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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토

last modified: 2015-04-15 01:23:04 by Contribu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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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ents

1. 개요
2. 설명
3. 신사
4. 신토의 변천
5. 탄압
6. 그 외
7. 대중문화 속의 신토
7.1. 신토를 소재로 한 작품
8. 관련 항목

1. 개요

신토(神道)란 일본토착종교를 가리킨다. 대한민국에서는 한자를 그대로 읽어 신도라 하기도 한다.

신토를 두고 신기(神祈) 신앙이라고도 하는데, 신기란 천신지기(天神地祇)의 준말이다. 여기서 신(神)이란 하늘의 신, 즉 도래신인 아마츠가미를 뜻하고, 기(祈)란 땅의 신, 즉 토착신인 쿠니츠가미를 뜻하는 것이다.

바이두 백과에서는 '신도교'라고 적혀있다.

2. 설명

본격 동아시아판 힌두교
기본적으로 자연물, 유명한 인물 등을 으로 모시는, 분류하자면 니미즘적 종교이다. 그 외에 오니(鬼) 같은 것을 진정시킨다거나 하는 것도 넓게 보면 신토의 영역이다.

대한민국(특히 개신교 교회[1])에서는 '팔백만위 제신[2]을 모시는 종교로 이미지됐다.

여기에서 일본을 두고 신국(神國)이라 부르는 용례가 나왔다. 원래 옛 신토적인 관점에서, 신국이란 말은 "우리는 사방각지에 있는 온갖 신들을 참 예의 바르게 잘 모시는, 예의와 도리를 아는 민족임" [3] 하는 뜻이었다. 이러던 것이, 근대에 들어 제국주의 시절이 되면, 일본은 신들이 지켜주시고 현인신이 통치하는 무진장 위대한 나라임!! 하고 자랑하는 의미로 용례가 바뀐다. 옛 신토에서 사용한 용어를 받아들이되 의미부여를 다르게 했다. 한국을 가리키던 '동방예의지국'과 어딘가 비슷한 데가 있는 말이다.

3. 신사

신토의 주 건물을 신사(神社)라고 부른다. 불교, 천주교성당급. 각 신사는 근대에 체계화가 이루어져 관리되고 있으며, 신사의 이름으로 그 신사의 가장 중요한 신을 유추할 수 있다. 규모가 크고 지역의 거점이 되는 신사를 '대사(大社)'로 불러 따로 구분한다. 잘 알려진 예는 이즈모타이샤. 오덕계에서는 동방 프로젝트 때문에 스와 대사도 유명하다. 덴노와 관계된 신을 모신 경우 신궁神宮이라고 이름한다. 대표적인 예가 이세 신궁. 하지만 옛 신토에서는 사람이 신을 찾아가는 게 아니라, 신이 사람들에게 찾아오는 것이었다. 이때의 신사는 사원 건물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당목과 돌탑처럼 숲의 일정한 장소에 성역을 정해놓고 신성히 여기는 정도였다. 그러던 것이 불교 문화가 전해지면서 거기에 영향받아, 점차 신이 거주하는 장소로 사람들이 참배하러 오는 식으로 바뀌었다.

4. 신토의 변천

현재 여러 신들 중 태양신인 아마테라스[4]를 가장 고위의 신으로 여기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신사에서 그녀를 모시는 것은 아니다. 특히 지역으로 갈수록 현 신토의 중심신앙에서 멀어지는 경향이 있다. 이는 지방색이라 봐도 무방하다. 사실 아마테라스를 중심으로 하는 일본 신토의 신 계보는 국가신토의 입김도 없다고는 할 수 없는데, 아마테라스 중심의 기기신화 자체가 천황가의 미화를 목적으로 만들어졌고, 이후 메이지 유신 시기 국가신토에서 이를 광적으로 강화하면서 더욱 굳어졌기 때문.

사실 불교가 잘 나가던 전근대시기 일본에서는 본지수적[5]관념에 기초하여, 신토의 신들은 다 불교의 부처/보살의 화신이나 신중 취급을 받았다.[6]때문에 자연히 신토의 신과 신토를 불교의 부처/보살과 불교보다 하위에 놓았고, 아마테라스의 경우 대일여래(비로자나불)의 화신으로 격하했다. 이는 불교가 동아시아에 전래되면서 불교의 부처/보살/명왕/신중을 토속신앙의 신들처럼 신의 일종으로 인식하고 받아들이면서 생겨난 '신불일체설'이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신토의 신이 기존의 불교의 신중처럼 불법을 수호하는 하위 존재로 여겨지다 결국 인간과 마찬가지로 부처의 가르침(불교)를 통해 구원받아야 하는 존재로 격하되는 과정이 더 심해진 것으로, 최종적으로는 헤이안 시대 말기 위에서 말한 본지수적론의 등장으로 신토의 신들은 부처/보살의 화신인 명왕의 한 부류로 인식되었다. 이는 외형적으로는 신토의 격을 다소 올려준 것 같지만 실제로는 신토의 신을 부처/보살이 본지수적(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부처/보살이 모습을 바꾼 것)한 존재로 인식하고 신토를 불교의 아류이자 부분집합으로 만든 것으로, 신토에 대한 불교의 시각이 다분히 중심을 차지하는 것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신토의 토속신을 만물의 근원적인 존재, 부처/보살은 그 중 일부라는 관념이 생겨나 신토 측에서 주요 이론으로 삼았으나 현실의 벽은 높았다. 교단/교리 체계의 정밀함과 압도적으로 발달된 수준을 가진 불교의 철학사상의 수준은 신토의 입장에서는 넘을 수 없는 벽이었고, 가마쿠라 막부~센고쿠 시대에 접어들면서 불교 내부의 교단간의 충돌과 몽골의 침입, 신토와 불교의 지속적인 교섭관계에서 본지수적론에 입각한 신토의 철학이론이 정립되었으나 그것도 그 근원을 따지고 보면 불교(특히 밀교), 도교 등에서 이리저리 따 온 흔적이 역력했고, 결정적으로 신토계는 불교처럼 강력한 구심접을 가진 신토 교단이 없거나 있어도 불교에 견줄 수준은 아니었다. 물론 중세 신토(다이카 개신부터 가마쿠라, 무로마치 막부까지)시기 일본에서는 국가 주도로 신토의 국가제사의례를 정비하였으나 이는 제사의식의 정비 수준이었지 철학/교리의 큰 발전은 아니었다. 이런 불교 중심의 수직적인 종교 공존현상은 비단 일본의 신토뿐만이 아니라 근세 이전의 중국의 도교, 신유교나 한국의 토착신앙도 마찬가지였으며, 다만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었다. (불교항목 참조.)

이런 기존의 노선이 점차 깨지기 시작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근세시기 조선을 통해 일본에 주자학이 전달되면서부터였다. 신토계에서는 주자학을 받아들여 불교에 반대하는 사상을 점차 키워나갔는데, 이 과정에서 유교를 중심에 놓고 신토와 불교를 순차적으로 그 하위에 두는 쥬카신토(儒家神道)[7]와 쥬카신토를 수정하여 신토가 중심이 되어 여기에 주자학의 이론을 흡수하고 불교를 배격하는 스이카 신토와 고전학에 기초하여 신토를 본격적인 교단/교리를 갖춘 종교로 발전시킨 코카쿠 신토, 민간의 신토에 대한 민간신앙을 중심으로 한 종파 신토로 나뉘게 된다.

이 중 스이카 신토와 코카쿠 신토는 덴노숭배사상에 기초한 교리 체계와 이념을 갖고 있었고, 이들의 사상은 후대에 국가신토의 성립에 영향을 매우 크게 끼치게 된다. 참고로 코카쿠 신토의 이론의 중심이 된 저 고전이란 바로 일본서기고사기. 종파 신토의 경우 천리교등 신토에 기초한 신종교 운동으로 이어지나, 국가신토의 시대에는 상당한 탄압을 받았다.

국가신토는 메이지 유신을 거치면서 나라에서 덴노 중심의 교단을 확립한 것으로, 그 사상적 기원은 근세시기 신토의 배불 이론을 극대화한 것이다. 당시 신토계는 현실적으로 봤을 때 당연히 불교와 여타 종교에 비해 꿀리는 게 많았기 때문에 불교와 유교, 도교의 이론을 다량 흡수하는 동시에 신토의 우월성을 내세우기 위해 신토의 우월성을 일본인들의 역사에서 보이는 신토의 모습, 즉 '원초적인 일본의 종교'인 신토와, 그 신토의 신들이 갖는 단순하면서도 원초적인 순수성에 대한 극단적인 옹호를 통해 우월성을 드려내려 하였다. 당연히 국가신토는 안그래도 극단적인 이런 사상을 더 극단화시킨 물건이었으니, 그 결과는 바로 악명높은 일본의 천황 중심주의.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이 과정에서 신토와 불교를 강제로 분리하는 신불분리 운동과 더불어 각지의 신사들을 국가신토 이론에 맞게 정립하고 재건축하는 행위가 이루어졌다.

국가신토 자체는 2차대전 이후 일본의 항복과 더불어 사라졌으나, 이때 성립된 신토 이론과 교리, 신토 교단체제는 전부 유지되고 있다. 때문에 지금도 과거 한국과 일본의 교류가 많았던 곳의 신사들은 곧잘 진구황후전설 내용을 대놓고 붙였다가 나중에 욕먹고 떼었다 슬쩍 붙였다 하는 안습한 행동을 곧잘 하고 있으며, 일본 학계에서는 '일본의 종교 중 가장 원초적인 것은 신토가 아니라 슈겐도임ㅇㅇ'하는 주장까지 하고 있다.[8]

여담으로 2차 대전 시기 국가신토의 정립으로 일본 내에서 신토가 비로소 불교의 우위에 섰다고는 하지만, 이는 오래가지 못한다. 이유는 일본 정부를 등에 업은 신토계의 계속된 잘난체에 질린 불교계에서 신토계에 대해 강세로 전환했기 때문. 자연히 신토의 교리와 이론 상당수가 불교에서 유래한 게 많다 보니 신토계에서는 할 말이 없었다. 여기다 엎친 데 덮친격으로 일본 정부에서도 자신들을 동양의 수호자라고 자처하면서 당시 '서양 기독교에 대항할 만한 동양 종교를 찾아 내세우자!'하는 계획을 실행중이었는데, 이 때 신토는 맞수가 안된다며 불교를 선정했다(...) 그리고 잔뜩 어그로 받은 대한민국은 십자가의 나라로

5. 탄압

전 항목에서 상술된 각지의 신사들을 국가신토 이론에 맞게 정립하고 재건축하는 행위는 강압적인 형태로 나타난다. 국가신토사상에 부합되지 않는 신사들은 강제로 폐쇄시켜버리는데 일본 전역에서 7000여 개소의 신사가 폐쇄 당한다. 신주가 폐쇄를 거부할 경우 경찰력을 동원해 신주를 체포 구금하기도 했다. 시골마을에서 대대로 주민의 신앙을 받아온 오래된 신사 같은 경우는 폐쇄에 반발해 주민들이 산이나 숲 깊숙한 곳에 임시 사당을 짓고 비밀리에 참배하는 형태로 반발했다. 일본에서 인적이 없는 깊은 산 속을 가다가 뜬금없이 황폐화된 작은 사당이 튀어나오는 경우는 바로 이런 경우. 시골에서 음지로 들어간 신사들은 국가 신토가 몰락하면서 다시 양지로 나오기도 했지만 종전 이후 빈곤함 혹은 젊은 세대가 잊어버려서 버려지는 신사도 많았다. 이 때 숨겨진 신사들은 시골 청년들이 징병을 피하는 대피소 역할을 하기도 했다. 징병통지서에 불응하거나 직접 통지서를 갖고 징병대상자를 끌고 가려고 헌병이 마을에 나타나면 주민들이 대상자를 은폐된 신사에 숨겨두면서 징병을 피했다. 신사가 먹고 자는 숙소 역할을 해서 장기간 숨는 게 가능했기 때문이다.[9]

6. 그 외

각 신사에서 모시는 신들은 파트별로 맡은 분야가 다르고 각각 그 효험이 다르다고 한다. 주된 예를 들면 상공업과 쌀과 성공의 신인 이나리 신[10]을 모시는 이나리 신사, 학문의 신으로 받들어져 수험생들이 주로 참배하는 스가와라노 미치자네를 신으로 받드는 텐만구(天満宮)[11], 무술의 신이라는 하치만 신[12] 등이 있다. 하지만 일본인들이 새해에 신사참배를 갈 때는 이 점을 굳이 따지지 않는 경우가 많으며, 신들의 분야나 효험 역시 시대마다 차이를 보이는 경우가 많다.[13] 지금처럼 각 신들의 전문분야가 널리 퍼지기 시작한 것은 센고쿠 시대 각 신사의 하급신관들이 각지를 돌며 자기네 신사의 신의 효험을 광고하면서부터다. 일본 각지에 널려 있는 이나리 신사, 하치만 신사, 텐만구 등은 다 앞서 언급한 본사의 말사 내지는 섭사 격으로, 쉽게 말해서 멀티이다. 시라카와고후루데 신사 시라카와 하치만 신사도 하치만 신사의 말사(末社)에 해당한다.

신사의 여자신관인 무녀가 종교적인 의미하고는 좀 많이 다른 의미로 유명.(…)

국가신토는 근대에 만들어진 종교의 탈을 쓴 괴기한 것이니 주의.

7. 대중문화 속의 신토

참고로 동방프로젝트에 나오는 하쿠레이 신사는 누구를 모시는지 도통 알 길이 없다. 추측이 난무하기는 하지만.[14]

사우스 파크 크리스마스 특집에선 개리슨 선생에게 엄청 까였다.

또한 일본 애니메이션에서는 어린이용 애니에서까지도 꽤 자주 나오는 편이다. 문제는 한국어로 더빙을 할때 이라고 괴악하게 번역한다는 것. 절에서 손뼉치면서 절하나보지? 차라리 신당이라고 하거나, 그냥 신사라고 하는 게 더 적절하다.근데 우리나라 신당에서도 손뼉치고 절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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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사실 독립 운동을 위해서 참배를 거부한 목사들도 적지 않은 편이다. 물론 당시 대다수 목사, 신부, 승려들은 참배를 했다. 당시 교황청에서는 동양의 제사가 가톨릭 교리에 모순되지 않는다고 견해를 밝혔는데, 이게 악용되어서 조선-일본 가톨릭에서 신사 참배를 정당화하는 논리로 사용되었다. 그리고 대다수 개신교 종파도 사이좋게 이렇게 하였고(...) 다만 당시 조선인 신부, 목사, 승려들도 일제 앞에서는 약자에 불과했으므로 옹호될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다. 판단은 알아서...
  • [2] 신이나 영혼을 세는 단위는 위位이다. 제신(諸神)이란 '여러 신'을 가리키는 말. 정확히는 '八百万'이라 쓰고 'やおよろず(야오요로즈)'라고 읽는다. 팔백만은 실제 숫자가 아니라 '많은 것'을 가리키는 상징적인 숫자. 단테의 신곡에서 여러 영혼이라는 뜻으로 '일곱 영혼'이라는 표현을 사용함과 비슷하다.
  • [3] 그러나 현재 일본 신토에서는 한국계 도래신이나 한국 관련 신사들은 대부분 이름이 강제 개명되거나 신의 계보가 천황가에 유리하도록 뒤바뀌어 있다. 이는 제국주의 사상에 기초하여 천황 중심의 국가를 만드는 과정에서 형성된 국가신토의 폐해다. 대표적인 게 가라쿠니 신사로, 본래 가라쿠니를 韓國이라 썼던 것을 음이 같은 唐國으로 바꾸어 버렸다. 자세한 것은 국가신토,일본 신화항목이나 '일본신도사','일본의 신사' 등을 참조
  • [4] 현 신토에서 가장 높은 지위에 있는 태양신. 하지만 해당 항목에 나오듯 처음부터 그런 건 아니었다
  • [5] 부처나 보살이 중생의 교화를 위해 신이나 명왕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 참조 링크 http://breakupshell.blog.me/100102177569
  • [6] 동방 프로젝트에서도 이와 관련된 대사가 있다. 동방문화첩-더블 스포일러 에서 샤메이마루 아야의 취재 코멘트 중 히지리 뱌쿠렌과 관련된 대사를 보면 본지수적이라는 말과 더불어 '대일여래 모습을 한 아마테라스'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이것이 신토의 실제 역사를 상징하는 구절이다. 해당 대사 참조링크 http://raven13th.egloos.com/5223668
  • [7] 유교의 영향을 많이 받아, 신토임에도 신에 대환 관념은 일반적인 신토와 달리 성리학의 음양이기론에 입각해 해석한다.
  • [8] 본문내용 작성시 참조자료 : http://cafe.naver.com/thaiinfo/8345, 일본인과 천황(카리야 테츠 저), 日本佛敎史-思想史としてのアプロ-チ-(末木文美士 저, 국내 번역본 제목은 "일본불교사-사상사로서의 접근"), 임나일본부설은 허구인가(김현구 저), 일본신도사(무라오카 츠네츠구 저, 박규태 역), 청소년을 위한 동양철학사(임선영 저)
  • [9] 징병을 거부하면 비국민 취급을 받는 시절에 이게 가능한가 싶겠지만, 농업의 특성상 젊은 일손은 마을에서 엄청나게 중요한 노동력이고 메이지 유신 직후 세율책정을 위해 농지정리 사업을 벌이면서 농가가 갖고 있던 농지를 뺏거나 과한 세금을 부과되는 경우가 많아 중앙정부에 반발심을 가지는 농촌이 많았다.
  • [10] 총본산은 교토의 후시미이나리타이샤(伏見稲荷大社)
  • [11] 총본산은 교토의 기타노덴만구(北野天満宮)와 후쿠오카현 다자이후시의 다자이후텐만구(太宰府天満宮). 다자이후는 스가와라노 미치자네가 좌천되어 갔던 곳이다.
  • [12] 응신천황을 신체로 한다. 총본산은 오이타 현 우사 시의 우사신궁(宇佐神宮)
  • [13] 동방구문구수에서 야사카 카나코가 시대에 맞춰 자신의 신덕을 바꾸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얘기하는 것은 여기에 기초한다.
  • [14] 야쿠모 유카리내 신사라는 발언을 한 적이 있지만 이후로 자세한 것이 나온 적은 없다. 해당 항목 참조.
  • [15] 조연 캐릭터 중 쥬몬지 카호의 집안(10씩 커지는 4대 집안중 신사의 쥬몬지)이 신사. 이를 배경으로 한 에피소드도 여러개 있다.
  • [16] 주연 캐릭터 중 히이라기 자매네 집이 신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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