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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학

last modified: 2015-04-09 22:31:01 by Contributors



넥센 히어로즈 No.88
심재학(沈哉學)
생년월일 1972년 10월 18일
출신지 서울특별시
학력 영중초-충암중-충암고 -고려대
포지션 투수 우익수
투타 좌투좌타
프로입단 1995년 LG 트윈스 1차 지명
소속팀 LG 트윈스(1995~1999)
현대 유니콘스(2000)
두산 베어스(2001~2003)
KIA 타이거즈(2004~2008)

2001년 한국프로야구 외야수 골든글러브 수상자
박재홍(현대 유니콘스)
송지만(한화 이글스)
이병규(LG 트윈스)
정수근(두산 베어스)
심재학(두산 베어스)
이병규(LG 트윈스)
송지만(한화 이글스)
이종범(KIA 타이거즈)
심정수(현대 유니콘스)

LG 트윈스 등번호 14번(1995~1999)
신동수(1994) 심재학(1995~1999) 류택현 (2000~2010)
현대 유니콘스 등번호 14번(2000)
송신영(1999) 심재학(2000) 박우호 (2002~2004)
두산 베어스 등번호 10번(2001~2003)
강혁(2000) 심재학(2001~2003) 윤성(2004~2005)
KIA 타이거즈 등번호 14번(2004~2008)
진철(2001~2003) 심재학(2004~2008) 박경태(2009~2010)
넥센 히어로즈 등번호 88번(2009~)
팀 창단 심재학(2009~) 현직

Contents

1. 소개
2. 프로 선수 시절
2.1. LG 트윈스 시절
2.2. 현대 유니콘스 시절
2.3. 두산 베어스 시절
2.4. KIA 타이거즈 시절
2.5. 평가
3. 지도자 시절
3.1. 2012년
3.2. 2013년
3.3. 2014년
3.4. 2015년
4. 기타
5. 타자 연도별 주요 성적
6. 투수 연도별 주요 성적

1. 소개

한국프로야구 선수. 2014년 현재 넥센 히어로즈의 1군 타격 코치를 맡고 있다.

2. 프로 선수 시절

2.1. LG 트윈스 시절

고려대학교 시절 4번타자에 엄청난 강견으로 이름을 날렸으며, 1995년 LG 트윈스의 1차 지명을 받아 입단한다.심재학의 ㅎㄷㄷ한 홈송구. 동시대를 풍미한 강견 심씨 외야수 심성보, 심정수와 묶여 3심이라 불리기도 했다.

하지만 LG 트윈스에서의 첫 시즌은 처참했는데, 1군 108게임에 출장해서 타율 .230 4홈런 18타점을 기록하는데 그쳤다. 타격 폼이 워낙에 특이해 교정에 교정을 거듭했다고 한다. 그러나 다음 해인 1996년부터 본격적으로 LG의 중심타선에 자리잡았고, 아마 시절 및 프로 입단 당시의 기대만큼은 아니었지만[1] 1998년까지 두자릿수 홈런을 치며 활약하게 된다.

그러나 심재학의 강견을 눈여겨 보던 LG 코치진은 1998 시즌 종료 후 엄청난 병크를 저지른다.

그것은 바로 심재학을 투수로 전향시키는 것!!

당시 LG의 사령탑이던 천보성 감독은 투수가 필요하게 되자, 당시 투수코치인 정삼흠과 의논 끝에 중심타자 심재학을 좌투수 심재학으로 전향시켰다.[2] 정삼흠 투수코치가 심재학에게 투수 전향을 권유할 때, 용병이 외야 한 자리를 차지하는게 대세 라는 근거를 들어 '계속 외야에서 뛸 경우 돌아올 것은 트레이드다!' 라는 말로 꼬드겼다고 한다. 당시 심재학의 변

강한 어깨 탓에 최고 구속은 145km/h를 찍었으나 제구가 전혀 되지 않았고, 아무래도 타자투수가 쓰는 근육이 다른 탓에 투구하는 내내 어깨 근육통에 시달렸다. 결국 투수로 15게임에 등판(10게임 선발 등판), 3승 3패 평균자책점 6.33을 기록하며 시즌을 망쳤다. 결국 시즌 막판 타자로 다시 전향하게 되었다. 그리고...

2.2. 현대 유니콘스 시절

LG와 사이가 틀어질 대로 틀어진 심재학은 트레이드를 요구했고, 최원호를 상대로 현대 유니콘스에 트레이드됬다.

현대 유니콘스로 이적한 심재학은 다시 방망이를 잡으며, 2000시즌 .265 21홈런 75타점을 기록하며 현대의 2번째 우승을 견인한다.

2.3. 두산 베어스 시절


그러나 당시 선수협 사태로 미운털이 박혔던 심봉사심정수의 보복성 트레이드의 맞상대로 지목되어 2000년 KS 맞상대였던 2001년 2월 두산 베어스로 이적하게 된다. 당연히 두산 팬들은 심정수를 왜 내보내냐며 분노하였고, 이는 조직적인 항의운동으로까지 발전하며 공식홈피 곰대가 1주일 폐쇄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1년 후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채.. 저 당시 두산팬들에게 심죄악이라고 대차게 까인건 덤.

그러나 심재학은 두산에서 대폭발(!)하며 2001년 1군 117게임에 출장, .344 24홈런 88타점을 기록하며 커리어 하이를 기록했다! 결국 개인 통산 2번째 우승 반지이자 2년 연속으로 우승 반지를 끼는 영광을 얻었다. 2001년 한국시리즈 6차전에서는 장종훈이 그랬듯 희생플라이로 두산의 승리를 매듭지었다. 2001시즌 외야수 부문 골든글러브도 획득.
하지만 2002년 타율이 무려 1할이나 감소하는 부진을 겪었고, (.245 15홈런 57타점) 2003년에는 .236 5홈런 27타점이라는 처참한 성적표를 들었다. 이 와중에 정수근과 덕아웃에서 짬뽕 때문에 싸움을 벌이기도 했다.[3][4]관련 기사 첫 해 심재학이 미친 활약을 보여주며 양측 모두가 만족할만한 전형적인 윈-윈 트레이드로 심정수-심재학 트레이드는 남게 될 줄 알았으나 결과적으로는 심정수가 보여 준 성적에 비해 많이 밀리는 것이 사실이다.

2.4. KIA 타이거즈 시절

2003 시즌 종료 후 두산 베어스는 리빌딩을 목적으로 KIA 타이거즈와 심재학 = 윤성 + 진철 트레이드를 성사시켰다. KIA로 이적한 심재학은 2004 시즌 128게임에 나와 타율 .281 22홈런 81타점을 기록, 삼성시절과 비교하면 비교적으로 먹튀짓에 가까운 활약을 하던 마공갈마해영과 부상에 시달리던 박재홍의 몫까지 활약하며 시즌 종료 후 3년 간 18억 원에 FA 계약을 한다.

그러나 FA 계약 후 2005 시즌에는 부상에 시달리며 부진, 1군 94경기에 출장하는데 그치며 .254 12홈런 39타점을 기록했다. 2005년 4월 30일 대구 삼성 라이온즈전에서는 신용운을 울리는 수비를 보여주기도 했다. 그런데 그것도 모자라 신용운에게 담배셔틀을 시킨 모양이다. 관련기사

2006, 2007 시즌에는 부상에 허덕이며 1군 56게임과 25게임에만 출장했으며, 결국 2008 시즌에 단 1타석에만 들어서고 안재만과 함께 6월에 웨이버 공시되었다. 웨이버 공시된 후 그는 KIA 구단에다가 지도자 연수 요청을 하면서 은퇴하게 됬다.

심재학의 선수 경력은 이것으로 끝났다.

2.5. 평가

이러한 전적 탓에 대다수의 야구팬들은 심재학을 FA로이드만 쩌는 그저 그런 선수로 많이들 알고 있지만, 어느 정도 생각을 해 봐야할 것이 심재학은 생각보다 괜찮은 선수였다.

플루크 시즌이라는 말을 듣긴하나, 커리어하이인 2001년의 RC/27은 94이종범, 02이승엽과 동급이고 03이승엽보다 높다.[5]
또한 통산 타율은 .269로 2할 7푼도 채 되지 않는 그래봤자 1리 차이지만 평범한 기록이지만, 통산 출루율은 무려 .378로 타율과의 갭이 1할이 넘는다. 게다가 타율과 출루율의 차이가 크고 작고를 떠나서, 통산 출루율 .378과 통산 OPS .827은 3000타석 이상 뛴 선수들 중에서도 각각 16위와 26위에 해당하는 수치이다. 또한 홈런 역시 통산순위에서 현재 공동 26위.(다른 한 명은 바로 김한수) 이미지와는 달리 생각외로 쏠쏠한 타자였음에는 틀림없다. 타율이 매우 낮아보여서 그렇지, 타율만 중시하던 예전과는 달리 OPS가 일반화되면서 출루율을 많이 고려하는 등 야구에 관한 시각 자체가 많이 진일보한 요즘에 뛰었다면 또 어떻게 평가받았을지 모르는 부분.

문제는 타격 시 스윙 스피드가 굉장히 느렸다. 몸집만 보면 거포이고, 때리면 홈런인 것 같은 타구를 날렸는데 플라이가 된다든지... 그렇기 때문에 타율이 낮았던 건지도 모른다.

3. 지도자 시절

김시진 감독의 부름을 받아 2009년부터 히어로즈의 2군 타격코치로 선임되어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2011년에는 1군 타격코치로 승격됬다. 장민석을 2군에서 지도하여 이택근 이후 넥센 히어로즈의 주전 중견수로 키워낸 사람이긴 한데... 타격코치로서의 평은 그리 좋지 않다. 11시즌 1군 타격코치 시절 히어로즈 물타선의 주범으로 까이곤 했다.

3.1. 2012년

과거 이승엽을 키워냈던 박흥식 히어로즈 2군 감독이 1군 타격코치로 올라오면서, 외야수비코치로 자리를 옮겼다. 가끔씩 TV에 시프트를 옮기는 장면이 나오는데, 옮기는 장면이 나온 다음 공은 옮기기 전 위치로 날아가는 일이 자주 있어서 시프트를 옮기는 장면이 나오면 '죄악시프트' 라고 부르며 긴장타는 사람이 어느정도 있다.

3.2. 2013년

2012시즌 종료 이후 염경엽 감독 취임으로 공석이 된 작전,주루코치로 보직이 변경되었다.[6] 대신 외야수비코치는 한화 이글스에서 최만호 코치가 옮겨왔다. 스프링캠프 연습경기와 시범경기에서 선수들의 뇌주루가 속출해 심죄악으로 불리며 적잖이 비판받았다. 염경엽감독의 질책 및 격려와 본인의 공부를 통한 노력으로 주루 지도능력이 어느정도 향상될 줄 알았으나 2013시즌 넥센의 도루성공률이 최하위를 달리면서 회의론이 대세가 되었다. 회의론 정도가 아니라 팬들이 한 마음으로 짤리기를 바라고 있다. 그리고 별명이 심죄악이다. 11년엔 팀 타자 수준 자체가 낮아서 실드가 쳐졌지만 12년에 도루성공율 1위했던 팀이 13시즌에 바로 꼴지로 떨어진 걸 어떻게 실드 칠 수 있는가?[7] 그리고 최만호는 한화에서 주루코치로 호평받았던 코치여서 최만호와 심재학의 보직을 바꿔야 한단 소리도 꽤 있었다.

결국 2013년 8월 28일 심재학 코치 본인의 요청으로 최만호 코치와 보직을 맞바꾸었다. 넥센 히어로즈 갤러리에서는 축제 분위기 스스로도 마음 고생이 심했던듯 좋은 결과가 있길 기원하자.

3.3. 2014년

넥센의 1루·외야 수비 코치를 맡고 있다. 작년에 마음고생이 심했던 것을 토로하는 인터뷰도 했다. # 참고로 인터뷰 내용에 나오고, 밑의 각주에도 있지만, 그렇게 자기 마음고생을 심하게 만든 사람은 아이러니하게도 감독인 염경엽이라고.... 염감독이 자기한테 보고 배운 게 있으니까 잘 할 거라고 하면서 맡겼단다.
진짜 염경엽 감독님은 코치들에게는 악덕 감독 맞는 듯....

3.4. 2015년

1월 15일 스프링캠프 출발 직전에 1군 타격코치였던 허문회와의 계약이 불발되면서 공석이 된 1군 메인타격코치 자리를 맡았다.[8] 이로서 심재학은 2012년 역대급 주루시즌 다음년도에 주루코치를 맡고, 2015년에는 2014년 역대급 타격시즌의 다음년도에 타격코치를 맡는 고난의 행군을 계속하게 된다.염감이 죄블리를 격하게 아끼(?)는 듯 그것보다 코치들에게 잔소리를 격하게 하기 위한 전략 아닌가?? 어쨌든 심재학 코치 때문에 팬들 멘붕만 늘어나겠군. 이미 심재학이 타격코치를 맡았던 2011시즌의 엄청난 물빠따를 경험했던 넥센팬들은 불안감에 휩싸여 있다.

그리고 그 불안은 현실이되어 시즌 초부터 방망이의 기복이 상상초월. 한경기 메가히어로즈포 터지고 나머지 경기는 개점휴업하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결국 4월 9일 잠실서 두산의 유네스키 마야에게 136구 노히트노런을 내주는 참변을 초래했다. 심판이 노골적인 넥센안티 박근영임을 고려해도.

4. 기타

  • 이분이나 저분, 그분들에 가려져 있어 크게 주목받지 않았지만 빵 사건의 제4 용의자로 추정되었다. 그래서 빵재학이라는 별명까지 얻었으나 위의 세명에 비해 그리 알려진 편은 아니다. 게다가 이분의 증언으로 범인이 사실상 요분으로 확정되는 분위기라 묻혔다. 그리고 현재는 그분으로 확정.

  • 이휘재와는 충암고등학교 동창 사이로 대단한 절친이다. 덕분에 이휘재는 심재학이 속한 팀마다 따라다니면서 시구를 했다. 부인 이재원 씨는 1998년 미스코리아 선.

  • 팬들에게 포르쉐를 선물받았다는 카더라도 있다. 그리고 김구라가 인터넷 시절 이 소문을 듣고 '4번타자 주제에 2할5푼에 홈런 고작 10개치는 XX가 포르쉐 받는다'라고 깠었다

  • 홈 개막전에서 장갑 위에 나이키 로고를 그려 스폰서 사랑[9]을 입증하였다(……). 믿으면 골룸. 사진

  • 프로야구매니저의 2013년 6월말 업데이트에서 OB-두산의 3번째 레전드 카드로 추가될 예정이다. 팬들은 심정수나 우즈를 냅두고 고작 입단기간 3년에 1년 반짝한 선수한테 레전드를 주냐며 어이없다는 반응. 물론 우즈는 나중에 추가 되었지만 정작 심정수는 두산 버젼이 아직까지 나오지 않았는데 박재홍도 현대와 SK 두가지 버젼이 모두 있는데다가 심지어 용병인 리오스마저도 기아와 두산의 두가지 버젼으로 나왔다는걸 생각하면 심정수 두산버젼을 추가하지 않고 심재학의 소개란에 당당히 우동학 트리오라 적은것은 누가 봐도 프야매 측의 병크.

  • 1985년 리틀야구 월드시리즈에서 한국이 우승할 때 주요선수였다. 그래서 2014년에 한국이 29년만에 리틀야구에서 우승을 차지할 때 경기를 허구연과 함께 해설을 했다. 참고로 상대팀엔 이슨 베리텍이 있었다. 1985년도 대회에서 심재학의 활약에 대해 아는 위키러의 추가바람

5. 타자 연도별 주요 성적

역대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 타수 안타 타율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1995 LG 트윈스 106 239 55 .230 10 4 4 18 32 2 57 .356 .376
1996 118 389 111 .285 15 1 18 72 59 1 75 .468 .395
(5위)
1997 117 411 117 .285 23 1 15 84
(3위)
54 5 56 .455 .363
1998 124 412 110 .267 22 1 11 70 47 0 66 .405 .360
1999 1 0 0 .000 0 0 0 0 0 0 0 .000 .000
년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안타 타율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2000 현대 유니콘스 130 430 114 .265 30 1 21 75 66 3 66 .486 .361
년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안타 타율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2001 두산 베어스 117 369 127 .344
(2위)
20 1 24 88 84 7 93 .599
(3위)
.473
(2위)
2002 119 383 94 .245 16 3 15 57 56 2 73 .420 .361
2003 111 276 65 .236 16 0 5 27 28 1 42 .348 .332
년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안타 타율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2004 KIA 타이거즈 128 372 105 .282 23 2 22 81 64 1 85 .532 .408
2005 94 252 64 .254 9 0 12 39 34 3 50 .433 .373
2006 56 119 21 .176 5 0 2 7 7 0 16 .269 .268
2007 25 51 12 .235 4 0 0 4 9 0 7 .314 .328
2008 1 1 0 .000 0 0 0 0 0 0 0 .000 .000
통산(14시즌) 1247 3704 995 .269 193 14 149 622 539 25 686 .449 .377

6. 투수 연도별 주요 성적

연도 소속팀 경기 이닝 평균자책 세이브 홀드 피안타 사사구 탈삼진
1999 LG 트윈스 15 48⅓ 6.33 3 3 0 0 48 36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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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그래도 90년대 후반 LG의 4번 타자로 맹활약했다.
  • [2] 사실 심재학의 투수 전향은 전임 이광환 감독도 추진했던 일이다. 이를 앞장서서 반대한 사람은 당시 타격코치를 맡고 있었던 천보성... 이를 두고 벌어진 이광환vs천보성의 갈등은 이광환 감독이 중도 사퇴한 여러가지 이유 중에 하나이기도 하다. 자기가 코치일때는 반대하면서 전임감독 밀어내더니, 정작 감독되니 다시 추진...
  • [3] 그 이후 정수근은 FA를 선언하여 롯데 자이언츠로 이적한다.
  • [4] 여기에 대해서는 야구 커뮤니티에서 여러가지 바리에이션이 있는데 정수근이 덕아웃에서 대놓고 짬뽕을 시켜먹는걸 나무랐다가 싸움이 벌어졌다는 설 & 정수근이 시킨 짬뽕을 보고 심재학이 에이 한입만 하다가 다툼이 벌어졌다는 카더라 등등의...
  • [5] 다만 이승엽의 경우 홈런 신기록을 달성한 03시즌이 상징적인 의미는 크더라도, 99년도와 02년도가 더 높이 평가받는다.
  • [6] 14시즌 중 인터뷰에 의하면 이 자리에 오른 이유가 사실 염경엽 감독의 제안 때문이었다고 한다. 1년 동안 본게 있을 것이라면서 시켰다고. 역시 악덕 감독 염감. ㄷㄷㄷ
  • [7] 사실 12년에는 염경엽 감독이 주루코치였으므로 염경엽의 주루코치로서의 능력을 보여주는 결과이기도 하다. 2011년에도 팀 도루는 꼴지였다.
  • [8] 하지만 허문회는 당일자로 넥센과 재계약하는 흠좀무한 상황을 보여줬다.
  • [9] 나이키는 2013시즌 넥센 히어로즈의 유니폼 및 스포츠 장비 스폰서를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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