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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대철

last modified: 2015-03-04 08:08:19 by Contributors

  • N.EX.T의 리드보컬을 찾아오셨다면 신해철 항목으로. 사람들이 얼마나 헷갈리면 동명이인도 아닌데 이런 문구가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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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ents

1. 프로필
1.1. 소개
1.2. 가족
1.3. 발언
2. 활동사항
2.1. 음악활동
2.1.1. 데뷔
2.1.2. 참여
2.2. 교직
2.3. 방송활동
2.4. 수상경력
3. 이야기거리
4. 바른음원협동조합


1. 프로필


1967년 2월 16일 생.(서울특별시) 서울고-서울예술대학 졸업

대한민국기타리스트, 작곡가, 록밴드 시나위(밴드) 리더
에코브리드(Echobrid Music Company) 대표이사

서울종합예술전문학교 (학부장)
한국가온예술종합학교 (학부장)

1.1. 소개


시나위(밴드)기타리스트. 대한민국 3대 기타리스트[1]. 고등학교 시절 부터 한국 락의 대부 신중현의 아들[2]이면서 뛰어난 기타 실력으로도 유명했으며 시나위의 리더였다. 83년에 시나위(밴드) 결성, 86년에 데뷔했지만 그 전부터 인지도는 상당했었다.[3] 이후의 행적은 시나위(밴드) 참조

1.2. 가족


아버지 신중현, 동생 신윤철, 신석철 하지만 신해철이 그의 동생이라고 생각하면 심히 골룸하다. ;;
참고로 동생 신윤철은 기타리스트 겸 테크노DJ, 막내 신석철도 재즈드러머로 모두 음악인이다.

1.3. 발언


그가 남긴 명언으로는 TOP밴드 코치 결정전에서 남긴 "후회하지 말고 저한테 오시면 됩니다" 가 있다. 코치 결정전에서 게이트 플라워즈와 리카밴드 둘을 선택한 상황에서 후반부에 '갈 길 잃은 밴드'들을 포섭하기 위한 말이었다.

2. 활동사항


2.1. 음악활동


2.1.1. 데뷔

1986년 시나위(밴드) 1집 앨범 Heavy Metal Sinaw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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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사진은 임재범이고, 아랫사진의 왼쪽이 신대철이다.

2.1.2. 참여

임재범, 서태지 1집, 이승철, 박광현, 이현우, 김종서, 박상민, 손성훈, 김장훈, 이상우, 이소라, 이은미, 크라잉 넛 등 80여 명의 가수, 뮤지션 음반 작곡, 편곡, 작사, 연주 및 프로듀싱.

영화 '나에게오라', '북경반점' 등 음악감독.
EBS 다큐멘터리 '시베리아 호랑이', 역사 복원 시리즈 '두만강에서 흑룡강까지' 음악감독.

시나위(밴드) 전집, 신대철 독집앨범 코로나(Corona), 신대철과 자유 1집, D.O.A
도시락특공대 2집 참여 등

2.2. 교직


2010.12~ 서울종합예술전문학교 실용음악예술학부 학부장
2013.12~ 한국가온예술종합학교 실용음악예술학부 학부장

2.3. 방송활동


KBS 밴드 서바이벌 TOP밴드에 코치진으로 출연.
2012년 9월 MBC 나는 가수다 2시나위(밴드)를 재결성하여 출연.

2.4. 수상경력

3. 이야기거리

기타 친다 하는 사람들에게는 유명한 명언인 '기타가 펜더면 뭐하나 손가락이 펜더여야지' 라는 지름신 물리치는 말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블루스와 메탈을 기반으로 한 80년대 뮤지션임에도 의외로 음악적 성향이 진보적인데, 나는 가수다 2와 새 앨범 Mirrorview에서 보여준 일렉트로닉 사운드나 '슬픔의 이유'등에서 사용된 우쿨렐레 등의 악기를 새로운 걸 받아들이기 힘든 나이 임에도 스스로 배워서 수준급의 연주를 보여주었다! 물론 기타를 오래 쳐서 운지법 등이 익숙한 건 감안해야겠지만 말이다.

성격은 리더쉽이 강하고 음악적인 고집도 좀 있는 편이라고 한다. 그래서 시나위의 역대 보컬인 김종서임재범보다 동생이면서도 시나위의 리더를 맡았고, 어느정도 불화도 있었다카더라. 더불어 시나위에 있던 서태지도 신대철을 많이 무서워 했다고.[4]

더불어 신중현과 더불어 말이 하도 없어, 시나위 데뷔후 부자 락커로 인터뷰를 진행했을 때 거의 예,아니오 로만 대답을 하여 인터뷰 진행이 매우 힘들었다고 한다. 지금도 사실 말은 별로 없는 편이라고...

그리고 지인의 꼬임에 힘입어 페이스북에 가입했다!! 매일 자신의 장비 사진을 올리거나 개인적인 감상 등을 적는 등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현재 팔로워가 10000명이 넘은 상황. 조용필의 빼앗긴 저작권 이야기나 이철호의 사랑과 평화 상표권 등록 문제같은 음악계에 대한 문제 제기를 하거나 송포유를 까는 등 페이스북을 시사적으로도 잘 쓰고 있다. 그런데 가끔 '해장국에 들깨를 넣으면 술이 들(덜)깨' 같은(...) 개드립도 치거나 넘을 수 없는 벽이라면 부숴버리겠다! 같은 말(...)을 하는 등[5] 어째 개그 캐릭터가 될 가능성도 엿보인다...

최근에는 국산 하이엔드 기타를 메인 기타로 사용 중이다. 역시 명필은 붓을 가리지 않는다.국산이여도 하이엔드면 좋은붓이 아닌..

그리고 역시 한국의 명 기타리스트들인 김도균, 목경과 함께 펜더에서 커스텀 기타를 헌정 받았다! # 아버지 신중현에 이어 부자가 펜더 사에게 기타를 헌정받은 셈.

신해철의 돌연사 이후 신대철이 "복수해줄게"라는 글을 페북에 올렸고, 이것이 촉매가 되어 의료사고에 대한 이야기가 커졌다.[6] 이후 신해철이 수술을 받은 병원과 병원장에 대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였고, 이후 이미 화장을 결정했던 유족을 설득하여 검시를 받게 하는 등의 움직임으로 이어졌다. 오직 신대철만의 생각이나 행동은 아니었겠지만[7][8] 그 나름의 방식으로 행동하고 있는 셈. 실제로 이후 관련 시사 프로에서 모습을 비추며 유족의 입장이나 당시의 상황을 전달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본인의 페이스북에 신해철이 생전에 선물했던 기타를 공개하여 많은 사람들을 착찹하게 하엿다.

다만 그를 감안해도 결국 인터넷 여론이라는 한계 속에 "복수해줄게"라는 표현이 너무 극단적이고 과하다는 인상도 주었다. 의료과실에 대한 책임을 지게 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옳은' 일이고, 그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은 엄밀히 말해 복수와 다른 개념이다. 즉, 페북의 뜻을 우호적으로 해석해도 '복수'라는 표현은 '틀렸다'. SNS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형식과 내용 그리고 행동의 합치인데, 이에서 부족함을 보인 것.

4. 바른음원협동조합

페이스북에 현재의 음원 유통 방식에 대한 쓴소리를 남겼다. # 그리고 말 한마디에 그치지 않고 '바른음원유통협동조합'이라는 새로운 방식의 음원 유통조합을 구상중이라고 밝혔다. # 관심있는 사람은 바른음원유통조합 추진위원회 페이스북을 참고하자.

2014년11월 현재 홈페이지가 열렸다. 조합원 가입신청을 받고있으며 출자금 5만원을 납부하면 정식 조합원이 된다. 창립하면서 바른음원유통협동조합 이름이 길었는지 바른음원협동조합 으로 다소 짧아졌다. 그렇지만 유통을안하는것 은 아닌듯, 홈페이지에 따르면 음원MP3 서비스 사업과 음악의 유통사업, 그리고 공연 사업을 '다른 회사보다 이윤을 적게 남기면서 진행할 예정이라고 한다. 정말 돈없는 인디 음악인들에겐 단비 같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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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라고는 하지만 과거엔 앞에 대한민국이라는 단서는 안붙었다. 최근들어 어느정도는 과장된 듯한 면이 있다. 80년대 당시 헤비메탈 씬에서의 3대 기타리스트라고 하는 편이 좀 더 어울린다.
  • [2] 신중현이 대마초 파동 및 금지곡으로 활동이 사실상 불가능 할 때 신대철이 기타를 배웠다고 한다.
  • [3] 기타에 손을 대지 않고 소리를 낼 수 있다는 황당한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 [4] 서태지가 시나위에서 탈퇴할 때 정식으로 선언하고 탈퇴한 게 아니라, 담배 심부름하러 나갔다가 그대로 돌아가지 않고서 탈퇴해버렸다는 이야기가 유명하다.
  • [5] 근데 저 말은 나중에 신곡 가사가 된다.
  • [6] 신해철의 지인이자 그 자신도 저명성을 확보하고 있었기에 정보의 소스가 되어 여론을 형성한 것이다. 만약 의료사고에 대한 논의가 내부적으로만 오갔다면 의료사고에 대해 접근성과 전문성이 떨어지는 기자들을 쉽게 움직이지 못했을 것이다. 그들 자신이 쓴 기사를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실제로 S병원은 의료사고 여론이 일자 고인이 관리를 잘못했을 거라는 책임전가와 함께 법적인 조치를 취할 것이라 경고했었다. 그러던 차에 신대철의 페북글로 자신을 향해 주의를 끌게 하며 의료사고 자체에 대한 여론을 환기시킨 것이다. 거창해보이지 않을 지 몰라도 명예훼손 등의 주체가 되어 총대를 멘 것.
  • [7] 실제로 검시를 적극적으로 주장하고 유족을 설득한 것은 이승철남궁연 등으로 알려져 있다.
  • [8] 더 정확히는 언론인 이상호 기자가 소속사 대표를 설득하여 음악인들이 동의하고 다시 유가족을 설득한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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