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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오키 노리치카

last modified: 2015-04-10 11:08:48 by Contributors


일본프로야구 시절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No.23
아오키 노리치카 (青木宣親 / Nori Aoki)
생년월일 1982년 1월 5일
국적 일본
출신지 미야자키 현 니시카스가이 군 요야마
포지션 외야수
투타 우투좌타
프로입단 2003년 드래프트 4위
소속팀 야쿠르트 스왈로즈 (2004~2011)
밀워키 브루어스 (2012~2013)
캔자스시티 로열스 (2014)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2015~)

2005년 일본프로야구 센트럴리그 신인왕
카와시마 료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
아오키 노리치카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
소요기 에이신
(히로시마 도요 카프)



1. 개요

미국 메이저리그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소속의 일본인 외야수.

1.1. 프로 입문 전

중학교 시절까진 상당히 자존심이 강한 스타일로 알려졌으며, 이러한 까닭에 고교시절까지 투수로 뛰었으나 와세다대에 입학하게 되면서 외야수로 포지션을 변경하게 된다.[1] 아오키를 받아들인 와세다대는 대단한 황금기를 맞게 되는데, 도쿄 6대학 야구 연맹[2][3]에서 와세다는 4연속 패권을 차지했는데, 이 때 타선에서 1번부터 6번까지가 모두 프로 지명이라는 기염을 토한 00학번 세대가 주력을 이뤘다. 아오키는 이 때 2번을 치면서 활약했었다. 그때도 높은 타율이였지만 동기이자 현재 한신 타이거즈 소속인 토리타니 다카시가 대학리그 3관왕등의 타격관련 타이틀을 싹 쓸어가는 실적에 밀려 항상 2인자에 있었던 탓에, 실적에 비해 저평가 되어 주로 타격보다는 빠른발을 평가 받고 야쿠르트에 2003년 드래프트 4위로 입단하게 된다.[4]

1.2. 일본프로야구 시절

첫해인 2004년에는 1군 출장은 적었으나 2군에서 빠른 발 외에도 원래 가지고 있던 타격 재능을 발휘해 2군 타율 .372라는 대단한 실적과 2군 올스타게임 MVP 수상 등 뛰어난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2005년에 팀 주력 외야수였던 나바 아츠노리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로 FA이적하면서 빈 외야 자리를 차지하며 시즌 초반에는 부진했으나 후반으로 갈수록 본 실력을 발휘하기 시작했으며 대학 시절을 기대한 코칭스태프가 2번을 맡겼으나 실패했으나 1번타자로 타순을 조정하며 대성공을 했다. 센트럴 리그 신기록인 99년 로버트로즈가 세운 192안타를 갱신하며 시즌 결과 202안타를 만들어 냈다.[5] 이후 2010년에 개인통산 두번째 200안타를 달성했다.[6] 그러나 214안타를 친 맷 머튼 덕분에 2005년처럼 수위타자 - 최다안타 타이틀을 동시에 석권하는 것에는 실패했다.

일본내에서는 이치로의 안티들이 이치로를 넘을 수 있다고 평가를 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치로와 거의 비슷한 공수주를 다 갖춘 플레이어면서, 나이가 이치로보다 젊고 똑딱이에 그치지 않고 스스로 장타력을 기르고 있는등, 이치로를 넘을지도 모르는 타자로 평가하는 부류도 있다. 하지만 실상 따져보면 여러면에서 이치로의 다운그레이드 버젼이라는 평가가 더 많다. 무엇보다도 일본시절 이치로는 단순 똑딱이가 아니었다. 일본시절의 통산 장타율만 봐도 아오키는 4할중반대인 반면 이치로는 5할이 넘는다.[7] 고졸로 21살부터 리그를 지배하기 시작한 이치로와 대졸인 아오키를 비교하는거 자체가 어찌보면 이치로에게 실례일듯..

2011년엔 .292/.358/.360, 4홈런 8도루에 그쳤지만 워낙 투신타병투고타저였던 2011년인지라 컨택 능력엔 크게 의문을 갖진 않는 듯. 다만 팀의 3번을 쳤다 하더라도 도루가 8개인건 센트럴리그 타자들의 도루 개수가 상당히 줄어든 점을 감안해도[8] 주루 능력은 줄어든 게 아닌가 하는 의견이 있다.

1.3.1. 밀워키 브루어스


2011 시즌 후 메이저리그 진출을 시도했고 2012년 1월 17일, 포스팅 시스템에서 250만 달러의 이적료를 써낸 밀워키 브루어스와 2+1년 계약에 합의하였다.

아오키가 메이저리그 진출을 선언했을 때 처음에는 메이저리그에 정착하기 쉽지 않을 거란 의견이 우세했다. 2011 시즌에 미네소타 트윈스로 이적한 니시오카 츠요시가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면서 좆망 일본 출신 타자에 대한 메이저리그 스카우터들의 평가가 급격하게 나빠진게 그 이유다. 그래서 메이저리그 진출을 고려했던 니시오카와 동급 나카지마 히로유키도 메이저리그 진출을 철회했을 정도였다.

사실 아오키는 라이언 브론의 약물 스캔들로 인한 50경기 출장정지 땜빵(...)으로 쓸려고 데려왔다는 설이 유력하다.[9] 하지만 그마저도 브론이 항소에서 이기면서 없던일이 되자 순식간에 낙동강 오리알이 될뻔했지만.. 여기서 또 하나 운이 따르는데, 기존 주전 우익수 코리 하트가 무릎부상을 당하게 되어 외야수비가 힘들어졌고, 그를 대신하여 아오키가 브루어스의 주전 우익수가 된다.[10]

그 이후로 브루어스의 1번 내지는 2번타자로 꾸준히 출장하여 밥상을 차리게 된다.

2012년 6월 7일 시카고 컵스와의 경기에서 선제 솔로홈런을 날리고 3대3 상황인 연장 10회말에는 MLB 데뷔 첫 끝내기 솔로 홈런을 날려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

시즌 막판 밀워키가 비스트모드를 보이며 와일드카드 경쟁을 할때 큰 활약을 했다. 한때 타율이 3할가까이 올라가기도 했을정도 였으나 막판 두경기에서 대차게 말아먹는 바람에 3할타율은 성공하지 못하였고 팀도 와일드카드 경쟁에서 미끄러져 나갔다. 그래도 팀승률 5할은 넘겼으니까..ㅜㅜ

2012년 10월 3일 시즌이 끝났고 최종성적은 타율 .288 10홈런 150안타 50타점 30도루를 기록하여 첫 MLB 풀타임 시즌을 성공적으로 보냈다. 아시아출신 메이저리거 타자 중에서는 성공사례로 꼽아도 손색없을 정도.

브루어스 중계진은 아오키의 이름을 제대로 발음(그나마도 이름은 노리치카가 아니라 그냥 노리라고 부른다)하는데 한참이나 걸렸다고 한다(...) 타 팀 중계진들은 애오키라고 발음하기도 한다(...)

2013 홈 개막전에서 3회말 콜로라도의 투수 챠신으로 부터 솔로홈런을 터트리며 첫 번째 팀홈런의 주인공이 되었다. 2013년에는 스타트는 좋았으나 작년보다는 떨어진 활약을 보였다. 시즌 최종 성적은 155경기 .286 .356 .370 8홈런 37타점 20도루. 장타력이 작년에 비해 6푼 가량 떨어졌고, 도루자도 12개나 당한 것이 흠.

브루어스의 좌익수 자리에 크리스 데이비스(2번 항목)가 새롭게 떠오르고 라이언 브론도 징계에서 복귀함에 따라 외야에 자리가 없어졌기 때문에 아오키가 트레이드 될 것이라는 전망이 시즌 종료 전부터 돌기 시작했고, 결국 시즌 이후 캔자스시티 로열스의 좌완 윌 스미스와 트레이드 되어 캔자스시티 로열스로 이적하였다.

1.3.2. 캔자스시티 로열스

구단측에선 알렉스 고든대신 1번타순에 아오키를 배치를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리드오프 자리에 아오키가 더 적임자라고 본듯. 그러나 기대와 달리 시즌 초중반엔 수비, 타격 모든 부분에서 부진한 모습을 보여줬으나 팀의 상승세와 같이 올라가더니 9월 15일부터 벌어진 시카고 화이트삭스와의 3연전에서 무려 12타수 11안타를 기록 팀 역사상 3연전에서 가장 많은 안타를 친 선수로 기록되는 등 9월 22일까지 7경기 타율 0.636을 기록할 정도로 타격에 물이 올라 시즌 막판 타격을 이끌면서 팀을 29년 만에 플레이오프에 올리는데 기여했다. 최종성적은 .285 /.349 /.360 1홈런 40타점 17도루. 하지만 월드시리즈에서는 타격이 완전히 맛이 가며 X맨, 역적이 되버렸다.

1.3.3.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2015년 1월 17일 (한국시간),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 1+1년 400만 달러의 FA 계약을 맺었다. 마이애미 말린스로 이적한 이클 모스의 공백과 안 페레즈 외에 풀타임으로 쓸 법한 좌익수가 없는 문제점을 해결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11]성적에 따라 70만 달러의 바이아웃이 붙어있는 계약이라고 하는 만큼, 라이벌 팀에 소속된 체인지업을 외치는 대한민국산 돼지와의 맞대결도 기대해볼 수 있게 된 것은 덤.

저지 넘버는 캔자스시티에서 달던 23번을 그대로 달고 출전한다.

2. 플레이 스타일

스즈키 이치로의 뒤를 잇는 하이 에버리지형 타자. 여러가지 의미로 이치로의 뒤를 이을 가장 유력한 일본형 똑딱이로 꼽히고 있다. 2009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도 한국팀을 상대로 상당히 많은 안타를 만들어 내는 활약으로 한국 야구팬들에게도 많이 알려져 있다.

홈런을 노리긴 보단 뛰어난 동체시력과 넓은 컨택트을 바탕으로 안타를 주로 노리는 스타일이다. 다른 선수와 달리 타격폼을 나눠서 사용하며 슬럼프에 빠질때마다 변경한다고 한다. 발도 빠른 편이다 보니 수비범위도 넓은 편이였는데 나이가 들면서 점점 느려짐에 따라 많이 줄어든 편.

3. 이모저모

  • 엠엘비파크 MLB타운에서는 추신수급 타자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 별명의 어원이 무엇인고 하니, 2013년 4월 말 경에 베이스볼 레퍼런스에서 계산한 아오키와 추신수의 2013년 WAR가 비슷하게 계산[12]되었다고 모 유저가 그것을 퍼왔고 추가로 dWAR 지표까지 퍼오며 키배가 벌어졌는데 WAR에 대한 신뢰를 거부하는 모 유저가 추신수와 아오키가 동급의 타자냐는 질문에 WAR를 신봉하는 다른 유저가 낚여서 "네.. 동급입니다."라 하자 이런 별명이 붙었다. 다시 말해, 추신수가 타석에서 1 이상의 OPS로 쌓아놓은 WAR를 중견수에서의 수비빨로 까먹으며 OPS가 7할대인 아오키와 비슷하게 WAR가 계산된 것을 두고 밑도끝도없이 동급이냐고 사상검증하듯이 질문하자 낚여버린 것이다.[13] 물론 이와 반대로 추신수는 아오키급 타자라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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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다양한 이유가 거론되나 가장 유력한 것은 외야수 훈련이 편해서(..)
  • [2] 와세다대와 게이오대의 정기전에서 출발한 야구리그로 와세다대, 게이오대, 메이지대, 호세이대, 릿쿄대, 도쿄대가 소속되어있다. 1925년에 출범되었는데 야구에서 시작된 대학간의 교류는 곧 확대되어서 도쿄 6대학이 일본의 상징적인 대학으로 성장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이들을 부르는 다른 명칭은 '일본의 아이비리그'다. 여담으로 와세다대와 게이오대 사이의 정기전에서 시작된 까닭에 리그 최종전은 언제나 이 두 대학의 경기로 끝나게 된다.
  • [3] 도쿄 6대학 야구 연맹의 리그전은 메이지 진구 구장에서만 치뤄지는데, 아오키는 대학때부터 무려 11년을 뛰고 있는 셈이다!
  • [4] 흥미롭게도 이치로 역시 전체 드래프트 4위였다.
  • [5] 센트럴리그에선 최초의 200안타였다. 퍼시픽리그는 94년 이치로가 210안타가 최초의 200안타였다.
  • [6] 일본 야구 역사상 최초로 200안타 시즌을 2번 가진 선수가 되었다.
  • [7] 그러나 아오키가 공인구로 피를 본 2011년을 제외한다면 풀시즌 4년간 평균 16홈런을 쳐낸 선수로 단순하게 똑딱이라고 볼 수는 없다.
  • [8] 실제로 도루 1위가 28개를 기록한 요미우리의 후지무라. 사족이지만 이 타자는 .222의 타율에 OPS 5할을 기록하는 위엄을 보여줬다...강명구??
  • [9] MLB 홈페이지에도 아오키의 프로필에 포지션이 LF로 되어있다.
  • [10] 하트는 1루수로 전향
  • [11] 엄연히 말하자면 2014년 포스트시즌에서 좌익수 포지션을 병행했던 래비스 이시카와의 주전 포지션은 1루수이지 좌익수가 아니다. OME급 외야 수비를 보여준 데엔 다 이유가 있었던 것.
  • [12] 팬그래프에서 계산한 WAR는 추신수가 더 높게 나왔다.
  • [13] 물론 스몰 샘플 사이즈 문제가 존재하는 것 또한 사실이며, 여러 전문가들의 시즌 프로젝션과 그간 쌓아온 커리어 면에서 둘을 비교하면 당연히 추신수의 압승이다. 그러나 아오키와 추신수의 4월 동안의 공수주 통틀어서의 가치를 rWAR로 논하자면 동급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 아주 틀린 것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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