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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나라

last modified: 2015-04-11 13:43:04 by Contribu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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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역사 속에서 이라는 국명을 사용했던 국가.

Contents

1.
2.

1.

주나라서주 시대 있었던 국가. 나라가 아니다. 라고 하며 성씨(姜), 작위후작. 현재의 남양에 위치하고 있었다.

태자가 외손자였기 때문에 권력의 실세로 자리잡았으나, 태자가 폐위될 위기에 처하자 , 서융, 등을 불러들여서 이들과 연합하여 주를 공격, 춘추전국시대의 계기를 제공한다. 이윽고 춘추시대 초기였던 원전 688년 의 공격으로 멸망한다.

2.

중국의 역사
전한(서한) 후한(동한)

전한후한 사이에서 잠깐 있었던 단명 왕조로 일반적인 역사 구분에는 역대 왕조에 포함되지 않지만 전한과 후한 사이에 공백이 있기 때문에 서술한다.

전한의 관료였던 왕망왕망했다 쿠데타를 통해서 건국했다. 당시의 문제였던 호족 지배를 타파하고자 급진적인 토지제도와 정책을 시행했으며, 흉노에 대한 대규모 원정을 추진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나친 급진적 성격 때문에 각계각층의 반발이 극심했다. 이를테면 왕망은 신을 건국하면서, 모든 관료의 봉급을 없애고 순수 봉사직으로 만들어버렸다. 그야말로 충격과 공포. 왕망은 모름지기 관리란 백성에게 봉사할 마음으로 해야지 돈 벌 목적으로 해먹으면 한나라 꼴 난다 생각하여 이렇게 관료제를 개편한다. 신 왕조에 빌붙으면서 그래도 개국공신인데 좀 챙겨주겠지 설레발 치던 신나라 처음이자 마지막 관료 계층은 진실되게 먹고 살 길이 없어서 뇌물에 의존하게 되었고, 이는 신을 말아먹는 직격탄이 되었다. 농민은 농민대로 망한 것이 유교제당, 유학소 등의 몇몇 극소수 예외를 제외하고는 사유재산을 대부분 인정하지 않고, 은주시대의 정전제(井田制)를 강제로 시행하게 했다. 그나마도 천천히 시간을 두고한 것이 아니라 뭣처럼 하루아침에 끝내버려서 호족, 평민 할 것 없이 엄청난 혼돈에 빠지는 결과를 만들고 만다. 호족의 세력을 억제하기 위해서라는 의도는 좋았지만, 그 방법이 너무 막가파라서 제대로 시행되지도 못하고 혼란만 가중되었다.

그리고 대외 원정을 위한 물자 공출까지 더해지자, 관료들의 엄청난 수탈+사유재산 불허+호족의 반발 등등 모든 국가 막장 테크의 징조가 더해져 각지에서 적미당, 녹오미당과 같은 반란이 속출, 결국 왕망은 경시제군대에 의해서 붙잡히고 죽음을 당하고 신도 멸망한다. 특히 왕망의 최후는 대단히 끔찍해서 그야말로 천참만륙을 당했다고 한다. 왜냐하면 장안이 함락될 당시에 농민군들이 먼저 왕망을 발견했고, 경시제가 왕망을 죽이는 자에게는 후한 상금을 주겠다고 했기에 공적을 탐한 농민군은 왕망의 몸뚱이는 물론이고 다른 사람의 팔다리까지(…) 잘라서 바쳤다고 한다. 초의 항우도 비슷한 이유로 산산조각 나긴 했었지만 이정도는 아니었다(...)

뒷날 왕망은 역적의 대명사로 두고두고 까이게 된다. 심지어 1,800여년이 지난 청나라 때까지도 까인다. 중국의 대표적인 흑역사 중의 흑역사.

그래도 호족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문제의식 만큼은 어느 정도 평가를 받는 편이다.

대수 묘호 시호 이름 출생 사망 연호 재위기간 능호
1대 - 가황제(假皇帝)
섭황제(攝皇帝)
왕망(王莽) BC 45 AD 23 시건국(始建國) 9 ~ 13
천봉(天鳳) 14 ~ 19
지황(地皇) 20 ~ 23
8 ~ 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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