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 D R , A S I H C RSS

신주영(야구선수)

last modified: 2014-10-27 16:28:47 by Contributors


이름 신주영(辛周榮)
생년월일 1984년 2월 15일
국적 대한민국
출신지 충청북도 청주시
포지션 투수
학력 청주기계공고
투타 우투우타(언)
프로입단 2002년 한화 이글스 1차 지명
소속팀 한화 이글스 (2002~2012)

한화 이글스 등번호 54번(2004~2006)
김사연 신주영(2004~2006) 연오(2007)
한화 이글스 등번호 17번(2008~2009)
차명주(2006) 신주영(2008~2009) 박정진(2010~현재)
한화 이글스 등번호 16번(2010)
문동환(2004~2009) 신주영(2010) 한상훈(2011~2013)
한화 이글스 등번호 11번(2011)
최영필(2004~2010) 신주영(2011) 안영명(2011)
한화 이글스 등번호 00번(2011~2012)
틸슨 브리또(2005) 신주영(2011~2012) 경훈(2013)

Contents

1. 소개
2. 프로 시절
2.1. 입단 후 2010년까지
2.2. 2011년
2.3. 2012년
3. 지도자 시절
4. 기타 사항

1. 소개

한화 이글스의 우완 언더핸드 투수.

청주기계공고 시절 맹활약하면서 촉망받았던 선수였다. 물론 전국적인 레벨로는 김진우류제국에게 밀렸지만, 그래도 빈약한 충청도 팜에서는 그럭저럭 괜찮았던 선수. 2001년 고3 시절에 노병오와 함께 청주기공의 사상 첫 우승이자 마지막 전국 대회 우승[1]인 봉황대기 우승을 이끌면서 활약하기도. 이러한 모습으로 2002년 한화 이글스의 1차 지명을 받았다.

2. 프로 시절

2.1. 입단 후 2010년까지

그러나 프로 입대 이후에는 기대만큼 활약하지는 못했다. 분명 2군에서는 두 번이나 평균자책점 1위에 오를 정도로 정말 맹활약했는데, 1군에서 거의 기회를 받지 못했다. 입단 첫 해에는 1군에 올라오지 못했고, 2003년 2경기, 2004년 6경기가 전부였다.

그나마 활약한 것이 2005년으로 준수한 계투진으로 활약하면서 24경기에 등판하고, 2005년 준PO과 PO 엔트리에 들었지만, 승/패/세이브 없이 1홀드만 기록했다. 2006년에는 프로 첫 승을 거두긴 했으나 80개를 던지고 하루 쉬고 40개를 던진뒤 박살이 나며 1군 8경기밖에 등판하지 못했다. 2007년 상무에 입대하였지만 상무에서 수술을 받게 되고, 이 여파로 군 제대 후에도 오래동안 1군 무대에 오르지 못한다. 이 부상 때문에 은퇴까지 고려했으나 재활군에서 악착같이 재활하여 살아남을 수 있었다.

2010년까지 단 한번도 1군에서 등판한 경험이 없어 방출 대상으로 분류되었으나, 팀이 워낙 막장이라 쓸 만한 선수가 거의 없는 막장상태가 된 한화의 팁 뎁스 덕분에 고민하던 한대화 감독이 투수코치들의 조언을 받고 '그래도 잠재성이 있으니 미뤄보고 키워보자'고 결정해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다른 팀이었다면 방출을 피하지 못했을 것이다.

2.2. 2011년

시즌이 시작할 때만 해도 완전히 묻혀져 후배인 최진호[2]정재원이 시범경기 때 부각되고 있던 반면에 완전히 이름이 언급되지 않고 2군에서 마무리 투수로 등판하면서 이번에도 무명의 시즌을 보내는 듯했다.

그러나 누가 알았겠는가. 2선발로 시작한 훌리오 데폴라가 시즌 시작 한 달도 못 되서 불펜으로 강등된 후 불펜에서도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면서 웨이버 공시되어 퇴출되고, 송창식이 선발에서 불펜으로 다시 불펜에서 2군으로 밀려나 2명의 선발 투수가 로테이션에서 이탈할 줄은. 상황이 이렇게 급변하면서 가능성을 보이던 장민제가 선발진에 투입된다. 이후 1경기 2블론이라는 전설을 세운 오넬리 페레즈, 제구력을 다시 잃으면서 2군으로 이탈한 정재원, 여전히 안 좋은 모습을 보여 주면서 승부처에서 투입을 꺼리게 하는 유원상 등 필승조의 투수가 차례로 무너지면서 모든 상황을, 그것도 뒤늦게 터졌던 좌완 불펜 박정진이 혼자 막아야 되는 상황에 걸렸다. 결국 박정진이 체력소모로 얼마 막지 못하고 내려간 경기의 터프 세이브 상황에서 선발인 김혁민을 올려 세이브를 하게 할 정도 불펜 투수가 전멸 직전에 몰린 2011년 5월. 2군 투수코치 송진우의 강력한 추천으로 최진호와 함께 1군에 콜업된다. 무려 5년 만의 1군 복귀.

이때만 해도 아무도 기대를 안했는데 2011년 6월 2일 삼성 라이온즈와의 경기에서 3:3 동점인 상황에서 등판했다. 이후 신경현이 적시 1타점으로 역전승하면서 승리투수를 거머쥐었으며 이틀 뒤 넥센 히어로즈와의 경기에서는 9회 2점차에 등판해 경기를 마무리지어 세이브. 그리고 다음 날인 6월 5일 넥센 히어로즈와의 경기에서 8회 4:2 리드 상황에 등판해 1⅓이닝을 틀어막아 이틀 연속 세이브를 기록하면서 오넬리가 기록한 4세이브의 절반인 2세이브를 벌써 세우면서 한화의 새로운 계투로 떠올랐다.

일단 피칭 방식은 마치 'SK의 여왕벌' 정대현을 떠올리게 하는 떵을 잔뜩 묻힌듯한 지저분한 볼을 주로 던지며 적절하게 뒷문을 걸어잠궈버리는 스타일로 보여지고 있다. 게다가 한화 마운드 계보에서 빠지지 않는 변화구인 서클 체인지업도 구사하는데 아직 송회장님이나 류딸에 비한다면 손볼 곳이 많은편[3].
공의 지저분함은 정대현의 지저분함을 많이 벤치마킹한것 같지만 역시 담력과 경험 등 여러가지가 더 많이 쌓여아 할듯 싶다.

아무튼 피칭을 보면 정대현을 보는것 같아서 팬들은 그에 맞춰서 칰각갑, 여왕닭, 야왕벌 등의 별명을 붙여주며 그가 계속 건재하며 호투하길 기원하는 중이다.

7월에는 분석이 되어서 커트당하면서 볼질하고 난타당하는 등 상당히 부진했으나
8월 들어서 공의 무브먼트가 좋아지면서 호투를 하고 있다.

8월 24일엔 장민제, 윤근영, 박정진의 뒤를 이어 구원등판. 우타자 원포인트로 등판하여 1피안타를 맞긴 했지만 후속타자를 잘 처리함으로써 승리를 챙겼다. 시즌4승째선발보다 승을 많이 챙겼다

비록 평균자책이 6.43으로 높긴 했지만, 4승 2패 2세이브 1홀드를 거두며 부활을 알렸다.

그러나....

2.3. 2012년

2012년에는 주로 퓨처스리그에 있었고, 1군에는 단 3경기만 등판해 승패 없이 평균자책 16.20의 초라한 성적을 남겼다. 특히 마지막 등판이었던 9월 2일 KIA 타이거즈전에서는 0⅓이닝 동안 3피안타 1피홈런 2사사구 5실점을 기록하며 평균자책점 135.00을 달성.. 망했어요

결국 시즌 종료 후인 10월 19일, 같은 팀 내야수 정원석과 함께 방출되었다.

3. 지도자 시절

2013년 10월에 모교인 청주고 투수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고 한다.

4. 기타 사항

투수조의 돌+I분위기메이커. 만루포를 쏘아올리고 덕아웃으로 돌아오는 주장 신경현에게 감히 아무도 손대지 못하는 가운데 혼자 홈런빵을 날린다거나, 끝내기 세레모니에 제일 먼저 튀어나가 동료를 격하게 구타축하해 주는 등, 한화팬들 사이에서는 투구 내용보다도 특유의 기행으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다. 이양기의 끝내기빵 부상 사건 때에도 팬들은 가장 유력한 용의자 중 한명으로 신주영을 지목하기도 했다.파괴의 주영신

청주시 출신으로 대전 연고 팀에서 활동했는데, 동명이인의 전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인 신주영도 대전 출신이다....
----
  • [1] 청주기공 야구부는 2007년 청주고등학교로 넘어갔다.
  • [2] 흑역사. 해당항목 참조.
  • [3] 최근 안타를 맞는 타구들을 보면 서클체인지업을 구사하다가 안타를 맞는 경우가 많다. 서클체인지업 제구가 잘 안될때 공이 스트라익존 가운데로 몰려오기에 타자들에게는 좋은 먹이감이 될수밖에... 몇몇은 체인지업도 좋지만 역시 언더핸드의 주무기인 싱커의 필요성을 역설하기도 하는편.
Valid XHTML 1.0! Valid CSS! powered by MoniWiki
last modified 2014-10-27 16:28:47
Processing time 0.2655 se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