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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태용

last modified: 2015-04-13 11:04:40 by Contributors


1992 K리그 베스트 일레븐
FW
박창현
FW
근재
MF
홍기
MF
김현석
MF
신태용
MF
태하
MF
동철
DF
홍명보
DF
종화
DF
박정배
GK
사리체프
1993 K리그 베스트 일레븐
FW
상해
FW
상철
MF
판근
MF
신태용
MF
동해
MF
이상윤
MF
김봉길
DF
영일
DF
종화
DF
동관
GK
사리체프
1994 K리그 베스트 일레븐
FW
상철
FW
라데
FW
경래
MF
신태용
MF
고정운
MF
황보관
DF
안익수
DF
유상철
DF
홍명보
DF
기태
GK
사리체프
1995 K리그 베스트 일레븐
FW
황선홍
FW
노상래
MF
신태용
MF
고정운
MF
김현석
MF
판근
MF
아미르
DF
영일
DF
홍명보
DF
기태
GK
사리체프
1996 K리그 베스트 일레븐
FW
라데
FW
세르게이
MF
신태용
MF
데아
MF
홍명보
MF
하석주
MF
김현석
DF
윤성효
DF
김주성
DF
기태
GK
김병지
2000 K리그 베스트 일레븐
FW
최용수
FW
김도훈
MF
안드레
MF
신태용
MF
경준
MF
데니스
DF
강철
DF
이임생
DF
김현수
DF
시엘
GK
신의손
2001 K리그 베스트 일레븐
FW
우성용
FW
산드로
MF
신태용
MF
서정원
MF
송종국
MF
남기일
DF
우르모브
DF
김현수
DF
김용희
DF
이영표
GK
신의손
2002 K리그 베스트 일레븐
FW
김대의
FW
유상철
MF
신태용
MF
이천수
MF
안드레
MF
서정원
DF
김현수
DF
김태영
DF
최진철
DF
홍명보
GK
이운재
2003 K리그 베스트 일레븐
FW
김도훈
FW
그노
MF
신태용
MF
이성남
MF
이관우
MF
김남일
DF
최진철
DF
김태영
DF
김현수
DF
산토스
GK
동명

1992년 K리그 신인왕
우석
(일화 천마)
신태용
(일화 천마)
광석
(대우 로얄즈)
1995년 K리그 MVP
고정운
(일화 천마)
신태용
(일화 천마)
김현석
(울산 현대)
1996년 K리그 득점왕
노상래
(전남 드래곤즈)
신태용
(천안 일화 천마)
김현석
(울산 현대)
2001년 K리그 MVP
최용수
(안양 LG 치타스)
신태용
(성남 일화 천마)
김대의
(성남 일화 천마)
성남 일화 천마 역대 감독
김학범
(2004.12.07~2008.11.27)[1]
신태용
(2010.02.18~2012.12.07)[2]
안익수
(2012.12.14~2013.12.)

목차

1. 프로필
2. 소개
3. 선수 시절
3.1. 화려한 클럽 기록
3.2. 아쉬운 대표팀 기록
4. 감독(지도자) 시절
4.1. 성남 일화 천마
4.1.1. 2009년 말미 - 감독 대행의 준우승
4.1.2. 감독 데뷔,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의 2010년
4.1.3. 그래도 우승은 건진다. FA컵을 되찾은 2011년
4.1.4. 또 쫓겨난 2012년
4.1.5. 평가
4.1.6. 비판
4.2. 사퇴 이후(2013~2014년)
4.3.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코치 선임
4.4.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U-23 감독
5. 이모저모
6. 어록


1. 프로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U-23 감독
신태용 (申台龍 / Shin Tae-Yong)
생년월일 1969년 4월 11일[3]
국적 대한민국
출신지 경상북도 영덕군
신장 176cm
체중 68kg
소속팀 성남 일화 천마 (1992~2004)[4]
퀸즐랜드 로어 FC (2005)
스태프 퀸즐랜드 로어 FC 코치(호주, 2005~2008)
성남 일화 천마 감독 (2009~2012)[5]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코치 (2014~2015.1)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U-23 감독 (2015.2~현재)
국가대표 21경기 3골

2. 소개


성남 일화 천마의 선수 출신 감독이었다. 현역 시절 포지션은 공격형 미드필더였고 등번호는 7번이었다.

별명은 그라운드의 여우, 과르디태용 맥콜라리 신무직/유직/계약직/알바 그리고 K리그성남 일화 천마의 레전드. 2013년에는 K리그 홍보대사 겸 tbs 교통방송의 해설위원을 맡아, 친정 팀의 홈 고별전에서 팬 사인회를 열었다.

2014년 여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코치를 맡아 친선경기를 지도하게 되었으며, 이렇게 국대에도 지도자로 승선했고 남미 두 팀과 치른 평가전에서 브라질 월드컵 때보다 잘하는새로운 국대의 모습을 선보였다.
울리 슈틸리케 감독의 보좌로 2015년 AFC 아시안컵의 준우승을 만든 직후, 이광종 감독의 병환으로 공석이 된 23세 이하 대표팀의 감독이 되었다[6].

3. 선수 시절


3.1. 화려한 클럽 기록


신태용이 리그에 남긴 발자취는 결코 범상치 않다. 현역 시절 행적을 따라가보면 상철[7]이나 울산 현대의 레전드 김현석 못지 않은 기록의 사나이. 참고로 성남 일화 천마에서 현역으로 활약하던 시절 얻은 우승 트로피의 숫자는 K리그 최다이며 2010년 기준, 여기의 90% 이상이 그가 선수 시절에 얻은 업적이다.

영남대학교를 졸업하고 1992년 일화 천마[8]에 입단하여 K리그 신인상을 받았다. 그리고 일화는 1993년부터 1995년까지, 지금도 전설처럼 회자되는 K리그 3년 연속 우승 위업을 달성한다. 당시 일화 감독은 이름난 빠따 맹장 박종환이었고, 발레리 사리체프, 고정운, 이상윤, 남열 등 호화 멤버를 자랑했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 리더 신태용이 있었다. 특히, 남열과의 황금 콤비는 지금도 골수 축구팬들 사이에서도 찬양을 받을 정도다.

1995년 신태용은 20득점 20도움을 기록해 20-20 클럽에 가입했고, 리그 MVP를 차지한다. 또한 연말에 열린 1995-1996 아시아 클럽 챔피언쉽마저 제패하며 일화 천마는 명실상부한 명문 구단으로 발돋움한다. 여담으로 이 해 포항 아톰즈와 벌인 챔피언 결정전은 지금도 K리그의 대표적인 명승부로 꼽는다.

1996년 일화 천마천안시로 연고지를 이적한다. 또한, 상부와 불화를 겪은 박종환 감독이 해임되고 이장수 당시 수석코치가 감독을 맡았다. 이후 일화는 꼴찌까지 떨어지는 암흑기를 겪는다. 하지만 신태용의 활약은 변함없었다. 이 때는 아예 리그 득점왕까지 먹었는데, 미드필더로 뛰면서 먹은 득점왕인데다가 K리그 MVP를 수상했다. 특히, K리그 MVP를 2회 수상한 것은 2010년 기준 신태용만이 가지고 있는 유일한 기록이다. 또한, 라피도 컵에서 2경기 연속 해트트릭 기록을 2번째로(첫 번째는 1986년 해원) 기록한다. 역시, 그 이후 더 이상 나오지 않은 기록이다.

고로 한 줄 요약 데뷔한 1992년부터 1996년까지 K리그 베스트 11...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1997년 천안 일화는 이장수 감독 대신 벨기에 출신의 레네[9] 감독을 영입했으나 별다른 효험을 보지 못한다.

1998년 개인 통산 30득점 30도움을 기록.

1999년 故 차경복 감독이 천안 일화를 맡는다.

2000년 개인 40득점 40도움을 기록한다. 이해 일화 천마는 개독들의 극성에 밀려서 연고지를 성남시로 옮기면서 다시 한번 상위권으로 도약한다.

2001년 50득점 50도움을 달성한다. 그리고 성남 일화는 2001년부터 2003년까지 또 K리그 3년 연속 우승의 전설을 남긴다. 이때도 초호화 멤버를 자랑했는데, 우승 청부사 샤샤를 비롯해, 김대의, 김상식, 김영철, 김도훈, 윤정환, 이싸빅, 이성남 등이다. 흠좀무.

그렇게 신태용은, 리그 3년 연속 우승의 대기록을 무려 두 번이나 달성한 사나이....몰라 뭐야 이거 무서워.


2003년 K리그 최초로 60득점 60도움을 기록한다.
덧붙여 팀이 성남 일화로 재도약한 2000년부터 2003년까지 K리그 베스트 11. 여담으로 항목을 작성한 2011년 9월 현재 60-60 클럽은 신태용이 유일하다.[10] 1979년생 이동국김은중이 50-50 기록을 달성했고, 두 번째 60-60클럽 가입은 에닝요에게 빼앗겼지만, 이동국은 2014년 7월 20일 한국인으로서 두 번째, K리그 통산 세 번째 60-60 클럽에 가입했다.

2003 시즌에는 K리그 팬들의 기억에 길이 남을 명장면 2개를 선사한 적도 있다. 하나는 모란(성남공설운동장)에서 열린 수원 삼성 블루윙즈와의 시합. 그랑블루가 코너킥을 차러 가던 신태용을 향해 경기장에 물병(...)을 던지자, 신태용은 그걸 집어들어서 쿨하게 원샷을 하고 따봉을 선사해 준 일화도 있고, 그리고 대전 원정경기에서는 코너킥직접 골로 연결시키고, 후반에 부상으로 경기를 뛸 수 없게 된 해운을 대신하여 골키퍼로 활약했다. 비록 두 골을 먹기는 했으나, 3:2로 이겼다.

Shin_Tae-Yong_Queensland_Roar.jpg
[JPG 그림 (9.76 KB)]

2004년 시즌 후 FA 자격을 얻었으나 성남과 재계약하지 못하며 K리그를 떠나게 되었다. 이 때 성남 일화 천마에서 변변한 은퇴식조차 갖지 못해서 성남 팬들을 더욱 안타깝게 했다. 그리고 2005년 오스트레일리아 리그에서 1경기에 출장한 후, 발목 부상을 입고 완전히 은퇴를 선언하며 곧바로 코치가 되었다. 이 때 알게 된 사샤 오그네노브스키를 직접 찾아가서 영입했다. 그리고 선발 수비수 겸 주장으로 중용했다.

K리그 통산 401경기 99득점 68도움 2실점을 기록했다. 기록을 보면 아시겠지만, 1년만 은퇴를 늦췄더라면 가뿐히 100득점 70도움 정도는 찍었을 터였다. 몰라 뭐야 그거 무서워.


2012년 현재 K리그 역사상 100골 이상을 넣은 선수는 단 7명 뿐이다. 현역 선수로는 김은중, 이동국. 그리고 은퇴한 선수로는 우성용(116골), 김도훈(114골), 김현석(110골), 샤샤(104골), 상철(101골)이 전부다. 그런데 이들은 모두 포워드이지만 신태용은 미드필더였다. 꿈의 100골 달성이 가능했지만, 100번째 골은 필드골로 넣겠다는 공약 때문에 달성에 실패한 것이다. 오오오!!

또한, K리그 최초 400경기 출장 기록도 신태용이 세웠다. 이 기록은 한동안 최다출장 기록이기도 했는데, 이 기록을 경신한 선수가 바로 김병지... 골키퍼다. 이후 필드 플레이어로 김기동이 기록을 깼으며, 최고 출장 기록은 김병지[11]가 보유하고 있다. 필드플레이어 가운데 최고 출장 기록, 최고령 골, 최고령 도움은 김기동이 가지고 있다.[12]

3.2. 아쉬운 대표팀 기록


청소년 대표팀과 올림픽 대표팀을 거친 엘리트 선수였지만,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에서는 크게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기 때문에 K리그 골수팬이 아니고서는 듣보잡이나 다름없었다. 1993년과 1997년까지 A매치에서 21경기 3골의 기록을 가지고 있다. 1996년 AFC 아시안컵 이란전에서 씩스투 참사 6-2 참패 이후로는 그의 이름이 포함되는 일이 거의 없었다. 이 대회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면 월드컵 명단에 들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의 플레이 스타일이 국가대표 축구의 조직력에 맞지 않는다는 의견도 있었다. 아무튼 월드컵 출전 경력만 있었으면 K리그에서 최고의 커리어를 가진 선수가 될 수 있기에 아쉬운 부분이다.

4. 감독(지도자) 시절


4.1.1. 2009년 말미 - 감독 대행의 준우승


김학범 감독이 물러난 후, 2009 시즌부터 감독대행으로 친정 팀 성남 일화 천마을 맡았다. 1990년대와 2000년대의 성남은 K리그에서도 알아주는 만수르도 울고 갈 지름신 부자 구단이었으나, 신태용 감독이 부임한 무렵에는 있는 선수도 털려 나가는 가난한 구단으로 전락했다. 왜 그렇게 됐는고?!

초기에는 이러한 팀 상황과 맞물려, K리그에서 명장으로 꼽히는 김학범 감독의 후광을 벗어날 수 있는가 팬들 사이에서도 논란거리였다. 실제로 2009년 시즌 초반에는 성남 팬들의 뒷목을 잡게 만들기도 했으나...그 해 AFC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차지하며 돌풍을 일으키던 포항 스틸러스를 플레이오프에서 잡고 챔피언 결정전에 진출, 결국 전북 현대에 이어 준우승. 더불어 FA컵에서도 2위, R리그에서도 2위. 감독(대행) 첫 해부터 콩까

하지만 부임한 첫 해, 그것도 감독 대행 신분으로, 선수층마저 예전같지 않은 팀에서 일궈낸 성과로는 대박인지라, 2010년에 2+1년 계약을 맺어 정식 감독으로 승격했다. 애당초 성남도 팀을 재건하는 동안 임시로 앉힌[13] 감독이었는데, 부임한 첫 해 리그 준우승을 차지하고 다음해-2010년에는 AFC 챔피언스 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해 버렸으니 로또인들 부러울까?

그가 은퇴할 시기에는 성남 일화 천마에서 변변치 않은 지원으로 레전드에 대한 예우가 아니다라는 비난이 구단을 향해 빗발쳤는데, 이 이후로는 그런 이야기는 나오지 않고 있다.

현역으로 활약하던 시절에는 우승 청부사라고 불렸던 세르비아 출신 레전드 스트라이커 샤샤 드라쿨리치가 뺨을 맞고 설설 기었을 정도로 엄격한 군기반장이었으나, 감독으로 부임한 이후에는 형님같은 자상한 리더십과 자율 중시[14]를 내세워 군대식 기강잡기로 유명하던 성남을 일시에 바꿔 버렸다. 비효율적이라고 여겼는지 대한민국 축구의 의례적인 문화인 합숙을 폐지하기도 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신태용은 K리그에서 400경기 출장에 99골 68도움을 기록한 우승청부사이자 K리그의 레전드 오브 레전드다. 비록 해외무대 경험은 말년에 오스트레일리아 리그에서 활동한 정도지만, 선수 시절 외국인 선수들도 설설기는 살벌한 군기반장으로도 유명했다. 감독이 되면서부터는 자유분방한 분위기로 팀을 꾸렸지만 선수들이 해이한 모습을 보일 때, "나랑 김도훈 코치가 합작해서 넣은 골만 200개가 넘는다. 근데, 넌 뭔데 빈둥거리나?"며 엄포를 놓았다. 참고로 이 분은 빠따박(...)의 직계 제자이기도 하다.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한지?

현역 시절에 거친 박종환-이장수-레네-차경복 감독은 비록 선진 감독은 아니었으나 각자 개성은 달랐고, 이들이 가진 장단점을 취사선택한 듯한 모습을 보인다. 이 쯤되면 왜 이강철이 갸갤에서 금지어인지 알 수 있다.

훗날 신태용 감독이 한 인터뷰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성남에서 쫓겨나듯 은퇴하고 오스트레일리아로 건너가 선수와 코치로 있던 시절 경험이 크게 작용했다고 한다. 당시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목격한 코칭 스텝과 선수간 자유분방한 분위기가 데카르챠 컬쳐 쇼크였다고. 여기서 이 분도 오버랩된다.

2009년 11월에는 레드 카드를 받아 퇴장을 당하자, 관중석 한 켠으로 가서 무전기로 지휘를 하고, 이후 출전 정지 경기 동안에도 계속 무전기로 지휘했는데, 무전기로 지휘했던 경기를 모두 이겼다. 심지어 출전 정지가 끝난 뒤에도 더 높은 곳에서 보겠다며 또 관중석에서 무전기로 지휘를 했다. 이를 두고 사람들은 "무전기 매직"이라 불렀다.

4.1.2. 감독 데뷔,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의 2010년


2010년에는 또 선수가 털린 상황에서[15][16] 비록 리그는 4위[17]로 마치긴 했으나 AFC 챔피언스 리그에서 우승하며 K리그를 대표하는 명장 반열에 올랐다.

감독으로 가장 먼저 한 일이 이동국, 김상식전북 현대 모터스트레이드하고 김영철, 진섭을 방출한 것이었다. 한편 이동국은 당시 먹튀였으니 그렇다고 쳐도, 김상식의 숙청에 대해서는 성남팬 사이에도 논란이 많았다. 훗날 인터뷰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이는 신태용 감독 본인의 결정이 아니었다고. \
구단에서 리빌딩에 착수하면서 이동국은 남기고 김상식김영철을 내치려고 했다. 이동국김상식을 남기고 싶어했던 신태용이 '전부 아니면 전무'라고 반발하자 구단은 쿨하게 전무를 택한 것(...).

결국 이동국김상식은 나란히 전북 현대로 이적한 후 최강희 감독 밑에서 화려하게 비상, 2009년 챔피언 결정전에서 친정팀인 성남 일화에 비수를 꽂는다. 김상식은 은퇴 선언 사람 일이란 참 모를 일.[18] 저 둘 대신 들어온 문대성진섭은 이후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며 포텐이 터지지 않은 채 결국 성남을 떠나고 만다. K리그판 탈쥐효과? 만약 성남이 예전처럼 선수 잘 사오는 구단이었으면 더블 이상은 차지하고도 남았을 듯.


2010년에 세운 전설적인 기록으로는 감독으로 AFC 챔피언스 리그를 우승함으로써 선수-감독으로 모두 우승을 경험한 유일한 레전드가 되었다. 이는 그의 별명인 과르디태용/태용디올라라는 별명이 더욱 굳어지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유럽에서도 국가간 최상위 클럽대항전 우승을 선수-감독으로 모두 경험한 인물들은 10명도 채 안 되며, 아시아에서는 신태용 감독이 최초.

구단에서는 언제나 신태용 감독에게 "선수 못 사다줘서 죄송요." 하고 고개를 숙이는데, 정작 본인은 "이런 상황에서 팀을 승리로 이끌어나가는 게 감독의 몫입니다." 하고 대답했다. 오오 대인배 오오. 데이비드 모예스에버튼 FC 때 이랬는데 안습 선수 사다달라고 징징대다 리그 꼴찌 먹고 쫓겨난 모 감독님은 좀 배우셔야 할 듯. 그런데 구단주선수 팔아먹는 것이 아닌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하나...하지만 3년 뒤 그것이 실제로 일어나는 축구팀이 나오는데...

여기까지 좋았는데...2010년 시즌 이후 최성국, 정성룡, 몰리나같은 성남의 주축 선수들이 죄다 팔려 나갔다. 대인배의 모습을 보이던 신태용 감독도 "구단이 돈이 없다는데 어쩌나..."라고 말하면서도 수원이나 전북 같이 돈을 푸는 구단이 부럽다는 말 또한 할 정도로 답답한 모양. 구단주가 이장석이 아니라, 사실 구단이 넥센 히어로즈(...)

4.1.3. 그래도 우승은 건진다. FA컵을 되찾은 2011년


2011년. 예상대로 얇은 선수층으로 진짜 갖은 고생을 하고 있다. 그나마 남아있던 라돈치치는 부상으로 전반기에 거의 못 뛰고 있고, 있는 선수는 부상, 없는 선수는 없는 상황(...)이라 오죽했으면 팀 성적이 안 나와도 팬들이 감독을 까기 보다 구단을 먼저 까고 감독을 위로할 정도(...). 본인도 한계에 다다랐는지 경기 후 인터뷰에서 "못 해 먹겠다"는 발언까지 나왔다.

결국 2011 시즌 리그에서 처참한 성적으로 6강 진출은 실패했지만, 그래도 이렇게 스쿼드가 토막난 상황에서도 2011 하나은행 FA컵 결승에선 수원의 선제골이 오심으로 무효 판정이 나긴 했지만 수원 삼성 블루윙즈를 1:0으로 꺾고 극적으로 2012 AFC 챔피언스 리그 출전권은 따냈다. 하지만 스쿼드가 이런데다 2011 시즌 끝나고 선수가 또 털리면...진짜 신태용 감독이 제 발로 성남 일화 천마를 걸어나올지도.(...) 당장 김정우도 그렇고 라돈치치나 사샤나...다들 행보가 불안한 상태다.

실제로 지금까지 신태용 감독은 구단의 부족한 지원에도 "있는 전력으로 성적을 내는 것이 감독"이라는 태도를 견지했지만 FA컵 우승 이후 아챔에서 성공하기 위해선 구단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성남 팬들은 우스갯소리로 신태용 감독이 성남 일화 천마 선수단 가운데 가장 몸값이 높을 것이라고 말한다. 물론 9월 21일 상무에서 전역한 김정우가 있지만... 누구나 예상한 것처럼 다른 팀에 팔려갔다.

한편으로 감독으로도 FA컵을 우승함으로써 선수-감독으로 모두 우승을 경험한 첫 주인공이 되었다. 오오오.

2011 시즌 종료 후, 다행히도 성남이 다시 돈을 풀기 시작하면서 과거 K리그의 큰손으로 불리던 시절로 돌아갈 낌새를 보이기 때문에 다음 시즌에도 감독을 맡는 것은 문제없어 보인다! 그리고 2011년 12월 23일, 결국 3년 재계약 성공! 성남빠들은 환호를 지르고 있다.이제 샤다라빠의 저주만 안 나오면 된다. 샤빠를 감금하라!

4.1.4. 또 쫓겨난 2012년


2012년 4월 28일 수원전이 끝나고 기자회견장에서 격렬하게 판정에 불만을 토로하다 벌금 500만원 징계를 받았는데, 성남 팬들이 자발적으로 자체 성금 모집에 나섰다. 한 중년 팬이 500만원을 보내기도 한 끝에 약 700 만원이 모였고, 이를 유소년 심판 교육에 사용할 예정이라고 했다.

깜짝 성과를 보였던 지난 2년과 달리, 2012년에는 상위 스플릿은 물론, FA컵, 아챔 모두 탈락하면서 그렇잖아도 어두웠던 구단에서 전격적으로 다른 팀의 성남 출신 감독을 데려오면서 신태용은 또 한번 성남에서 쓸쓸히 물러났다.문제는 그렇게 데려온 감독은 아예 구단 해체 소동을 겪으며 단 1시즌만 하고 말았다는 것.

4.1.5. 평가

2010년을 전후해서 1960년대 생-40대 감독들이 하나 둘씩 모습을 드러내면서 K리그 감독층의 세대교체가 진행 중인데, 나이에 걸맞지 않은 노련미와 배짱을 보이면서 가장 앞날이 기대되는 인물이다.

비록 국가대표로 활약한 경험은 적지만, 차근차근 감독으로서 지도력이나 차근차근 쌓아올리는 커리어를 봤을 때 유력한 차기 국가대표 감독 후보. 앞으로 몇 년 내에 대표팀 감독, 코치진 역시 세대교체가 이루어진다면 가능성이 있다. 이보시오! 축협 양반! 그게 무슨 소리요! 신태용 감독이 국대라니! 그럼 우리 성남 일화는?[19]

감독이 되어 얻은 별명은 과르디태용대한민국의 모예스가 있다. 전자는 선수 출신 감독이자 젊고 능력있다는 점에서 전 FC 바르셀로나와 현 FC 바이에른 뮌헨 감독 펩 과르디올라를, 후자는 없는 살림에도 팀을 참 잘 꾸려 나간다는 점에서 에버튼 FC을 맡았던 데이비드 모예스 감독을 빗댄 별명이다. 모예스라는 별명은 후에 울산의 어떤 감독이 이어받지만, 신태용에게 붙은 모예스와는 이미지도 이유도 완전 다르다

특히 2011 시즌 종잇장처럼 얇은 스쿼드를 가지고 승점을 관리하는 대신 자폭 공격하는 축구를 밀어붙였다.[20] 덕분에 일각에선 전술적 아집이 심한 감독이란 비난이 일었다. 물론 2009 플레이오프, 2010년 아챔 우승이나 2011년 FA컵 우승처럼, 작심하고 노린 토너먼트 경기들을 복기해 보면 그라운드의 여우답게 상대에 맞춰 용의주도하게 전술을 바꾸는 감독이다. 하지만 리그에서는 전술적 고집이 심한 편이 맞으며, 외국인한테 공격을 다 맡기며 경기를 풀어 나가려는 성향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승점관리를 잘 못하며, 실제로 리그 방식에서는 큰 두각을 보여주질 못했다.[21] 뒤에도 나오겠지만 이런 성향은 특히 2012년에 완전히 발목을 잡고 있다.

2011년 신태용 감독이 공격적인 축구를 밀어붙인 이유는 '신인들의 경험을 쌓아 주기 위함'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그러한 팀 운영은 성찬, 박진포라는 걸출한 신인을 만든데도 한몫을 했다. 리빌딩을 위해선 한 시즌 쯤은 통째로 내버려도 아깝지 않다는 배포. ㅎㄷㄷ

이런 성향은 그 전후 시즌에도 드러나는 편인데, 베스트 스쿼드에서 경기 초반이나 후반에 자신이 키우려는 선수를 집어넣는 성향이 있다. 이것은 베스트 11을 고집하던 김학범 감독과 대비되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2010 시즌 홍철을 윙 포워드로 장학영과 함께 출전시키며 경기감각을 키웠고, 재철, 성찬도 그런 식으로 키워 냈다. 박진포김성환은 팀 내에 동일한 포지션의 주전이 없어 기회를 잡은 다른 케이스이다.

그리고 선수들과 허물없이 어울리면서 풀고 조이고 하며 선수들이 최상의 경기력을 발휘하게 하는 데는 최고의 능력을 보여주고 있다.그러나 윤비트에겐 패배함요 또한 성찬, 재철, 홍철, 조동건 등 신인들의 능력을 발견하고 살리는 것에는 지금까지 준수한 결과를 남겨 왔으며, 선수들의 숨겨진 재능을 발견해 그들에게 맞는 포지션을 새로 찾아주는 등 눈썰미도 예리하다.[22][23]

4.1.6. 비판


2012년 중반부터 비판이 늘었다. 원하는 선수들을 모두 영입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만큼의 성적은커녕 땅으로 처박히고 말았다. 야심차게 사왔던 선수들 중에 종은, 김성준을 빼면 성공한 영입이 없었다. 그나마 팬들 사이에서 팀 분위기를 망친 주범으로 지목받는 윤빛가람을 영입한 사람이 신태용 감독이 아니란 게 다행일 정도

또한 팬들이 크게 반발했던 사건이 한상운장학영트레이드다. 한상운이 2011년 후반기부터 소위 국대병에 걸려 부진했음에도 팀 레전드[24]이자 소집 해제를 앞두고 있던 장학영 + 15억 원에 부산 아이파크트레이드했다. 그러나 2012년에 부진을 거듭하자 한상운J리그주빌로 이와타에 17억 원의 이적료를 받고 팔아버렸다.

한편 장학영을 내줄 정도로 기대를 걸었던 왼쪽 풀백 홍철은 발바닥 수술 이후로 폼이 완전히 떨어지고, 심지어 팬들과 SNS상에서 다투는가 하면, 윙 포워드로 다시 전향했다. 결국 성남의 왼쪽 풀백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남궁웅이 맡았었다.

이러한 영입 실패도 문제지만 사실 신태용은 선수빨이 아니라 오히려 좋은 선수 다 털린 거지구단일 때 성적을 냈다.... 가장 큰 문제는 선수단 장악 능력이 떨어졌다는 점이다. 4월 중순 터진 전지훈련의 강도에 대한 용병들의 불만[25], 텐진으로 이적한 요반치치의 불만, 중국에서도 바닥을 기는 잉여가 뭐 임마? 그리고 대놓고 태업하던 윤빛가람 등, 포풍지름의 후유증을 감당하지 못하고 팀 스스로 무너졌다.

또한 승강제를 위한 스플릿 시스템을 도입하면서 2012년 일정은 살인적이였는데[26] 몇 년새 얇아진 스쿼드와 성찬, 이창훈 등의 장기부상으로 주저앉고 말았다.

동료가 골을 넣어도 나머지 선수들은 축하도 없이 멀거니 바라만 보던 깨강정 팀워크,강원 FC가 시즌 3승하던 시절에 이랬죠 에벨톤과 박진포의 콤비플레이로 최전방까지 오더라도 서로 믿지 못해서 패스를 주지 않던 광경까지, 모래알 팀워크의 절정을 보여주었다. 어찌나 심하게 팀 내부에서 곯아버렸으면 신태용 감독이 누구라고 이름 석자만 밝히지 않았을 뿐 언론에 대놓고 울화를 터뜨렸을 정도.

그래도 특유의 전, 후반에 기대주를 교체해 집어넣는 방식으로 현철, 평래, 종은, 윤영선, 하밀 등을 키워냈던 점은 평가할 만하다. 특히 센터백 종은-윤영선 라인의 성장은 아직은 아쉬운 부분이 있어도 불안했던 성남 수비에 안정감을 넣어주었다. 하지만 역으로 그렇게 키웠던 선수들까지 빼면서 쓴 김현우, 박세영, 승현 등의 실패, 무엇보다 센터백 자리에 야심차게 영입한 황재원의 폭망이었다.

공격은 죽어라 하는데 막상 한 방도 없고, 골도 없는 소위 지루축구로 인해 비난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27] 가뜩이나 선수단 면면이 크게 바뀌면서 상당 기간 손발이 안 맞아 고생할 텐데, 여기에 팀 케미스트리까지 붕괴해 버렸으니...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일각에선 신태용 퇴진설까지 나오지만 문제는 무턱대고 잘라봤자 대안이 없다. 오죽했으면 '박종환이 돌아오지 않는 이상 저놈들은 글렀다'고 자조하는 성남팬이 나올 정도일까.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일단 팀 레전드에, 사실 지원은 커녕 무자비하게 뺏어나 가던 시절동안 이뤄 낸 그 동안의 업적은 놀라울 정도이며, 거기다 나이까지 젊은 신태용보다 나은 국내파 감독을 크게 찾기 힘드니 두고 보자는 의견을 가지고 있다. 특히 문선명 총재의 사망과 겹쳐 팬들이 다시 불안감을 안은 작금의 태세에, 만약 예산이 다시금 시도민구단화가 진행된다면 승강제 앞에 누구를 믿어야 하는가? 누가 검증되었는가? 김학범은 이미 강원 ㄱㄱ함요.

결국 시즌 후반기에도 성남은 무기력한 모습으로 일관했고, 14승 10무 20패 리그 12위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는다.

또한 통일스포츠는 재정난을 이유로 그 해 11월 말 여자축구 충남일화 팀을 해체하면서 팬들을 불안에 떨게 했다. 그리고 아니다 다를까...구단에서 신태용 감독 및 코칭스텝 전원의 사표를 요구했다는 루머가 돌기 시작했고, 이는 곧 언론에서 확인되었다.
기사에 따르면 11월 28일 강원 FC와 리그 최종전이 끝난 뒤[28] 사표를 요구했고, 신태용 감독이 거취를 고심하는 와중 7일 재차 사표를 종용했고 결국 신태용 감독이 사표를 썼다고 한다.

비록 성적부진으로 여러 말이 많이 나온 한 해였지만, 누가 봐도 높으신 분들의 책임회피+희생양찾기+꼬리자르기 콤보를 얻어맞고 사실상 경질당한 셈이라... 전반적인 여론은 신태용 감독에게 동정적인 편이다. 그 와중에 세제믿윤을 내쫓고 신태용을 데려오라는 수원 팬들의 깨알같은 아우성은 덤

4.2. 사퇴 이후(2013~2014년)


새로 성남의 감독으로 부임한 안익수 감독이 팀의 주축인 김성환, 종은 등을 내보내면서 비판받자 상대적으로 지지도가 올라간 모습을 보여줬다. 사퇴 후 유럽으로 여행을 가면서 축구를 공부하기 위해 유학을 가면서 간스포츠에 '신태용의 유럽리그 직관기 해외파 친목질 신의 한수'라는 칼럼을 연재하기 시작했다. 샤빠를 벤치마킹하는 신태용


내가 리즈 시절 K리그에서 날렸었어

귀국하면서 대한민국 U-20 대표팀이 출전하는 툴롱컵을 통해 JTBC의 축구 해설위원으로 데뷔했다. 아울러 K리그 홍보대사를 겸임하며, 본인의 팀이었던 성남 일화 천마의 마지막 홈 경기에서 사인회를 열었다. 성남 FC의 재창단으로 감독 물망에 올랐지만, 스승의 그림자를 넘을 수 없었고, 새 수석코치와 자리를 바꿔 2014년부터 tbs 교통방송K리그 클래식 경기 해설위원으로 활동했다.

그리고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구단주에게 찍힌 것 같으니, 성남 FC에 돌아갈 일은 앞으로 없을 듯하다... [29]

4.3.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코치 선임


2014년 9월 A매치 직전까지 신임 감독 선임이 지연되면서, 공격코치로 국대에 합류해 A매치를 치르게 되었다. 감독 경력이 있는 신태용 코치가 임시로 지휘봉을 잡게 되었다. 실질적인 감독 대행[30]

9월 5일 베네수엘라전 직전에 울리 슈틸리케가 감독으로 선임되었지만, 갑자기 슈틸리케가 지휘하기에는 시간적 여유가 없어서[31] 슈틸리케는 고양종합운동장 관중석에서 우루과이전을 관전하며 취임 인사만 하게 되었다. 한때 아챔을 우승시킨 짬은 어디 안 갔는지, 이전 홍명보와 달리 전술의 유연성을 보여 주면서, 그리고 예전에 타의로 성남에서 내친 적이 있던 이동국의 2골을 앞세워 3-1로 베네수엘라에 역전 완승을 거두었다.(9월 5일, 부천종합운동장) 그런데 베네수엘라 선수들이 워낙 공격적으로 나오는 바람(이거 친선 경기인데, 소림축구를 배워왔나)에 부상자가 속출, 9월 8일 고양에서 열리는 우루과이전에서 좀 고생할 것 같다. 경기 후 인터뷰에서 내가 알제리전을 지휘했다면 이렇게 했을 것이다라면서 전임 감독을 대차게 깠다.

추석에 우루과이와 거의 대등한 경기를 펼쳤지만, 결국 후반 25분에 프리킥[32]에서 히메네스에게 헤딩 골을 허용하여 0:1로 패했다. 그러나 변칙적인 전술을 선보여 전반전에는 수비의 완벽함을, 후반전에는 맹렬한 공격을 보여줘 져도 만족스럽다는 평을 얻게 되었다. 홍명보보다 감독 대행인 신태용의 능력이 훨 좋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이리하여 예전에 뛰었던 팀의 모기업에서 생산하는 음료인 "맥콜"을 본따서 맥콜라리라는 희대의 찰진 별명을 얻었다(...).

그리고 10월부터 새롭게 선임된 울리 슈틸리케 감독과 같이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코치[33]를 맡게 되었다. 자세한 것은 슈틸리케호 항목을 참고하자.

하지만 이 쪽 활동은 오래가지 못했으니....

4.4.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U-23 감독

2015년 2월 5일 킹스컵을 지휘하다 병환으로 하차한 이광종 감독의 후임으로 리우 올림픽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 리우 올림픽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부임 이후의 행적은 신태용호를 참조하도록 하자.

5. 이모저모


  • 2012년 4월 AFC 챔피언스 리그 경기를 치루는 도중, 보온병에 담긴 차를 머그컵에 따라 마시는 장면이 화면에 잡히면서 친환경 감독으로 화제를 모았다. 위 사진은 이후 팬이 제작해 보내준 머그컵[34]을 쓰는 모습.

  • 2012년 5월에 에닝요의 국가대표 발탁을 위한 귀화 추진 계획에 대해 소신을 말하기도 했다.

  • K리그에서 박경훈 감독과 쌍벽을 이루는 K리그의 패셔니스타로 칭송받고 있다. 비록 감독으로서는 상대적으로는 무척 어린 40대 초반이라 과감한 패션을 보여주지는 못하지만, 군살없는 준수한 몸매에 적절히 옷발이 받쳐준다. 여담으로, 2012년 7월 피스컵에 참가했던 함부르크의 지역 언론은 신태용 감독의 패션에 관심을 보였다. 오오오!



  • K리그에서 가장 팬 친화적인 감독이었다. 위의 사진처럼 2009년 감독대행 부임 때 첫승 세리머니로 심권호와 함께한 레슬링 세리머니는 매우 유명하다.그리고 샴페인 대신 맥콜을 뿌리는 센스(...) 그밖에 2012 시즌 새 유니폼 발표식 때 신태용이 직접 유니폼을 입고 공개한 것도 유명. 간혹 감독의 권위를 무너뜨린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감독 본인이 나서서 흥행을 위해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내는 노력은 좋은 평가를 받는다.

  • 여담이지만, 성남 일화 천마통일교 재단 소속이나, 신태용 감독 본인은 독실한 불교 신자다. 사실, 성남 일화 천마는 공개적으로 종교색을 드러내지 않는다. 보고 있나? 고양 Hi FC?

  • 양준혁같은 대학교 출신이라 그런지 친분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친분과는 별개로 야구를 까서(...) 야구팬들의 원성을 샀다.

  • 아들인 재원이 현재 U-16 대표팀의 일원이다. 이승우를 비롯한 U-16 대표팀이 축구팬들에게 상당한 기대를 받고 있는데, 재원이 뛰어난 활약만 보여준다면 부자가 사이좋게 러시아행 비행기를 타는 모습을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본인은 이광종 감독의 후임으로 차출되었다. 러시아를 못 가면 로 가면 되나??

6. 어록

라돈치치요? 싸가지 없는 놈이죠. - 방송에서 외국인 용병에 대한 평가를 요청하자 그에 대한 감독님의 답변.

내 차보다 훨씬 좋길래 차를 발로 한 대 차고(...) 라커룸에 들어가 "정우 임마, 차 키 좀 줘 봐. 나 한 번 몰아보자. 차 좋으면 나도 사게." - 주차장에 못 보던 신형 포르쉐가 보였는데, 알고 보니 김정우가 상무에서 제대하고 새로 뽑은 차였을 경우 감독님의 반응.

오늘이 화이트 데이다. 오늘 너희들이 잘하면 경기 끝나고 애인과 웃으면서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에서 저녁식사를 할 수 있겠지만, 오늘 너희가 지면 인상쓰고 얼굴 찌푸리면서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어느 쪽을 택하겠는가? 선택은 너희 몫이다. - 2010년 3월 14일 인천전에서. 이 날 성남은 인천을 6:0으로 제압했다.

K리그 MVP는 J리그에 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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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감독대행 시절 포함
  • [2] 감독대행 기간 : 2008.12.08 ~ 2010.02.17
  • [3] 흔히 1970년 10월 11일로 알려져 있으나 이것이 실제 나이다. 2013년 6월 7일 주간 서형욱에서 밝히길 서정원, 김도훈, 정연, 김병수 등 내로라는 스타들이 1987년 청소년 대회에 몇 달 차이로 출전하지 못하자, 호적을 고쳐서 출전했다고 한다. 그 덕에 연고도 없는 마산으로 호적을 옮긴 적이 있다고 한다.
  • [4] 일화 천마(1992~1995) 천안 일화 천마(1996~1999) 연고지만 다를 뿐 같은 팀이다.
  • [5] 2009년에는 감독 대행이었다.
  • [6] 선임 발표 이전에 이미 킹스컵이 열리는 태국에 가 있던 것으로 보아, 아시안컵 결승을 전후로 신속한 교섭이 이루어진 것 같다.
  • [7] 상철도 역시 한 때 K리그 통산 최다골 1위를 기록할 정도로 K리그 에서의 활약은 레전드급이나, 이에 비해 대표팀과는 그다지 인연은 없었다.
  • [8] 이 때는 서울 연고 팀으로 동대문운동장을 사용했다.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 때문에 천안시로 옮긴 때는 1996년이다.
  • [9] 천안 일화에서 해임된 뒤, J리그 팀 세레소 오사카의 감독을 맡았다. 이해 황선홍세레소 오사카에서 뛰며 J리그 득점왕을 차지한다. 묘한 인연이다.
  • [10] 그리고 2013년 에닝요가 두번째 60-60 클럽에 가입했다.
  • [11] 골키퍼다 보니 은퇴 시점은 언제가 될 지 모른다. 김병지는 자기관리가 철저한 선수다.
  • [12] 김기동 선수는 2011 시즌이 끝나고 은퇴했다. 통산 501경기 출전.
  • [13] 신태용 자신도 이런 급작스러운 발탁을 상상조차 못했기 때문에 지도자 자격증조차 없었다.
  • [14] 예를 들면 이렇다. 2010년 화이트데이에 인천과의 경기가 있었을 때 "오늘 이기면 분위기 좋게 여자 친구랑 와인을 마시는 것이고 반대로 지면 성질내면서 소주를 마신다고 생각을 하라고, 나도 오늘은 와이프랑 와인을 마시며 뜨거운 밤을 보내고 싶다고도 했다. 그건 너희들이 하기 나름"이라고 말하면서 선수들을 자극했다. 그리고 성남은 바로 그 날 인천에 6-0으로 이겼다. 오오오
  • [15] 김정우는 2009년 말 상무에 입대, 이호는 2010년 초 UAE로 옮겼다가 여름에 J리그로 옮겼다.
  • [16] 심지어 선수 영입하는 데 6천만원이 없어서 영입 못하는 안습한 상황이었다고 한다.
  • [17] 정규시즌 기준 5위, 플레이오프 최종순위 기준 4위
  • [18] 다만 김영철은 전남에서 1년 뛰고 은퇴했다.
  • [19] 다만 축협에선 홍명보 감독을 우선적으로 밀어주고 있는지라 가까운 장래에는 무리겠지만... 그리고 그 기대에 보답이라도 하듯 메이저 대회에서 호성적을 거두었다.
  • [20] 이 방식은 병주 감독이 2008년이근호를 앞세워 대구 FC를 공격 우선으로 이끈 적이 있다.
  • [21] 2009년 K리그 준우승도 4등에서 시작해서 PO 토너먼트로 결승전까지 간 것이다.
  • [22] 홍철을 예로 들자면 본래 FW였다가 DF로 전향한 케이스. 그리고 홍철은 지금 국대 승선에 성공했다. 장학영이 공익근무요원 복무를 위해 팀을 떠난 직후 성남의 구멍이라고 불리던 좌측 풀백을 잘 막아주고 있다. 게다가 신태용 감독의 공격적인 성향과 과거의 FW였던 경험이 시너지를 일으켜서 잘 크고 있는 중.
  • [23] 다만 재성처럼 실패한 사례도 있다. 측면 공격수였던 선수를 장학영급으로 키울 수 있다고 오른쪽 풀백으로 돌렸으나 욕만 먹었다. 그 후 발전은 하였지만 수비력은 끝내 나아지지 않다가 정작 중국에 가서 측면 공격수로 터졌다. 2012년 경남에서 가서도 윙포워드로 좋은 모습을 보여주며 풀백 전환은 실패한 사례가 되었다.
  • [24] 장학영은 일화가 성남시에 완전 정착한 이후 선수로서는 사실상 유일한 레전드이자 원클럽맨이었다.
  • [25] 본인이 스스로 밝히긴 했지만
  • [26] 폭서기에도 1주 2경기를 벌이고, 1년 총 44경기. 작년은 총 30경기였다.
  • [27] 라돈치치와 조동건이 이적하게 된 중앙공격수 자리를 요반치치에 안정환으로 메꾸고 여차하면 한상운이었던 거 같은데... 그리고 득점 운이 너무 안 좋은 것도 있었다. 들어가야 할 슛이 아쉽게 골대를 맞고 나오거나 골키퍼 손에 막히고 다시 골대를 맞고 나오고..
  • [28] 일정상 마지막 경기는 12월 1일 상주전이지만, 상주가 몰수패를 당해 자동으로 2:0 승리가 된다. 따라서 강원전이 최종전이었다.
  • [29] 지방선거 당시 구단주와 경쟁자였던 신영수 새누리당 후보를 지지했다. 하지만 결과는 신 후보 낙선.
  • [30] 사실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대한민국 축구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다는 걸 감안하면 울리 슈틸리케 감독의 정식 부임 이후에도 몇 개월 동안은 신태용 코치가 선수 선발 및 작전에서 가장 큰 역할을 차지하게 된다.
  • [31] 비슷한 시기에 친정 구단의 감독 교체가 있었지만, 그쪽은 국내파이고 연고자라서 무리가 없었다.
  • [32] 이전에는 코너킥으로 기술되었으나, 사실은 기-손의 공격 실패 직후 역습을 당하며 우리 골대 오른쪽 골라인 부근에서 반칙을 범해 허용한 프리킥이다.
  • [33] 수석코치는 아르헨티나 출신으로 슈틸리케 감독보다 5세 위의 카를로스 아르무아. 아르무아 코치는 피지컬 코치도 겸임한다.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스페인 마드리드에 살고 있다 보니 스페인어에 능통한지라오오 능력자 아르무아 수석 겸 피지컬 코치를 위해 스페인어 통역관을 요구했다. 따라서 2001년의 박항서 코치를 승계한 셈이 되었다. 고로 위의 두번째 사진을 올린 사람은 예언가!! 슈틸리케 감독은 아르무아 코치와의 친분으로 공식 석상에서도 독일어보다 스페인어를 많이 쓴다고 한다.
  • [34] 성남 로고와 신태용 감독의 얼굴이 들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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