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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 원주민

last modified: 2015-07-20 09:22:08 by Contributors



Contents

1. 정의
2. 기원
3. 클로비스인 - 대륙의 최초 발견자는 누구인가?
4. 호칭
5. 유럽인들의 이주
6. 북미 원주민의 사회와 문화
7. 농경
7.1. 아즈텍의 식문화
8. 북미 원주민의 현재
9. 북미 원주민 복권과 대중문화
10. 북미 원주민- 창작물에서
11. 아메리카 원주민 부족 목록
11.1. 북극권
11.2. 북미
11.3. 중미
11.4. 남미
12. 아메리카 원주민 출신 실존 인물
13. 아메리카 원주민 캐릭터
13.1. 아메리카 원주민을 모티브로 한 부족/인종
14. 관련 항목

1. 정의

말 그대로 아메리카 대륙원주민. 이들을 통칭하여 아메리카 원주민으로 부르긴한다. 그런데 미대륙이 남북미 합쳐서 약 42,549,000km². 남한의 약 425배 정도고 아시아(44,579,000km²)와 거의 맞먹는 크기이다. 땅은 넓고 사람은 많으니 지역별로 천차만별의 문화와 생활상을 보인다. 같은 아시아라고 이란인과 인도인이 같지 않듯 이들이 전부 초원생활을 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말자.[1] 혈통상 분류로는 북쪽 이누이트가 아니면 몽골로이드계통이 나오기 전의 프로토-몽골로이드계 중 일부가 넘어간걸로 추정한다.

미국식 영어: Native American - 미국에서는 American Indian이 부정적인 뜻을 내포하고 있으므로, 웬만하면 Native American이라고 쓰는 것이 좋다.
캐나다 영어: First Nations, Aboriginal Peoples
영국식 영어: American Indian - 'Indian'이 인도(인/어)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므로 영국에서는 보통 American Indian이라고 한다.
가이아나 영어: Amerindian
불어: Premières Nations, Amérindien
스페인어: Pueblos indígenas, Amerindio, Aborígen(아르헨티나식)
네덜란드어: Indianen
포르투갈어: Povos ameríndios, Índio
터키어: Kızılderili - '붉은 피부를 가진 사람들', 즉 '홍인'이라는 뜻이다. 서구에서는 인종차별로 여겨질 수 있는 단어지만, 터키어에서는 이를 대체할만한 단어가 아직 없다. 마찬가지로 '흑인'을 뜻하는 터키어는 아랍어에서 가져온 zenci, 혹은 '검은사람'이라는 뜻의 siyahi라는 단어를 쓰고 있다.

2. 기원

가장 널리 알려지고 신뢰받고 있는 설은 빙하기베링 해협이 육지로 연결되었을 시절에 건너간 사람들이 정착했다는 설이다. 그러나 이들이 사실은 베링 해협을 육지로 걸어서 들어온 것이 아니라 배를 타고 베링해를 건넜다고 보는 사람들도 있다. 정설 쪽에서는 당시의 인류는 베링해를 배로 건널 능력은 없었을 것이라고 보지만, 배를 타고 건넜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은 아시아와 아메리카가 육지로 연결되었을 때는 빙하가 최대로 발달해 있던 시기이므로 시베리아 쪽에서 접근하기도 어렵고 베링 해협을 걸어서 건넜다고 해도 빙하에 막혀서 아메리카 내륙으로 들어갈 수도 없었을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참고로 정설 쪽에서는 기원전 16000년 정도에 베링 해협도 건널 수 있고 빙하에도 틈이 생겨서 내륙으로 들어갈 수 있는 시기가 있었다고 본다.

아메리카 대륙의 생태계는 사람에게 그리 호의적인 편이 아니다.

일단 사육이 가능한 동물이 극히 적다. 서부개척 영화나 기타 창작물의 영향으로, 이들이 을 타고 초원을 누비며 총과 활로 백인들의 마차를 습격하는 모습을 쉽게 상상할 수 있다. 물론 습격을 자주 한다는 거 자체도 오해고, 기본적으로 미대륙엔 원래 말이 없었다. 따라서 인력(人力)이 중심이었고 꽤 오랫동안 노예제가 지속되었다.

을 타고 초원을 누비는 것은 아메리카로 이주해온 럽인들로부터 말을 받아들인 후 아메리카에서도 매우 빠른 속도로 독자적인 기마술을 발달시켰을때 할 수 있다. 유럽인들이 가져온 말 가운데 일부가 탈주하여 야생마가 되고, 이 야생마들이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말 공급원이 되었다. 과 같은 무기도 큰 문화적 거부감 없이 빠르게 받아들였다. 단 몇 세대 만에 '도보민족'(…)에서 '마민족' [2]으로의 변화를 이룩한 것을 보면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외부 문물을 받아들이고 발전하는 능력이 참으로 대단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아메리카 대륙에서 작물로 생산할 수 있는 식물이라고는 옥수수감자, 호박과 콩 정도였으며 그 외 야채류 조금뿐이었다. 옥수수도 혁명적인 종 개량이 있기 전까지는 수확량이 매우 적어 오늘날과 같은 주요 작물일 수 없었다.

3. 클로비스인 - 대륙의 최초 발견자는 누구인가?

아메리카 최초의 문화는 클로비스(Clovis) 문화라고 불리며 클로비스 문화를 일군 아메리카 최초의 사람들을 클로비스인, 클로비스 문화의 유적이 발견된 곳을 클로비스 포인트라고 부른다. 일반적인 설명은 클로비스인들이 바로 베링 해협을 건너온,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조상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클로비스인들은 시베리아에서 베링 해협을 통해 들어온 것이 아니라 유럽에서 대서양을 건너서 들어왔다는 주장도 있다. 빙하기에 북반구 전반에 걸쳐있던 빙하북부의 빙하 근처 해안을 따라 배를 타고 건너갔다는 것. 많은 학자들이 당시 인류의 항해 능력에 회의를 보내고 있기 때문에 정설이라고 부르기는 어렵다. 베링해를 배로 건널 능력이 있었다는 주장조차 회의적인 시각을 받는 마당인데 대서양을 배로 건넜다는 주장은 그야말로 황당하게 보이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당한 주목을 받은 학설인 것은 사실이며, 나름대로 분명한 근거도 있다. 클로비스인들이 시베리아에서 건너왔다면 시베리아 쪽에서 클로비스 문화와 유사한 계통의 석기가 발견되어야 하겠지만, 클로비스인들의 화살촉을 비롯한 석기가 시베리아 쪽과는 계통이 상당히 달라서 잘 연결되지 않는 반면 오히려 유럽의 것과는 유사하기 때문이다. 또한 클로비스 포인트가 비록 북아메리카 전지역에 분포되어 있기는 하지만 그 중에서도 미국 동부 해안에 집중적으로 나타난다는 점도 근거가 된다. 이 학설에서는 당시 미 동부는 일시적으로 온화한 기후였기 때문에 클로비스인들은 이곳에서 생활하다가, 빙하가 북대서양으로 흘러들어 북대서양이 급격히 냉각되면서 북대서양부근의 해류순환에 마비가 오면서 미 동부지역이 저온건조한 기후가 되어서 미 중부내지 서부지역으로 이동한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물론 현재의 아메리카 원주민은 인종적으로 보더라도 아시아에서 들어왔다는 것에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렇다면 아메리카 최초의 사람들은 현 아메리카 원주민의 조상이 아닐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한편 2014년 유타카 반도의 수중동굴에서 발견 된 클로비스인이 선사시대의 시베리아의 인종과 유전적으로 비슷하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순서는 다르더라도 그들 역시 베링해협을 건넜다는 주장이 다시 힘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아니면 최소 혼혈되었거나.

어쨌든 만약 클로비스인이 대서양을 건너온 것이라면, 클로비스인이 이후에 어떻게 되었는지가 의문점으로 남는다. 이들은 베링 해협을 건너온 몽골로이드 계열을 만나기도 전에 멸종했을 수도 있고, 그들과 피튀기는 항쟁을 벌이다 사라졌을 수도 있으며, 아니면 몽골로이드 계열과 공존하다가 자연스럽게 융화되었을 수도 있다.(이런 점에서 네안데르탈인에 대한 초기 오해, 이후의 여러 학설과 유사하다.) 클로비스인들이 나타난 후에 일정한 시간이 지난 후에 아메리카 대륙에서는 대형 포유류들이 대거 멸종했으며, 이 시기에 클로비스인들도 거의 모습을 감춘다. 이는 흔히 인간이 과도한 수렵으로 태계를 무너뜨려서 포유류들이 멸종하고 사냥감을 잃은 인간도 멸종 직전에 몰린 것으로 해석되지만, 당시에 운석이 떨어지거나 빙기 등의 이유로 극심한 기후변화가 일어나서 대형 포유류와 인간이 함께 사라진 것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다. 어느 쪽이든 클로비스인들이 현 아메리카 원주민의 조상이 아니라면 이 시기에 단순히 크게 쇠퇴한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씨가 말랐을 가능성도 생각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들은 몽골로이드 계열을 아예 만나지 못했을 수도 있고, 살아남아 있었다고 해도 숫자가 크게 줄어든 상태에서 싸움에 밀려났거나 혼혈을 통해서 쉽게 흡수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흡수되었다고 가정하더라도 흡수된 이들은 극소수였거나 이들의 후손은 대가 끊어졌을 것이다. 아메리카 원주민의 유전자 검사에서는 아메리카 원주민 전체가 단일한 유전자 그룹에 속해있으며 여러 이주민들의 혼합으로 볼 수 없다는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이와 더불어 클로비스 문화가 정말로 아메리카 최초의 인류의 흔적이었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연대 측정 결과 클로비스 이전 시대의 것으로 보이는 유적지들이 남북아메리카를 모두에서 나타났기 때문이다. 클로비스 문화는 대략 기원전 13000년경에 나타나는 반면 이런 유적들 중에는 기원전 20000년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도 있다. 이런 유적의 발견은 베링 해협을 걸어서 건넜다는 주장에도 타격이 되는데, 이는 베링 해협이 연결되고 북아메리카를 덮은 빙하에 '통로'가 뚫려서 내륙으로 이동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시기는 대략 기원전 16000년경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유적지들의 연대는 여전히 논쟁중이다.

4. 호칭

예전에는 인디언으로 부르기도 했다. 콜럼버스를 위시한 서양인들이 이 곳에 처음 도착하고 나서 인도인 줄 알아서이기도 하고,원주민의 뿌리가 아리안계통의 인도쪽이라고 생각한 탓이기도 하다.(물론, 비하하기 위한 용어로 쓰이기도 했다.) 비슷하게 홍인, 혹은 홍인종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들이 붉은 점토로 치장하고 붉은 가죽을 둘러쓴 모습에서 유래됐다고 하기도 하고, 중북부 지방에서 초원생활을 했던 원주민들은 주로 피부가 발갛게 익었기 때문에 이렇게 부르게 된 것이다.

하지만 전술했듯 중북부 초원생활을 한 원주민들은 전체적으로 일부일 뿐이고 피부색이 그렇다 한들 이들은 인종적으론 프로토-몽골로이드 계통이며, 홍인종이란 표현은 현재 아메리카 원주민들 사이에선 으로나 통한다. 노예로 팔려나간 원주민들 중 홍인종이라 하여 유랑단에 인종전시를 당하기도 한 치욕적 역사도 있다. 쓰지 말자.

더불어 인디언, 인디언 하면 원주민들은 물론 인도(즉 인도 공화국)에서도 기분 나빠한다. 인도 영자신문이 인디언 타임즈, 인디언 포스트, 인디언 헤럴드 같은 신문들이다. 더불어 인디언 관련 뭐라고 하면 죄다 인도와 연관된 것이다. 용어에 문제가 있기 때문에 지금은 인디언이나 홍인이란 말 대신 미국에서는 네이티브 아메리칸을 쓰고, 캐나다에서는 퍼스트 네이션스라고 불리다 점점 애보리지널 피플즈라는 용어로 대체되고 있다. 되도록 마푸체, 과라니, 아이마라 같은 그 겨레의 이름으로 부르자. 그래도 일단 굳어진 용어가 있어서 인디언 전쟁 같은 경우는 그대로 작성한다.

참고로 인디언은 북아메리카 대륙 원주민을 이르는 것이고, 남아메리카 원주민은 인디헤나 혹은 인디오라고 부른다. 사실 그게 그거다. 인도 사람을 영어로 인디언, 스페인어로 인디오라 하는 거니까.

그러나 정작 아메리카 원주민들 쪽에서는 스스로를 "아메리칸 인디언"이라 부르는 것이 알맞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설문 조사의 결과도 있는 모양이다(...).# 아마도 워낙 명칭이 굳어진 탓일 듯. 그러나'이것 또한 북아메리카 영어권 이야기일 뿐일 가능성이 높다. 남아메리카에서 '인디오'는 엄연히 '욕'으로 쓰이며 원주민들은 어지간하면 자기 민족 이름으로 불리는 것을 선호한다.

5. 유럽인들의 이주

NativeAmerican_NorthAmerica.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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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착각하고 있는 것들 중 하나가 백인들이 왔을 때 아메리카는 순수한 자연 그대로, 사람의 흔적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도 없는 태초 그대로의 신대륙의 이미지를 떠올린다는 것인데 실제로는 이미 다른 유라시아 등등의 다른 대륙들과 똑같이 원주민들로 바글바글하게 사람이 들어찬 곳이었다. 당연히 이는 개척이 아니라 침략이다. 북미는 주요 문명이 유럽인보다 먼저 침입한 병균에 멸망해버리긴 했다. 그래서 개척이란 말을 쓸 정도로 인구밀도가 낮았다.

역사시대에 북미를 발견한 첫 유럽인은 아이슬란드-그린란드를 징검다리처럼 건너 캐나다 지역까지 내려온 해양민족 바이킹이었다. 이는 빈란드 사가에 잘 드러난다. 그러나 이들의 접촉은 소빙기 등의 이유로 영구적이지 못했다. 그 이후엔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알다시피 "성전" "발견" 운운하며 1492년부터 침략을 시작했다.

앵글로 아메리카의 경우, 멀쩡하게 잘 살던 중 갑툭튀한 백인(청교도)들이 풍토병 + 농업실패로 말라 죽어가는 걸 주고 옥수수 줘서 먹여 살려줬더니 갑자기 자기들을 미개인 취급하며 개화를 외치며 미국 정부에게 고난과 핍박을 당해왔다...고 정리된다. 엄연히 따지면, 미국 건국 초기의 이민자들은 두가지 부류로 나뉜다. 하나는 어중이 떠중이들이 세운 버지니아임스 타운. 다른 하나는 청교도들이 매사추세츠에 세운 플리머스 항. 전자의 경우는 도착했을 때부터 원주민들과 충돌했지만, 후자의 경우는 초기에는 비교적 잘 지냈다.

추수감사절로 알려진 Thanksgiving Day는 초기 이주민들이 미대륙에서 적응하지 못해서 반 죽어가고 있는 걸 원주민들이 겨우 살려서 옥수수 농사짓는 법 등을 알려줘 5년 만에 겨우 수확에 성공하자, 그것을 감사하기 위해 만들어진 날이라는 동화가 있지만 말 그대로 동화이며 사실이 아니다. 1960년대 후반부터 미국 정부가 정책적으로 원주민들의 권익을 보장해주기 시작함에 따라 정책적인 뒷받침을 위해 만들어진 것. 이와 동시에 원주민에 대한 세금 감면, 원주민 보호구역의 면세 혜택등이 이 시기에 만들어진다.

물론 원주민들도 반드시 백인들에 우호적이지만은 않고 가끔은 약은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는데, 좋은 일화로 네덜란드인들이 뉴암스테르담(오늘날의 뉴욕)을 단돈 24달러로 산 일화가 있다. 이 사실이 간혹 원주민들의 비정치적인 모습을 보여준다며 침략을 정당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호도되기도 했는데, 진실은 그 지역에 살고 있는 부족과 대치중인 부족이 백인이 그 땅을 눈독들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그 부족으로 위장하여 접촉, 자기들 땅도 아닌데 헐값에 팔아넘기고 분쟁을 조장한 것이었다. 결국 이 바닥도 사람 사는 동네였다는 것(...).

또한 원주민이 면역력을 가지고 있지 않은 병균을 득실득실하게 가지고 있는 유럽인은 원주민에게는 살아있는 균병기와 같은 존재였다. 콜럼버스 시절의 유럽 도시는 하수 시설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 상상 이상으로 불결했기에 이 문제가 더 심각했다. 파리(도시)같은 도시들은 말할것도 없고 당장 베르사유 궁전에도 화장실이 없었기에 베르사유의 아름다운 정원은 옛날엔 똥밭이였다...괜히 향수가 유행한 것이 아니다. 더하여 현재 인간의 질병은 대개 가축의 질병에서 기원한 것이 많은데, 아메리카 대륙에는 가축화할 만한 대형 포유류가 없어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상대적으로 이런 질병들에 취약했다.

때문에 유럽인이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한 것만으로 전염병이 퍼져서 도시 국가급의 문명이 붕괴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총,균,쇠에 따르면 최대 100%의 사망률도 나왔다고.

이러한 병원균의 존재는 뜻하지 않게 척자들의 삶에도 영향을 끼치곤 했는데, 원인불명으로 부족민이 픽픽 쓰러져나가는 와중 개척자들만이 멀쩡히 돌아다니는 것을 본 원주민들이 이를 저주로 오해하고 선의를 가지고 접촉한 개척자(주로 선교사)들을 살해하는 일들도 있었다. 대표적인 사례로 오레건주의 휘트먼 가족이 있었다. 이 가족은 부족민의 대다수를 홍역에 의해 잃은 카유세 부족에게 살해당했다.[3]

그 결과 1500년 경 멕시코를 포함한 북아메리카만 총 인구 2000만 이상이었던 것이 한 때 140만으로까지 줄어들었다. 100%의 사망률을 보인 곳은 콜럼버스가 처음 '발견'한 히스파니올라 섬. 800만 명이 0명이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지만, 히스파니올라 섬은 800만명이 살 만한 섬이 아니니 80만 명 정도가 적당하지 않을까?[(오역 혹은 오기로 보인다.) 지금이야 이 섬에 2천만 명 넘게 살고 있지만 결과적으로 아이티가 극심한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다. 여하튼 전멸한 것은 분명하다.

미국에 백인, 흑인만 바글거리지 원주민들을 찾기 힘든 이유가 다 있다. 2006년 미국 통계청의 조사 결과, 미국에 거주하는 아메리카 원주민의 총수는 알래스카하와이를 포함하여 400만 정도에 불과한 것으로 나왔다. 사실 이것도 높은 출산율+의학 기술 향상의 영향(...)으로 많이 늘어난 수치로 1900년에 25만명에 불과했다(...) 또 20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아메리카 원주민에 대한 인식이 시궁창(...)수준이었기 때문에 인디언의 피가 섞인 혼혈인들이 자기가 아메리카 인디언이라고 응답하기 꺼려했었기 때문에 좀 적게 집계되었다는 얘기도 있다.

멕시코(약 1500만명)와 캐나다(약 140만명)는 좀 사정이 나았다. 이 쪽은 20세기 중, 후반에 미칠듯한 인구증가 버프덕을 봤다. 1950년의 멕시코 인구가 2829만명이었는데 2000년엔 1억387만명 수준으로 증가했다. 그래서 멕시코인의 대다수가 어떠한 형태로든 원주민의 피가 섞인걸 감안해도 많이 증가한 것.

그래서 심지어는 중앙아메리카와 남미의 아즈텍과 잉카 제국 멸망 과정에서 그들의 내분 과정이나 병크를 무시하고 그저 지나치게 스페인 침략자(콩키스타도르)들만 잔인하게 묘사하는 게 정작 북미에서 원주민들의 준"전멸"을 달성한 영국 청교도-북미 사관의 영향이란 말도 있다. 아즈텍 제국을 멸망시킨 에르난 코르테스말린체의 관계를 보아도 이는 분명하다. 특히 슬픔의 밤 사건과 오툼바 전투 때는 상당수의 틀락스칼라 인들이 스페인 침략자들을 도와 같은 인종인 아즈텍인들을 공격하고 있었다. 심지어 그보다 잔인하게 잉카 제국을 멸망시킨 프란시스코 피사로도 그랬다. 여하간 스페인 침략자들은 그나마 좀더 공존에 치중했다는 평. 특히 스페인 쪽에서는 1550년 바야돌리드 논쟁 이후 아메리카 원주민들을 자신들과 같은 문명인으로 공식 확정하고 노예화도 금지시켰다.

백인에게 죽은 원주민보다 자기들끼리 싸움 벌여서 죽은 원주민이 더 많다는 얘기도 있지만... 근거도 적고, 당장 전쟁 없는 대륙이 없었다. 북미만 쳐도 서유럽 전체보다 넓다. 잉카 제국은 명나라만 제외하고 신성 로마 제국이나 오스만 제국보다도 넓었다. 당연히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서로를 다른 민족, 다른 국가로 생각했다. 외계인이 쳐들어와서 인류끼리 서로를 더 많이 죽였을 거라고 침략을 정당화하는 것과 다름없다.

이렇게 1차로 전염병으로 인해 약 95%가 사망했다. 이에 대하여 최소 수천만에서 최대 일이억의 사망자를 추정하는데 서구권에선 최대한 수를 줄이려고 노력하는 모습이다. 하기사 그들의 치부라고 할 일이니... 그리고 2차로 서부개척시대 때 학살, 거주지 제한을 당하고, 3차로 디언 보호구역에 수용되고, 4차로 마약, 도박의 공급으로 폐인 증가.

6. 북미 원주민의 사회와 문화

이름 짓는 방식이 상당히 특이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빛나는 나뭇가지라든지 주먹쥐고 일어서라든지 대와 함께 춤을 이라든지하는 식으로. 그러나 사실 다른 문화권 이름도 별 차이는 없다. 영어 이름도 뜻풀이해서 표기하면 특이한 이름이 된다. 록펠러는 돌절벽, 스미스는 대장장이, 셰익스피어창을 흔들다. 즉 고유명사를 번역함으로써 생긴 인식이라고 할 수 있다. 앞의 원주민 이름을 한자로 풀이하면 光枝(광지), 拳立(권립), 豺舞(시무)가 된다. 한국 역시 한자 이름은 성명학에 의해 일부러 뜻이 되지 않게 지은 이름들이 많다. 때문에 이름 자체 보다는 이름을 짓는 방식에 그 특징이 있다. 원주민 부족들은 아이가 어느 정도 크게 되면 그 아이의 특성을 따서 이름을 짓는다고 한다. 예를 들어 굼뜬 아이는 '느린 거북'이란 이름을 붙여준다거나...물론 위키니트 사이에서 제일 유명한 것은 단연 오타쿠웨이.

정치적인 면과 종교적인 면은 다음과 같다. 알려진 것과는 다르게 이들은 추장을 중심으로 하는 부족사회가 아니다. 부족마다 체제는 다르지만, 기본적으로는 사회의 연장자나 능력이 알려진 젊은이들을 포함하여 회의를 개최, 만장일치 혹은 다수결의 결과로서 부족의 결정이 내려졌다.

추장이란, 이들이 회의 결과 뽑은 공무원을 지칭하는 단어이고, 1명이 다스리는 군주체제가 아닌 직접민주정치의 형태였다. 수렵을 주로 한 경우는 이런 경우였고, 마야아즈텍같이 농경이 가능했던 지역에서는 중세의 봉건제와 흡사한 피라미드식 계급제도 형태를 보이기도 했다.

아메리카 원주민의 정치 체계가 현대 민주주의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유럽에서 온 이주민들에게 원주민들의 정치 체계는 유럽식 왕정과는 다른 매력적인 대안으로 여겨졌으며, 이것이 뒤에 궁극적으로 미국의 정치체계를 민주주의로 만드는 데 영향을 주었다는 것이다. 다만 큰 근거는 없는 이야기다. 무엇보다도 유럽인 자신들부터가 유구하고 풍부한 공화정의 전통을 갖고 있다.

추장은 주로 전투추장과 수렵추장, 그리고 위차샤 와칸(wichasha wakan)으로 불린 제식추장으로 나뉘어졌다. 수우족 언어로 위차샤는 '남자', 와칸은 이해할 수 없는 '신성한 권능'을 의미. 수우족이 믿는 위대한 정령 와칸탕카에도 들어가는 말이다. 물론 평화추장이나 농경추장 같은 것도 있다.추장만 붙으면 다 말된다. 유명한 전투추장으로는 타탕카 이요타케(앉아있는 소, 일명 시팅 불)가 있으며 타탕카 이요타케는 후에 위차샤 와칸도 겸한다. 위차샤 와칸은 태양춤을 춰 예언하는 역할을 맡았다.

태양춤은 제식 기간 동안 외부 부족과 접촉하지 않고 미리 축적해 놓은 식량을 사용하며 4일 동안 축제를 즐긴 후, 위차샤 와칸이 축제 마지막에 무리의 한 가운데로 들어오며 시작한다. 무리는 둥그렇게 원을 형성하여 와칸의 태양춤을 보게 된다. 태양춤은 축제 기간 내내 밥도 먹지 않고 잠도 자지 않아 매우 몽롱해진 위차샤 와칸이 담배나 마약류를 섭취하여 혼미한 상황에서 창으로 자신을 찔러 피가 몸을 적신 상황에서 창을 가운데 꽂고 그 주변을 춤을 추며 도는 의식이다. 피를 뒤집어쓰는 부분은 부족별로 차이는 있지만 초원 지방의 수우족은 창을 사용했다. 아예 피를 보지 않고 춤을 추는 부족도 있다. 극한의 육체상황에서 위차샤 와칸은 환각을 보게 되고, 보지 않더라도 의식이 끝난 후 첫 잠자리에서 꿈으로 계시를 받게 된다. 이 계시는 상당히 중요한 메시지로 부족 구성원들에게 전달되었다.

1889년 위차샤 와칸인 워보카가 창시한 2차 유령춤 운동 역시 위차샤 와칸이 차지하고 있는 위치를 나타낸다. 유령춤은 죽은 자의 부활과 내세의 안정을 기원하는 춤으로, 덕이 있는 자들이라면 파이널 판타지 10의 유우나가 춘 춤을 생각하면 편할 것이다.

워보카는 파이우트족의 위차샤 와칸으로, 그의 아버지인 워드지워브는 기존의 유령춤을 크게 유행시킨 사람이었다. 그는 청소년기에 데이비드 윌슨이라는 백인이 운영하는 농장에서 일을 해서 윌슨이라는 이름과 기독교적인 내세 사상을 받아들이게 된 배경이 있다. 워보카는 태양춤 의식에서 극도로 심한 환각을 보게 된 후 며칠만에 깨어나, 죽은 자들이 부활하고 백인들은 자신들의 영역으로 쫓겨나며 죽은 물소들이 다시 떼를 지을 것이라는 종교적 의미가 다분한 예언을 발표한다. 그는 유령춤을 추어 내세의 구원자(메시아)가 강림할 것을 빌어야 한다고 말하였고, 이는 원주민들 사이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미국은 이 춤의 유행에 마치 악마를 바라보는 시각으로 대하였으며, 춤 추기를 그만두지 않는 원주민들을 대량 학살하였다. 대표적인 예로 운디드니 학살사건이 있다.

만악의 근원 중 하나인 담배를 재배했다. 그걸 퍼뜨린 건 유럽인들이지만... 아메리카 원주민들에겐 담배가 몸을 정화하는 용도로 많이 사용되었는데, 담뱃잎에 약재를 싼 후 그것을 태워 그 연기를 마셨다고 한다. 담배야말로 백인에 대한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복수라는 개드립도 있다. 또 다른 후보는 매독인데, 매독에는 소수설이지만 유럽 토착설도 있다.

7. 농경

이들은 대부분의 지방에서 수렵생활을 했으며, 농경도 일부긴 했지만 이루어졌다. 단, 농경기술은 그리 발전하지 못했으며 설령 발전했다고 하더라도 널리 전파될 수가 없었다.

대규모 농경에 의존하기 위해선 노동력이 필수적인데, 아메리카 대륙의 (길들일 수 있는) 대형 가축류는 겨우 (그나마도 중남미의) 라마알파카뿐이다. 그러므로 , , 돼지 등등 유라시아 대륙의 13종과는 차이가 심하다. 이런 점으로 봐서 학계에선 아메리카 대륙의 농경민족이 농경으로 식량을 충족시키게 된 건, 길어도 유라시아 대륙보다 4천년 이상 늦었다고 추정한다. 들소(버팔로)는 너무 사나워서 사냥이라면 몰라도 길들여서 농사에 쓰기는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원주민들이 병으로 떼몰살당한 이유를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고도 한다. 구대륙의 사람들은 다양한 동물들을 길들여서 함께 살아온 수천년의 세월을 통해 동물들의 전염질병(조류의 인플루엔자, 우제류의 두창 등)에 대한 면역을 획득하여 보균 상태에서도 문제없이 살아갈 수 있었으나, 원주민들은 그러지 못 했다는 것.

또한 유라시아 대륙은 비교적 동서로 긴 형태를 가지고 있어 온대 지방과 아열대 지방의 농경민족이 수가 많고 종류가 다양해 서로의 문물 교류가 간편했다. 또한 세계 4대 문명 발상지들 중 나일강 유역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은 왕래하기 편한 개방적인 지형이어서(=수비가 어려워서) 수많은 침략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농경이 쉽게 전파될 수 있었다. 하지만 아메리카 대륙에서는 기본적으로 농경으로 쓸 작물도 부족했을 뿐더러 농경이 가능한 지역이 지나치게 협소했다. 이는 남북으로 긴 탓에 농경에 적합한 위도군이 한정될 수밖에 없던 아메리카 대륙의 지리적 문제도 있을 것이다.

폐쇄성에 대해 간단한 예로 금속냉병기를 보자. 구대륙에선 농경과 같은 이유로 청동기(후에는 철기) 역시 빨리 퍼졌으니, 유라시아 대륙에서 최초로 철기가 도입된 것은 기원전 2000년 경의 히타이트이다. 히타이트가 후에 아리안 유목민족의 침입으로 멸망하기까지 철기는 빠른 시간내에 유라시아 대륙 전역으로 퍼졌고, 250년 안에 대부분의 '문명화'된 지역에서는 철기문물을 접할수 있었다.

반면 아메리카에서 철기를 언제 사용하게 되었는지는 의견이 분분하나, 사용하게 된 후 대륙 전역으로 퍼지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일부 지역에선 17세기 후반까지 철보다는 석기를 사용하는 모습도 보였는데, 상당히 가공되었고 철과 비슷한 경도와 강도를 유지하기 위한 기술과 원자재를 사용했다. 대표적으로 흑요석 무기가 있으며, 일부 지역에서는 살상력을 줄이기 위해 일부러 철기를 사용하지 않은 지역도 있었다. 생존에 필수적인 무기가 이럴진데 문화적 차이가 있을 수 있는 농경이 전파되지 못한 것은 어쩌면 당연할 수도 있다. 유럽의 경우도 근대 이전까지 농업으로 충분한 식량생산이 이루어진 지역은 제한적이었다. 동아시아는 그에 비하자면 매우 사정이 좋았던 편.

학자에 따라 다른 견해도 있다. 이들의 주요 작물인 옥수수는 그 자체로는 영양 결핍이 심각할 수 있었다. 적절한 동물성 단백질 섭취 없이 옥수수만 먹고 살면 펠라그라병을 유발한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육류를 섭취해야만 했다. 문제는 앞에도 나오듯이 미대륙에는 고기를 얻을 수 있는 가축류가 별로 없었다는 것이다. 라마와 알파카는 운송을 책임지고 옷을 만드는데 쓰는 을 얻는 귀한 동물이었고 번식도 쉽지 않았기에 대규모로 사육해서 잡아먹는다는 것은 무리였으며, 게다가 안데스 산맥 일대에만 살았기 때문에 남미의 잉카 제국만이 알파카와 라마를 사용할 수 있었다.

그 외에 멕시코 일대에서는 칠면조를 기른 기록이 있다. 물론 먹기 위해 길렀는데, 개는 사육 효율이 그리 좋지 못해 식용으로 다량 생산하기엔 배보다 배꼽이 크다. 일단 개 자체가 고기를 먹고 제일 잘 자란다. 따라서 수렵을 어쩔 수 없이 병행하거나, 혹은 수렵을 주로 하고 농경을 보조로 하는 형태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7.1. 아즈텍의 식문화

그런데 정작 옥수수 재배하던 아즈텍, 마야인들은 옥수수를 하룻밤 동안 회수에 불려 화학적으로 이아신이 생성되는 방법을 사용한다. 이 옥수수를 갈아 만든 반죽을 마사(masa)라고 한다. 타코에 쓰이는 토르티야의 원료. 이렇게 하면 나이아신 결핍증인 라그라에 걸리지 않았다. 오히려 옥수수만 주워가고 조리법은 주워가지 않은 스페인을 비롯한 유럽에서 펠라그라가 발생하는 병크가 터졌다.

아즈텍 같은 경우는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수렵만으로는 도시의 육류 소요량을 감당해내지 못하자 국가적인 규모로 식인을 장려했다고 하는 주장도 있는데, 이에 반대하는 견해 또한 존재한다. 전쟁은 살육전이라기보단 제물로 바칠 포로를 확보하기 위한 힘싸움 정도였고, 제국이 커지게 되더라도 일부러 적대부족을 남겨놓아 전쟁상태를 유지하기도 했다지만 그럴 정도로 고기가 부족하지 않았다는 연구도 있다. 당장에 그 지역 역사 전공자들이 쓴 연구서에선 모두 반박되는 주장들이다. 먹을 게 모자라서 전쟁을 한다면 왜 그런 전쟁은 대체로 수확기에 터지겠는가. 거기다 식인은 기껏해야 멕시코 시 지역의 부자들만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위에 나온 옥수수로 단백질을 얻는 법에 나온 이야기와도 맞지 않는다.

하지만 식생활은 영양소만으로 구성되지 않고, 즐거움이 되기도 한다는 점을 보면 위의 주장에도 헛점은 생긴다. 극렬 채식주의자 등의 일부 예외도 있지만 매우 소수이며, 사람은 육류의 맛을 즐긴다. 아메리카는 아니지만, 몇몇 원주민 사회에서는 '굶주렸다'와 '굶주리진 않았지만 고기가 먹고 싶다'라는 다른 의미의 '배고프다'라는 말들이 존재하기도 한다. 이 부분에 대해 우려할 만한 점은, 아즈텍인들만 특출나게 유희를 위해 잔인함을 일삼던 이들이라는 오해를 살 수 있다는 것이다. 대규모 식인의 장려라 해서 현대인의 시각으로 무조건 혐오감만을 가질 게 아니라, 역사를 보는 바른 시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아즈텍의 대규모 식인의 역사는 그렇게 길지 않다. 분명 그 이전에도 식인이 있었지만 제의적이거나 종교적인 의미가 더 강했다고 하고, 아즈텍이 그 지역의 패자가 된 것도 스페인 침공 시기 이전에서 아주 오래되지도 않았다. 그들은 북쪽에서 이주한 이들로 구성되었는데, 무엇보다 처음 지금의 멕시코에 도착한 것도 1200년대의 일이며, 제국을 형성하기 시작한 것은 그 후로도 시기가 지난 후이다. 또한 인육으로 공급되는 단백질의 양은 개인이 필요한 양에 못 미치는 적은 양이었지만, '고기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키는 역할을 했을 것이다. 이는 로마시대에 부유한 이들이 서민들을 회유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잔인한 공연, 음식을 배분한 것과 비슷하게 볼 수 있다. 로마 제국의 서민들도 공연이나 무상으로 주는 음식 없이 모두 굶어죽는 수준은 아니었다. 뛰어난 문화 수준을 가진 '문명인'에게도 동물로서 인간의 잔인한 면모가 존재한다는 것은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콜로세움을 예로 들어 로마인들에게 무조건적인 혐오만 가지고 문화적 수준을 깎아내린은 이들은 거의 없다. 아즈텍인들도 지적이고 문화적이었지만, 동시에 인간이라는 동물이었을 뿐이다.

사실 여기 나온 사회와 문화 설명은 북아메리카 몇몇 원주민을 중심으로 써놓은 이야기다. 아메리카는 대륙이고 당연히 다양한 민족과 문화를 포함하고 있다. 예컨대 유럽인들의 관점에서는 아즈텍인들이 메소아메리카 지역 원주민의 대표처럼 보이지만, 다른 원주민들 입장에서 보면 이들은 외부에서 와서 톨텍 등의 발달한 도시문명을 이룬 민족들을 지배한 폭력적인 이민족이라고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비유하자면 동아시아에서잘 나가던 때의 몽골족과 비슷한 위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외부인들로서는 '야만적인' 아즈텍에게 지배당한 '문화적 민족'들의 자부심과 분노를 이해하기는 어렵지만, 다음의 사항들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인신공양은 종교적 제의의 일부로 아메리카 지역에서 오랫동안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기는 했지만 아즈텍처럼 대규모로 이루어진 경우는 없었다. 또한 아즈텍의 문자는 한자와 같은 표의문자이면서도 훨씬 그림에 가깝고 어휘의 숫자가 적어서 몇 가지 정형화된 의미만을 나타낼 수 있었던 반면, 그보다 이전 시대의 마야문명에서는 이미 완성된 형태의 표음문자를 사용하고 있었다.

8. 북미 원주민의 현재

미국에서 아메리카 원주민은 1928년 시민권을 얻었고 캐나다에선 1956년에 시민권을 받고 4년 뒤인 1960년에서야 투표권이 주어졌다. 21세기 초 아메리카 원주민은 미국에 약 300만 명 거주하고 있고 혼혈을 포함하면 500만 명 정도 거주하고 있어 인구의 1% 정도를 차지하고 있으며 이 중 100만 명 이상이 원주민 보호구역에 거주한다. 원주민 보호구역 내의 사회 문제는 상당히 심각한 편인데, 가령 사우스다코타 주의 파인 리지 원주민 보호구역의 경우 인구의 절반이 빈곤층이며 80%가 실업자고 1인당 소득도 6,000$ 정도에 불과하며, 평균수명도 50세 수준에 불과하다고 한다. 범죄 문제도 존재하는데 가령 알래스카의 원주민 여성 성폭행 피해율은 미국 평균의 12배에 달한다고 한다. 인종학살을 당한 민족의 슬픈 면모를 모두 보여주고 있다.

이런 원주민 보호구역들은 자치구역으로 인정받는다. 그래서 연방정부에게 세금을 납부하지 않으며, 어느 정도 연방법에서 자유롭고, 자기들만의 법을 유치할 수 있다. 의료 부문도 일반적인 미국 시민들과는 달리 연방정부 소속 준군사조직연방공공보건서비스부대의 공공의료 서비스를 받고 있다. 그래서 보호구역에서 카지노가 많이 보인다. 면세와 카지노 등으로 모은 부로 그들의 학교 및 장학금, 복지기금 같은 것을 조성해서 잘 살고 있는 사람도 있지만, 대다수 사람들은 삼류 직종에 종사하며 하루하루 근근히 먹고 사는 신세다. 다만 개개인이 연방 정부에 대해 투표를 할 자격은 없고, 만약 하려면 그쪽 권리를 포기해야 한다.

카지노로 돈을 많이 벌어도 실제로 원주민 본인들에게 돌아가는 순수익은 그다지 많지 않다고 한다. 변호사 단체 같은 곳에 수익의 일정 부분을 바쳐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원주민 부족들은 보호구역 안에 카지노를 들이는데 열심이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도저히 먹고 살 길이 없기 때문에...한 예로 카지노를 유치하기 전에 원주민 보호구역의 실업률은 50%에 달했고, 성인 남자들 대부분은 술과 마약에 쩔었고 가족들에게 수시로 폭력을 휘두를만큼 원주민들의 삶은 어려웠다. 그러나 카지노를 유치하고 나자, 원주민 보호구역의 실업률은 4%로 떨어졌다고 한다. 이러니 원주민들은 너나할 것 없이 기를 쓰고 카지노를 유치하려 혈안이 되어있다. 심슨 가족에서도 이러한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카지노를 묘사한 편이 있다.

아메리카의 여러 원주민들은 특유의 자연철학적 사상을 깊이 있게 발달시켰는데, 이 때문에 아메리칸 원주민 사상-철학 관련 저서들이 많이 유명하며, '시튼 동물기'로 유명한 어니스트 톰슨 시튼 역시 원주민 사상에 관련된 저서를 남겼고 자신 역시 원주민들과 많은 교류를 하였다. 그는 아예 원주민들 이름을 짓고 지냈으며 그들에 대한 보호책과 헐리웃 영화에 대한 왜곡을 성토했다. 1939년작인 존 웨인 주연 영화 역마차를 본 시튼은 자서전에서 "백인들이 (지나가는 백인들을 가차없이 마구 죽인다며...) 구역질나는 왜곡으로 학살을 정당화하는 것이 계속 생길텐데 우려스럽다"고 했을 정도이다.

캘리포니아 경제가 침체기를 맞이했을 때, 전직 주지사 아널드 슈워제네거가 세금 좀 내 주면 안 되냐는 말을 했으나 당연히 콧방귀를 꼈다. 지난 2세기간 당했던 수모에 대한 약간의 보상으로 받은 게 자치구인데 줄 리가 만무하다.[4]그게 아니라도 세금은 원래 내기 싫다

캐나다에서는 이들은 First Nations 또는 Aboriginal Peoples라고 부르며, 100만여 명이 거주하고 있으며 춥고 인구가 희박한 북부 지방에서는 인구의 다수를 점하고 있다. 이들도 높은 실업률과 알코올 중독, 높은 자살률 등의 사회 문제를 겪고 있다. 캐나다도 미국처럼 이들 다수가 북부에 거주하는 만큼 아예 대 놓고 대량학살 하는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그 대신 원주민들을 "근대화" 하는 작업에 들어왔는데 어린 아이들을 부모들에게서 강제로 데려와 교회가 관리하던 원주민 기숙학교에서 키웠다. 그로 인해 많은 부족들의 언어가 오지에서나 쓰이는 수준으로 전락해버렸고(이는 호주도 비슷하다.) 부모 밑에서 사랑을 받고 자라지 못하고 교회에서 "사육"되던 아이들은 가족애라는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게 되어 현재까지도 이어지는 수많은 원주민들의 불우한 가정사를 낳게 되었다. 더욱이 성직자들에 의한 성폭행이 아주 흔하게 이루워졌고 그로인해 현재 절대 다수의 캐나다 원주민들은 백인들을 혐오하고 특히 기독교를 믿는 백인이라면 치를 떤다. 그런 이유로 백인 교회가 주도하는 원주민 선교는 불가능하다. 원주민 자치구에서 백인들이 방문하는걸 허락할리 없을뿐더러 방문에 성공한다 쳐도 인사 대신 죽빵 정도가 아닌 다굴 맞을 각오를 해야한다. 여하튼 1970년대 이후에는 북부지역에서 자치권을 보장하는 법안이 성립되었고, 이누이트 지역의 원주민들은 자체적으로 문자를 쓰고 있을정도이기는 하나, 현재도 그 당시 시행되었던 정책들의 후유증과 잔재는 남아있다.

멕시코는 일단 인구 대다수가 원주민 조상을 두었다는 현실적인 이유와 함께 스페인에서 독립하기 위해 아즈텍이나 마야에서 정통성을 찾았던 연유때문에 원주민들에 대한 공적인 대우는 미국이나 캐나다보다는 나은 편이었고, 19세기 중후반에 원주민 대통령이 나올정도였다. 그러나 19세기 멕시코 혁명 과정에서 승리한 지배계층들은 사실 백인 우월주의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었던건 마찬가지였고, 멕시코의 토지개혁은 곧바로 이루워져지지 못하면서 원주민들의 삶은 여전히 하층민 신세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교육면에서 식민 지배국의 언어인 스페인어가 교육언어로 쓰이고 원주민 언어는 소외되었다. 1920년대 제도혁명당이 집권하기 시작하면서 원주민 언어도 학교에서 가르치게 되었고, 원주민에 대한 교육적인 지원또한 이루워졌지만 인력과 예산부족으로 빈번히 실패하기 일쑤였으며 경제적인 불평등은 시정되기는 커녕 악화되기 일쑤라서 현재도 다수의 원주민들은 멕시코에서 하층민의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9. 북미 원주민 복권과 대중문화

미국의 원주민 학살은 백여년이 넘도록 철저히 외면당했다. 미국 정부는 2010년 5월 20일 통과된 아메리칸 원주민에 대한 폭력행위(전쟁 포함)와 잘못된 정책에 대해 처음으로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였고, 원주민 자치구가 빈곤과 질병, 법의 보호로 부터 방치된 부분들에 대해서 바로 잡겠다고 약속했다. 원주민 자치주는 미국 법 효력이 발생하지 않아, 마약, 폭력 문제가 많이 발생했는데 오래동안 방치되다 보니 많은 문제점이 도출되었다. 새로운 결의안에 따라 원주민 부족들이 자체적으로 범죄와 싸울 수 있는 권한이 확대되었다고 한다. 또한 교과서 개정작업 등을 통해 자신들의 과거를 올바르게 반영하기 위한 움직임에 나섰다.

헐리우드도 오랫동안 그들을 죄없는 백인을 죽여 머리가죽을 벗기는 것으로 왜곡시켜 왔으며, 처음으로 진실을 그려냈던 영화 '솔저 블루'에 대하여 외면하였던 바 있다. 이 영화는 1970년 영화로, 백인들이 원주민들을 학살하고 팔다리를 잘라내고 머리가죽을 벗기며 좋아하는 끔찍한 영화. 당시 미국에선 무수히 삭제되었고 일부 에서는 상영이 금지되었으며 왜곡이라고 버럭거렸으나 감독인 랄프 넬슨은 "이게 바로 미국의 진실이다!" 하면서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1960년대 이후 할리우드에서 서부개척시대서부극에 대한 자기 반성의 일환으로 수정주의 서부극이란 개념이 나타났고, 이로 인해 한동안 할리우드 영화에 등장하는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매우 평화롭고 이상적인 부족 사회로 묘사된 바 있다. 그 정점이 바로 케빈 코스트너늑대와 춤을. 1990년대 이후엔 수정주의 서부극이 원주민들을 지나치게 비현실적으로 묘사했다는 비판을 받게 되고 이후의 영화에선 더 현실적인 모습으로 등장하고 있다.

애니메이션의 경우도 비록 직접 대놓고 인디언 문제를 다루지는 못했으나 우주라는 조건으로 비유해서 우주보안관 장고로 인디언과 서부개척자 간의 갈등을 다루기도 했다. 외계에서 온 종족을 백인, 뉴 텍사스 토착민들을 아메리카 원주민에 비유했다.

퍼즈와 동족 프레리인들은 지구인에 맞서고자 모여 전쟁을 벌일 준비를 한다. 이를 막으려던 장고 앞에서 퍼즈가 하던 대사가 이렇다.

"보안관님! 우리도 지구 역사를 듣고 좀 아는데, 지구 어느 나라는 인디언이라는 신대륙 사람들을 마구 괴롭히면서 기어코 그 땅을 빼앗은 적 있었다죠 ? 지금 우리들이 그 인디언처럼 될 듯 싶은데 우린 그렇게 순순히 우리별을 빼앗기지 않을 겁니다." 개그 캐릭터인 퍼즈도 이 때만은 전혀 안 웃기게 나왔었다...

대부분의 원주민들은 그나마 다시 살아가는 중인 정도지만, 스 스투디 등 그나마 능력이 있는 사람들은 카지노예계쪽으로 진출한다. 드물게는 의사나 교사, 공무원도 있다는 듯.

10. 북미 원주민- 창작물에서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과거 서부극에서는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악당 캐릭터. 툭하면 말타고 달려와 특유의 아바바바 소리를 내며 라이플을 들고 백인들의 열차나 짐마차를 습격하는 떼강도 이미지였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과연 '아메리카 개척'이 옳은 일이었는가에 대한 논의가 여러번 나오면서 이런 종류의 '서부극에서 등장하는 악당' 인디언 캐릭터는 보기 힘들게 되었다.

주인공이거나 아군일 경우에도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전사형, 하나는 주술사형. 전사형 캐릭터의 경우 보통 북미 원주민일 때가 많으며, 무슨무슨 부족의 용사라는 설정으로 용맹무쌍한 전사 캐릭터. 무기를 쓴다면 도끼(토마호크)일 때가 많다.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주술사형 인디언 캐릭터가 좀 더 비중이 높은 편. 주술사 캐릭터일 경우에는 뭔가 신비한 부족 전통 주술을 사용하며, 매우 이지적이고 통찰력 있는 말을 하는 자연친화적인 캐릭터로 등장한다. 특히 자연을 파괴하는 악당들에 대해서는 자비심이 없는데, 이건 전사형 주술사형 양쪽 모두 해당. 배경이 현대인 경우 격투가 (특히 레슬러)로 등장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그리고 미개하다는 편견이 적용되는 탓에 적을 처치할때 잔인한 수를 쓴다는 클리셰도 있다. 예를 들어 가죽을 벗기려 한다거나 심장을 씹으려 한다거나 하는 식으로... 직접 하지 않더라도 상대를 위협할 때 이런 문구를 쓰는 경우가 자주 있다. 그리고 토마호크 때문인지 대부분 도끼를 무기로 드는 경우가 많다.

전반적으로 남자 캐릭터는 거한에 마초스러운 이미지가 강한 편이고 여성 캐릭터인 경우 신비로운 면이 강조된다. 물론 Prey처럼 스테레오타입에서 벗어나 제법 현실적인 묘사가 나오기도 한다. 주인공은 술집을 운영하면서 답답한 현실에 지긋지긋해하는 평범한 원주민 청년으로 나온다. 뭐 내용이 내용이다 보니 도입부를 지나면 위에 열거한 스테레오타입들이 튀어나오긴 하지만 그래도 상당히 잘 된 편이다. 주인공 성우가 아메리카 원주민이여서 제작진이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11. 아메리카 원주민 부족 목록

11.2. 북미

  • 나바호
  • 랙풋
  • 모히칸
  • 이티 - 캐나다 여러 부족의 원주민들과 유럽계 백인들의 혼혈[5][6]
  • 샤이엔
  • 쇼니
  • 수우
    • 라코타(혹은 다코타) - 수우 항목 참조.
  • 아파치
  • 오타와 - 캐나다 수도의 어원이 됨.
  • 이로쿼이 연맹
  • 체로키
  • 크리
  • 리마스
  • 푸에블로

  • 메노나이트, 아미쉬 - 17세기경 미국으로 넘어온 스위스계 이민자라 원칙대로라면 해당사항이 없다. 그러나, 미국 정부에 의해 원주민 문화가 훼손되고, 대부분의 원주민 보호구역들이 세속화된 현대 미국에서는 원주민 보러간다는 기분으로 17세기 생활방식을 고수하는 메노나이트, 아미쉬 공동체를 찾아가는 관광상품이 상당히 발달되어 있다. 오히려 이들 때문에 미국 원주민은 백인이라는 오해가 퍼져 관광업체를 상대로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소송을 걸었을 정도. 분위기 상으로는 학동 마을과 비스무리하나, 정작 알맹이는 귀화한국인들로 구성된 격.

11.3. 중미

11.4. 남미

12. 아메리카 원주민 출신 실존 인물

13. 아메리카 원주민 캐릭터


왼쪽부터 콘도르 헤즈, 릭 스트라우드, 화이트 버펄로, 울프 호크필드, 미셸 창, 줄리아 창, T. 호크, 나이트울프, 블랙 호크(잊혀진 게임 사무라이 스피리츠 섬에 나왔던 신 캐릭터) , 치프 썬더다. 모두 대전액션게임의 인디언 캐릭터이다. 사실 엄밀하게 따지면 줄리아 창은 입양된 사람이므로 인종 자체가 불명이다.

13.1. 아메리카 원주민을 모티브로 한 부족/인종

기준은 주관적일 수 있습니다.

14. 관련 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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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천막에서 생활을 하며 수렵생활을 하던 부족부터 목책을 쌓고 그 안에 커다란 마을을 지어 농사를 짓던 부족까지 아주 다양하다.
  • [2] 대륙 중부권의 원주민들에 해당
  • [3] 처음엔 우연히 병을 옮기던 백인들이지만 원주민들의 약한 면역력을 알게되자 나중엔 고의적으로 병을 퍼뜨려 원주민 인구를 줄이는데 노력하는 악랄한 모습도 보여준다. 질병 외에도 알코올에 면역력이 없는 원주민들에게 "선물"이랍시고 도수 높은 술을 마구 뿌려댔고 그 결과 술에 대한 위험성을 모르던 많은 수의 원주민들이 알코올 과다섭취등으로 생긴 병으로 죽어나갔다.
  • [4] 원주민이 자치구역에서 벗어나 살면 모든 특혜를 박탈하는게 미국정부다. 한마디로 세상에 나오지 말고 니들끼리 구석에서 찌그러져 있는 대신 세금은 안내도 된다는 뜻인데 당연히 터미네이터 할배가 한 소리는 원주민들 입장에선 개소리다.
  • [5] 주로 프랑스계 백인들
  • [6] 한국에선 메티라고 불리는데 Métis는 발음상 메이티가 더 정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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