리의 데이비드 린
  • [6] 이때 작품상 후보작들이 여러모로 엄청나다. 이 작품으로 감독상도 수상했으며, 차후에 아마데우스로 감독상과 작품상을 다시 한번 석권하는 밀로스 포먼의 <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가 수상작이고, 다른 후보작으로는 스탠리 큐브릭의 <배리 린든>, 로버트 알트만의 <내쉬빌>, 스티븐 스필버그의 <죠스>다. 전부 70년대 미국 영화의 걸작들로 손꼽히는 영화들이다.
  • [7] 수상은 록키의 존 G. 아빌드슨.
  • [8] 수상은 간디의 리처드 아텐보로. 쥬라기 공원의 존 해먼드로 유명한 그 사람이다.
  • [9] 작품상에도 전부 노미네이트되었다.
  • [10] 'I wanted one, damn it, and I felt I deserved 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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