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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파르

last modified: 2014-05-16 21:53:29 by Contributors

Contents

1. 동로마 제국의 장군
1.1. 개요
1.2. 생애
2. 프린세스 메이커 5의 왕자


1.1. 개요

Aspar(c. 400 – 471)

로마식 이름은 플라비우스 아르다부르 아스파르(Flavius Ardabur Aspar). 동로마 제국의 장군(magister militum)이자 귀족.

이 인물을 간단히 정리하자면, 동로마의 스틸리코, 또는 아이티우스라고 할 수 있다. 스틸리코처럼 비운의 충신 이미지도 없고, 아이티우스처럼 화려한 결전을 벌인 기록도 없어서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지만 그가 휘두른 권력의 크기나 집권 기간은 10년 남짓 통치한 데 불과한 스틸리코나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이어가야 했던 아이티우스 이상이다. 거의 50년 가까이 그의 일족이 동로마 제국의 실권을 장악하고 있었으며, 자기 손으로 황제를 두번 옹립했고, 결국 실패했지만 막판에는 자기 아들을 황제로 옹립하려 했으니 실로 엄청난 권신.

5세기 활약한 로마 군인들 대부분이 그렇듯이, 이민족인 알라니 족 출신으로 그 이름은 알라니 족 어로 '말의 주인', 또는 '기수'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한다.

1.2. 생애

테오도시우스 2세를 섬기던 알라니 족 군사령관 아르다부르의 아들로, 서기 424년에 부친과 함께 서로마 제국의 어린 황제 렌티니아누스 3세와 그 모후 라 플라키디아를 도와, 서로마 제국의 제위를 참칭한 황제 요한네스를 공격하는 원정을 지휘했다.

이때 서로마 제국을 도와준 것이 인연이 되었는지, 아스파르는 이후에도 서로마 제국의 내정에 종종 간섭했는데, 특히 반달족이 북아프리카를 공격하여 차지한 뒤에는 반달 왕 가이세리크와의 화평교섭에 자신이 나서기도 했다. 군사와 외교 분야에서 실적을 착실히 쌓았던 듯, 434년 무렵에는 집정관을 지내기도 했고, 테오도시우스 2세 사후에는 황제 후보로 이름이 오르내리기도 했다. 하지만 동로마 제국에서는 이단으로 탄압받던 아리우스파 기독교를 신봉했기 때문에 황제가 되지는 못했고, 대신 자신과 함께 활동했던 유력한 장군인 마르키아누스를 황제로 옹립했다. 마르키아누스 황제는 그때까지 유화책 일변도이던 대훈족 정책을 바꿔서, 아틸라를 서로마 제국 방면으로 밀어내는 등, 상당히 적극적인 정책을 썼던 군인 황제였는데, 아스파르가 이에 차지한 역할도 적지 않았다.

457년에 마르키아누스가 숨지자, 다시 그와 그의 아들을 제위에 옹립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는데, 이때도 아리우스 파 기독교도라는 출신성분이 문제된 듯, 아스파르는 그의 휘하 부대장 중 한 사람이었던 레오 1세를 옹립하는 것으로 제위 계승분쟁을 마무리짓는다. 원래 마르키아누스 황제의 사위였던 안테미우스가 유력한 제위계승자였지만, 이 사람은 대신 이후 로마 제국의 황제가 된다.

이렇듯 아스파르는 황제들을 조종해가며 470년까지 권세를 누렸는데, 470년 무렵에는 이사우리아 출신의 무장인 제노와의 권력분쟁에 휘말렸다. 이 무렵 아스파르는 제위를 손에 넣으려 했는지, 그의 아들 율리우스 파트리키우스를 레오 1세의 딸과 혼인토록 하고, 부제(副帝 ; caesar)로 옹립하려 했지만, 471년에 일어난 궁정 분쟁으로 인해 아스파르는 물론이고 그 아들들도 모두 살해되었다[1].

끝은 좋지 않았지만, 어쨌든 50년 가까이 제국을 손에 쥐고 흔든 권신답게 그 뒤에 남긴 영향도 적지 않다. 고트 왕국을 세우게 되는 오도리크 대왕이 그의 처조카에 해당되는 바, 동로마 궁정에서 성장했던 테오도리크는 그의 제자나 다름없는 인물이었고, 이후 동로마 제국의 권신, 그리고 이탈리아 반도의 군주로까지 성장하게 된다.

2. 프린세스 메이커 5의 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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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프린세스 메이커 시리즈의 왕자 중 가장 존재감이 강한 왕자로 3에서는 존재감 0라며?, 다른 시리즈의 왕자가 평범한 결혼상대였다면 아스파르는 스토리에서 어느 정도 중추적인 역할을 한다. 외모도 다른 시리즈의 왕자에 비해 좋은 편. 천계의 반란에서 목숨을 건진 후 프린세스 후보를 찾아다니고 있다.

팬들의 평가는 좋지 않은 편이다. 이유는 프린세스 엔딩을 향해 달려보면 알게 되겠지만, 요약하자면 인연이 약하다는 것. 딸에게 청혼하는 이유도 딸의 스펙이 좋아서이고, 청혼까지 가는 과정에서 이벤트도 미미한 만남 몇 번이 전부. 게다가 딸의 능력치가 일정 스탯에 도달하지 못하면 딸의 눈앞에서 아셰트 제노워즈와 함께 영화를 보러 가는 NTR 이벤트가 일어나기도 한다(…). 이전 시리즈의 왕자들도 어설프게 프린세스 루트를 타다가 능력치가 낮아서 엔딩조건을 채우지 못하면 무도회에서 다른 캐릭터와 춤추는 이벤트가 있지만 이렇게까지 대놓고 염장을 지르는 캐릭터는 아스팔이 최초. 이런 놈에게 딸을 줄 수 없다는 남자팬들의 불만도 많지만, 초등학생 혹은 중학생때부터 인연을 맺어 온 딸의 친구들에 비해 감정이입이 전혀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여성팬들의 불만도 많다(그래서 까인다. 아스팍 이라든가. 아스팔트라든가). 하지만 로쉐도 있다. 아스파르만 프린세스로 만들어주는 게 아니다.

로셰 웨하스의 경우 고전적이지만 낭만적인 연애 스토리가 있으며 딸을 금이야 옥이야 대해주고, 다른 연애 상대들도 연애 도중에 헤어지거나 이혼하더라도 연애할 당시에는 진심으로 딸을 좋아한다는 점이 느껴지는데 아스파르가 딸을 대하는 태도는 지나치게 사무적이어서 그런 티가 잘 나지 않는다.

그리고 등장할때는 남들이 안 하는 짓을 한번이라도 깐다든가 하는 선택치를 고르면 무조건 물 건너간다. 특이하게 조류랑 친한듯. 매번 등장할 때 마다 비둘기가 옆에 붙어있는걸 보면. 현실 세계에서는 고글을 항시 끼고 있다. 매번 명령조로 딸을 하대하는데. 열 받기는 마찬가지. (특히나 여성 팬들에게 대차게 까이고 있다.)

혁명자객 수장까지 죄다 딸이 족치면 진·프린세스가 되는 거시고. 알포트를 안 깼거나 패배하면 그냥 프린세스가 되어버린다. 물론 아세트는 족쳐야 함이 옳은거시고.

실제로 프린세스를 목표로 플레이한다면 친구와의 회화보너스를 활용하기 위해 남자들과의 인연을 깊게 맺어야 하며, 이러한 인연을 최소 6년 넘게 맺게 된다. 그동안 한번도 거절하지 않는다면 데이트만 대략 100번은 족히 할 수 있으며, 높은 확률로 딸에게 프로포즈한다. 그런 연인의 프로포즈를 쿨하게 차버리고 아스파르에게 가야 프린세스가 된다. 물론 단 한명의 남자와도 사귀지 않고 프린세스가 될 순 있지만 이 게임은 호흡이 길기 때문에 적은 플레이 횟수에 효율적으로 플레이해야 한다. 프린세스 엔딩 하나만 보고 플레이하기엔 플레이타임이 너무 길다. 그리고 아스파르는 무사수행 중에 등장하긴 하지만 의미 없는 수준이고, 직접 만나는 이벤트가 시작하기 전까진 눈썹 하나 비춰주지 않는다. (혁명자객이고 뭐고. 다 딸이 족쳐야 나타나는 비싼 몸이시다 보니. 타 결혼엔딩보다 더 까인다.

그리고 알포트를 딸이 쓰려트렸을때도 뒤에서 보고만 있었다. 딸이 '보고 있었으면 도와주지 왜 안도와 줬냐?'고 물어보니까 아스파르가 '위험해지면 도와주려고 했다'라고 말한다(...), 어떤 플레이어가 아스파르가 한 말을 듣고 알포트한테 일부로 졌는데 아스파르가 구해주고 집사큐브가 구하러온다.

결국 아스파르에 대한 스토리는 충실했지만, 그것이 게임상에 구현되지 않은 상태로 팬들에게 등장하여 안티가 생성된 비운의 캐릭터. 물론 잘생겼다고 좋아하는 사람이 없는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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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그러나 아들 중 파트리키우스는 부상을 입고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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