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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덴 대공세

last modified: 2015-08-17 13:18:31 by Contributors

Contents

1. 개요
2. 배경
3. 작전 준비
4. 전투 진행
4.1. 작전 초기
4.2. 정체된 공세
4.3. 바스토뉴 공방전
4.4. 연합군의 반격
4.5. 독일군의 공세 실패
5. 공세의 여파
6. 공세 실패의 원인
6.1. 교통 문제
6.1.1. 비좁은 도로망
6.1.2. 진흙탕 도로
6.1.3. 이런 죽일놈들
6.2. 병참 문제
6.3. 제공권 장악
6.4. 연합군의 발빠른 대응
6.5. 독일군의 훈련 및 경험부재
6.6. 낮은 수준의 기계화
7. 미디어


1. 개요


제2차 세계대전 중인 1944년 12월 16일부터 1945년 1월 25일까지 서부전선에서 이루어진 독일군의 겨울 대공세로 벌어진 일련의 전투. 아르덴 공세(Ardennes Offensive), 벌지 전투(Battle of the Bulge), 또는 바스토뉴 공방전 등으로 다양하게 불린다.

아르덴 대공세는 서부전선에서 점점 불리해져가던 독일군이 최악의 기상상황에 모든 것을 걸고 감행한 회심의 반격 작전이었다. 그리고 이 전투의 결과, 독일군은 연합군의 진격을 6주일 늦춰서 제3제국의 패망을 6개월 앞당기게 된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제1차 세계대전 당시의 춘계 대공세(루덴도르프 대공세)의 재판.

임팔 작전과 더불어 보급을 적에게 탈취한 것에 의존하려 한다면 어떤 결말이 나는지 보여주는 전투다. 참고로 임팔 작전과 아르덴 대공세는 해당 전투로 인해 국가의 패배를 앞당겼다는 것도 유사하다. 물론 그렇다고 아르덴 대공세를 임팔 작전과 같은 막장 수준으로 판단하는 것은 무리가 있는 편. 일본군은 나름대로의 있을건 다 있는 심지어 독립을 목적으로 찬드라 보세가 모은 인도군에게 약간의 지원까지 받은 상태였다!! 그런데도 무타구치 렌야가 병크를 터트려서 다 말아먹은 거고, 독일군은 없는거 있는거 다 끌어모아서 전선 돌려막기 즉 희대의 도박을 벌여 연합군의 진격을 막을 마지막 희망을 보고 달린건데 막상 때리려고 보니 프랑스를 씹어먹던 시절의 그 유능한 들이 어디론가 사라진 뒤였다.

2. 배경


연합군마켓 가든 작전을 시원하게 말아먹고 결국 보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진격을 멈춘 덕분에 서부 전선은 교착상태로 돌입하였다. 게다가 바그라티온 작전을 통해 벨라루스우크라이나에서 독일군들을 때려잡고 다니던 소련군도 역시 수백 킬로미터를 진군해왔기 때문에 보급 문제와 후방 정리 등의 이유로 진군을 멈춘 상태였다. 이에 아돌프 히틀러는 그 때까지 방어에만 급급했던 독일군 병력을 최대한 집중시켜 아르덴 지방의 숲을 전격적으로 돌파하여 벨기에 지역의 연합군을 포위섬멸한다는 일련의 반격작전을 구상하였다. 정확히는 서방 연합군을 최대한 몰아세워서, 서방 연합군이 보급 기지로 삼고 있었던 벨기에의 안트베르펀를 점령해 버리면 서방 연합군은 전투 불능이 되어버린다는 것. 노르망디 상륙작전 이래 독일군은 프랑스 북부에서 네덜란드에 이르던 항구들을 직접 파괴하거나 최대한 사수하고 있었고, 독일군이 붙들고 있던 몇몇 항구들은 독일군이 항복하고 나서야 다시 가동할 수 있었다. 연합군이 마켓 가든 작전을 통해 네덜란드 강습을 시도한 것도 베네룩스 3국 연안의 항구 도시들을 확보하기 위함이었다. 마켓 가든 작전에서 독일군이 반격에 성공하긴 했지만 알려진 바처럼 연합군이 후퇴한 것은 아니었고, 안트베르펀은 그 와중에 연합군이 확보했던 사실상 유일한 최전방 보급창구였다. 여기 잃으면 노르망디에서부터 보급품 끌고와야 하는데 이렇게되면 아프리카 군단과 비슷한 보급거리를 달성한다(...) 게다가 이 보급 문제는 백년전쟁하고 과정이 거의 똑같다. 노르망디에 상륙해서 캉먹고 뭐먹고 하다보니 보급문제로 항구로 쳐들어가고(...). 그러므로 독일군이 그 뒤 남은 병력을 전부 몰고 소련군과 싸운다는 계획이었다.

거기다 히틀러는 여러 국가에서 파견한 군대가 이름대로 연합연합군의 특성 상 연합군이 각국 수뇌부의 협의를 거치고 조율을 마친 다음에야 부대를 배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잘못 판단하고 있었고, 이는 "우리가 먼저 힘껏 귀싸대기를 날리고 저 놈들이 우왕좌왕 하는 사이 전부 섬멸해버리면 된다"는 히틀러의 망상을 더욱 부추겼다.하지만 연합군 지휘체계에 대한 히틀러의 이런 생각과는 달리 연합국의 수반들과 각국 군대 수뇌부는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장군에게 현장에서의 권한을 크게 부여했으며 간섭도 거의 없었다. 덕분에 벌지전투에서 아이젠하워는 그의 재량권발휘로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었다.[1]

문제는 병력과 장비를 어디서 가져오는가 하는 것인데, 이미 독일에서 동원 가능한 남자의 숫자가 바닥이 난지 오래라서 동부전선의 병력을 빼다가 돌려막기해야 되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이 계획을 알게 된 서부전선 독일군 지휘관인 게르트 폰 룬트슈테트 원수와 B집단군 총사령관 발터 모델 원수는 히틀러의 생각처럼 전황이 낙관적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희박했고, 남아 있는 모든 독일군의 전력을 동원한 이 작전이 실패하면 오히려 독일군이 패망한다는 이유로 반대 의사를 개진하였다. 룬트슈테르는 반대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이 작전을 "총통의 알량한 천재성이 만들어낸 작전" 이라고 비꼬았고, 모델은 "이건 가만 앉아서 죽느니 모두 몰려나가 죽자는 소리"라고 평가했다. 두 사람은 어떻게든 히틀러를 설득하기 위해 대안 작전까지 입안하여 지속적으로 건의하지만 우리의 총통께서 몸소 초기 작전안에 수정불가라고 못박아 놓음으로서 결국 반격작전은 확정되었다. 이미 제공권을 연합군에게 빼앗긴 이상 그대로 전진하는 것은 무리였기 때문에 아르덴 지역에 안개가 끼고 날씨가 나빠지는 겨울을 공격 시점으로 정한다. 작전명 가을안개, 참고로 이 작전명은 발터 모델 원수가 원래 자신의 대안 작전에 붙인 것이었는데 총통은 작전명 받아들였다고 한다.. 공세 초반에 연합군은 날씨악화로 공중지원을 받지 못해 고전한다. 그런데 날씨가 풀리고 비행기가 뜨자 독일군은……

한편 연합군은 독일군의 병력손실이 심하여 서부전선에서의 공세는 불가능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그 때문에 대부분의 부대가 퍼져있었고, 수많은 전투를 치른 베테랑들은 후방으로 이동하여 휴식하고 재정비를 받고 있었다. 게다가 히틀러 암살 미수사건이 터지면서 독일군의 보안체계가 강화되고 작전에 참여할 대부분의 독일군 부대가 독일 영내에 있었기 때문에 거의 모든 명령이 유선을 사용하는 전화와 전보로 내려졌으며, 12월 들어서는 도저히 항공작전이 불가능한 수준으로 날씨가 악화됐기 때문에 독일군의 움직임을 파악하지 못했다.

특히 오마 브래들리는 휘르트겐 숲 전투에서 방어전의 1인자 발터 모델 원수에게 휘말려 3개월 동안이나 숲과 진흙탕에서 싸우면서도 엄청난 희생을 강요당하며 지크프리트 라인에 봉쇄 당했던터라, "이럴 바에야 차라리 독일군이 서부방벽의 요새선에서 한꺼번에 튀어나와 깨끗하게 한 판 붙는게 낫겠다."라는 생각을 지속적으로 피력해왔다. 그런데 정말로 말이 씨가 되었다! 게다가 실제로 튀어나온 독일군의 규모는 그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컸고, 천부적인 전쟁 감각을 갖고 있는 조지 S. 패튼은 휘하 정보장교의 보고를 받으며 아르덴 대공세를 정확히 예측했으나 그와 달리 아르덴 지역에서 공세를 예측하지 못한 책임을 지고 브래들리 휘하의 정보 참모 에드윈 시버트 준장은 해임 조치되었다. 아르덴과 아이펠 방면의 기본적인 정보 분석조차 하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3. 작전 준비

독일군은 동부전선에서 병력들이 속속들이 도착하고, 그 동안 반격작전을 위해 아껴두고 숨겨둔 항공기들을 모조리 긁어 모으고, 마지막 있는 연료와 탄약까지 거의 다 긁어모아 작전준비가 척척 진행 되었다. 특히 연합군의 후방을 교란하기 위해 공수부대와 함께 오토 슈코르체니 중령이 이끄는 위장 미군부대 역시 준비되고 있었는데, 영어를 할 줄 아는 병사들을 미군복을 입히고 미군 장비를 사용해 미군의 후방을 기습하는 작전이었다.[2] 심지어 노획 미군 전차와 미군 전차로 위장한 기갑부대까지 투입한 상당한 규모였다. 이런 준비에도 불구하고 병력과 장비는 한참 모자랐고, 결국 노인과 어린이들을 징집한 국민돌격대 부대들이 정예병들의 빈 자리를 채워야 했다. 공수부대 강하를 위한 집결도 가관이었는데, 사실상 보병이 되어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공수부대를 집결시켜 비행장으로 가려 했으나, 이들을 싣고갈 트럭에 기름이 없어서 못 가는 황당한 사태도 벌어졌다. 육군의 작전에 맞춰 준비된 공군의 보텐플라테 작전 역시 신무기인 제트 전투기 등의 신형 항공기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조종사들이 조종 경험이 없는 신참들이라 막장이었다.

이처럼 독일은 이 작전이 실패하면 더 이상의 그 무엇도 불가능할 만큼 여력을 쥐어짰다. 어쨌든 외형적으로는 한번 작전을 시도해볼 만한 상황이 되었고, 결국 작전에 돌입하게 된다.

4. 전투 진행

4.1. 작전 초기

12월 16일에 시작된 독일군의 공세에서 해당 지역을 담당하던 미군 5군단과 8군단은 찍소리도 못하고 털려버렸다. 기습이었던 데다 외형상으론 이 지역에 4개사단과 그외 다수의 지원부대를 보유한 8만 3천명의 미군이 주둔했어도 전부가 일선에 있었던 건 아니었기 때문이다. 또한 일선 부대가 담당하는 구역이 너무 넓어 해당 지역의 미군 내부에서도 이를 우려하였으며, 항공 정찰을 통해 포착한 이상징후도 상급사령부에서 무시당했다. 해당 지역을 맡은 병사들의 수준과 사기도 평균 이하였다. 일부 부대는 처음 배치된 병아리 부대였으며 다른 일부는 휘르트겐 숲 전투에서 큰 손실을 입고 휴식과 재편성 목적으로 배치된 부대였다. 게다가 연합군 수뇌부는 아르덴 지역을 위험도가 낮은 지역으로 분류했다. 처음에 프랑스도 그랬다가 어떤 장군님의 명성만 올려 준 건 잊었나보지. 미군 사령부는 이곳을 휘르트겐 숲 전투에서 후방으로 돌려진 미군들을 위한 휴양지로도 운영하였다. 또한 아르덴 지역의 연합군 부대들이 많은 장병들에게 휴가와 외출을 허용해 병력이 줄어든 상태인데 반해 독일군은 아르덴 지역에 25만명 이상을 투입해서 3배나 더 많은 수적 우세를 확보하였다. 이런 배경상황과 허술한 대비태세가 맞물려 초기엔 작전이 독일군의 계획대로 진행되었다.

허를 찔린 연합군은 충격과 공포에 빠져서 효과적인 대응을 하지 못한채 계속 밀리고 있었다. 연합군의 대응이 늦어진 것은 독일군의 공중강습도 일정 부분 역할을 했다. 독일군은 대대 규모의 팔슈름예거를 투입했는데, 이들은 너무 분산된 채로 강하하고 만다. 또한 원래의 목표에 도착하지도 못했다. 노르망디에서 일어난 연합군의 사례가 '공수작전 금지' 조치로 공수 노하우가 부족한 독일군에게 그대로 재현된 상황. 하지만 본대를 위장하기 위해 같이 투하한 독일군의 공수부대 인형이 정확히 목적지에 도착한 까닭에 연합군은 독일군이 최소 여단 규모의 공수부대를 투입했다고 착각하고 만다. 이에 후방 지역의 안전을 도모하기 위해 추가부대 파견을 잠시 주저하면서 독일군의 압박을 받고있던 연합군 일선 부대들이 줄줄이 털려나갔다.

여기에다가 독일군이 펼친 교란작전도 주효했다. 오토 슈코르체니 대령영어를 잘하는 병사들을 선발하여 미군 군복을 입고 돌아다니면서 허위정보를 뿌리고 다니는 덕분에 후방까지 교란당해버린 것. 이 과정에서 사기치고 다니는 독일군을 색출한답시고 토박이 미국인만 알 수 있는 상식을 물어보는 등 검문검색이 강화되었다. 예를 들면 미키 마우스의 여자친구 이름은? 일리노이 주의 주도는 어디? 뉴욕 양키스의 주전 선수 이름은?... 그런데 검문하던 병사의 삽질로 일반상식이 부족했던 애꿎은 미군 병사들은 물론, 오마 브래들리 장군마저 수 시간 억류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게다가 슈코르체니 특공대의 병사들이 연합군에게 붙잡힌 후 고문을 끈질기게 버틴 끝에[3]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원수의 목을 따는 것이 우리의 임무였다!"는 거짓 자백을 하여 후방에 대기 중이던 연합군이 총사령부 건물에 전차를 출동시키는 등 비상이 걸려 한바탕 난리가 벌어지기도 했다. 다만 원래 이 부대는 미군 전차로 위장한 판터와 티거로 구성된 위장전차부대까지 포함한 부대였으나, 이후 전선이 고착되면서 이 기갑부대는 다른 전선으로 끌려가 소모되어야 했다.

이러한 일련의 상황과 활동으로 인해 독일군은 초반 며칠 동안은 주도권을 잡고 아르덴 각 지역에서 쑥을 재배하며 연합군을 몰아붙일 수 있었다.

4.2. 정체된 공세

하지만 히틀러의 망상과 달리 당시 서부유럽전선 사령관이던 아이젠하워 원수는 중간협의과정 다 씹어먹고선 부대를 신속하게 재배치시켰으며, 특히 자신의 재량에 따라 움직일 수 있는 미군 소속 공수부대인 82사단을 생비트로, 역시 다른 공수부대인 101사단을 바스토뉴로 (트럭에 탑승시켜서) 급파했다. 이어서 뒤늦게 정신차린 연합군이 맹렬히 대응하기 시작하자 독일군의 진격은 서서히 둔화되었다.

한편으론 초창기 전선이 급격히 붕괴되면서 많은 연합군 병사들이 독일군에게 포로로 잡혔다. 포로가 된 미군의 수는 7500명 이상이었다. 벌지전투에서 수 개의 사단급 부대가 붕괴되었고 다른 사단과 통폐합되기도 했다. 예를 들면 미군 106보병사단과 99보병사단.[4] 이 와중에 12월 17일 말메디에서 요아힘 파이퍼가 지휘하는 SS 파이퍼 전투단 병사들이 사로잡은 미군 포로들에게 뚜렷한 이유없이 기관총 사격을 가하여 대부분의 포로들이 끔살당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자세한 내용은 말메디 학살 참고.

4.3. 바스토뉴 공방전

독일군은 스타벨롯과 생비트를 공격하였으나, 미군의 맹렬한 반격을 받아서 스타벨롯을 점령하지 못하고 1944년 12월 23일 차량과 각종 장비를 버리고 철수하였다. 이 때문에 아르덴 북부지역을 통하는 통로는 전투가 끝날 때까지 봉쇄된 채였다. 아르덴 중부의 교통요지인 생비트의 경우에는 12월 21일에 독일군이 점거했지만 미군의 저항이 이어져 완전히 장악한건 23일 이후였다. 그 결과, 단계적으로 진행될 예정이었던 독일군의 작전은 완전히 엉망이 되어버렸다. 모델 원수도 이쯤되자 슬슬 끝장이라는 걸 알아채고 은근슬쩍 OKW(늑대굴, 독일군 총사령부)에 작전 중지를 에둘러 물었으나 그 말을 히틀러가 귓등으로라도 들을 리가 없었다.

한편 12월 21일에는 독일군이 아르덴 남부의 교통요지인 바스토뉴를 성공적으로 포위하여 수비를 맡고있던 제101공중강습사단을 포위했다. 당시 미군은 수적으로도 열세에다가 장비도 빈약했지만, 바스토뉴를 포위한 독일군이 모든 병력을 동원한 일제 공격 대신 주요 지점에 순차적으로 제파공격을 가한 탓에 독일군의 공격방향에 대한 보고를 받으면 그 지역에 가용전력을 몽땅 때려박는 형태로 방어해냈다.

12월 22일 11:30시, 2명의 운전병을 대동한 독일군 교도기갑사단 장교 2명이 백기를 들고 르몽포스-바스토뉴 가도를 따라 걸어왔다. 제47기갑군단장 하인리히 폰 뤼트비츠 기갑대장의 지시를 받고 미군에게 명예로운 항복을 제안하기 위한 사절들이었다. 아르덴 공세가 벌어지기 전에 회의 참석차 미국 본토로 가서 자리를 비운 맥스웰 테일러 사단장을 대신하여 101공수사단을 지휘중이던 부사단장 맥클리프 준장은 항복 요구를 받자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NUTS"라고 말한 뒤, 공식적인 항복 거부 서신을 어떻게 작성해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

그때 참모 하나가 "항복 요구를 처음 들었을 때 장군님이 보인 반응을 그대로 적는 것이 어떨까요?"라고 전설의 조언을 더했고 그리하여 N U T S ! , 즉 ! 전문이 탄생하였다.[5]

이 답신을 받아든 독일군 사절들이 무척 당황하자 제327글라이더보병연대장 하퍼 대령이 또 하나의 전설적 조언을 덧붙였다.

"만약 NUTS가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면 그냥 지옥에나 가라는 뜻 정도로 이해하면 될 걸세. 그리고 또 한가지 말해두겠는데, 만약 앞으로도 계속 공격을 해온다면 우리는 바스토뉴로 쳐들어오는 모든 독일군을 죽여버릴 걸세."

이 대답을 들은 독일군 전령은 "좀 더 현명한 판단을 내리길 기대했는데 말입니다." 라고 대답했고, 여기에 대해서도 끝까지 쿨하게 "가서 그대로 전하기나 하슈. 그리고 댁들의 행운을 비오." 라고 인사하고 보냈다고 한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이 답변을 들은 뤼트비츠는 격노했다.

워낙 유명한 일화인지라 이후 아르덴 대공세를 다룬 영상물인 벌지 대전투, 패튼 대전차군단, 밴드 오브 브라더스 등에서 언급되기도 한다. 밴드 오브 브라더스 소설에서는 한 챕터의 제목이기도 하다. 나중에 각색된 이야기같지만 정말로(!) 저렇게 또박또박 밑줄까지 그어서 보냈다.

4.4. 연합군의 반격

12월 23일에 날씨가 좋아지자 연합군의 항공작전이 재개되었고 각 지역에 고립된 연합군 병력에게 보급을 단행하였다. 물론 많은 수의 물자가 독일군의 손으로 넘어가서(일명 루즈벨트 보급이라고 한다) 그 덕분에 M1 카빈으로 무장하고 초콜릿콜라와 럭키 스트라이크 담배에 맛들인 독일군도 엄청나게 느는 등(...) 충분한 보급이 되지는 못했지만, 아무튼 고립되어 있던 병력에게는 가뭄의 단비와도 같은 보급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원래 날씨가 나쁠 때 끝장을 보려던 계획은 더러운 야보들이 다시 설치면서 암울해지기 시작하고...

12월 24일이 되자 점점 좁아지는 통로를 전진하던 독일군도 결국 한계에 다다르기 시작한다. 애당초 전투 중반부터의 연료 보급은 노획한 연합군의 연료를 사용하기로 했지만, 이걸 눈치챈 연합군이 대부분의 연료저장소를 모두 소개시키고, 단 하나 남은 것도 불을 질러서 폭파한 덕택에 연료는 하늘나라로 날아갔으므로 뮤즈강 근처에서 발목이 잡혀버렸다. 게다가 연합군도 그동안의 전투와 독일군의 통신 감청, 항공정찰을 통하여 독일군의 움직임을 파악하고 있었으므로 독일군이 애초에 의도하고 있던 기습적인 공격 역시 실패해버렸다. 이에 모델 원수가 다시 한번 히틀러에게 넌지시 작전 중지 의사를 밝혔지만 이번에도 역시 "닥쳐!"라고 대답하는 바람에 그나마 남은 병력을 보존할 수 있는 기회까지 날려버렸다. 만약 이 시점에 독일군이 철수하였으면 상대적으로 큰 피해를 입은 서부전선의 연합군이 잠깐 멈칫하는 사이에 여유병력을 동부전선에 집중시켜 방어에 성공했을거라는 의견도 있다. 그래봤자 언 발에 오줌누기였지만.

한편 연합군의 조지 S. 패튼 장군은 12월 19일 아이젠하워 원수로부터 즉시 반격이 가능하냐는 문의를 받자 48시간 안에 가능하다고 답했다. 패튼 장군이 연합군 수뇌부 회의에 참석하는 동안 이미 유사시 긴급상황 형태로 아르덴 대공세와 비슷한 상황을 가정하고 계획 및 준비를 어느 정도 진행시켜둔 상태인 제3군은 반격작전을 준비하였다. 그리고 패튼 장군이 부대로 돌아오자 즉시 진격을 시작하였다. 그 결과 각 지역에서 독일군과 맞딱트리는 바람에 조금씩 시간이 지연되고는 있었지만, 크레이튼 에이브럼스 중령이 지휘하는 제4기갑사단 선두대대가 독일군의 저항을 피하면서 우회하다가 샛길을 찾아내서 바스토뉴의 포위망을 부수고 각 지역에 고립된 연합군의 활로를 열면서 전황이 호전되기 시작하였다

근데 이를 계기로 바스토뉴에서 숨통이 트인 101 공수사단은 따, 딱히 도움이 필요했던 건 아냐!라는 반응을 보였다(…).[6]

4.5. 독일군의 공세 실패

1945년 1월 1일 독일군은 공군육군을 동원하여 다시 한 번 공세를 가하여 연합군을 잠시 궁지에 몰아넣기도 하였지만, 초반에 힘 좀 쓰던 공군이 연합군 항공력에게 바로 발려버렸다. 본래 독일 공군의 공세 작전은 육군의 최초 공세에 맞추어 동시에 이루어질 예정이었으나, 이미 바닥을 드러내고 있는 연료의 확보와 항공기의 정비 및 보충, 그리고 날씨 문제로 인해 계속 연기하다가 겨우 시작한 것. 이러한 독일 공군의 사실상 마지막 공세는 덴플라테 공세(Bodenplatte, Base plate이라고 직역 가능.)라고 하며, 초반 기습으로 300여대 이상의 연합군 항공기를 지상에서 격파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그 대가로 아군인 독일 방공부대의 대공 사격 등에 의해 오인 사격을 당했다.이 문제가 더욱 심각했던건 기습 효과를 노리느라 공습 정보를 지상군 부대에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100% 전부 못 받은 건 아니고 몇몇 부대는 알고 있었으나, 정확한 상황을 업데이트해주지 않았기에 여기도 연합군으로 판단하고 쏴댔다. 게다가 연합군을 속이려고 일부러 항로를 V2발사대 등 방공망이 촘촘한 지역만 골라서 짰던 것도 있다. 덕분에 독일군은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숙련된 조종사와 항공기들을 상당수 날려먹었다. 반면, 연합군 입장에서는 대다수가 지상에서 격파된 것이라 조종사 같은 고급 인명 피해는 독일군에 비하면 없다시피 했다. 가장 피해를 많이 입은 영국 공군 주둔지처럼 정예 부대가 투입되어 공습에 성공한 부대가 이런 상황인데, Asch(Y-29) 같이 연합군 에이스가 발생한 곳은 그저 안습. 이 공세 이후 독일 공군은 실질적으로 사망했다. 당시 서부전선의 독일군 전투기 사령관이었던 아돌프 갈란트는 이 공세가 끝난 직후 '보덴플라테는 루프트바페의 묘비명이 되었다.'고 발언했을 정도였다.

게다가 아이젠하워 장군 역시 재빠른 대처를 보이면서 독일군의 공세가 둔화되었다. 그리고 버나드 로 몽고메리 원수와 패튼 장군이 돌출부 북쪽과 남쪽에서 반격을 시작하자 물자 부족 등의 문제가 겹친 독일군은 공세를 중지하였다. 독일군 사령부는 1월 7일 다시 한 번 히틀러에게 병력철수를 건의하였고, 더 이상 공세 성공 가능성이 없다는 현실을 수용한 히틀러가 철수안을 수락하면서 독일군이 물러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독일군은 철수를 하는 동안에도 추격하는 연합군으로부터 피해를 입었고, 각지에 고립된 연합군 부대와 독일군 부대가 마구 뒤섞인 까닭에 전투는 1월 27일 마무리된 것으로 보고있다.

5. 공세의 여파

예상치 못한 독일군의 공세에 상당한 피해를 입은 연합군의 라인강 진공 계획은 또다시 미뤄지게 되었다. 하지만 독일의 경우는 본토에 배치되었던 전략 예비부대와 동부전선에 배치되었던 정예부대와 더불어서 가뜩이나 부족한 물자들까지 말아먹은 바람에 진짜로 병력이 약체화되었다.[7] 그 결과 서부전선에서 연합군이 본격적인 진공을 시작하자 독일군은 별다른 반격을 하지 못하고 그대로 패주하였다.

여기에 윈스턴 처칠이 소련군에게 "서부전선에서 독일군의 발목을 잡고 있으니 이오시프 스탈린, 당신의 능력을 보여주세요"라면서 동부전선에서 독일군을 공격해달라고 요청하였고 이에 따라 1월 12일 소련의 붉은 군대도 독일을 향해 진격하기 시작하였다. 서부전선의 독일군이 이 꼴을 겪으며 빈사상태가 되었기때문에, 동부전선의 독일군은 아르덴 대공세를 위해 뽑아간 병력 구멍까지 겹쳐서 완전히 밀려버린다.

결국 이 전투는 독일군 전체에게 스스로 헤드샷을 날린 격이었으며, 나치 독일의 패망을 훨씬 앞으로 끌어당긴 전투였다. 독일군이 이 전투에서 얻은 이익은 그나마 (서부 전선의)연합군의 독일 본토 입성을 6주 정도 늦추었다는 정도... 그런데 연합군은 자신이 입은 손실을 보충할수 있었고 독일군은 이미 자원의 한계로 그렇지 못했다는 게 차이. 동부전선도 그렇고 병력을 말아먹은 것도 그렇고... 그리고 결정적으로 6주의 시간으로 만신창이가 된 독일을 결국 회생시킬수가 없었다. 때문에 만약 이 병력을 방어로 돌렸으면 독일은 앞으로 6개월은 더 버틸 수 있었다고 몇몇 역사가들은 말한다. 그러나 이건 가정일뿐이다. 방어로 돌린다해도 연합군 병력을 보면 절망적인 상황이었던 것. 동부전선쪽의 소련군만 200만에 육박하는데다가 서부전선의 연합군 사령관들의 기량도 현대전에 알맞게 발달되어서 안될거야 아마. 게다가 미국은 원자폭탄이 있다. 독일군이 6개월을 정말 더 버텼다면 독일 영내에서 S.T.A.L.K.E.R. 실사영화 찍어도 될 판이었을 것이다. 아니면 1945년 8월에 일본이랑 함께 사이좋게 원자폭탄을 맞는 것으로 끝났을 수도 있다. 연합군이 노르망디 상륙 후 전선을 확보한 직후부터 독일은 그냥 빨리 GG치느냐 온 독일 땅이 쑥대밭이 된 다음에 GG치느냐 둘 중 하나밖에 없었다.

그리고 아르덴 공세가 실패로 끝날 무렵 영국의 몽고메리 원수는 기자회견에서 벌지전투에서 자신과 영국군의 역할을 과대포장해서 언급했고, 이는 아이젠하워를 비롯한 미군측의 분노를 일으켰다. 물론 영국군도 벌지 전투에 참가하긴했지만, 미군이 맡은 역할과 그들이 치른 희생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벌지 전투의 미군 전사자는 2만명에 근접하지만 영국군 사망자는 대략 200명에 불과했다. 영국군은 뮤즈강 근처에 있다가 깊숙히 들어왔던 독일군을 잠깐 상대한 것뿐였지 그외 모든 전투의 주역과 승리를 일궈낸 것은 모두 미군이었다. 결국 인내심의 한계에 다다른 아이젠하워는 자신과 사이가 괜찮던 영국의 해롤드 알렉산더 장군[8]을 몽고메리의 자리에 임명하는 생각을 심각하게 고민했으며, 이를 알게 된 몽고메리의 참모들이 미군을 설득하고 몽고메리에게 상황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몽고메리는 아이젠하워에게 사과문을 올려서 사태가 겨우 진정되었다. 영국의 윈스턴 처칠 역시 미군의 분노를 진정시키기 위해 나섰다. 1945년 1월 중순 영국의회의 연설에서, 벌지 전투에서 활약한 미군을 찬양하고 영국군의 전과확대 해석을 경계하는 내용이 있었다.(관련 내용은 타임라이프 2차세계대전 전집에서 발췌) 그러나 영국의 몽고메리와 미군과의 갈등은 이후에도 계속되었고, 차분하고 냉정한 성격인 오마 브래들리마저도 몽고메리의 독단적인 행동에 분통을 터뜨리게 되었다.

6. 공세 실패의 원인

푀글러: “물론 마지막 카드겠죠. 모든 곳에서 생산이 중단되고 있어요. 이번 공격은 소련을 겨냥한 겁니까? 그보다는 동부 전선에서 중압감을 덜려는 목적이겠죠?”
알베르트 슈페어: “역시 동부 전선 쪽일 겁니다. 미친 사람이 아니고는 동부 전선에 손을 놓고 서쪽에서 밀려오는 적을 막으려는 생각은 안 할 테니까요."

-1944년 10월 말의 대화. 히틀러는 민간인 관료조차 실현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한 무모한 작전을 실시하여, 브래들리의 소원을 장렬하게 이루어준 셈이 되었다.

6.1. 교통 문제

6.1.1. 비좁은 도로망

프랑스 침공 때도 발생한 문제였지만, 아르덴 지역은 산악지대인데다가 도로망이 빈약하기 짝이 없었다. 미군도 빈약한 도로 상황으로 피해를 본것이 있으니.. 초기에 미군부대들이 후퇴과정에서 서로 엉켜서 많이 혼란했고 일부부대는 도로상에 장비들을 유기한 사례들이 있다. 독일군은 버려진 장비들을 유용하게 써먹었으며 공세시간을 더 벌었다. 이것 또한 미군이 한참 고전하게된 원인중 하나이기도 하다. 게다가 숲까지 무성해서 객관적으로 보면 기갑부대가 진격하기 곤란한 곳이다. 아울러 이 지역의 강은 유속이 빠르고 강행도하를 할만한 곳이 거의 없는 천연의 대전차호나 다름없는 탓에 일단 다리가 하나 파괴되면 먼 길을 돌아가거나 거기서 더 진격할 수 없는 상황이 자주 발생한다. 그래서 아르덴 대공세의 전투 양상은 잘 닦여진 길과 도로를 확보하려는 독일군 VS 그걸 기를 쓰고 막는 미군의 대결이었다.

독일군은 프랑스 침공 당시에도 250km에 이르는 대규모 교통정체가 발생했지만 그때는 연합군의 허접한 상황 덕분에 작전을 성공시켰다. 하지만 아르덴 대공세 때는 독일군의 장비가 1호 전차 같은 경장비에서 판터쾨니히스 티거 같은 중장비로 바뀐지 오래라서 안 그래도 빈약한 도로는 과중한 교통량과 전차들의 과도한 중량을 이기지 못하고 공세 개시 몇 시간만에 개발살나버렸다.

실제로, 위에서 언급된 슈코르체니의 위장 기갑부대 역시 원래 목적대로 운용될 수 없었다. 교통체증 때문에 작전 목표로 갈 수도 없었기 때문. 결국 나중에 필요한 전선으로 전차가 이리저리 끌려가면서 흩어졌다.

6.1.2. 진흙탕 도로

도로에 진흙으로 된 늪이 생기기도 했다. 이러한 교통문제는 특히 자주포와 척탄병[9]의 제병합동 공격에서 크게 문제가 되었다. 자주포와 척탄병이 문제없이 미군의 거점을 제병합동 공격으로 방어선을 뚫고 지나가는 작전이었지만, 도로상황이 악화되면서 자주포가 진흙이 된 늪에서 허우적대는바람에 척탄병들의 공격을 제때에 지원하지 못해 거점을 공격한 척탄병 부대가 연합군으로부터 대규모 피해를 입고 퇴각하는 사례가 공세 초반에 여러 곳에서 나타났다.

6.1.3. 이런 죽일놈들

게다가 연합군의 경우 이미 한번 당한 경험이 있는데다가, 늦어도 2일 이내에 미군의 공병대가 다리같이 생긴 모든 물체에 폭탄을 설치한 다음,[10] 독일 장갑부대가 접근하면 코 앞에서 다리를 폭파하는, 당하는 입장에서는 미치기 직전까지 가는 빅엿작전을 구사하였다.

이렇게 번번히 엿을 먹은 요아힘 파이퍼가 내뱉은 "이런 죽일놈들!" 이라는 말은 파이퍼가 미군 공병대에게 바치는 최고의 찬사였다. 원래 공병의 역할이 중요하긴 하다. 그리고 벌지 전투에서 공병의 역할은 정말 대단했다. 교량 폭파 및 재설치 외에 보병같은 다른 병과를 지원해준 사례가 많다. 보병들이 얼어버린 땅에 참호파는게 어려울때 공병의 장비와 폭약으로 참호를 팠으며, 전투공병들은 보병과 함께 교전했다.

6.2. 병참 문제

"장군님. 잠깐 보여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만 괜찮겠습니까?"
"뭔가, 헤슬러? 빨리 말하게."
"초콜릿 케이크입니다. 포로로 잡은 미군 병사들의 짐에서 발견한 것입니다. 아직 신선합니다."
"그게, 뭐가 어쨌다는 건가?"
"아직도 모르시겠습니까 장군님? 미군은 일선 병사들한테까지 항공기로 초콜렛 케이크를 보내고 있단 말입니다. 집에서 보낸 케이크를 말입니다!"

- 영화 벌지 대전투 中. 실제로 이 에피소드는 아프리카 전선의 롬멜한테 벌어진 일이다. 아프리카에 파병된 미군 전사자들의 장비를 체크하던 중에 어느 병사의 가방에서 나온 초콜렛 케이크를 보고 그 넘사벽의 쇼미더머니와 보급력에 전투의지를 잃었다는 에피소드. 독일군은 보급품이 없어서 기관총 총알도 한발 한발 세가면서 쏘고, 기름도 없어서 전차들이 기동 못할 상황이었는데 미군은 일개 병사가 미국에서 엄마가 보내준 초콜릿 케이크를 받아 먹을 정도로 보급이 차이가 난 것이다. 실제 당시의 미군은 미국산 쓰레기통까지 최전방으로 공수해와서 쓰고 있었을 정도다.

당시 독일군의 연료 수급상황으로는 목적지인 안트베르펀에 도달할 가능성 자체가 거의 없었다. 실제로 일부 기갑부대는 최대 진격가능 거리가 60km 정도인 부대도 있었다. 문제는 독일군이 출발한 아르덴 삼림지역 부터 목적지인 안트베르펀까지는 적어도 120km는 되었다는 것. 곧 연료를 노획하지 않으면 전진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의미인데, 획득시기와 획득량, 그리고 품질을 보장할 수 없는 노획품을 보급수단의 주력으로 삼는 순간 이미 현대전의 기준에서 제대로 된 전술이나 전략이라고 보기 어렵다. 작전을 구상하는 순간부터 성공여부가 의심되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또한, 판터와 더불어, 이 작전에 투입된 독일군의 티거 2는 그 중량이 현재 미군의 주력 전차인 M1 에이브람스 계열보다 더 무거운 약 68톤(!)이나 되었지만 엔진 출력은 그 절반에도 못 미치는 700마력이어서 연비가 최악이었다. 이러한 불균형으로 인한 각종 고장도 티거 2의 발목을 잡았다. 그래서 작전에 투입된 티거 2의 상당수가 연료부족으로 인해 전진도 후퇴도 못하다가, 전차병들이 전차를 포기하고 자폭시켜버리는 일도 벌어졌다.

반면, 1940년의 프랑스 침공 당시에는 작전에 소요되는 연료와 보급문제를 확실히 계산해서 그 필요량을 미리 알고 있었음은 물론 수요량을 충족시킬 만한 물자가 있었으며, 유사시 공중보급도 실행할 수 있었다. 실제로 1940년 프랑스 침공 당시 교전중이던 부대가 대전차 포탄이 고갈되는 순간 공중보급을 받아서 위기를 모면한 사례가 있다고 한다.[11] 하지만 1944년의 아르덴은 1940년의 아르덴이 아니었다.그리고 지구 반대편에서는 임팔 작전이라는 참사가 벌어졌다.

6.3. 제공권 장악

1940년 프랑스 침공 당시 독일군은 연합군보다 훨씬 많은 전투기를 공중전에 투입하여 제공권을 장악하였다. 비록 항공기의 보유량은 독일이 불리했지만 독일이 프랑스 침공 당시 사활을 걸고 모든 공군력을 동원한 것에 비해 연합군의 비행기는 대부분 후방에서 예비대로 있었기 때문에 축차투입되어 소모됐다.

그러나 나중의 아르덴 대공세 때는 기본적으로 독일군을 도울 공군이 활동할 날씨도 아니었고, 이미 유럽은 연합군이 하늘을 장악한지 오랜 시간이 지난 뒤였다. 오히려 날씨가 나쁜 쪽이 독일군에게 더 도움이 되는 상태였다. 따라서 날씨가 좋아지자마자 독일군은 발리는 형국에 처하게 된다. 알베르트 슈페어의 자서전에 따르면 날씨가 갠 뒤에는 낮에 도로를 다니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없다고 썼다. 그 이유는 연합군 폭격기가 낮에 하루종일 떠있어서였다고. 게다가 그 당시 호위 전투기들에게도 적기가 안 보이면 지상으로 내려가서 움직이는 모든 것에다 기총소사를 해라! 는 명령이 내려진 뒤였다. 그러니까 독일 점령 지역은 맑은 날 도로에 나오기만 해도 M2 중기관총의 12.7mm 탄환과 히스파노 20mm 기관포의 고폭탄이 비처럼 쏟아져서 독일군을 인수분해시켜주는 상황이었던 것.

6.4. 연합군의 발빠른 대응

1940년 독일군의 프랑스 침공 당시 프랑스군을 비롯한 연합군은 아르덴 삼림지대를 통해 몰려드는 독일군을 보고도 제대로 대응을 하지 않았고, 라퐁텐 장군은 부대를 이동시키기 위해 1시간도 안 되어서 갈 수 있는 거리를 17시간에 걸쳐서 이동했다. 이유는 이동시키는데 서류가 필요해서(…).전차가 보병을 지원하는 교리 때문에 프랑스군의 진격은 보병에 맞췄지만, 전차를 중심으로 전투하는 교리의 독일군은 전차에 맞춰서 진군했다. 때문에 독일군이 진격해야 되는 거리는 프랑스군보다 길었지만 선수를 친 건 독일군. 이 때문에 낫질 작전 자체를 위태롭게 만들 수 있는 기회가 굴러들어왔으면서도 저지하지 못했다.

그러나 아르덴 대공세를 맞이한 아이젠하워 장군은 부대를 이동시키는데 필요한 중간 과정을 무시해버리고 명령을 내렸다. 물론, 아무리 상급자라도 지휘계통과 휘하 지휘관들을 건너뛰고 하급부대에 명령을 내리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 또한 '전공을 다투는 일선 부대들과 그 지휘관들간의 정치적인 조율'도 무시하면 안 된다. 여기에서의 중간과정 무시란 말은, 병력 운용에서의 전권을 그만큼 연합국 각국 수뇌부로부터 보장받았다는 정도로 이해하면 된다. 또한 연합군 지휘부는 독일군을 저지하기 위해 말그대로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6.5. 독일군의 훈련 및 경험부재

독일군은 1939년 폴란드 침공 당시에는 전군의 훈련상태가 그리 좋은 상태가 아니였다. 하지만, 서방의 선전포고가 이어지고 프랑스 침공을 위해 공격작전을 담당할 부대에게는 벙커와 기타 방어시설이 설치된 적의 방어선을 돌파하는 훈련을 끊임없이 실시했으며, 다른 부대도 훈련을 지속하여 적어도 선봉에서 공격을 담당하는 부대만큼은 1939년의 개전상황하고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질적 향상에 성공하였다. 또한 스페인 내전을 거치면서 정립된 임무형 지휘체계 덕분에 말단 지휘관과 부사관, 사병에 이르는 개개인까지 높은 수준의 군사적 재능을 가질 수 있었으며, 이는 프랑스 침공이 성공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

하지만 아르덴 대공세 때는 그야말로 막장 그 자체였다. 일단 아르덴에 경험이 있던 지휘관들은 해고당하거나 엉뚱한데에 배치되거나 일부는 암살미수 로 사형당한 상황이였고, 숙련된 장교들과 부대들은 동부 전선에서 녹았거나 발이 묶여있거나 아프리카와 프랑스에서 이미 박살났거나 한 상황이었다. 그 결과 대부분의 보병들은 4주에서 6주의 훈련만 받거나, 공군 지상부대에서 놀던 보병들을 차출하는 식으로 급조 사단을 만들어서 대거 동원했다. 물론 이렇게 만든 병력의 수준은 최악으로, 간이훈련을 받은 자는 물론, 정규 편제였던 공군 지상부대도 처음부터 독일군 최악의 전투능력으로 평가될 정도였다. 그 중에서도 팔슈름야거의 상황은 더 심각했다. 이들은 몬테카시노 전투의 위엄은 사라진지 오래고, 미군 1개 중대의 방어선을 팔슈름야거 1개 연대반나절 이상 걸려서 겨우 돌파한 사례에서 알 수 있듯 그 수준이 정규군과 민병대 사이의 어디쯤으로 뚝 떨어져있던 상황이었다. 이들을 실어보낼 비행기 조종사들도 마찬가지.

차량을 운전하는 운전병들도 겨우 2시간 운전한 경력으로 운전병이 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고 전차는 전차를 몬 경험조차도 없는 병사들이 탑승할 정도였다. 이런 상황이니 동원된 '엘리트' 병력이라는 것도 (한줌의 베테랑을 제외하면) 독일군 입장에서나 그렇다는 이야기가 된다. 결국 연합군 입장에서는 그저그런 평범한 병력인데다가 그나마도 공세 초기에 전투력이 소진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전체적으로 독일군은 공세에 전혀 적합하지 않은 상태였던 것이다.

결국 이 작전에서 그나마 남아 있던 '엘리트 병력' 마저도 많이 잃어버린 독일군은 스탈린의 형벌부대 못지않은 뻘짓에 희망을 걸 수 밖에 없었다.

6.6. 낮은 수준의 기계화

독일의 전투력은 1944년 서방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작전과 함께 그 소모율 또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특히 장갑사단들. 그러므로 상당한 전력 악화를 겪을 수밖에 없었다. 이는 팔슈름예거 부대가 엘리트라는 명함은 커녕 제대로 훈련받은 군대라고 하기에도 심각한 수준이 된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기갑사단도 예외는 아니여서, 노르망디 지역에 배치되었던 히틀러 유겐트 사단만 하더라도 기갑 사단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4호 전차만 100여대, 판터나 구축전차, 자주포 등 적어도 250여대 이상의 전차 및 차량을 지급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전황이 점점 독일에게 불리하게 돌아가고 독일군의 손실이 늘기 시작하면서 장갑사단의 기본적인 편제도 갖추지 못하게 되었다. [12] 또한 원래 독일 산업의 생산성이 소련과 미국에 비해 열세였는데다가, 인해전술로 몰려오는 적 전차를 전차무쌍으로 막기 위해 비록 엄청난 고성능이지만 생산성이 T-34M4 셔먼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티거에 이어 티거 2를 우선 순위로 생산한 결과, 이런 현상은 더욱 심각해졌다. 당장 기갑사단의 편제를 뜯어보면 몇 안되는 판터와 티거, 그리고 군 직할부대에서 쓰는 티거 II를 빼면 적인 연합군 전차와 맞서서 싸울만한 전차의 수와 질, 양이 모두 모자랐다. 곧 사단편제 아래에 장군과 믿을만한 베테랑 장교 및 부사관 몇 명을 빼면 숫자도 제대로 못 채운 애송이 부대원들이 모인 오합지졸이니 아 망했어요.

결국 아르덴 대공세에서 주축이된 제 5기갑사단과 제 6SS기갑사단의 경우 히틀러 유겐트 사단에 비해 차량 보유량이 절반 이하였다. 공세적으로 강력한 기동전을 펼칠 수 있는 기갑사단에 상당한 무게를 두는 작전이였지만, 그 기갑사단이 반신불수나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반면에 연합군의 경우 미국의 렌드리스와 궁극의 쇼미더머니 등으로 상당한 수준의 기계화를 이룩했으며, 패튼의 제3군만 하더라도 아르덴 대공세 때 상당한 기동력으로 지원을 와 주었던것을 생각하면 이미 독일군과 연합군의 기계화율은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었다.

7. 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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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 <벌지 대전투>라는 이름으로 영화화되었다. 워너브라더스 제작. 감독은 역시 전쟁물에서 명작급으로 알아주는 지상 최대의 작전을 감독한 켄 애너킨(1914~2009)

독일군 요아힘 파이퍼 친위대 중령을 모델로 한 기갑여단장 마틴 헤슬러 대령 역에 버트 쇼 분. 상당히 강력한 공세를 예측해낸 카일리 중령 역에 헨리 폰다 분. 그밖에도 찰스 브론슨, 텔리 사발라스, 로버트 라이언같이 배우진이 제법 호화진이다.

주의해야 할 것은 일단 영화상에서도 따로 자막으로 언급할 정도로 역사를 상당히 크게 왜곡하고 있다는 점이다. 등장인물들이나 사건들도 현실과 어긋난 게 많고, 후반부는 사막지형에 맑은 날씨가 유지되어 실제 배경과 엄청난 괴리감을 느끼게 한다. 또 독일군의 전차가 몽땅 티거 2인 것처럼 나와 있다는 것, 영화에서는 이 부대가 티거 2로만 구성된 것처럼 묘사되어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어림도 없었다.. 그리고 티거 2 대역으로 스페인군의 M47 패튼 전차가 대역 출연했으며 미군 셔먼M24 채피 경전차가 대신 출연했다는 것이다. 사실 영화 스케일상 전차를 수십 대나 동원해야 하는데 영화 촬영 당시에는 예전에 다 고철처리되어 버렸던 것들인지라 어쩔 수 없었기는 하다. 컴퓨터 그래픽을 동원할 수 있는 시대에 제작된 영화도 아니고...

대역들을 가져다 찍긴 했지만 이 전차들이 나오는 영화 후반부 대규모 전차전은 상당히 볼 만하다. 특히 전차의 기동과 사격 장면이 굉장히 뛰어나게 연출되어 있고, 이로 인해서 전차 팬이 된 사람도 많을 정도다. 전차의 노래가 유명해진 계기기도 하고... 그리고 전투 장면도 처절한 연합군의 버티기를 잘 보여주고 있다.

앞에 나온 101공수부대의 궁극의 트래쉬 토크 이벤트도 재현되어 있으며 미군으로 위장한 독일군 부대의 활약도 나오는 등 그럭저럭 실존했던 것들을 넣어두었지만, 영화 종반으로 갈수록 개연성이 부족해진다. 특히 이성적인 지휘관인줄 알았던 헤슬러 대령은 알고보니 전쟁광이었다는 깨는 반전 이후 독일군측 전개가 약간 2류스러워지기도 한다. 특히 마지막 전투 장면은 기름을 뿌려 전차를 태워 격파한다는 것인데... 기름을 독일군 전차 위에 뿌리는 것도 아니고 흘려내려서 태운다는 설정이니 심하게 말이 안 된다. 전차포 및 기관총 사거리가 수십 m 밖에 안 되는 것도 아니고, 후진만 슬쩍 해 주면 피할 수 있는건데 그대로 불타는 기름바다에 돌진한다는 상황이...

그래서인지 제작비가 1천만 달러에 달했는데 흥행 수익은 450만 달러로 실패했다.

미국 장군 조지 S. 패튼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 <패튼>(1970년 작)에서도 극 후반부에 중요 이벤트로 다뤄진다. 다만 고위 지휘관의 시각에서 이야기가 전개되는 해당 작품의 특성상 구체적인 전투장면은 그리 부각되지 않는다.

101 공수부대원들의 2차대전 참전기를 바탕으로 하여 2001년에 제작된 10부작 미국드라마 밴드 오브 브라더스에서도 이 전투가 비중있게 그려진다. 5화말에서부터 7화에에 이르는 분량이 바스토뉴 방어전 투입 후 반격으로 이어지는 101 공수부대의 행적을 그대로 쫓아간다. 위의 <패튼>과 달리, 주역들이 일선 장병들인지라 개별 장병들의 시각에서 당시의 상황이 묘사되며[13] 예의 그 트래쉬 토크 이벤트도 일선 장병들의 입장에서 다뤄진다.[14] 상세는 해당 항목 참고.

2012년에는 국내작가 강동훈 씨가 <벌지 대전투>라는 제목으로 이 전투를 만화화했다. 단, 내용상 오류가 꽤 있다.

컴퍼니 오브 히어로즈 2에서는 아르덴 대공세를 주제로 삼은 캠페인 <아르덴 어설트>가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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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제2차 세계대전 직전의 세계 정세'였다면, 각국의 국력이 비등비등 하고 각국 정부의 지시도 무시할 수 없으니 때문에 연합군 사이에서 이 같은 협의 문제가 심각하게 나타났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정세가 완전히 바뀌었다. 영국을 제외한 다른 유럽 국가들은 망명정부 신세로 전락했고, 영국마저 미국의 물자지원에 의지하는 상황이라 미국의 영향력이 절대적으로 강해진 상황이었다.
  • [2] 따라서 슈코르체니의 부대원들은 스파이였고 제네바 협약의 보호를 받을수 없었다. 연합군에게 포로가 된 대원들은 전부 총살형 혹은 교수형에 처해졌다.
  • [3] 슈코르체니가 "고문을 오래 견딜수록 게르만인의 긍지가 빛날 것이며 적들은 혼란에 빠질 것이다!"라고 훈시했다고 한다.
  • [4] 이 중 106사단은 공세 초기에 궤멸당했으나, 99사단은 큰 피해를 입으면서도 미 2사단이 구원하러 도착할 때까지 간신히 전선을 유지하며 저항하는 데 성공하여 2사단의 고참병들도 감탄했을 정도였다.
  • [5] 이 밖에도 사람들 입맛(?)대로 여러가지로 번역된다. '엿먹어라!'부터, '미친놈들!' 'X까!', '개념없는 것들' '개소리 집어쳐!' 등등등.
  • [6] BOB 6화 끝 부분의 문구를 보면 알 수 있다.
  • [7] 전쟁영화 '레마겐의 철교'와 '퓨리'를 보면 45년 독일군의 빈약한 모습이 많이 보인다. 발지 전투의 결과로 독일군이 더욱 약체화되었으나 그 병력들이 45년 3월까진 연합군의 공격에 지연전으로 버티긴 했다. 하지만 그 직후 루르 포위전의 결과로 서부전선 독일군의 방어는 완전히 붕괴됐다.
  • [8] 1942년 후반부터 종전까지 북아프리카, 시실리, 이탈리아 본토에서 연합군을 지휘했던 최상급 지휘관, 벌지전투 시점에선 지중해 전구 연합군 최고사령관(미,영 합동)으로 재직하고 있었다. 서열,계급상으로는 아이젠하워와 동급이었으며 경력과 계급, 보직상으로도 몽고메리보단 한 등급 항상 상관이었다.
  • [9] 독일군은 보병을 이렇게 불렀다. 전열보병 시대의 산물로, 그 당시 척탄병은 정말 큼직한 구형 수류탄을 목숨걸고 던지는 대인배들이었다.
  • [10] 슈코르체니 부대원들의 방해공작으로 몇몇 교량은 폭파되지 않았다. 벌지전투 당시 어떤 다리에서 독일군의 진입이 임박한 상황에서 폭파시키려 했으나 점화가 되지 않았고 미군은 혼란상태에 빠졌다가 방치한 채 후퇴했다. 다리엔 어떤 미군헌병들이 있었는데 한 병사는 그들의 행동에 의심을 품었지만 그냥 후퇴했고.. 수 개월 후 그는 독일 영내에서 작전중, 독일군 포로들을 만난다. 그 중의 한 독일 병사가 영어로 말을 걸었는데, 바로 그때 다리에 있었던 헌병 들 중 한명이었다! 독일군 포로는 "그 헌병들은 모두 위장한 독일군이었고, 당신들 때문에 다리를 폭파하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는 포로 수용소로 이송되었고 미군 병사는 갈 길을 계속 갔다.
  • [11] 칼 하인츠 프리저, 《전격전의 전설》
  • [12] 쿠르트 마이어 : "왜 제6 SS장갑사단인 줄 알아? 전차가 6대밖에 없기 때문이지." - 불꽃의 기사中.
  • [13] 어떤 상황에 처할지 뻔히 보이는 상황에서 적을 기다려야 하는 심정과 보급 차단, 추위, 일방적인 적의 공세 그리고, 내부의 적(...)에 시달리는 병사들의 모습들이 그대로 묘사된다. 깨알 같은 패튼 디스도..."흐,흥! 우린 그런 도움 안 필요했거든!"
  • [14] 지휘관 훈시를 통해 그 회신 내용을 전달 받은 병사들이 너나 할 것 없이 "Nuts!"를 외쳐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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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modified 2015-08-17 13: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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