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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센구미

last modified: 2015-09-26 16:05:33 by Contributors

新選組


Contents

1. 막부 말기 시절의 무사집단(新撰組)
2. 신센구미의 정체성 논란
2.1. 수구꼴통 정치깡패?
3. 이미지와 실제
4. 관련 인물
5. 검술 실력
6. 국중법도(局中法度)
7. 관련 매체
7.1. 신센구미를 소재로 만든 작품
7.2. 학원☆신센구미의 신선조 (新選組)
7.2.1. 국중법도
7.3. 은혼진선조(真選組)

1. 막부 말기 시절의 무사집단(新撰組)

신찬조(新撰組) 또는 신선조(新選組). 별명은 미부의 이리들(壬生狼).[1]

국내에서는 신선조(新選組)라는 번역이 널리 알려져있는데, 이는 撰(지을 찬)과 選(가릴 선)이 같은 한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撰은 '지을 찬'외에도 '가릴 선'의 의미도 지니고 있으며, 이 의미로 보면 選(가릴 선)이 번역시 더 원어쪽에 가깝기 때문이다. 실제로 현재 일본에서도 新選組와 新撰組를 같이 사용하고 있다.
과거 자료에는 찬을 쓴 것도 있고 선을 쓴 것도 있다고 한다.

개그로 쓰이면 가끔식 가운데의 찬자를 鮮(고울 선)으로 바꿔서 新鮮組(신센구미)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렇게 되면 Fresh club이니까 그야말로 개그(…).

정치적인 면에서는 다소 복잡한 조직이다. 널리 민간에 알려진 신센구미는 막부를 철저히 보호하는 치안 및 준군사조직으로, 좌막파(佐幕派, 사바쿠하)이며 주로 교토지역의 치안을 담당하는 것을 목적으로 했다. 당시에는 한참 교토를 노리고 존왕양이파(덴노를 받들어, 외국을 격퇴하지 않으면 일본에 미래는 없다는 사상)들이 몰려들었기 때문에 치안강화의 필요성이 생겼고 따라서 자연스럽게 신센구미가 그 자리를 차고 들어갔다.

원래는 쇼군 호위를 명목으로 한 로시구미(浪士組)가 그 유래. 문제는 로시구미를 창설한 키요카와 하치로가 미토 번사로 존왕양이론자였다. 결국 쿄토에 입성하자마자 존왕양이를 주장했고, 결국 미마와리구미의 사사키 타다사부로에 의해 살해당하며 로시구미는 와해되고 만다. 와해된 뒤 교토에 남은 24명이 스스로를 미부로시구미[2]라고 자처했고 이것이 후에 교토의 치안을 담당한 아이즈번의 번주였던 마츠다이라 카타모리의 예하에 들어가서 신센구미로 발전하게 된다. 즉 좌막을 자처하고 조직을 만든 자가 갑자기 조직을 자기 멋대로 토막파의 정치운동에 동원하려고 하니 당연히 막부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모여든 조직원들 사이에서 반발이 생긴 것인데, 문젠 미부로시구미를 만드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한 세리자와 카모도 존왕양이의 대표격인 미토 번사이며 과격한 존왕양이 운동을 하다 죽을 뻔한 인물이었다는 점이다.

이렇게 조직의 내부에 불안과 갈등을 껴안은데다 신분을 따지지 않고 구성원을 모아들였기 때문에 조직을 유지하기 위해서 히지카타 토시조가 생각한 방법이 좌막의 기치에 따르지 않거나 기준에 못미치는 자에 대한 가차없는 피의 숙청. 신센구미는 적에게 죽은 사람보다 내부 숙청으로 죽거나 쫓겨난 사람이 더 많을 정도이며, 초대 국장 세리자와 카모도 예외는 아니었다. 적군파인가

이후 이케다야 사건(교토에 불을 지르고 덴노를 납치한다는 과격한 테러 계획을 위해 이케다야의 2층에서 회의하던 존왕양이파 지사들을 색출해내 습격한 사건)으로 일약 유명해지고 막부의 확실한 인정과 지원을 받게 되며, 교토에 잠복해 있는 과격파 존왕양이론자들을 색출했다.

이후는 조직은 여러 변천사를 거치게 되고, 보신전쟁에서는 하코다테까지 올라가 막부의 충성파들과 끝까지 신정부군에 대항해 싸우다가 소멸한다.

그들이 쫓던 사람중 한 명이 사카모토 료마지만, 정작 잡을 수 있게 되었을 때는 메이지 유신에 참여해서 사츠마가 비호하는 주요인물이 되어 있었기 때문에, 신센구미는 료마를 건드릴 수 없었다고 한다.

행동부대는 1번대부터 10번대까지, 총 10개 부대로 나눠져 있었다.

천연이심류에서 함께 수행하던 곤도 이사미(국장), 히지카타 토시조(부국장), 오키다 소지(1번대 대장)의 3인이 주축이 되어 총 234명의 낭인을 모아 결성되었다.

오키다 소지는 젊어서 병으로 죽어서 안타까워하는 사람이 많고[3] 히지카타 토시조는 끝까지 막부 측에서 싸우다 비장하게 전사했지만, 곤도 이사미는 항복 후 참수[4]당했기 때문에 왠지 평가가 좋지 않다. 단순 살인귀라고 왜곡되던 시절도 있을 정도.

비슷한 조직으로는 교토 미마와리구미(京都見廻組)가 있다. 이쪽도 업무는 비슷하나 그 출신이 막부의 막신들. 즉 엘리트 무사 계급으로 이루어져 있고 담당 구역도 홍등가나 시장판 등을 관할한 신센구미와 달리 니조성이나 궁궐 주변의 관청들이 있는 거리였다. 출신이 출신이다 보니 가끔 신센구미 창작물에 나올 땐 계급부심에 쩔어서 어깨에 힘주며 건방떨고 다니는 재수없는 자식들(...)로 나오며 실제로도 그랬다고 한다. 그리고 정말로 그 부심으로 총으로 무장한 신정부군 상대로 칼들고 닥돌했다 전멸(...).

2. 신센구미의 정체성 논란

2.1. 수구꼴통 정치깡패?


정치깡패라 불리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 신선조의 전신인 '미부로우시' 시절에, 곤도 이사미와 공동국장의 자리에 있던 세리자와 카모를 위시한 세리자와 일파가 상가를 돌아다니며 '진충보국을 위한 돈이 필요하다'라는 명목으로 상인들의 돈을 뜯고 다니고, 각종 민폐를 저지르고 다녔다. 이로 인해 이후 곤도 이사미의 시위관 일파에 의해 세리자와 일파는 숙청당하면서 이 문제는 종식된다.

  • 메이지 정부는 사츠마 번과 조슈 번의, 이른바 '삿쵸 동맹' 세력이 주축이 되어 만들어낸 신정부이다. 이들이 교토에서 활동할 때 가장 큰 훼방꾼이 바로 신센구미였다. 사실 교토 수비를 위해 일어난 신센구미가 임무를 명목으로 수많은 양이지사들을 죽였기 때문에, 일부 학자들은 신센구미가 없었다면 메이지 유신은 좀 더 빨리 이루어졌을 것이라고 한다. 이에 따라서 메이지 유신 후에는 막부의 개들이라고 부르면서 온갖 악당적인 이미지를 다 끌어다 붙였고, 실제로도 메이지 유신 이후 상당 기간 신센구미는 막부의 개들이라고 불리면서 그 시대를 다룬 사극이나 역사소설에서는 악역으로 등장하게 된다. 또한 신센구미 구성원들의 신분이 낮았던 것도 대부분 사족, 화족으로 구성된 유신지사들의 부심(...)에 한 몫했다.

    다만 이들이 적대하던 유신지사들 중 정한론자가 드글대기 때문에 일본 역사에 조금만 깊게 들어가도 심정적으로 이쪽(좌막파)으로 기우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한 예로 유신지사들이 정신적 스승으로 모시던 인간이 조선 병합론을 내세우던 일본 제국주의 만만세형의 지식인 '요시다 쇼인'이었다.

2000년대 중후반 몇몇 블로그 글들을 통해 신센구미가 정치깡패라는 인식이 일반적으로 퍼진 듯 하지만, 신센구미를 정치깡패로 보는 것은 사실을 들춰보면 철저히 반박될만한 낭설이다. 신센구미는 본디부터 교토의 치안 유지를 위하여 조직된 공식적인 집단이었다(메인스폰서가 교토 쇼시다이-막부가 임명한 교토의 책임자-를 맡았던 아이즈 번).[5] 이에 대하여 무력으로 대응하는 것은, 교토 쇼시다이의 권위에 도전하는 행위였고, 나아가서는 막부의 권위에 도전하는 행위였다. 또한 소위 유신지사들이 교토에서 벌인 행각을 돌아보자면, 존황사상을 숭배한다는 자들이 황궁에 총포를 쏘아대고 돌격하는 등의 야만적 전투행위 및 덴노를 납치하고 교토를 불바다로 만드는 대방화 계획(사전 발각) 등을 저질렀는데, 이렇게 막나가는(...) 집단을 상대로 무력 없이 치안을 유지할 수 있었으리라고는 생각하기 어렵다.

또한 그들이 '민중의 지지와 정당성이 없는 깡패적 사설 무력집단'이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심각하게 과장된 논리다. 신센구미는 합법적으로 권력을 조정에게서 인정받아 통치하는 막부에게서 정식으로 치안임무를 위탁받은, 지극히 합법적인 치안유지기관이었다. 거의 비슷한 성격의 현대의 경찰이 정치깡패가 아니듯이 신센구미도 정치깡패가 아니다. 당장 신센구미 대원들부터가 대부분 무사 출신이 아닌 평범한 민중들이다. 대장인 곤도 이사미는 농민 출신에다가 양자로 천연이심류를 이어받았고, 부대장인 히지카타 도시조는 이시다 산약이라는 약을 팔던 농민 출신. 2번 대장인 나가쿠라 신파치, 3번 대장인 사이토 하지메와 요시무라 간이치로는 탈번무사 출신이다. 그리고 10번대장 하라다 사노스케는 무가집 하인의 자식이었다. '최후의 무사-신센구미'에 실린 표에 의하면 전체적으로 탈번무사 출신들이 가장 많고(28명), 평민 계층들의 수(20명)를 다 합치면 번듯한 번사 자제들(15명)보다 많다. 즉 신센구미는 부당한 강권을 휘두르는 것도 아니었고, 그 임무는 대부분 치안유지의 범위 안에서 이뤄지는 방첩활동 내지는 막부 지지파의 의용군 활동이었다. 조직 내부 항쟁이 벌어지는 것 때문에 다소 수상쩍어 보이는 요소가 있지만, 이것도 조직 내에 침투해 분열을 획책하는 존황파(이토 가시타로)나 조직을 정말 깡패 수준으로 만드는 수준 이하의 대원(세리자와 카모)을 비교적 정당하게 숙청한 것에 가깝다. 게다가 조직원의 비행은 가차없이 처벌하거나 아예 비행을 일삼는 조직의 리더를 숙청하는 등 상당히 청렴한 자세를 견지했다.

본래 이들이 나고 자란 부슈(무사시, 현 도쿄 도)는 막부 직할령으로, 당대 민중의 눈에는 조정보다 막부가 더 높게 보였기 때문에 전후 사정을 살피지 않고 막부 측 인물을 깎아내리는 것은 지나치게 공상적으로 역사를 논하는 것이다. 애초에 13대 쇼군 이에사다 대까지는, 막부-조정 간 외교에서 의전상 막부 쪽이 우세하였다.

각종 미화 및 그에 반발한 지나친 폄하의 시각에서 벗어나 중립적으로 바라보자면, 신센구미는 당시 권력투쟁에서 막부의 무사(치안 유지 및 준군사조직) 역할에 충실했던 것에 불과하다. 즉 지극히 정당한 어짜피 민주적 정당성 같은 것은 없는 전근대적 봉건정권의 치안유지세력으로서 활동했을 뿐이며 '정치깡패'로까지 폄훼하는 것은 지나칠 수 있다. ''' 치안 유지 과정에서 폭력을 사용한 사실은 있으나, 후에 유신지사라고 포장된 삿쵸측 낭인들도 백주대낮에 뻑하면 천벌이랍시고 칼로 사람을 살상하는 암살 및 테러를 정권 획득의 수단으로 삼았으며, 정권을 잡기 위해 시민을 무차별로 죽게 만들고 덴노를 납치하는 교토 대방화까지 시도한 바 있는 (시민을 최중요 가치로 놓는 현대의 관점에서 보면) 상당한 막장 테러조직들이었다. 또한 당시 삿쵸파들이 딱히 민중을 위해 유신을 이룬 것도 아니었다.

민중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검은 고양이와 흰 고양이가 쥐를 사이에 두고 싸우다 한쪽이 죽은 것일 뿐이다. [6]

실제로도 신센구미에 대한 악평이 주류였던 시절에도 코단[7]에서는 꾸준히 신센구미를 주인공으로 삼는 등 민간에서의 인기는 나쁘지 않았다. 특히 막부를 타도한 조슈와 사츠마는 상당히 구석진 지방이었기 때문에 일본 문화의 주류를 이루는 교토 및 에도(도쿄) 등 대다수 민중은 막부를 동정하거나 심정적으로 지지하는 구석이 있었고, 특히나 주 임무가 테러행위를 저지르는 유신 세력들을 저지하는 치안 유지였고 역사의 한켠으로 비장하게 사라진 신센구미는 동정과 동경의 대상이 되었다. 일본은 전통적으로 호간비이키라고 하여 패자를 동정하고 영웅시하는 풍조가 있는데다, 그 패자가 하필 민중에게 인기가 많고 몹시 폼나는데다 근대화의 물결 사이에서 분투하는 라스트 사무라이같은 입장이었기 때문이었다.[8][9]

또한 메이지 유신을 통해서 세워진 유신정부가 민중의 의견을 반영하는 정부였던 것은 아니다. 실제로 유신정부에는 적지 않은 계급의 무사계급이 참여했다. 특히 도막에 큰 역할을 한 사츠마 번과 조슈 번은 사민평등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화족이라는 새로운 귀족계급에 편입되었고 또 막정이 이루어지면서 실각한 덴노의 신하들인 쿠게가 거기에 끼어들어 사실상 유신정부는 민중의, 민중에 의한 정부라고 하기는 힘들었다. 오죽하면 번벌(藩閥)정부라는 비아냥이 있었을 정도였다. 이러한 화족계급 등은 기존의 재력이나 인재, 지역에 대한 장악력을 가지고 유신정부의 비호하에서 예전과 변함없는 생활을 누렸고 이것은 패전으로 인하여 일본의 상태가 엉망이 되는 태평양 전쟁까지 이어졌다.

이것 때문에 일본의 좌우는 메이지 유신을 긍정하느냐 부정하느냐로도 판단할 수 있다. 혁명도 뭣도 아니고 정통성이 없는 폭력 정권교체일 뿐이었다고 주장하는 쪽은 좌익, 수구정권을 타도하고 근대화를 이뤘다며 미화하는 쪽은 우익으로. 다만 이 말도 좀 부연설명이 필요한 게, 일본내외를 막론하고 진짜 좌파들은 근대 제국주의의 효시가 된 메이지 유신이건 전근대적 봉건정치의 연장인 막부건 절대 어느 한쪽도 긍정적으로 보지 않는다. 개발독재로 성장한 한국과 마찬가지로 지금 일본의 극우파들은 대체로 근대 국가주의적 정서에 기반을 두고 있기에 메이지 유신을 긍정적으로 보는데, 그 극우파에 거리를 두고 있는 '반 극우파' (온건 우파를 다수 포함한다)가 메이지 유신에 비판적인 것.

이런 복잡한 사정이 있다 보니, 메이지 유신의 지도층의 실체와 그들의 온갖 부패와 악습이 쌓이고 쌓여서 벌어진 태평양 전쟁을 겪은 현대 일본인들은 자연스럽게 유신지사보다는 더 민중에 가까웠고, 민중을 지키기 위해 싸운 적도 많았으며 끝까지 장렬하게 신념을 지켰던 신센구미를 좋게 볼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10] 물론 이건 주로 이미지의 문제이다. 대중들은 사실과는 무관하더라도 '억압받으며 대의를 위해 노력한 것처럼 보이는' 어떤 세력이나 인물에 감정이입하여 그들을 '억압하는' 세력이나 인물을 증오하기 쉽기 때문이다. 가까이는 황우석이나 잉탄복 등, 멀게는 실존인물 홍길동이나 임꺽정등에도 적용된다.

가끔 메이지 유신을 한국의 민주화에 대입하여 신센구미에 혹평을 내리는 경우도 있지만 메이지 유신과 한국의 민주화는 아무런 유사점도 없기 때문에 더더욱 무리수이고, 이건 기본적 앞뒤 맥락도 모르는 감정이입에 불과하다. 상술했듯이 민주화 운동과 달리 메이지 유신 당시는 대다수의 민심이 더 지지하고 가깝게 여긴 쪽은 엄밀히 말하자면 막부와 신센구미 쪽이었고, 메이지 유신은 지도층이 주도한 산업화와 군국주의화일 뿐, 민중의 힘이나 그것을 등에 업은 혁명가들이 주도한 민주적 시민혁명이 아니다.

정리하자면 신센구미는 구체제에 봉사한 무력집단이라는 점에서 보수적이거나 체제유지 집단에 불과하다고 까일 수 있을지는 몰라도, 신센구미와 싸운 사람들도 그닥 정통성이 있거나 민중을 위하지도 않았고, 진보적이라고 자랑할 만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신센구미는 단순한 전근대적 경찰/보안,방첩조직/준군사조직으로써의 업무를 수행했을 뿐이고, 좀 낡았긴 하지만 무사도 같은 당시의 도덕적 기준에도 나름 충실했다. 다시 말해서 루이 16세처럼 어디까지나 당시의 평균적 수준에 충실했었다는 의미이다. 현대 세계사를 보면 격동기에는 자본가나 민족국가주의자, 파시스트, 대중동원 세력 등 근대적 지배세력과 추종자들이 대두됨과 동시에 봉건귀족, 종교세력, 근왕주의자, 복고주의자 등의 보수반동적 지배세력과 추종자들 역시 저항을 한다. 그리고 민중적 세력은 이 모두를 다 비판하면서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11]

다만 신센구미의 숙청 등이 모두 정당한 동기였던 것은 아니고, 곤도 일파가 신센구미의 전권을 쥐기 위한 조직 내 내부항쟁의 성격이 있었는데다 세리자와의 비행을 근거로 세리자와를 암살한 곤도 본인도 나가쿠라 등의 간부들에게 여러 죄목으로 상부에 고소까지 당한 적이 있어서, 신센구미라는 조직이 일반에 알려진 것처럼 결백한 것만은 아니다. 실제로도 신센구미가 없어질 때까지 일치단결한 것이 아니라 널리 이름이 알려진 간부들이 여럿 조직에 환멸을 느끼고 중간에 이탈했을 정도였다. 즉 신분이 검증된 자들만을 모은 게 아니고 정치적인 주의주장도 제멋대로라 조직의 결속은 상당히 불안했고,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다소 무리한 수단을 거듭해 쓴 것에 지나지 않는다. (애초에 정권의 행동부대로 시작하였지 독자적인 운동세력으로 시작한 것이 아니라서 사상적 구체성은 유신지지파들보다도 희미했다.)

사실 신센구미 비난은 쇼와 이후 재평가가 이루어지며 이런저런 작품에서 전근대적 군사조직이 가진 야만성이나 폭력성을 감추고 지나치게 미화만 한 탓에 대두한 경향이 있다. 빠가 까를 만든다의 전형적 예시. 그런데 신센구미를 과도하게 까며 유신지사를 찬양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니깐 다시 신센구미를 옹호하는 사람들이 나오고 - 까가 빠를 만든다 - 다시 신센구미를... 고만해 미친놈들아 이 항목 역시 신센구미를 옹호하면서 유신지사가 결코 정당하거나 정의로운 사람들이 아니었다는 것을 지적하는 서술이 많이 있(었)는데, 그렇다면 '그놈이 그놈'이라는 결론을 내어야 논리적으로 적절한데 그 부분이 미흡했었다.

결론적으로 역사적 관점에서 볼 때 신센구미건 유신지사건 간에 권력자들끼리의 싸움의 도구일 뿐이고, 민중과는 별 관계 없다고 보면 된다. 영국의 왕당파와 귀족파가 피비린내 나게 싸웠던 교도 혁명에서 어느 쪽을 민중의 편이라고 하는 것이 어불성설이듯이 말이다. [12] 어느쪽이건 만화에서 미화되는 부분은 그냥 만화로 받아들이면 된다. 물론 옆동네의 공안이나 윗동네의 인민보안부, 한국의 군부독재 하의 경찰들도 모두 순수한 치안유지 활동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듯이, 신센구미 역시 민중에게 도움이 되는 치안유지 활동을 하였기도 하고,, 개개인으로 볼 때는 정의로운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시대와 정치적 한계 속에서 명멸해가며 일본은 제국주의화로 치닫게 되며 그 후는...

3. 이미지와 실제

흔히 보신전쟁 시기 총으로 무장한 신정부군에 대해 칼 들고 닥돌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신선조도 총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히지카타의 사진에서 알 수 있듯이 당시 신선조는 상당히 서구화가 진행되고 있었으며, 히지카타 역시 고슈 가츠누마 전투때 대포가 제일 중요하며 창, 칼을 쓸 일이 없다고 말했다. 또한 당시 기록을 보면 신선조도 상당히 많은 수의 총을 구입하고 있었고 곤도 이사미가 체포됐을 당시 많은 수의 총을 압수당했다. 토탈 워: 쇼군2의 확장팩 사무라이의 몰락에서는 이 점에 주목해, 신센구미 치안대라는 총기로 무장한 신센구미가 등장한다. 아예 카테고리도 전열보병. 그와 함께 바로 아래 문단에 소개되는 히지카타 토시로의 발언도 게임상에서 등장한다.

구체적으로 국내에도 출간된 '최후의 무사 - 신센구미'를 토대로 보자면, 최강의 검술집단이라는 이미지와는 다르게 도바-후시미 전투 이후로 신센구미도 총과 대포를 위주로 싸우는 중대급 전투단으로 변화된 것 같다. 1인당 1정 정도로 소총들이 분배되기도 하고, 사실상 대장이었던 히지카타 도시조가 도바-후시미 전투 이후에 검의 시대는 끝났다는 발언을 하기도 한다. 도바-후시미 전투 초입에 주둔지가 포격에 시달리자, 히지카타 토시로가 나가쿠라 신파치에게 칼을 들고 돌격을 명했는데, 대포만 두들겨맞다가 구사일생으로 담을 넘어 다시 주둔지로 도망왔다는 기록도 있다.

정말로 칼만 들고 돌격했다 전멸한 것은 상기했듯 막부 직속 무사집단인 미마와리구미이다.

그리고 신선조를 위계질서가 잡힌 무사단으로 만들려 한 곤도 이사미와 동향 출신 무사집단의 정체성을 지키려 한 오키타 소우지와 나가쿠라 신파치 등의 갈등도 노출되는 등, 실제 모습은 현시창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각종 미디어의 각색을 거친 간지나는 모습과는 상당히 다르다.

또한 부대의 규율유지를 위해서 마련된 국중법도에 따라 부대의 대원들을 숙청하는 마코토(誠, 진심)의 방기라든지, 입고 있는 '옅은 청색의 톱니무늬 곁옷' 등으로 알려져 있는데...

사실 이 톱니무늬의 청색 겉옷은 실제로는 창설과 첫 출동 때 단체로 맞춰 입었고 그 후로는 사복과 혼용되다 몇번 안 가서 아무도 입지 않게 되었다.(이케다야 사변 이후로부터 입지 않았던것 같다.)

신선조의 주업무가 교토 밤거리를 헤집고 다니면서 사람 죽이는 일인데, 저따위로 눈에 확 띄는 옷을 입으면 옷만 보고도 숨어버리기 때문에 비효율성이 판명되어 입지 않게 되었던 것이다. 사실 신선조를 주연으로 묘사하는 각종 매체만 봐도, 신선조가 저 옷을 입고 뜨는 순간 벌써부터 신선조다!!!하며 튀기 시작한다. 말 그대로 사복 형사가 경찰차타고 사이렌 울리며(...) 나오는 것과 동일한 수준.

확실히 폼은 살긴 하는데, 눈에 뻔히 띄일 걸 꼭 실험해봐야 아나 싶기도 하지만, 신선조 구성원의 출신도 출신이고, 일단 입으면 뭐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들테니 입고 현장에 출동해보고 싶긴 했을 것이다. 여하튼 이렇게 임팩트 하나는 세고 비주얼도 살기 때문에 창작물에서는 잠복 근무 빼고는 반드시 이 옷을 입고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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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영화, 애니메이션 등 수많은 매체에서 무수한 방식으로 미화되고 있다.

패자를 동정하는 '판관편애' 정서와 훌륭한 사람들은 다 싸우다가 죽어버려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 정부를 구성한 유신지사들은 일부를 제외하고 대부분 찌꺼기에 불과하다는 말도 있을 정도로 막장이었던 일본 정부에 대한 실망이 맞물려 미화된 것으로 보인다.

그 미화의 시초는 일단 시바 료타로이지만 신센구미의 재평가에 대한 계기를 만든 것은 시모자와 칸이다. 기자시절 사회면의 기사를 쓰다가 곤도 이사무에 대한 자료를 모으게 된 시모자와는 곤도 이사무가 실제로는 그 때까지 알려져 있던 피에 굶주린 살인마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어 흥미를 갖게 되었다고 한다. 그 후 역사가등을 찾아다니며 쓴 것이 신센구미 시마츠키(新選組始末記)이고 시바 료타로는 이것을 읽고 이대로는 카모자와 칸의 저작을 뛰어넘을 수 없다는 생각을 해서 카모자와에게 가르침을 청했다고 한다. 실제로도 신센구미 시마츠키는 사료보다는 목격이나 증언 등을 통하여 정보를 입수했고 역사서보다는 오락소설적인 측면을 위주로 서술되었다. 이러한 점은 시바 료타로도 흉내내어 시바 료타로의 신센구미 혈풍록이나 타올라라 검이여 등도 강한 허구성을 지니게 된다.

4. 관련 인물

  • 초대 국장 :
    세리자와 카모(芹沢鴨) - 신도무념류(神道無念流)면허개전(免許皆伝)
  • 국장 :
    이미 니시키 (新見錦) - 신도무념류(神道無念流)면허개전
    곤도 이사미(近藤勇) - 천연이심류(天然理心流)당주
    마 가즈에(相馬主計) - 마지막 신센구미의 대장. 히지카타의 사망 후 대장이 되어 신정부군에게 항복, 전후 무기징역을 선고받으나 1년만에 풀려난다. 그 직후 돌연 할복. 할복 이유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 총장 :
    야마나미 케이스케, 혹은 산난 케이스케(山南敬助) - 오노파일도류(小野派一刀流)면허개전(免許皆伝)
  • 부장 :
    히지카타 토시조(土方歳三) - 천연이심류(天然理心流)
  • 참모 :
    이토 카시타로(伊東甲子太郎) - 북진일도류(北辰一刀流)
  • 조장
    • 1번대 : 오키타 소우지(沖田総司) - 천연이심류(天然理心流)숙두(塾頭)
    • 2번대 : 나가쿠라 신파치(永倉新八) - 신도무념류(神道無念流)면허개전(免許皆伝)
    • 3번대 : 사이토 하지메(斎藤一) - 일도류(一刀流) 혹은 무외류(無外流)
    • 4번대 : 마츠바라 츄지(松原忠司) - 세키구치류유술(関口流柔術)
    • 5번대 : 타케다 간류사이(武田観柳斎) - 코슈류군학(甲州流軍学)
    • 6번대 : 이노우에 겐자부로(井上源三郎) - 천연이심류(天然理心流)
    • 7번대 : 타니 산쥬로(谷三十郎) - 타네다류창술(種田流槍術) 혹은 신명류(神明流)
    • 8번대 : 토도 헤이스케(藤堂平助) - 북진일도류(北辰一刀流)목록(目録)
    • 9번대 : 스즈키 미키사부로(鈴木三樹三郎) - 신도무념류(神道無念流)
    • 10번대 : 하라다 사노스케(原田左之助) - 타네다류창술(種田流槍術) 혹은 보장원류창술(宝蔵院流槍術)
  • 감찰 :
    핫토리 타케오(服部武雄)
    야마자키 스스무(山崎烝)
    시노하라 타이노신(篠原泰之進) - 타네다,보장원류창술(種田宝蔵院流槍術) / 양이심도류유술(良移心倒流柔術)
    요시무라 칸이치로(吉村貫一郎) - 북진일도류(北辰一刀流) 면허(免許)
  • 제사취조역 겸 감찰 : 오이시 쿠와지로(大石鍬次郎) - 천연이심류(天然理心流)?
  • 평대원이자 히지카타 토시조의 시동: 이치무라 테츠노스케(市村鉄之助) - 신도무념류(神道無念流)

5. 검술 실력

신센구미의 목적 자체가 '교토의 존황파 지사 색출 및 살해'였으므로, 대원들의 검술실력은 필연적인 요소였다. 총으로 암살하면 안되나요? 사실 1:1 정면승부에서나 주로 어울릴 정통적인 검술 수련을 했던 것은 꼭 그게 유용해서만은 아니고 전통적인 무사도의 영향이 강하게 배어 있는 조직이었으며, 지도부에는 정통적인 검술 수련을 해 온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애초에 준군사조직으로 시작한 것이 아니라 치안유지조직으로 시작했으며 대원들의 출신의 문제나 규율의 문제 등이 겹쳐져 무사도를 강조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진짜로 준군사조직 수준의 무력을 행사하기 시작한 때부터는 검술은 뭐 대전차총검술 할 것도 아니고 화기 사용법과 집단전술에 거의 밀리게 된다. 또한 신선조의 검술실력은 과장되었던게 많은데 이들은 주로 낭인 집단으로 검술로서 실력이나 명성으로 주류가 될수 없었다. 이는 일본의 검으로 재능있다는 사람들은 거의대부분 자기의 번을 떠나 명문도장으로 유학을 떠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명문출신이 낭인집단인 신선조에 들어갈리가 없다. 실제로 정치인저럼 생각되는 가츠라 고고로의 검술이 더 높게 쳐준다.서울대 출신과 지방대 출신차이 때문에 신선조가 1:1로 싸우는 경우는 거의 없었으며, 숨어있던 유신지사를 색출하여 여럿이서 유신지사를 공격하였다.하지만 만화로 메이지유신 역사를 배운사람들은...

동료끼리의 진검승부는 누군가가 조직을 빠져나와 맞부딪히지 않는 한은 이루어질 수 없었기 때문에 대련 등의 요소로 실력을 미루어보면, 가장 유명한 것이 1번대 대장 오키타 소우지이다.
'죽도 대련시에, 부장인 히지카타 토시조나 총장 산난 케이스케, 같은 대장인 이노우에 겐자부로, 토도 헤이스케를 어린애 취급할 정도이며, 실전에서 부딪히면 스승인 곤도 이사미도 당해내지 못할 정도의 검술실력을 가지고 있다'고 나가쿠라 신파치가 평했다고 한다.
조직원 모두가 난다긴다하는 신센구미, 그 중에서도 대장급들까지 어린애 취급할 정도였다는 건 과장이 섞여 있기는 하겠지만, 실력 자체는 자타가 공인할 정도였던 듯 하다.

오키타 소우지가 너무도 유명하여 다른 실력자들이 묻히는 감이 있기는 하지만, 바람의 검심으로 스타덤에 오른 3번대 대장 사이토 하지메가 있다.
'아돌'의 모델이 되었을 '좌편수일본돌(左片手一本突き - 왼 한 손 찌르기)가 유명한데, 나가쿠라 신파치는 오키타(소우지)는 용맹의 검, 사이토(하지메)는 무적의 검이라 평했다고.

위에서 다른 이들의 칭찬만 해대는 2번대 대장 나가쿠라 신파치 또한 실제로는 엄청난 실력자였는데, 신센구미 대원이자 훗날 신센구미에 대한 기록을 책으로 낸 아베 쥬로(阿部十郎)는 (검술실력은) 으뜸이 나가쿠라(신파치)요, 두 번째가 오키타(소우지), 세 번째가 사이토(하지메)였다 라고 평했다(一に永倉、二に沖田、三に斎藤の順).
나가쿠라는 '용비검(龍飛剣)이라고 이름붙인 기술(하단 자세를 취하고 있다가 위로 상대방의 검을 튕겨올리면서 아래로 베는 기술.)을 특히 잘 썼다고 한다.

아베 쥬로는 감찰이자 암살임무를 주로 맡았던 오오이시 쿠와지로[13]에 대해서도, 신센구미에서 최고로 위협적인 검객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별명 또한 살인귀 쿠와지로로, 이토 카시타로를 위시한 수많은 암살 및 살해임무를 맡기도 했다.

또한 신센구미 편성 초기의 강자인 핫토리 타케오는 검술, 유술, 창술 등 무술 전반의 달인이며 이도류를 사용했다고 한다. 국중 최강(局中最強)이라 일컬어졌다고 하나 이토 카시타로와 함께 조직을 나간 후, 부라노코우지사건(油小路事件)에서 이토 카시타로가 신센구미에 의해 암살되고 유해가 방치[14]되자 이를 찾으러 갔다가 신센구미 대원들에게 둘러싸여 분전 후 살해당했다.
함정임을 알면서도 상사의 유해를 찾으러 갔고, 결국 그 함정 안에서 죽음을 맞이한 최강의 사나이. '의리를 겸비한 여포'같은 존재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이 밖에도 '바람의 검 신선조'의 주인공으로 유명한 요시무라 칸이치로가 있다.

6. 국중법도(局中法度)

부대의 규율유지를 위해서 마련된 규칙. 어길시 切腹(셉푸쿠=배를 가르고 자결)해야 한다.

당시 시대상을 고려했을 때, 빡빡한 규율과 극단적인 형벌이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렇게 빡빡한 규율, 자결이라는 형벌을 내야 했던 이유는 두 가지로 예상되는데, 첫째는 대원들의 품행이나 인격적 자질이 형편없었기 때문이었고, 둘째는 시작부터가 위태롭고 막부에서 맡은 일이 맡은 일이니만큼 알아서 조심했다는 것이다. 보통 신선조를 중심으로 다루는 창작물은, 첫번째보다는 두번째를 이유로 삼는다.

히지카타 도시조를 비롯한 리더들의 천재적 조직 관리 비결이라는 해석도 있다. 보통 사설조직의 한계에 부딪쳐 정치깡패로 타락하기 일쑤인 자경단의 수준을 높게 유지하였고, 마침내 공로를 인정받아 막부의 공인을 받아냈을 뿐 아니라 후세에까지 깊은 인상을 남길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잔인할 정도로 철저한 법규와 도덕성의 엄수라는 것이다.

이렇게 엄격한 규율을 실행한 것은 본래 사무라이 계급이 아닌, 농민 출신이 많은 신센구미의 '정체성' 문제라는 주장도 존재한다. 즉, 혈통 자체가 사무라이 출신이 아니기 때문에 '무사보다 더 무사도에 광적으로 충실하게 행동하는 것'으로서 컴플렉스를 메꾸려고 했다는 것이다.

一、士道ニ背キ間敷事
하나. 사도(무사의 도)를 등지지 말것.

一、局ヲ脱スルヲ不許
하나. 국(조직)에서 나가지 말것. 들어오는 건 마음대로지만 나갈 때는 아니란다

一、勝手ニ金策致不可
하나. 자기 마음대로 돈을 이용하지 말것.

一、勝手ニ訴訟取扱不可
하나. 자기 마음대로 청부(일거리)를 받지 말것.

一、私ノ闘争ヲ不許
하나. 사투(개인적 싸움)을 하지 말것.

右条々相背候者切腹申付ベク候也
이상의 것에 등을 돌린 자(규율을 어긴 자)는 切腹(할복)으로 갚아야 한다.

7. 관련 매체

7.1. 신센구미를 소재로 만든 작품

일본에 발매된 작품은 셀 수 없이 많지만 어느정도 지지가 있는 작품만 적었습니다.

7.2. 학원☆신센구미의 신선조 (新選組)

학생회겸 학교내 무력충돌 중재 집단.

남학교와 합쳐서 공학이 되는걸 반대하고 있는 아이즈여학원의 이사장이 밀어 주고 있는 집단인 '좌학파(사가쿠하)'의 선봉을 맡고 있다.

사립 아이즈 여학원은 만들어질때부터 "문무를 겸비한 여성"이 목표라서, 학생들이 늘 검을 허리에 지고 다닌다.[21] 덕분에 작중 일어나고 있는 좌학파(사가쿠하)vs토학파(토우가쿠하)의 싸움은 실제로 칼부림을 한다.(…) 다행히 이 학교의 검은 상대의 검을 튕겨내면 거기서 승부가 끝나기 때문에 사상자는 아직은 없는듯 싶다.

신선조의 패러디라서 국중법도가 당연히 있다. 다행히 해석은 다르다.

7.2.1. 국중법도

一、士道ニ背キ間敷事
하나. 사도(무사의 도)를 등지지 말것.

一、局ヲ脱スルヲ不許
하나. 국(조직)에서 나가지 말것.

一、勝手ニ金策致不可
하나. 자기 마음대로 돈을 이용하지 말것.

一、勝手ニ訴訟取扱不可
하나. 자기 마음대로 청부(일거리)를 받지 말것.

一、私ノ闘争ヲ不許
하나. 사투(개인적 싸움)을 하지 말것.

一、男女戀愛ヲ禁ズル
하나, 남여간의 연애를 금지한다.

右条々相背候者切腹申付ベク候也
이상의 것에 등을 돌린자(규율을 어긴 자)는 切腹(할복)으로 갚아야 한다.

다행히 작품 자체가 러브 코미디인지라, 이 국중법도 역시 러브 코미디풍으로 로컬라이징되어 있어서 그렇게 살벌하지는 않다.

예를 들자면 '어길시 할복으로 갚아라'의 경우에는 자신의 배(사비=지갑)를 갈라서(열어서) 갚아라(다른 인원들의 식사를 사준다)식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이 신센구미는 체중신경 안 쓰고 먹는 사람이라든지, 먹으면 다 가슴으로만 가서 안심하고 먹는 사람등이 있어서 예상밖으로 살벌한 듯 하다.(…)

연애 금지는 공학을 반대하는 좌학파(사가쿠하)에 속하면서도 시험적으로 여학교에 혼자 편입된 주인공이 난데없이 납치되어 신센구미의 4번대 대장이 되면서 생겼다. 그런데 후반가면 의미가 없어진다.(…)

부대는 역시 1~10번까지 있지만, 괴이한 트윈비형 에로오야지 로봇, 머리좋은 고양이, 얼굴이 미묘하게 못생긴 비둘기(…), 정체를 알 수 없는 모자가 부대장을 맡고 있는 부대가 있어서 다행히 히로인 수는 7명(나머지 3명은 하렘시에만)이다.

메이비 소프트답게 다른 유명 애니, 게임 등의 패러디가 보인다

7.3. 은혼진선조(真選組)


참고로 백괴사전 에서 신센구미를 검색하면 이 신센구미의 정보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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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시바 료타로의 각종 소설 때문에 이렇게 알려져있으나 사실 이리가 아니라 낭인이라는 뜻이다. 즉, 미부의 낭인들.
  • [2] 壬生浪士組. 이런저런 평가가 더 들어가서 낭인의 낭과 발음이 같은(한국어 발음도 같다) 늑대 낭자를 써서 미부의 늑대라고도 한다.
  • [3] 그래서 전혀 미남이라는 근거가 없는데 병약 미남, 미소년으로 각색되는 경우가 많다.
  • [4] 게다가 당당하게 이름을 밝힌 게 아니라 정체성을 숨기려다가 들통이 났다는 얘기가 있다.
  • [5] 교토(京都) 수호직(守護職), 아이즈(会津) 번주(藩主) 마츠다이라 9대인 마츠다이라 카타모리(松平容保).
  • [6] 그래서 레알 좌파적 관점을 가진 일본인들은 메이지유신이든 좌막든 결코 어느쪽도 긍정적으로 계승해야 할 역사라고 보지 않으며, 오히려 세계 각국의 좌파들과 마찬가지로 민중항쟁의 기억에서 뿌리를 찾는다
  • [7] 책상에 앉아서 부채를 휘두르며 이야기를 하는 일본전통 예술 중에 하나
  • [8] 그런데 정작 신센구미는 일반 농민 출신이 많아서 그런가 근대화 전술 및 무기에 그닥 편견이 없었고 준군사조직이 되면서부터는 총을 주무기로 삼았다. 대중문화와 사람들의 인식 때문에 검투를 주 전투 수단으로 삼는 무사집단인 것처럼 묘사되는 것이다.
  • [9] 고증에 충실한 토탈 워: 쇼군2/사무라이의 몰락 같은 게임에서는 캠페인 화면의 에이전트일 때는 치안유지와 방첩을, 전투 화면의 유니트일 때는 전열보병처럼 전투하면서 근접하면 무서운 공격력의 발도 돌격을 감행하는 것으로 묘사되었다. 캠페인 화면의 신센구미는 초기의 신센구미, 유닛으로 생산되는 신센구미는 후기 보신전쟁의 잔류 신센구미로 볼 수 있다.
  • [10] 이런 심리가 드러난 가장 이해가 쉬운 작품이 바람의 검심이다. 양심적인 유신지사인 켄신은 시종일관 동료 유신지사들을 좋게 평가하지 않고(마침 작중 초기에 나온 유신지사 "타니"는 완전 속물로 묘사된다. 그나마 켄신이 옛정으로 우도진에에게 암살당할뻔 한걸 지켜주긴했다. 허나 이 놈때문에 작품 말기에 사노스케는 일본을 뜨게된지라... 적이던 신센구미에게 오히려 더 큰 공감을 가진다. 신센구미의 멤버였던 사이토 하지메는 유신 이후에도 치안유지와 민중의 안녕을 위해 헌신하는 사람으로 남았다.
  • [11] 칼 마르크스도 공산당 선언에서 지루할 정도로 여러 대립하는 세력들을 나열하며 싸잡아 비판하고 있다
  • [12] 굳이 따지자면 비주류였던 수평파, 더 급진파였던 디거스가 있긴 하지만 듣보잡이라...안습
  • [13] 사카모토 료마 암살의 죄목으로 참수당했다.
  • [14] 실은, 이토 세력을 전멸시키려는 신센구미의 함정.
  • [15] 신센구미가 주 무대가 아니지만 사이토 하지메의 역할이 크므로 추가함.
  • [16] 여담으로 켄신의 회상에 등장하는 신센구미 멤버는 앞줄 하라다 사노스케, 곤도 이사미, 오키타 소지며 뒷줄은 다케다 간류사이, 야마자키 스스무, 이노우에 겐자부로, 하지카타 토시조, 나카쿠라 신파치, 사이토 하지메, 시마다 카이
  • [17] 모티브가 신센구미라고 한다
  • [18] 이들을 모티브로 삼은 진선조가 자주 나오기는 한다. 그리고 무조건 미화시킨게 아니라 깡패에 가까운 경찰 집단으로 묘사한다는 점에서 은혼이 가장 고증을 잘했다고 할 수... 있나?
  • [19] 사카모토 료마와 신센구미 3번대 조장 사이토 하지메가 동일 인물이라는 설정의 용과 같이 시리즈 중 한 작품. 여기서도 은근히 현실은 시궁창스러운 묘사다. 신센구미 내부의 파벌 다툼도 드러나고, 토도 헤이스케의 "이런 미친 법도가 있었기에 지금까지 미친 시대를 버텨 낼 수 있었던 거다" 라는 대사, 살인에 익숙해진 집단이라 그런지 내부 배신자가 썰리자 아무렇지도 않게 슬슬 퇴근하자고 하면서 머릿수가 줄었으니 우리 월급도 늘어나겠구만 같은 대사를 하는 등... 덤으로 실제 역사와 한참 다르게 이 작품에선 아예 곤도 이사미가 교토 방화를 막는게 아니라 오히려 교토 방화 계획을 꾸미고 있었다거나(...) 진짜 오키타 소우지가 치졸하게 음모 꾸미다 역관광당하고 신분까지 뺏겼다거나 심지어 천연이심류가 다른 검술(미토텐구류)의 이름만 바꾼 거라는 등 충격과 공포스러운 설정이 많다...
  • [20] 신센구미의 대표적인 사건들을 보여주지만, 히로인이 남자, 즉 게이가 히로인이다.
  • [21] 사실 문무겸비는 표면적 이유이고, 초대 건립자가 자신의 시대를 앞서간 모에를 실현할려고 그렇게 학교를 만들었다는 설정이 있다. 참고로 설정상으로 메이지 유신때 건립된 학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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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modified 2015-09-26 16:0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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