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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베 비킬라

last modified: 2014-11-22 16:23:28 by Contributors


1960년 로마 올림픽에서 마라톤 전 구간을 맨발로 달리는 모습. 어서와. 맨발은 처음이지?

아베베 비킬라(암하라어: አበበ ቢቂላ / Abebe Bikila), 1932.8.7 ~ 1973.10.25

Contents

1. 생애
1.1. 맨발의 마라토너
1.2. 최초의 마라톤 2연패
1.3. 시련과 사망
2. 여담

1. 생애

에티오피아의 전설적인 마라토너. 맨발의 아베베라는 별명으로도 유명하다. 최초의 마라톤 2연패를 달성한 선수이자 아프리카 최초의 올림픽 챔피언. 42살 생애를 마감하기까지 짧고 강렬한 영화 같은 인생을 살다 간 사람이다. 아베베 비킬라는 1932년에 에티오피아의 모우트라는 곳에서 출생했다. 원래는 하일레 셀라시에 1세 황제를 모시는 친위대에서 부사관으로 근무했었는데 한국 전쟁 때는 1년 동안 대대장 경호병으로 참전한 적이 있었다. 그 이후 재미삼아 나가본 군인 마라톤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면서 마라톤에 두각을 드러내게 된다.

1.1. 맨발의 마라토너

1960년 로마 올림픽을 앞두고 에티오피아에서 국가대표를 선발하게 되는데, 애초에 아베베 비킬라는 선발되지 않았지만 팀 동료 중 한 명이 축구를 하는 바람에 발을 다쳐서 대신 출전을 하게 된다. 그리고 이것으로 인생 한 방 역전(...) 로마 올림픽은 이전 올림픽과는 달리 특이하게도 야간에 마라톤 경기를 했는데 아베베가 결승선인 콘스탄티누스 개선문을 통과하자 사람들이 경악을 금치 못 했는데 그 이유는 그가 맨발로 껌 씹는 표정으로달려 들어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베베 비킬라는 이 대회에서 2시간 20분의 벽을 깨버리고 2시간15분16초2로 세계 신기록을 세우게 된다. 그의 금메달은 아프리카 출신 흑인이 최초로 획득한 메달이기에 아베베 비킬라는 아프리카 대륙에서도 영웅으로 추앙받게 된다.
경기가 끝난 이후 세계 언론에서는 그가 마라톤화를 살 형편이 안 될 정도로 가난했기에 맨발로 달렸다고 호들갑을 떨었지만 당시 에티오피아 대표팀의 후원사가 아디다스였기 때문에 선수들에게 마라톤화 정도는 당연히 지급되었다. 그러나 문제는 아베베가 대표팀으로 뒤늦게 합류했기 때문에 맞는 신발이 없었고, 결국 에티오피아 마라톤 감독은 맨발로 훈련해본 경험이 있는 아베베를 그냥 맨발로 달리게 한다(...)
로마에서 열린 올림픽에서 아베베 비킬라가 거둔 성과는 무솔리니 파시스트 정권 하에서 무력 침공을 당한 바가 있는 에티오피아인들에게 열광적인 환호를 받았고, 대표팀 귀국 때 에티오피아 황제가 직접 마중을 나와 그에게 왕관까지 씌워주는 등 국민 영웅으로 등극하게 된다.

1.2. 최초의 마라톤 2연패

1964년 도쿄 올림픽을 5주 앞두고 아베베 비킬라는 급성 충수염으로 수술을 받게 되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그의 마라톤 2연패를 기대하지 않았다. 그런데 아베베는 수술 후 몸도 다 회복되지 않은 상태에서 2주만에 훈련에 돌입했고, 이번에는 마라톤화를 신고[1] 운동화 버프를 받아 2시간12분11초2로 세계 신기록을 갈아치우며 세계 최초로 올림픽 마라톤 2연패를 달성하게 된다.[2] 그런데 수술을 받고 마라톤에 출전해서 우승할 줄은 아무도 예측을 못 했던 건지 주최 측에서는 에티오피아 국가를 준비하지 못 해서 에티오피아 선수를 시상대 위에 올려놓고 기미가요를 틀어버리는 병크를 터뜨리고 만다(...) 당연히 에티오피아 대표팀에서는 격분하여 주최 측에 항의했고 언론에서도 가루가 되도록 까는 바람에 이 일은 도쿄 올림픽의 흑역사로 남게 된다.
68년 멕시코시티 올림픽은 높은 고도에서 열린 대회의 환경상 선수들이 환경에 적응하느라 애를 먹었고, 아베베 비킬라도 부상으로 인해 17km까지만 뛰고 기권을 했다. 이미 나이도 나이인지라 우승을 하지는 못 했지만 페이스메이커 역할을 하면서 자국 선수 마모 웰데에게 금메달을 가져다줬다. 이로써 에티오피아는 마라톤 3연패를 달성하게 된다.

1.3. 시련과 사망


그렇게 승승장구하던 아베베 비킬라는 1969년 아디스아바바 근교에서 차를 타고 가다가 교통사고를 당하여 목이 부러지고 척추가 손상된 채로 발견된다. 극적으로 살아난 아베베에게는 육상 선수에게는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하반신 마비 판정이 내려진다. 아무도 그의 부활을 예측하지 않았지만 아베베 비킬라는 불굴의 의지로 다시 일어나 상체의 힘을 길러 펜싱, 탁구, 양궁, 눈썰매 등을 배우며 장애인 경기에 출전하게 된다. 장애를 가진 이들에게 희망이 되던 아베베 비킬라는 운 없게도 1973년 또 한 번의 교통사고를 당하며 뇌출혈을 일으켜 42세의 나이로 사망하게 된다.에티오피아에서는 차를 조심합시다 그의 장례식에는 6만 명 이상의 시민들이 참석했고, 맨발의 마라토너를 기억하는 이들은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2. 여담


  • 아베베 비킬라의 생애를 소재로 한 The Athlete이라는 영화가 2010년에 개봉되었다.

  • 마모 웰데 선수와 함께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의 성 요셉 묘지에 동상이 세워져 있는데 2007년경에 어떤 정신병자가 테러를 저질러서 아베베 비킬라와 마모 웰데의 동상의 다리가 박살이 난 적이 있었다.

  • 황제를 모시던 무관 출신이었기에 교통사고를 면했어도 맹기스투의 반란에 휘말려 죽었을 가능성이 높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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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지난 올림픽을 눈여겨 본 세계 여러 스포츠용품 회사에서 너도 나도 후원에 앞장섰다고 한다.
  • [2] 세계에서 단 두 명 있는 올림픽 마라톤 2연패 중 한 명이다. 한 명은 1976년 몬트리얼 올림픽,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에서 2연패를 차지한 동독의 발데마르 차에르핀스키. 그러나 두 올림픽이 올림픽 보이콧으로 인해 시망했던 대회이기도 하고, 마라톤 2연패 중에서 세계 신기록을 전부 갈아치운 사람은 아베베 비킬라 한 사람 뿐이다.
  • [3] 그가 죽은 지 채 1년이 지나지 않은 1974년 9월, 멩기스투가 주축이 된 군부 쿠데타로 에티오피아 제정은 폐지된다. 비킬라가 페이스메이커 역할을 해주어 68년에 우승을 거머줬던 동료 선수인 마모 월데는 멩기스투가 쫓겨난 후에 들어선 인민혁명당군이 에티오피아의 정권을 잡자 멩기스투 황실 근위대대 소속 대위였다는 이유로 양민학살 혐의를 받고 1993년에 투옥되기도 했다. 이에 IOC 측에서 그의 석방을 요청하고, 서방 세계에서도 그의 구제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나 9년이 지난 2002년에서야 풀려난다. 그리고 풀려난 지 6개월 만에 간암으로 사망한다. 불행하기는 했으나 어쩌면 인생사 새옹지마라 할 수 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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