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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틸라

last modified: 2015-03-27 21:44:45 by Contribu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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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 시기의 작품
Atilla/Attila the Hun (영어)
Atle, Atli (고 노르드어)
Etzel (독일어)
Attila hun király (헝가리어, 어틸러 훈 키라이)

406~453
재위 443~453년


신의 징벌

훈족(Huns)의 왕.
훈족 최후의 왕이라 일컬어진다.

서양인들은 '훈족의 아틸라(Atilla the Hun)'이라고 통칭한다.



Contents

1. 일생
2. 평가
2.1. 생김새와 인종 논란
3. 기타
4. 창작물에서의 양상

1. 일생

초기에는 그의 형인 블레다(Bleda)와 함께 훈족을 통치하였는데 이때도 아틸라가 정치상 실권을 장악하고 있었다는 통설이 있으나 이는 전 유럽에 명성을 떨친 아틸라의 위상을 높이 봐서 나온 말이리라. 실제론 그냥 형 밑에서 상당히 독립된 세력이 있는 2인자 정도로 간주해야 옳을리라.[1]

형인 블레다가 죽고서는[2] 마침내 훈족의 최고 지도자가 되었다. 당시 훈족의 위세는 최절정기로 중부 유럽의 게르만족 諸國이 훈족에게 멸망당했고 동서 로마는 훈족과의 관계를 유지하고자 조공하기도 했다.

동로마 제국의 조약 위반 등으로 양국의 관계가 악화하자 아틸라는 1차로 동로마를 공격하였다. 이 공격으로 동로마는 베오그라드가 함락되고 발칸 반도 대부분이 쑥대밭이 되었으며 2차 원정에서는 마침 콘스탄티노플 성벽이 지진으로 크게 훼손되어 겁에 질린 동로마가 영토 할양과 공물을 배로 바치기로 하고 협약한다고 동로마가 이때의 훈족보다 약하다고 보면 오산이다. 동로마는 언제나 사산 왕조를 상대하는 동부 전선에 최소 절반의 군사력을 유지하게 해야만 했기 때문. 한쪽 팔을 묶고 싸운 거다. 당시 동로마군의 배치는 여기를 참조.

이후 공물 받으면서 소견세월하다가 동로마가 본격으로 협약을 파기하고 영토 수복에 나섰는데 때마침 서로마의 황녀인 호노리아와 일이 터진다.[3] 공물을 받으면서 세를 과시하긴 했지만 동로마의 국력은 확실히 만만히 볼게 아니었는데 서로마는 이미 여러모로 세력이 약화해 원하는 만큼의 이득을 챙길 수 있다고 판단한 아틸라는 동로마의 공세를 거의 무시하는 방향으로 일관하면서 서로마에 집중하기 시작한다.

마침 갈리아 북부의 프랑크족까지 세력 분쟁으로 아틸라에게 구원을 요청하자 훈족과 복속시킨 여러 이민족의 전사 10만 명 이상을 결람해 이끌고 라인강을 넘는다.
여기에 서로마의 군사령관이었던 플라비우스 아에티우스와 서고트족의 테오도리크 1세는 손을 잡고 갈리아 내에 있는 약소한 여러 부족을 포섭해 연합군을 편성, 카탈루니아 평원[4]에서 전투한다.

후에 카탈라우눔 전투라 불리는 이 전투에서 아틸라가 진영 함락 시 진영을 불태우고 자결하려고 장작까지 쌓아놓았을 정도로 아틸라군은 대패했으나 훈족의 소멸을 원치 않았던 아에티우스에 의해 아틸라군은 살아남는다.

이후 2차 원정에서는 호노리아와의 혼인과 그 지참금을 달라고 요구하면서 이탈리아로 넘어왔는데 서로마의 군사력으로 이를 막기엔 무리였고 결국 라벤나까지 진격, 교황 성 레오 1세가 로마까지 초토화를 우려해 아틸라에게 강화를 제안했고 아틸라는 이를 받아들였다.

아틸라는 세계 정복을 꿈꿨고 사산 왕조 페르시아까지 공격할 계획하지만[5] 혼인식을 치라는 날 밤에 술에 취해 급사하면서[6] 그의 꿈은 물거품이 되었다. 그의 사후 훈족의 위세는 거짓말처럼 무너져 버렸다.

2. 평가

동서 로마와 게르만족에게 아틸라와 그가 이끄는 훈족은 가히 공포이자 신의 심판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전의 유럽에서는 그토록 무자비하게 학살하고 약탈했던 족속들이 거의 없기 때문이었다.

당시 유럽인들은 아틸라와 그의 군대를 신의 심판이 현실화라고 묘사하였으며 아틸라를 공포의 대왕이라고 지칭하기도 하였다. 이쯤 되면 세상을 멸망하게 하고자 지옥에서 기어 올라온 악마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7]

아틸라와 훈족들이 얼마나 무시무시했는지, 유럽의 여러 전설에도 상당히 자주 등장한다. 게르만 계열 전설에는 위엄 있고 강대한 군주로 묘사되나[8], 바이킹 계열 전설에선 술고래(...) 정도의 이미지로 묘사되며, 기독교와 관련된 전설에서는 거의 현세에 도래한 악마들의 군주 정도로 묘사되곤 하지만 교황 성 레오 1세가 신의 기적과 위엄을 설파하자 알아서 자리를 피했다고도 한다.위엄 쩌는 교황 성하의 업적

한편, 아틸라의 공포성이 유럽권에 널리 각인되어 아틸라를 통칭하는 말인 '훈족의 아틸라(Atilla the Hun)'는 대체로 성격이 거칠고 포악한 사람을 이르는 은어나 수식어 정도로 사용되었다고 하니 서양권에서 아틸라의 악명이 얼마나 자자했는지 짐작할 만하다.

아틸라 사후 훈족이 돌연 패망한 탓에 아틸라의 자질을 회의하는 견해도 많다. 그것을 대표할 정도로 전형이 될 만하거나 특징이 있는 것이 외교관계 약화. 실제로 훈족은 약탈 문화가 강하여 주변국과의 관계가 좋은 사이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 전까지는 언제나 동맹 세력을 마련해 놓는데 소홀했던 적이 없다. 아틸라 이전에도 동로마는 열심히 털어 먹으면서도 서로마에는 군사상 상당히 지원해 주는 가까운 관계였던 것이 대표할 정도로 전형이 될 만하거나 특징이 있는 사례이나 아틸라는 그런 것을 모두 무시하고 주변 모든 세력을 완전히 종속시키거나, 그게 아니면 적으로 간주하는 이분법성 사고를 현로한 결과 훈족 세력 자체는 다수한 종속 세력 덕분에 비대해진 대신 주변의 세력은 모두 적으로 돌아섰고 아틸라가 급사한 후 종속된 여러 세력이 소요하고 모두 적으로 돌아선 주변의 여러 세력이 공격해 오면서 훈족은 급격하게 쇠락한다.

후대의 정복자들인 청나라의 누르하치티무르, 그리고 개먼치킨 칭기즈 칸과 비교해 저평가하는 견해가 많으며, 이는 이룬 업적의 단순한 비교가 아닌, 이러한 통치 과정을 놓고 하는 평가이나 훈족을 다룬 온전한 기록을 찾을 수 없다는 점으로 말미암아 이런 비교 평가는 위험할 수 있다.

2.1. 생김새와 인종 논란

로마인 역사가가 남긴 기록을 보면, 아틸라는 "작은 키, 넓은 어깨; 그의 수염은 가늘고 희끗희끗했다; 그리고 그는 출신을 짐작케 하는 편평한 코와 까무잡잡한 피부를 가졌다"라고 전한다. 이런 기록만 보면 투르크계나 몽골계 중간쯤의 유목민 같아 보이지만 다른 유럽 지역의 여러 기록을 보면 오히려 아리아계나 이란계처럼 묘사한 기록도 있다.

훈족을 다룬 기록을 보면, 서양 측은 동양인 같은 人들을 대상으로 한 묘사가 나오지만 되려 동양 측에서는 서양인처럼 붉은 머리에 큰 코를 대상으로 한 묘사가 나오기도 한다. 훈족이 게르만족이나 로마인들과 싸우던 중에 아틸라가 이끌던 훈족 기병들 중에는 훈족에 복속된 게르만족 전사들도 많았다고 한다.

이것 때문에 아틸라를 중앙아시아와 동유럽 슬라브 계열의 혼혈로 추측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딱히 아틸라를 혼혈이라고 생각할 수는 없다. 한 공동체에 여러 민족이 뒤섞이는 과정에서도 지배계급 사이에서 교류가 생기는 일은 별로 없고 보통 혈통의 순수성을 지키고자 보통은 폐쇄성을 띠는 데다가 현재로서는 아틸라의 혈통을 추측할 자료가 저 문헌에 의한 묘사뿐이라서 일단은 몽골로이드 정도로 추측할 수밖에 없다.

3. 기타

아틸라가 중국과 교역했다는 얘기가 있고 그는 황금 보검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보물 제635호에 해당하는 신라의 황금 보검과 유사하다.

황금 보검에 들어가는 재료 중에 석류석이 있는데 이 석류석은 아틸라가 살아 있던 당시에는 인도나 스리랑카에서만 구할 수 있었으며, 황금 보검은 트라키아에서 제작했는데 이를 이용해 신라가 해상을 이용해 국제무역을 했다는 증거로 추정된다.

4. 창작물에서의 양상

아틸라의 외모를 다룬 기록이 부족해서인지 2차 창작물에선 그 생김새가 다양하게 묘사된다. 아틸라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영화인 <훈족의 아틸라>에서는 제라드 버틀러가 연기하여 아예 백인과 같은 외모로 묘사되는데 코미디 영화인 박물관이 살아있다에서는 동양인의 모습을 하고 있다.[9] 다만 〈박물관이 살아있다〉에서 등장하는 훈족들은 몽골족과 더 비슷한 면도 있다.

어떻게 보면 훈족은 유목민족이니 만큼 다른 민족이 다 섞여서 어떻게 나와도 상관없을지도(...)

서울대학교 출판부에서 출간된 '에다' 언역에서는 린힐트의 오빠로 나온다.

또, 주세페 베르디는 아틸라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오페라를 만들었다.

아틀란티카에서는 아틸라를 모델로 용병을 만들었는데 용병 성별 균형을 맞추려는 이유 때문인지 여체화 해 등장했다.(...) 다만 용맹한 여전사의 이미지가 상당히 부각된 탓에 이건 여캐가 아니고 남캐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호불호가 갈리는 편이다.

임페리얼 가드의 스페셜 캐릭터 모굴 카미르는 아틸라의 패러디다. 아예 그가 살던 행성 이름 자체가 아틸라다.

문명 5 확장 팩에서 등장하는 아틸라는 동양인보다는 서양인에 가까운 모습으로 표현되며, 시도 때도 없이 전쟁할 정도로 전쟁을 좋아하는 성향의 지도자이면서 도시를 다른 지도자들보다 빠른 속도로 잿더미로 만들 수 있는 특성이 있다.
[10]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2: 정복자에선 캠페인 미션의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미션 제1편과 제6편에서 직접 조종 가능한 영웅 유닛으로도 나온다. 근데 훈족의 특수 유닛인 타칸이 아니고 비잔틴의 카타프락토이로 나온다. 어라?[11]

크리에이티브 어셈블리토탈 워: 아틸라에서 주역으로 등장. 다만 시대적 문제로 초기 지도자는 아틸라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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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유명인이 권좌에 오르기 전에도 실권을 쥐고 있었으리란 신념은 꽤나 설득력이 있기에 람세스 2세도 파라오가 되기 전 아버지와 공동으로 통치했으리란 신념이 있었다고 한다.
  • [2] 블레다의 사망을 다룬 설로는 사냥 중에 사고로 죽었다는 설과 이것을 가장해 아틸라가 암살했다는 설로 나뉜다. 실제로 블레다가 죽기 전에도 아틸라와 블레다는 어느 정도 대립 구도가 있었다는 점에서 후자 쪽에 무게가 실리는 경향이 있다.
  • [3] 황제 발렌타아누스의 누이 호노리아가 시종의 아이를 임신하여 그 시종은 즉시 처형되고 호노리아는 정략혼을 할 궁지에 몰리자 독신 생활에 싫증이 난다는 이유로 아틸라에게 구혼하는 편지를 몰래 보냈다. 이때 지참금으로 서로마의 절반을 약속. 참으로 국가 전체에 걸친 민폐가 아닐 수 없다(...).
  • [4] 現, 오를레앙
  • [5] 이 사산 왕조 공격설이 어디서 나왔느냐 하면 동로마에서 훈족에게 파견된 사절단이 아틸라를 섬기는 옛 로마인과 벌인 연회에서 옛 로마인이 아틸라가 아마 이제 사산 왕조를 칠 거라는 추측성 발언하면서 나왔는데 실제로 아틸라가 사산 왕조의 아르메니아 합병을 막고자 파병한 적이 있긴 한 모양이나 일부 군대를 나눠 파견했을 뿐 자기 자신은 본대를 이끌고 갈리아를 쳤기에 아틸라가 정말로 페르시아를 멸망시킬 생각했을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게르만족을 대상으로 한 지배권 확대와 로마에서의 공납에 더 관심했을 가능성이 크다.
  • [6] 사망 원인은 심장마비나 뇌출혈로 추정
  • [7] 몽골 제국도 동유럽 침공 당시 비슷한 소리를 듣게 된다.
  • [8] 대표할 정도로 전형이 될 만하거나 특징이 있는 니벨룽의 노래, 에첼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 [9] 여기서는 주인공이 자기 어린 시절의 고적을 이해해 주자 다른 훈족들과 울음을 터트린다.(...)
  • [10] 하지만 그의 훈족 문명에 관련된 음악은 모두 흉노에 관련된 '이릉사한'의 멜로디에 기초한다.
  • [11] 능력치도 센데다가, 카타프락토이이라서 창병에게 보너스 데미지가 안 박힌다. 심지어 같은 카타프락토이 영웅인 벨리사리우스조차도 창병에게 죽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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