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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오니즘

last modified: 2015-10-24 16:34:13 by Contributors


Zionism

이스라엘에 유대인의 새 국가를 되찾겠다는 민족주의 운동 및 그에 대한 사상이다. 일본 한정으로 소금을 숭배하는 사상이라 카더라

Contents

1. 개요
2. 역사
3. 초기 시오니즘
4. 충돌의 시작
5. 제1차 중동전쟁
6. 알 나크바
7. 연전연패
8. 현재의 시오니즘
8.1. 이라크
8.2. 이란
8.3. 이집트
9. 영토 수복드립
10. 아랍에서의 시오니즘
11. 관련 항목


1. 개요

시온(Zion)이란 원래 예루살렘 시가지 내의 언덕이름으로 예루살렘, 또는 '단에서 브엘세바까지'라고 대표되는 성경에 나오는 이스라엘인의 땅을 의미한다.

2. 역사

본래 이스라엘인은 성경에 따르면 이집트 난민 출신으로서 이집트 탈출로부터 40년까지는 어떤 명분으로도 자기 땅이라는 게 없었지만, 가나안 땅에서 선주민들과 섞이기 시작하며 서서히 이스라엘 땅에 기반을 잡아 국가를 수립했다. 아무튼간에, 이후 주변국에 위세를 떨치는 리즈시절을 맞이하기도 하고 스스로 내분으로 부침을 겪기도 하는 등 파란만장한 역사를 겪다가 네부카드네자르 2세(느부갓네살) 치하의 신바빌로니아에게 멸망당했다.

그 뒤로는 바빌론 유수라고 불리는 유대인의 타향살이 생활이 시작되며, 키루스 2세(고레스 대왕)의 페르시아가 바빌론을 공격해 멸망시키고서야 압제에서 풀려나 해방된다. 그러나 과거의 패권을 회복하지는 못하고 페르시아 치하에서 자치를 허용받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그렇게 속령으로나마 나름대로 터 잡고 자치를 누리던 유대인들은 AD 1세기에 로마 제국에 반란을 일으켰다가 티투스 황제(당시엔 장군이었다.)에 의해 수도 예루살렘이 파괴되고 추방되었는데, 이 사건 이후 유대인들은 계속 예루살렘의 회복을 희망하였다.[1]

그러나 진짜 크리티컬은 로마가 아니라 이슬람 제국에 의한 것이었다. 이슬람의 예언자 무함마드성전을 시작하며 아랍을 정복해 나가자 당시까지 중동에 산재하던 유대인들은 가장 먼저 반발하다 결국 처참하게 쓸렸고 생존자들은 타지를 떠돌게 되었다. 이른바 중동전쟁의 기원인 셈이다.

이곳에서 추방된 유대인들은 세계 각지로 흩어졌고 멀리는 아프리카로 가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유럽 지역에 남았다. 유럽에서는 가톨릭정교회 할 것 없이 유대인들을 대체로 멸시하였고, 때로는 전염병같은 재앙의 근원으로 지목되어 학살되기도 하였다. 유럽으로 이주한 유대인들은 이런 탄압을 겪으면서도 신앙을 지켜나갔다.

3. 초기 시오니즘

그런데, 19세기 민족주의 열풍이 불면서 시오니즘도 유대인 사회에서 새로운 근대적 의미를 갖게되고 드레퓌스 사건에 깃들어있는 반유대주의의 뿌리깊은 앙금을 목격한 유대계 오스트리아 기자 테오도르 헤르츨의 제창에 의해 국제 시오니즘 협회가 창설되고 당시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영토였던 팔레스타인 지역으로의 이주를 원하는 이들이 조금씩 늘기 시작했다.

특히 오스트리아-헝가리, 독일 제국, 폴란드 일대의 중부 유럽에 뿌리를 깊게 내린 유대인 좌파 노조들을 중심으로 '자본주의의 착취와 제국주의적 폭압에 병든 유럽을 버리고 유대인들이 평화롭게 살 수 있는 신천지를 개척하자'라는 메시지가 강력하게 퍼져 1920년대 경에는 상당한 규모의 유대인 이민자 사회가 팔레스타인에 형성되어 현지 아랍인들, 영국 식민 당국과 투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이 당시 유대인 정치 집단 중 조직화와 이데올로기적 무장이 가장 철저 했던 집단은 중부 유럽의 유대인 분트 (Bund), 각지 사회당-공산당의 유대인 조직 등 사회주의에 깊게 심취한 좌파였고, 이스라엘 건국을 위한 시오니즘 또한 원래는 좌파의 이데올로기로 시작했다. 모세스 헤스, 나흐만 쉬르킨, 베르 보로초프 등 시온주의의 초기 이론가들은 또한 동시대 사회주의 운동의 지도자들이기도 했으며, 베를 카츠넬슨, 다비드 벤 구리온, 골다 마이어 등의 많은 이스라엘 초기의 카리스마 넘치는 지도자들 또한 평생 뿌리 깊은 사회주의적 신념을 품고 살았다.

실제로 이들이 이스라엘 건국 이후 막장 민족 대결이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쓴 글들만 하더라도 순진한 건지, 이상이 지나친 건지 수 천년만에 팔레스타인에 유대인 국가가 떡 떨어지면 현지 아랍인들과 대립과 반목은 커녕 서로 서로 손 잡고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 평등한 이웃으로 존중하며 오순도순 잘 살 수 있을 거라는 (…) 희망이 넘친다. 대서아공영권.

시오니즘을 일반적인 민족 국가의 내셔널리즘의 땅이 없는 유대인 버전으로 보자면, 종교적인 우파의 관점에서 유대인 민족 국가를 얘기하기 시작 한 것은 이들보다 한 박자 늦게 활동을 시작한 블라디미르 야보틴스키가 소위 말하는 '수정 시오니즘'을 주장한 것이었다. 이스라엘 건국 초기만 하더라도 다수의 이민자들이 1차대전 이전만 하더라도 굉장히 화려한 문화적, 지적 발달을 영유했던 중부 유럽의 유대인들이여서 이런 고지식하고 단순무식한 민족주의보다 보편적이고 세련된 좌파 시오니즘을 선호했으나, 6일 전쟁을 기점으로 근대적 이데올로기에 전혀 관심을 두지 않고 살았던 중동의 유대인들이 대거 유입되기 시작하면서 이스라엘 좌파는 무너지고 우익이 등극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믿음 또한 이들이 결코 전통적인 종교적 관점에서 단순히 '우리민족끼리 혼자서 잘 먹고 잘 살 땅을 차지해야겠다!' 라고 주장하는 게 아니라 나름 미래지향적이고 건설적인 벨 에포크의 낙관적 계몽주의에 기반하여 시오니즘을 주장하였기 때문에 현실의 벽과 맞닥뜨리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이게 나름 호소력이 컸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단순한 병신짓 취급을 넘어 환빠에게 굳이 정치적 정체성을 부여하자면 '전형적인 팽창주의적 민족주의 극우'에 속하는 반면 시오니즘은 역사적 관점에서 동급으로 취급하기에는 문제가 있다.

사실 유대인-아랍인 할 것 없이 평등하게 잘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었다면 이렇게 문제가 되지도 않았겠지만.

4. 충돌의 시작

문제는 예루살렘 근방의 지역은 팔레스타인 아랍인들이 오랫동안 살아왔으며[2], 유대인 국가를 세운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이들과의 충돌을 의미했다. 사실 초기에는 유대인 사회의 설립이 반드시 팔레스타인과의 대척을 의미하지만은 않았지만, 상호 간에 폭력과 전쟁이 확대되면서 증오가 뿌리 박히게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유대인들은 더더욱 시오니즘에 집착하게 되었으며, 서유럽 여러 나라들은 나치의 홀로코스트를 방관했다는 빚과 민족자결주의, 격화되는 식민지의 독립 민족국가 수립요구 등으로, 또 소련의 경우에는 서유럽의 영향력이 막강한[3] 아랍지역에 공산국가[4]를 하나 더 늘리고 싶다는 생각 등등 각각의 계산에 따라 유대인 국가가 성립하는 것을 찬성했다.

대외정치적으로 유리하였으나, 국내적으로는 팔레스타인 지역에서는 유대계 민병대와 기존 팔레스타인 아랍인의 충돌이 반복되었다.

5. 제1차 중동전쟁

1948년, UN의 분리독립안에 따라 이스라엘의 건국이 선포되었다. 동시에 주변 아랍국가들은 일제히 이스라엘에 선전포고 하면서 제1차 중동전쟁이 발발했다. 아랍 연합군이 압도적인 전력을 보유하고 있어서 이길 것 같았는데, 유대인 무장조직이 필사적으로 싸우고 각지의 유대인 네트워크를 통한 지원 덕분에 이스라엘 측이 해버렸다(…).아랍:이런 씨발

전쟁 이전부터 약 1년간 무기 금수 조치가 있었기 때문에 당시 영국령 팔레스타인 식민지 내에는 소화기 이상의 무기는 없는 상태로 주변 아랍국가의 지원을 기대할 수 있는 아랍계가 유리했지만 유대계는 2차대전 중 영국이 롬멜을 상대하기 위해 예비로 모병해둔 부대 출신자와 유럽 각국에서 군경력을 쌓은 전역자들이 있어서 조직력 면에서는 우수했다.

제1차 중동전이 시작되면서 신생 이스라엘은 미리 수입해둔 공작기계로 간단한 무기를 생산하는 한편, 유럽과 미국 등지에 특사를 파견해 기부금을 모았고[5] 그 돈으로 2차대전 이후 처리에 고심하고 있던 구형 무기들을 긁어모으기 시작해 전쟁 초기에는 기갑 차량이나 공군력이 거의 전무하던 상황에서 후기에는 체코에서 전투기 등을 수입하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전력 격차를 메꾸는 데 성공했다.[6]

결국 아랍계는 우세한 무기와 전력체계[7]에도 불구하고 이집트, 시리아, 요르단 등의 이권다툼 때문에 참패하고 말았다. 자국 이득도 있거니와 내부 갈등도 컸다. 1차 중동전쟁 끝나고 겨우 3년만에 이집트 파루크 왕가가 쿠데타로 무너진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6. 알 나크바

물론, 제1차 중동전쟁에서 아랍 연합국이 승리했다면 유엔결의고 뭐고 이스라엘은 물론 없을 것이고, 유대인들은 아랍 연합국 군대에 학살당하거나 당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고 '팔레스타인 독립 국가'가 건설될 가능성도 낮은 것이 당시는 아랍 민족주의가 강성하였고 민족주의는 통일 국가를 지향하는 성향이 강하기 때문. 팔레스타인은 이집트, 시리아, 요르단에 분할되어 각국의 영토로 편입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지금의 이스라엘 북부는 시리아에, 중남부는 이집트에, 요르단강 지역은 요르단에 할당되는 식으로 쪼개졌을 것이며, 독립된 정체성을 가진 '팔레스타인'은 존재하지 않고, 이집트인, 시리아인, 요르단인만 존재하게 되었을 것이다. 게다가 중간에 팔레스타인이라는 단절된 지점이 없기 때문에 이집트와 시리아의 통일 운동이 결실을 맺어 아랍 연방이 나타났을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이집트의 막장짓으로 분열했기 때문에 또 내전했을 가능성도 없지는 않은데

아무튼 전쟁이라는게 원래 진 놈들은 할 말 없다(…)는게 법칙이다보니 아랍인에게는 엄청난 손해가 닥쳐왔다. 이 때까지 '아랍인'은 팔레스타인에 거주하는 사람들까지 모두 싸잡혀서 '적국 국민'으로 취급되다보니 팔레스타인에서 아랍인이 대규모로 추방되었던 것이다.

이 전쟁의 결과, 이스라엘에서는 아랍계 팔레스타인 인들이 추방되고 주변 아랍국가에서는 유대인들이 추방되면서 대규모 '인구 교환'이 일어난다. 이렇게 쫓겨난 사람들은 각국으로 수용되었으나, '고향으로 돌아가겠다'는 사람들, 추방되지 않고 남은 사람들은 '팔레스타인'이라는 지역을 바탕으로 공통된 정체성을 가지게 되었다. 단순히 '팔레스타인 지역에 사는 아랍인'이 아니라, 이스라엘이라는 '유대인 국가'의 그림자에 존재하는 팔레스타인이라는 (상상의 공동체로서) '아랍인 국가'의 청사진이 나타난 것이다.

오늘날까지 내려오는 팔레스타인의 비극이 시작되었다. 그래서 아랍국가들은 1차 중동전을 알 나크바, 대재앙이라고 부른다.

물론 이집트, 시리아, 요르단은 이대로 입 다물고 있을 생각은 없었고 이스라엘과 대립하게 되는데….

7. 연전연패

중동전쟁이라는 전쟁이 여러 차례 있었고, 몇번은 유리한 정국에 서기도 했으나 결국 최종적인 전쟁의 승리는 이스라엘에게 돌아갔다. 여러 차례에 걸친 전쟁에서 떡실신되고 결국 이집트와 시리아, 요르단은 이스라엘의 존재를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전쟁이 다 그렇다시피 진 놈들은 할 말이 없었다. 애초에 인정 안 하고 계속 싸우면 이스라엘이 군사력 만으로는 진짜로 나일 강에서 유프라테스 강까지 집어삼킬 기세라서 협상하고 평화를 지키는게 나았다(…).

이집트, 시리아, 요르단은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사이에서 중립을 지켰다. 더이상 반 이스라엘 정책을 펴지 않는다. 시리아는 아직도 적대관계이나 전략적 요충지인 골란 고원을 빼앗기고 그저 바라만 보고있는 수밖에 없다. 아니 시리아같은 경우는 서로 국경에서 포격을 주고받기도 하지만 그래도 시리아로선 이대로 평화적으로 대충 놔두는 분위기(물론 골란 고원은 포기 안 하지만)였는데 시리아 내전으로 더 엉망이 되면서 이스라엘에선 독재자 아사드 일가가 무너질 경우 이집트 꼴이 나지 않을까 우려중이다.

심지어는 이스라엘의 요구에 응해 자국 내의 팔레스타인 독립운동가들을 탄압하기도 했는데,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더 이상 이스라엘과 전쟁을 하지 않겠다고 국가적 시책으로 결정한 이상, 이스라엘과 전쟁을 하겠다며 실질적인 무력을 갖추려는 '아랍인 세력'을 국가 내부에서 보호해줄 이유가 없기 때문. 팔레스타인 후원을 유지하다가는 이스라엘의 공격을 불러오게 될 것이며, 그 결과는 나일강에서 유프라테스 강 까지(생략)

특히 요르단에서는 PLO를 강경하게 탄압했다. 이는 당시 팔레스타인을 지도하던 PLO가 입헌군주제 국가 요르단에서 지나치게 세력을 확대했기 때문에 왕가의 입지를 안정시키기 위해 숙청했다고도 할 수 있다. 아무튼 결과적으로 PLO는 요르단을 떠나 레바논으로, 다시 레바논에서 리비아로 본부를 옮겨야 했다.[8]

8. 현재의 시오니즘

시리아, 이집트, 요르단은 정리 되었으나, 일단 직접적으로 충돌(이들 나라들도 중동전쟁에 파병은 했다)하지 않은 이란, 이라크, 사우디아라비아가 다음 상대가 되었다.중동의 공적

8.1. 이라크

사담 후세인 시절에는 요르단을 사이에 두고 이라크와 이스라엘은 으르렁거렸다. 1981년에는 이스라엘 공군이 이라크에 있는 오시라크 원자로를 폭격하기도 했다. 원자로는 타격을 받았지만 목표로 하던 완전 파괴는 실패했고 결국 걸프 전쟁 때서야 미군이 엄청나게 폭격하여 비로소 완전히 파괴했다. 걸프 전쟁 이후 이라크가 너무나 약체화되어 이스라엘은 한시름 놓는가 했는데(...)

8.2. 이란

이란의 경우는 본래 이스라엘과 사이가 나쁘지 않았다. 일단 중동전쟁 당시 아랍 국가들이 이스라엘에 적대한 것이 '아랍 민족'과 '유대인'의 대립이라는 민족주의 경향이 강했다. 그런데 이스라엘과 이란은 둘 다 같은 아랍 민족이 아니다. 정치적으로는 같은 친미국가이기도 했다.

이란은 페르시아 민족이며 아랍인과는 언어적, 문화적으로나 인종적으로 전혀 다르다. 페르시아 민족은 자신들이 아랍인에 비해 더 문화민족이라는 자부심이 대단하고, 이란 민족주의자들은 과거 '페르시아 제국의 영광'이라는 역사적 의식도 가지고 있었다. 아랍 주변 나라들이 과거 페르시아 제국 땅이라고 자부하는 게 환빠와 비슷하다. 다만 환빠와는 엄연한 차이가 존재하는게, 이들이 주장하는 페르시아 제국은 실존했던 강대국이었다. 환국과는 다르다! 환국과는!

이렇게 이스라엘과 사이가 좋았던 이란란 이슬람 혁명 이후 이슬람 세력이 집권한 후 외교 방침을 180도 돌려 반미-반이스라엘 정책을 펼친다. 호메이니는 이슬람 영토를 점유하고 있으며 미국의 앞잡이 노릇을 하는 이스라엘을 "악마 제국"으로 규정하고, 이스라엘을 지도상에서 없애는 것을 국가적 사명으로 삼았다. 호메이니의 뒤를 이은 이란 지도자들도 마찬가지 정책을 펴고 있다.

현재 이스라엘과 이란은 서로를 제1의 가상 적국으로 삼고 있다. 물론 이란과 이스라엘이 직접적으로 전쟁을 벌일 가능성은 요르단과 이라크가 양국 사이에 있기 때문에 희박하다.

그러나 어쨌든 이란-이스라엘의 갈등은 심각한 편. 이란의 핵 개발도 사실상 핵 보유국인 이스라엘에 대항하기 위한 이유가 크다. 만약에 이를 저지하기 위해 이스라엘이 이란을 폭격할 경우에는 정말로 제3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는 헬게이트가 열릴지도 모른다.

이란의 반 시오니즘-반 이스라엘 정책은 사실, 종교적으로는 어쨌든 국가적으로는 '백해무익'하다. 막말로 "이란이 거기까지 가서 팔레스타인 점령할 것도 아니잖아?" 국제 정세적으로 보면, 이란이 반미라고 하지만 이스라엘은 일단 친미 국가라고 해도 기본적으로 자국 이득을 챙기는데 골몰하는 처지라서 '의외로' 반미 국가라고 해도 외교관계나 경제관계를 터놓고 지내는 미국 입장에서는 박쥐질하는 경우가 많다. 애초에 친미 진영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대한민국이나 일본도 직접 충돌이 없는 이란과는 그리 사이가 나쁘지 않다.

종교적으로도 이득이 나올 거리가 없다. 설사 이라크 남부의 시아파 벨트가 이란의 영향 아래 들어온다고 해도 이스라엘과의 사이에는 요르단, 시리아, 레바논 등이 있으며 모두 수니파가 강성하다. 이스라엘 망해봤자 그 자리에 들어설 '팔레스타인'은 시아파보다는 강성 수니파 국가일 가능성이 높다. 어차피 팔레스타인 독립운동의 양대 세력인 PLO하마스는 모두 수니파다. 이란이 도와줘봤자 수니파시아파의 천년전쟁이 마무리 되지 않는 이상 결국 팔레스타인도 이란을 적대하는 입장으로 돌아설 것이다. '유대인 세력'을 멸망시키는 것은 중동에서 '수니파 세력'만 늘려주는 셈이다.

그렇다고 이란이 이스라엘을 적대한다고 다른 이슬람 국가에서 좋게 봐주느냐? 그것도 전혀 아니다. 이란이 이스라엘을 적대하건 말건 수니파 국가에서는 시아파 맹주국을 자처하고 전혀 다른 '페르시아 민족'인 이란을 적대하고 경계할 것이다.

이란이 이스라엘 적대 정책을 취해서 얻을 수 있는 이득은 아무 것도 없다고 봐도 좋다. 객관적으로 보면 '아무 이득도 없이, 호메이니의 아집에만 집착'하고 이란의 이나 시아파의 이익에는 도움이 전혀 되지 않는 정책인 것이다.호메이니 노망이니

이란이 시아파에 기반한 세력확대를 노린다고해도 원교근공의 이론에 따라서 일단 이스라엘은 제쳐두거나 우호관계를 맺으면서 적어도 이라크를 넘어서 레바논 까지 시아파 벨트를 확대하고, 그 다음에 적대 정책으로 돌아서는 것이 순리에 맞다.

8.3. 이집트

이집트도 2011년 독재자 호스니 무바라크가 몰락하면서 이스라엘에겐 비상이 걸렸다. 8,000만에 달하는 인구를 가지고 아랍권에서 정보 및 여러 모로 중요한 나라이자 이스라엘과 국교를 맺고 친미 국가가 되면서 미국제 무기를 도입하던 이집트가 단기간에 친미 독재자를 잃은 셈. 군부는 아직도 무시 못하나 여론은 반군부에 이슬람 형제단을 지지하고 1차 총선에서도 이들이 압승을 거두는 통에 이스라엘로선 30년 넘도록 평화를 유지한 이집트와 충돌도 염려해야 할 판국이었다. 하지만 다시 군부 쿠데타가 성공하고 오히려 무슬림 형제단이 몰락하면서 이스라엘은 이집트 쪽은 다시 정리된 상황이다.

9. 영토 수복드립

이스라엘 극우파[9]들의 주장. 이들은 잃어버린 땅을 되찾아야만 한다고 주장하는데 이들이 말하는 잃어버린 땅은 나일 강유프라테스 강 사이의 모든 영역이다(...)

내 강역을 봐줘 어떻게 생각해? 크고 아름답습니다.
3000년 전 이스라엘의 전성기였던 다윗왕 때 유대 왕국의 영토가 그 정도였다고 성경에 언급된다고 한다. 이는 레바논(400만), 시리아(2400만), 요르단(640만) 전 영토와 이라크(2800만) 반절 이상을 합친 범위인데 대충 현재 이스라엘 면적의 25배 정도? 덕분에 1982년 이집트에게 시나이 반도를 반환할 때 극우파의 반발이 극심했다. 심지어 극우 민병대들이 시나이에 또 다른 이스라엘을 건국하겠다고 주장할 정도였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시나이 지역을 돌려준 가장 큰 까닭은 도무지 자기들로선 여길 지배하는 게 어렵기 때문이었다. 이스라엘 내 지식인, 전문가들도 이스라엘 극우 환빠들의 엉터리 주장 영토는 설령 전쟁을 통해 차지한다 해도 계속 관리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의견을 모은다.

사실 전쟁으로는 일단 이집트는 한 번 박살내면서 나일 강 부근인 카이로 인근까지 진격했고, 시리아 역시 이집트와 별 다를 바 없는 상황이었을 때도 있었으므로, 시리아 끄트머리의 유프라테스 강까지는 진격할 수 있을 것이다.말로는 가능함

그러나, 현재 팔레스타인조차 관리하지 못하는 6백만 수준 이스라엘 인구로 현재 인구 6천만이 넘는 저 지역을 지배한다? 절대로 불가능하다.이스라엘군이 5대 1의 교환비만 10년쯤 보여주면 알아서 멸망 물론 이스라엘이

그런데 이걸로도 부족한지 사우디아라비아이집트, 쿠웨이트 영토 상당수에 터키이란,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일부, 거기에 아예 키프로스 전역까지 지들 땅이라며 갈수록 그 억지가 늘어나고 있다...[10] 위 아 더 월드 여기 포함하면 사우디아라비아(인구 2700만)와 이집트 상당 부분에서 이젠 쿠웨이트땅 통째로에 터키이란 땅 일부까지 무려 3억 3천만이 넘는 인구(참고로 터키(7500만)와 이란(7600만), 이집트(8100만),겨우 이 3나라 인구만 합쳐도 2억 3천만은 거뜬히 넘어간다!)를 지배하겠다고 나서는 셈. 정말 이런 게 이뤄지면 본격 이스라엘 헬게이트 성립. 아니 정말 이스라엘이 저런다고 무력을 동원하다간 세계대전급 전쟁이 벌어질테고 이스라엘은 정말로 확실하게 멸망한다. 사우디아라비아, 터키, 이집트와 전쟁하는 이스라엘을 뒤에서 보며 한숨쉬며 그 뒷감당해야할거 생각하면서 주름이 팍팍 생길 미국을 볼수있을듯

단지 인구가 많아서가 아니라 팔레스타인이나 종전 중동전쟁과 차원이 다른 전쟁이 된다.이집트만 해도 아랍 지역에서 군사강국이며 4차 중동전쟁에서 이스라엘에 막대한 피해를 끼친 승리를 거뒀고 이후 이스라엘과 국교 수립으로 미국제 무기를 상당히 들여와 무장했다. 게다가 심심하면 터지는 이슬람 과격파 토벌 및 수단과 리비아와 국경분쟁으로 실전경험도 틈틈히 쌓았다. 거기에 역시 상당한 군사강국인 터키만 해도... 거기에 키프로스까지 먹는다고 이스라엘이 개기다간 키프로스를 자기땅으로 여기는 그리스가 분노할 것이 뻔하며 터키랑 그리스는 NATO 가입국이다... 이스라엘이 개털리지 않아도 그 피해는 종전 전쟁과 차원이 다른 피해를 입은 게 뻔하다. 그리고 사실 저정도 전력차이면 당연히 이스라엘이 개털릴수밖에 없다. 적어도 이승에서 히브리어 듣기 힘든 세상이 될거라는건 확실하다.(...)진짜로 일어나면 나토의 이름으로 터키와 그리스를 때리는 미국 응?

그럼에도 저게 가능하다고 믿는 시오니즘 광신도들도 있는데 이들이 내세우는 논리가 영국이 이보다 훨씬 넓은 인도에서 많은 나라들을 식민지로 가졌으며 야,적어도 영국은 식민지는 옛날부터 우리땅이니 정당한 땅먹기라고 안했다.영국보다 훨씬 작은 나라인 네덜란드인도네시아를 식민지로 가졌다느니 이런 경우가 얼마든지 있으니 전혀 불가능하지 않는다고 망상에 젖어있다. 생각하면 할수록 개소리 중 개소리. 영국이 인도를 차지할 수 있었던 건 그 인도가 지금의 인도 공화국이 아니었던 소리였다. 그 영국조차도 인도 대륙에 있던 원래 크고 작게 나뉘어진 많은 나라들을 다먹는데 200년이 걸렸다는 건 생각도 못한다. 이들이 서로 남남이었다가 영국에 따로국밥으로 싸우거나 아니면 자기들끼리 서로 싸우느냐 멸망했던 것도 모르는 듯. 인도네시아 또한 네덜란드가 1602년에 단숨에 식민지로 먹은 게 아니며 1602년부터 1904년까지 무려 302년에 걸쳐 여러 나라이던 인도네시아 섬나라들을 하나하나 개고생하며 차지한 것이다. 그러나 지금이라면 과연 그럴까? 그 대영제국이 인도점령에 200년이 걸렸으면 이스라엘의 땅찾기운동은 2만년쯤?

그런데 우습게도 이스라엘 리라 동전에 새긴 지도가 이스라엘 땅 뿐 아니라 팔레스타인과 위에 열거된 나라들 지도까지 새겨져 있다. 즉 돈에도 이런 짓거리를 공식적으로 인정했었다. 이 엄청난 패기를 높이 사줘야하나... 덕분에 이집트와 요르단에서 항의를 했음에도 배째라모드. 다만 2014년 현재 이 동전은 쓰여지지 않는다. 2012년 여행자들이나 책자에서도 현지에서 봤다고 증언하는게 나온 걸 보면 하두 주변 나라들의 비난에 일단 안 쓰는 모양이다.

위 문단의 내용은 좀 어폐가 있다. 영문 위키피디아에서도 음모론으로 분류하고 있는 것을 당연한 사실인 양 기재하는 것은 옳지 않다. 시오니즘을 비판하는 입장에선 그럴싸해 보이긴 하지만, 이스라엘이 "공식적으로 인정했다"고 하는 것은 명백한 거짓. 음모론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차치하고도, 사실만 두고 보자면 이스라엘과 불구대천의 원수 관계인 팔레스타인의 예서 아라파트 대통령이 그렇다고 주장한 것이 시초이며, 당연히 이스라엘은 이를 부인했다. 이스라엘 측의 말로는 'Mattathias Antigonus II' 치세하의 금화 유물의 외형을 따라 그린 것 뿐이라고 한다.

참고로 해당 도안은 이스라엘 중앙은행의 마크이기도 하다. 우측과 상단이 많이 갈려나갔지만, 좌측 하단의 톱니바퀴 모양으로 난 자국은 이 모양이 동전을 본뜬 것이라는 이스라엘 측의 해명에 무게를 실어준다.

음모론자들이 주장하는 "Greater Israel" 지도의 예 1. 자세히 보면 시나이반도-이스라엘로 이어지는 지중해 해안선이 맞지도 않으며, 홍해를 어중간하게 가르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지도라며?

음모론자들이 주장하는 "Greater Israel" 지도의 예 2(...). 이쯤되면 이스라엘이 그냥 싫은거다

10. 아랍에서의 시오니즘

당연히 말이 필요없다.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시오니즘 자체가 유대인과 유대교를 찬양하는 주의이자 잃어버린 유대국의 영토를 수복한다는 뜻이 담겨있기 때문에 이스라엘을 제외한 아랍 대부분은 이 시오니즘에 대해서 혐오감을 가지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전통적인 이슬람 율법을 통해서 시오니즘 찬양을 금지하고 있고 그 외 다른 아랍국가들도 이슬람 율법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시오니즘에 대해서 적시하거나 불온적으로 여기고 있는 상황.

특히 이스라엘 주변국인 레바논, 시리아 등 이슬람교 국가 입장에서는 자기네 영토가 포함되어 있는 것 때문에 더욱 시오니즘에 대한 혐오성향이 짙다. 그것도 이슬람교가 아닌 유대국의 영토라는 점 때문에.

11. 관련 항목

  • 무슬림 시오니즘
    처음에 들으면 해괴한 소리 같지만 이 또한 우리의 이슬람권에 대한 무지 때문에 그렇다. 생각해 보면 전 세계 13억의 신도를 자랑하는 이슬람교가 정치적으로 단합되어 있을 리가 있겠는가? 이슬람교의 교리가 워낙 세속적 사회 생활과도 연관이 깊어서 생기는 오해지만, 이슬람권의 정치적 분열은 천년 전 1차 십자군을 가능하게 한 것부터 시작하여 현대까지 엄청나게 뿌리가 깊다.
    당장 통계적으로는 절대로 이스라엘측이 이길 리가 없는 전쟁이었던 1차 중동 전쟁만 하더라도 게릴라전이라면 먹고 사는 일상인 베두인들과의 동맹이 승리에 큰 공헌을 했으며, 이 베두인 여단은 지금도 이스라엘 군에서 엘리트 부대 중 하나로 대접 받고 있다. 이때 또 한창 영국이 저지른 뒷통수에 아랍인들과 반목하며 민족 국가를 형성하려고 했던 쿠르드 족 또한 이스라엘을 지원했고, 아랍 국가이기 하지만 베르베르인들도 많으며 정치적으로 나머지 아랍 국가와 비껴나가 있던 모로코 등, 적지 않은 수의 무슬림들이 대놓고 얘기는 안해도 이스라엘을 역사적으로 지원해왔거나 지금도 지원하고 있다.

    또한 이스라엘 또한 어쨌든 영토를 갖춘 국가로서 자리잡은 지 반 세기가 지났고, 이스라엘 국적을 지닌 아랍인들도 인구의 최소 20%이며 이들에 대한 대접도 정당을 따로 갖추고 활동하고 있는 만큼 막장 일변도도 아니니 개중에는 종교건 뭐건 일단 정체성 자체는 세속적 민주 공화국인 이스라엘에 나고 자라 이스라엘을 조국으로 생각하는 아랍 무슬림들이 있는 것도 당연하다. 이스라엘이란 나라 자체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단순하지 않다.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는 또라이짓 많이 하고 다니며 사방이 적인 이 쪼그만한 깡패 나라가 반 세기동안 지속해 오는 것도 이러한 복잡한 역사적 상황이 알게 모르게 도움이 되기도, 해가 되기도 하였기 때문이다.

  • 유대교 반 시오니즘
    시오니즘을 반대하는 유대교 종파 및 단체들도 있다. 이들은 시오니즘은 유대교에 대한 모독이라고 하면서 이스라엘을 비난하고 있다. 비유대인 반 시오니스트들과 논리를 같이 하는 세속적 유대인들의 반시오니즘은 논외로 치고, 유대교 자체의 종교적 관점, 즉 굳이 말하자면 보수적 관점에서 이스라엘에 반대하는 이들의 주장은 '신이 유대인들을 나라 없는 떠돌이 민족으로 지냈던 것은 하나님의 뜻이었다'라며 유대 민족의 구원은 신이 보낸 메시아에 의해 이루어 져야지, 인간의 손으로, 그것도 원쑤인 세속주의자 좌파들이 새운 세속 국가 이스라엘은 인간이 하나님 흉내를 내려는 신성모독이란 관점이다. 이들의 일부인 네투레이 카르타의 웹사이트 #
  • 문화적 시오니즘
    시오니즘의 발흥과 언어면에서 히브리어만 써야한다는 엘리에제르 벤 예후다의 운동으로 이디시어는 '오염'된 언어 취급받아 명맥만 이을 정도다.
  • 읽을거리
    이스라엘 정보국 전 국장과의 인터뷰 (슈피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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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예루살렘에서 쫓겨난 것이지 이스라엘에서 쫓겨난 것은 아니다. 따라서 티투스 이후에도 로마제국이 유지되는 동안 유대인들은 정치, 문화적 중심지가 북부로 이동하기는 했지만 오늘날의 이스라엘 지역에 살고 있었다.
  • [2] 팔레스타인의 기원을 다른 곳에서 살다가 그곳에 정착한 사람들이 아니라 사실 그곳에 남은 유대인의 후손이라고 하는 학자도 있다. 물론 이슬람교아랍어를 받아들여서 아랍화 되었기 때문에 현재는 아랍인으로 보는 것이 맞다.
  • [3] 지금의 상황과는 매우 달라서 당시에는 이집트나 시리아, 이라크와 요르단 등의 왕가가 친서구적 성격이 강했다.
  • [4] 사회주의 세력이 위축된 지금 관점에서 보면 이상하게 느껴지겠지만, 이스라엘 건국 이후 오랫동안 제1당은 노동당이었다. 오늘날에도 이스라엘에 남아 있는 부츠 집단농장들이 공산주의적 이상주의자들의 흔적.
  • [5] 이때 미국에 파견되었던 사람이 나중에 이스라엘 최초의 여수상이 된 골다 메이어.
  • [6] 이때 체코에서 Bf-109를 수입하다 보니 이집트군이 사용하는 스피트파이어와 묘한 공중전을 치르기도 했다.
  • [7] 특히 요르단 군은 영국군의 지도를 받아 아랍군단이라고 불리며 아랍계 최정예로 불리는 서구식 군대를 보유하고 있었다.
  • [8] 자세한 내용은 베이루트에서 예루살렘까지 참고.
  • [9] 세속주의자도 있고 하레디도 있는데 최근 그 세력이 빠르게 늘고 있다.
  • [10] 김어준<건투를 빈다>에서 남한 절반도 안되는(...) 작은 나라를 대제국으로 뻥치는게, 환단고기나 비슷한 수준이라고 깠던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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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modified 2015-10-24 16:3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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