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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구스토 피노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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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년 산티아고 월드컵경기장을 민간인 집단학살장으로 탈바꿈시킨 피의 독재자

아우구스토 호세 라몬 피노체트 우가르테. Augusto José Ramón Pinochet Ugarte
1915.11.25~2006.12.10 (집권 : 1973.09.11~1990.03.11 16년 185일)

칠레독재자. 살자와 칠레의 기적의 시발점이라는 두가지 평가를 받고 있는 인물이다. 1973년 9월 11일 군사쿠테타를 일으켜 민선 아옌데 정부를 붕괴시키고, 정권을 잡았다. 이후 국립 경기장에서 지식인, 좌익 인사 등의 인사를 몰아넣고, 재판도 거치지 않은 채로 사형을 집행했다. 그로써 40년간 잘 유지되던 칠레의 민주주의도 그것으로 끝이 났다. 만약 이 곳 리그베다 위키가 칠레 국적의 위키였다면 작성금지 혹은 동결항목이 됐을 것이다. 사망 후 세월이 상당히 흘렀는데도 매년 피노체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여론 조사를 실시할 때마다 계속 찬반 비율이 바뀐다. 신기한 것은 피노체트를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50%를 넘긴 적이 없는데 그렇다고 40% 이하로 내려간 적도 없다.

피노체트(Pinochet) 가문이 프랑스에서 들어와서[1] 일부 학자들은 프랑스어식으로 '피노셰'라고 읽기도 하며 피노체트 자신도 생전 그렇게 불러주는걸 더 좋아했다고 한다. 육군으로 출세했고 군사 학교에서 교수 일을 하기도 했다. 쿠데타 직후 "민주주의란 때론 피로 목욕을 해야하는 것"이라고 망언을 내뱉어 전세계적으로 지식인들에게 공분을 샀던 일이 유명하다.

Contents

1. 독재자
1.1. 철권통치
1.2. 경제성장
2. 민주화 이후
2.1. 드러나는 치부
2.2. 외교적 삽질
2.3. 죽음
3. 평가

1.1. 철권통치

1973년 9월 11일에 미국과 기득권층의 지원을 등에 업고, 군사쿠데타[2]를 일으켰다. 사회당 소속의 대통령이었던 살바도르 아옌데가 이끌던 민선 정부가 무너졌고, 좌파정당에 가입한 자들과 많은 지식인들, 예술인들이 체포되어 재판없이 처형당했다.[3] 이후 17년 동안 "내 허락 없인 낙엽 하나도 떨어질 수 없다!"고 으름장을 놓으며 칠레를 통치했다. 하여튼 이때 이미 59세의 중늙은이.

군대경찰 역할을 대신하고, 경찰도 군대처럼 기관총 들고 설쳐온 나라 칠레에서도 유래를 찾기 어려울 만한 폭력 통치로 칠레 인구 1000만명 중 3만명이 죽고, 10만명이 해외로 망명하였다. 당시 아르헨티나도 군사독재를 했는데 피노체트가 얼마나 악정을 했는지 사람들이 피노체트가 무서워서 아르헨티나로 도망갈 정도였다. 비델라도 독재자였으나 비델라가 그냥 커피였다면 피노체트는 T.O.P.이다. 사망자와 '실종자[4]'도 많이 나왔다. '쇼크 독트린'에 따르면 이 모든 폭력과 공포정치는 잘 사는 놈들끼리 다 해 먹는 조합주의 체제를 뿌리내리기 위해 필수 불가결한 것이었다고 하는데, 과연 그 때문인지 물러날 무렵 칠레에서 빈곤율은 30%에 달했다.

1.2. 경제성장

흔히 경제를 성장시켰다고 고 박정희 전 대통령과 비교하는 사람이 많다. 아닌게 아니라 한국 보수우익이라고 칭하는 언론이나 논객들도 칠레 경제 살리고, 좌파 정권 척결한 점에서 피노체트에 대하여 무척 긍정적으로 평하는 경우가 꽤 된다. 뭐 군사정권 하이던 80년대까지 한국에서는 피노체트에 대하여 비난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80년대 초반의 경제 쇠퇴에도 불구하고 피노체트 집권기의 성장률은 높았으며 이전 정권에서 라틴아메리카 평균보다 낮아졌던 1인당 GDP도 그의 집권기 후반에 따라잡는다.

정권 막바지 1인당 GDP는 둘 다 천 달러 후반 수준이었지만, 한국이 밑바닥에서 시작한 점을 본다면 박정희를 더 띄워줄 수 있다. 그러나 정책적 견지에서 본다면 박정희의 경제정책[5]은 그의 서거 직전에 종결되었고 후임자들에게 반면교사가 되었으나, 피노체트의 경제정책은 그 후임자들에게도 계승되었다는 점을 본다면 피노체트를 더 쳐줄 수 있다.

남아메리카, 아니 사실상 개발도상국 최초로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을 실행했다고도 평가받는다. 튼 프리드먼등을 중심으로 자유시장과 금융개방, 통화정책을 중시하는 시카고 대학 경제학과에서 사사한 유학파 출신들[6]을 경제 관료로 중용하면서 이전 살바도르 아옌데 인민전선 정부의 구리광산 국유화나 의료체계 개편과 같은 개혁 정책들이 취소되었고, 주요 국영기업의 민영화, 규제 철폐, 무역장벽 완화 등의 정책들이 그의 집권기에 실시되었다. [7]

피노체트를 지지하는 민중 대부분이 이 경제성장 업적 때문에 생겨났다. 1988년 피노체트의 집권 연장 찬반을 묻는 투표를 피노체트 측이 수락한 것도 이 지지기반에 대한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당한 표차로 피노체트가 졌다.) 피노체트 식 경제정책은 민주화 이후에도 계속 이뤄져서 칠레는 비록 빈부격차는 여전히 어지간한 남미급으로 심각하나 1인당 GDP 성장률과 1인당 소득은 남미 최정상급이 되었다. 80년대 이후 칠레 경제의 고성장을 칠레의 기적이라고 한다.[8]

초기의 피노체트의 개혁은 시행착오를 겪었으나[9]. 1982년후에는 좀 더 온화한 정책을 펼쳤으며, 오히려 몇 은행들과 사업들은 국유화한 후 나중에 민영화를 했다. 그리고 오히려 정부가 크레딧과 보조금을 대주어 사업들의 성장을 촉진시켰으며, 이러한 온화한 정책 덕에 칠레는 상당한 GDP 성장을 맞았다.

민주화 이후 중도좌파라 하는 Concertación Democrática가 집권했고 이들은 대략 90년대 이래 칠레 정치사에서 대부분 과반 이상 내지는 제1당 자리 및 대통령 자리를 차지하면서 주류를 차지했다. 물론 피노체트쪽의 우파들도 40% 정도의 지지를 확보하여 기반을 잃은 것은 아니었다. 이렇게 정치판이 바뀌었음에도 피노체트 시절의 경제정책은 폐기되지 않았다.[10] 오히려 이들은 시카고 보이즈가 주도한 경제개혁을 더 강화했다. 다만 복지에 대한 지출을 늘림으로서 형평성을 챙기거나 노동조합들의 이익 추구를 도와주는 법을 통과하는 등 사회문제 해결에 초점을 둔 것이 바뀌었다고 할 수 있다.[11] [12] 그 결과 가령 87년부터 2007년에 이르기까지 칠레의 평균 GDP 성장률은 6%를 유지해왔다.(당시 라틴 아메리카의 평균 GDP 성장률은 2.8%) 절대 빈곤율도 87년 45%에서 노동조합 법이 통과되고 피노체트가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난 해인 1990년에는 무려 약 7% 하락한 38.6%에서 2007년 13.7%로 떨어지고 소득 격차도 소폭 감소하긴 했다. 물론 콘세르타시온의 개혁에도 불구하고 소득 분배에 관한 근본적인 문제 해결은 요원하며 아직까지 관련 지표들은 여전히 다른 남미국가들처럼 심각하기는 하다.

그 외의 경제지표를 논하자면

실업률은 80년대 당시 위기를 겪으면서 뻥튀기 되어 20%대로 급상승했다. 이것이 80년대 피노체트 정권 말년에는 10% 밑으로 겨우 회복되었고, 민주화 이후 90년대 중반에 6%대로 내려갔다가 10%대로 급증했다.

인플레이션율은 아옌데가 퇴진한 73년 당시 약 500%에 달하던 수치에서 점차 하락하여 80년대 위기 직전까지는 10% 이하로 내려갔다가 위기를 겪으면서 잠시 20% 상승했고 여기서 다시 회복되는 형태를 보였다. 피노체트 당시의 경제 성장률만 놓고 보자면 심지어 80년대 당시의 외채 쇼크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옌데의 경제성장률보다 두 배 이상을 기록했다. 민주화 이후에는 이 수치가 더 높아졌다. 그리고 실질임금은 대체로 아옌데 시절보다 하락했고, 잘쳐봐야 정체 수준이었다.

소득분배 관련 지표의 경우 대부분 아옌데 시절보다 악화되었다. 이는 공공부문에 대한 지출 축소, 각종 복지정책의 후퇴, 그리고 80년대 쇼크 등에 기인한다. 특히 의료와 교육부문의 부실화는 지금까지도 과도한 교육비[13]와 의료비 부담 등 많은 사회문제를 안고 있다.[다만 피노체트 군사정권 당시 이뤄졌던 공공지출 감소와 무분별한 민영화는 빈부격차를 증가시키고, 칠레의 복지수준을 나락으로 이끄는 등 부정적인 영향에 한몫 했다. 현재 칠레의 GDP 대비 1인당 교육비 지출이 우리나라를 넘어섰다는 것은 이미 유명한 사실이고, 의료계급화도 뿌리박혀서 가난한 사람들이 의료혜택을 받지 못하는 일이 종종 생기고는 한다. [14]
] 그나마 절대 빈곤율 자체는 87년의 45%부터 90년까지 38%로 하락한 것을 시작으로 민주화 이후에도 콘세르타시온 정권이 최저소득계층에 대한 복지를 강화하면서 급락했다. 유아사망률 급락이나 10대 이하 취학률 지표 역시 급상승했다.

다만 사실관계를 정정해야 할 필요가 있다. 소위 시카고 보이즈라는 주류를 점하고 활약하게 된 때는 80년대 경제위기 극복 과정 이후부터다.[15] 이 점에서 아르헨티나와는 구별되는데 아르헨티나의 경제정책을 맡은 경제부 장관 오즈 본인은 경제 개혁 과정에서 재벌기업에 불리한 금융개혁이나 구조조정을 추진했으나 오히려 이들이 군사독재정권과 밀착해서 개혁을 수포로 되돌렸다.

거기에 더해 칠레의 민주화 세력이 피노체트의 경제 운용 방식에 적대적이었음에도 울며 겨자먹기로 수용한 거 아니냐는 식의 지적이 있는데 이 역시 사실과 다르다. 피노체트의 경제 운용방식에 대한 국내외적으로 회의적인 여론은 이미 민주화 당시에도 충분히 조성되어 있었고 심지어 1999년 대선에서도 여야 양쪽은 공약 등을 통해 피노체트의 자유시장 경제 기조를 유지하겠다고 했다. 다만, 복지 지출에 대한 견해 등에서 차이를 보였을 뿐.

간혹 칠레의 경제적 성공을 국가의 수출주도적 정책 등의 결과라고 한다. 물론, 규제 완화를 정책이라 볼 수 있으면 그 말은 맞다. 그러나 만약 국가의 개입을 시장 자유의 축소라는 관점에서 볼 경우 이 말은 명백히 문제가 있다. 매년 나오는 경제 자유도 순위 관련 통계를 보면 1~10위권 안팎의 초상위권 국가 중에는 북유럽 국가, 홍콩, 싱가포르, 미국 등과 더불어 반드시 칠레가 들어가 있다. 참고로 우리나라와 일본은 20위권 대 수준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경우 수출품목중 제조업이나 중화학 공업이 주류이고 그 외에도 여러가지 산업이 비교적 균형있게 발전한데 비해 칠레는 현재도 수출의 50% 이상이 구리라 형편이기 때문에 완전히 비슷하다고 보기는 매우 곤란하다. 다만, 이것도 이전에 비하면 많이 완화된 거다.

2. 민주화 이후

2.1. 드러나는 치부

피노체트는 민주화 이후에도 나에게 손을 대면 군을 장악하고 있는 내 부하들이 가만 있지 않을걸?하는 협박을 통해 한 동안 군통수권자 자리를 유지했고,[16] 그 뒤에도 종신 상원의원[17]으로 재직했다. 인권을 해친 범죄는 군사 통치 기간에 스스로 만든 사면법[18]으로 해결했다고 믿었으나...결국 죽기 얼마 전에는 재판을 받고 가택 연금 상태가 되었다. 막대한 횡령을 저질렀던 사실도 밝혀져 '청렴한 독재자'란 이미지도 잃어버렸다. 확인된 액수만 2천만 달러다. 피노체트는 이 돈을 해외로 빼돌렸다고 한다.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약 220억 원 정도.29만원씨 보다 적은데뭘.

2.2. 외교적 삽질

더군다나 포클랜드 전쟁이 발발하자 영국에 칠레의 영공을 개방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말이야 좋다지만 남미 대 유럽의 전쟁으로 인식하고 있던 대부분의 남미 국가에게는 제대로 된 역적, 팀킬이었다. 결국 칠레는 전쟁을 일으킨 아르헨티나는 물론이고 아르헨티나의 영구 우방국인 우루과이, 그리고 안 그래도 칠레와 사이가 나쁘던 볼리비아페루 기타 브라질, 콜롬비아, 파라과이 등 남미 국가들에게 격렬한 항의를 당하고 칠레를 남미의 왕따로 전락시켰다.

사실 포클랜드 전쟁 당시만 놓고 보면 아르헨티나를 지지해 준 나라는 페루 뿐이었고 다른 남미 국가들은 별로 아르헨티나를 지지하지 않았다. 포클랜드 전쟁 항목 참조. 다만 이것과는 별개로 칠레 영공 개방 행위로 인해 전쟁이 남미대륙 전체로 확대되고 남미 전체가 전쟁에 휘말릴 수도 있는 문제는 있었고, 남미 국가들이 항의했던 것도 그런 문제였던 측면이 컸다.

피노체트 정권이 끝난 이후의 칠레의 민주 정권에서는 포클랜드 영유권 문제에 있어서 아르헨티나를 지지해 왔으며, 칠레와 아르헨티나의 외교 관계도 우호적인 관계로 개선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볼리비아와의 관계는 여전히...[19]

2.3. 죽음

결국 1998년 10월 17일 디스크 치료로 방문했던 런던의 한 병원에서 스페인 국민 살해 문제[20]로 영국에서 체포되었다. 잡았다 요놈 이것도 칠레 검찰이 아니라 스페인 검찰에게 체포된 것이다. 스페인 검찰이 인터폴을 통해 영국에게 범죄자인도를 청구한 것. 이 사건은 결국 영국 족원[21]까지 갔다. 국제법상 중요한 판례로 꼽혀 국제법을 배우는 사람은 한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사건. 그러나 칠레 정부의 주장은 “피노체트 상원의원의 체포는 국제법상의 외교관 면책특권을 무시한 것”이라고 주장해서 그를 칠레에서 재판하기로 했다. (칠레 검찰은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당시까지도 피노체트파의 영향 하에 있었다.)



손녀와 위아래 다 2006년 생일 때다.

여차여차해서 병을 이유로 간신히 칠레로 돌아왔는데, 휠체어치매기까지 있던 그는 놀랍게도 고국에 닫자마자 두 발로 걸어 일어서는 기적을 보인다. 재벌 회장들의 왕선배격 오오오 이후 2006년 심장 질환으로 평안하게 세상을 떠났다. 향년 92세.욕을 많이 먹으면 정말로 장수하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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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이 푹 퍼졌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날은 12월 10일 "세계 인권 선포일"이었다. 칠레 정부에서는 피노체트의 국장은 불가함을 밝혔고 따라서 국가애도일 선포나 조기 게양도 없었다. 다만 병영에서 조기를 게양하는 건 막지 않았다. 대신 전직 군사령관이었으므로 군장을 치르는 건 허락했다. 당시 대통령이었던 미첼레 바첼레트는 "피노체트의 국장에 참여하는 건 양심에 위배된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바첼레트 대통령의 아버지는 피노체트의 군사정권 때 감옥에 끌려갔다가 심장병으로 사망했던지라...

3. 평가

어쨌든 칠레 현대사에 엄청난 영향을 남긴 사람이라 지금도 칠레 사람들 사이엔 좋아하는 사람과 싫어하는 사람들이 반반[22] 정도 존재한다. 실제로 공산주의를 막았다고 좋아하는 사람들도 꽤 있어서 그가 죽었을 때 칠레 현지의 반응은 둘로 나뉘었다.

민주화 인사들과 이들의 지지자들은 거의 축제 분위기였고,


피노체트의 지지자들은 침통해했다.


피노체트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피노체트를 '타타', 곧 할아버지라 하고, 싫어하는 사람들은 '뻬로쳇'(바로 다음각주 욕설주의)[23]라 한다. 괜히 이 이야기 칠레 사람들 앞에서 꺼냈다가 말다툼 일어날 수 있으니 꼭 이야기 하고 싶다면 사람 봐 가면서 하도록 하자. 피노체트가 독재자라는 이야기만 전해들은 한국 관광객이 칠레 식당에서 영어로 피노체트 험담을 했더니 곧바로 그 사람 멱살을 잡으려는 사람과 틀린 말도 아닌데 왜 이 사람 갖고 그러냐고 관광객을 편들어주는 사람이 동시에 나타났다고.(...)

그의 독재시절 피노체트 유머 시리즈가 유행하기도 했다.

쿠데타 직후 연설 중 피노체트 가라사대:
지금까지 우리는 낭떠러지 앞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하지만 오늘은 앞으로 발걸음을 내딛었습니다! 오오 전진하는 지도자
정권탄압에 대해 피노체트 가라사대:
이게 재라고? 천만에, 이건 바로 재(dictablanda)란 말이오! [24]
카리스마 넘치는 얼굴로 피노체트 가라사대:
꼼짝마라! 내 허락 없인 낙엽 하나도 떨어질 수 없다!
(마당 앞에 심어둔 나무에서 낙엽이 떨어지지 않게 명령을 내리고 있었음.)

이 말고도 수많은 베리에이션이 존재한다...

또한 피노키오라고 까이기도 했다. 그의 주옥같은 망언이 나올때마다 코가 길어지는 연출도 빠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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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정확히는 브르타뉴계 이민자 집안 후손이다. 참고로 브르타뉴는 그 악명높은 장 마리 르펜의 고향으로도 유명하다(...)
  • [2] 앞마당 멀티 남아메리카에 대한 사회주의의 영향력을 못마땅하게 본 미국이 지원을 했다는 의혹이 있는데 물증이 하나둘씩 나오고, 거의 사실로 밝혀지고 있다. 자세한 사항은 살바도르 아옌데 항목에 서술되어 있다.
  • [3] 칠레의 유명한 가수 빅토르 하라도 이때 군부의 손에 의해 희생당했다.
  • [4] 경찰에 끌려간 뒤 사라진 사람.
  • [5] 제3공화국은 대체로 평이 괜찮지만, 의외로 제4공화국의 경제정책은 전문가들에게 비판을 많이 받는다. 무리한 중화학 공업화, 금융산업의 셔틀화, 제2차 오일쇼크에 따른 대한민국 최초의 마이너스 성장 등등
  • [6] 이들은 "시카고 보이즈"라고 불리기도 했다. 금주법 시대 시카고를 장악한 마피아를 떠올리면 지는거다.
  • [7] 그 때문인지 비슷한 시기에 강력한 보수주의 개혁 드라이브를 걸었던 '의 여인' 마거릿 대처로널드 레이건 등과는 상당히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
  • [8] 82~2007년 칠레의 평균 경제 성장률은 대략 6%로 남미지역 평균 성장률인 2.8%를 훨씬 능가한다.
  • [9] 정책 미스 탓도 있고 더 결정적으로 볼커 실험으로 달러 가치가 폭등하면서 달러 부채를 진 남미 국가들이 전부 다 부채 위기에 시달린 탓에 남미 지역에 엄청난 경제위기가 불었다. 79년~83년 칠레의 무역은 27% 감소했고, GDP는 15% 증발했다. 그러나 볼커 전에도 군사정권이 경제를 통제하면서 인플레이션을 제어하기 위해 고정환율제를 펼친 결과[25]1975년에는 공업 생산량이 26% 감소했다. 게다가 볼커 실험의 경우에도 칠레가 다른 남미 국가보다 훨씬 더 막장이였다. 다만, 칠레의 산업이 전반적으로 구리 등 천연자원 등의 생산에 집중하는 방식으로 구조조정이 이뤄지고 있었다는 점을 보면 공업 생산량 감소가 그다지 나쁜 건 아니다. 그리고 GDP PPP 통계를 보면 알지만 칠레의 GDP PPP는 70년대 초반 아옌데 시기에 마이너스를 찍었고, 피노체트 집권 이후 남미 외채 위기 이전까지는 남미 평균 경제성장률보다 더 높은 성장률을 보였다.
  • [10] http://www.forbes.com/sites/realspin/2013/10/28/is-this-the-end-of-the-chilean-economic-miracle/
  • [11] 복지가 경제 성장에 일률적으로 무슨 영향을 주는지 어떤지에 대해서는 실증분석이나 개별 정책마다 다 다르니 뭐라 하기는 어렵다.
  • [12] 구체적으로 집권 초기에는 누진세제 등이 도입되었으나 점차 그 세율은 인하되었다. 다만 경제성장 덕에 세수는 줄지 않았다.
  • [13] 대학 등록금이 대한민국 쌈싸먹는다.
  • [14]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8&aid=0002222583 참고.
  • [15] 그 이전에는 시카고 보이즈들보다는 통제를 좋아하는 군측 인사들이 정책을 주도했다. 70년대에도 재무부 장관은 시카고 보이즈였기는 했으나 정작 밀튼 프리드먼 등 시카고 학파 네임드들이 하지 말라는 고정환율제 등을 밀어붙이는 등 삽질을 했고, 재무부 장관이 갈리고서 시카고 학파의 주문대로 변동환율제를 실시하자 이 때는 경제가 잘 굴러갔다. 정작 후임자 본인은 케임브리지대 출신이란 게 함정
  • [16] 우리나라도 김영삼 대통령이 집권하자마자 하나회를 해체하지 않았다면 이런 꼴이 났을 가능성이 크다.
  • [17] 피노체트가 만든 헌법에 따른 것이다. 칠레는 사실 아직도 상당 부분 피노체트 헌법을 따르고 있다!(이는 반 피노체트파가 20년간 장기집권했어도 의회 개헌선까지는 넘기지 못했기 때문) 비교하긴 어렵지만 이탈리아도 전임 대통령이 종신 상원의원으로 재직하는 제도를 가지고 있다. 다만 이탈리아 대통령은 입헌군주 대신. 사회 저명 인사가 뽑히지 정치인이 뽑히지 않는다.
  • [18] 1973년과 1979년 사이에 저지른 정치 범죄를 모조리 사면했다. 자기가 한 일을 자기가 사면한 것이다!
  • [19] 사실 태평양 전쟁의 영향인데, 이 전쟁으로 인해 볼리비아는 해안과 접하는 자국 영토를 잃었기 때문이다.
  • [20] 1976년 7월 칠레 민주화 운동을 돕던 스페인 국적 유엔 직원 카르멜로 소리아를 DINA(칠레 보안군)이 납치해서 고문살해한 뒤 음주운전으로 인한 교통사고 사망으로 꾸며 시체를 유기했다.
  • [21] 2009년 이전까지 영국은 귀족원(상원)이 대법원의 역할도 수행했다
  • [22] 다만 1989년부터 2009년까지 누에바 마요리아(중도좌파연합)이 계속 집권했고, 2013년 다시 재집권했을 정도로 전체적으로 반 피노체트파가 우세한 편이다.
  • [23] 개새끼 피노체트. 좀 더 매끄럽게 한국어로 바꿔 보면 '씹노쳇'이나 '개노쳇', '호로쳇' 등과 비슷한 뉘앙스일지도 모른다.
  • [24] 스페인어로 독재는 dictadura인데, 여기서 dura는 단단함이란 뜻도 있다. 말끝의 dura를 blanda(부드러운, 온순한)로 바꾼 말장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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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modified 2015-04-15 10:4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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