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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

last modified: 2015-04-15 09:29:27 by Contributors

BC 384~BC 322.

고대 그리스어: Ἀριστοτέλης
그리스어: Αριστοτέλης
라틴어: Aristoteles
영어: Aristotle

고대 그리스철학자.

철학이라는 학문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생각에 자신의 생각을 추가한 것이다.

1998년 저명한 현대철학자들이 벌인 "서구 철학계에서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철학자"를 뽑는 투표에서 1위 차지.[1]

2천년의 철학사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는 위인이다 한마디로 먼치킨 철학 국가철학 자연철학 과학 생물학 등등 인간이 할수 있는 모든 분야에 통달하고 그것들의 기초를 마련한 철학사의 거인이다중세 이후부터 그가 틀렸다는 사람들이 계속 비판을 해서 위상이 많이 깍인 면은 있지만 원래 처음 길을 걷는 사람은 오류가 있을 수밖에. 어쨌든 그가 대단한 사람이였다는 것은 분명하다.



Contents

1. 일대기
2. 학문
3. 재조명
4. 기타
5. 괴담
6. 대중문화 속의 아리스토텔레스


1. 일대기

소크라테스에서 플라톤, 플라톤에서 아리스토텔레스로 사제관계가 이어진다. 게다가 이 사람의 제자 중에는 그 유명한 알렉산드로스 대왕도 있다.

BC 384년 마케도니아 스타게이로스에서 출생하고 아타르네우스에서 자랐다.
17세 때 아테네에 진출, 플라톤의 학원 아카데메이아에 들어가, 스승이 죽을 때까지 거기서 수학했다.레슬링 프로 선수였던 스승이 두려웠는지[2] 플라톤이 죽을 때까진 플라톤을 까댄 적이 없었으나 불만은 축적되어 있었던 모양인지 사후 누차에 걸쳐 까댄다. 예를 들어《니코마코스 윤리학》이나 《형이상학》에서 이데아론을 비판하고, 《정치학》에서 플라톤의 《국가》와《법률》을 비판한다. 심지어는 그의 저술 중에 플라톤의 이데아론에 대해 '그따위 헛소리는 집어치워야 한다'는 문장이 있을 정도.[3]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가 비판한 것은 주로 중기 이데아론이고, 후기 이데아론은 거의 그대로 수용한다(...)

플라톤이 죽고난 뒤 아카데메이아의 원장이 될 것이라 원생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지만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떨어지고 플라톤이 원장직을 조카에게 물려주자 아타르네우스로 돌아가 동물학, 식물학 연구를 했고 여기서 왕의 이복동생(또는 조카)과 결혼하였다. 그 후 고향 마케도니아로 돌아가 필리포스 2세의 아들, 즉 왕세자 시절의 알렉산드로스 대왕을 가르친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그가 추천한 《일리아스》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평생 읽는 책이 된 것으로 보이며,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알렉산드리아 도서관도 스승님 연구하라고 지어줬다.

제자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원정 떠난 후[4] BC 335년에 다시 아테네로 돌아와, 직접 케이온이라는 학당을 건립하고 여기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지금 남아 있는 저작의 대부분은 이 시대의 강의노트이다. 그는 물리학, 형이상학, 시학, 생물학, 동물학, 논리학, 수사학, 정치학, 윤리학 등 다양한 주제로 책을 저술하였다. 실로 만학의 아버지.

알렉산드로스가 인도 원정길에 요절한 뒤 마케도니아가 분열되면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아테네의 미움을 사게 되었다. 우리 식으로 쉽게 이해하자면 '한반도에서 광복을 맞이한 일본인'인 셈이였기 때문.아테네는 오랫동안 아테네 학생들을 교육한 이 마케도니아 출신의 당대 최고의 지성에게 끝내 시민권을 주지 않았다. 원래 고대 국가가 그런 경향이 많긴 하지만 그리스도 지들 도시국가들끼리 그리스 부심이 쩔었다. 자신들을 정복한 마케도니아 출신인 데다 그 마케도니아 왕의 스승이기까지 했으니... 결국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죽자, 아테네의 신을 모독했다는 누명을 쓰고 추방 당했다. 스승의 스승인 소크라테스가 잠자코 사형을 당한 것과는 다른 선택을 한 것. 그 이후 칼키스라는 작은 섬나라로 도망가서 연구를 이어 하다 이듬해에 위염으로 사망했다.

2. 학문

생각해보면 말년을 제외하고는 굉장히 성공한 인생일 것이다. 고교 독서평설에 의하면 "요즘으로 치자면 유명 병원 원장 아버지를 둔 부유한 집안 출신에(그의 아버지는 마케도니아의 어의였다.) 명문대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최고 명문가인 왕가의 딸과 결혼했으며 나중에 자신이 졸업한 명문대에 버금가는 명문 대학[5]을 건립한 성공한 철학자"라고 하여 '구질구질 우거지상을 하며 우울한 느낌을 주는 철학자상'과 반대되는 이미지라고 설명하기도 하였다. 거기다 당대 세계의 정복자의 스승까지 했으니 세속적 관점에서 이만한 성공을 한 경우는 별로 없을 듯.[6]

앞에서 말한 듯이 스승 플라톤의 이데아론에 반기를 들어 자연탐구를 중시하는 현실적 입장을 취한다.[7] 이렇기 때문에 폭넓은 과학 연구를 바탕으로 물리학, 천문학, 화학, 생물학 등 전방위에서 모조리 영향을 미쳤다.

그래서 서양권에서는 모든 학문의 시조 대접을 받고 있다.

3. 재조명

흔히 아리스토텔레스가 수천년 동안 인정받아 온 듯이 설명되곤 하지만, 이는 사실과 반대다. 로마 제국이 멸망한 이후, 아리스토텔레스는 유럽에서 오랫동안 잊혀졌다. 기독교는 아리스토텔레스보다 오히려 플라톤의 철학에 기반을 두고 있었고, 기본적으로 그리스의 철학 자체가 직접 전해지지 않았다.

카이사르가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을 불태워서 인지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들은 원전이 거의 전해지지 않는다는 말이 있는데 사실 카이사르가 불태운 서적들은 당시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에 소장되기 위해 대기 중이었던 책들이었고 그나마 후에 마르쿠스 안토니우스클레오파트라에게 선물로 페르가몬 도서관의 장서 20만권(...)을 선물했기에 큰 타격은 아니었다.

사실 아리스토텔레스 사후 좀 복잡하게 저작들이 여기저기 흩어진 이유는 아리스토텔리스가 아테네에서 추방당한 탓이컸다. 이후 지하 창고 안에서 썩어가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서를 책수집 덕후가 사들여서 수집하고 보관한 덕에 지금 남아있는 정도의 저작이 남게 되었다고 한다. 그 남아있는 저작이 아리스토텔레스가 저술했다고 알려진 저작의 반도 안된다는 얘기도 있는데 후에도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아리스토텔레스의 대중적인 저작이 소실 되어서 어려운 고급 연구서들만 남았다고 개탄하기도 한다. 일단 로마시대까지만 해도 세네카나 키케로 같은 로마 철학자들이 그의 서적을 필사하기도 했다고...남아있는거라곤 '올림픽의 승자들'같은 쓰잘데기 없는 기록뿐이라고도 하는데(철학이 아니라 사학의 사료로 쓰자면 쓰잘데기 없는 기록은 전혀 아닌 거지만) 사실은 오히려 전문연구서적이 더 많이 남은 셈이다.

어쨌든 로마제국 이후 아리스토텔레스가 보존된 곳은 당연히 로마 제국의 분열 이후 그리스를 비롯한 동방 영토를 계승한 비잔티움 제국이었으며,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한 학술적인 연구는 지속되어, 11-12세기의 비잔티움 공주 안나 콤네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대표적인 저작인 니코마코스 윤리학에 주석을 다는 작업을 후원하기도 했다. 또한 이슬람 세계에서도 많은 연구가 이어져 왔으며, 십자군 전쟁(레콩키스타 포함)을 통해 처음에는 아랍어로 번역된 아리스토텔레스 및 기타 그리스의 책들이, 그리고 그 후에는 그리스어로 된 원전(...이라고 해도 실제 고대 그리스 시대의 저작이 그대로 이어진 것은 아니다)이 차례차례 번역되면서 유럽의 정신세계에 큰 충격을 주었다.[8] 제자의 역습 반역의 아리스

이 때의 충격이 너무 강했는지, 아리스토텔레스의 학문은 유럽에서 절대적인 권위를 누리게 된다. 심지어 기독교 신학에서도 아우구스티누스 이래로 플라톤 철학에 기반을 둔 전통에서 벗어나 토마스 아퀴나스처럼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에 기반을 두는 움직임이 나올 정도였다. 아리스토텔레스가 기독교의 입장에서는 엄연히 이교도였음에도 불구하고 신학까지 변화시킬 정도다는 것은 아리스토텔레스가 당시 유럽의 정신세계를 얼마나 뒤흔들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덕분에 물리 천문에서는 갈릴레오 갈릴레이코페르니쿠스, 화학에서는 라부아지에한테 교정될 때까지 그의 권위는 흔들리지 않는 지위를 누리게 되었다.[9] 하지만 그가 바라는 것은 아니었을 듯... 자연을 탐구하랬더니 자기 말이나 탐구하고 있다....

기본적인 그의 학문적 방법론은 모든 사물을 범주화하고 어떤 사물이 그 사물이게 하는 본질을 제시하는데 있다. 그 본질을 통해 사물의 운동과 변화를 설명한다. 모든 사물의 운동과 변화를 역학적인 방식이 아니라 사물이 자신의 본질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설명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공간 안의 사물의 위치변화 또한 에너지나 힘과 같은 역학적인 개념으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각 사물이 그 자신의 본성에 따른 정해진 위치로 돌아가는 자연적 경향에서 찾는다. 오늘날의 시각에서 미신적이고 우매해 보이는 물리적 설명이 가끔 나오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그렇다고 해도 무식한 고대인이라고 비웃어서는 안 되는 게, 사실 이 사람이야말로 과학적 방법론의 기초를 닦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인식능력에 대해 최초의 단계적 분석을 시도했고 논리학만 기초를 놓은 게 아니라 그 분석을 기초로 경험을 통한 일반화라는 과학 뿐 아니라 학문의 방법론 자체를 처음으로 정립한 사람이다. 고대인의 관점에서 '합리적' 설명을 시도하다보니 여러가지로 무리한 해석이 많이 나오기는 했지만, 아무리 훌륭한 학자라도 시대적 한계까지는 어쩔 수 없을 것이다. 애당초 이 시대는 자연과학 자체가 분리된 학문으로 존재한 것이 아니라 철학과 한 묶음이었던 시대다.

근대에 와서 흔히 까이는 역할을 맡게 된 이유는. 위에서 언급한 대로 근대과학이 바로 그의 방법론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단순히 앞선 시대의 방법론이라는 '자료'로만 남았으면 좋았겠지만 불행히도 아리스토텔레스는 필요 이상의 권위를 가지게 되었고 근대과학의 방법론은 그 아리스토텔레스의 권위에 맞서 싸우며 아리스토텔레스를 부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현대의 많은 과학사학자들은 아리스토텔레스 등의 학문이 유럽 지식인들에게 준 충격이 바로 근대과학이 시작된 계기가 된 것으로 보고 있다.

4원소설 + 천상의 제5원소 떡밥 덕택에 연금술의 기반이 되었다.

어처구니 없게도 물리, 천문, 화학에서 전방위로 까이는 바람에 마치 종교인이나 과학의 원수인것양 다뤄지지만 동물 분류학에서는 나름 탁견.[10] 특히 그 시절에 이미 고래포유류에 가까운 종류로 따로 분류했다.(포유류 자체에 포함시킨 것은 아님) 정작 이 부분은 제자들에게 "쯧쯧, 우리 선생님 실수하신 듯. 고래는 어류 ㄲㄲ" 하는 바람에 묻혀버렸다.(...)

윤리학 부분에서는 자격, 목적, 좋은 삶, 중용 등이 주요 개념이다. 자격은 어떠한 사람이 어떠한 대접이 적절한지는 그 행위나 대상의 목적에 따라 다르다고 한다. 그리고 개인은 좋은 삶을 지향하며 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종의 웰빙인 셈. 중용은 젖절하신 그분을 떠올리게 만들 정도로 적절한 행동을 강조한다.[11] 김대기는 아리스토텔레스적 원칙을 바탕으로 게임을 했어!

논리학삼단논법의 창시자. 아리스토텔레스가 체계를 닦아놓은 논리학은 르네상스 시대를 거쳐 '형식논리학'의 틀을 이루게 된다. 이후 레게버트런드 러셀 경,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등이 등장하여 '기호논리학' 으로 불리는 현대 논리학의 새로운 조류가 나타날 때까지는 사실상 이 분야의 독보적인 존재였다.

정치학적으론 족정치의 지지자. 은 결국 독재정치로 가고, 민주주의중우정치로 가고, 과두정권정치로 가므로 셋을 적절히 융합한 귀족정을 주장했다. 그래서 귀족정이 영어로 "aristocracy"다.[12] 그리스인들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해서 페르시아를 까는데 매우 열성적이었다.

문학에서는 을 통해 체계적인 문학비평의 효시가 되었다. 시학에서 비극의 작동원리를 카타르시스라고 규정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허나 카타르시스는 전문을 걸쳐 단 한번 언급되어질 뿐이며, 아리스토텔레스는 오히려 시학 전체에 걸쳐 플롯을 가장 강조하였다. 시학은 현재의 관점으로 보면 제작학적인 성격이 짙으므로 본격문학보다는 대중문학 이론에서 더 자주 언급된다. 스승인 플라톤이 예술 곧 '모방'은 이데아의 모방인 현실세계의 2차적 모방이라고 규정하고 천시하고, 그 때문에 '국가'에서 시인추방론을 역설한 것과 달리, 아리스토텔레스는 '역사는 개별적인 것을 다루지만 시(서사시)는 보편적인 것을 다루므로 시가 더 철학적이다'라고 하여 문학의 존재가치를 역설하였다.

4. 기타

영미권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를 Aristotle이라고 쓰고 "어리스터틀"에 가깝게 읽는다.

지성인이 되고 싶다면 아리스토텔레스 원전 읽기에 도전해보자.[13] 철학사에서도 가장 어려운 저서를 남긴 것으로도 악명이 높다. 나중에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에 나름의 해석을 붙인 페르시아의 철학자 이븐 시나 같은 경우에는 당대의 지적 엄친아였는데도 불구하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서들이 너무 어려워서 고생 많이 했다는 고백을 하기도 했다. 그래서 그의 "형이상학"같은 경우에는 40회나 정독했다나.

사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서들을 어느정도 이해한다면 중세 철학은 가볍게 이해가능하고 근대 철학의 합리론에서 자주 등장하는 개념들도 쉽게 이해 가능하다. 근데 이해하기가 쉬워야 말이지...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서를 읽을 수 있는 정도의 능력이라면 사실 이 지구상 어느 철학자의 저서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 없다는 얘기도 아리스토텔레스 전공자들 사이에서 떠돈다.

사실 어려울 만도 한게 앞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에 대해서 설명했듯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서들은 곧바로 독자들과 소통할 목적으로 지은 책이 아니라 그냥 자신의 생각을 강의하기 위해 정리한 강의안 비슷한 것들 밖에 남아있지 않다. 즉 자기 자신만이 이해하기 위해 썼던 걸 다른 남아있는 게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읽는 거다. 이븐 시나의 한탄도 이해가 될 법하다.

압바스 왕조의 칼리프 알 마문은 꿈속에서 아리스토텔레스를 만나 밤새 얘기한뒤에 바그다드에 큰 도서관을 지어 번역사업을 할것을 명했다고 한다.

중세 아랍에서도 존경 받았던 철학자이자 최초의 교사. 다시 말해 아리스토텔레스 이전에는 논리가 없었다고 생각될 정도로 추앙을 받았다.

어린이들 사이에서는 좀 안습한 처지인데, 아리스토텔리스가 주로 활약한 철학 분야는 어린이에게는 맞지 않기 때문에 본인 이야기는 아동용 서적에서 잘 안 다뤄지고 대신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위인전을 통해 '무거운 물체는 빨리 떨어지고 가벼운 물체는 늦게 떨어진다.'라는 무식한 소리를 한 옛날 사람 정도로만 접하기 쉽기 때문에 안 좋은 인상으로 남기 딱 좋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세운 업적이 얼마나 큰지를 생각하면 정말이지 안습.

5. 괴담


그런데 이토록 유명한 철학자에 오래전부터 널리 알려진 괴담이 하나 있다.

애첩 필리스와 노느라 정무를 멀리하던 알렉산드로스 대왕에게 스승 아리스토텔레스는 여자를 멀리하라는 충고를 하고, 제자는 필리스를 멀리하게 된다. 그러나 곧 필리스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원인임을 알게되고, 복수를 위해 아리스토텔레스를 유혹할 계획을 세운다. 결국 노스승은 여자에 빠져 급기야 그녀를 등에 태우고 채찍에 얻어맞기에 이르게된다. 진성 M? 이 때 필리아는 노래를 불렀고, 그것을 듣고 다가와 스승과 애첩의 모습을 보게된 알렉산드로스는 당황했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는 늙은 자신도 여자에 저항할 수 없는데, 젊은 너는 어떻겠냐, 이것을 보여줄려고 했다는 식으로 둘러댔고 말했고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스승의 실수를 눈감아준다.

사실은 13세기 프랑스의 노르만 시인인 앙리 당들리(Henri d'Andeli)가 만든 시이며, 유물도 그시대 이전의 것은 없다. 그리고 이는 당대에 널리 퍼졌던 재미있는 이야기일 뿐만 아니라 의외로 금욕적인 기독교가 좋아할만한 이야기였다. "여자를 멀리하라"는 교훈을 담은 이 이야기를 교회에서는 교육적으로도 높이 평가했고 교회의 주교들이 직접 들려줄 정도였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전 유럽에 널리 퍼져 많은 조각상과 그림을 남겼다. 구글에서도 Aristotle Phyllis라고 검색하면 많은 작품들이 나온다.(...) 다만 필리스라는 이름은 독일쪽에서 처음 등장한 것으로 보인다.

앤서니 케니는 자신의 서양철학사 중 '고대철학'에서 필리스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아내였다고 서술하고 있기도 하다.(152쪽)

6. 대중문화 속의 아리스토텔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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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2위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스승인 플라톤, 3위가 칸트, 4위가 니체, 5위가 비트겐슈타인이었다. 소크라테스는? 소크라테스는 저서도 없고 그냥 플라톤에 포함. 소크라테스가 한 말인지 플라톤이 한 말인지도 구별 안되는 판에
  • [2] 플라톤 항목 참조
  • [3] APo. 1. 22. 83a28 참고.
  • [4] 이 시기에도 제자는 진귀한 동식물들을 계속 스승에게 보내줘 동물원 식물원을 차려주기도 했다.
  • [5] 리케이온. 이 말은 고등학교를 뜻하는 프랑스어 lycée에 그 흔적이 남아있다.
  • [6] 사실 구질구질 우거지상의 우울한 철학자들은 대개 별 볼일 없고 배고픈 철학자들이다.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칸트, 데카르트 등과 같은 거성들은 학자로서 행세 꽤나 하며 살았다. 이름난 철학자 중 예외라면 헤겔에 대한 열등감에 몸부림쳤던 쇼펜하우어 정도일까. 아니, 굳이 누구에게나 알려진 거장들이 아니더라도 역사상 철학자들의 절대 다수는 당대의 지식인 상류 계층이었다. 그런 구질구질한 이미지는 현대에 와서나 정립된 것. 사실 현대나 근대에서도 이름 좀 났다 한 철학자들은 고상하게 살았다.
  • [7] 그래서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에서 스승과 함께 등장할 때 플라톤은 하늘을, 그는 땅을 가리키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 [8] 유클리드의 기하학 원론 등도 비슷한 과정을 거쳐서 유럽으로 다시 전해졌다. 아랍 과학자들의 연구결과나 인도 숫자 등도 함께 전해졌다.
  • [9] 정확히 말하면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 등은 아리스토텔레스와 직접적인 관계는 없다. 아리스토텔레스가 그런 고전적인 학문의 대명사가 되어 버린 탓이다.
  • [10] 물론 연의 사다리 같은 것을 주장하긴 했지만. 이 사다리는 중간에 천사 등을 집어넣어 기독교가 아주 유용하게 써먹었다. 그리고 이것은 다윈진화론 등장 전까지 계속 주장되었다. 아니, 현재 진행형이다.
  • [11] 만약 학부 수준에서 니코마코스 윤리학을 읽고 레포트나 논문을 쓰게 될 경우 세부적 질의에서 적절한 답변을 위해 적절한으로 답변하는 것이 가장 적절한 경우를 수도 없이 만나게 된다. 간단히 말하면 행복을 이루기 위해서는 적절한 배경의 인간이 적절한 상황에서 적절한 판단을 내리고 적절한 덕을 함양할 때 우리는 비로소 적절한 행복에 이르게 된다...흠좀무
  • [12] aristo- 는 '최고의'라는 뜻을 가진 그리스어 어간이다. 아리스토파네스 등 이름에 들어간 사람이 많다.
  • [13] 다만 한국어 전집 완역은 아직도 완성이 되지 않은 상태이다. 부분적으로 번역이 되어 있지만 희랍어 직역이 아닌 중역도 상당수다. 그의 저서를 번역본으로 볼 때는 이점에 주의할 것. 일본이 30년씩 재번역하는 것에 비교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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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modified 2015-04-15 09:2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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