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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 공화국



섬뜩할 정도로 한반도의 남한부분과 비슷하다.

(ɔ) from


게일어 : Éire.[1]
영어 : Ireland.[2]
한국어 : 아일랜드[3]

Contents

1. 개요
2. 국기
3. 국가
4. 역사
5. 정치
6. 경제
7. 종교
7.1. 아일랜드에서 개신교는 매국종교?
7.2. 아일랜드 가톨릭의 문제점
8. 외교
8.1. 영국과의 관계
8.2. 대한민국과의 관계
9. 행정구역
10. 언어
11. 문화
12. 스포츠
13. 여행
14. 참고 서적

1. 개요

면적 70,273km²
인구 4,832,765명(2014년)
종교구성 가톨릭 86.8%, 개신교 5.4%, 무종교 4.4%
국가원수 미할 오히긴 (Mícheál Ó hUiginn)[4] 대통령
정부수반 에너 오키니 (Éanna Ó Coinnigh)[5] 총리
수도 더블린
1인당 GDP 명목 $47,751(2011), PPP $39,312(2011)
GDP 명목 2,127억 달러(2011), PPP 1,751억 달러(2011)
통화 유로 (이전엔 파운드)
언어 영어, 게일어

영국의 바로 서쪽에 있는 섬나라로, 면적은 약 70,200km². 남한의 70% 정도로 영국(약 244,000km²)의 1/3보다 약간 작다.

자국어(아일랜드 게일어)로는 에이레(Éire: 빛의 여신 에일린의 이름을 딴 것)라고 한다. 켈트 신화에 나오는 에린이 바로 이곳이다. 수도는 더블린. 그리고 국가는 Amhrán na bhFiann(어우란 너 비언), 해석하면 '전사의 노래(amhrán)'라는 의미다.

유럽 대륙과 브리튼 섬에서 로마인, 게르만족 등에 밀려난 켈트족이 마지막까지 버틴 지역이기도 하며, 덕분에 현재 남아있는 켈트 신화 중 대다수는 아일랜드가 출전이다.

아일랜드인의 신체적 특징으로는, 서유럽과 북유럽 사람치고는 머리색이 어두운 편이지만 눈동자와 피부색은 밝은 편이다.링크1링크2 일반적으로 서유럽과 북유럽 사람들이 멜라닌 색소가 적은 금발벽안을 지니고 남유럽 사람들은 어두운 눈동자와 머리색을 지니고 있지만 아일랜드인들의 경우 이러한 특징들이 정반대로 나타나는데 스페인포르투갈사람처럼 이베리아반도에 거주하였던 켈트족이 북유럽으로 이주하였을 것이라 추측된다. 물론 아랍과 아시아 사람들처럼 심하게 어두운건 아니고 은근히 금발도 많은 편이다[6]. 그리고 적발 유전자를 지닌 보인자들도 상당히 많은 편이라 적발의 비율도 높은데 이를 보면 타 유럽 사람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비율이 고른 편이다.

2. 국기


아일랜드 국기의 비율은 2대 1이며, 흰 바탕에 폭이 같은 초록, 하양, 주황의 세 가지 색이 세로로 그려져 있으며, 녹색은 섬나라와 가톨릭을, 주황색은 신교도를, 흰색은 두 종교 집단의 평화와 이해를 상징한다. 이 국기는 1848년 청년아일랜드운동의 기수인 토머스 프랜시스 미거(Thomas Francis Meagher)가 최초로 도입했으며, 그 이후 1916년 자유 아일랜드의 상징이 되었으며, 1922년에 아일랜드 자유국으로 독립하면서 정식 국기로 채택되었다. 색상배치가 반대인 코트디부아르의 국기와 거의 유사한데, 아일랜드의 국기가 조금 더 오래된 것으로 19세기 중엽에 처음으로 등장했다. 여담으로 색상배치가 이탈리아의 국기와도 거의 유사한데, 특히 주황색 부분을 애매하게 진한 주황색 등으로 해 놓을 경우, 정말로 분간이 잘 안 가는 경우도 있다.이탈리아의 국기를 오래 놔둬서 색이 바라면 아일랜드의 국기로 저절로 바뀐다고 한다.

3. 국가


전사의 노래(Amhrán na bhFiann - 어우라운 나 베인)는 피더 키어니(Peadar Kearney)와 패트릭 히니(Patrick Heeney)가 1907년에 작곡했으며, 1907년에 피더 키어니가 영어로 작사한 것을 1923년에 Liam Ó Rinn이 게일어로 번역했고, 1926년국가로 제정되었다. 아래의 아일랜드/역사 항목을 읽어보면 이해할 수 있지만, 곡조는 평화롭지만 가사내용은 정말이지 처절하다. 긴 버전과 짧은 버전이 있는데 국가로 쓰이는 것은 '짧은 버전'으로 긴 버전의 코러스 부분에 해당된다.

Sinne Fianna Fáil
우리는 전사라네 (신나 피언나 파일)
Atá faoi gheall ag Éirinn
아일랜드의 생존을 서약한 (아타우 프이 얄 악 에이린)
Buíon dár slua
어찌하여 왔는가 (브윈 돠르 슬루아)
Thar toinn do ráinig chughainn
파도 너머의 땅으로부터 (하르 틴 도 란니 흐와인)
Faoi mhóid bheith saor
우리는 자유를 쟁취하겠다는 맹세를 하네 (파이 워지 와이 시어)
Sean-tír ár sinsear feasta
우리들의 옛 조국의 땅은 (샨시얼 알 섄시어 파스타)
Ní fhágfar faoin tiorán ná faoin tráill
압제와 노예 상태를 벗어버리리 (니 약페어 프원 시으뤈 나 프원 트랄)
Anocht a théam sa bhearna bhaoil
오늘 밤 우리 전사들은 '위험의 절벽'을 넘어 (아나흐타 헴 사 바르나 브웰)
Le gean ar Ghaeil chun báis nó saoil
아일랜드인들의 삶, 아니면 죽음을 위해 (라 갼 얼 곌 한 브월 나 시웰)
Le gunna scréach faoi lámhach na bpiléar
대포의 굉음과 총성을 울리며 (라 건나 스크레잌 피 라바크 나 베얼)
Seo libh canadh Amhrán na bhFiann
전사의 찬가를 부르리라 (샤올린 칸니 어우라운 나 베인)

4. 역사

6. 경제

7. 종교

종교는 가톨릭이 지배적이다.[8] 이유는 아일랜드의 수호성인 성 패트릭[9]이 아일랜드의 골칫거리였던 들을 모두 없애버렸다는 전설을 적절하게 사용했기 때문이다. 실제로는 빙하기 시기 모조리 얼어죽은 후, 해빙기 때 바다로 둘러싸여 뱀이 상륙하지 못하게 되면서 발생한 일. 여담으로 아일랜드는 지금도 뱀이 없다고 알려져 있다. 이 덕분에 켈트족들이 토속신앙을 버리고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였다고 한다. 아일랜드인들은 가톨릭 신앙을 굳건하게 지켰기 때문에 성공회를 믿는 영국인과 갈등이 심했다. 아니, 영국인보다는 영국인들이 견제 목적으로 들여온 스코틀랜드계 켈트인들(청교도)들과의 대립도 무시 못한다.[10] 하지만 그러한 성공회와의 대립은, 순수한 종교의 대립이라기보다는 과거 오랜기간 동안 잉글랜드에게 핍박받으며 자유를 보장받지 못한 상황에서 가톨릭이라는 종교에 민족 정체성을 부여했던 것이 종교의 차이로 인한 대립과 결합되어 나타난 거다.

7.1. 아일랜드에서 개신교는 매국종교?

개신교의 경우 아일랜드 성공회가 최대 종파로서 잉글랜드계 아일랜드인(Anglo-Irish)을 중심으로 이어져 오고 있다. 19세기까지는 아일랜드의 유일한 국교로서 가톨릭을 탄압하였으나 국교해제 이후에는 교세가 급격히 쪼그라들었다. 현재 신자는 40만 명 가량으로 대표적인 인물이 성공회 성직자였던 조너선 스위프트기네스 맥주로 유명한 기네스 가문, 그리고 아일랜드 초대 대통령인 더글러스 하이드가 있다. 그 밖에 소수 종파로 장로교, 감리교, 침례교 등등도 있다. 아일랜드 성공회를 비롯하여 아일랜드의 모든 개신교 교단들은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 공화국을 같은 총회에서 관할한다. 북아일랜드 소속 노회(지방회)와 아일랜드 공화국 소속 노회(지방회)가 같은 총회의 산하에 있는 것이다.

이렇듯 아일랜드 가톨릭 신자들은 가톨릭에 자신들의 민족 정체성을 부여하여 영국에 대한 저항의 아이콘으로 여겼지만[11] 정작 아일랜드의 독립운동을 주도적으로 이끌어 나간 애국지사들 가운데는 상당수가 개신교인이었다. 오히려 가톨릭은 공식적으로는 독립운동에 부정적인 가운데 신부와 신자들이 어디까지나 개인 자격으로 독립운동에 가담한 것. 이렇듯 개신교인이면서 아일랜드 독립운동에 가담한 애국지사들을 '개신교 공화주의자'(Protestant republican)이라고 한다. 1798년도 아일랜드 독립전쟁을 이끈 유나이티드 아이리시멘(United Irishmen)은 기본적으로 초교파를 표방했으나 수장인 울프 톤을 비롯하여 주도권은 개신교인들이 쥐고 있었다. 독립전쟁 당시 지휘관 4명 가운데 2명은 성공회(울프 톤, 에드워드 피츠제럴드), 1명은 장로교회(헨리 조이 매크래켄) 교인이었으며 나머지 1명(존 머피)만이 가톨릭 신부였다. 이들 말고도 윌리엄 오어, 토머스 러셀, 새뮤얼 닐슨, 토머스 오스본 데이비스 등등 많은 독립운동가들은 가톨릭이 아닌 개신교를 믿었다. 가톨릭 신자들이 본격적으로 독립운동에 가담한 것은 19세기 말, 20세기 초부터이다. 즉 아일랜드 개신교=친영 매국노는 절대로 아니다! 이렇듯 개신교 공화주의자들은 독립운동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고, 현재 아일랜드 공화국의 개신교 교인들은 영국을 지지하는 북아일랜드의 개신교 교인들과는 달리 거의 대부분이 개신교 공화주의 노선을 따른다. 그도 그럴 것이 엄연한 독립 공화국인 아일랜드 공화국 국민으로써 아일랜드 섬 북쪽의 여섯 개 주를 불법으로 점거하고 있는 반국가 단체추종한다는 것은 아일랜드 공화국 정부 그 자체를 부정하는 것으로써 코렁탕 먹어도 백 그릇은 먹을 일이니... [12] 애초에 현대 북아일랜드의 근간이 된 얼스터 지방의 개신교도들은 16세기 말의 오닐의 봉기, 17세기 중반 킬케니 연방의 봉기를 진압하면서 아예 토착 아일랜드인들을 강제로 추방해 버린 다음에 현지에 눌러 붙으며 지속적으로 고향인 스코틀랜드, 잉글랜드와 교류를 유지한 기원이나, 정체성이나 완전 영국인인 반면, 얼스터 넘어서는 그 만큼의 개신교 포교(라기 보다는 사실 강제에 가깝지만...)가 거의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숫자도 적었고, 현지 아일랜드 게일 토착민들의 사회, 문화에 적극적으로 동화되어 가면서 민족주의가 부흥할 시점에 진작 아일랜드 민족주의쪽으로 방향을 갈아 탔다.

7.2. 아일랜드 가톨릭의 문제점

다만 현재는 아일랜드 공화국에서도 젊은 층을 중심으로 가톨릭 인구 비율이 급감하는 추세인데, 그 이유는 간단하다. 바로 아일랜드 신부들이 자신들이 교목으로 있는 미션스쿨의 남학생들을 장기간에 걸쳐 집단적으로 성추행하는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사회를 충격에 빠트렸기 때문. 아일랜드는 대부분의 학교가 미션스쿨이고, 종교에 따라서 가톨릭 학교나 개신교 학교로 진학하게 된다. 이 가운데 가톨릭을 믿는 서민층의 교육은 아일랜드 신부들을 중심으로 조직된 크리스천 브라더스(Christian Brothers)라는 기관에서 세운 학교들이 주로 담당하고 있다.[13] 그런데 이 크리스천 브라더스의 신부들이 자기네들이 가르치는 학교의 남학생들을 장기간에 걸쳐서 성추행한 사실이 2002년도에 폭로가 되었다. 이것 말고도 아일랜드 신부들이 저지른 온갖 섹스 스캔들이 사회 이슈로 떠오르면서, 아일랜드 가톨릭의 사회적 신뢰도는 동양의 그 어떤 나라에서 정확히 그 반대쪽 종파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폭락을 하게 되었고, 젊은 층들은 급속도로 가톨릭에 등을 돌리게 되었다. 골 때리는 것은 그 반대로 아일랜드 공화국에서 성공회 교인은 증가하고 있다(...) 가톨릭 신부들의 막장짓거리에 분노한 신자들이 가톨릭을 버리고 성공회로 가는 것이다. 동양의 그 어떤 나라하고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유일한 차이점은 가톨릭과 개신교가 서로 바뀌었을 뿐. 아일랜드에서 신부는 특별한 종교적 권위를 가진다는 인식을 대다수의 신자들이 가지고 있는데[14], 신부들이 이를 악용하여 성추행을 저지른 것이다. 충격적인 것은 그 대상이 성인 여성이 아니라 남자 어린이였다는 것이다. 더블리너스 멤버인 에이몬 캠벨도 자신이 성추행 피해자였음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에 의하면 크리스천 브라더스의 아동 성추행은 장기간에 걸쳐 조직적이고 반복적으로 이루어져 왔다. 이런 천하의 개쌍놈들...
뭐 물론 다른 종교도 나을건 없다...종교란게 다 그렇지 쌍놈들

아무튼 그 결과 현재 아일랜드 사람들이 가톨릭 신앙심이 독실하다는 건 50대 이상 나이 많은 사람들 한정이고, 젊은 사람들은 해당사항 없다. 더블린에서 20대의 미사 참석률은 20%도 되지 않으며, 빠른 속도로 무교의 비율이 증가하는 추세이다. 여기서 무교란 무신론, 불가지론, 그냥 종교에 관심없음 등등을 다 포괄하는 개념. 젊은 층의 경우 신자유주의 무한경쟁 체제에서 살아남기 위한 스펙경쟁 때문에 종교에 신경 쓸 틈이 없는 이유도 있고, 또 막장스러운 짓거리로 사회를 충공깽에 빠트린 가톨릭에 대한 실망감 때문에 종교에 아예 등을 돌려 버린 이유도 있다. 또한 앞서 말했듯 성공회 교인 수도 빠른 속도로 증가 추세이다. 종교문제때문에 남북통일이 힘들다고 했는데... 아일랜드 통일이 눈앞에 다가왔구나...

8. 외교

8.1. 영국과의 관계

영국-아일랜드 관계 항목 참조. 아일랜드인들의 영국에 대한 반감은 매우 뿌리깊다.

8.2. 대한민국과의 관계

아일랜드와의 인연은 생각보다 꽤 오래 전에 있었다. 일제강점기중국 단둥에 있던 이륭양행(怡隆洋行)은 아일랜드인이었던 지 쇼(George L. Shaw)[15]가 세운 무역선박회사로 실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교통국 역할을 수행하며 독립운동가의 중국 망명, 독립운동 자금 모집, 무기 구입, 연통제 운영 등의 역할을 했다. 의친왕의 망명 시도도 이륭양행을 이루어졌다.

광복 이후 한국과 아일랜드와의 공식적인 관계는 1961년에 처음 외교 접촉을 했고, 한때 주(駐) 영국 대사관에서 겸임해 왔다가 1983년에 가서야 공식 외교 관계가 성사되어 서울과 수도 더블린에 상주 대사관이 설치되었다.

1988 서울 올림픽 때 자국 선수단을 파견하였으며, 2002 한일 월드컵 16강전 때 스페인과의 대결을 위해 일본에서 조 예선을 치르게 된 후 축구 선수와 응원단이 방한한 적이 있었다.

한국과 아일랜드의 관계는 그동안 정부 간의 교류보다 가톨릭 사제들과 수도자들을 통한 민간 교류의 비중이 높았다. 제주도의 유명 관광지인 이시돌 목장은 1954년 아일랜드인 신부들이 주축이 된, 성 골롬반 외방선교회의 패트릭 제임스 맥그린치 신부에 의해서 설립되었다. 성 골롬반 외방선교회의 담당 지역은 전라남도 지역이었는데, 제주도8.15 해방 이전에는 행정구역이 전라남도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많은 아일랜드인 사제들이 일제강점기부터 제주도 지역에서 사목했다.

아일랜드인 사제들은 4.3 사태로 인해 삶의 기반이 파괴되어 가난에 시달렸던 제주도 중산간 주민들의 경제적 자립을 위해서 목축업을 장려하기로 하고, 제주도 한림읍 금악리 일대에 농장을 건설했다. 뉴질랜드호주에서 면, 돼지를 들여와서 한때 가축 수백만 마리를 사육했던 동양 최대의 목장으로 성장시켰고, 제조 설비까지 들여 와서 우유치즈와 같은 낙농 제품을 생산하기도 했다. 현재 이시돌 목장은 가톨릭 성지화되어 각종 종교 및 복지시설이 세워졌고, 한우를 사육하고 있다.

이외에도 수많은 아일랜드인 사제들과 수도자들이, 가톨릭교회 및 비영리단체를 통하여, 한국전쟁 이후 여러 지역에서 교육 및 빈민구호활동을 펼쳤다.

미군한국에 대해서 써놓은 최초의 보고서에서는, "한국인들은 동양의 아일랜드인이다."라고 써 놓은 것이 최근 기록조사 중에 밝혀졌다.

9. 행정구역

아일랜드는 전통적으로 크게 얼스터(Ulster : 북부)[16], 렌스터(Leinster : 동부, 수도 더블린이 포함된 중심지), 코노트(Connacht : 서부), 먼스터(Munster : 남서부)의 4개 지역으로 나뉘어지며, 유의미한 행정구역으로는 32주(County : 현 아일랜드 공화국령 26주, 북아일랜드 6주)로 구분되어 왔다. 그러나 티퍼레리(Tipperary) 주가 1898년 남 티퍼레리 주와 북 티퍼레리 주로 나뉘어졌으며, 더블린 주가 1994년 던 리어리래스다운(Dún Laoghaire-Rathdown), 핑글(Fingal), 사우스더블린(South Dublin)의 3개 주로 나뉘어지면서 29주가 되었다.

또한 더블린, 코크(Cork), 리머릭(Limerick), 골웨이(Galway), 워터퍼드(Waterford)의 5개 시가 주와 동급이며, 행정구역상으로도 주와 분리되어 독립적인 지방의회를 가지는 시[17]로 존재하여 현재 아일랜드 공화국의 행정구역은 29주 5시로 되어 있다.

아일랜드 공화국의 5대 도시는 위에 언급된 5개의 도시이며, 인구 순은 다음과 같다.

1. 더블린(53만)[18]
2. 코크(12만, 광역 21만)
3. 골웨이(7만 5천)
4. 리머릭(5만 7천)
5. 워터퍼드(4만 6천)

10. 언어

공식적인 제1언어는 아일랜드의 고유어인 게일어(An Ghaeilge), 제2언어가 영어(An Béarla)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영어가 가장 널리 사용되는 언어다.

수백년에 걸쳐 영국의 지배를 받은 탓에 아일랜드 고유의 언어인 게일어를 사용하는 아일랜드인의 현저하게 숫자는 줄었지만, 완전히 소멸되지는 않았다. 400만 아일랜드 인구 중 게일어를 모국어로 하는 사람은 55,000명 정도로 추산된다. 즉, 제1언어로 쓰는 인구가 약 2%가량 있으며, 전체 인구의 40%는 게일어를 안다.[19] 독립한 후에 게일어 복원 사업을 계속 벌였으며, 게일어는 학교 교육과정에서 필수 과목이며, 공무원 시험에서도 필수 과목으로 넣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인 결과다. 특히 교사 임용이나 교수 임용 등 교육자를 임용하는 시험에서는, 게일어 시험에 떨어질 경우 다른 점수가 아무리 높아도 무조건 탈락이다. 그러나 여전히 일상 생활에서는, 영어에 비하면 사용 빈도는 안습 수준. '세미나에서 게일어 발표를 준비하기 위해 게일어를 공부하고 연습한다'는 교수가 있을 정도이니…

다만 아일랜드 서부지역은 이른바 게일타흐트(An Ghaeltacht)라고 불리는 게일어만 통하는 언어 보호 지역들이 있으며, 이 지역에서는 교통 표지판 등도 모두 게일어로만 되어 있다. 아예 법안으로 정해서 도로 표지판에 영어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게일어를 모국어로 구사하는 아일랜드인도 아주 조금씩이나마 늘어나는 추세이기는 하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영어를 알아야 할 필요성이 있기 때문에, 게일타흐트 지역의 아일랜드인들은 거의 모두 영어도 사용 가능한 이중언어 사용자들이다.

문제는 이 아일랜드 게일어가 표준화되어 있지 않다고 알려져 지레 겁먹고 포기한다는 것. 사실 표준화는 이미 1920년대에 거의 이루어졌다. 지역마다 발음의 차이가 매우 크다고도 하지만, 실제로는 북부 얼스터 지방 vs 나머지 지방의 미미한 차이밖에 없고, 실제로 게일어 관련 표기는 완벽하게 통일된 기준안이 아일랜드에서조차 마련되어 있지 않다는 이야기는 저런 데서 와전된 이야기인 듯하다. 애초에 구사자 수가 워낙 적다보니 외국에서는 이러한 잘못된 지식이 전해지는 경우가 많을 뿐더러, 수가 적은 것 자체로도 문제가 크다.

그런 이유로, 켈트 신화나 게일어가 들어간 아일랜드 문학가들의 작품을 번역할 때는 많은 애로사항이 꽃핀다. 예를 들면 국내에 번역 출간된 『켈트 신화와 전설』의 경우, 번역자들이 한국에 거주하는 아일랜드인 교수에게 자문을 구했지만 역시 '정확한 표기'라는 걸 단정지을 수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아일랜드 대사관에까지 자문을 구했지만, 역시 완벽한 표기를 알아내는 건 불가능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는 그 교수가 한국에서 사는 건 다른 많은 외국파 아일랜드 교수들처럼 게일어를 제대로 못하기 때문에 외국까지 나와서 교수 활동을 했을 수 있고, 대사관의 답변 역시 게일어 시험이 의무화되기 전에 이미 나랏녹을 먹던 사람들에 대해서는 게일어 능력 검증이 이루어지지 않거나 형식적으로만 이루어졌기에, 대사관에 있던 사람들이 다 어설펐을 가능성이 높다. 예컨대 흔히 크로우 크루아흐로 널리 알려진 아일랜드 신화의 신 Crom Cruach는 IPA 표기상으로 [ˈkɾˠɔmˠ ˈkɾˠuəç]로, 굳이 한글로 옮기면 크롬 크루어히가 된다. 그런데 이 책에는 "크롬 크루아히"와 "크롬 크루아이히"라고 따로따로 표기되어 있다. 책을 대충 번역해서 그렇다 한국예이츠학회에서는 이츠의 작품에 등장하는 게일어 고유명사 표기를 위해 따로 '게일어 고유명사 한글 표기 통일안'을 만들었지만, 이것은 예이츠의 작품에 나오는 게일어를 표기하기 위한 일종의 '약속'에 불과하다. 게다가 이것도 현지 발음과 비교해 보면 오류가 많다고 한다. 참조

게일어 표기만 되어 있는 게일타흐트 지역을 제외하면 역 이름이라든가 중요한 표지판들은 대부분 영어/게일어를 병기하고 있다. 영어도 물론 공용어이며, 아일랜드 출신으로 저명한 영문 문학가도 상당히 많이 있다. 예컨대 시인 리엄 버틀러 예이츠, 극작가 오스카 와일드, 던세이니, 조지 버나드 쇼, 뮈엘 베케트, 피네건의 경야와 율리시스, 더블린 사람들 등을 쓴 제임스 조이스 등이 있다. 사실 무려 800년[20]에 가까운 오랜 식민 지배 기간 동안 어렇게 고유어를 지켜온 것이 대단한 일이라고 볼 수 있다.

일단 영어가 공용어이기는 하지만, 좀 나이 많으신 분들이 사용하는 아일랜드 억양 영어는 표준적인 영국 영어에 비하면 상당히 괴악한 편. 그래서 영어 좀 안다고 자부하고 이 나라에 갔다가 좌절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참고로 영화 해리 포터 시리즈에서 초대 덤블도어 교장 역할을 맡은 배우 故 처드 해리스의 영어가 이 아일랜드 억양 영어이다. 멀리 갈 필요없이 WWE의 프로레슬러인 쉐이머스가 말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또블류또블류이 챰피온 흔히 영드로 잘못 알려져 있는 드라마 튜더스에도 많은 아일랜드 출신 배우들이 나온다. 헨리 8세부터 아일랜드 배우인 조너선 리스 마이어스.

11. 문화

12. 스포츠

전통 스포츠하키의 일종인 축구의 일종인 게일릭 풋볼이 있다. 이 2가지는 프로가 아닌 아마추어 스포츠이다. 참고로 아일랜드에서는 게일릭 풋볼이 정통 풋볼이기 때문에 축구영국처럼 'football'이라 하지 않고 미국처럼 'soccer'라고 한다. 그 밖에도 축구, 크리켓, 럭비와 같은 영국에서 넘어 온 스포츠를 많이 하는데, 축구나 럭비에 비해서 크리켓의 성적이 좋지 못하다. 오죽하면 2007년 크리켓 월드컵에서 강호인 파키스탄을 3:0으로 이기고 8강에 진출하자, 파키스탄에선 굴욕이라고 난리가 벌어진 적도 있다. 그리고 영국인인 파키스탄 국대 크리켓 감독인 밥 울머(1948~2007)가 살해당하기까지 했다.

국가대표 축구는 한때 강호였으나 최근 세대교체로 전력이 예전만 못하다. 2014년 5월 현재 FIFA랭킹 65위에 랭크되어 있다. 자세한 것은 아일랜드 축구 국가대표팀 항목 참조.

클럽 축구는 국가의 경제 규모의 한계로 세미프로리그로 운영되다가 최근에 1부리그 12팀으로 리그가 재편되었으나, 여전히 대학교 클럽이 참가하고 있다. 바로 옆나라워낙 거대한 축구 시장이 있어서, 싹수가 있는 선수들은 일찌감치 잉글랜드 축구의 팜아일랜드를 떠나 잉글랜드 클럽으로 흡수 된다.

럭비는 국가대표와 클럽 모두 스네이션스이네켄컵 같은 유럽 대항전에서는 종종 우승하는 등, 성적이 준수한 편이다. 하지만 최근 세대교체로 주춤한 상황. 물론 럭비 최강국인 남반구 3개국(뉴질랜드, 호주, 남아공)에는 상대가 되지 않는다.

구기 종목 이외에는 복싱이 강한 편이다. 아일랜드는 1990년대까지만 해도 꽤 가난한 나라였고, 헝그리 정신이 넘치는 훌륭한 복서들을 많이 배출해냈다. 오늘날까지도 그 명맥이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지, 아일랜드가 현실적으로 올림픽에서 메달을 기대할 수 있는 종목은 복싱뿐이라는 말이 있을 정다.

골프 역시 대중적인 스포츠이다. 스코틀랜드와 자연환경이 비슷한지라 인트 앤드루스 올드 코스와 흡사한 모래바람 날리는 해변의 골프장들이 널려 있다. 18홀 정규 코스 외에도 룰을 간소화 한 약식 골프가 중년 여성들의 생활 스포츠로 자리잡았다.

영국의 영향으로 경마 문화도 발달했지만, 그 레이스가 훨씬 대중적이다.

2009년 세계 프로 레슬링계를 충격과 공포로 몰아간 셰이머스의 고향이기도 하다.

13. 여행

전반적으로 다른 유럽의 관광 명소에 비해 인지도가 다소 낮은 편이다. 배낭여행 일정 중에 아일랜드가 있다고 하면, 10의 8~9은 의아하게 바라보기도 한다(...) 심지어 나라 이름 때문에 아이슬란드와 혼동하는 사람들도 보인다. 나라를 혼동하지는 않더라도 철자가 Ireland가 아닌 Island라고 알고 있는 사람도 꽤 된다. 일단 둘 다 이니까.

거기에 한술 더 떠서 섬나라라는 특성상 가는 것 자체가 불편해서인지, 유럽 여행을 갈 때 아일랜드는 제외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한국에서 유럽으로 출발하는 경우 가장 흔한 도착지인 영국을 기준으로, 다른 나라들과는 완전히 반대 방향인 서쪽에 있기 때문에 갔다 오려면 시간을 내서 왕복을 해야 하는 등 여행 코스를 짜기도 애매하다. 그래서인지 동양인 관광객이 발에 채이는(...) 다른 유럽 국가들과 달리, 아일랜드에는 동양인 관광객이 상대적으로 많지 않다. 물론 아일랜드로 영어를 배우러 오는 어학연수생들은 시내 돌아다니면 좀 있다. 여행하는 사람들도 수도인 더블린만 짧게 여행하고 마는 경우가 많다. 다만 배낭여행객에 비해 유럽여행을 할 기회가 상대적으로 좀 있는 유럽 내 유학생의 경우에는 예외.

하지만 사람이 많은 더블린 교외만 나가봐도 전체적인 분위기는 좋은 편이고 이미 관광객들로 배가 부를 대로 부른 다른 국가에 비하면 관광객들에게 매우 친절하게 해 준다. 입국 심사도 까다롭기로 유명한 영국과 달리, 매우 간단한 수준이다. 더블린 외에도 골웨이 같은 명소들이 잘 찾아보면 의외로 많이 있으며, 사람이 많고 줄서서 오래 기다리느라 혼잡한 다른 명소들에 비해 여유롭게 여행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리고 한국에서 여행하려면 코스가 애매하지만, 반대로 미국이나 캐나다 같은 북미 쪽에서 유럽으로 여행하는 경우는 얘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국적기인 어 링거스가 미 대륙을 오가는 저렴한 항공편을 제공하기 때문에, 북미 사람들이 특정 국가가 아니라 유럽 전역을 여행하려고 하는 경우, 경비 절약을 위해 아일랜드를 도착 지점 혹은 미 대륙으로 돌아가는 출발 지점으로 택하는 일이 흔하다. 이 때문인지 동양인보다는 미 대륙 쪽에서 온 아일랜드계 고향 방문단 관광객들이 꽤 많다.

14. 참고 서적

한울아카데미사에서 나온 『아일랜드의 역사』(원서명: The Course of Irish History)가 아일랜드의 통사를 잘 서술하고 있다. 사실 아일랜드 역사에 대해 그나마 제대로 서술된 책이 나온 게 이 책과 서울대학교 서양사학과 박지향 교수의『슬픈 아일랜드』[21]뿐이다. 물론 통사이기 때문에 상세한 부분에 있어서는 영어 원서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그 외에 『20세기 포토 다큐 세계사』 5권(부제 : 아일랜드의 세기)에서 아일랜드 근현대사와 함께 참고가 될 만한 사진 자료를 많이 살펴볼 수 있으며, 시공디스커버리의 『아일랜드 대기근』에서 아일랜드 대기근 당시 상황을 살펴볼 수 있다. 참고로 지금까지 언급한 서적들이 아일랜드사를 아는 데 번역서로는 거의 전부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아일랜드사가 서양사에서 절대 주류라고는 할 수 없기에 어쩔 수 없는 현실이지만. 결국 아일랜드 역덕후가 되기 위해서는 영어 능력이 필수이다. 게일어까지 안다면 금상첨화겠지만 거기까지는 좀 무리고 역사를 주제로 하지 않은 책으로는, 푸른 길에서 나온『이승호 교수의 아일랜드 여행 지도』가 있다. 건국대학교 지리학과 교수인 이승호 교수가 안식년으로 아일랜드에서 1년간 생활하면서 쓴 책이다. 교수의 전공이 전공인지라 인문지리적인 정보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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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ˈeːɾʲə. 에이레 정도로 읽으면 정확하진 않아도 비슷한 발음이다.
  • [2] Oxford Advanced Learner's Dictionary 8th Edition과 Longman Dictionary of Contemporary English 5th Edition에서는 'aɪələnd'하고 읽으라고 가르쳐준다. 아이얼런드 정도의 발음. 아이어랜드
  • [3] 아일랜드 공화국(Republic of Ireland, Poblacht na hÉireann)이란 이름이 법적으로 "the description of the State"라고 묘사되어 있으나, 공식적인 명칭은 아니다. 다만 '아일랜드 섬'과 혼동될 수 있기 때문에 보통 '아일랜드 공화국'이라 칭하는 경우가 흔하다.
  • [4] 영어로는 마이클 대니얼 히긴스(Michael Daniel Higgins).
  • [5] 영어로는 엔다 케니(Enda Kenny).
  • [6] 아일랜드인의 밝은 머리색의 비율은 전체인구에서 38%, 금발은 15%, 적발은 9%.
  • [7] 수치가 높을수록 언론 자유가 없는 국가, 언론자유 최상은 0.00점, 언론자유 최악은 100.00점, 2013년 이전 자료는 수치가 넘어가는 것.
  • [8] 얼마나 가톨릭 신앙이 대단하냐면, 이 곳의 공영방송이자 국가 기간 방송인 RTÉ에서 오후 6시에 삼종기도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를 1분간 방송한다. 때문에 이후에 방송되는 뉴스 시작 시간은 6시 1분이다.
  • [9] 성 파트리치오. 영어로는 Saint Patrick (세인트 패트릭), 게일어로는 Naomh Pádraig(니브 파드리그)라고 한다. 원래는 영국에 살던 로마인이었으나, 로마 제국이 영국에서 물러나면서 침략한 켈트족에 의해 잡혀, 아일랜드의 양치기 노예가 디었다. 그러다가 탈출에 성공해서 갈리아(지금의 프랑스)에서 가톨릭으로 개종했다. 그리고는 사제가 되어서 다시 바다를 건너 아일랜드로 가서 가톨릭을 전파했는데, 노예로 아일랜드에서 살아온 경험으로 켈트족의 풍습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선교에 성공했다.
  • [10] 한 예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주인공 스칼렛 오하라의 아버지인 제럴드 오하라가 1세대 아일랜드계 미국인인데('오하라'라는 성씨도 아일랜드인 성씨인 Ó hEara에서 유래한 성씨다.), 이웃 매킨토시 일가가 스코틀랜드 청교도 출신이라는 이유로 매우 싫어하며 절대 교류를 하려 들지 않는다. 물론 이 매킨토시 일가는 제럴드에게 미움을 사는 요소 이전에, 기본적으로 사교성이 부족해서 다른 마을 사람들도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지만.
  • [11] 실제로 개신교였다가 독립운동 도중에 가톨릭으로 개종한 사례들도 꽤 된다. 대표적으로 콘스탄츠 매키비치 백작부인
  • [12] 실제로 아일랜드 공화국 헌법상 아일랜드 공화국의 영토는 아일랜드 섬과 그 부속 도서 전체이다. 즉 북아일랜드 자치정부는 아일랜드 공화국 헌법상으로는 아일랜드 섬 북쪽을 불법으로 점거 중인 반국가 단체가 되는 것. 물론 현실적인 이유 때문에 부속 조항을 달기는 했지만 일단 원칙은 아일랜드 공화국의 영토는 아일랜드 섬 전체이다.
  • [13] 가톨릭을 믿는 부유층의 교육은 예수회에서 세운 학교가 주로 담당한다.
  • [14] 가톨릭은 교황 이하의 모든 신자들이 자신보다 랭킹이 높은 성직자(장상)에게 순명해야 한다는 교리를 내세우며 만인제사장론을 거부하기 때문에 일반 신자에 대한 신부의 권위와 신부들끼리 랭킹에 따른 수직적 위계질서가 굉장히 강조되는 편이다. 아일랜드의 경우 그 경향이 특히 심해서 신부는 특별한 영적 권위를 가진다는 인식이 사회적으로 당연시되고 있다.
  • [15] 1963년 대한민국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으나 그의 후손을 찾지 못해 정부에서 보관하다, 2012년 후손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전달하였다.
  • [16] 얼스터는 9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중에서 6개 주는 영국북아일랜드에, 3개 주는 아일랜드 공화국에 속한다. 그렇기 때문에 엄밀히 말하면 틀린 개념이지만, 얼스터의 대부분이 영국령이기 때문에 흔히 얼스터를 영국령 북아일랜드를 가리키는 대명사로 부르기도 한다.
  • [17] 이 시의 개념은 한국의 특별시광역시의 개념과 거의 일치한다.
  • [18] 더블린을 중심으로 한 베드타운위성도시들을 포함한 광역 도시권의 인구는 약 180만. 아일랜드 공화국의 전체 인구인 450만의 40%에 가깝다.
  • [19] 이 안다는 건 어디까지나 제2언어로써 안다는 것이고,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다는 건 아니다. 그나마 학교에서 가르치고 각종 국가시험에서 필수과목으로 지정하니까 공부해서 아는 거지, 일상생활에서는 잘 안 쓰기 때문에 그렇다.
  • [20] 일제강점기(36년)의 22.2배가 되는 기간이다!
  • [21] 단, 이 책은 박지향 교수의 뉴라이트 성향이 반영되어, 아일랜드의 독립운동을 평가절하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고 읽어야 한다. 정말 안타까운 건, 한국에서 그나마 아일랜드 역사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게 박지향 교수뿐이라는 사실. 그래서 국내에 번역된 아일랜드 역사 관련 서적은 모두 박지향 교수의 감수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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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modified 2015-09-30 23:3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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