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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오와급 전함

last modified: 2015-07-18 18:36:52 by Contributors

Contents

1. 제원
2. 개요
2.1. 구성
2.1.1. BB-61 USS 아이오와(Iowa)
2.1.2. BB-62 USS 뉴저지(New Jersey)
2.1.3. BB-63 USS 미주리(Missouri)
2.1.4. BB-64 USS 위스콘신(Wisconsin)
2.2. 미완성된 자매들
2.3. 사고의 향연
3. 특징
3.1. 화력
3.1.1. 레이더 및 전자장비
3.2. 방어력
3.3. 속력
4. 순양전함의 이상향
5. 공고급 순양전함의 대응함설
6. 취역과 퇴역을 반복하다
7. 개조 계획
8. 퇴역
9. 다양한 포탄들
9.1. 핵포탄
10. 기타

1. 제원



구분건조시(태평양 전쟁)개수시(1980년대 이후)
함정 분류전함
기준배수량45,000t
상비배수량52,000t
만재배수량57,000t58,000t
전장270.51m
전폭32.94m
흘수선11.58m
터빈제너럴 일렉트릭 기어 증기터빈 4기, 스크류 4기
보일러밥콕 * 윌콕스 보일러 8기
출력평상시 212,000마력(158,000kW), 과부하시 254,000마력
속도33노트 (61km/h)노후화로 퇴역시에는 31노트 (57km/h)
최고속도과부하를 걸고 경하 상태시 35노트 (65km/h)
항속거리15노트(28km/h)일 때 14,890마일 (23,960km), 20노트 (37km/h)일 때 11,700마일 (18,820km)
승조원제2차 세계대전, 6.25 전쟁, 베트남 전쟁 : 2,700명(장교 포함) 1980년대 : 1,800명(장교 포함)
전자전 장비 및
기만체계
없음AN/SLQ-32(V), AN/SLQ-25 닉시, Mark 36 SRBOC
주포Mark 7 16인치(406mm) 50구경장 3연장 주포탑 3기 (총 9문)
부포Mark 12 5인치(127mm) 38구경장 2연장 부포탑 10기 (총 20문)Mark 12 5인치(127mm) 38구경장 2연장 부포탑 6기 (총 12문)
대공포40mm 56구경장 보포스 대공포 80문제거
대공기관포20mm 70구경장 오리콘 대공기관포 49문제거
순항 미사일없음BGM-109 토마호크 순항 미사일 32발
대함 미사일없음RGM-84 하푼 대함 미사일 16발
CIWS없음팰렁스 20mm CIWS 4문
장갑현측 주장갑 : 310mm
방수격벽 : 290mm
주포탑 바벳 : 295mm ~ 439mm
주포탑 전면 : 500mm
갑판 : 190mm
함재기보우트 OS2U 킹피셔 or 커티스 SC 시호크 수상기 3기6.25 전쟁, 베트남 전쟁 : 헬리콥터 3대
걸프전쟁 시기 : RQ-2 파이오니어 UAV 5기

출처는 위키피디아.

2. 개요

미국 해군이 제2차 세계대전 때에 건조한 미국 해군 최대 크기의 크고 아름다운[1] 전함. 함급의 이름과 1번함 아이오와의 이름미국아이오와 주에서 따왔다.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런던 해군 군축조약이 붕괴되면서 조약에서 탈퇴한 국가가 해전에서 우위를 잡는 것을 막기 위해 최후까지 조약에 남았던 영국과 미국간에 맺어진 협정에 따라 16인치 주포, 45,000톤 미만의 전함을 보유할 수 있게 되면서 건조가 시작되었으며, 취역과 퇴역을 반복하면서 1990년대까지 현역에 존재했던 고속전함이다.

2.1. 구성

총 6척이 계획되었지만 BB-61 USS 아이오와, BB-62 USS 뉴 저지, BB-63 USS 미주리, BB-64 USS 위스콘신 함까지만 건조, 실전에 투입되었다. 태평양 전쟁이 종전에 가까워지고, 전함에 대한 효용성이 줄어듬에 따라 5번함 BB-65 USS 일리노이, 6번함 BB-66 USS 켄터키 함은 건조가 중단되었다.

2.1.1. BB-61 USS 아이오와(Iowa)

(ɔ) Unknown (Official U.S. Navy Photograph, now in the collections of the National Archives.) from
건조1940년 6월 27일진수1942년 8월 27일취역1943년 2월 22일
퇴역1990년 10월 26일 3차 퇴역제적2006년 3월 17일전시California주 Los Angeles

받은 훈장

2.1.2. BB-62 USS 뉴저지(New Jersey)

(ɔ) US Navy from
건조1940년 9월 16일진수1942년 12월 7일 취역1943년 5월 23일
퇴역1991년 2월 8일 4차 퇴역제적1999년 1월 4일전시New JerseyCamden

받은 훈장

2.1.3. BB-63 USS 미주리(Missouri)

(ɔ) Camera Operator: EM2 KENNETH D. MEHL (Released to Public) from
건조1941년 1월 6일진수1944년 1월 29일취역1944년 6월 11일
퇴역1992년 3월 31일 2차 퇴역제적1995년 1월 12일전시HawaiiPearl Harbor

받은 훈장

Big Guns - Battleship USS Missouri Shock & Awe

Battleship Missouri Memorial

3번함인 USS 미주리 함은 일본제국이 공식적으로 항복한 장소이기도 하다.

© Kkmd at English Wikipedia. The original uploader was Kkmd at English Wikipedia (cc-by-sa-3.0) from
일본 대표가 항복문서에 서명한 장소. 전쟁은 여기서 끝났다.

당시 전쟁에서 그다지 활약하지도 않은 미주리에서 항복식전이 열리는 데에 반대하면서, 전쟁에서 활약한 무훈함에서 식전을 열자는 의견도 상당히 있었다[2]. 하지만 역시 최신예 전함이라는 상징성 때문인지 미주리가 최종적으로 선택되었고, 다른 전함의 승조원들은 트루먼의 고향이 미주리라서 그런 것이라고 불평했다.

굳이 항복 조인식을 해군 함정에서 한 이유는 해군이 주축이 된 전장이었음에도 전후 일본을 통치하기 위해 설치된 GHQ의 수장으로 육군 원수더글라스 맥아더 장군이 해군 원수 체스터 니미츠 제독을 제치고 선출되는 등 해군의 주목도가 떨어지는 것에 대한 불만을 무마하기 위함이었다.

1945년 4월 11일 오키나와 전투 당시 미주리로 돌진하는 카미카제제로센

당시의 급박한 상황을 잘 보여주는 유명한 사진으로 USS 벙커힐 함과 함께 가미카제 공격의 사례를 언급할 때 자주 등장한다. 이 장면 직후 제로센은 충돌했으나 미주리는 페인트가 벗겨지는 정도의 경미한 피해를 입었다. 괜찮아, 튕겨냈다!

2.1.4. BB-64 USS 위스콘신(Wisconsin)

(ɔ) from
건조1942년 1월 25일진수1943년 12월 7일취역1944년 4월 16일
퇴역1991년 9월 30일 3차 퇴역제적2006년 3월 17일전시Virginia주 Norfolk 해군박물관

받은 훈장

2.2. 미완성된 자매들

5번함인 BB-65 일리노이는 1945년 1월 15일에 착공했다가 1945년 8월 11일에 건조중단, 1958년까지 22% 건조 상태로 방치됐다가 1958년 9월에 최종적으로 고철 처리되었다. 6번함 BB-66 켄터키는 1944년 12월 6일에 착공해서 1947년 2월 17일에 건조중단되었다. 5번함보다 6번함이 먼저 착공하게 된 것은 조선소의 선거 여유 때문이다. 함번의 부여는 1940년 최초 발주 당시에 이미 결정되어 있었으므로 실제 두 척 모두 완공되었다면 5번함보다 6번함의 취역이 빨랐을 수도 있는 셈이다.

특히 6번함 켄터키는 5번함 일리노이보다 더 많이 만들어진 거의 선체 완성 직전에서 건조중단되었기 때문에 1950년 BB-63 미주리가 뻘밭에 걸리는 사고를 당해 보수를 받아야 하는데 남는 건선거가 없는 불상사(...)를 겪자 간단한 방수공사만 한 후 강제 진수, 이후 보존처리되었다.

이후 대공 미사일을 대량 장착한 방공전함으로서 개조가 검토되기도 했다가(위키피디아 링크) 1956년 동급함인 BB-64 위스콘신이 충돌사고를 일으켜 함수를 잃자 신속한 재취역을 위해 함수를 위스콘신에 이식한 후 폐함 수순을 밟아 1958년에 일리노이와 함께 고철로 처분됐다.

하지만 켄터키와 일리노이의 주기관은 반씩 쪼개져서 새크라멘토급 대형 군수지원함 4척의 주기관으로 재활용되었다. 새크라멘토급도 배수량과 크기가 전함 수준의 대형함이므로 당시에 얻을 수 있던 대형엔진이 아이오와급의 주기관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2.3. 사고의 향연

워낙 오랜 기간 사용한 전함이기 때문에 의외로 한 번씩은 큰 사고를 겪은 일이 있다.

플레처급 구축함 USS 윌리엄 D. 포터 DD-579

취역한 아이오와가 루즈벨트 대통령을 태우고 있었던 1943년 11월, 플레처급 구축함 윌리엄 D. 포터(DD-579)가 원래대로라면 가상적함인 아이오와에 어뢰를 쏘는 척만 하는 훈련이 있었는데 실수로 실제 어뢰가 든 상태로 근거리에서 발사 되었고 무선 침묵 상태로 상황을 파악 못하던 아이오와는 그제서야 어뢰가 발사 되었다는 것을 확인하고 회피 기동을 실시 어뢰를 피했고 어뢰는 전함의 300미터 부근에서 폭발하였다. 대열에 돌아온 아이오와는 9문의 16인치 함포를 포터에 겨누었다고 한다. 곁다리지만 이 포터함의 전적이 좀 비범한데(...), 직접 확인해 보자. 앞의 일화도 포함되어 있다.

(ɔ) from
1950년 뻘밭에 걸린(...) 미주리

1950년 1월 미주리는 버지니아주 체서피크 만에서 지정된 수로를 따라 항해하며 음문을 녹음하는 작업을 수행하고 있었다. 그런데 수로를 표시한 부이 중 2개가 없어졌음에도 불구하고 함선에선 이를 알아차지 못했고, 함장이 함의 방향을 잘못 정하는 바람에 얕은 갯벌에 좌초하고 말았다. 인원과 주요 물자들을 하역시킨 다음 17일 동안 준설과 인양 작업을 한 끝에 간신히 빠져나올 수 있었다. 이 당시 함장은 무능한 인재는 아니었지만 겨우 구축함급의 지휘 경험만 있었던 사람이었고, 당연히 이후 해임당했다.

(ɔ) Source from
함수가 아작난 위스콘신

1956년 대서양에서 기동 훈련을 하던 도중, 구축함 이튼과 충돌해 함수가 대파당했다. 이튼이 조함 실수로 인해 위스콘신 바로 앞을 지나게 되었고, 속도를 줄이지 못한 위스콘신이 그대로 들이받은 것. 이튼은 대파당해서 예인선에 끌려가 간신히 회항하였으며, 위스콘신은 자력으로 회항해 미완성된 캔터키의 함수를 잘라다 붙여서 수리를 하였다.

(ɔ) LT. Thomas Jarrell from
주포가 폭발하는 아이오와

1989년 4월 19일, 1번함 아이오와의 주포 사격 훈련 도중 2번 주포탑 중앙 주포가 폭발했다. 이 사고로 2번 포탑 요원 47명 전원이 사망. 아이오와는 그 후 지금까지 2번 주포탑이 사용 불능 상태이다.차라리 3번 주포탑이 터지면 항공전함 개조라도 하지

사고의 원인은 포탑 요원 전원이 사망한 관계로 현재까지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했다. 단지 포격 전에 시간을 더 달라든지, 아직 준비가 안되었다 등등의 음성연락이 남아 있어 숙련되지 않은 조작원이 장전이나 발사관련 기기를 잘못 만져서 생긴 사고라는 등의 예측들만 즐비할 뿐이다.

원래 이 사건은 포탑 승조원 중 한 명이 복무 부적응으로 자살하려 벌인 일이라는 가설이 힘을 얻었다. 게다가 해당 승조원은 동성애자 의혹을 받고 있었다. 다른 승조원을 사랑했다가 이를 인정받지 못하자 자살했다는 것. 당연하게도 해당 수병의 유가족이 크게 분노하여 진상규명을 강력히 요구하면서 장약 장전중에 압력이 잘못 가해지면 폭발할 수도 있다.라는 가능성이 알려져 해당 승조원은 일단 누명을 벗었다. 원래 16인치 주포는 탄두와 장약이 분리되어있고 사거리에 따라서 각기 다른 숫자의 장약 뭉치를 포의 약실로 집어넣는 방식을 쓰는데 이 과정을 사람이 직접 유압 기계를 조종해서 수행하기 때문에 이 과정에서 실수가 벌어지면 포탄을 약실로 밀어넣는 밀대가 장약을 짜부러트려서 폭발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 이게 실제로 가능하다는게 밝혀져서 현재로서는 이것이 진상일 가능성이 제일 높다고 알려져 있다. 참조.

3. 특징

최후의 고속전함이고 건조 당시 미국의 기술을 총집합했기 때문에 다양한 특징을 가진다.

3.1. 화력

(ɔ) PH1 Jeff Hilton from


아이오와급의 16인치 주포탑 구조


주포인 Mark 7 16인치(406mm) 50구경장 함포는 16인치 중 가장 강력한 함포로, 1,224.5kg의 중량을 자랑하는 초중량탄인 Mark 8 철갑탄을 장비하면 일부 영역에서 18인치 함포의 위력을 발휘한다. 또한 최대 사정거리도 45도 각도로 발사시 38,720m라서 당시 전함의 함포중 사정거리가 2위였다. 그리고 무거운 탄을 강력한 힘으로 멀리 발사함에도 불구하고 발사속도도 분당 2발로 평균적인 발사속도다.출처 주포의 수량도 3연장 주포탑 3기로 총 9문을 탑재해서 당시의 기준으로는 충분했다.

거리측면장갑갑판장갑충돌속도충돌각도
0m829mm명중불가2,500fps (762mps)0
4,572m747mm17mm2,280fps (695mps)2.5
9,144m664mm43mm2,074fps (632mps)5.7
13,716m585mm71mm1,893fps (577mps)9.8
18,288m509mm99mm1,740fps (530mps)14.9
22,860m441mm131mm1,632fps (497mps)21.1
27,432m380mm169mm1,567fps (478mps)28.25
32,004m329mm215mm1,555fps (474mps)36.0
36,576m280mm286mm1,607fps (490mps)45.47
38,720m241mm357mm1,686fps (514 mps)53.25

주포가 너무 강력하므로 자함의 대응방어가 안 되었음은 물론이고 가장 장갑이 두꺼운 야마토급 전함을 상대로 하더라도 18km 근방 이내로 접근하면 측면장갑을 관통하고 30km 근방 이상 떨어지면 갑판장갑을 관통하는 똥파워를 보여준다. 원래 전함은 주포의 구경이 2인치나 차이나면 의미있는 타격을 적 전함에게 주지 못하며 야마토급 전함이 2인치나 큰 18인치 함포에 대한 대응방어가 갖추어진 전함임을 생각한다면 이게 얼마나 엄청난 위력인지 충분히 짐작이 가능하다.

하지만 주포의 경우 미국이 점차 이기고 있던 시절인지라 잽싸고 작은 구축함을 상대로 실전에서 최장거리 협차기록까지 달성하지만 동급의 전함을 상대로 사격하지는 못했고, 대전 종료후에는 지상사격지원용으로 몇십년간 꾸준히 사용하게 된다. 아래의 개조 계획 단락에도 나오듯 주포로 운용이 가능한 핵 포탄을 개발 및 장비한 적이 있다.

부포의 경우에는 미국 구축함의 주포이자, 미국의 표준적인 양용포인 Mark 12 5인치(127mm) 38구경장 2연장 부포탑 10기를 탑재해서 총 20문을 탑재했다. 건조 당시에는 VT신관을 채용해서 대공용으로 유용하게 사용했으며, 대수상용으로도 사격통제시스템을 이용해서 부족하지 않게 써먹었다. 1980년대 개수시에 부포탑 4기를 철거해서 부포 숫자가 12문으로 줄어들었는데, 이는 시대의 변화에 의해 부포로 대공방어가 불가능해졌고 미사일과 관련장비를 탑재할 공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대공포의 경우에는 40mm 56구경장 보포스 대공포 80문을 4연장 포좌 형태로 장착했다. 대공포를 떡칠한 이유는 태평양 전쟁 당시의 일본의 미칠듯한 카미카제 때문이다. 이 덕에 태평양 전선에서 무모한 자살공격을 가해오는 일본 항공기를 보다 수월하게 격추시킬 수 있었다. 대공기관포는 20mm 70구경장 오리콘 대공기관포 49문으로 M2 중기관총을 대신해서 장착되었다. 이는 장갑이 빈약한 일본기를 상대로 활약하였으나 갈수록 대형화하는 항공기에 맞서기에는 약간 불충분하다고 판단되었다. 이들 대공포와 대공기관포는 1980년대 개수를 거치며 시대의 변화에 의해 더 이상 대공화력을 담당할 수 없었기에 모두 철거된다.

1980년대 개수를 통해 미사일과 전자장비를 갱신하였다. 일단 순항 미사일은 BGM-109 토마호크 순항 미사일 32발, 대함 미사일은 RGM-84 하푼 대함 미사일 16발, 그리고 CIWS팰렁스 20mm CIWS 4문을 장착해서 당시의 현대 군함의 기본적인 공격능력은 확보하였다. 하지만 배수량에 비해 매우 빈약하다는 이야기가 나오게 되는데, 후술되는 비용문제등으로 인해 최소한의 개수인 1차 개수만 적용했기 때문이다.

종합하자면 건조 당시에는 대수상이나 대공이나 최강의 성능을 자랑했고, 세월이 흘러서 대지상지원함이 된 상황에서도 기본적인 대수상 및 대공능력을 갖추었다.

3.1.1. 레이더 및 전자장비

아이오와급 전함이 타국의 전함에 비해 가장 유리한 점은 레이더 및 전자장비, 사격통제장치가 충실하다는 점이다.

SG-Radar-00001.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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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G-Radar-00002.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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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G레이더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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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G레이더의 화면SG레이더의 화면부 및 조절부위

건조시에는 대수상용으로는 SG레이더를, 대공용으로는 SC레이더를 보유했다. 미국의 SG레이더는 각도, 방위, 거리를 확인할 수 있으며 대략적인 광점의 크기와 이동속도를 연속으로 표시하므로 이게 항공기인지 함선인지, 함선이면 대형인지 소형인지 알 수 있고, 주포탑의 Mark 38 사격제원시스템와 연동이 가능한 물건이었다. 따라서 날씨와 주야간에 관계없이 레이더 화면만 보고도 실시간으로 일제사격의 결과와 협차여부를 확인 가능했다.

여기에 더해서 미국은 레이더만 좋은 것이 아니라 레이더를 이용한 사격관제기술을 전쟁 중에 크게 발전시켜서 이미 실전에서 유용하고 있었다. 링크 1 링크 2 링크 3 링크 4 링크 5 이런 능력을 바탕으로 해서 실전에서 레이더 관제 사격으로 최장거리의 전함 주포 협차를 기록하게 된다.

IOWA fired 40 rounds and NEW JERSEY 18 rounds at ranges of between 33,500 (30.6 km) and 39,000 yards (35.6 km). IOWA opened at 35,000yds (32 km) and ceased at 39,000yds (35.6 km). She fired 40 rounds HC in 8-gun salvos, straddling on the first salvo. NOWAKI altered course after the first salvo and the next two salvos were fired during this turn. After the third salvo landed, NOWAKI disappeared from radar and optics and the last two salvos went out in generated mode from the rangekeeper. Even so, both ships reported being able to see the splashes (but not NOWAKI) out to nearly 39,000 yards (35.6 km) on radar and visually (using optics, of course).

위의 언급에서는 레이테 만 해전에서 전함 아이오와(IOWA)와 전함 뉴저지(NEW JERSEY)가 일본의 구축함 노와키를 레이더로 발견하고 레이더 조준사격을 실시한 적이 있다. 이 당시의 상황은 윌리엄 홀시오자와 지사부로에게 낚여서 휘하의 고속전함부대를 오자와의 미끼인 일본 항공모함부대로 보냈다가 다시 원위치시키는 등의 혼란한 상황이었다. 놀랍게도 이때의 사거리는 35.6km 라는 놀라운 거리에서 협차로 충분히 판단할 탄착점을 형성하였다라는 내용이 있다. 물론 구축함 노와키는 명중당하지 않고 빠르게 도주하였지만, 이는 크기와 면적이 작고 잽싼 기동이 가능한 구축함이기에 가능한 이야기며, 전함같은 것은 바로 명중탄이 나거나 다음 탄이 명중탄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다. 애초에 전함이 장거리에서 구축함같은 작은 목표를 협차하는 것 자체가 매우 힘든 일이기 때문에 아이오와급의 통상적인 명중률은 후술하는 포격 방해요소에도 불구하고 매우 훌륭했다고 보면 된다.

여기에 대해서 Operation Hailstone에서 아이오와 및 뉴저지가 포함 된 함대가 연습순양함 카토리를 격침시켰던 당시 전함 아이오와는 16인치 고폭탄 59발, 5인치 고폭탄 129발을 발사했고 5번째 일제 사격 후 우현에 7개의 큰 구멍과 수선 아래 쪽에 큰 구멍 1개 작은 구멍이 9개가 났다. 그렇게 13분간 아이오와 및 순양함의 사격에 노출 된 카토리는 침몰했는데 이때 아이오와 및 순양함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주포 및 부포를 쏴서 얼마나 명중탄을 내었는지 불확실하며 16인치 탄에 의한 명중은 언급되어 있지 않은 상황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당시 카토리는 공습에 의한 피해로 항해불능 상태였으며. 아이오와 및 순양함들은 13~17km까지 접근한 상황이었고 카토리가 침몰 직전에 어뢰를 발사 아이오와 함미를 지나갈 정도 였다고 한다.

아이오와의 전투보고서(action and Operational Reports)에는 4번째 사격을 끝낸 이후 카토리가 기울기 시작했다는 언급이 있지만 명중탄에 대한 언급은 없다. 함께 포격에 참가한 다른 순양함들의 보고서에도 맑은 날씨에 매우 가까운 거리라 육안과 레이더 양쪽 모두로 아군의 탄착관측이 매우 용이하다는 언급이 있으나, 아이오와의 명중탄에 대한 언급은 없다. 제7전함전대의 사령관 윌리스 A. 리는 당시 아이오와의 사격에 대해 '명중여부를 별개로 치자면 포격 자체는 완벽했다[3]'라고 코멘트. 때문에 실제로 아이오와의 탄은 명중은 하지 못한 것이 아니냐는 의견이 많다. 일단 포격에 참여한 덕분에 카토리는 아이오와의 유일한 격침전과로 기록돼있다. 아이오와와 같이 전투에 참가한 뉴저지의 경우 구축함 한척과 해군 트롤선 한척을 격침한 전과를 가지고 있으며 해군 트롤선의 경우 뉴저지의 주포 사격에 대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카토리의 침몰은 1944년 2월 19일이고, 레이테 만 해전은 1944년 10월 23일에서 26일까지이므로 8개월이나 이전의 일이다. 전시상황, 그것도 총력전 상황이고 미국의 기술력 발전이 엄청났던 태평양 전쟁 시기에 8개월의 차이는 미숙한 승조원이 베테랑 승조원이 될 수준의 기간이며, 레이더 및 사격관제기술도 엄청나게 변화할 기간이다. 여기에 더해서 아이오와와 뉴저지는 1944년 1월 2일에서야 태평양 방면으로 전속되었으며, 1944년 1월 29일에 마셜 제도 공략시 대공방어지원으로 취역 후 처음으로 전투를 시작했으므로 카토리와 전투할 시점에서는 참전 후 20일을 막 넘긴 햇병아리나 다름없었으며, 적 수상함에 대한 실전 포격은 처음 하는 것이었다. #1#2 따라서 8개월 전에 못 맞추던 것을 (못 맞추었는지의 여부도 확실하지 않다) 그 후에 잘 맞추는 것은 숙련도 향상이나 기술력 향상을 생각할 때 당연한 일이다. 따라서 카토리의 경우를 아이오와급의 명중률 판단에 적용하는 것은 매우 불합리한 일이다.

부포의 경우에도 역시 레이더의 도움을 받으며, 사격통제장치로 Mark 37을 보유하기 때문에 VT신관의 도움을 받는 대공능력은 물론이거니와, 대수상 능력에서도 조준정밀도의 대폭적인 향상으로 인해 스펙상 더 뛰어난 타국의 함포와 비슷한 성능을 내는 데 성공했다. 대공화기의 경우에도 Mark 14 조준기와 Mark 51 사격통제장치의 도움으로 충분한 능력을 발휘했다.

1952년부터 레이더의 교체를 주기적으로 실시해서 최종적으로는 AN/SPS-49 대공 및 수색레이더, AN/SPS-67 추적레이더를 장착햇다. 1980년대의 개수에서는 SWG-1 화력통제시스템을 장착하고, SWG-2, SWG-3 화력통제시스템도 추가함으로서 토마호크와 하푼을 발사할 수 있게 되었다. 이외에도 전자전 및 어뢰 대응책으로 AN/SLQ-32(V), AN/SLQ-25 닉시, Mark 36 SRBOC을 장착하고 통신실도 개량했다. 하지만 이지스 레이더가 없고, 해군 전술 데이터 시스템을 장착하지 못하는 등 본격적인 이지스 순양함의 능력과는 거리가 멀었고, 불충분한 개함방공과 제한적인 원거리 대공방어 능력만 보유하는 선에서 개량이 종료되었다.

3.2. 방어력

아이오와급의 방어구조

네바다급 전함에서 처음 시도 되어 내려온 집중방어 구조를 채택하고 있으며 기준 배수량에서 19,312톤 차지하는 비율은 43%였다. 참고로 노스캐롤라이나급은 15,370톤으로 41%이었다. 기본적으로 사우스다코타급 전함의 방어체계를 준용하였고 사령탑, 갑판 장갑 등이 좀 더 강화 되었다. 자함의 16인치 SHS탄을 제외한 일반적인 16인치 포탄에 대한 대응방어력을 갖추었고 방어력은 실제로 취역한 미해군 전함 중에서 공동 1위나 근소한 차로 2위라 할 수 있었다.

전함의 방어력 판정의 바로미터인 현측장갑구조는 표면장갑 속에 현측장갑이 19도 경사각으로 경사장갑으로 내장된 구조다. 우선 도면상에서 De-capping plate이라고 되어있는 표면장갑은 보통 1.5인치의 두께를 가지며 STS장갑재로 제작되었다. 내부 주장갑의 두께는 12.2인치, 경사도는 19도이며, 수선하부 맨끝까지 내려가면서 1.6인치까지 점점 얇아지면서 어뢰방어구조를 겸하고 있다.

대낙각탄이나 폭탄을 방어하는 갑판장갑 구조는 3부분으로 나누어진다. 상갑판의 밤 덱(bomb deck)이라는 부분과 중갑판의 아머 덱 (armor deck), 그리고 그 아래 스플린터 덱 (splinter deck) 이라는 곳이 갑판장갑이라고 보면 된다. 우선 밤 덱은 1.5인치 STS장갑, 아머 덱은 4.75인치 B그레이드 장갑에 1.25인치 STS장갑이 적층된 구조며 현측은 5.8인치 B그레이드 장갑에 1.25인치 STS장갑이 적층된 구조였다. 최하단의 스플린터 덱은 16mm STS장갑이며, 그 아래 3층갑판으로 표기된 하갑판은 최종적으로 기관실을 방어하기 위해 13mm STS장갑을 보유하며 주포 탄약고는 천장이 25mm STS장갑, 측면이 38mm STS장갑이었다. 1번, 2번함 벌크헤드는 287mm이었고 3번함 부터 6번함 까지는 368mm이었다.

기초적인 구조는 당시의 전함들이 채용했던 전형적인 집중방어구조와 비슷햇지만 주장갑을 경사장갑으로 유지하기 위해 현측에 표면장갑을 추가했고, 주갑판장갑 위에 밤 덱을 두어서 당시의 전함용 철갑탄 구조인 피모철갑탄 및 통상형 폭탄의 방어를 추가했다는 점이 특이점이다. 이런 식의 장갑 구성은 철갑탄의 피모를 미리 벗겨지게 함으로서 주장갑을 포탄이 관통할 수 있는 능력을 크게 떨어뜨렸다.

대응방어력은 16인치 50구경장 MK 7에서 사용하는 AP Mark 8에 대해 아이오와급은 23,600야드에서 27,400야드까지(21.6 ~ 25km)의 대응방어력을 가지며 16인치 45구경장 MK 5에서 사용하는 AP Mark 5에 대해서는 17,600야드에서 31,200야드까지(16.1 ~ 28.5km)였다.

참고로 사우스다코타급의 대응방어력은 16인치 45구경장 MK 5에서 사용하는 AP Mark 5(1,016kg)에 대해서는 17,700야드에서 30,900야드까지(16.2 ~ 28.3km)의 대응방어를 가지며 16인치 45구경장 MK 6에서 사용하는 AP Mark 8(1,225kg)에 대해서는 20,500야드에서 26,400야드까지(18.7 ~ 24.1km)의 대응방어를 가지고 있었다. 나가토가 사용한 철갑탄 중량은 1,020kg였고 넬슨은 929kg, 계획으로만 끝난 영국의 16인치급 전함이었던 라이온은 1,080kg이었다.

일반적인 16인치 포탄에는 대응방어력을 갖추었지만 자함의 16인치 포탄에는 대응방어력이 부족했던 이유는 상기되었듯 너무 세서. 아이오와급이 사용하는 16인치 초중량탄에 대한 방어력을 제대로 확보하려면 야마토급 전함과 비등할 수준으로 장갑을 추가로 붙여야 하는데 이렇게 되면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의 기존 배수량 제한인 기준배수량 3만5천톤에서 1만톤 올린 4만5천톤으론 방어와 속도를 둘 다 확보하기 힘들었다.[4] 자함의 16인치 SHS탄의 대응방어력을 달성한 몬태나급의 경우 33노트 시안이 있었으나 길이와 무게가 너무 늘어나는 관계로 28노트로 타협 볼 수 밖에 없었다.

어뢰 방어력에 대해서는 사우스다코타급 전함과 동일했다. 원래 1910년대 말의 테네시부터 노스캐롤라이나에 이르기까지 어뢰방어구획을 5개의 격실로 나누고 각각의 격실에 빈 공간과 액체(주로 중유)를 번갈아 가며 배치하는 어뢰방어구획을 채택하였다. 특징은 비교적 얇고 탄성이 높은 격벽을 채택하여 하부에서 작렬한 어뢰나 기뢰 등의 폭발력이 빈 공간과 액체, 격벽(격벽이 우그러들면서 폭발력을 흡수) 등을 차례차례 통과하면서 점차 폭발력을 흡수하도록 하였다. 기존 어뢰방어구획은 실제로 진주만 공습에서도 위력을 발휘했고, 해당 구조를 채택하고 있던 전함 캘리포니아와 웨스트버지니아의 경우 수중방어 시스템을 관통한 어뢰가 하나도 없을 정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침수가 된 이유는 측면장갑과 수중방어 시스템 사이의 구간이 반복된 어뢰의 타격으로 인해 금이 갔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사우스다코타급 전함부터는 이 구조를 버리고 경사진 현측장갑이 그대로 함저까지 연장되어 수중탄이나 어뢰와 기뢰 방어를 겸하는 구조를 채택하였다. 구조상 경사장갑과 5중 격벽을 겸하는 것이 곤란했으며, 설계국이 실시한 1938년의 수조 실험에서는 하부까지 연장된 현측장갑이 그 자신은 우그러들지 않은 채 어뢰의 폭발력을 상부로 확산시키는 결과가 나타나는 바람에 이전의 얇고 탄성이 높은 격벽 대신 연장된 현측장갑(탄성은 낮지만 강도는 보다 높은)을 배치함으로써 안쪽의 격벽은 오히려 더 안전해질 것으로 보았던 것이다. 설계국은 이런 설계를 통해 수중방어력을 증강시키는 한편, 넓은 공간도 확보하고 중량도 다소 감량할 수 있을 것으로 예측했기에 어뢰방어구획의 격실도 5개에서 4개로 감축했고 구획 자체의 폭도 5.68m에서 5.46m로 축소시켰다.

그러나 1939년에 이뤄진 비슷한 실험에서는 이 신형구조가 이전에 비해 덜 효과적이라는 결과가 나와버렸다. 하지만 설계가 거의 다 끝나고 1번함은 이미 기공된 이 시점에서 구조를 대대적으로 바꾸는 것은 불가능했고 결국 비워뒀던 몇몇 격실에 액체를 추가로 채우는 정도로 마무리지을 수밖에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전쟁 중에 기존의 어뢰방어구획을 갖춘 노스캐롤라이나가 일본의 어뢰에 피격된 후 1개월 동안 수리해야 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결국 해군 당국이 신형전함 전반의 수중방어력에 대해 전면적으로 재조사를 실시했으며, 여기서는 기존의 문제점인 줄어든 격실 수나 구획의 폭 외에도 현측장갑 하단부와 최종격벽간의 거리가 아래로 내려올수록 줄어든다는 점이 지적되었다.

하지만 아이오와급 전함의 설계를 다시 변경하기에는 시간도 부족했고 고쳐봐야 속력도 크게 줄어들기 때문에 채택하기도 곤란했다. 그래서 어뢰방어구획에 액체를 주입하는 등의 미봉책을 취할 수 밖에 없었다. 이후 더 발전된 어뢰방어구획은 몬태나급 전함에 적용된다.

3.3. 속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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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오와급의 측면배열도

본래 항공모함과 동행 및 호위를 담당하기 위해 만들어진 전함이므로 과장하자면 사우스다코타급 전함보다 1만톤 많은 배수량이 거의 모두 속력에 투자되었다고 할 정도다.

밥콕 & 윌콕 (Babcock & Wilcox) M-Type 보일러 8기는 468 °C에서 42kgf/㎠의 압력을 가지는 증기를 만들어낼 수 있고, 이를 제너럴 일렉트릭 기어 증기터빈 4기를 통해 동력으로 만들면 평상시 212,000마력(158,000kW), 과부하시 254,000마력이 가능하다. 이 출력으로는 21세기의 기준으로 니미츠급 항공모함SS 유나이티드 스테이츠[5]를 제외한 모든 함선의 출력을 능가하는데다가 과부하를 걸어 최대 출력으로 높이면 35노트까지 가능하다. 이 상태에서는 만재배수량으로 채워도 31노트의 속도를 낼수도 있다. 그래서 니미츠급이 전속력으로 항진해도 무리없이 동행하는게 가능하다. 그리고 보일러를 절반인 4기만 돌려도 그 당시 고속전함의 최소 속도 기준이라고 볼 수 있는 27노트의 속도를 지속적으로 내는 것도 가능하다.

여기에 더해서 전장도 270.43m으로 세계최대의 전함인 야마토급 전함보다 약 7미터 정도 더 길다. 고속성능을 더 끌어내기 위해 후방 함체에는 트윈 스케그(Twin Skeg), 함수는 구상함수(Bulbous Bow)라는 함형을 도입했다.

그러나 전장을 늘이긴 했어도 파나맥스(Panamax, 파나마 운하에 통과 가능한 배) 때문에 전방 함체의 형상은 전폭의 감소가 자연스럽지 않은 병목 형상을 띄게 되었는데, 세장비가 큰 것에 비해서는 비교적 비효과적이었다. 다시 말해 함수부분의 부피가 적어 능파성이 낮았다는 이야기로, 이는 Seaworthyness를 낮추었고 속도에도 영향을 주게 된다. 이렇게 일반적이지 않은 함수형상으로 설계된 것은 부피를 최대한 함 중앙부에 집중하여 부력을 중앙부에 몰아주기 위해서였다.[6]

항속거리 측면에서는 노스캐롤라이나급(15노트, 30,220 km)과 사우스다코타급(15노트, 31,484 km)보다 낮아지긴 했지만 15노트(28km/h)일 때 14,890마일 (23,960km), 20노트 (37km/h)일 때 11,700마일 (18,820km)을 항해가능하므로 다른 전함들을 크게 능가한다. 심지어 32노트의 속도로도 8889.6km를 항해할 수 있으므로 일단 달리기 시작하면 다른 전함으로는 쫒아오지 못하게 되며 아이오와급이 해역 방어망을 돌파하기라도 하면 항공모함을 동원하지 않는 한 대응하기가 곤란해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전장에 비해 폭은 좁다. 원래 미국의 전함은 전부 다 전폭이 33m 이하인데 파나마 운하를 통과하기 위해 전폭을 33m로 제한해야 했기 때문이다. 아이오와급은 거의 운하 가장자리에 닿을까말까 할 정도라 파나마 운하 출입시 별도의 안내선과 안내차량을 운하의 양측에 대동하고 기어가는 속도로 간신히 운하를 통과했다. 유일하게 페이퍼 플랜몬태나급 전함만은 파나마 운하 이용을 포기하고 취역시 정해지는 태평양 함대나 대서양 함대 소속으로 복무할 예정이었기에 33m의 선체 폭 제한에서 벗어난 36m였다.(원래 계획했을때에는 파나마 운하가 넓어진다는 기준으로 만들어졌다.) 상대적으로 폭이 좁아 악천후를 만나면 다른 전함보다 흔들거리는 경향이 높았다. 하지만 제2차세 계대전 당시 미해군 함선의 악천후 조건하 활동은 전반적으로 좋지 않았던 관계로 아이오와급만의 문제라기엔 보기 힘들다.

마지막으로, 너무 오랜 기간 사용되었고 숱한 취역과 퇴역을 반복했으며 동력기관이 대정비나 개수, 교체를 받지 못했기 때문에 퇴역할 때쯤 되면 동력기관과 함체 노후화로 인해 속도가 31노트 (57km/h)로 떨어지게 된다. 하지만 기념함이 된 2014년의 시점에서도 가끔 자력항해가 가능할 정도로 아직 이동능력을 완전히 상실하지는 않았다.

4. 순양전함의 이상향

한 마디로 상당히 뚱뚱하지만 전함으로써는 나름대로 완성형에 가까운 사우스다코타급 전함을 길게 늘인 배. 배수량이 1만 톤 가까이 늘었고 속도는 5노트 이상 올라갔지만 전함으로서의 완성도는 사우스다코타 급보다 약간 떨어진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전함의 궁극적인 이상향으로 뱅가드를 더 처주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는 자기네 함선인 야마토급 전함도 같이 집어넣는 일본에서만 통하는 이야기다. 미국에서는 염연하게 전함으로 분류하며, 애초에 순양전함이라는 함종 자체가 속도와 항속력을 메울 기술력의 부재를 장갑 등의 희생을 통해 얻어낸 과도기적 함이므로 순양전함으로 보기에는 상당한 문제점이 있다. 굳이 따지자면 아이오와급은 몇십년에 걸친 기술의 진보로 완성된 고속전함으로 봐야 한다.

순양전함이라는 함종을 최초로 만들어낸 피셔와 연관지어서 "피셔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순양전함" 이라고도 농담조로 말해지기도 한다. 그도 그럴게 피셔가 순양전함이라는 개념을 제안할 때는 전함과 동등한 화력과 장갑순양함과 동등한 속력을 겸비한 군함을 의미하는 말이었는데, 아이오와급의 정규출력시 속도는 33노트로 웬만한 당대 중순양함과 동등하거나 약간 처지는 속도다. 게다가 화력은 미국 신전함의 표준무장인 16인치포 9문이고 방어력도 동급 주포에 대응하는 방어가 가능했으니 "순양전함의 이상향"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다. 물론 아이오와급은 3만 야드 이상의 거리에서 현측으로 떨어지거나 3만 야드 이내에서 갑판으로 떨어지는 탄 이외에는 자함의 포탄에 대한 대응방어가 안된다. 즉 3만 야드 기점으로 이내에선 수선대 주장갑이 관통당하며 3만 야드 밖에서는 갑판이 뚫린다. 하지만 위에 언급된 결과를 가져오는 16인치 초중량탄은 미국만 사용했고, 통상적인 16인치 철갑탄에 대해서는 Immunity Zone이 있어 방어가 가능했기 때문에 엄격한 대응방어의 기준에는 못 미치지만 보통의 순양전함처럼 완전히 대응방어가 포기된 것과는 비교할 수 없다.

이렇게 공격력과 방어력이 충실하면서도 33노트라는 속도와 장대한 항속거리를 보유했다는 점 자체가 충분히 두고두고 자랑할 만한 점이다.

그리고 파나마 운하 통과를 위해 폭이 이전 함급인 노스캐롤라이나급 및 사우스다코타급과 동일한 수준이라 16인치 45구경 보다 충격이 강해진 16인치 50구경 때문에 이전 함급에 비해 포격시 불리점이 발생한다는 의견도 있는데, 이는 사실이긴 하지만 포격시에 보정이 충분히 가능했다. 30노트 이상 고속 항해시 고속성능을 내기 위해 도입된 트윈 스케그(Twin Skeg)라는 함체 형상으로 인한 것으로 보이는 진동이 발생하여 포격에 심각한 지장을 주었다는 소리가 있지만 노스캐롤라이나급과 사우스다코타급에서만 그 현상이 일어났고 아이오와급에선 없었다고 한다. NavWeaps의 The Naval Technical Board, History의 The Crack in Missouri's Barbette III - R. A. Landgraff에 따르면 오랜 동안 잠들어 있었던 BB-63 USS 미주리가 수리 및 개장을 마치고 재취역한 1986년에 고속시운전을 했는데 4시간 동안 32노트를 달리고 다시 2시간 동안 32노트를 달렸다고 하는데 이때 균열 및 진동 현상이 없었다고 한다.

재취역하면서 함체 노후화로 인한 원인일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애당초 전함이라는 물건은 본질적으로 최대속도로 항해하면서 포격전을 할 일 자체가 거의 없었으며 추격섬멸전의 경우는 아군이 압도적으로 우월한 상황이므로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여기에 더해서 상기 언급된 레이더와 사격통제장치로 인해 실전상황에서 기네스북상 최장거리 포격인 35.6km에서 작고 잽싼 구축함을 협차가능했다는 기록을 달성했기 때문에 아이오와급 전함은 다른 전함과는 달리 자신의 최장사거리에 가까운 30km 이상의 원거리에서 상대방을 농락할 수 있고, 설령 강력한 적 전함이 포화를 뚫고 돌진해도 포격을 지속하면서 잽싸게 후퇴가 가능하다는 이점을 가진다.

따라서 상대방의 입장에서는 항공모함을 포함한 대규모의 항공전력으로 공격하던지, 동급의 고속전함으로 대응하던지, 전함 1-2척이 격침되는 등의 엄청난 희생을 각오하고 함대결전급 전력으로 상대하던지 하는 것 외의 선택지가 없다. 그렇지 않고 소수의 전력만 보내서 상대하려고 하면 공고급 순양전함따위로는 택도 없고 나가토급 전함같이 강력한 물건도 아이오와급 전함의 밥으로 전락해버린다. 이걸 타개하려고 전력 집중등의 강력한 방법을 동원하면 적의 다른 전력을 막을 병력이 아이오와급 전함에만 집중되면서 전선에 구멍이 크게 뚫려버리는 일을 감수해야 한다. 여기에 더해서 그렇게 전력을 집중하더라도 아이오와급 전함의 속력이 빠르기 때문에 꼭 잡는다는 보장이 없으며, 아이오와급이 1척이 아니라 2-4척이 함께 다니면서 대공방어전력으로 고속항공모함과 동행중에 중순양함을 포함한 호위전력까지 보유한 상태라면 아이오와급을 격침할 확률은 둘째치고 역으로 털릴 가능성만 늘어난다. 거기다 아이오와급의 16인치 초중량탄은, 주포 구경이 2인치나 더 큰 18인치급 함포에 대한 대응방어 능력을 갖춘 야마토급의 장갑조차 관통하는 괴물인만큼, 공고나 나가토 따위는 일단 피탄당하면 끝장난다(...).

그 외에 아이오와급과 타국 전함의 비교에 대해서는 "바람의 전함 아이오와"라는 포스팅을 참고할 것. 1 2 3 4.

5. 공고급 순양전함의 대응함설

공고급 순양전함에 대한 대응마로 아이오와급이 개발되었다는 말이 있는데 웃기지 마라 특히 아이오와급과 공고급을 동급으로 두고 싶은 일본 쪽에서 주로 나오는 말이다.일본위키 아이오와급[7]이 주장은 공고가 30노트급의 빠른 속도를 지니므로 이에 대항하기 위해서 33노트급의 빠른 전함인 아이오와를 개발했다는 내용이 골자로 모순점이 많은 주장이다.

우선 당시 미국에서는 공고의 속도가 30노트라는 점을 모르고 있었다. 아이오와가 개발될 당시 시점에서는 미국은 공고의 속도가 나가토급과 같은 26노트라고 판단하고 있었고, 출처 공고의 속도가 30노트급이라는 것을 알게된 것은 과달카날 전투 이후였다. 그나마 해당 해전에서는 공고의 속도가 26노트보다 훨씬 빠르다는 것만 알았고, 정확히 30노트라고 알게 된 것은 1942년 12월의 일이었다.[8] 따라서 미국이 알고 있던 공고급의 속도인 26노트라면 노스캐롤라이나 급이나 사우스다코타 급으로도 대항할 수 있는 속도였다. 구태여 아이오와의 속도를 33노트로 맞출 필요는 없었다.

사실 공고급은 35,000톤급 전함 기준임에도 35.6cm라는 준수한 화력과 30노트라는 고속을 갖추고 있었다. 반면에 미국의 35,000톤급 저속전함들은 똑같은 35.6cm의 화력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속도는 20노트 초반에 불과했다. 당연히 이는 일본의 기술력이 넘사벽이라 이렇게 된 것이 아니라 항목에서도 나오지만 장갑을 희생한 결과였다. 애초에 공고급은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이 만든 라이언급 순양전함의 개량형이었으며, 덕분에 공고급의 장갑은 개장을 한 뒤에도 매우 빈약한 상태로 개장 후에도 수선 203mm 갑판 70mm에 불과했다 (탄약고는 64~102mm). 저속전함인 35,000톤 급의 뉴멕시코급 전함이 지닌 수선 343mm, 갑판 127mm와 비교하면 매우 떨어진다. 이렇게 부족한 장갑 탓에 과달카날 해전에서 공고급 히에이가 중순양함과 경순양함으로 구성된 미 함대에게 두들겨 맞고 대파돼서 자력이동능력을 상실하는 등의 추태를 보이기도 했다. 결국 히에이는 이후 표류하며 캑터스 항공대의 뇌격,폭격에 시달리다 자침한다. 순양함에게도 심각한 피해를 입는 공고급을 상대하기 위해서 아이오와급이 떡장갑[9]과 16인치(40.6cm)포라는 막강한 화력을 갖출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당시 미국이 판단한 26노트의 속도를 지닌 공고를 상대하기 위해서는 27노트의 속력을 지닌 노스캐롤라이나급사우스다코타급으로도 충분히 상대하고도 남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오와는 노스캐롤라이나와 사우스다코타보다 더 충실한 무장과 장갑을 갖추게 되었는데 이를 두고 공고급의 대응함으로 아이오와를 만들었다고 말하는 것은 어귀가 맞지 않는다.

또한 당시 미국은 일본의 신전함인 야마토급에 대한 정보를 입수하고 있었지만 세부적인 제원에 대해서는 확신하지는 못한 상태였다. 이 신전함이 45,000톤급에 16인치 포라는 정보도 들어왔으나 실제 미 해군 정보국(ONI)에서는 35,000톤급 정도의 전함으로 판단했다. 심지어 한참 전쟁이 지속되던 중이던 1942년 10월까지도 35,000톤급에 16인치 포를 장비했다고 생각한 정도였다.출처 그러나 이 신전함은 런던 해군 군축조약에 얽매이지 않은 전함이 될 것은 틀림없다는 정보도 입수하였으므로 미국 입장에서는 이에 대한 대비를 세우지 않을 수 없었다.

전쟁 기획국의 국장인 로버트 L. 곰리 제독은, 세 45,000톤 전함은 세 일본군 공고를 상대해야 하지만, 새로운 일본군 전함도 당연히 상대해야 한다고 여겼다.[10] 이 같은 발언은 아이오와급이 일본의 신전함을 상대할 만큼의 위력을 갖추어야 한다는 뜻이다. 당시 일본의 신전함(야마토급)에 대해서는 이미 16인치 포를 장비하고 조약에 얽매이지 않은 강력한 전함이라는 정보를 입수하였으므로 신전함에 대항할 수 있는 능력이라면 당연히 공고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다.[11]

무엇보다 미국에서는 항공모함과 보조를 같이 해서 호위할 수 있을만큼 빠른 전함을 필요로 하고 있었다. 때문에 미 해군 박물관 홈페이지에서는 아이오와의 33노트는 항공모함과 함께 행동해서 위협이 될 수 있는 일본의 군함들로부터 항공모함을 호위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공고만을 상대하기에는 할 일이 처음부터 너무 많았다. 출처

아울러 비록 아이오와급이 1차적으로는 일본의 위협에 대항하기 위해 건조되었지만 유럽의 전함들, 특히 장차 위협이 될 비스마르크급 전함에 대해서도 어느정도는 염두에 두었다고 하는 견해도 있다.출처

이상의 이유로 아이오와급은 항공모함과 보조를 같이 하기 위해 빠른 속도를 발휘할 수 있게 개발되었지 딱히 공고급이나 특정함을 목표로 개발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다만 위에서 언급된 일본의 신전함(야마토)에 대한 위협이 남아 있었으므로, 직접적으로 야마토급의 대응함이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적어도 이 신전함을 염두에 두고 개발되었다는 증언 정도는 있다.출처 상식적으로도 제1차 세계대전급 순양전함을 개수한 것에 불과한 공고급에 대항하기 위해서 미국의 온갖 신기술을 때려박은 아이오와급을 만들었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전간기 미 해군의 전함전 교리상 전함전대보다 훨씬 전방에서 고속을 이용하여 정찰 임무를 수행하면서 전함과도 교전할 수 있는 전함급 화력을 가진 전투함인 순양전함의 성격을 지닌 군함이 필요했던 것만은 사실로 인정된다고 일본에서 주장하는데 이 또한 교묘하게 사실을 짜집기한 날조에 불과하다. 어떻게든 아이오와급과 공고급을 동일시하려는 발버둥 애초에 미국의 전함전 교리는 Fast Wing이 필요하다고 설명하는데, 여기서 말하는 이 Fast Wing은 정찰 따위를 하는 부차적인 부대가 아니고, 전함간 교전시 구식전함들이 적 주력함대를 맞이해서 발목을 잡고 있을 동안 아이오와급 전함 같은 고속전함이 빠른 속도로 포위해 적 주력함대를 구식전함부대와 함께 협공하는 진정한 주력부대다. 그리고 미국에서 전함까지 집어넣는 정찰부대를 편성할 때는 단순한 정찰이 아니라 적 전함 1-2척 정도는 만나면 정찰부대만으로 바닷속에 처넣을 수 있는 위력정찰을 목표로 하는 것이므로 차이점이 크다. 이런 사실을 교묘하게 편집해서 앞서 나온 장갑이 빈약하고 화력이 부족해서 일본군 스스로도 함대결전부대에서 제외한 공고급 순양전함과 마치 비슷한 업무를 가지는 것처럼 포장함으로서 아이오와급의 위상을 떨어뜨리려는 의도가 숨어있는 것이다. 따라서 전간기 당시 미국의 제독들이 요청하던 군함은 빈약한 순양전함 따위가 아니라 강력한 고속전함이었던 것이다.

여기에 더해서 항공모함과 보조를 같이 하는 임무는 28노트의 노스캐롤라이나급과 27노트의 사우스다코타급으로도 가능하기는 하지만 뭔가 부족할 수 밖에 없었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원래 항공모함은 함재기를 띄울 때는 맞바람을 맞으면서 전속으로 전진하면서 띄운다. 그렇지 않으면 함재기 이륙이 불가능하거나 설령 가능하더라도 무장과 연료를 만재하지 못한 상태에서만 이륙이 가능하므로 함재기의 전투능력과 항속거리를 크게 깎아먹기 때문이다. 문제는 당시의 미국 정규 항공모함들은 30노트 이상의 속도를 내는 게 이 속도는 중순양함은 충분히 따라잡지만 전함들의 경우에는 이렇게 하기 곤란하기 때문에 함대의 전체 속도를 크게 떨어뜨리고 함대원형진같은 호위방어진을 편성할 때도 상당한 애로사항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함재기의 중량, 탑재가능한 연료와 무장의 중량도 전쟁이 진행될수록 점차 늘어나서 항공모함이 함재기를 이륙시킬 때마다 전속전진해야 하는 상황을 더 많이 필요로 하게 되었으며 함재기의 전투결과에 따라서 항공모함부대가 적을 추격하기 위해 급속전진하거나 적을 피해서 급속후퇴해야하는 경우가 발생하였다.

가령 산타크루즈 해전의 경우 엔터프라이즈가 적 함재기 공격을 피하기 위해 30노트로 움직이고 있을때 사우스다코타가 따라 가지 못하고 멀리 떨어져 있는 상황이 발생했었고 렌넬 섬 해전에서 전함을 대동하지 않고 있던 엔터프라이즈의 제16임무부대는 27~28노트대로 순항하며 이동했는데 전쟁 중 대공무장 증가로 인한 과적으로 26노트대까지 떨어지는 노스캐롤라이나급과 선체 문제로 상시 27노트로 유지하기가 힘들었던 사우스다코타급으론 항모 기동 부대의 속도를 맞추기 힘들었다. 그렇다고 전함만 남겨놓고 움직이자니 스스로 호위세력을 줄이는데다가 이렇게 버려진 전함이 적의 공격에 취약해질 가능성이 높았다.

최후의 미해군 전함이 될뻔한 몬태나급도 자함의 자탄를 방어할 수 있는 능력 외에도 항모 기동 부대 방어가 요구 되어 최고 33노트 부터 최저 28노트의 여러 설계 시안이 존재했는데 항모 기동 부대 보호 목적을 가진 아이오와급 전함이 공고급 순양전함 대응함이라면 만재가 7만톤이 넘는 몬태나급 전함이 항모 기동 부대를 보호할 능력이 요구되었음으로 몬태나급도 공고급 순양전함 대응함이란 소리도 가능해진다.[12] 결론적으로 말해서 항공모함부대가 완전한 능력을 발휘하기 위해 아이오와급 전함이 고속전함 중 가장 빠른 속도인 33노트나 되는 속도를 달성한 것이다.

한마디로 공고급 순양전함을 속도로 누르는 건 안중에도 없는 사안이었을 뿐이다.

6. 취역과 퇴역을 반복하다

초도함 아이오와가 1943년 2월부터 취역했으며, 이후 태평양 전쟁에서 활약한 후 잠시 퇴역했다가 6.25 전쟁에 다시 투입된 뒤에 완전히 퇴역했다. 하지만 미합중국 해병대의 강력한 요청으로 베트남 전쟁에 임시로 재취역해서 BB-62 뉴저지[13]가 142일동안 1만발이 넘는 포탄을 발사했다. 전쟁이 끝난 뒤에는 다시 퇴역했지만 이때 화력지원을 톡특히 받은 해병대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면서 1980년대에 각종 근대화 개수를 받은 아이오와급이 다시 현역에 복귀했다.

이렇게 아이오와급이 취역과 퇴역을 반복한 이유는 빠른 속도와 강력한 무장 및 장갑을 갖추었기 때문에, 미사일이 난무하는 현대식 해전에서 사용하기에는 부적합하지만 해안요새요새포해안포 사격등의 방해를 씹어버리고 적국의 해안선을 전함의 함포로 포격해서 상륙부대를 지원하는 용도로는 매우 적합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함 미사일을 맞더라도 1-2발 정도로 큰 타격을 입지는 않을 것이라는 계산도 있었다. 16인치 주포를 가진 다른 미국의 전함도 모스볼 상태로 1960년대까지 보관되어 있었으나 아이오와급보다 속도가 느려서 아이오와급 대신 사용하기에는 약간 부족한 이유로 인해 결국 부활하지 못하고 스크랩되거나 기념함이 되었다.

7. 개조 계획

원래 아이오와급 전함들은 취역 당시 가장 최신의 기술을 집약한 함선이었다. 하지만 시대의 흐름에 따라 현대전에 걸맞도록 전함들을 개조하는 계획이 세워졌으며 당연하게도 이 과정에서 구식무장과 시설을 철거하고 남은 공간에 새로운 무장과 시설을 채워넣는 과정이 필요했다. 이런 과정에서 가장 큰 희생물로 낙점된 것이 16인치 함포였으며, 그 이유는 미사일이 함선의 주무장이 된 시기에 구식 주포의 39km라는 최대사거리는 너무나도 큰 핸디캡이었고, 주포탑과 바벳이 차지하는 공간과 배수량이 엄청나기 때문에 1기의 주포탑만 줄여도 개수를 위한 공간과 배수량을 많이 확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1958년엔 핵만능주의에 맞춰서 레굴러스 2 핵 크루즈 미사일과 대잠미사일, 대공미사일만 남기고 16인치 함포를 모조리 철거하는 계획안도 만들어졌었다. 사진은 레굴러스 2 발사실험모습. 그러나 이 개조는 완전히 적용하기엔 현재가치로 15억 달러에 이르는 엄청난 개조비용을 감당하기 어렵고, 그에 비해 엄청난 승무원을 데리고 고작 4곳을 핵타격할 수 있다는 안습한 타격능력으로 인해 취소되었다.


1960년엔 강습 상륙함의 기능을 갖출 수 있도록 개조가 계획되었다. 후방의 3연장 주포탑 한 기가 철거되고 그곳으로 격납고를 만들고 비행갑판을 설치해서 30대의 헬리콥터를 수용하게 할 계획이었으며, 전차와 다른 차량들을 상륙시킬 수 있는 14개의 상륙정을 싣고 다닐 수 있고 1800명의 해병을 수송하려했다. 그러나 이는 차라리 구형항모를 개조하는 것이 싸게 먹히기 때문에 16인치 포의 지원사격의 장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취소되었다. 아이오와급 말고도 노스캐롤라이나급 및 사우스다코타급도 3번 포탑을 철거하고 엔진을 넣어 31노트 까지 속도를 올리고 헬기 수용하는 개조안이 있었는데 이것 역시 예산이 너무 들어서 폐기 되었다.

이후 1980년대 경에 다시 아이오와급이 취역하면서 개조계획이 세워진다. 아이오와급의 개조계획은 총 3단계의 계획으로 세워진다.

  • 1단계는 레이더 등 전자장비를 교체하고 CIWS하푼 대함 미사일, 토마호크 순항 미사일을 설치하며, 구식이 된 5인치 부포를 일부 제거하며, 역시 현대전의 방공을 담당하기 어려운 수동식 20mm 기관포와 40mm 기관포를 전부 제거하는 것이다. 이 계획이 유일하게 아이오와급에 적용된 계획이다.

  • 2단계는 경우 이미 1단계 개조를 실시한 아이오와와 뉴저지, 그리고 곧 취역할 미주리와 위스콘신을 대상으로 한다. 주요 개조점은 현대의 이지스 순양함처럼 수직발사기를 갖춰 토마호크만이 아니라 스탠다드 대공 미사일, 아스록 대잠 미사일 등을 탑재하여 다양한 임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총 320발의 미사일을 탑재하는 계획이었다. 이것을 실현시키려면 크게 3가지 방안이 있었다.

    • 1번 세부안은 3개의 주포탑은 그대로 남기고 수직발사기를 탑재하자는 것이었지만 그렇다면 아무리 큰 아이오와급이라 할지라도 공간의 제약이 심해지는 단점이 있었다.

    • 2번 세부안은 주포탑을 모조리 철거하고 400발의 미사일을 탑재하자는 이야기였지만 아이오와급의 복귀요소중 가장 큰 이유였던 전함의 함포를 모두 떼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 3번 세부안은 후부에 있는 3번 주포탑 1개만 철거하고 거기에 수직발사기를 탑재하는 것이다. 함선의 전투력 자체를 중요시하는 해군과 함포사격의 지원을 중시하는 해병대의 의견을 절충한 가장 적당한 안으로 손꼽혔다. 이 안이 적용될 경우 해병대는 가능하다면 1개 강화 중대분의 병력까지 태울 수 있는 능력을 바랬다. 그러나 망했어요.

  • 3단계는 역시 후부에 있는 3번 주포탑 1개만 철거한 후 수직발사기를 설치한 후에 주변 공간을 이용해서 갑판 위에 격납고와 비행갑판을 설치하여 해리어 수직이착륙 전폭기 12~20대를 탑재해 제한적인 항공모함 역을 맡기자는 계획안이다. 오오 그거슨 남자의 로망 수직발사기를 둘러싼 형태를 격납고와 비행 갑판으로 만들고 앞쪽에 스키점프대를 만들어 해리어는 이함시 단거리 이함하고 착륙시 수직 착함한다는 계획이다.

  • 다른 의견은 대잠 헬기를 탑재, 감시, 목표 포착, 대잠전의 능력을 높이는 것이었는데 시스패로우 탑재를 통한 개함 방어체계 강화, 사격 지휘 및 유도 체계 근대화, NTDS를 포함한 지휘통제기능 강화가 중점이었다.

결론적으로 개조비용이 1982년 기준으로 한 척당 적어도 2억 달러, 장기 보존 상태에서 복귀시키는 데만도 5천만 달러가 들며 개조 비용까지 합하면 최대로 잡는다면 10억 달러도 충분히 웃돈다는 계산이 나왔다. 이 정도 돈이 들어간다면 차라리 현대식 함선을 따로 취역시키는 것이 더 나을 지경이어서, 아이오와급의 재취역 당시 미 의회에서는 '현대식 전투함으로 떨어지지 않는다면' 이라는 전제를 붙였지만 아무래도 돈 문제 때문에 4척 모두 1단계 개조만으로 끝났고 걸프전 이후 모두 영원히 퇴역하게 된다. 로망은 실현되지 못하니까 로망인 것이다

만일 실현되었다면 밀덕들의 꿈에도 그리던 키로프급 vs 아이오와급의 전투가 실현됐을지도 모른다. 물론 진짜로 일어난다면 인류멸망이니 바라서는 안 될 일이다.

8. 퇴역

위에 언급된 개조 계획에 따른 개수로 부포가 20문에서 12문으로 줄었지만 CIWS하푼, 토마호크가 추가되었기에 전체적인 전투력은 오히려 상승했다. 사실 위의 계획에서 나온 것처럼 미 해군은 최종적으로는 함재기까지 탑재하는 항공전함을 최종 개수를 통해서 완성시키려고 했지만 1단계 개수 비용이 이미 이지스 구축함 1척과 맞먹었기에 '현대전에서 가치를 상실한 전함을 함대에 남겨둘 필요가 있는가?'하는 의문이 제기되어 2006년에 아이오와와 위스콘신이 마지막으로 퇴역했다. 뉴저지와 미주리는 이미 1995년, 1998년에 완전퇴역했다. 참고자료

다만 미국은 1995년 1월 12일에 아이오와급 4척을 모두 함적에서 삭제했음에도 불구하고 상당기간 아이오와와 위스콘신을 전열에 복귀시킬 준비를 해왔었다. 애초에 모스볼 처리할 때도 타 함선과는 다르게 공을 상당히 들였는데, 함포를 당장 쓸 수 있게 유지/보수하고 16인치 포탄을 보관, 기관 및 주요 장비의 지속적인 관리를 해줬다. 한마디로 5분전투대기부대.

하지만 2011년에는 미국의 재정문제로 인해 장기보존을 위해 여러 국가에 박물관 처리를 빙자한 보존비 지원을 바라고 있는 눈치가 보이며, 네임쉽인 아이오와의 경우에는 앞서 언급된 손상 등의 원인으로 유사시 사용을 포기한 후 미주리처럼 해상박물관으로 만들기 위해 대한민국에도 6.25 전쟁 참전을 거론하면서 물밑에서 지원을 바라는 듯 하다. 관련기사는 여기#.

결국 박물관함으로 쓰기 위해 2009년에는 위스콘신이 노포크시에 기증되고, 2011년에는 아이오와를 미해군이 LA PACIFIC BATTLESHIP CENTER에 기증하면서 모든 아이오와급 전함은 완전히 퇴역했다.#

9. 다양한 포탄들

일본에서 3식탄으로 주포로 대공사격을 하려 했듯이 미국도 대공 사격용 포탄을 개발하려 한 적이 있다.[14] 물론 일본의 3식탄 따위와는 비교가 안되는 VT신관 탑재 포탄을 이용했다. 그러나 주포로 VT신관이 담긴 포탄을 쏴서 대공사격을 하는 것은 불필요하다고 여겨져 취소되었다.

베트남전 기간에 포격 지원에 나선 뉴저지에 사용하기 위해 LRBA라는 프로그램에서 파생된 포탄을 사격 실험했다. 280mm 핵 견인포 프로그램에서 남은 수만발의 일반 포탄이 있어서 이를 재활용해서 1968~1969년 경 제작해 실험했는데, 76,670m의 거리까지 338kg[15]짜리 포탄을 1387m/s의 속도로 날려보냈다. 다만 여기의 기록은 HARP라는 16인치 50구경장 포신 2개를 이어붙인 포를 이용했다. 그래도 이 물건은 65인치 길이로 아이오와급의 포탄 장전 설비에 들어가서 실제 사격에도 상당한 사거리를 보일 것으로 예상되었다. 그러나 뉴저지의 퇴역으로 개발이 취소되었다.
이외에도 사거리 185km에 탄두 무게 680kg인 로켓 보조 추진탄, 사거리 514km(..?!)에 탄두 무게 240kg인 "high mass fraction rocket assisted spin stabilized projectile"이라는 더럽게 긴 이름을 가진 포탄도 개발되었다. 전자는 기존 장전 시스템에서 길이가 20인치 초과했고 후자는 14인치 초과해서 실제 사용은 불가능했다. 하지만 이쪽은 전체 길이를 67인치로 줄여도 370km 정도의 사거리는 확보 가능하다고 여겨졌다.
[출처]
이후 재취역을 한 이후 HE-ER Mark 148이라는 포탄이 개발된 적 있다. 1980년대에 아이오와급이 재취역하면서 개발되었는데 다시 퇴역해버리면서 1991년 취소되었다. 일종의 분리철갑탄으로, 탄자는 13인치 구경에 500kg으로 상당히 가벼웠다. 하지만 이 포탄의 의의는 바로 사거리에 있는데, 초당 1097m의 속도로 날아가서 64km를 넘기는 거리까지 공격할 수 있었다. 어찌보면 2차대전 중의 SHS와 완전히 반대되는 포탄이다. 하지만 이 포탄이 개발된 때는 이미 전함급 장갑을 두른 함선은 남지 않았기 때문에 쓸데없이 관통력을 늘린 포탄은 필요가 없었다. 구경을 11인치로 더 줄이고 로켓 추진 보조를 달아놓은 포탄을 DARPA에서 만드려 한 적도 있다. 사거리는 약 185km로 계획되었다.[17][18]
이후 2003년 아이오와가 이미 퇴역한 이후 포탄 관련 연구 경험이 있는 한 물리학자가 스크램 제트를 이용한 16인치 740km 사거리 포탄도 제안했다(...) 포탄을 쏘면 목표지점에 9분 후에야 떨어질 정도로 초장거리 사격이 가능한 포탄이었다. 당연히 해군에선 이미 퇴역한 아이오와급을 살릴 생각은 없었다. 사실 그정도 기술을 들인 포탄이면 가격도 만만치 않을테고.. 현재 5인치포와 155mm 포에 해당 기술을 적용하려 한다고 한다. [출처]

Mark 144 대인포탄도 만들어졌다. 집속탄의 일종으로 M43A1 자탄 400발을 탑재한 포탄도 개발되었었다. 그리고 Mark 146이라는 666발의 M42/M46/M77 자탄을 넣은 포탄도 개발하다가 취소.

9.1. 핵포탄

katie.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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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오와급 전함들은 한때 전함이 보유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포탄을 가지고 있었다. 바로 16인치 핵 포탄 Mk.23, 보통 "Katie" 라고 부르며, 1953년에 개발이 시작되어 1956년에 완성되어 총 50발 정도가 제작되었다. 1발당 위력은 히로시마에 투하한 원자폭탄 수준인 15~20kt 정도다. 참고로 사진의 폭발장면은 위력이 동일한 야포 포탄형 원자폭탄인 W-9의 발사실험 장면이다.
(Battleships - United States battleships,1935-1992" by William H Garxke,Jr. & Robert O Dulin,Jr., Naval Institute Press, 1995)

핵포탄의 발사를 위해 개발 당시 퇴역상태인 미주리를 제외한 나머지 3척이 개장되었고, 핵포탄의 발사는 2번 포탑에서 하게 만들었으며 핵포탄 전용의 탄약고를 설치하고 약 10여발 전후를 각 함마다 저장했다. 이후 전략공군의 발전과 ICBM의 개발 등으로 MK.23은 1962년에 최종적으로 철거되었는데, 일설에 의하면 이후에도 한동안 전략예비탄으로 보관했다고 한다.

실전과 훈련을 통틀어 실탄인 Mk.23은 발사된 기록이 없고, 전용 훈련탄인 Mk.24는 1957년 2월에 푸에르토리코 근해에서 전함 위스콘신이 육상표적으로 시범사격했다는 기록이 있다.

핵포탄이 어떤 목적을 가지고 만들어졌는지는 불명확하지만, 그 당시 미국 해군 전함의 임무는 육상에 대한 화력지원이므로 1차 목적은 육상목표에 대한 포격용이고 개발 당시에는 핵포탄이 항공폭탄보다 명중도가 압도적으로 높고 기상의 영향을 별로 받지 않는다는 점을 이용해 함대간 전투에서도 사용하려고 한 것으로 예측한다.

사실 급하면 2번 포탑의 주포 3문에 핵포탄을 장전하고 일제사격만 해줘도 적 함대에게는 지옥이 따로 없을 것이다. 야마토? 그게 먹는 건가요 당연히 핵무기를 가지고 현실에서 이랬다가는 발사한 쪽도 무사하지 못하다.

아마 이것이 전함이 마지막으로 전략 무기였던 시기일 것이다.

10. 기타

1990년대까지 취역한 최후의 전함이라는 이미지 때문인지 다른 함선들과 달리 작품에서의 취급이 매우 좋은 편.

영화 언더시즈에서는 퇴역을 앞둔 미주리가 테러리스트에게 납치당하는 수모를 겪는다. 다행히(?) 지나가던 주방장의 도움으로 해방(?)된다. 여기서 퇴역한 해군 출신 노인네들이 배를 움직인다는 기믹은 배틀쉽으로 이어졌다. 테러리스트들과 공조하는 구형 잠수함[19]을 함미의 3번 주포로 격침시키는데 이때 주포 발사시의 굉음과 충격파에 멋모르고 주포탑에서 얼쩡거리던 윌리엄 스트라닉스(토미 리 존스 분)은 뒤로 날아간데다 정신이 제대로 나가게 된다.

신세기 에반게리온 TV판에서는 아이오와급으로 건조되다가 중단된 후 해체된 5번함 일리노이와 6분함 켄터키가 에반게리온 2호기 수송작전에 참가. 수중에서 함대를 공격하는 제6사도 가기엘를 제압하기 위해 승조원이 퇴거한 가운데 자침, 에바 2호기가 벌린 사도의 입 안으로 골인(?)해서 16인치 함포 일제사격으로 강냉이를 털어버린다. N2 어뢰 수 방을 맞고도 끄떡도 안하던 가기엘을 비록 AT필드가 중화된 상태였다지만 16인치 포탄 12발을 코어에 직격으로 때려박아 격퇴시켰다. 웬만한 화력은 무시하고 N2 폭탄도 시간벌기 정도가 고작인 사도의 방어력을 생각해보면 정말 미칠듯한 화력을 보여준 셈.

용자왕 가오가이가에 나오는 기계최강7원종의 리더인 완원종은 뉴저지를 강탈하여 오비트 베이스 침공용 모함으로 사용했다.

월드 인 컨플릭트에서도 싱글 미션 한정으로 파인 밸리 미션에서 USS 미주리가 등장해서 포격 지원을 할 수 있다. 역시 미국의 형님답게 위력은 프리시전 아틸러리와 동일하면서 포인트 공짜(!), 발동시간 5초의 위엄으로 소련군 탱크를 신나게 고철덩어리로 만들 수 있다. 하지만 후반부에서 파커의 나레이션을 들어보면 브리티시 콜럼비아에서 격침됐다고 한다. 지못미. 정확는 미션 17. 중국군이 태평양을 건너서 시애틀에 상륙할 예정이지만 미주리가 침몰하는 등의 피해를 입서 태평양 함대가 이를 막을 수 없다고 나온다.

문명 5에선 전함의 기본 외형으로 등장한다. 원거리에선 매우 잘싸우지만 잠수함에는 답이 없기 때문에 언제나 구축함, 잠수함, 순양함과 함께 다녀야 한다.

영화 배틀쉽에서는 3번함 미주리가 주역으로 등장. 외계인 모선을 16인치 주포로 응징하는 초 드레드노트급 전함의 위엄과 폭풍간지를 보여주어 그동안 소외되었던 해군덕과 특히 전함덕들은 대대적으로 환호했다. 특히 16인치 주포로[20] 외계인의 모선과 조준도 필요없는 근거리에서 포탄을 주고받는 남자의 로망을 실현한다[21]. 그것도 미주리는 Every thing you've got! 이로써 미군은 60년전 무기로도 외계인을 잡을 수 있다는 것이 증명됐다. 그런데 3번 포탑에 고폭탄하나 남았지? 아마 거기에 외계인 함선에게 공격당하면서도 전함의 우월한 맷집으로 견뎌내고, 노병이 이에 거들어 "전함은 이정도로는 쓰러지지 않는다!"라고 일갈하는 장면은 그야말로 폭풍간지.[22]

함대 컬렉션의 팬들 사이에서는 엔터프라이즈와 함께 게임에 출현하면, 일본계 함선소녀의 천적이자 사신인 사기캐릭터가 될수있을거라고 생각하는데, 해외함이 아직까지도 4척(그것도 전부 독일계통)뿐이라는것과 적인 심해서함이 연합군이 모델일 가능성도 있기에 등장할 확률은 적은편.
2차 창작 팬아트 등에서는 금발의 호쾌한 누님이거나, 2차세계대전당시의 공적 적다는것을 토대로 조용하지만, 실제로는 아주 무서운 양갓집 아가씨 캐릭터[23]로 그려지기도 한다.국산 미주리 칸코레버전

Naval Front-Line에서는 미국 트리의 최종 종착지이며 레벨60을 찍어야 하는만큼 강려크하다.

쪽바리도 잡고, 빨갱이도 잡고, 사도외계인도 잡았겠다. 이제 우주전함으로 개수해서 파동포만 달면 본격 우주정복 [24]

디스커버리에 뽑은 최고의 10대 군함에서 1위를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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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사실 야마토급 전함만 아니었어도 이 배들이 역사상 가장 거대한 전함이 될 수도 있었다. 독일의 비스마르크급 전함도, 영국의 뱅가드(전함)도 만재배수량 기준으로 아이오와급보다 몇천 톤 이상 가볍다. 오하이오급vs아쿨라급도 그렇고 미묘하게 미국의 최대급 무기들은 경쟁국의 동일 플랫폼에 비해 항모 빼고 조금씩 가벼운 편이 많다.
  • [2] 이를테면 과달카날에서 활약한 USS 워싱턴 함이라던지, 미 전함 중 가장 많은 작전에 참가한 USS 노스 캐롤라이나 함 등. 그 유명한 USS 엔터프라이즈가 빠진 이유는 당시 카미카제에게 공격받아 상태가 영 좋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굳이 미주리가 아니라도 충분히 전적을 쌓은 배가 많은데 굳이 미주리를 채택해야 했을지는 의문.
  • [3] 8번의 사격이 모두 협차를 기록했다.
  • [4] 몬태나급 설계 시안 중 길이 298.7미터 속도 33노트, 16인치 9문에 16인치 SHS대응방어력을 갖춘 BB-65-2의 기준배수량이 5만3500톤이었다.
  • [5] 미국의 대서양 정기 여객선. 유사시 군 수송선으로 사용할 목적으로 여객선에 걸맞지 않는 엄청나게 강력한 주기관을 탑재했다. 248,000마력(180,000kW), 과부하시 298,000마력(...)
  • [6] 참고 : N. Friedman, "US Battleships : An illustrated design history",Naval Institute Press 1985 p.311
  • [7] 아이오와급 설계와 건조하던 시기엔 미해군은 공고급을 26노트라고 알고 있었기에 맞지 않다는 지적이 있어 수정 된 상태이다.
  • [8] 출처 : U.S. Battleships An illustrated Design History 307p
  • [9] 아이오와급과 비슷한 방호력을 갖춘 사우스다코타급 전함의 사례를 보면 아이오와는 결코 순양전함으로 분류될 물건이 아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히에이가 미국 중순양함에게 두들겨 맞고 대파된 다음날 저녁 같은 해역에서 미국 전함 사우스다코타가 전기고장을 일으켜서 공격능력과 항해능력을 일시 상실하고 표류하는 바람에 공고급 기리시마에게 근거리에서 무지막지하게 두들겨 맞았다는 사실이다. 다만 이건 등가교환과는 거리가 먼 게, 떡실신당한 히에이와는 다르게 사우스다코타급은 전함 기리시마의 14인치 철갑탄 1발을 포함한 수십발을 온 선체에 골고루 피탄당했는데도 중요부위는 단 한곳도 파괴되지 않았다! 그리고 동생(?)이 쳐맞는걸 보고 열받은 노스캐롤라니아급 전함 워싱턴이 찾아오자 그냥 두드려 맞았다.
  • [10] Admiral Rober L. Ghormley, the director of War Plan, argued that although three 45,000-ton battleship might match three Japanese Kongos, the new Japanese battleships might well also have to matched.
  • [11] 어떤 병기도 자신보다 우월한 목표를 공격가능하면 하위의 목표도 대응하기 위해 만들었다고 하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IS-3티거3호 전차에 대해 모두 대응이 가능하지만 티거 대응용이라고 부르지 3호 전차 대응용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아직 조약에 잔류중인 영국, 프랑스 협의하에 톤수 제한이 4만5천톤까지 올렸는데 공고 대응용으로만 전함을 만들겠다고 의회에서 허락한 전함 건조 수량을 그냥 쓰기엔 무척이나 아까울 것이다.
  • [12] https://en.wikipedia.org/wiki/Montana-class_battleship#Design "This limited the Montanas' ability to escort and defend the Pacific-based Allied aircraft carrier fleet" http://web.mst.edu/~rogersda/american&military_history/World's Fastest Battleships.pdf http://www.blnz.com/news/2008/04/23/MONTANA_CLASS_BATTLESHIPS_LINE_1284.html
  • [13] 이때 수영장이 탑재(...)되기도 하였다고 한다. ##
  • [14] 기존의 일반 고폭탄도 시한 신관을 맞추면 당연히 대공사격을 할 수는 있다.
  • [15] 208kg이라는 자료도 존재.
  • [출처] https://www.defenseindustrydaily.com/files/2007-05_JFSC_Thesis_NFS_and_DDG-1000.pdf 55p
  • [17] 위에도 사거리가 같은 포탄이 있는데 이게 해리로는 정확히 100 해리로 떨어지는 숫자라서 그렇다.
  • [18] 후에 구경도 훨씬 작은 줌왈트급의 AGS 155mm 포가 150km에 달하는걸 생각하면 그렇게 특이한건 아니다. --위에 이미 정신나간 사거리 포탄도 상당히 있고..
  • [19] 진짜로 구형. 갑판위에 덱건도 달린 형태다.
  • [20] 노병분들께서 M2도 시원하게 갈겨주신다. 잘보면 5인치 부포도 갈겨대는 모습을 볼수 있다.
  • [21] 정확한 거리는 나오지 않지만 적함과의 거리가 150~200m밖에 되지 않는다는 발언이 나온다.
  • [22] 첫 전투때 같은 공격을 얻어 맞았던 이지스함 샘슨이 그대로 격침당한데 비해 미주리는 3번 포탑이 파괴되는 등 피해를 입어도 그대로 모선의 강냉이를 털어댔다.
  • [23] 미국이 당시 경제가 황금기다 보니 2차창작에서의 함대 컬렉션의 미군함선 캐릭터들은 대부분 아가씨로 그려진다.
  • [24] 근데 아직 아이오와급중 일부는 가동할수있기에, 레일건이 항후 20년내에 개발된다면, 3연장 주포를 때어내고 레일건을 장착하여 운용할것이라는 루머가 있다.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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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modified 2015-07-18 18:3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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