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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신조

last modified: 2015-12-04 22:52:39 by Contribu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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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일본 총리
87대, 88대, 89대 90대 91대
고이즈미 준이치로 아베 신조 후쿠다 야스오

역대 일본 총리
95대 96, 97대 (현직)
노다 요시히코 아베 신조 (현직)

安倍晋三(あべ しんぞう) / Shinzō Abe
안배진삼 안배진상 阿部晋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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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2월 26일 제 96대 총리 취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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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G image (69.62 KB)]

블룸버그 비즈니스위크 국제판 셋째 주 커버 페이지. 기사에서는 아베노믹스가 과연 가능한 것인지에 의문을 던진다.히이익

"총리 재임 시절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지 못한 것이 통한으로 남는다"

-아베 신조[1]


일본의 정치인. 제 90대, 96, 97대 총리.

1954년 9월 21일 도쿄 출생. 본적지는 야마구치 현이다.[2]

일본의 극우들과 넷우익들에게는 자극적인 정치적 쇼맨쉽 덕분에 우상이자 인기스타이지만 중국에선 천하의 개쌍놈이며 한국에서는 일본판 아돌프 히틀러이다. 요약하자면 21세기에 등장한 시대착오적 막장 총리 사실은 외조부의 피를 이어받아서 이런다고 하더라

Contents

1. 집안
2. 정계 입문
3. 1차 아베 내각
4. 사퇴 뒤 재기
5. 2차 아베 내각
5.1. 집권
5.2. 참의원 통상선거
5.3. 2013년 하반기
5.4. 2014년 상반기
5.5. 2014년 하반기
5.6. 2014년 12월 총선거 이후
5.7. 2015년 상반기
6. 대외/외교적 정책
6.1. 아베 독트린
6.1.1. 긍정론
6.1.2. 부정론
6.2. 대북 정책
7. 아직 성패를 지켜볼 경제 정책
8. 기타
8.1. "가정 내 야당" - 아키에 여사
9. 관련 웹 사이트


1. 집안

그를 말하려면 우선 그의 집안부터 다루어볼 필요가 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한국인들이 무작정 집안가지고 인신공격하는 것같이 보일수도 있는데, 만약 단순히 '집안이 전범'이란 이유만으로 비난한다면 인신공격이 맞겠지만 전범 집안「덕분에」, 즉 그 전범집안의 후광을 받으며 정치적 자리를 세습받았다면 더 이상 인신공격이 아닌 것이다. [3]

그의 출세에는 그의 집안 내력이 크게 작용했다. 일본의 경우 한국과는 달리 정치적 입지와 정치 진출에 있어 집안과 가문이 중요한데,[4] 아베 신조도 자기 집안의 후광을 받으며 정치인이 된 경우. [5] 이 때문에 그를 알려면 그의 집안을 알아야한다는 것이다.

1954년 아베 신타로의 아들로 태어났는데 그의 집안은 초 화려한 정계 집안으로 유명했다. 도련님이 자라나기 매우 좋은 환경 그의 외조부는 A급 전범이자 자민당 체제를 확립한 기시 노부스케 총리이고 기시의 친동생이자 비핵 3원칙으로 유명한 사토 에이사쿠는 아베 신조에게는 외종조부(외작은 할아버지)다. 아버지 아베 신타로는 외무장관을 지냈을 만큼 집안이 후덜덜한 배경을 지녔다.

위의 내용에 관련한 내용을 더 첨부하자면 2014년 3월 15일 방영된 그것이 알고 싶다에선 안중근의사와 관련한 일본의 불법 재판 사건과 관련해[6] 현 아베 정부의 특성과 방향, 아베의 출신 가문, 사상적 배경을 추적했다. 이 방송에서 방영된 바에 따르면 아베의 외고조부는 일본 정한론을 주장한 요시다 쇼인의 밑에서 사상적 영향을 받은 오시다 요시마사로 이 자는 청일전쟁 이전 경복궁을 기습하여 점거한 전적이 있는 일본 육군 대장 출신이며, 외조부는 위에서도 언급한 대로 기시 노부스케로 A급 전범이자 일본 우경화에 앞장선 인물이다. 이들은 조슈번의 일본 전범, 극우 중에서도 거물로 꼽히는 인물들이다.[7]

그리고 자신도 요시다 쇼인을 가장 존경한다고 말하고 [8] 안중근 의사를 테러리스트라 말한 관방장관의 언행을 두둔하는 등 심각한 행각을 벌이는 인물이다. 참조 만일 이러한 모든 행동이 일본의 극우파를 밀집시켜 표를 얻으려는 이중적 계산에서 온 행동이라 가정해도 이미 그의 행동은 외교적 관례를 볼 때 위험 수위를 넘은 것이 사실이다.

솔직히 까놓고 말하면 전범 가문 출신 정치 세습자.

세이케이 초등학교, 세이케이 중학교, 세이케이 고등학교를 거쳐서 세이케이 대학 정치학과를 졸업했다. 1977년에 미국에 건너가 서던캘리포니아 대학교 정치학과를 다녔지만 1979년에 중퇴했다.[9]

대학교에서 양궁을 배웠으며 후지TV의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서 양궁 실력을 실제로 선보이기도 했다.

2. 정계 입문

미국 유학 뒤 고베 제강이란 회사에서 일하다가 1982년 아버지 아베 신타로의 비서로 정계에 입문했다. 1987년 후쿠다 다케오 전 총리[10]의 주선으로 모리나가 제과 회장의 딸인 아키에(당시 광고사를 다니던 중)와 결혼한다.

아버지 아베 신타로는 유력한 총리 후보였으나 암 선고를 받고 1991년 사망했다. 아베 신조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서 1993년 아버지의 지역구인 야마구치현 제1 선거구에 출마해 당선하며 국회에 입성했다.

모리 요시로 총리 시절에 고이즈미 준이치로의 추천으로 관방장관에 임명되었고 고이즈미가 총리로 취임한 뒤에도 유임했다. 참고로 관방장관은 총리 비서실장 겸 내각 대변인으로 총리 집무실 바로 옆방에 사무실이 있으며, 총리를 보좌해서 내각의 조정업무를 담당한다. 대변인으로 언론에도 매일 나오기 때문에 유권자들에게 자신의 얼굴을 알릴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보통 정치세력의 차세대 에이스들이 관방장관으로 경험을 쌓은 뒤에 총리가 되는 경우가 많다.

자민당에서 북한에 대한 강경파로 주목을 받았고 북한에게 무력 사용과 경제제재도 불사해야 한다고 주장해 인기 정치인으로 부상했다. 그 인기 덕인지 2003년 자민당의 사장을 맡았다. 3선 밖에(!) 안 되는 젊은 정치인인 그에게 간사장직을 맡김은 2003년 11월 중의원 선거의 승리를 위해서였는데, 실제로 11월 총선에서 자민당은 과반 이상을 확보하는데 성공한다.

간사장으로서 아베 신조는 당내 개혁 조치를 폈지만 2004년 참의원 선거에서 목표치 51석에 못 미치는 49석을 확보하자 책임을 지고 사퇴한다. 그러나 후임 간사장의 요청으로 간사장의 밑인 간사장 대리를 맡는다. 어쨌든 간사장 대리로서 아베 신조는 우정개혁으로 촉발된 2005년 중의원 선거에서 반고이즈미파 낙선을 위한 소위 "고이즈미의 자객"으로 불린 미녀 후보들을 공천하는데 역할을 했고 큰 성공을 거뒀다.

3. 1차 아베 내각

제90대 총리 시절 공식 사진

이런 활약으로 고이즈미 총리의 후임으로 거론되기 시작해 2006년 자민당 총재선거에 출마해 경쟁후보인 덕후 아소 다로와 다니가키 재무상을 물리치고 자민당 21대 총재에 당선했다. 다수당 대표가 총리를 맡는 일본의 관례에 따라 제 90대 일본 총리에 올랐다. 전후세대 첫 총리, (전후) 최연소 총리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총리를 한 뒤 고이즈미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로 경색한 한일, 한중 관계 회복을 위해 2006년 10월 8일 중국후진타오 국가 주석과, 10월 9일에는 대한민국 노무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그러나 아베 총리의 재임은 내각의 각종 스캔들로 얼룩졌다. 사다 겐이치로 행정개혁상이 사무실 재정운영 문제가 불거져 사임했고 마쓰오카 도시카쓰 농림수산상이 각종 비리 의혹으로 자살했으며 규마 후미오 방위상은 히로시마 나가사키 원폭 투하는 어쩔 수 없었던 일[11]이라는 일본인에게 매우 민감한 발언으로 결국 주의 처분을 받고 사임했다. 후임 방위상은 고이즈미 총리가 2006년 자객후보로 공천한 고이케 유리코가 선임되었다.

이런 악재 가운데 열린 참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은 1989년 참의원 선거[12] 이후 사상 최악의 성과를 거두며 연립여당인 공명당과 더해도 과반의석을 못 얻은 역사적 참패를 겪었다.[13] 아베 총리는 내각을 계속 유지할 것임을 시사했지만 새로운 아베 내각에 국민들은 실망감을 드러냈다.

이렇게 되자 아베 총리는 2007년 9월 10일부터 열리는 국회에서 테러 특별조치법을 연장시키지 못하면 내각이 총사퇴하겠다고 배수진을 쳤다. 그러나 불과 며칠 뒤인 9월 12일 총리 사퇴를 선언해 무책임하다는 비판만 받았다. 사임의 이유로는 아베 총리가 일본 민주당 오자와 이치로 대표와 협상을 가지고 테러 특별조치법 연장을 위해 노력했으나 오자와 대표가 이를 거부해 사퇴를 결심했다고. 물론 건강이 안 좋아진 것도 원인이지만 자민당 안에서 아베 총리로는 더 이상 안 된다는 계파간 밀실 합의로 밀려났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퇴임 뒤 수상 관저에서 나와 바로 병원으로 향했는데 이를 두고 영국 BBC수상 관저에서 체크아웃해서 병원에서 체크인했다 라고 비아냥댔다(...)

그러나 추후 밝혀진 사실에 따르면 정말로 건강이 안 좋았다고 한다. 젠장 아깝다 그가 걸린 궤양성 대장염은 심하면 음식 먹은 지 5분 뒤에 대변으로 나올 만큼 심각한 병으로 그를 압박했으며 그의 부인 아키에 여사는 총리 직보다 목숨이 더 중요하다며 울면서 그를 설득했다고 한다.

이 당시 그의 이미지는 말 그대로 골골거리는 "도련님(봇짱)"이었다.

4. 사퇴 뒤 재기

한동안 몸을 챙기다가 2008년부터 정치 활동을 재개했다. 자민당 몰락의 신호탄을 쏘아올린 인물임에도 반성은 전혀 없이 자민당이 캐몰락한 2009년 중의원 선거에서도 당당히 자기 지역구에 출마해 당연히 당선했다.(...) 이후 고이즈미의 우정개혁에 반발해 탈당했던 히라누마 다케오를 자민당으로 복당시키고 총재선거에 출마하려 했지만 히라누마가 거부해, 자신의 측근인 니시무라 야스토시를 밀었지만 실패했다. 아마도 니시무라를 당선시켜서 막후에서 자민당을 이끌어보려고 했던 듯하지만 자민당 안에서는 니시무라의 총재선거 출마 선언에 웬 듣보잡이라는 반응이었다니... 망했어요

보수 정치인답게 민주당 각료들은 단 1명도 참배하지 않은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강행했고, 중국의 차세대 지도자로 불리는 시진핑이 일본을 방문할 때 덴노를 예방하자 이를 격렬하게 반대하는가 하면 중국을 나치즘에 비유하는 등 안티 중국 활동을 벌인다.

2012년 이명박 대통령 일왕 사과 발언상식을 벗어난 행동이자 예의를 잊은 행동이라고 맹비난했다. 물론 이 발언은 이명박 대통령이 나중에 '사죄 발언은 오해였다', '총리가 여러 번 사과하는 것보다 일본에서 가장 존경받는 일왕이 말하면 쉽게 해결될 수 있다는 의미였다'라며 정정했고 그렇게 적절한 발언이 (최소한 외교적으로는) 아니긴 했다.

한편 자민당은 다니가키 대표의 후임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데 일각에서는 아베 전 총리를 투표없이 대표로 추대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하시모토 도루 오사카 시장은 자신의 보수신당에 아베의 참여를 요청하고 있어서 느닷없이 다시 일본 정계의 태풍의 핵으로 부상했다. 그러나 본인은 자민당에 남는 쪽으로 가닥을 잡을 것으로 보인다. 사실상 11월에 열릴 듯한 중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이 단독 과반 확보까지는 못 가더라도 제 1당일 가능성이 유력한지라 차기 당대표로 거론받는 아베 입장에선 다시 총리를 할 절호의 기회이고 자신이 다루기 어려운 하시모토와의 연대보단 이쪽이 훨씬 낫기도 할 테니...

5. 2차 아베 내각

2012년 12월 26일 96대 수상 취임으로, 전후 요시다 시게루 이후 처음으로 총리직을 공백기(5년 3개월)를 두고 2번 재임하는 총리를 했다. 공백기가 길기로는 역대 4위로 1923년 9년 5개월만에 정권을 찾은 야마모토 곤노효에 이후로 89년 만에 최초다.(참고로 일본 총리직의 역사가 고작 130년이다) 이보다 조금 짧은 게 이토 히로부미의 1차, 2차 내각의 격차가 4년 3개월, 마쓰카타 마사요시의 4년 1개월. 야마모토 이후로 아베 이전 공백기가 가장 길었던 카쓰키 레이지로가 4년. 참고로 역대 최장 공백은 15년 5개월의 오쿠마 시게노부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아베처럼 잊혀졌다가 완벽하게 부활한 인물은 전후에 전무후무하다. 공백 뒤 2차 내각이란 기준으로 이번 중의원 임기 중 사임하지 않는다면 이토 히로부미(4년), 가쓰라 다로(3년)을 빼면 가장 긴 임기에 머물 수도 있다. 물론 공백이 아닌 단순한 2차 내각의 임기는 전후에도 긴 총리가 많다.

5.1. 집권

2012년 9월 26일 자민당 총재로 당선하고 11월 16일에 중의원이 해산해 2012년 12월 16일 치른 제46회 일본 중의원 총선거에서 자민당-공명당이 320석[14]이 넘는 의석을 확보하며 압도적인 승리로 96대 총리 및 아베 신조 내각이 탄생했다. 총리 정식 취임일은 2012년 12월 26일로 결정했다.

선거철인 2012년 11월, 일본에서 무제한 양적완화를 하겠다는 공약을 내놓았다. 기사. 그리고 일본은행 총재 시라카와 마사아키를 굴복시키고 무려 10조엔에 달하는 1차적 양적완화를 폈다. 뉴스. 2013년 3월 31일까지 임기인 시라카와 총재를 곧이어 물러나게 하고 아베 신조의 측근을 심어서 양적완화를 하겠다는 뜻을 더더욱 밀어붙일 듯하다.

96대 총리로 당선하자마자 '센카쿠 열도는 일본 땅'이라고 발표했다. 기사. 그리고 야스쿠니 신사수상 임기 동안 반드시 참배하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하였다. 기사.

대체적인 분석이, 아베 내각의 출현은 한국 입장에선 달갑지 않다. 과거사 문제나 독도 문제야 차치하고라도 무제한 양적완화를 내세운 탓에 한국과 일본이 환율 전쟁을 할 가능성이 커졌다는 우려가 있다. 한편으로는 아베 내각이 한중과의 관계 개선을 안하면 일본 경제에 악영향이리라는 우려도 나온다. 하지만 동아시아 외교에서 매우 강경한 공약을 내건 아베인지라 한중과의 관계 개선이 썩 쉽지는 않으니 문제. 그래서 일각에서는 아베가 과연 일본을 부흥시킬지 의문도 제기한다.

대한민국에서 외조부 때부터 긴밀한 연을 맺던 박근혜 정부가 탄생했기 때문에 양자 사이의 친밀성으로 한일관계가 호전하라는 전망도 있다. 박근혜 당선인의 당선이 확정되자 아베는 박 당선인과 조속한 시일에 만나겠다는 의사도 보였다. 기사. 대놓고 "다케시마의 날 지정을 자기(아베) 임기 중에는 유보하겠다" 는 것으로 봐서 관계 개선의 의지가 정말 강한 듯 했다. 부인 아베 아키에의 한류 드라마 시청 재개 역시 관계 개선의 의지가 확고하다는 걸 보여주는 듯. 중국을 자극할 우려가 큰 센카쿠 열도 공무원 상주 공약 역시 유보했다. 그야말로 집권하자마자 외교정책 관련 공약을 하나도 지킬 생각이 없음을 천명하는 긍정적 패기를 보였다. 처음에는 말이다(...)

12월 21일에 아베는 박 당선자에게 직접 친서를 보내고 누카가 후쿠시로 전 재무상을 특사로 파견하겠다는 발표를 했지만 박 당선자측에서 주말이고 해서 일정이 안 맞으니[15] 아베가 총리에 정식 취임하는 12월 26일 이후에 일정을 조율하자는 입장을 밝혔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아베가 일방적으로 한일 관계 개선에 나서서 박 당선자 측이 부담을 느꼈냐는 분석이 나왔으나 박 당선자 측은 일정이 안 맞았을 뿐 정치적인 이유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12월 26일 이후에 아베의 특사가 박 당선자를 방문할 것으로 보인다. 2013년 1월 4일에 방문하였다.

12월 25일 내각 주요 인사를 내정, 한국에 각종 망언을 한 바 있는 아소 다로 전 총리가 재무부총리에 내정되는 등 극우 인사들을 대거 기용해 앞으로의 한-일 관계가 미궁 속에 휩싸였다. 하지만 12월 27일 무라야마 도미이치 전 총리가 밝혔던 무라야마 담화를 이어갈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기사. 이로써 선거할 때 내놨던 외교 공약은 전부 폐기처분 확정. 다만 고노 담화 수정 검토라든가 집단적 자위권 행사는 추진하겠다고 밝혀 이것이 앞으로 한일 관계에 암초일 가능성은 있다.

그 밖에 탈원전 노선을 재검토하겠다고 밝혀 사실상 원전 재가동을 밀어붙일 개연성이 높아졌다.

일본 국민들은 닥치고 경제나 살려 라는 여론이 큰 편이다. 평화헌법 개정에는 약 50% 정도가 반대의사를 나타냈고 집단적 자위권 행사도 30% 정도가 반대의사를 나타냈다. 이것이 딱히 우경화 바람에 반대하는 것이라기보다는 경제가 어려운데 쓰잘데기 없는 데에만 신경 쓴다는 쪽에 더 가깝지만. 어쨌든 아베 내각은 이런 국민적 여론을 의식한 듯 우경화 정책을 보류하거나 애매모호한 태도를 보여갔다. 연립여당인 공명당도 신경써야 하기 때문.

물론 아베 내각의 행보가 우경화를 절대 포기하지는 않으리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런 분석에 힘을 싣는 상황이 나왔는데 12월 31일 산케이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아베 총리는 적절한 시점에 역사 문제에 입장표명을 하리라고 밝혔다. 구체적으로 무슨 내용을 언제 발표할지는 언급하지 않았으나 대체적인 분석으로는 무라야마 담화는 그대로 두고서 새로이 아베 담화를 발표해 침략전쟁이 피해를 준 것은 반성하겠지만 의도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임을 드러내리라는 이야기가 있다. 발표 시점은 당장은 되지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일본 여론도 좋지도 않고 한국의 박근혜 정권, 중국의 시진핑 정권 등 새로 출발하는 정권들과 구태여 초장부터 각을 세우는 무리수를 두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에 담화의 발표 시점은 일본 패망 70주년이 되는 2015년일 공산이 커보인다고. 2015년은 무라야마 담화른 발표한 지 20주년인 해이고 한일 기본조약(한일협상) 체결 50주년이기도 하다.[16] 장기집권 기반을 구축해놓은 뒤에 퇴행적인 역사인식을 드러내겠다는 복안으로 보여 우려를 낳는다. 그 전에는 물러났으면 좋겠다!

제2차 아베 내각이 처음 성립되었을 때 아베 총리가 다시 일본 경제의 부흥기를 가져오겠다고 하자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이 "아베 총리가 심도있는 경제 정책을 펴리라고 기대하기는 힘들고 사실은 경제에 관심이 적은 사람"이라고 비판하여 잠시 논란이었다. 그러나 2014년 2월 현재 크루그먼의 예측은 점점 현실로 바뀌어간다.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5.2. 참의원 통상선거

2013년 7월의 제23회 일본 참의원 통상선거를 앞두고 참의원 선거에서 이겨보기 위해 일본 엔화를 더더욱 떨어뜨리는 엔저 정책을 밀어붙였다. 이른바 아베노믹스. 각종 양적완화 및 경기부양책을 시행하는 것은 물론 외환시장에 직접 개입해서 지속적으로 미국 달러유로화를 사들였다. 이에 따라 엔-달러 환율은 20% 넘게 올랐고(엔화 가치 하락) 일본외환보유고는 급속도로 늘어났다. 심지어 닛케이지수는 30% 뛰어올라 14000 포인트를 찍었다. 이런 일방통행 행보가 일본인들의 지지를 얻은 때문인지 지지율이 고공행진이라 참의원 통상선거에서의 압승이 쉬울 듯하다. 설문조사 결과 42%는 자민당에, 13%는 일본 유신회에, 7%는 민주당에 투표하겠다고 응답.

참의원 선거에서 낙승이 예상됨에 따라 아베 신조 정권에서 우익 성향을 조금씩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2013년 2월, 일본 유신회다함께당 등에 제안하여 헌법 개정안 발의 요건을 중의원, 참의원 2/3 서명에서 과반수 발의로 바꾸자는 개헌안을 내기로 한 것이 대표적이다. 기사.

심지어 안보 법제 간담회의 야나이 슌지 위원장은 집단적 자위권에 한국과 호주도 들어간다라고 말해 파문을 일으켰다. 즉, 한국과 호주에 한 공격도 일본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해서 자위대를 파병하겠다는 것. 한국과 호주를 말했으나 끝내 남북한 간에 전쟁이 일어나면 이를 빌미로 재무장을 가속화하겠다는 속내를 드러내 갈수록 일본의 우경화가 도를 넘을 조짐이다.

게다가 미일관계 복원을 외치면서도 도쿄 전범재판을 승자의 판단으로 단죄한 재판이라고까지 말해 파문을 일으켰다. 한 마디로 저 말은 미국이 이겼으니까 지들 마음대로 처단했지?라는 뜻이라서 일본 안에서도 미일 관계에 파장을 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2013년 3월 15일 TPP 협상에 정식으로 참가하겠다고 발표했다. 노다 요시히코총리가 참가하겠다고 선언했다가 보류한 뒤 다시 참가하겠다고 말한 것이다.

2013년 4월 23일 기사. "침략의 정의는 학계에서도 전세계적으로도 확실치 않다며 국가 간의 관계에서 어느 쪽에서 보는가에 따라 다르다"고 말해 논란이다. 이런 극우적 발언에 일본 안에서도 '외교 관계가 가뜩이나 나쁜데 제정신이냐'며 비판했다. 일본의 동아시아 침략을 침략이 아닌 '진출'로 여기는 극우파의 역사인식을 대놓고 까발린 셈. 극우파 정치인들의 대규모 야스쿠니 신사 참배와 함께 외교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킬 듯하고 이미 한국과 중국은 '이게 무슨 개소리야?'라며 격렬한 반응이다. 아사히신문은 '지지율 70%에 취해서 국제관계를 까먹었냐?'며 우려했다. 중의원 선거 이전에 '''무라야마 담화를 부정할 의사는 없다며 눈치를 보다가 압승이 확실하자 강공으로 나섰다는 분석도 있다.

4월 24일에는 서울대 교수가 일제시대에 인구가 증가했다는 연구를 내놓은 바 있다라면서 식민지 근대화론을 들어 일제 통치의 정당성을 설파하냐는 논란이 있다.[17] 그리고 4월 28일 미군정이 끝난 날을 기념해 주권 회복의 날을 선포하고 대대적인 기념식을 거행하리라고 밝히는 등 우경화 폭주를 이을 기세다. [18]

끝내 미국까지 나서서 비공식적으로 일본의 우경화 폭주에 우려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지고 한중일 3국 재무장관 회담까지 취소된 데다가 일본 내에서 심지어는 보수적 언론인 요미우리 신문까지 신중론을 제기하자 아베도 꼬리를 내리는 모습을 보였다. 4월 26일, "역사 인식문제가 정치외교 문제로 비화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라는 발언을 통해서 한 발 물러서는 모습을 보인 것. 그러나 이런 행보는 일단 한 발 물러서는 척해서 현재의 국면을 타개하려는 제스처일 가능성이 높고 적당히 시기를 봐서 다시 움직일 가능성이 높다. 무엇보다도 일본 안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받으니 아베가 폭주를 이으리라 생각해도 좋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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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식 전차에 오른 모습

4월 27일, 니코니코 동화(여기는 우익 성향이기도 하다)가 주최한 박람회인 '니코니코 초회의 2'[19]를 찾아 "반드시 강한 경제를 되찾겠다. 지금 일본 영해와 영토에 도전이 이어지지만 결코 용납하지 않겠다" 고 강조했다. [20] 이어 자위대와 주일미군 부스에 방문해 군복과 헬멧을 쓰고 육상자위대 최신 전차 10식 전차 위에 오르기까지 했다. 일본 언론에 따르면 전차에 탄 총리는 아베가 전후 최초라고 한다. 당연히 군국주의 부활이라는 한국과 중국의 우려가 더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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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노 헤이카 반자이!

4월 28일, 주권 회복의 날 행사를 강행했다. 심지어 덴노 부처까지 동원해서. 이 때 한 기념사가 가관으로 "일본을 강한 나라로 만들어 전세계 사람들이 의지할 수 있는 나라가 되도록 하자". 게다가 행사 말미에는 패전 이후 공적인 장소에선 금기시하던 "덴노 헤이카 반자이(천황 폐하 만세)!"도 외쳤다. 그러나 우경화에 반대하는 입장으로 알려진 아키히토 일왕 부부는 굳은 표정으로 아무 말 없이 나가서 불쾌감을 표현했다.

침략의 정의가 나라마다 다르다는 발언에 내각 차원에서 표현부족으로 벌어진 오해라고 국회에서 야당이 질의하면 해명할 계획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개헌을 앞두고 분란을 안 일으키려는 행보란 분석이다.

2013년 5월, 미국 의회조사국이 아베의 견해에 침략을 부정하는 수정주의자의 견해라며 우려를 나타냈다. 미국의 국익을 해칠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아베 내각이 침략사실을 부정한 것은 지금까지 한 번도 없다며 사태 수습에 나섰다고 한다.

5월 5일에는 도쿄돔에서 프로야구 시구[21]를 하면서 등 번호를 96번을 달고 시구를 했는데 이는 일본 헌법 96조의 개헌 발의요건을 완화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라는 해석이라 어그로라는 비판을 받았다. 아베 총리가 96대 총리이기 때문에 썼다는 해석도 있어 당시에는 과민 반응이라는 의견이 있었지만 현재의 행적을 보면 개헌 의지 맞다. 어차피 교진의 슈퍼스타 아베도 있는데 뭣하러 96번 같은 생뚱맞은 번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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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1번 훈련기에 오른 모습

여기에 더해서 2013년 5월 12일, 아베 총리가 미야기 현의 항공자위대 기지를 방문해서 블루 임펄스 곡예비행단을 시찰했다. 이때 그는 훈련기 조종석에 앉아서 환하게 웃으며 사진을 찍었는데 이 비행기의 번호는 731이다. 관련 기사. 이게 얼마나 미친 도발적인 행위인지는 731 부대 항목 참조. 당장 중국은 명백한 도발이라 맹비난했고, 한국에서도 메르켈 독일 총리가 하켄크로이츠 문양 달린 비행기 타는 일과 같은 행위라는 맹비난이 쏟아졌다. 우연히든 의도적이든 도발적 행위임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으며 이후의 폭주 행각들을 살펴보면 의도적인 도발임이 기정사실이 되었다.

2013년 5월 14일, 아베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가 문제가 되고 있으니 새로운 시설을 만들어야 한다면 그것은 잘못이라고 말했다. 쉽게 말해서 야스쿠니 신사에 전범들을 그대로 두겠다는 것이다.

2013년 7월 제23회 일본 참의원 통상선거를 앞두고 자민당은 아베의 높은 지지율를 의식해서인지 아베와 부인 아키에와 친분이 있는 인사들을 대거 공천했는데 이를 두고 정실 공천이라는 논란이 있다. 공천을 받은 인물들의 면면을 보면 가관인데 에이벡스 소속 가수인 이토 요스케, 올림픽 체조 금메달리스트 츠카하라 미츠오, 개훈련 전문가 다나베 히사토 등은 모두 아베의 부인 아키에가 추천한 인물들로 알려졌다. 이토 요스케는 아키에의 아버지가 사장으로 있었던 모리나가 제과에서 일했던 경력이 있고 츠카하라 미츠오는 아키에와 술친구라고 하며 다나베 히사토 또한 강아지를 좋아하는 아키에와 친분이 있었다고 한다. 사실상 공천에 총리 부인이 개입한 모양새라 뒷말이 무성한 듯하다. 심지어 이토 요스케는 자민당 간사장인 이시바 시게루조차 "그게 누구지?"라 했다고(...) 아베 또한 자신의 고향 친구인 기타무라 츠네오를 공천한것으로 알려졌다. 이럼에도 상대당인 민주당은 인지도가 부족한 노조 출신들을 대거 공천했고 그나마도 공천을 포기하고 사퇴하는 인물들이 속출한다라 알려졌다. 개나 소나 공천해도 자민당의 승리가 유력하니, 일본 정치가 얼마나 개판으로 돌아가나 짐작할 만하다.

2013년 5월 19일, 미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야스쿠니 신사와 알링턴 국립묘지가 뭐가 다른가라는 망언을 했다. 너네는 전범을 묻어두거든? 한국과 중국에도 비판의 날을 세웠는데 몇 년 사이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별다른 항의를 않다가 갑자기 이에 반대한다고 주장했다. 미국은 뭐하나 아베 안 잡아가고

이런 가운데 치른 지방선거에서 자민-공명 연합이 6개 선거구에서 3개 선거구 당선에 그쳐서 자민당 내에서 충격적인 결과라는 지적이 있다. 특히 자민당은 사이타마 시장 선거에 아소 다로 부총리와 이시바 시게루 간사장까지 지원유세에 투입하면서 아베노믹스의 성과를 홍보했으나 자-공연합이 내세운 후보가 현직 시장에게 패배했다. 아오모리와 나고야에서도 현직 시장들에게 패배했다. 득표 결과를 보면 공명당 지지층의 80%가 자-공연합에 투표했으나 자민당 지지층의 55%만이 자-공연합에 투표했다라 드러났다는 점에서 공명당이나 자민당이나 크게 우려하는 실정. 물론 이런 결과는 자민당이 고령의 지역 본부장이나 간사장을 공천해 비교적 젊은 현직 시장들에 맞서기에는 신선미가 떨어졌다는 지적이 많지만 이런 결과는 자칫 7월 참의원 선거에도 영향을 미치겠다라는 우려가 나왔다. 다른 한편으로는 아베노믹스의 성과가 지역까지 못 퍼졌다라는 지적도 있다.

이런 가운데 천조국에서 제프리 베이더 전 NSC 선임보좌관은 한 강연회에서 한 기조연설에서 "아베 정권이 무라야마 담화를 수정하려 든다면 미국은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발언했다. 베이더 전 선임보좌관은 아예 하시모토 도루의 위안부 망언에 "제정신이 아닌 짓"이라고까지 했다고. 그러나 평화헌법 개정에는 일본의 판단이니 미국이 간섭할 일은 아니라는 모순적인 발언도 했다. 평화헌법 개정과 우경화는 별개로 보는 셈.

이와중에 치른 도쿄도의회선거에서 자민당과 공명당이 전원 당선 기록을 세우면서 향후 참의원 선거에서 개헌선까지는 몰라도 안정 과반은 확보할 것으로 예상된다.

제23회 일본 참의원 통상선거 첫번째 유세지역으로 후쿠시마를 선택하였다. 이 부분에서 방사능 유출 사고가 터졌을 때 자기 지역구인 이와테를 버리고 도쿄로 도주한 오자와 이치로 일본 생활당 대표와 더욱 극명히 대비되고 있다. 기사.

5.3. 2013년 하반기

2013년 7월 5일, 아베는 "이토 히로부미'존경받는 위대한 인물'" 이라며 "그 점은 (한일이) 상호 존중해야 한다" 고 발언했다. 일본 입장에서야 맞을 수도 있겠지만 이토 히로부미가 주도한 일제 침략으로 식민지 시기를 겪은 한국으로선 그를 존중하기는 무리라는 점을 망각한 발언이다.[22]

이와 더불어 윤병세 외교통상부 장관이 일본의 역사인식 재고를 촉구한 것을 이죽거리면서 "각국마다 역사에 대한 관점이 다르다. 역사인식을 정상회담의 조건으로 삼지 말아야 한다"라며 한일 정상회담을 미루는 박근혜 대통령을 디스했다. 이에 한중 정상회담을 마치고 돌아온 박근혜 대통령은 "일본이 미래 지향적인 방향으로 가지 않는다면 정상회담의 의미가 없다"라고 에둘러서 아베에게 반박했다.

제23회 일본 참의원 통상선거를 대승으로 이끌어낸 공적으로 장기집권이 유력하다.그런데 유세 마지막 일정을 아키하바라로 마무리한 것 때문에 아소 다로 부총리처럼 숨덕인가 하는 의심을 받는다. 여담이지만 도쿄 조례의 여파로 오타쿠들에게 돌아가라는 합창만 들었다. 아베 총리는 최소 3년간 안정적인 집권기반을 마련했으며 2016년에 제24회 일본 참의원 통상선거시 중의원을 같이 의회해산하여 제47회 일본 중의원 총선거를 같이 실시, 중-참 양원 동시선거를 할 가능성이 높다.

안정적 집권 기반을 구축한 덕인지 이제 대놓고 한국을 도발한다. 동아시안컵에서 전범기를 들고 응원하는 일본 응원단에 격분한 붉은악마가 일본의 역사인식을 꼬집은 대형 플래카드를 들어올리자 일본은 이에 강력하게 반발했다. 심지어 문부과학상은 "한국의 민도가 낮다"라는 망언을 해 한국을 격앙시켰다.

게다가 그 뒤에는 여론조사랍시고 일본 전국민의 60% 이상이 독도를 일본 땅이라고 인식한다라 발표해 더 어그로를 끌었다. 한국은 강력하게 반발해 주한 일본공사를 초치해 항의했다. 그런가 하면 강경한 보수주의자를 헌법해석 장관으로 새로 선임해 집단적 자위권 해석을 바꿀 움직임을 보이고 고노 담화의 폐기 운운까지 있다. 물론 아소 다로가 나치식 비밀개헌 개드립을 터뜨려서 세계적으로 논란이지만 꿈쩍도 않는 것은 보너스.

아베 자신은 8월 15일에 야스쿠니 신사를 안 참배할 듯하지만 다수의 각료들은 가리라 보인다. 아소는 밤중에 몰래 참배하다가 또 들킬 듯 일련의 어그로에 한일 관계의 정상화는 요원하다. 아베는 적극적으로 한일정상회담 추진을 이야기하나 한국 정부는 일본의 역사인식과 각종 어그로 남발 상황에서 정상회담이란 큰 부담을 질 하등의 까닭이 없다. 9월에 러시아에서 G20 정상회담이 열릴 듯해도 여기서 한일 정상이 만날지는 의문이다. 외교부에서도 회의적으로 본다.

아베는 어떻게든 한일정상회담을 하려고 몸이 달아있는 모양새다. 후쿠다 야스오 전 총리가 한국을 방문했는데 박대통령에게 정상회담 의사를 타진하기 위해서라는 관측이 지배적. 여기에 본인이 직접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지 않아서 모양새도 만들긴 했지만 정작 8월 15일에 반성이란 말을 꺼내지 않은 탓에 여전히 한국에서는 불신의 기운이 크다.

이런 가운데 집단적 자위권 해석 변경을 반대하다가 내각 법제국 장관에서 쫓겨난 야마모토 스미유키 최고재판소 재판관이 "집단적 자위권은 개헌을 해야만 해석이 변경된다"라고 아베 총리를 비판했다. 일본 헌법에서 무력행사 포기와 교전권 불인정을 규정하는데 법 해석 변경만으로는 집단적 자위권 행사가 불가능하다는 것.

2013년 9월 7일 IOC 총회에서 예상을 깨고 2020년도 하계 올림픽 개최지로 도쿄가 뽑혀 아베의 정치적 입지는 더욱 굳건해졌다. 2020 도쿄 올림픽 항목 참조.

단, 올림픽 개최는 아베에게 양날의 칼이다. 올림픽을 정상적으로 하려면 외교적으로 막 나가는 행보가 독이라서다. 그렇지 않으면 1980 모스크바 올림픽이나 1984 LA 올림픽처럼 집단 보이콧 사태가 날 수도 있다. 또한 올림픽 개최 준비는 경기부양에 도움일 수 있지만 올림픽이 끝난 뒤에 몰아닥칠 경제적 부담도 일본 경제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

집단적 자위권 개정에 사활을 걸었는지 UN 총회에 참석해서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의 정당성을 역설했으며 심지어 "나를 군국주의자로 불러도 좋다"라고 발언해 듣는 이들을 경악시켰다. 숨겨왔던 나의 수줍은 나치즘 모두 네게 줄께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이건 독일의 대통령이나 총리가 "나는 나치주의자"라는 격.어느 군국주의자의 커밍아웃 이 발언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일본이 안부 할머니들에게 사죄는커녕 상처를 주는 행동을 한다고 비판하였다.

이런 가운데 중의원 참의원 모두 이겼고 당분간 선거도 없어서 2014년 4월부터 소비세를 현재 5%에서 8%로 올리기로 했다. 일본의 소비세는 1997년에 3%에서 5%로 오른 이래 17년만에 세율이 오르게 되었다. 당초 2014년 4월부터 8%, 2015년 4월부터 10%씩 올리는 안을 추진했는데 경제에 미치는 영향 등을 고려해서 고심하다가 일단 8%로 인상하기로 밀어붙이려는 듯. 10%로 올리는 부분은 더 상황을 지켜보고 결정할 것이라고 한다. 대신 소비세 인상으로 국민들이 세금 인상에 저항감을 느끼는 것을 줄이기 위해서 동일본대지진 부흥특별 법인세법을 조기 폐지하는 것을 추진하고 5조엔의 경제대책을 마련해 경기 둔화를 막기로 했다고. 소비세 증세는 일단 일본의 기록적인 국가채무를 줄이는 데에는 도움을 주겠지만 문제는 소비세는 직접적으로 국민들에게서 거두는 반면 부흥특별 법인세나 1조엔대의 감세조치 등의 5조엔 규모의 경제대책은 기업들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부분이라서 과연 일본 국민들이 좋게 받아들일지는 두고 봐야 할 듯. 게다가 당초 2012년에 소비세 증세에 민주-자민-공명 3당이 합의할 때 사회보장제도의 개편과 함께 증세를 하기로 합의했으나 사회보장제도 개편도 없이 증세만 하면서 논란이 가열될 것으로 보인다. 더군다나 일본경제의 불황기인 "잃어버린 20년"도 소비세가 적용되면서 시작되었고 일본경제가 막장직전으로 가버린 1997년 역시 소비세를 3%에서 5%로 인상되었을 때다.(...)

2013년 10월 21일에는 후쿠시마를 시찰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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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잡지 '주간춘문(문예춘추의 자매지)'에 따르면 "중국은 어처구니없는 국가지만 아직 이성적인 외교 게임이 가능하다. 한편 한국은 단지 어리석은 국가"라 발언했다고 한다. 이어 박근혜 대통령이 일본과 대립각을 세우는 것은 곁에 '간신' 이 있기 때문이고 그 필두는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라 말했다고. 하지만 이 잡지는 판매량이 비해 선동적인 경향이 심한 편이며 아베 총리의 발언이 과장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만일 아베 총리가 실제 이 발언을 했다고 드러나면 한일 관계에 엄청난 파장이 예상된다. 기사. 이에 대해서는 아베 신조 한국비하 발언논란 항목 참조.

2013년 11월 19일, 박근혜 대통령안중근 의사 표지석 설치 발언에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이 불쾌감을 표시하고 안중근 의사를 범죄자로 비하했다. 애시당초 이토 히로부미가 어떤 인물이었으며 안 의사가 그를 왜 죽였는지만 생각해 봐도 말이 안 되는 발언이다. 딱 봐도 수준이 보인다.
기사.

2013년 12월 7일, 특정비밀보호법까지도 통과시켰다.[23] 먹어서 응원하느라 뇌가 멜트다운했나 보다 끝내 집권 3달만에 70%에 달하기 시작했던 아베의 지지도는 참의원 통상선거 이후로 50%대로 곤두박질치기 시작했으며 12월 중순경 47%(교도통신)라는 역대 최하의 지지도를 받았다. 아베 내각의 반대는 최대 40%에 육박하였고, 그간 70%에 육박하는 지지를 보이던 다른 언론 조사에서도 53%로 하락하는 등(JNN 방송) 최소 13%의 국민이 추가로 등을 돌렸다. # 일본에서는 비밀보호법 정국으로 거의 무덤 속으로 들어간 줄만 알았던 좌파, 운동 단체들이 다시 시위의 전면에 나서면서 정권의 지지를 깎아먹기 시작했다. 무역적자 역시 불어나기 시작했으며 소비세 문제로 여론도 더는 호의적이지 않다. 끝내 아베는 다시 경제정책 중심으로 정책을 선회하리라는 견해들이다. #

2013년 12월 26일, 야스쿠니 신사참배를 강행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저 행위는 한일 관계에 결정타였다. # 더불어 저 날은 모택동 탄생일 120주년이라 중일관계도 같이 나락으로...# 게다가 차후에 미국의 경고를 무시하고 야스쿠니 참배를 강행했다는 점이 드러나 미국과 유럽의 언론에게서도 비난을 받았다.

무시 수준이 아니라, 거의 거짓말에 가까운 행위도 했다. 실제로 조 바이든 부통령의 방일 때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하지 말라는 경고가 있었다. 이때 아베는 신사를 참배하지 않으리라는 투로 대답했고, 그걸 이유로 바이든 부통령은 방한시 박근혜 대통령에게 일본 정부의 신사 참배는 더 이상 없을 것이라고(그러니까 일본과 관계 개선을 해보라고) 보증했다. 그러나 아베는 야스쿠니를 참배했고, 결과적으로 보았을 때 부통령은 거짓말한 셈이 되고 말았다. 이 사실을 듣자 당사자인 바이든 부통령은 물론, 백악관 전체가 격분했다고. 그런데 오히려 아베 정부는 바이든이 확대해석한 것이라는 반응을 보여서 미국 행정부가 상당히 불쾌해했다. 천조국 부통령을 상대로 구라치다니 겁이 없다. 이후 제대로 빡친 바이든 부통령이 전화를 걸어 아베에게 야스쿠니 신사참배 자제를 요구하였으나 아베는 '내가 선택한다'고 잘라버렸고 니놈이 미쳤구나 바이든 부통령도 아베의 행각 자세에 '총리의 뜻이 그러하다면 어쩔 수 없다'고 물러났다. 그걸 또 물러나고 있는 부통령도 참

5.4. 2014년 상반기

12월에 특정비밀보호법을 통과시켜 여론이 나빠진데 이어 도쿄도지사 선거에서 집권 자민당에 대항하여 전 총리인 호소카와 모리히로가 출마하고 아베의 정치적 스승이었던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가 호소카와를 지지함에 따라 리더십이 상당히 흔들린다. 만일 호소카와가 당선하면 아베의 집권기반이 흔들려 조기 퇴진할 가능성도 있다고 일본 정치권은 본다. 일본 민주당은 호소카와를 지원하기 위해 아예 후보를 안 내기로 했다. 게다가 고이즈미의 아들이자 정치적 후계자이기도 한 고이즈미 신지로 부흥정무관도 자민당이 지원하는 후보에 지원할 대의를 못 느끼겠다라면서 반기를 들었다. 아베는 되도록 원전문제를 안 거론하면서 고이즈미-호소카와 돌풍을 잠재우려 했고 신지로를 앞세워서 고이즈미에 맞서려 했지만 신지로의 이런 반발에 결국 포기했다.

그런데 신지로의 말은 일리가 있다. 자민당이 지원하는 마스조에 요이치 전 후생노동상은 2009년 자민당의 중의원 참패이후 자민당의 시대는 끝났다라면서 자민당을 탈당했던 전력이 있던 인물이다. 당시 자민당은 그에 격분하여 마스조에에게 제명처분을 내렸었고 이런 마당에 마스조에를 후원하겠다는 아베의 행동을 당연히 신지로가 못 납득한다. 이를 명분으로 고노 타로 부간사장을 비롯한 소위 탈핵파 의원들이 호소카와 전 총리의 지원을 모색중이라고 아사히 신문이 보도했다. 사실상 탈핵이라는 명분을 들고나온 호소카와-고이즈미 연대에 자민당내 탈핵파들이 동조하면서 자민당 자체가 휘청인다. 아베가 마스조에를 내세우지만 않았더라도 이런 명분을 안 줬으리라는 지적이 많다.

여기에 미국 하원에서 일본정부에 위안부 문제의 사과와 배상을 촉구하는 2007년 미 의회결의안을 미 국무부가 이행하도록 만드는 내용의 법안이 하원을 통과하면서 일본은 심히 충공깽에 빠졌다. 아베는 자신의 친동생이기도 한 기시 노부오 외무 부(副)대신을 미국에 보내서 열심히 야스쿠니 참배로 싸늘해진 미국을 달래던 사이 전혀 예상치 못한 일격을 겪은 셈. 물론 이 법안은 일종의 보고서 형태이나 미 국무부가 이 문제를 다뤄야 함을 강조하였기에 [24] 일본 입장에선 그야말로 날벼락인 셈. 일본이 뒤늦게 로비를 펼칠 수도 있지만 이미 하원을 통과한 만큼 상원 통과는 확실하며 오바마 대통령도 거부권을 행사할 까닭이 없다.

2014년 1월 17일 상원 통과를 거쳐, 다음날인 1월 18일 오바마 대통령도 서명해 이 법안은 통과했다.[25] 여담으로 이 결의안을 낸 의원은 미 하원의원이자 일본계 미국인인 마이크 혼다이다.

일본은 최근 신설한 국가안보국(주요 국가의 국가안보회의(NSC) 상설사무조직)의 초대 국장이자 아베 수상의 외교안보정책 핵심 브레인으로 유명한 야치 쇼타로(谷內正太郞)를 급파하여 미국의 주요 외교안보 각료진에게 아베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관한 변명 해명에 애썼다지만, 도리어 야스쿠니 신사참배를 '꼬집어' 거론하면서 주변국과의 갈등해결에 나서라는 질책성 반응만 돌아왔다. # 중국 견제를 명분으로 미국이 자신들을 굳건히 지지하리라고 낙관했던 아베 내각은 매우 당혹스러워한다.

아베의 야스쿠니 참배로 단단히 뿔난 중국은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대륙의 기상 물량공세로 일본을 압박한다. 일제 침략에 관한 문서들을 대거 공개하는가 하면 기자들을 초청해서 일본의 잔혹행위와 그에 관련한 장소들을 취재시키는 등 전방위 압박도 폈다.

이런 와중에도 정신을 못 차린 아베는 개헌노래를 부르며 귀를 막는다. 평화헌법의 개정을 들고 나오면서 일왕을 다시 국가원수로 규정하며 자위대를 국방군으로 승격시키고 히노마루와 기미가요를 일본의 국기와 국가로 공식적으로 추진하겠다는 뜻도 내보였다.아무래도 미친 것 같아요! 게다가 아베는 개헌안에서 국민은 자유를 남용해서는 안된다. 자유와 권리에는 책임과 의무가 따른다라는 조항을 넣고 기존 헌법의 기본적 인권 조항을 삭제하는 방안도 추진한다.[26] 한 마디로 아베의 개헌 추진안을 보면 메이지 유신 시절로 돌아가자라는 이야기니 주변국들의 엄청난 논란과 반발이 예상된다.

2014년 1월 19일에는 오키나와현 나고(名護)시 시장 선거에서 후텐마 미군기지[27] 이전 반대를 내건 이나미네 스스무(稻嶺進) 후보가 자민당이 지원한 스에마쓰 분신(末松文信) 전 현의원을 꺾어버렸다. 자민당은 이 선거를 위해 이시바 시게루(石破茂)[28] 간사장을 현지에 투입했지만 이것이 무색했다. 나고시 선거 패배로 아베는 야스쿠니 참배 강행으로 싸늘해진 미국을 달랠 만한 카드가 없어졌다. 또 이시바도 체면을 구겨서 더 문제다. 나고시 선거에서라도 이겼다면 헤노코로의 미군기지 이전을 강행해서 미국을 달랠 만했겠지만 이나미네 시장이 재선에 성공하면서 이나미네 시장 재임기간 중에는 미군기지 이전 가능성이 사라진 셈이고 미국을 달랠 길도 없어졌기 때문.

상황이 이렇자 아베는 기지 이전을 힘으로라도 밀어붙일 태세다. 이미 이나미네 시장이 미군기지 이전에 협조하지 않을 것임을 밝혔지만 방위성 심의관 1명을 특명담당자로 임명해 이나미네 시장이 할 시정조치나 행정대집행 등에 2월 정기국회 전까지 대응책을 마련하리라고 한다. 또한 1월 21일에 헤노코 해안의 매립공사 실시설계 조사도 발표했다. 일각에서는 이런 행보가 일부러 오키나와 주민들과 갈등을 유발해서 도쿄도지사 보궐선거에 쏠린 국민들의 시선을 돌리려는 수작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런 가운데 스위스에서 열린 다보스 포럼에서 언플을 시도했다가 역풍만 맞았다. 박근혜 대통령이 기조연설을 하는 와중에 참석했는데 원래 일정상으로는 아베가 박대통령의 연설을 들을 수 없었지만 다른 일정이 취소되면서 가능해졌다고. 그러나 박대통령과 아베는 악수도 안 했다. 아베는 기조연설에서 "야스쿠니 신사에는 영웅이 없으며대신 전범이 있지 단지 전쟁에서 스러진 영혼들이 있을 뿐"이라는 소리로 자신의 행위를 합리화했다. 또한 자신은 2년 안에 모든 기득권[29]을 드릴처럼 박살내겠다는 소리도 했다.

한국 정부는 아베의 행보에 노골적으로 불쾌감을 드러냈는데, 저 모습이 나는 한국과 잘해보려고 애쓰는데 한국은 괜히 트집만 잡는다라는 언플이라 판단했기 때문. 아베뿐만 아니라 한국 경제인 단체가 주최한 간담회에 뜬금없이 나온 시모무라 문부과학성도 이런 포석이라는 분석이다. 그러나 아베의 의도와는 달리 외신 기자들은 야스쿠니 참배에 돌직구를 날리는 등 아베를 불편하게 했다는 후문이다.

또한 같은 자리에서 "현재의 동아시아 정세는 1차대전 직전의 영국 - 독일과 같으며, 그럼 누가 독일 제국이야? 우발적인 전쟁 가능성도 배제 못한다"고 공개 발언하여 다시금 구설수에 올랐다. 중국은 발언 직후 "역사 인식이나 제대로 하라"며 발끈하는 반응. 링크 파이낸셜 타임즈 논설위원은 일국의 국가수반이 너무도 가볍게 전쟁 가능성을 거론했다는 점을 들어 "고약한 경험이었다"라고 말했다. 링크

이런 와중에도 신통할 만큼 러시아를 자극할 발언은 삼가하는데, 2014년 하반기에 러시아 푸틴 대통령의 방일을 추진할 계획이 있어서다. 이는 2014년 동계 올림픽에서 잘 드러나는데, 개막식 폐막식 모두 일본 선수 전원에게 러시아와 일본 국기를 흔들게 했다. 사실 중국과 극한 대립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상황에서 러시아까지 사이가 안 좋아지면 큰일나기 때문에 저런다. 실제로 러시아와 밀월 관계를 형성하면서 외교적인 돌파구를 마련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최근 우크라이나 사태로 러시아가 미국과 대립하면서 우호적이었던 러일 관계가 흔들릴 가능성이 높다. [30]

한편 NHK의 신임회장으로 임명된 모미이 카즈토가 정부와 반대되는 것을 방송해서는 곤란하지 않겠냐면서, 어느 나라에나 위안부는 있었다라는 망언을 해 파문을 일으켰다.[31]제2의 하시모토 도루? 모미이 회장의 발언이 퍼지자 한국은 맹비난했고 일본 안에서도 공영방송 회장이 할 소리가 아니다라며 다른 언론들이 가루가 되도록 깠다. 모미이 회장은 아베 총리가 내려보낸 낙하산으로 알려졌는데 사실상 NHK를 장악해서 친정부적 언론으로 길들이겠다는 뜻이니 반대파들이 거세게 비난할 듯하다. 항의가 빗발치고 비판이 폭주하자 모미이 회장은 부덕의 소치라고 해명했으나, 낙하산으로 내려보낸 아베 내각에서 NHK 회장이 아니라 개인자격으로 한 말이고 취소했으니 문제가 없다라는 어이없는 논리로 비호했다. 이 와중에 하시모토 도루는 정론이라며 높여줬다고.[32]

한편 교과서 지침에서 독도 서술 지침의 기존 논란에 일본의 고유영토로 서술하라고 바꿔 파문을 일으켰다. 한국은 크게 분노했고 이례적으로 일본과의 관계 때문에 암묵적으로 자제했던 외교부 장관의 위안부 피해 할머니 방문까지 했다. UN 안보리에서는 한국, 중국, 북한이 위아더월드 일본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러나 아베는 아랑곳 않고 독도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에 단독제소하는 문제를 검토하겠다면서 한국에 훌륭한 어그로 설 선물을 줬다. 이와 관련해 새누리당 정병국 의원은 트위터에서 아베 총리가 AI에 걸린 듯하다. 국제사회 공조로 방역해야 한다며 강하게 비난했다. #

아베의 어그로 행보에 일본 안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무라야마 도미이치 전 총리는 사민당 회합에서 아베의 야스쿠니 참배는 자기 만족을 위한 매국행위라고 맹비난했으며, 자민당이 잘못인 길을 가는데도 야당이 이를 막는 소리가 안 들린다면서 앞으로는 국민들 목소리뿐이라고 개탄했다.

1월 31일 열린 중의원에서 민주당의 오카다 가쓰야 의원이 "총리가 무라야마 담화를 인정하는지 논란이 있으니 이 자리에서 확실히 밝혀 달라."고 질의하자 아베는 "우리나라(일본)는 일찍이 많은 나라, 특히 아시아 국가의 국민에게 많은 손해와 고통을 안겼으며 아베 정권도 역대 내각의 방침을 계승할 생각이다"고 답했으나 정작 무라야마 담화에 있는 식민지배와 침략으로라는 언급은 단 한 마디도 안 했다. 이걸 지적했으나 4번이나 똑같은 응답을 되풀이했을 뿐 식민지배와 침략은 말에 없었다. 또 이날 질의에서 일본과 미국은 사전 협약 없이 미국은 일본 내에 핵무기를 반입할 수 있는 비밀 협약을 맺었다고 공개했다.

특히 아베의 극우 인사들이 대거 자리를 차지한 NHK에서는 연이어 망언이 쏟아져 나오는데 극우 소설가 출신인 햐쿠다 나오키 경영위원은 "난징 대학살장제스의 조작이라 아무도 안 믿는 거짓말이다. 도쿄 재판은 일본에 핵을 떨어트린 대학살을 감추기 위한 것이었다"는 정신 나간 망언을 했으며, 사이타마대 명예교수인 하세가와 미치코 경영위원은 2013년의 기고문에 극우파인 무라 슈스케의 자살사건 20주기에 "노무라 슈스케의 천황 폐하 발언으로 우리 천황께서 다시 신이 되셨다"는 망언을 했다라 드러나서 충격을 주었다. 그리고 아베를 비롯한 일본의 수뇌부들은 문제가 없다란 입장이라고. 덴노를 위한다는 놈들이 왜 이렇게 덴노의 뜻을 거스르는 짓만 골라하냐? 얘네한테 덴노는 아직도 히로히토인가

그릭고 2월 5일 예산위에서 아베는 특정비밀보호법에 보인 언론들의 비판적인 보도를 매우 불쾌해하면서, 아사히 신문을 아예 아베 정권을 타도하는 것이 사시(회사의 방침)이다라고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또한 그 전날, 위에서 나온 스가 관방장관의 '안중근은 테러리스트' 발언에 관해 총리 견해를 묻는 한 의원의 질의에 안중근은 이토 전 총리를 살해해 사형 판결을 받은 인물, 즉 안중근은 '살인범'이라는 답변을 공식적으로 서면을 거쳐 답변하고 중국이 얼빈 역에 꾸민 안중근 의사 기념관도 '동북아 평화에 악영향을 주는 유감스러운 행동'이라 비난했다. 그러면서도 가까운 시일 안에 한국과 정상회담을 하겠다는 소리를 한다.[33]

2월 11일의 도쿄도지사 선거에서 아베가 지원한 무소속 마스조에 후보가 211만여 표(43.4%)를 얻으며 2위와 120만여 표 차이가 나는 압승을 거뒀다. 고이즈미가 지원한 호소카와는 2위와 거의 비슷한 3위(약 90여만 표)에 그치며 그 약발이 다했음이 만천하에 드러났고,[34] 끝내 복지 대 탈원전 구도였던 이 선거에서 원전 폐쇄를 주장한 후보들은 전원 참패한 셈.마스조에조차도 당장은 아니어도 언젠가는 탈원전 하겠다라는 말을 했었지만.[35]

일단 아베의 정치적 입지는 당분간 확고해진 셈이고 아베 내각의 정책도 더 탄력을 받을 듯하다.[36]

그리고 NHK의 우익행보에 주일 미국대사관이 NHK와의 인터뷰를 거절했다. 아예 비상식적인 발언 때문에 거부한다고 공식적으로 말까지 했다. 아베는 집권 초기 전임 정권 때 흔들린 미일동맹을 확고히 만들겠다고 했는데 이대로는 다음 정권에서도 똑같은 말을 되풀이할 지도.

아베는 개헌까지 안 기다리고 아예 헌법 해석만 바꿔도 된다는 식으로 나가니, 설사 헌법 해석 변경을 내각 법제국에서 반대해도 최고 책임자(총리 대신)은 자신이므로 각의 결정을 통해서 강행할 것임을 드러내 일본 안은 물론 국제적으로도 우려를 불러일으킨다.[37]

이런 상황에도 NHK의 모미이 회장은 사과 발언 이후 방송 내부 회의에서 사장의 사장의 말같지도 않은 망언으로 시청자들이 시청을 거부하는 사태가 일어나면 어쩌냐는 말이 나오자 그게 뭐가 문제냐고 했다. 즉 자기가 한 말의 잘못을 전혀 안 생각한다는 뜻. 게다가 아베의 보좌관인 에토 세이이치 참의원은 미국이 야스쿠니 참배에 비판하고 실망했다는 반응을 보이자, "우리가 실망했다. 미국의 비판은 중국을 향해 변명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미국은 중국에 할 말도 제대로 못하는 처지가 되었다."는 내용의 동영상을 찍어 유튜브에 올렸다. 일본 안에서도 이게 무슨 미친 짓이냐며 반발이 일어났고, 끝내 개인적 의견이지만 위치상 오해가 있을 만하니 삭제한다라 밝혔다.#

그리고 2월 19일 요미우리신문 보도에 따르면 자위대가 해외에서 자국민 구출을 위해서라면 무기를 쓸 수 있도록 관련 법을 만들 계획이고, 이를 위해 헌법 해석을 바꿀 가능성이 크다라 한다.# 또한 같은 날 기어이 '다케시마의 날 행사'에 차관급 정무관을(역대 최초는 아니지만) 파견해, 취임중 안 하겠다던 종전의 말도 뒤엎었다. #

2월 20일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이 국회에서 위안부 강제 동원 자료나 신빙성 있는 증거가 없다며 고노 담화의 검증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는 소위 "대화채널 복원 필요성"을 주장하면서 편 기만적 행보로 한일 관계 회복은 다시 요원하다. 아직 2014년은 두 달도 안 지났는데 이 많은 병크들이 터졌다고?

2월 24일 다케시마의 날 중앙행사화에 제반사정을 감안해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밝혀 도발의 수위를 낮춘 듯하지만...# 사실 지금까지의 행보를 보면 다음 도발을 위한 숨고르기일 가능성이 농후하다.대체 또 무슨 도발을 하려는지 심히 우려다. 그리고 다음 날 그것이 실제로 일어나 고노 담화 검증에 적극적인 의욕을 내비치며, 이에 호응해 산케이 신문 등과 같은 보수 언론들도 설문조사로 여론 몰이를 한다.#

2월 27일, 중의원 예산위원회에 나와,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주변 국가들에게 이해시키기 위한) 나의 노력이 부족했다"며 "다양한 의견에 진지하게 귀를 기울이고 비난을 해소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저게 정말로 할 만하다고 생각하나? 아무리 입 발린 말이라지만 정말 무슨 마약을 먹고 이리 말했나 모르겠다. 단순한 립서비스가 아니라 실제로 실행에 옮기리라는 무서운 생각이 든다.

2월 28일, 끝내 고노 담화 수정을 공식화하였다. 도쿄의 소식통들과 전문가들에 따르면 현재의 아베 정권은 외교전략적인 목적보다 본인들의 신념에 따라 움직이는 듯하며, 4월에 있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방일을 앞두고 이러한 행동을 하면 역사 문제에서 한국과 중국의 반발에 절대로 굴하지 않겠다는 일종의 선언이라고 해석된다.#[38] 그리고 같은 날 교토통신의 보도에, 당 간부들과 만찬한 자리에서 오는 6월 22일 정기국회 종료 뒤 인사를 단행하겠다라 말했다고. 또 얼마나 정신 나간 사람들이 요직에 오를지(...). 아소 다로보다 정신나간 놈을 뽑는다니 흠좀무

일본의 한 소식통이 따르면 이번 개각에서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을 다시 자민당의 요직으로 돌리리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 사람은 정치 귀족인 아베와 달리 빈농의 아들로서 철저한 자수성가형 인물로 대외적으로는 그렇게 안 보이지만 아베 내각이 중간에 무너진다면 그것을 역사 인식때문이라고 조언한 인물로 폭주하는 아베 내각의 내부 관리와 브레이크를 담당했다. 심지어 작년 야스쿠니 참배도 만류했다고. 그런데 만약 위의 소식통이 맞다면 스가가 빠진 아베 내각이 얼마나 더 난폭할지 걱정이다.

3월 3일, 마지 못해 무라야마 담화의 역사인식을 계승한다고 말했다.[39] 그러나 고노 담화의 검증은 계속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 이와 연계해 일본 유신회가 주도하는 고노 담화 수정 요구 행사에서 아베 내각의 교육차관 사쿠라다 요시타카가 일본 위안부 문제는 주변국의 날조한 거짓말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나는 거짓말을 하거나 사람을 속이거나 사실을 날조하는 것을 정말 싫어하는 사람이라며 여러분과 생각이 같다"면서 "너무 솔직히 말하면 물의를 빚어 곤란하지만 여러분과 마음은 같다"고 말했다. 자기 비하#

아래의 대외 정책 파트에도 나오지만 이미 아베 내각의 중진들 사이에선 일본 제국의 침략 미화 및 전쟁 범죄 부정이 하나의 이데올로기인 상태이다. 그럼 아베 내각 모두가 저런 미치광이들로 가득찼단 뜻인데(...) 더 미친놈으로 채울 생각인가?(...)

일본이 이렇게 막나가는 행보를 보이자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공식적으로 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제기하였다. 그 사이 일본에게 최소한의 외교적 배려로 한국 정부는 공식적인 위안부 문제 제기를 삼갔지만 일본이 저렇게 막나가는 데다, 국제 사회에서 일본의 역사 수정주의 움직임에 비판의 기류가 나오면서 대응의 수위를 높였다.#

3월 7일에 스가 요시히데 일본 관방장관이 반론을 제기할 예정이라고 한다. 여기에 우리 정부는 반론이 아니라 문제를 조속히 해결하라는 뜻을 밝히며 일본을 압박하였다. 또 같은 날 이시바 시게루 자만당 간사장이 중국 견제를 위한 미국이 예전부터 제기했던 아시아판 NATO가 필요하다는 견해를 밝혔고 아베 신조 또한 구체적인 지시는 없었으나 상당히 공감했다고.#

그리고 3월 11일 후쿠시마 원전 사고 3주년 행사에서, '''"'세계에서 가장 엄격한 규제 기준을 바탕으로(적합하다고) 인정되는 원전에 대해서는 재가동을 추진할 것이다"라고 발언했다.

한편 한국과 계속 정상회담을 하기 위해 사이키 차관이 방한도 했지만 3시간 만에 귀환했으며 같은 날 한국에게 무조건적인 한미일 3자회담을 열자는 일본 정부의 발언이 있다. 물론 일본 정부의 일방적인 발언인데다 사안이 사안인 만큼 한국은 신중한 입장이다.

3월 14일 아베는 고노 담화를 수정할 생각이 없다고 공식 석상에서 발언했다. 그걸 믿을 사람이 있을까?[40] 뭐 여튼 덕분에 일본 넷우익들은 또다시 멘붕상태라고 한다. 미국 정부는 이를 환영한다는 뜻을 밝혔고, 우리 정부는 '다행' 이라며 처음으로 아베 총리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한편으로 '차후 행동을 보고 판단하겠다' 입장을 알렸다. 일본이 한 발 물러섬으로서 모양새가 갖춰진 면이 있지만 현재 아베의 행보가 단순한 정상회담용일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한국 정부는 일단 정상회담과 선을 긋는 등 신중한 입장이다. 그러나 미국과 한국으로서도 이 이상 일본과의 외교 경색 상황이 부담스러울 수 있기 때문에 이번 핵안보회의가 한미일 정상회담의 적기라는 주장 또한 있다.

3월 17일자의 지지도 설문조사에서 49%를 기록하며 최초로 아베의 지지도 50%대 라인을 밑돌았는 데 가장 큰 원인으로 소비세 인상과 아베노믹스의 제한적인 체감효과가 거론되고 있다.

3월 20일, 한미일 정상회담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현재 아베는 진정성있는 조치 없이 고노담화를 수정하지 않겠다는 언급으로 한미일 정상회담을 끝내 성사시켰다. 그러나 후술할 내용을 보면 실질적인 효과는 미미하다고 밖에 볼 수 없다는 평.

3월 23일 아베 총리의 특별보좌관인 하기우다 고이치(萩生田光一)가 고노-무라야마 담화 수정가능성을 다시 언급했다.[41] 아베 총리 스스로가 고노-무라야마 담화 수정은 없다고 한 것과 완전히 반대되는 이야기를 최측근이 다시 해서 논란이 예상된다. 이는 검증 작업자체가 끝내 수정이 목적임을 다시 한번 증명함과 동시에 한국-미국 양국 대통령과 양국 외교부, 심지어 자국내 대정부질문에서 사실상 거짓말을 했다는 결론에 도달하는 중대사항이라서다. 국가원수가 거짓말을 했다면 국제적으로 심각한 문제이다. 게다가 이틀 뒤면 한미일 3국 정상회담인 상황에서 나온 발언이니 논란의 귀추를 주목해야겠다.

그리고 아시히 신문에 따르면 한국 정부가 마지못해 정상회담을 받아들이자 지겹다 고 측근들에게 불만을 토로했다고 한다.# 3월 23일 이번 정상회담을 미래지향적 관계의 첫 걸음으로 삼겠다는 말과 대조인 모습이다.

그리고 하기우다 고이치의 발언이 논란을 일으키자 개인적인 의견이라며 진압에 나섰다.저 드립은 대체 몇 번째인지... 3월 24일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이 고노담화 수정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고노담화 수정 가능성을 부인했다.# 그런데 고노 담화는 그대로 놔두고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새로운 담화를 발표해 고노 담화의 무력화를 시도하리라는 주장이 있다. 이 주장의 신빙성이 무척 높게 느껴짐은 착각일까....?

한미일 정상회담은 열었지만 의제는 북핵문제에 한정했고 과거사 문제를 다루었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딱히 한국이나 일본이나 한미일 정상회담에서 뭘 얻으려고 안 한듯 관계개선의 기미는 없다. 사실 이 상황에서 관계 개선에 나서려면 양보가 불가피한데 한국인들은 물론이거니와 일본 국민들도 절대로 양보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하고있기 때문.

한미일 정상회담 뒤에도 아베 내각의 장관들이 흔들기를 이어간다. 지난해 한국 국민의 민도 운운하는 망발을 일삼았던 시모무라 하쿠분 문부과학성이 무라야마 담화와 고노담화는 교과서 검정기준에 따른 통일된 견해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쉽게 말해 우리 교과서 기준에는 안맞는 이야기라는 뜻. 이는 무라야마 담화와 고노 담화를 일본 청소년들에게 안 교육시키겠다는 이야기다. 한국 외교부는 즉각 이 발언을 비판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한편 일본 외무성 관계자들이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 할머니들을 후원하는 나눔의 집을 찾아갔다라 알려졌다. 예상대로 이들이 나눔의 집에 찾아가서 했다는 말은 이미 한일수교때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의 배상청구권은 상실되었다. 아시아 여성기금을 60여명의 피해자들이 수령했으며 남은 피해자들도 배상할 용의가 있다라는 식의 이야기만 늘어놓고 갔다고 한다.[42] 게다가 나눔의 집을 찾은 것도 비밀에 부치려다가 끝내 간접적으로 시인했다고. 니놈들이 미쳤구나

또한 4월 중순 경에 열 위안부 의제 한일 국장급 회의를 앞두고 일본 외무성 관계자가 일본의 법적 책임을 인정하거나 배상을 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고 말해 단순한 언론플레이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4월 4일 일본 교과서 검정에서 모든 초등학교 5, 6학년 사회 교과서에 한국이 독도를 불법 점거한다고 썼다. 또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조선 침략을 '조선 출병'으로 고치고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 문제와 기타 전쟁 범죄를 하나도 안 적었다. 그리고 충격적이게도 "중국과 러시아에 거둔 일본의 승리는 구미국가에게 일본의 힘을 인정시켜, 구미의 지배에 고통받는 아시아 나라들에게 용기를 주었다."는 말을 넣어 일제의 '태평양 전쟁과 대동아 공영권'을 대놓고 미화했다!!!단단히 미쳤구나! 양국의 대표적 우호행사 중 하나였던 2002 한일 월드컵 공동개최 또한 지웠다!!!''' 이 때문에 엄청난 파급을 불러일으켰고, 더 나아가 미래의 한일관계까지 완전히 파탄내겠다는 심산이다.#

비슷한 시기에 미국에서 일본이 독도를 뭐라 부르던 지명에 상관없이 한국령이라 발표했다.

4월 13일 끝내 모미이 가즈토 회장이 위안부 발언에 관해 "(취임 기자회견에서) 회장의 입장과 개인의 입장을 가리지 못한 채 발언한 부분이 있었다"면서 "시청자들에게 큰 심려를 끼친 데 대해 깊이 사죄한다"며 고개를 숙였다.사죄할 행동은 애초에 안해야 정상이거늘... 사죄가 상당히 늦은 감이 있으나 이 발언은 '시청자 여러분'이라고 사죄의 대상을 한정해서 자신의 발언에 반발하는 이웃 국가는 애초에 안중에 없다는 뜻이다. 더군다나 이 방송이 끝나자마자 뒤돌아서서 웃음을 지었다라고 드러나 모미이 회장이 진심으로 사죄했다고는 보기 어렵다.# 애초부터 머리 끝까지 우익적 사고로 가득 찬 사람이 자신의 발언이 잘못이라고 인정할 리도 없다. 남자가 자기 발언을 바꾸다니 부끄러운 일이다. 일본을 사랑해 마지않는 애국 보수이니만큼 미시마 유키오처럼 할복 추천 하지만 할복하기에는 누려야 할 부귀영화가 너무 많다.

4월 24일 미-일 정상회담에서 드디어 새로운 병크가 하나 터졌다. 오바마 대통령의 면전에서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긍정한 것 집단적 자위권 용인과 센가쿠 열도에 대한 관여도 보장했는데 TPP 협상에서 일본의 양보를 못 얻자 오바마 대통령은 불편한 나머지 오찬도 거절하고 방문 코스도 일본 쪽 에스코트 없이 혼자서 갔다.

그리고 이어진 한국 방한에서는 아예 오바마 대통령이 "위안부는 전쟁 상황임을 감안해도 이해할 수 없는 끔찍하고 지독한 인권침해이며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존중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 대통령이 공식적 자리에서 한 위안부 언급은 유례가 없는 일로 일본 언론이 대서특필했지만 아베 정권은 정치외교 문제로 비화되어서는 안된다는 원론적 입장을 되풀이하였다.

4월 30일 독일에서 독일언론인 FAZ와 인터뷰했다. ## 독일과 일본은 상황이 달라서 독일식 과거사 청산을 못 받아들인다는 망언을 했다. 더구나 유엔상임이사국 개혁을 주장했는데 안보리진출을 위한 독일과의 공동 연대에 합의하였다.[43] 당연히 한국, 중국의 반발은 말할 것도 없다.

그리고 일본 내부에서도 호헌 여론이 개헌 여론을 앞서기 시작했다. 그동안 일본 내에서는 개헌 여론이 더 높았고 아베의 주요 정책이 일본의 헌법 개헌이었다는 점을 보면, 이는 아베의 행보가 극우를 빼면 일본 안에서도 곱게 안 보이기 시작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하지만 내각에 대한 지지율은 여전히 60% 에서 보합하고 있고, 당장 아베 신조를 대체할 수 있는 리더십이 존재하지 않다는 것은 사실이다.

5월 10일에는 그동안 나토 회원국들에게 집단자위권 행사의 정당성을 어필해오던 것의 연장선상으로, 9월까지 각의 의결을 마무리 짓겠다고 한다. 가뜩이나 군국주의적인 정책만 계속해서 폭주하듯 내놓은 아베 정권의 행보를 보았을 때, 이를 강행할 시 동아시아에 보통 파장이 일어나는게 아닐 것으로 보인다.[44]

5월 15일에는 본인이 직접 선정한 우익 성향 인사들로 구성된 유식자 간담회의 보고서를 바탕으로 집단적자위권 행사를 가능케 하기 위한 헌법 해석 변경의 가능성에 대한 검토를 시작한다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러한 노선 변경에 대해서는, 당초 개헌을 통해 헌법 자체를 바꾸려던 시도가 생각보다 미적지근한 여론의 반응 [45] 에 더해, 주변국과의 관계 변화가 주된 요인이라는 분석이 있다. 다만 연립 내각을 구성하고 있는 공명당이 이 헌법 해석 변경에 의한 집단적자위권의 행사 용인에 대해서는 상당히 부정적인 입장이라, 여권 내부에서의 마찰이 예상된다. 더욱이 우익성향의 개헌론자조차도 TV 인터뷰에서 차라리 할거면 헌법을 개정해야지, 이런식으로 자의적으로 헌법을 해석하는 것은 헌법 자체의 의미를 퇴색시키는 것이라며 반대 의사를 내비칠 정도다. 게다가 이 논의로 인해 국민들의 개헌에 대한 의견이 잠정적 찬성에서 반대로 돌아선 탓에 아베 정권 입장에서는 단기적으로는 악수였다는 평가도 있다. 실제 5월 17일~18일 사이에 이루어진 여론 각사의 개헌에 대한 여론 조사 결과를 보면, 해당 신문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어느 정도 비율은 바뀌지만 전반적으로는 반대가 찬성을 웃돌고 있다. 쿄도 통신에 따르면, 개헌에 대해서는 찬성 39%, 반대 48.1%, 헌법 해석 변경에 의한 집단적자위권 용인에 대해서는 반대가 51.3%로 나타났으며 관련기사 (원문), 마이니치 신문이 자체적으로 조사한 결과에서도 개헌에 대해서는 찬성 39%, 반대 54%, 헌법 해석 변경에 의한 집단적자위권 용인에 대해서는 찬성 37%, 반대 56%로 나타났다관련기사 (원문). 덩달아 아베 내각에 대한 지지율도 5퍼센트 가까이 떨어진 54퍼센트대를 보이고 있다. 확실한 역풍인 셈.
일각에서는 일본의 보통국가화, 재무장으로 일본이 징병제 국가로 바뀔수 있지 않겠냐고 우려하고 있다. 넷 우익국방의 의무 축하해, 근데 얘네들 병사월급 많이 받겠지? 아 이거 안좋네… 대신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가혹행위똥군기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

2014년 5월 29일에 일본 정부는 북한과 납북 일본인 재조사를 합의했다. 이건 농담거리로 삼기엔 별로 좋지 않다. 일본이 북한과 납치자 문제에 합의하여 관계개선의지를 보임에 따라서 한국이 추진해오던 대북공조는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었고, 연초부터 주창해오던 통일대박구상도 좌초될 판이다. 일본의 외교력에 한국의 외교당국은 몹시 당황하고 있고, 중국 역시 북한에 대한 자국의 영향력이 약화될 것을 우려하며 긴장하고 있다. 완전한 깜짝 합의로, 심지어는 미국과도 그 어떤 조율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46][47] 우선 한국은 정보력에서 한참 뒤졌고, 북핵 문제를 고리로 공조해온 일본과 사전협의는커녕 사전통보도 받지 못했다. 참고로 일본 국내에서는 2013년말부터 민방 각사의 정보방송 (뉴스와 버라이어티를 약간 섞은 컨셉의 방송) 등지에서 정치부나 국제부 데스크, 혹은 코멘테이터 등의 입을 빌어 이런 움직임이 있다는 말이 꾸준히 나돌고 있었다.

5.5. 2014년 하반기

자위대 창설 60주년인 7월 1일 집단적 자위권 행사가 허용된다는 새로운 헌법 해석을 채택하면서 전쟁을 할 수 있는 나라로 전환했다. 아베 신조 총리 내각은 이날 오후 총리 관저에서 임시 각의를 열어 일정 요건을 충족하면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내용의 각의 결정문을 의결했다. 각의 결정문은 일본과 밀접한 관계에 있는 타국에 대한 무력 공격이 발생해 일본의 존립이 위협받고, 국민의 권리가 근저로부터 뒤집힐 명백한 위험이 있는 경우 필요최소한도의 실력 행사는 자위의 조치로서 헌법상 허용된다는 판단에 이르렀다.고 명시했다. 이로써 아베 내각은 1981년 5월 일본도 주권국으로서 집단적 자위권을 보유하고 있지만 이를 행사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고 밝힌 스즈키 젠코 전 내각의 답변서 채택 이후 33년여 이어온 헌법해석을 공식적으로 변경했다. 이번 헌법해석 변경은 "국제분쟁의 해결수단으로서의 무력사용을 포기"한다는 헌법 9조에 입각해 "전수(專守) 방위(오직 방어를 위한 무력만 행사한다는 내용)"를 표방해온 전후(戰後) 안보 정책을 일대 전환한 일로 평가된다.



한 일본 전직 관료 입에서 일본 주요 언론이 아베에게 유리하다면 아키히토 천황의 권위마저 무시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무신정권이 들어선 모양이다. 막부 부활

이 와중에 2014년 2분기의 경제성장률이 연율 기준으로 계산했을 때 -7.1%를 찍는 기염(...)을 토했다. #

일본 정부의 재정 상태를 고려했을 때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말도 있으나, 애초에 증세를 하더라도 사실상의 역진세(regressive tax)로 분류되는 소비세를 인상한다는 데에 이미 발의 전부터 국내외로 지적이 많았다. 조만간 연말에 2차 소비세 인상까지 있을 예정이라고 하는데.. 불행히도 IMF는 일본이 이러한 방식으로 채무를 갚을 수 있을 가능성에 대해 부정적이다. 2014년 10월 7일에 나온 IMF의 WEO 자료에 의하면 일본의 올해 2014년 국가채무 비율은 245.05%가 될 것으로 추산되며, (국가채무를 총 GDP로 나눈 백분율) 이는 2013년보다도 1.85%가 오른 수치이다. 내년인 2015년의 국가채무도 245.49%로 추산하고 있다. 물론 아직 확실한 수치가 나온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추산치이기에 속단할 수는 없지만 이에 대한 함의는 아베 내각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주의깊게 여길 필요가 있다. 이는 곧 국제통화기금이 판단하기에 일본이 특단적인 소비세 인상에도 불구하고 채무를 조금도 갚지 못할 것 같다는 얘기이다. 이렇게 되자 결국 효력도 없이 제 살만 깎아먹는 소비세 인상이 옳은 선택인지 의문이 제기되는 상황. 그리고 결국 모두 수포로 돌아갔다.



뉴스1에 따르면 현재 아베 내각은 사퇴로 끝났던 1기 집권기의 마지막과 동일한 양상을 보여준다는 듯 하다.
진보는 분열해서 망하고 보수는 썩어서 망한다

10월 19일 교도통신에 의하면 아베 내각의 지지율이 40%대로 하락했다고 한다. #

지지율 하락의 원인으로는 최근 내각의 여성 각료들의 각종 스캔들과 경제정책에 대한 불신임이 주요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특히 이번 경제산업상에 내정되었던 여성 각료인 오부치 유코는 이전까지는 일본 최초의 여성 총리 대신이 될 재목으로까지 거론되던 인물이라 이번에는 아베 내각 뿐 아니라 자민당 전체가 정치적 타격을 입게 되었다. (일본은 인구 중 여성의 비율이 더 높은 국가다.) 그런데 연말이 다가올수록 사태는 접입가경으로, 오부치 유코의 후임으로 들어온 미야자와 요이치라는 작자는 SM바(...)에 공적자금을 몰래 지출한 것으로 밝혀져 경제산업상 자리에 앉자마자 야당의 공세에 완벽하게 노출되는 등 아베 내각이 금시일 내에 예전의 지지율을 회복하기는 쉽지 않아보인다. 지금 여러분이 보고 계신 건 백괴사전이 아니라 리그베다 위키입니다! 어 여기 백괴사전 아닌가요 백괴스러운 것이 떠오를 정도로 막장이란 거지

2014년 11월 11일 G20에 참석하고 있는 아베 총리가 급작스럽게 11월 중에 중의원을 해산할 생각이 있다고 피력하였다. 이렇게 되면 11월에서 12월 중에 국회의원 총 선거를 하게 된다. 아무래도 2015년에는 소비세를 10%로 인상시키는 것이나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포함시킬 헌법 9조 변경 같은 아베 정권 지지율이 수직 낙하할 이벤트가 잔뜩 있으므로, 내년에 중의원을 해산하면 정권 유지가 불투명하게 되고 소비세 증세 자체도 불가능하게 될 수 있어서, 차라리 지금 국회를 해산하는 게 낫다고 보는 듯 하다. 간단히 말하자면 의회를 조기 해산한 뒤 총 선거를 자신과 내각에 대한 일종의 "재신임 투표"로 삼아 현재의 지지율 하락을 타개하고, 기사회생하겠다는 의도.

일단 당장 소비세를 인상하지 않겠다고 거짓부렁을 치면 지지율 방어는 어느정도 할 수 있고, 일본 정치 상황이 현재의 대한민국처럼 "실망스런 여당에 더 무기력한 야권"으로 요약되는 상황이라 당장 급작스런 발표로 인해 야권공조는 고사하고 어떤 의원을 입후보 시킬지도 정하지 못해 우왕좌왕하는 것을 노린 것 같다. 이제는 친위 쿠데타까지 하실 기세일세? 결국 11월 18일 오후에 열린 자유민주당 임시 간부회의에서 내년 가을로 예정되어 있던 소비세 10% 인상안을 1년 반 뒤로 연기하고 국민들의 신임을 묻기 위해 중의원을 해산하고 선거를 실시하기로 하였다. # 그 말대로 11월 21일, 중의원을 해산하였다.#

그리고, 중의원을 해산한 뒤에도 정신을 못 차린 모양이다(...)
제정일치 사회가 되려나보다.

5.6. 2014년 12월 총선거 이후

2014년 12월, 제47회 중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이 전체 475석 가운데 과반수를 훨씬 넘어서며 압승. 아베도 계속해서 총리직을 이어나가게 됐다. 일본 국민들이 아베와 자민당을 뽑았다기보다도, 사실상 무능의 극치인 제1야당 민주당을 뽑지 않은 것이라는 평.

투표 이전부터 뽑을 사람이 없으니 이번 투표는 제끼겠다는 분위기가 팽배한 상황이었고, 실제로 투표율은 태평양전쟁 이후 최저인 52~3% 정도로 집계되고 있다. 자민당도 민주당도 뽑고싶지 않으니 차라리 공산당을 뽑고 말겠다는 의견도 많았는데, 실제로 이번 선거에서 가장 득을 본 것이 의석수를 2배로 늘린 공산당이었다. 8석에서 21석으로 2.5배정도 의석을 늘렸다. 하지만 여당에 갈 표가 아닌 아닌 민주당표를 뺏어온지라. 결국 전반적인 국회의 구조 자체는 큰 차이는 없다. 대신 민주당은 정말로 죽쒔다. 현 민주당 대표 가이에다 반리씨와 전 총리인 간 나오토가 소선거구에서 떨어질 정도. 가이에다 반리와 간 나오토는 2012년 제46회 일본 중의원 총선거에서도 지역구에서는 낙선했었다. 그러나 석패율제 비례대표로 둘 다 생환했었다. 그러나, 2014년 제47회 일본 중의원 총선거에서는 간 나오토는 도쿄 권역 비례대표 끝자락으로 생환했지만 가이에다 반리 민주당 대표는 그도 실패해서 아예 낙선이 확정되었다.

5.7. 2015년 상반기

2015년의 시작부터 아베 내각을 반기는 (...) 것은 일본의 신용등급 강등 소식들이다. 정확히는 이미 대부분 사실상의 결정은 작년 11월 말에서 12월 중순에 이루어진 것들이나 보통 이러한 사안은 이듬해 1분기까지도 추이를 더 지켜보면서 여유를 주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미 무디스는 2014년 11월에 결정을 내려 같은 해 12월 1일부터 강등을 시행시킨 상태였고[48] (Aa3 → A1) 또다른 주요 신평사인 피치의 결정이 주목을 받고 있던 시점에서 피치 또한 12월 15일에 일본의 신용강등을 한 차례 강등하기로 결정을 내려 2015년 1분기 동안의 추이를 지켜보기로 했다. (A+ → A) 만일 아베 내각이 불과 한달 전 중의원 선거에서 했던 공약을 깨고 2017년까지 미룬다던 소비세 인상을 즉각 몰아붙인다면 2015년 1분기가 끝나기 전에 강등을 모면할 수도 있겠으나 현실적으론 불가능하다. 일본은 여전히 제도적인 민주화가 공고한 나라이고, 상황이 그런 이상 공약을 함부로 다루는 일은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될 일이다.

한일수교 50주년을 앞두고 일본 쪽에서 독도 영유권 홍보 영상을 만들어 논란이 되고 있다. (무려 버전이 10개국어나 된다.) 그런데 홍보 영상을 직접 보면 독도는 일본땅이라면서 하는 소리가 몇분 동안 "독도는 메치(일본산 강치)가 많이 잡히는 곳" 드립이나 치고 있는 실정이라 한국인들의 어이를 안드로메다로 보내고 있다. 그런데 사실 일본이 특정 영토의 영유권을 주장하면서 수산업 드립을 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며 20세기 초중반에 소련의 캄차카 반도에 대해서도 비슷한 드립을 친 적이 있다. 물론 이것도 개소리인 게 캄차카 반도 연안의 어업권은 일본 어부들이 자발적으로 이행한 것이 아니라 일제가 러일전쟁 협상 내용으로 강압적 분위기에서 얻어온 것이다. 2015년 기준으로 캄차카 반도의 영유권은 더 이상 주장하지 않는데 논리가 비슷하니 독도도 조금만 기다리면 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바로 밑의 쿠릴 열도는 계속 자기네 꺼라고 우기잖아? 꿈도 희망도 없어

1월 20일 해외 순방 중 홀로코스트 기념관을 방문하여 "다시는 이런 비극이 발생하지 말아야 한다"는 발언을 했다. # 그런데 상술했듯 고작 1년 전에 독일에 가서는 대놓고 일본은 독일과 사정이 달라서 독일식 과거사 청산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던 사람이 홀로코스트 기념관은 왜 방문했는지 의문이다. (...) 올해가 제2차 세계대전 종료 70주년임을 언급하면서 일제의 패망은 전혀 언급하지 않고 "아우슈비츠 해방 70주년"이라는 말로 얼버무리기도 했다. 스가 요시히데 장관은 이에 대해 현 일본 정부의 반전주의를 표현한 것이라고 했으나... 앞에서 동아시아의 우발적인 전쟁 가능성 어쩌구 한 것은 아무래도 잊어줘야 할 것 같다.

그리고, 그로부터 고작 하루 후, 방위백서 한글판에 독도를 자국영토로 표기해서 공분을 사고 있다. (...) 참고로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은 방위백서에 명시한 것으로만 따져도 10년이 넘어가고 있으나 일본 정부의 방위백서를 한글판으로 배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 2015년은 한일국교정상화 50년이라는 상징적인 해이기 때문에 한국 쪽에서 먼저 대일관계를 개선해야 한다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으나 이것으로 그마저 수포로 돌아가지 않겠느냐는 말이 나오고 있다.

그리고, 최근 들어서는, 유카와 하루나 이슬람 국가 피랍 사건으로 골을 썩이는 중. 자세한 건 항목 참조. 국민을 지키기 위해서라며. 이럴거면 평화헌법 변경은 뭐하러한거야

2월 12일, 아베의 측근인 하기우다 고이치가 "일본에서는 국회의 결의에 의해 전범이 명예가 회복됐으며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발언하여 사람들의 어이를 안드로메다로 날려버렸다. (...) # 이 발언은 지난 달에 아베 총리가 담화에서 자질구레한 과거사를 담지 않겠다는 입장 표명과 연관되어 발언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으로, 미국 상하원에 판단자료를 제공하는 미 의회조사국에서 "아베의 역사수정주의는 미국의 국익에 저해된다"는 문구를 넣었는데 이를 보면 미국에서도 일본 현 정권의 역사수정주의를 명확히 인지하게 된 듯 하다.#

일본 내각부에 따르면 지난 4분기 일본의 경제성장률이 해외 주요 언론의 예상치를 크게 하회했다고 한다. # 다만 2,3분기와 달리 플러스 성장으로 돌아섰으므로 공황에 빠질 가능성은 어느 정도 면하게 되었다. 4분기 일본의 경제성장률은 연율로 2.2%를 기록했는데, 로이터에서는 당초 일본의 4분기 성장률을 연율 3.7%로 잡고, 일본의 신용등급 강등이 오히려 엔저현상으로 이어지는 호재가 되어 일본 기업의 가격경쟁력을 크게 강화할 것으로 보았다. 역시 일본의 4분기 실제 성장률이 자사의 추정치를 하회한 블룸버그 통신의 경우, 일본 기업의 실적은 개선되었으나 그것이 내수시장으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진단을 내렸다.

3월 2일, 요미우리 신문에서 아베 총리가 4월 22일에 인도네시아에서 열리는 반둥 회의에서 연설을 통해 "오는 8월 발표하는 전후 70주년 담화와 관련해 일본의 방침에 대한 세계 각국의 이해를 구할 것으로 보인다"고 예측했는데, 본격적인 담화의 일부가 될 이번 연설에서 이른바 2차 대전에 대한 반성아시아 및 태평양에 대한 공헌을 언급할 것이라고 한다. # 그 전에 대동아공영권이 정당했다고 믿는 내각의 저능아들부터 처리해야...

3월 21일 아사히 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야당의 와다 마사무네 의원이 무라야마 담화에 명시된 식민지 지배와 침략의 정의를 묻는 질의서를 제출하자, 내각이 식민지 지배 및 침략의 정의는 여러 가지 논의가 있어 대답하는 것은 곤란하다.라는 답변을 했다고 한다. (...) # 아베 총리는 2015년 4월을 기점으로 "아베 담화"를 밝힐 것으로 보이는데 이에 대해서는 굳이 새로운 담화를 추진하는 것 자체가 일본 前 내각들의 공식 입장에 총리 스스로가 불만을 가지고 있음을 암시한다는 분석도 있었다.[49]


이거 완전히 욥 트뤼니히트잖아

6. 대외/외교적 정책

정권을 잡은 뒤부터 지속적으로 한국과 중국, 대만, 더 나아가서 미국 등의 나라와 마찰을 빚는 등 일본을 외교적으로 고립시키는 장본인이다.[50] 2013년 12월 26일에 야스쿠니 참배를 강행하여 중국과의 관계는 어느 때보다 험악하다. 중국의 외교부[51]와 관영 언론은 강도 높게 일본을 비판 중. 한일 관계도 일본의 지속적인 독도 영유권 주장 및 독도 이야기 교과서 편입에 최악으로 치닫는다. 2014년 1월 20일엔 일본 정부 대변인의 '안중근은 테러리스트' 발언에 한국 정부는 이례적으로 강한 어조를 써 비판했다. 아베 본인도 1월 23일 다보스 포럼에서의 연설 뒤 기자회견에서 "중국과의 우발적 무력충돌이 있을 가능성이 있으며 아무리 경제적인 연계가 높아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강경한 태도로 나오는 중.

또한 아베 정권은 일본의 재무장을 주장하며 세계 각국에서 이러한 재무장에 지지를 얻어내고 있다. 이미 세계 각국(미국, 영국, 호주, 러시아, 아세안, 유럽연합 등)이 아베 정권의 재무장에 환영 의사를 밝혔다.

당초 전임 민주당 정권은 센카쿠 열도의 국유화로 일어난 중국과의 영토 분쟁에서 대만까지 중국 편을 들고 러시아조차 일본을 압박하는 등 동북 아시아에서 고립되는 모습을 보였으나 아베 정권은 대만에게 어업조업권을 크게 양보하여 기어코 대만과 협력하면서 중국과 대만의 협력관계를 무너뜨리는 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교과서 영유권 문제로 2014년 1월 29일에 대만 외교부가 공식항의를 하면서 협력관계를 다시 깨는 병크를 터뜨렸다. 기사

또한 동남아 국가와의 연계를 강화하여 필리핀의 일본의 재무장 찬성 지지 #를 이끌어내었고 러시아와 외교관계 개선 노력을 기울여 제2차 세계대전의 당사국이자 승전국인 러시아가 일본의 우경화 경향에도 침묵을 지키게 하였을 뿐더러 러시아와의 협력적 관계를 이끌어내었다. #

끝내 북한의 적대적 대남정책에 발목이 잡혀서 일본의 우경화와 군국주의화를 견제할 외교력을 못 내는 한국, 미국 탓에 중국과는 확실한 대립각을 세우면서도 그 밖의 국가와는 협력해 다른 나라들로부터는 (반중 감정이 얹힌) 일본의 재무장에 지지를 얻어내는 수완을 냈다. 따지고 보면 중국 위협론이 일본에게 이런 득을 주는 효과도 있다. 미국조차도 평화헌법 개정은 일본 국내사안이라고 말하면서 은근히 재무장을 바라는 눈치였다. 중국 견제해야지[52]

2020 도쿄 올림픽 유치 성공으로 일본 특유의 메뉴얼화한 전략적 외교력 자체가 녹슬지 않았음을 재확인한 성과는 있다. 평창 올림픽 때문에 아시아에서 또 올림픽을 개최하기는 형평성의 문제가 있는 데다 후쿠시마 원전 사태가 그대로라는 문제점에도 올림픽 유치전에서 압승해 일본의 외교력과 머니 파워가 어느 수준인지 다시 1번 보여주는 계기였다.

그러나 아베의 동남아 정책이 원조 비용(5년간 2조엔 예정) 대비 성과를 못내는 문제가 있다. 특히 2013년 12월 동남아 10개국 정상을 도쿄로 불러모아 우호 40주년 일본·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 특별정상회의를 열었으나 "비행의 자유와 민간항공의 안전 확보를 위한 협력강화에 합의, 해상의 안전, 항행의 자유, 국제법 원칙과 평화적 수단에 의한 분쟁의 해결"이라는 성명으로만 그치고 중국의 방공식별구역을 반대하는 데는 실패했다.# 아사히 신문에 따르면 싱가포르의 리셴룽 총리는 회의 전날 일본 정부 고관이 '중국에 민간항공사들이 비행계획서를 제출하는 걸 중지해 달라'는 요청을 하자 표정이 굳으며 "이런 요구를 미국에도 할 수 있느냐"라며 역정을 냈다고.화교계 국가에 반중 정책을 요청하다니 미쳤나요?[53]

2014년 1월 30일 참의회 질의에서 독도 '문제'를 일본 단독으로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제소하는 방안을 검토한다고 밝혔으며, 무기수출 3원칙 개정 의지도 재차 말했다.

2014년 4월, 무기수출 3원칙도 폐지해 일본의 무기수출이 가능해졌다. 이에 미국은 환영의 뜻을 재차 밝혔고 미국을 포함한 협력 국가와 일본에 호혜적일 것으로 본다는 평가를 내렸다. 무기수출 3원칙을 폐지하면서 논란이 있었던 서방과의 군수협력이나 우방국으로의 군수물자 수출을 적극적으로 밀어줄 발판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할 수 있겠다. 벌써 서방의 군수업체와 방위당국들은 탁월한 기술력을 보유하고있는 일본과의 군수협력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4월 30일자로 미일정상회담이후로 아베 정부의 집단적 자위권의 홍보와 야스쿠니 참배의 정당화 홍보를 위해서 벌떼외교를 하는 작태를 보인다. 그것도 2차대전 전승국가와 독일을 상대로 말이다.# 적극적 평화주의라는 명분을 내세우나, 사실상 집단적 자위권에 유럽의 지지를 미국과 같게 받으려는 노력일 것이다. 그러나 야스쿠니 참배에 관련해서 이를 동조해달라는 입장을 홍보하려는 행위를 과연 유럽이 인정할 지는 여전히 미지수이다.

그리고 유럽연합과의 EPA(경제동반자협정)를 2015년까지 마무리한다고 합의하였다. 프랑스와는 군수장비를 공동개발하기로 하였으며 영국과는 군수물자 융통협정을 체결하기로 하였다. 또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안보협력을 대폭 강화하여 합동훈련을 추진하기로 하였다. 유럽 순방을 끝마친 아베 신조는 적극적 평화주의에 대한 자신감을 얻었다고 밝혔으며 유럽연합도 아베 내각이 표방하고있는 적극적 평화주의, 일본이 국제 안보에 이바지하겠다는 아베 신조의 구상에 대해 지지 의사를 밝혔다.

5월 15일, 집단적 자위권 추진을 공식천명하였다. 중국, 한국은 비판적 시각을 견지한 반면에 미국을 위시한 서방세계는 환영의 뜻을 밝혔다. 미국은 아베 신조가 집단적 자위권의 추진을 공식화하자 즉각 집단적 자위권을 둘러싼 일본 내부의 논의를 환영하고 지지한다는 입장을 표명했고 '일본은 지난 60년 넘게 평화와 민주주의, 법치, 세계 안보에 상당한 기여를 해왔다'고 평가했다. 대체 언제 세계 안보에 기여했다는 것인지? 이어서 '그러나 그러한 결정은 전적으로 일본 정부와 국민들이 내릴 결정이다. 일본이 그러한 논의에 있어 평화 존중의 전통을 계속 유지할 것으로 확신한다.'라고 밝히고 한 가지 더 평가하자면 일본은 그들의 안보 정책을 설명하기 위해 관료들을 외국 수도에 파견하고 있다. 이러한 것은 국제사회가 요구하는 정책 실현의 투명성을 보여주는 노력으로 평가된다. 라고 덧붙였다. 군국주의에 대한 일각의 우려에 대해서는『이미 언급했듯이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은 투명하고 공개적으로 추진되고있기 때문에 그렇게 보지 않는다. 우리가 늘 말해 왔던 것은 불투명한 오판으로 인한 도발적 조치들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인데, 그런 면에서 일본은 이러한 내부적인 대화를 통해 확실히 올바른 일을 하고 있다.』라고 했다. 그렇게 잘 알아서 진주만 때 그렇게 퍽이나 침착했나?

6.1. 아베 독트린

아베 내각은 일본 외교안보 정책 노선의 지향점을 '적극적 평화주의'로 규정한다. 외견상의 입장은 동아시아와 세계질서에 일본이 적극적 역할을 담당하고, 그 기저에 민주주의와 평화를 지향한다. 하지만 실제 아베 내각의 정치-군사대국화는 다분히 '1) 중국위협론의 부각 및 환기, 2) 동맹국 미국의 지지'에 기대려는 경향이 크다.

이러한 소위 '아베 독트린'이 실효를 거둘 것인지는 부정하는 쪽과 긍정하는 쪽으로 의견이 갈리고 있는데, 리그베다에서 정리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6.1.1. 긍정론

일본은 한중을 지역적 반발이라고 축소해서 배제하려 하고, 일본 재무장에 대해서 우호적인 국제여론을 만들어가고 있는 중이다. 세계는 한국과 일본 간의 분쟁에 대해서 무관심할 뿐더러, 유엔분담금과 ODA 규모가 한국, 중국보다 높은데다가 상냥하고 예의바르기로 정평이 나있는 일본에 대한 호감을 가지고있다. 국제사회에서 일본은 상당히 인기가 있는 나라이다. 그래서 한국과 중국을 제외한 전세계가 아베 신조가 주창하는 적극적 평화주의에 대해서 호의적인 것이다. # 일본의 재무장에 대해서 제동을 걸 수 있는 유일한 국가가 미국인데, 미국은 일관되게 지지 의사를 표명하고있다. # 역시 가재는 게 편이다.

오히려 국제사회는 냉전시대부터 일본에 대해서 군비확장을 요구해왔었다. 전후 일본경제가 부흥하고 무역흑자가 매년 기록을 갱신하며 승승장구하게 되자, 국제사회는 막강한 경제력을 가지고있음에도 불구하고 안보를 미국에게 의존하고있는 일본에 대해서 불만을 가지게 되었던 것이다. 그들은 과거부터 일본에게 방위노력을 기울여줄 것을 여러 차례 촉구해왔고, 나카소네 야스히로가 일본이 극동의 불침항모임을 강조하고 국방예산을 1% 이상 밀어올리는 성의를 보이기도 하였으나 여전히 안보무임승차라는 비판을 받아왔던 것이 일본이였다. 지금까지 일본이 미국에게 전적으로 안보를 의존하는 관계였다면, 앞으로는 일본도 미국을 위해서, 또는 세계를 위해서 기여할 수 있는 관계로 전환하겠다는 것이 일본의 목표이다. 그러니 집단적 자위권이나 적극적 평화주의에 대한 국제사회의 반발이 전무한 것이다. 4월 30일, 싱가포르에서 개최된 아시아 안보회의에서 아베 신조는 일본의 역할론에 대해서 강조하였으며, 중국 측의 인사가 역사 문제를 거론하며 일본을 비판하였으나 아베 신조의 준비된 답변을 뛰어넘기에는 무리였고, 오히려 미국까지 가세하여 동중국해와 남중국해에서 벌어지는 중국의 일방적 행동에 대해서 비판했다.

두번째는 중국이 커지고 있으므로 한국에게 한일관계가 무의미하다는 것은 현실과 거리가 먼 주장이다. 가깝고도 먼 나라라는 일본이지만 순망치한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모든 분야에 걸쳐 밀접하게 연결되어있는 국가이다. 역대 모든 한국정권들과 일본정권들이 미래지향적인 한일관계를 언급해왔던 것도 그와 같은 이유에서이다. 1965년 국교수립 이후 많은 한국인들이 가까운 일본과의 교류를 통해서 국가건설에 요구되는 학문과 기술을 습득해왔으며 오늘날까지 한국의 정치, 경제, 안보 등 다각적인 측면에서 일본과 떨어질 수 없는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골칫덩어리 북한을 마주하고 있는 한국은 물론이고, 북핵 미사일의 사정권안에 들어 있는 일본, 동북아 안보의 중추기능을 자임하는 미국, 이 3자간 맞물린 안보 이익은 역내에서 한미일 3각 동맹을 대체할 새로운 수단이 생기기 전까지는 아직 유효하다. 한일관계는 한미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하위개념일 뿐이라는 주장은 바꿔서 말하면 최소한 한미관계를 원만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한일관계는 중요하다는 말이다. 한중일 간에도 분업체제가 구축되어있는데, 당장 일본과의 커넥션이 끊어지면 비단 한쪽뿐만 아니라 둘 모두에게 치명적인 충격이 닥치며, 한중일 간의 분업체제도 붕괴될 가능성이 크다. 이미 한일관계, 그리고 한중관계중일관계 모두 서로의 순간적으로 감정으로 어찌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한국은 미국과의 관계가 유지되는 이상 일본이 크게 필요하지 않다라는 주장도 있는데, 앞에서도 언급했다시피 한일관계는 순망치한의 관계이고 전략적 이익과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고 있는 이웃임으로 한일관계의 악화는 국가전략상 좋지않다는 것이 소위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그리고 미국은 절대로 일본을 버리지 않을 것이다. 아니, 미국 자신들과 관련있는 동맹국들 중 어느 한쪽이라도 버릴 수가 없다. 군사력은 곧 경제력인데 중국은 매년 두 자릿수로 국방예산을 밀어올리고 있다. # 미국은 한국, 일본이 모두 중국에게 종속된다면 아무리 미국이라도 막을 수 없다. 미국은 동맹국들의 협력이 없다면 중국을 견제하기 어렵다는 것이며, 때문에 일본의 재무장과 아시아 국가들의 대중국 포위망 형성을 중요시 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왕도적 패권을 지향하는 미국은 동맹국과의 밀접한 커넥션을 통해서 패권질서를 유지하고 있는 국가이다. 일본경제가 예전같지 않다는 이유로 단물빠진 껌마냥 뱉어버린다면 미국의 동맹국들이 미국을 신뢰하지 못할 것이다. 이것은 비단 일본에게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미국은 아시아 태평양 리밸런싱 전략의 핵심국가로 일본을 지목했으며, 지역평화 유지를 위한 미일동맹의 중요성을 누누히 강조해왔다. #

중국의 국제적인 압력과 국력으론 일본을 도와줄 나라는 없을 뿐더러, 역시 얼마 버티지 못할 것이라는 의견이 있다. 하지만 이것 역시 현실과 거리가 먼 주장이다. 일본과 중국은 서로를 정치적인 목적달성의 수단으로 활용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런데 이미 미국은 중일분쟁에서 일본을 보호할 것 #이라고 대못을 박은 상황임으로 아무리 중국이라도 미국이 일본을 대놓고 보호하는 이상 함부로 달려들 수가 없다. 한국 역시 중일간의 전쟁시 자의적이든 타의적이든 미국의 동맹 아래 일본을 도우러 나설 것임은 두말할 것도 없다고 아베 지지자와 일빠친일 한국인은 주장한다. 미국의 역량, 특히 외교적 능력은 아직 중국이 어찌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반대로 말하자면 미국과 아시아는 태평양을 두고 멀리 떨어져있는 관계이지만 중국은 매우 근접한 국가이니 중국의 국력에 대한 공포심이 더욱 커보인다는 것이며,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는 수단으로 아시아를 지목한 것은 매우 합리적인 일이며, 아시아로써도 미국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이 단기적으로나 장기적으로나 실익에 맞는다는 것이다.

북한과 러시아와의 대화도 추진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긴 한데, 이것은 어디까지나 전략적 이익을 위한 조치이다. 예를 들어서 쿠릴 열도를 둘러싼 분쟁을 국가 간의 대화를 통해서 진전시키고자 하는 시도라던지 외교적인 포지션 확보를 위한 시도인 것이지, 일본은 메뉴얼 사회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전략적인 외교력을 보유한 국가다. 일본은 대기업이 조용하게 후원하는 재단에서 관과 학이 일본의 비전과 일본의 가치를 체계적으로 알리고 있으며, 선진국에서는 이미 많은 일본의 지지세력을 확보하고 있다.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다보스 포럼에도 일본은 대기업과 학자들, 의원, 관이 체계적으로 대응하여 상당한 영향력을 구축하였다. 일본은 자국을 좋게 포장한 역사가 더 오래되었다는 말. 이러한 국가의 시스템이 있기 때문에 정권이 바뀌어도 일본이라는 국가는 살아있을 것이다. 아베 신조가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 자신감을 갖는 이유 중의 하나. 북한이나 러시아와의 대화가 자국의 이익과 부합하지 않는다거나, 배치되는 상황이 도래할 경우에는 능구렁이처럼 망설임없이 철회할 것이다.

이미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해서도 일본은 즉각 자국이 서방그룹의 일원이라는 사실을 확고히 선언하였다.# 일본이 중요시하는 국가는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들이지, 북한이나 러시아는 차순위일 뿐이다. 애초에 자위권은 유엔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국가의 기본적인 권리이고, 무엇보다도 평화헌법을 제정한 당사자인 미국이 지지의 뜻을 밝히고 있는 상황이다.# 여기서 중국은 그저 존재 자체만으로도 명분인 셈이고, 한국의 높으신 분들 역시 겉으로는 반발하면서도 속으로는 은근히 원하고 있을 공산이 크다고 아베 지지자, 일빠친일 한국인은 주장한다.

6.1.2. 부정론

애초에 동북아에서 한국, 중국, 일본, 미국을 빼고 '타자'란 없다. 조금 더 끼워넣어봐야 러시아 정도다.wikI:"북한"동무들 우리네 무시하는겁네까!? 끝내 한중을 지역적 반발이라고 축소해서 배제하고, 미국과 일부 소국들에게 지지를 어느 만큼 이끌어내 일본 재무장에 우호적인 국제 여론을 만들 수 있다란 생각은 대단한 망상이요, 전략 없는 외교다.[54] 진정한 성과를 위해서는 미국이 바라는 대로 한국과의 관계를 복원시켜야 하지만[55], 아베 신조의 거듭한 망발과 야스쿠니 신사 참배로 이 상태로라면 거의 못한다. 미국 입장에선 꽤 짜증나는데, 일본의 우경화도 문제지만 무엇보다 중국을 경계할 입장에서 아베의 파행으로 한국-일본과의 공조가 기본 조건인 미국의 대중국전략이 꼬여버렸다.

심지어 야스쿠니 신사 참배, 과거사 부정[56] 등으로 일관하는 아베 내각의 태도는 적극적 평화주의의 허구성을 여실히 보인다. 침략, 전쟁범죄, 여성 인권 유린 등을 부정하거나, 이에 관해 왜곡한 주장을 일삼는 아베 내각의 행태는 과거의 잘잘못을 따지는 차원을 넘어, '자유와 민주주의라는 인류 보편 가치를 공유하는 국제적인 지도국가'의 자격 자체를 의심토록 만드는 문제라서다.[57]

이러한 아베의 행동은 중국의 위협 때문에 끝내 한국이 먼저 숙이고 오리라고 생각해서라는 분석도 있다. 그러나 실제로 그럴 가능성은 없다. 크게 2가지 까닭이 있다. 하나는 한국의 국민감정. 2012년 한일 군사정보포괄보호협정 논란에서 나오듯이 일본이 과거사 청산을 않는 이상 한국 정치인이 군사적 문제에서 일본을 두둔하면 더 이상 정치인 하기 싫다고 하는 일과 마찬가지다. 그 어떤 지지율이 강고한 정치인도 그럴 수가 없다. 한국은 일본보다 군사적 능력이 훨씬 떨어질 때조차도 일제 관련해서는 일본 버르장머리를 고쳐주겠다(1995)고 강경대응 일변도로 나간 나라다. 심지어 1950년 6.25전쟁 당시에는 나라가 망하기 직전에 일본군이 온다니까, 총구를 일본군에게 돌리겠다라고 선언한 나라가 바로 한국이다.[58] 현재 군사적 격차는 사실상 사라진지 오래고, 경제적 격차도 지속적으로 줄어드는 현재, 한국이 일본에 고개를 숙일 가능성은 한마디로 잘라 말해 없다.

두번째는 한국도 중국을 경계하지만 2000년대 이후 중국에 경제 의존하게 되어 한국이 일본과 군사 동맹을 맺고 중국을 대놓고 적대시하는 것은 미친 짓이다.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을 한국의 높으신 분들 역시 겉으로는 반발하면서도 속으로는 은근히 원하고 있다는 주장, 한국 역시 중일간의 전쟁시 자의적이든 타의적이든 미국의 동맹 아래 일본을 도우러 나설 것임은 두말할 것도 없다는 아베 지지자의 주장이 있는데 개소리다. 경제적 교류 외에 정치-군사적으로 한일 관계의 필요 이상의 강화는 한국에게도 독이 될 수 있다. 이는 중국 때문인데, 한국과 중국 입장에서 서로의 중요성은 점점 높아지는 반면[59], 반대로 한국과 중국에게 일본의 중요성은 날로 떨어지고 있다. 이에 한국이 중국과의 관계에 눈치를 흘리고 있는데, 이는 미국이 대중국 포위망에서 원치 않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다가온다는 것음 의미하므로 끝내 미국이 직접 나서서 강권해야 나올 일인데, 현재 미국이 그럴 상황은 아니다. 또한 한국은 일본과는 달리 중국에 대해서도 '반드시 패퇴시켜야할 적'이라기 보다는 '중국의 군사력으로부터 자국의 안전을 보장받기 위해' 한미관계에 치중하며, 이에 대한 필요한 하위조건으로 한일관계에도 신경쓰는 것 뿐이다. 일본이 중국을 상대하기 위해 한국이 필요하다면 한국은 자국의 안전을 위해 일본이 필요할까 말까 가늠해보고 있는 상황이므로 애초에 일본과의 연합에 미련을 둔게 아니다. 한국 입장에서는 미국과의 관계만 확실하다면 일본과의 관계개선은 그다지 필요없다. 유사시 손을 벌릴 쪽은 한국이 아니라 일본이라는 이야기. 다만 미국이 한일관계 복원을 요구하여 일본에 신경쓸 뿐이다. 물론 한국 역시 중국을 경계하는 점에서는 일본과 다르지 않지만 2000년대 이후 경제 의존하게 되어 중국을 적대시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할 필요도 없다. 실제 중국이 일본을 적대시하면서도 한국에는 유화책을 펴는 것은 일본을 고립시킨 뒤 그 국가들의 동맹국들을 끌어들이는 것이 동북아시아 장악에 훨씬 유리함임을 한국이 모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는 한중관계 항목 참조해보면 이해할 수 있다. 헌데 한국은 미국과의 관계가 유지되는 이상 일본이 크게 필요하지 않다. 애시당초 중국 상대로도 부족한 건 해공군이고, 그마저도 미국의 지원과 외교적 우위 아래 방어가 목적이면 충분한 수준이다. 당장 한국군 vs 중국군 항목을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미국 역시 일본이 절박하게 필요한 것이 아니다. 1990년대까지라면 일본의 경제 규모 및 소련의 거대한 힘으로 보건대 동맹에서 이탈할 경우 미국에게 상당히 불리한 결과가 초래될 수 있었지만, 현재는 중국이 소련 급까지는 아니고 군사력은 아예 소련과 비교하기 어려운 수준이며, 일본의 경제 규모 역시 과거에 비해 크게 쇠퇴한 데다 개선될 가능성도 별로 없는지라 미국으로서는 냉전시기에 비해 굳이 일본을 필수적으로 유지할 필요는 없게 되었다.

진짜로 심각한 사태는 한-일 모두가 이탈하는데다 러시아가 전면적으로 중국편을 드는 것이고, 이 세 가지가 한꺼번에 이뤄지지만 않는다면 미국 입장에서 중국 견제는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사실 일본이 미국을 편들지 않는다 쳐도 미국은 중국을 충분히 견제할 수 있다. 반면 한국은 미국과 중국간의 전쟁에 있어서 미국에게 중요도가 상당한 지역으로써, 중국과의 전쟁을 종결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군사적 요충지이다. 물론 중국이 그저 군사적으로 밀어붙이기만 한다면 모르지만 그건 100% 확률로 제3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지기 십상인데, 중국이 과연 그런 리스크를 감수할 만큼 베짱이 있는지는 의문. 현재 중국이 동남아에서 난리를 치는 것도 실질적으로 보면 미국이 베트남 점령, 미얀마, 라오스, 캄보디아 종속 정도는 이해관계에 치명적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봐서일 가능성이 크다. 현재 중국의 대외정책은 철저하다 싶을 정도로 그 주변을 장악해 나가고, 반서방으로 전향한 중남미 국가들과의 관계를 강화하는 측면에 머물러 있다.

재무장과 보통국가화는 이루고 싶은데 자존심 때문에 마땅히 할 역사인식과 사죄를 않으며 '떼쓰는 아이'처럼 우격다짐으로만 밀어붙이려는 이런 일본의 언행은 사실상 태평양 전쟁 때의 일본 제국과 같기 때문에 아베 정권이 우경화의 길을 걸으면 걸을수록 일본의 보통국가화 및 주변 공조는 더더욱 어려울 것이다.

2014년 초까지 보인 아베의 행보는 그 사이 주변국들만의 불만 뿐 아니라 물주인 미국의 분노까지 산다는 점에서 이미 상당부분 전술했듯이 외교적으로는 오히려 일본을 서서히 국제적인 왕따로 만들 가능성이 크다.[60] 실제로 2014년 들어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아베 내각에 보인 태도는 심상치 않다.# # 그래서인지 최근엔 오바마와 미국 민주당이 아닌 다음 대선을 노리는 미국 공화당의 대중 강경파들과 가까워지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그러나 공화당이라도, "일본은 불쌍한 피해자다"는 식의 괴상하고 한심한 언론플레이와 그에 집착까지 하는 일본 우익의 사고방식은 '미국적 가치'와 도저히 못 양립할 존재이다.[61] 이들의 현 상황이 상당히 암울해서 이들과 협력해도 아베를 비롯한 일본 우익에 얼마나 도움일지도 의문이다. 또 당장 여당인 민주당에게 밉보이기는 덤이다.

사실 이는 아베정권의 최종목표가 '일본 제국'이라서 이미 어느 만큼 예상할 만했다. 현재 미국은 동아시아에서 어느 만큼 일본의 이권을 인정하는 대신, 대중국 포위망에서 일정 부분을 일본에 맡기려고 자위대의 재무장을 찬성한다. 따라서 일본이 미국의 영향력을 벗어나거나, 주변국에 행패부리면 싫어한다.[62] 그런데 일본이 주변국과 일부러 마찰을 일으켜 어그로를 다 끌어모으면서, 정작 중국 견제나 한국과의 관계 개선 등은 미국에게 떠넘기니[63], 미국 입장에선 이게 좋게 보일 리 만무하다.

마침 방공식별구역 삽질과 공산당의 부정부패 문제로 골머리를 앓던 중국은, 아베를 비롯한 일본 극우파의 자폭으로 국내의 관심이 돌아가고, 한국에서의 반일감정도 높아지자 아주 좋아하고 있다. 게다가 일본을 압박해 고립시킬 절호의 기회이고, 한미일 삼각동맹의 분열까지 노릴 만하니 외교적으로 엄청난 호재이다. 이미 중국은 아베 덕분에 동북아시아에서 상당한 외교적 이득을 거두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고립을 막겠다고 북한과 러시아에 더욱 우호적이다. 그러나 이는 아베 정부가 북한과 러시아가 어떤 나라인지 제대로 인식조차 못하고 있다는 증거밖에 안된다. 일본의 이런 행동으로 북한은 외교적 고립을 벗어나니 장성택 처형을 계기로 압박 수위를 높인 미국과 중국에게 나쁘고, 무엇보다 북한은 약속을 지킬만한 나라가 절대로 아니다. 아무리 북일관계가 개선되어봐야 북한이 일본을 실컷 이용해먹고 끝나는게 전부일 것이다. 러시아는 지리적으로나 외교적으로나 사실상 갑의 위치에서 일본과 어떤 관계라도 그만이라 일본을 가볍게 다룰 것이다. 이쪽도 일본이 붙어오면 나름대로 이용해줄 용의가 충분히 있으며 일본이 러시아와의 관계개선, 특히 고립을 막겠답시고 개선을 시도한다면 러시아쪽에서 오히려 일본의 그런 입장을 이용해먹을것이기 때문에 일본이 이득을 얻을 가능성이 많다고는 못한다. 최소한 푸짜르 치하에서는 절대로 못얻을거다. 그나마도 우크라이나 유로마이단 사태 때문에 미국-EU-NATO와 러시아는 대립하니, 러시아와 일방적으로 친밀한 분위기를 못 낸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쿠릴 열도 분쟁 문제도 있으니 러일관계가 좋아지기는 어렵다.

결정적으로 북한과 러시아는 일본 극우에게 중국과 동급, 혹은 그 이상으로 취급하는 존재들이다. 애초에 러시아는 러일전쟁때부터 중국 못지않은 일본의 라이벌(이라고 일본이 자칭하는것에 가깝지만)이었고 북한은 애시당초 자격 자체가 안 되는데다 일본인 피랍 문제 때문에[64] 극도로 껄끄러운 명백한 적국관계다. 고립 돌파하겠답시고 이들과 소통하기 시작하면 아베 신조의 지지층인 우익들이 반발할 여지가 많다는 것을 감안할때, 설령 상황이 나아진다 하더라도 그다지 극적인 관계개선은 나오기 어려울 것이다.

6.2. 대북 정책

5월 15일, 이지마 이사오 내각관방 참여가 전격적으로 북한을 방문했다. 이지마 참여는 송일호 북한 외무성 일본교섭대사와 회담할 예정이지만 송 대사보다 더 높은 직급의 인물을 만날 가능성도 있다. 김정은과의 만남이 이뤄질지의 여부에 관심이 쏠린 상황. 사실상 일본의 대북특사 파견인 셈이다. 이지마 참여의 북한 방문은 7월 참의원 선거 이전에 납북 일본인 문제를 풀겠다는 아베의 의지라는 분석이다. 일각에서는 아베가 6월에 북한을 방문해 김정은과 정상회담을 하려는 사전 작업이냐는 분석까지 있다. 실제로 아베는 "필요하다면 김정은과 정상회담을 할 수 있다"라고까지 했다. 대북 강경책을 주장해왔던 아베로서는 대단히 놀라운 행보다.

그러나 아베는 이지마의 방북을 미국과 남한에 사전 통보하지 않았다고 드러나 한미일 대북공조에 균열이 있냐는 우려가 나온다. 심지어 일각에서는 과거사 문제가 한미일 공조를 흔들 수 있다는 경고에 일본측은 '과거사 등으로 일본을 압박한다면 일본 스스로 북한에 대한 공조 체제를 흔들 수 있다'는 한미에 보낸 경고냐는 분석도 있다.

다만 이것이 엄청난 도박이라는 데에는 국제 전문가들의 견해가 일치한다. 아베가 김정은과 정상회담을 하여 북일관계 정상화 등을 통해 한국과 미국을 압박하는 데 성공한다면 아베에게 큰 득이겠지만 김정은이 과연 아베의 뜻대로 움직일지는 두고 볼 일이다. 북한이라는 변수는 늘 어디로 튈지 모르는 존재라서 자칫 잘못하면 아베 정권 자체가 말아먹힐 위험도 있다.이젠 너희들이 북한한테 삥뜯길 차례다 사실 북일관계 정상화조차도 아베에게 어떨지 모른다. 미국을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북한과 관계를 개선했기에 도가 지나친다면 미국은 이를 그냥 안 넘길 것이다. 특히 미국은 자기 안따르는 국가를 기억해뒀다가 확실히 보복하기로 유명하니 일본이 상상도 못한 뒷통수를 맞을 수도 있다. 미국이 최우방국가인 일본에게 이는 맛있는 통살이 붙은 뼈를 통째로 내주고 먹지도 않을 기름덩어리 살을, 그나마도 발톱의 때만큼만 얻는 성대한 자폭일 수도 있다는 뜻. 최우방국가와 관계가 악화할 대로 악화한다면 북일관계 정상화가 무슨 쓸모있나(...).

중국은 일본의 이러한 대화 시도 노력에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며 환영의 뜻을 밝혔고 미국은 침묵을 지키며 한국은 일본 정부 인사의 방북에 "한미일 대북공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여기서 일본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한국에게 "솔직히 말해서 뭘 말하고 싶은건지 잘 모르겠다" 며 그런 비판은 맞지 않다고 반박했다.

또한 북한은 한국의 비판에 "제3자가 관여할 바가 아니다"라는 논평을 내어 한국을 비난하였다. #

국내 언론들의 반응은 정치적 성향별로 크게 다르다. 보수적 언론들은 일본의 이러한 외교 행보에 돌출 외교라며 비판적 자세이나 진보언론들은 북한과의 대화재개 노력을 위한 첫걸음이라 평가하며 긍정적 반응이다.조선일보, 경향신문, 한겨레.

이후 북한의 김정은이 중국에 최룡해를 특사로 파견했는데 이를 두고 권철현 전 주일대사가 북한의 특사 파견은 중국에 아베의 방북을 사전 통보하려는 성격도 있는 듯하다고 말했다. 대체로 동북아 외교통들은 아베가 6월 초에 방북을 추진하리라고 본다. 미묘하게 박근혜 대통령은 한일 정상회담은 추진조차 않는 반면에 5월 미국 방문에 이어서 6월 말에 중국 방문을 할 예정이고 한(한국과 북한 둘다)-미-중의 3국 전략대화도 추진하리라는 소식이 퍼져 동북아시아 외교가 급박하게 움직였다.

최근 북일 회담이 이루어지면서 양국의 밀월 관계가 나오려는 움직임이 있다. 아베 정권으로서는 피랍 일본인 문제의 해결을 재차 도모하면서, 사실상 한국과 중국 정부에 외면받는 동북아 내 고립 상태를 타파하려는 듯하다.#

김정은이 원산시를 개방할 것이라는데 일본이 참여할 수도 있다는 시각도 있다.

7. 아직 성패를 지켜볼 경제 정책

경제적 분야에서도 적극적인 경기부양정책이 두드러진다.

당초 일본은 미국이 권유하는 TPP(다자간 FTA인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참가 여부를 놓고 저울질했다. 그러나 당시 내각이 민주당 내각인 데다가 농가의 타격이 우려인 만큼 농촌을 기반으로 하는 자민당의 반대가 많아 참여에 소극적이었으나 아베 총리는 높은 인기를 기반으로 TPP 추진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였다. 2013년 4월 TPP 참가국들의 참가 협상 승인을 받았고 # 미국은 자국 의회에 정식으로 일본의 TPP 협상 참여를 통보하였다. # 이것으로 한국의 FTA 행보(특히 한미 FTA)에 뒤처진다는 평가를 받았던 일본이 반전의 기회를 잡았다.

TPP를 성사하면 일본의 국내 총생산은 0.66%(3조 2000억엔)이 늘 테고, TPP 참여국 가운데 미일만으로 90%의 경제 규모를 차지하는 만큼 환태평양 경제권의 리더로 재도약하리라는 기대가 있다. #

하지만 이 수치조차 보수적인 예측으로 피터 페트리 미국 브랜다이스대 교수는 최근 니혼게이자이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일본의 TPPA 참여는 일본 경제 생산성을 높여줄 것"이라며 GDP를 10조엔(약 112조원) 정도 늘리는 효과가 있으리라 추산했는데 이것은 일본 정부의 예측치 3조 2천억엔의 3배를 넘는 수치다. # 일단 기대치는 그런 상황.

또한 일본의 갈라파고스화한 시장과 규정을 TPP 참여로 단숨에 글로벌 규격에 맞추는 부수적인 효과까지 노릴 수 있다. 물론 긍정적인 측면만큼 부정적인 측면도 따르겠지만.

이러한 경제, 외교에서의 실적을 바탕으로 그는 2013년 상반기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70%를 넘는 고공 행진을 이었다.

그러나 아베식 경제개혁은 좋게 끝나기 어려우리라는 예측도 크다. 양적완화인 경제부양정책은 필연적으로 장기금리상승이 나기 마련인데 일본 경제는 구조적으로 국채금리상승에 취약해[65] 미래의 불안감을 가중시킨다. 또한 세계시장 사정이 과거와는 확연히 달라 엔화 약세가 일본의 무역수지 회복으로 안 이어진다. 애초에(자국 안의 국채지만) 빚더미 나라가 돈을 더 풀어봐야 국민만 더 가난해질 뿐이다. 그렇지만 일본인들은 아베를 지지하겠지, 안될거야 아마

일본 니케이 지수는 아베가 본격적으로 아베노믹스를 밀어붙이자 하루에 3~4%가 넘는 급상승세를 펼쳐 5년 4개월만에 15000선을 돌파했다. 그러나 2013년 5월 23일, 중국 제조업 지수(PMI) 하락과 폭등세에 대한 반동 때문에 2년만에 최대급락폭인 7%까지 떨어지면서 불안감을 나타내었다. # 그러나 6월 10일 GDI(국내소득) 4.1% 증가와 전년 대비 경상 수지 흑자가 2배로 느는 등 실물 경제 회복 조짐 역시 보이며 주가는 다시 5% 증가. 이후 2013년 11월 말 다시 급반등하면서 15000선을 재돌파한 뒤 안정했다. 2014년 2월 18일 지금 기준으로는 15000선 밑에 있다.

그리고 경제성장률로 따지면 2013년 1분기는 전년동기대비 4.8%, 2분기는 3.9%, 3분기는 1.1%, 4분기는 0.3% 성장률을 보였다. 특히 4분기의 경우는 예상치인 0.7%보다 0.4%p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즉, 아베노믹스의 효과는 일시적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2013년 연간 경제성장률로 따질 경우 1.6%로 나오는데 이는 아베노믹스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인 2012년의 1.9%보다도 낮다. 아직 1년만 지나 속단할 수 없지만 학자들의 중론으론 일본 경제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이 없다면 실패하리라고 본다.

사족으로 통화 정책은 그 연구를 가장 활발히 하던 1980년대에도 한 국가의 경제 체질을 근본적으로 개선할 정책으로서는 연구되지 않았다. 정확히는 미국에 레이건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경기부양책으로 대대적인 세금 감면과 기술개발의 정부 보조 등을 약속하는 와중에 이러한 조세 정책만으로는 자본이 제대로 나타날 때까지 지나친 시간이 걸린다는 비판을 받자 (Timing Problem), 보다 단기적인 대책으로 통화 정책이 부상했다.

자세하게는 아베노믹스 참조.

8. 기타

발음, 특히 か행(카키쿠케코)이 아주 나쁘다.


그의 발음을 단적으로 알 만한 영상. 아베 지지자들도 이걸 보고 어떻게 못하냐며 한탄했다.

それが、本来の日本の姿です。
取り戻す!取り戻す!取り戻す!
日本を取り戻す!
皆様と共に総力で!
自民党!
그것이, 본래 일본의 모습입니다.
되찾는다! 되찾는다! 되찾는다!
일본을 되찾는다!
여러분과 함께 총력으로!
자민당!

본래는 이런 말이지만 2ch에서는 저 영상을 보고

それが、ほんあいのりっぽんのすあたです
とりもろす!とりもろす!とりもろす!
いっぽんをとりおろす!
みなさんともにソウルまで!
自民党!
그것이, 봉내 릴본의 모읍입니다
닭고기도 돼지고기! 닭고기도 돼지고기! 닭고기도 돼지고기!
닐본을 끌어내린다!
여러분 모두 함께 서울까지!
자민당!

이렇게 해석(...) 사실 닭고기는 돼지고기와 같다더라. 졸지에 서울 관광 홍보영상...이 아니라 서울까지 진격하자는 뜻인가? 그동안의 행적을 보면 서울까지 진격하겠다는 것도 일본을 끌어내리겠다는 것도 진심인 듯하다. 이제 보니 발음이 나쁜게 아니었네

총리 취임 뒤로 총리 관저에 안 들어가서 총리 관저의 귀신 때문에 무서워서 못 들어가냐는 소문이 나돈다. 실제로 일본 총리 관저에서 1932년 5.15 사태이누카이 츠요시 총리를 비롯해 여러 명이 피살된 이후로 이곳에서 전직 총리들이 귀신을 봤다는 소문이 있었다고.[66] 국회까지 이 문제를 거론하자 아베 총리는 귀신 때문에 관저에 안 들어가는 건 아니지만 있는 소문은 안다라 답변했다고. 한편으로 6월 1일 요미우리 TV 방송에서는 모리 요시로 전 총리가 관저에서 귀신의 다리를 봤다는 이야기를 해서 귀신 때문에 못 들어가냐는 소문이 식을 기미가 없다. 귀신은 뭐하나 아베 안 잡아가고 들어와야 잡지

리그베다 위키에 있는 역대 일본 총리 항목 가운데 당연히 가장 내용이 방대하다! 총리 가운데 한국에서 가장 인지도가 높은 인물인 이토 히로부미고이즈미 준이치로 항목보다 더 길다! 게다가 그의 정책인 아베노믹스는 따로 항목까지 있어 아베노믹스 항목까지 더한다면 엔하위키에 개설한 일본 정치인 가운데 내용이 가장 많다. 그에 건 한국의 높은 관심을 반영한다고 볼 만하다. 비판이 반 이상이라 특이한데(...) 사실 아베 총리 스스로 부른 측면이 크다. 2013년 여름까지만 해도 이 항목은 최소한 객관적인 업적을 꽤 호의적으로 적었다. 그랬던 항목이 현재 이 모양임은 그만큼 짧은 기간에 수많은 병크를 터뜨린 탓이다.

페이스북을 매우 적극적으로 쓰는 총리로 하루 평균 1.8개의 페북 소식을 올린다고. SNS는 인생의 낭비 '인터넷 재상이 분?'이라고 불릴 만큼 독보적 인기를 누리는데 늘 휴대하는 태블릿 PC로 전직 관료, 현직 야당 의원 등을 심하게 까내리면서 호평과 혹평을 함께 받는다. # 참 문제 많은 행태지만 일본의 보수와 젊은 세대들은 열광한다고. 특히 2012년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에 아베는 "폭거다. 점령하는 쪽이 도발적 행동을 하면 몰상식하다"는 글을 올렸고 반나절 만에 2만 명이 넘는 젊은이들이 "좋아요"를 연발했다.(...) 여하간 일본에선 대단히 보기 드문 유형인 인터넷 활동이라, 분명 대중적 인기를 끄는 총리다.
최일구: "사람이나 옷이나 아베가 문제다."[67]
김진철: "아베... 아베?... 할 말이 없다..."[68]
보수 성향 정치인임에도 뜻밖에 한국계라는 떡밥이 있는 정치인이기도 하다. 보통 넷 우익들의 한국계 드립은 하토야마 유키오간 나오토같이 진보 성향의 정치인에 쳤지만 아베 신조는 극우 성향임에도 한국계설이 나돈다. 대표적으로 참의원 선거 때 파칭코 업계에게 5천만엔의 정치 자금을 받았다는 루머가 있었는데 파칭코나 야쿠자 정치 자금설은 어느 정치인에게나 흔하니 비방성 루머로만 그쳤지만 한국계 떡밥을 결정적으로 불지핌은 아베 신조 1차 내각이 나온 2006년 9월 주간 아사히가 아베가에서 40년간 가정부로 일해온 구보 우메와의 인터뷰에서였다. # 인터뷰에 따르면 아베 신조의 아버지인 아베 신타로가 스스로 "자신은 조선(인)이다. 조선(私は朝鮮(人)だ。朝鮮)" 이라 말한 적이 있었으며 입관식 때 본 그의 골격이 조선인 체형이었다고.조선인 체형은 또 뭐야? 출처가 어디까지나 가십 기사로 먹고 사는 주간 아사히이니 신뢰성에 의문은 있다. 이것 말고도 그의 조부이자 개썅놈기시 노부스케와,[69] 그들의 피를 이어받은 아베가 한국계라는 주장도 있다.만약 사실이라면 아베는 엄청난 패륜을 저질렀군.
역시 같은 강경보수끼리 통한다고 조갑제 기자와 친분이 깊다. 이미 오래 전(2005년 간사장 시절)부터 서로 면식과 인터뷰를 한 경험이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2013년 집무실에서 인터뷰(녹음)도 했다. 조갑제 닷컴의 기사. 여하간 양국 관계가 나쁜 상황에서 한 아베 재취임 이래 한국언론 최초의 인터뷰다.

참고로 언사이클로피디아 일본어판은 이렇게 묘사했다. 나를 위해서 일본이 있다는 말을 적었는데, 그림을 봐도 알겠지만 딱 아돌프 히틀러를 떠올리는 내용.

8.1. "가정 내 야당" - 아키에 여사


부인 아베 아키에 여사는 한류 팬으로 유명한 걸로 알려졌는데 박용하가 자살한 뒤에 부부 명의로 조화를 보내고 부부가 함께 조문도 했다. 2012년 한일 관계가 악화하면서 남편의 정치적 위치 때문에 본의 아니게 어쩔 수 없이 한류 드라마 시청을 끊었다고 밝혔으나, 한일 관계가 다시 진정국면에 들어가자 다시 한류 드라마 시청을 재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자기 페이스북에 한국 뮤지컬을 소개하고 감상한 글도 올렸다.
가톨릭계인 세이신(聖心) 여자학원 출신. 하토야마 유키오의 부인 미유키 여사 이래로 가장 활동적인 총리 부인이다. 도쿄 금융가 뒷골목에서 우즈(소용돌이)라는 유기농 선술집도 열었으며[70] 활발한 페이스북 활동 속에 TPP나 원전 노선[71]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히는 등 진정한 가정의 야당인 모습을 보인다. #
애초에 1기 임기 취임 당시에도 "첫 해외 순방길에 나섰을 때 비행기에서 내리면서 아키에 여사가 총리의 손을 잡는 모습이 공개돼 대중을 놀라게 했다", "아침에 헝클어진 머리에 졸린 표정을 한 총리의 모습과 늦은 밤 소파에 앉아 파자마 차림으로 빙과류를 먹는 모습" 등을 대중에 공개해 인간적인 면모를 부각시켰고 "한 번은 아베 총리가 젓가락으로 고기 조각을 '로이'라는 이름의 닥스훈트 애완견에게 먹이는 사진을 아키에 여사가 게재한 적이 있다"고 한다. 정치적 의견 차이가 금슬과는 전혀 무관한 모양. 그녀의 이런 활동이 정치적으로 도움을 주는지 평가는 엇갈리지만, 적어도 아베의 강성 이미지를 완화시키는 데는 톡톡한 영향을 미치는 듯하다.
아베 퇴임 기간 미얀마의 교육정책에 석사 논문을 쓰기도 한 상당한 인텔리. 다만 불임이라고 하며[72] 개인 자격으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전쟁 반대와 평화 기원이란 목적임을 내세우는, 즉 아베의 강경함을 희석시키는 보완적 역할인 그녀의 역할이 두드러지는 부분이다.# 도찐개찐이라고 보긴 어렵고 강온차이가 있으나 상보적이며 전면적 반대는 아니다라고 봐야 옳다.
남편과는 어느 정도 다른 정치적 입장을 보였기 때문에, 둘 사이에 갈등이 있었으며 어떨때는 부부싸움까지 했다고 직접 고백하기도 했다. #
2014년 3월에 일본 외무성 관계자들이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들이 모여사는 "나눔의 집"을 몰래 방문해 일본정부의 입장만 일방적으로 발표하고 돌아간 가운데 나눔의 집 측에서 이 관계자들에게 아키에를 초청하고 싶다는 의사를 피력했다. 이 제안을 아베와 그녀가 어찌 생각할지는 미지수. 생쇼하려고 이용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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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그는 한국과 중국의 강력한 반발에도 취임 1주년을 맞은 2013년 12월에 태평양전쟁의 A급 전범 14명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를 전격 참배했다.
  • [2] 야마구치 현은 일본 근대기의 시발점이기도 하다. 이곳에는 정한론을 주장한 요시다 쇼인이토 히로부미등 여러 메이지 유신 전후에 활동한 우익'지사'들의 신사가 있는데 아베는 늘 여기에 들러 개헌 등 자신의 다짐을 확고히 한다고. 그의 정치적 성향을 잘 이해할 만한 대목이다. 이 일대는 자민당쪽 지지가 워낙 강한 지역이라 원래부터 보수왕국이라는 이름으로 불렸으며, 현재는 아베의 폭주가 워낙 강렬해서 아베왕국이라고도 불릴 정도.
  • [3] 이해가 안되면 김정은을 생각해보자. 그의 아버지가 독재 정치가라는 이유만으로 김정은의 정체성이 비난받는게 아니다. 아버지로부터 '세습'을 받았기에 비난받는 것이다. "김정일이 독재자라고 김정은을 욕하는건 인신공격이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 [4] 일본은 '개인의' 정치적 텃밭 물려주기가 굉장히 심하다. 지역유지, 토호들로 구성된 사조직(후원회)에 이권을 몰아주고 선거때 정치자금과 고정표를 보장받는 식으로 정치를 하다가 은퇴하면서 자신의 아들, 사위 혹은 비서관에게 사조직을 그대로 물려주는 식이다. 물려받은 사람도 사조직을 기반으로 편하게 당선. 노골적인 권력세습으로 자유민주당(일본) 의원의 40%가 이런 세습족들이다. 이 사람들은 사실상의 세습귀족으로 일반인들과 완전히 괴리된 삶을 살기 때문에 많은 폐해를 불러 일으키고 있다. 십사족?
  • [5]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이라면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우리가 선진국이라 떠받드는 일본에서 일어나고있는 셈. 물론 일본은 한국보다 여러 면에서 선진국이 맞긴 하나 사실 어떤 의미론 일본 정치는 한국보다도 후진적이라 볼 수 있는게 일본은 한국과는달리 민중이 들고 일어나 정부에 불만을 표출하고 뭘 제대로 갈아엎은 역사적 경험이 없다. 이 때문에 일본인들은 자신의 정치적 의견을 적극적으로 표출하는데에 있어서 소극적이며, 아베 신조같이 집안빨 말곤 아무것도 없는 인물들이 일본에서 정치할 수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라고 봐야한다.
  • [6] 아직 조선이 일본에 합병되지도 않았음에 불구하고 일본이 조선인에 대한 재판을 감행한 사건. 이것만이어도 엄청나게 큰 문제가 되는데, 당시 구라치 데츠키치 외무성 정무국장이 정부의 지시를 일본 사법부에 중개하여 실행하도록 한 것도 큰 문제가 되었다. 이는 행정부가 사법부의 독립성을 사실상 짓밟은 삼권분립의 원칙을 심각하게 침해한 것이기 때문. 하긴 이 당시 군국주의제국주의, 파벌에 미쳐돌아가던 일본에 정상적이고 상식적인 대응을 기대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긴 하다.
  • [7] PD수첩은 아베 신조가 기시 노부스케와 어릴적부터 생활하면서 기시와 요시다 쇼인의 사상을 그대로 흡수해 지금처럼 극우인사가 된 것이라고 추정기도 했다.
  • [8] 물론 요시다 쇼인은 정한론외의 다른 이론이나 능력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는 이중적인 인물이긴 하다.
  • [9] 이건 일종의 그의 컴플렉스라 할 수 있는데 솔직히 세이케이 대학은 일본에서도 3류 취급 받는 대학이고 그것도 입학시험을 쳐서 입학한 것도 아닌, 일본 특유의 중고일관제를 이용해서 입학한 것이다. 도피유학 같은 미국유학도 졸업도 제대로 못해 지금도 일본에선 그의 학력을 두고 비아냥이 많이 나오고 있다. 가문빨로 커리어를 커버첬다는 말도 많이 나온다. 그리고 이런 현상은 우리나라의 정치 수준이 일본보다 그나마 낫다는 근거로 거론되기도 한다.
  • [10] 재미있게도 아베의 후임으로 총리를 한 후쿠다 야스오 총리의 아버지다.
  • [11] 전문은 다음과 같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원폭 투하가 많은 인명의 희생을 야기했고 또한 일본 역사에서 비극이 아닐 수 없으나 전쟁을 일으킨 전범 국가로서 미국의 원폭 투하는 역사의 대 역률적 관점에서 볼 때 합당한 일이며 또한 원폭 투하로 군부의 불필요한 전쟁의지를 억제하고 전쟁을 조기에 종식시켜 많은 일본인의 생명을 구하고 또한 지금의 일본의 밑거름이 된 데에 다행으로 생각한다. 몰락 작전 맞는 말인데?
  • [12] 이 선거에서 자민당은 36석을 확보하는 데 그친다.
  • [13] 자민당이 83석, 연립여당인 공명당이 20석으로 모으면 103석, 여당계 무소속 2석을 더해 105석인데 민주당이 단독으로 확보한 의석 109석에도 못 미쳤다. 거기에 일본 공산당과 사민당이 7석, 5석을 확보했고 국민 신당과 신당 일본이 4석, 1석을 확보하고 야당계 무소속까지 모으면 139석이어서 자민당의 입장에서는 기록적 참패였다.
  • [14] 중의원 2/3
  • [15] 결정적으로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구성을 아직 시작조차 않은 상태이다.
  • [16] 여담으로 패전 60주년이었던 2005년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담화는 의외로 무라야마 담화를 그대로 답습, 계승하며 야스쿠니 신사에 (적어도 2005년 당일) 참배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그럼에도 한중의 반응은 냉랭했는데 만약 "아베 담화" 가 강경어조로 나온다면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격랑이 일 듯.
  • [17] 식민지 근대화론은 학계 일각에서 주장하는 학설이지만 식민 지배를 변호하진 않는다.
  • [18] 이 발언으로 인해 오키나와 현민들의 민심을 잃어버리기도 했다. 오키나와에서 내지(內地)라고 불리는 본토의 경우 이 날을 기점으로 미군정이 끝난 것이 사실이나, 오키나와는 그 후에도 한동안 미국의 점령하에 남아있었던 탓이다. 아베의 이 발언에 일부 오키나와 현민은 TV 인터뷰에서 "우리는 일본이 아닌거냐?" 라는 돌직구를 날리기도 했다.
  • [19] 이날 같이 온 유명인사는 그를 비롯한 일본의 정치인들 뿐 아니라 니시무라 히로유키(개최자), 빌리 헤링턴, moot, ZUN 등도 있었다.
  • [20] 1차 중일전쟁은 청일전쟁
  • [21] 이 날은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미스터 베이스볼 나가시마 시게오와 교진군을 거쳐 메이저리그 뉴욕 양키스에서 맹활약하며 월드 시리즈 MVP 등의 업적을 남긴 마쓰이 히데키가 일본 국민영예상을 받는 시상식을 가진 날이다.
  • [22] 간단히 말하면 벨기에의 국왕인 레오폴드 2세가 벨기에에서는 성군이었겠지만, 콩고에서 학살을 저지른 천하의 개쌍놈이라는 점을 보면 되겠다.
  • [23] 사실 이 법으로 인해서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 소식이 줄어들었다. 어째 은폐하려는 것 같다.
  • [24]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디비전K로 불리는 세입세출법안에서 미 국무부가 2007년 미 의회의 위안부 결의안 통과를 주목하고 국무장관이 일본의 위안부 문제 해결을 일본에 압박시키는 내용. 게다가 정식 법안에 들어간 내용이다.
  • [25] 이 의결안은 미국 정부 통합 세출법안이랑 연계해서 1월 18일까지 안 서명하면 미국은 다시 부분 셧다운이라 상원 통과 직후 오바마의 법안 서명은 기정사실인 상태였다.
  • [26] 현행 일본헌법 97조는 기본적 인권은 공권력에 의해 침해되지 않는다라고 규정한다. 이걸 삭제한다면 공권력이 인권보다 우위에 있겠다라는 소리와 같다. 즉, 민주주의를 크게 훼손하는 결과를 부를 건 뻔하다.
  • [27] 오키나와현 기노완시에 있는 후텐마(普天間) 비행장을 말한다. 1996년부터 미국과 일본은 기지 이전을 합의했지만 아직도 부지를 못 확보했다. 그래서 자민당 정부가 나고시 헤노코 해안으로 옮기고 2.05㎢의 비행장 건립을 위해 해안을 매립하는 계획안이 들어갔는데 이 공사에 거부권을 천명한 후보가 당선했다.
  • [28] 방위상 등을 지냈으며 간사장은 당내에서 서열 2위이다.
  • [29] 여기서 말하는 기득권은 기존의 권력을 독점하는 집권층이 아닌 현재의 역사(일제의 패망)를 뜻한다는 해석이 있다. 실제로 아베 정권은 역사 수정을 위해 총력을 기울인다. 앞으로 2년 사이 또 얼마나 미친 짓을 할까 솔직히 겁이 난다.
  • [30] 러일관계 개선은 동아시아에서의 외교적 고립 타파 뿐만 아니라 원전 사고 이후 에너지 문제를 해결(러시아의 천연가스)하기 위한 중요한 수단 가운데 하나였다. 그러나 이번 우크라 사태로 미국과 러시아가 대립하면서 미일 관계를 중시하는 일본이 상당히 곤란해졌다. 끝내 미국과 함께 러시아 재제에 소극적이나마 동참했다. 고노 담화를 안 수정하겠다는 공식 발언과 한미일 정상회담의 적극 추진도 러일관계가 나빠질 것을 우려해 한미일 간의 마찰에서 부담이 커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다.
  • [31] 사실 어떤 전쟁이든 무고한 사람을 성노리개로 삼는 만행은 있었지만, 안부처럼 아예 제도화시킨 만행은 일본군 뿐이다.
  • [32] 이놈은 위안부 망언 파문으로 제대로 역풍을 맞은 뒤로 계속 위안부 문제를 걸고 넘어진다. 아마 앙심 품고 찌질대는 듯하다.
  • [33] 정치적인 목적에 더해 아베의 행보는 일본 우익 세력의 한국 무시 성향을 반영한 듯하다. 사실 집권 초반부터 표면에 한일관계 개선을 앞세우면서도 아소 다로가 박근혜 대통령과의 면담에서 거의 대놓고 우리나라를 아래로 여기는 태도(총리도 아닌 주제에 마치 학생을 훈계하는 태도로 박 대통령에게 궤변을 늘어놓았다.)였다. 자세한 건 아소 다로 항목 참조. 근데 얜 원래 일본 국내에서도 개념 없는걸로 유명하다
  • [34] 호소카와는 민주당의 지원을 거부하고 우쓰노미야 겐지와의 단일화도 실패했다. 아무리 고이즈미 극장이 대단해도 호소카와 본인이 너무 오래 정계를 떠난 탓에 감을 잃었냐는 말까지 나왔다.
  • [35] 다만 원래 일본 정계 자체를 감안하면 극우와 보수의 파이가 일정한 상황 속에서 좌파와 민주계가 각각 개별로 20% 가까운 득표를 얻었으니 무시할 만한 일은 아니다. 다만 고이즈미란 거물이 나왔음에도 이런 상황이니 문제(...).
  • [36] 아베의 지원을 받아 덩달아 까이지만, 오히려 마스조에는 외국인 참정권 개방에도 긍정적인 입장이고 탈핵 이슈만 빼면 주민 복지를 강조하는 등 여러 면에서 이전의 도지사와는 입장이 다르며 도지사에 당선한 현 시점에도 탈당 당시의 (일본정계 기준에서) 진보적 정치관을 유지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도지사 당선 직후엔 아베와 자민당 일당들이 밀어붙이려는 개헌안을 '헌법의 기초도 모르는 놈들이 개헌하려 한다'고 까는 책을 출판해서 자민당 주류에선 '역시나 지원해 줬더니 뒤통수 맞았다'(…)라면서 궁시렁대는 여론이 부쩍 늘었을 정도. 사실 동아시아 주변국들이 더 우려할 일은 그 전 도지사만큼 진성 돌아이인 다모가미 도시오가 호소카와를 위협할 만큼 지지를 받았고, 특히 넷우익의 주축인 2, 30대들을 중심으로 상당한 표를 얻으며 4위로 선거를 마감했다는 점이다. 다행히 다모가미의 지지율은 혐한 시위를 반대하고 위안부 문제를 사과해야 한다라 주장해서 넷 우익의 집중적인 비난을 받는 진보 성향의 우쓰노미야 겐지보다 훨씬 낮다. 선거 결과 마스조에가 당선하고 다모가미는 4위였으나, 다모가미의 지지율은 넷 우익이 빨갱이 운운하며 까댄 우쓰노미야 득표율의 절반일 뿐이었다.
  • [37] 2월 12일 일본 법제국 차장이 나와서 헌법 해석 변경으로 집단적 자위권의 행사가 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최근 자민당 내부에서 이러한 아베의 독단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커진다. 반대파의 주장은 집단적 자위권 행사는 각의를 통한 헌법 해석 변경으로는 불가하고 정공법인 개헌이 필요하다며 신중론을 내새운다.
  • [38] 또한 이러한 행동에는 현재 국력이 하락세인 미국이 중국 견제를 위해서 일본을 향해 일정한 '선'을 못 넘으리라는 계산에 오히려 역으로 선수를 쳐서, 미국을 압박하려는 의도인 듯하다.
  • [39] 추측이지만 이는 북한과의 관계를 의식해서일 수도 있다. 같은 날 3일 일본인 납치자 피해 문제와 일본군 유골 반환을 표면 의제로 북일 적십자 회담과 함께 비공식적인 대화가 오갔는데, 이런 상황에서 북한을 자극했다간 적십자 회담과 북일 관계 개선의 토대일 비공식 대담도 흐지브지할 수 있어서다.그런데 다음 날 스위스 유엔 인권이사회 회의에서 북한을 범죄국이라고 욕했다.(응?) 북한도 이에 질세라 일본의 전쟁 범죄와 과거사 부정을 꼬집어 일본이 더 나쁜 놈이라며 맞받았다.
  • [40] 이제까지 겉으로는 고노 담화를 계승하겠다고 언급하면서 호시탐탐 검증을 통해 고노 담화 작성 과정에서 문제가 있었다는 식으로 흠집내려 하는 이중적인 태도를 보였다.
  • [41] 검증을 통해 다른 사실이 나오면 새로운 담화를 발표할 것 #
  • [42] 말이야 맞는 말이기는 하다
  • [43] 사실 과거 UN 안보리 개혁 문제에서 몇몇 국가를 추가해야 한다는 여론이 꽤 있었는데 그 중 하나로 꼽히는 국가가 일본이었다. 물론 한국과 중국은 반대했다.
  • [44] 더군다나 미국은 우경화 행보에는 우려하지만, 집단적 자위권은 지지하고 있다.
  • [45] 여전히 일본 국내에서는 평화 헌법을 지지하는 목소리가 강하다. 특히 역설적이게도 이른바 전쟁 전후 세대라 불리는 50대 이상의 장년층 / 노년층 서민층의 지지가 공고한 편. 대한민국과 마찬가지로 젊은층에 비해 장년층 / 노년층의 투표율이 높은 일본에서 이러한 여론을 무시하기는 힘든편.
  • [46] 미국의 젠 사키 국무부 대변인이 "일본의 투명한 노력을 계속 지지한다"고 발언했기에 미국과는 조율이 있었던 것이 아니냐는 얘기가 있기도 했지만 해당 발언에서 "투명한 노력"이라는 부분은 긍정적인 맥락이라기보단 우회적으로 미국 입장에서의 불만을 표한 것에 더 가깝다.
  • [47] 실제로 2014년 6월 4일 브뤼셀에서 열린 G7 정상회의에서 아베 총리는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에게 정상회담 개최를 요청했지만 미국 측에게 직접적으로 거절당했다.
  • [48] 여기는 위에서 언급된 관례를 무시하고 조금의 기다림 없이 바로 강등을 확정한 경우라서 일본 뿐 아니라 일본 국외에서도 부당하다는 말들이 많았다.
  • [49] 오코노기 마사오 게이오대학 명예교수의 발언에서 인용
  • [50] 아베는 과거 1차 내각 집권기와 퇴임 후 기간 동안 수정주의 역사관을 공유하는 극우적인 정치인 모임들을 결성, 운영해왔다. 이미 한두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아베 내각의 중진들 사이에 수정주의 역사관(일제 침략 미화 및 전쟁 범죄 부정)이 하나의 '이데올로기'로 형성된 상태이니 아베와 그 세력이 집권하는 한 일본은 계속 역사를 수정하는데 총력을 기울일 테고 주변국과의 마찰이 불가피하다. 지금이야 외교 마찰을 한중으로 제한한 상황이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2차 대전의 참전국이기도 한 미국이나 유럽으로 확산할 가능성이 높다.
  • [51] 왕이 외교부 장관이 공식석상에서 "앞으로 중국의 지도자들이 아베 총리와 대화할 일은 없을 것이다."라고 발언
  • [52] 하지만 미국 역시 일본이 하나도 반성하지 않음을 아니 섣불리 지지하지 않았다. 미국은 과거 러일전쟁 때문에 일본을 도와줬다가 제2차 세계대전에 뒷통수 세계적으로 맞은 일을 기억한다. 실제로 미국 존 케리 국무장관이나 척 헤이글 국방장관이 2013년 10월 3일 야스쿠니 신사를 대신해 치도리가후치 전몰자 묘원에 참배하여 무언의 경고를 한 바 있고, 아베가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할 때 중립이었던 미국마저도 일본을 비판했다.
  • [53] 물론 중화권 국가라고 반드시 친중이란 법은 없고, 싱가포르는 현재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계속 줄타기를 한다. 하지만 내용을 떠나서 아베가 싱가포르에 한 요구는 엄연히 주권국가인 싱가포르와 그 정부를 무시하는 외교적 결례다.(일본 우익들의 한국, 중국, 그리고 동남아 사람들을 자기들 아래로 여기는 경향이 심하게 들어간 듯하다.)
  • [54] 동북아시아의 국가들은(한국, 북한 포함) 군사적인 면에서 애초에 영향력이 없는 동남아 국가들을 별로 안 신경쓴다. 반대로 일본이 노골적으로 동남아시아에 직접적으로 손을 뻗으려 해도, 동아시아를 통틀어 미국, 중국을 넘어서는 주도권을 쥐어야만 가능하다. 이렇듯 동남아 국가들은 일본의 재무장이 딱히 직접적으로 손해볼 일이 없고, 오히려 중국 견제에 효과적이니 실리를 따져서 지지발언을 한 것. 이것은 동남아에 대한 지지기반을 쌓아놓는 일이며, 일본의 외교적 동료를 얻고 한국과 중국에게 압력을 가하는 것으로써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반대급부로 대한민국이 일본과 거리를 두면서 미국이 주도하는 중국 포위망에 균열이 생겼다.
  • [55] 미국 입장에서도 한일관계는 상당히 민감한 문제다. 가상적국으로 중국을 투사하는데 주요 파트너인 한국과 일본이 사이가 안 좋아서다. 2013년 11월 주일대사로 부임하는 존 F. 케네디의 딸 캐롤라인 케네디의 부임 행사에서 미 국무장관존 케리제발 둘 좀 어떻게 해보라고 이례적으로 거론했다. 보통은 덕담 수준만 오가는 자리인데 말이다. 관련기사
  • [56] 사실 일본이 과거사 문제에 전혀 사과한 적이 없다는 지적은 사실관계상 올바르지 않은 부분이 있다. 적어도 1990년대 고노 담화와 무라야마 담화에서는 표현상으로 다소 미흡해도, 침략과 전쟁범죄 등에 관한 일본의 국가 차원 책임을 적시한바 있어서다. 때문에 아베 수상을 비롯한 일본 우익 진영의 진짜 문제는 '사과 없음'이 아니라, '전임 정권 시절에 했던 사과의 철회와 부정'이다.
  • [57] 특히 미국과 한국 내 일각에서 일본과의 안보협력을 주장하는 근거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공유하는 우방'이라는 점임을 고려할 때, 이는 더더욱 간과하기 어려운 문제다. 그렇지 않다면 한미일 3국의 안보 협력은 단순히 북한, 중국의 군사위협만을 근거로 하는 '냉전적 세력 연대' 이상의 의미를 갖기 어렵다.
  • [58] 물론 이때는 독립한지 얼마 안되서 반일감정이 지금과는 비교도 할수없이 살벌했던 시기이니 특별한 경우라 할수 있다. 기껏 독립했는데 몇년도 안되서 일본군이 또 오겠다고 한다. 한국인들 입장에서는 저것들이 전쟁을 틈타 한국을 재침략하러 온다는 생각이 들수밖에 없지 않다.
  • [59] 군사적으로 중국에게 위협이 되는 나라는 일본이 아닌 바로 한국이다. 이는 지리적인 조건과 병력 구성 때문인데, 일본의 군사력으론 중국에 절대 전면전을 걸 수 없는데다가, 일본은 중국의 산업력이 집중된 동부해안이나 수도인 베이징을 타격할수있는 능력이 없다. 이에 반해 한국은 중국이 간단히 할 수 있는 나라가 절대 아니다. 한중간의 충돌에서 중국의 산업력이 집중된 동부해안이나 수도인 베이징 등에 어떤 식으로든 상당한 피해를 입게 될게 뻔하고, 게다가 전면전시 참전이 뻔한 미국까지 감안하면 중국 입장에서 선택하기 무척 어려운 시나리오다. 못 믿겠다고? 당장 한국군 vs 중국군중국군 vs 자위대 항목의 차이점을 비교해 보라.
  • [60] 아베 수상을 비롯한 일본 우익진영의 과거침략 미화, 반성 거부는 궁극적으로 진주만 공습을 비롯하여 2차대전 미국과의 전쟁까지 정당화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지금도 미국에는 상당수의 2차대전 참전 용사들이 살아있고, 특히 주일 미국대사 캐롤라인 케네디의 부친인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은 2차대전 해군 장교로 일본과 싸웠으며, 당시의 공로를 등에 업고 대통령에 올랐다. 여기에 2차대전 말기 일본이 수세로 몰리면서 본토가 공격받던 도쿄대공습, 원폭투하 등을 거론하며 자신들을 미국의 군사적 피해자인양 주장하는 것 역시 미국에게 못 용납할 일이다.
  • [61] 일본 우익의 사고방식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미국이 참전한 정당성을 부정하고, 일본 제국의 정당성을 옹호한다. 그러므로 일본은 미국에 침략당한 피해자이고, 미국은 일본에 사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고 방식은 공화당이나 민주당을 떠나서 어떤 미국인도 못 용납한다. 비유하자면 대 테러리스트 부대들을 향해 '빈 라덴에게 사과하라'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당장 미국에서 나이가 지긋한 중견 정치인들 가운데 2차 대전 참전자들이 정말 많다. 이들에게 무슨 수로 저런 해괴한 논리를 설득시킬까? 심지어는 미국에서 제일 높은 지위까지 올라간 일본계 정치인으로 여겨지는 다니엘 이노우에조차 2차 대전에서 미군으로 참전했다.
  • [62] 실제로 미국은 일본의 재무장에 동조하면서도 전략무기(탄도미사일, 크루즈 미사일 등)의 도입에는 부정적인 입장이다.
  • [63] 아베가 중국과 한국에 강경하게 나오는 까닭의 하나로 어차피 미국이 있어 군사적 분쟁의 가능성은 거의 없다시피하며, 외교적 분쟁은 일본의 우위라고 생각해서라는 분석도 있다. 그러나 외교력 이전에 최소한 명분에서 한국과 중국이 몇 배는 우위다.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다는 뻔한 사실조차 부정하는 일본을 지지할 나라 따윈 없으니, 일본이 이런 식으로 어그로를 끌면 끌수록 본인들에게 손해다.
  • [64] 이건 북한에게 있어서도 변명의 여지가 없다.
  • [65] 이미 국채 자체가 GDP의 2배를 넘어간 지 오래고 이 상태에서 국채금리가 올라가면 국가신뢰도가 바닥을 친다. 안 그래도 못 갚을 수준의 빚을 더 못 갚아서다.
  • [66] 하타 쓰토무 전 총리는 귀신이 나온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귀신을 직접 본 적은 없다고 말했다.
  • [67] SNL 코리아 3기 14화 Weekend Update에서 아베 크롬비의 문제를 보도하면서 한 말.
  • [68] 6월 2일 개그콘서트 오성과 한음에서 한 말. 18센치인가?
  • [69] 기시의 동생이 사토 에이사쿠가 자신도 한국계라는 이야기를 했다는 떡밥이 있다.
  • [70] 적자는 간신히 면하는 정도라고. 아베는 1년 한 뒤 적자 내면 때려치라 했다는 평가다.
  • [71] 해당 기사에 따르면 "한 야당 의원은 아베 총리가 자신의 '이너서클(즉, 아키에 여사와 고이즈미 전 총리)'에서조차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했다"고 조롱도 했으나 아베는 웃으면서 "이 두 사람이 내 인생에서 무척 중요한 인물들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정부 차원에서 우리는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을 보장시켜야 한다."라며 무마했다고.
  • [72] 그래서 자녀가 없는 총리 부부가 강아지 로이를 키운다고. 3대 세습 우려는 없다. 물론 형제세습 가능성은 충분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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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modified 2015-12-04 22:5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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