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 D R , A S I H C RSS

아폴로 계획

last modified: 2015-04-12 20:35:35 by Contributors

인간은 달에 갈 수 없습니다. 아무리 과학이 발달하더라도 말이죠. 제가 장담합니다.
ㅡ 리 드 포레스트 박사,오디온 튜브 발명자, 라디오의 아버지, 1957년 2월 25일[1]

That's one small step for (a) man, one giant leap for mankind.
이것은 한 명의 인간에게는 작은 발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위대한 도약이다.
닐 암스트롱, 1969년 7월 20일 달에 최초의 발자국을 남기며.

f0018015_4e7de80f01bd8.jpg
[JPG image (166.03 KB)]

아폴로 11호의 승무원 에드윈 버즈 올드린의 발자국 인증샷이다.[2][3]

미국 과학역사상 최대, 최고의 미친 짓. 소련을 따라잡겠다는 일념만으로 추진된 인류사상 최대의 탐험계획이자, 우주 비행사들과 NASA, 그리고 베르너 폰 브라운의 피와 땀이 이루어낸 공학계의 성배.

그리고 천조국이 벌이는 공밀레외계인 고문의 진정한 시작
V2는 뻘짓의 산물이 아니라는것을 인증해준 계획[4]

Contents

1. 시작된 달 경쟁
1.1. 미국의 선공
1.2. 소련의 반응과 그 이후
2. 아폴로 계획의 전모
2.1. 아폴로 1호
2.2. 아폴로 4호, 5호, 6호
2.3. 아폴로 7호
2.4. 아폴로 8호, 그리고 크리스마스
2.5. 아폴로 9호
2.6. 아폴로 10호
2.7. 아폴로 11호. 독수리는 내리다
2.8. 아폴로 12호
2.9. 아폴로 13호
2.10. 아폴로 14호
2.11. 아폴로 15호
2.12. 아폴로 16호
2.13. 아폴로 17호
2.14. 스카이랩 계획
2.15. 아폴로와 소유즈의 조우(ASTP)
2.16. 결산
2.17. 성과
2.18. 달 경쟁의 이면
3. 이미지로 보는 아폴로 계획
4. 우주인은 얼마나 고생을 했는가?
5. 기타
6. 대중매체에서의 아폴로 계획


1. 시작된 달 경쟁

이 계획의 이유는 단 한 가지였다. 을 연구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기술을 발전시키겠다는 것도 아니었다. 단 하나, 미국이 달에 사람을 먼저 착륙시킨 후 무사귀환시킴으로써 우주 경쟁에서 소련을 제친다. 이를 위해서는 인명의 손실도 감수한다.는 것이었다. 1960년대의 미국은 이 계획에 집착하듯이 달라붙었는데, 이는 한때 NASA의 예산이 미국 GDP의 0.75%를 차지했던 시절이 있다는 것으로 알 수 있다.[5] 아폴로 계획에 투입된 예산은 2005년 환율로 환산하면 1700억 달러에 이르며, 이는 2010년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예산의 660배에 달한다. 나사의 현재 1년 예산이 170억 달러 가량인걸 감안하면 한 프로그램에 이 정도의 예산이 투입됐다는건 국가가 이 프로그램에 얼마나 큰 노력을 들였는지 알 수 있다. 이는 미국의 자존심의 문제로, 계획의 시작은 196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61년, 소련이 보스토크 1호로 세계최초의 유인우주선 제작국이라는 타이틀을 얻자, 미국은 가뜩이나 스푸트니크로 상처받은 자존심에 비수가 꽂힌 느낌이었다. 미국도 이에 응수해 가가린 크리가 뜬지 한 달도 안되어 머큐리 계획의 첫 우주비행을 감행, 앨런 셰퍼드가 탑승한 프리덤 7호를 머큐리 계획의 일환으로 발사했으나. 이는 로켓의 파워부족으로 소련과는 달리 준궤도비행에 그쳤다.[6]

1.1. 미국의 선공



결국 당시 미국의 대통령 존 F. 케네디우주 경쟁에서의 소련의 부상에 위협을 느끼고, 61년 5월 25일 국회에서 그 유명한 "1960년대 안으로 인간을 달에 보내겠다"는 연설을 통해 달 여행 계획을 세우고 있음을 최초로 언급했다.

미국은 60년대가 끝나기 전에 인간을 달에 보내 무사귀환시켜야 합니다. 다른 어떠한 우주 계획도 인류에게 이보다 강렬한 인상을 심어줄 수 없다고 확신합니다. 이는 또한 장기적인 우주 탐사 계획에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이며, 이를 위해 온갖 어려움과 막대한 비용을 감수할 것입니다.
first, I believe that this nation should commit itself to achieving the goal, before this decade is out, of landing a man on the Moon and returning him back safely to the earth. No single space project in this period will be more impressive to mankind, or more important for the long-range exploration of space; and none will be so difficult or expensive to accomplish.


그리고 1962년 9월 12일, 쌀나라답게 라이스 경기장(Rice Stadium)에서의 연설에서 보다 명확히 했다.

For the eyes of the world now look into space, to the moon and to the planets beyond, and we have vowed that we shall not see it governed by a hostile flag of conquest, but by a banner of freedom and peace. ...(중략)... We choose to go to the moon, We choose to go to the moon. We choose to go to the moon in this decade and do the other things, not because they are easy, but because they are hard."

"세계의 눈이 지금 우주를 향해, 달과 그 너머 행성들을 향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맹세했습니다. 우주가 적의에 차 있는 정복의 깃발(=소련) 아래 지배되도록 좌시하지 않고, 자유평화의 깃발 아래 지배되도록 할 것을. ...(중략)... 우리는 달에 갈 것입니다. 우리는 달에 갈 것입니다. 우리는 1960년대 안에 달에 갈 것이고, 다른 일들도 할 것입니다. 쉽기 때문이 아니라, 어렵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마지막 부분은 드라마 지구에서 달까지의 오프닝에서 사용되었다.

1.2. 소련의 반응과 그 이후

연설 직후, 소련의 니키타 흐루쇼프조지아에 장군들을 모아놓고 미국과의 달 착륙경쟁에 나서야 되는가에 대해 토론했다. 긴 회의였지만 결국 이번에도 미국을 엿먹이자는 결론이 나왔다.

일단 선빵을 때리긴 했지만 계획이 계획인만큼 워낙 어마어마한 돈이 들고 기술도 부족하여 케네디는 당시 루나 2호를 달 뒷편에 충돌시키는 등 승승장구하고 있던 소련과의 연합계획도 고려하게 되었다. 케네디는 두 차례에 걸쳐 흐루쇼프에게 기술-자금 협력을 제안했지만 흐루쇼프의 반대와 케네디의 암살로 결국 양국은 독자적으로 달 탐사를 추진하게 된다.

한편, 진 크랜츠를 비롯한 나사 직원들도 이 연설을 듣고선 그야말로 기겁을 했다. 머큐리도 간신히 올려놓은 판국에, 사람을 달로 보낸다니? 소련을 따라잡기도 급급한데? 그러나 그 직후 NASA에는 일하겠다고 찾아온 사람들이 줄을 섰다. 크랜츠의 회고에 따르면 "좋아. 저 인간이 우릴 믿어주는데 한번 해봐야지!" 이런 분위기였다고 한다. 결국 NASA 전체는 휴일 그거 먹는 건가요, 자발적인 공밀레 모드로 돌입했다. 이야~ 야근이다!

달착륙 미션을 수행하기 위한 NASA의 연구개발은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첫번째는 달까지 보내기 위한 거대 로켓을 개발하는 것이다. 이는 베르너 폰 브라운 박사의 주도 하에 진행된 새턴 V 로켓의 개발 프로젝트였다. 두번째는 달착륙 미션 과정에 필요한 여러가지 실질적인 비행 기술을 테스트하고 익히는 것이다. 이것이 머큐리 계획 이후에 진행된 제미니 계획이었다. 제미니 계획 동안 랑데뷰, 도킹, 우주 유영, 장기간 우주 체류 등 달착륙에 필요한 여러가지 기술들에 대한 테스트가 이루어졌다.

2. 아폴로 계획의 전모

f0018015_4e7de7e603523.gif
[GIF image (9.56 KB)]

아폴로 계획의 Mission Insignia

이렇게 서로의 자존심을 건 레이스가 시작되었고, 두 나라는 자신들의 전투기 톱에이스들을 훈련시키기 시작했다. 당연히 천문학적인 금액을 투자하면서 하드웨어를 개발하기 시작했으며, 소련은 루나 무인 탐사선들을[7], 미국은 베르너 폰 브라운의 주도하에 레인저[8], 서베이어[9], 루나오비터를 보내 착륙장소를 물색하기 시작했다.

이후 아폴로 계획의 세부일정 수립을 총괄하던 오언 메이너드(Owen Maynard)는 아폴로 계획의 세부 미션을 다음과 같이 분류하였다.

A 미션 : 새턴 로켓과 사령선의 비행(아폴로 4, 6호 - 무인)
B 미션 : 달 착륙선 시험 비행(아폴로 5호 - 무인)
C 미션 : 지구 저궤도에서 사령선의 시험 비행(아폴로 7호)
D 미션 : 지구 저궤도에서 사령선과 달 착륙선의 시험 비행(아폴로 8호가 맡을 예정이었으나 실제로는 아폴로 9호가 담당. 아폴로 8호는 C-prime 미션으로서 사령선만의 달 궤도 진입을 실행함)
E 미션 : 지구 중궤도에서 사령선과 달 착륙선의 시험 비행(아폴로 9호가 맡을 예정이었으나 실행되지 않았다)
F 미션 : 달 궤도에서 달 착륙을 위한 리허설 실시(아폴로 10호)
G 미션 : 최초의 달 착륙 시도(아폴로 11호)
H 미션 : 달에서의 정확한 착륙 시도 및 달에서 2일간 체류하며 두 차례의 선외활동 실시(아폴로 12호, 13호(실패), 14호)
I 미션 : 기존 미션보다 더 긴 사령선의 달 궤도 비행 및 사령선의 여유 공간을 활용한 추가적인 과학 실험 수행. 실제로는 이후의 J 미션과 통합되었다.
J 미션 : 기존 달 착륙선보다 더 발전된 달 착륙선을 이용한 3차례의 선외활동 및 월면차를 이용한 임무 수행(아폴로 15호, 16호, 17호). 원래 아폴로 15호는 H 미션에 해당되는 것이었으나 아폴로 18호에서 20호까지가 예산 삭감으로 취소되면서 J 미션으로 편입되었다.

2.1. 아폴로 1호

존슨 위원회가 자세한 원인을 규명하겠지만, 원인은 분명하다. 바로 우리다. 준비도 안 되어있었고, 장비도 불충분했고, 모든 것이 부족했다. 하지만 빌어먹게도, 아무도! 아무도 중지라는 말을 하지않았다. 이제부터는 '철저'와 '완전'을 신조로 삼자.

유인 테스트 비행은 미국이 먼저 시작했는데, 아폴로 1호를 통해 사령선과 기계선의 작동을 테스트하는 게 아폴로 1호의 목적이었다. 때문에 이 미션은 정식 아폴로 미션은 아니었고 계속되었던 수많은 작은 훈련 미션 가운데 하나였다.

진 크랜츠는 그때 당시를 이렇게 회고했다. "다들 머리에 열이 차 있었죠." 즉 반쯤 맛이 갔다는 뜻이며, NASA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일단 제껴. 시간 없어."로 일관하면서 시험비행을 강행했다고 한다.

그러나 1967년 1월 27일, 케이퍼 커내버럴에서 훈련 중 화재가 발생했다. 사고원인은 우주선 내부의 스파크로 인한 화재발생으로, 내부의 공기가 순수한 산소로 이루어져 있었기에 화재진압에 실패한 것이 문제였다.[10] 우주비행사들은 급히 탈출하려고 했지만, 한 번 열려면 90초나 걸리는 해치때문에 탈출에 실패하여 3명 모두 질식사하였다.[11]

  • 거스 그리섬 (Gus Grissom) - 아폴로 1호의 사령관이자 미 공군 중령으로(한국전 참전 경험이 있다.), 이전에도 사고기록이 있었다. 머큐리 계획 중 리버티 벨 7호를 타고 두 번째 탄도비행을 성공시킨 우주인이 되었는데, 착수 직후 우주선 캡슐 해치가 저절로 열려버려[12] 익사할뻔 했었던 것이다. 처음엔 그리섬 중령의 과실로 여겨졌다가 재조사후 해치의 오작동 문제로 밝혀졌는데, 이 때문에 그리섬 중령은 징계를 받지 않고 아폴로 1호의 사령관이 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리섬은 아폴로 1호의 해치를 쉽게 열리지 않도록 설계해 달라고 부탁했던 것이다... 참으로 씁쓸한 일이다.
  • 에드워드 화이트 (Edward White) - 시니어 파일럿으로, 미국 최초로 우주유영을 한 사람이다. 구명줄만 잡고 나간 소련의 알렉세이 레오노프와 달리, 우주총[13]을 사용하여 비교적 자유롭게 우주를 돌아다녔던 경력이 있으며, 사고 당시 해치를 열려고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 로저 채피 (Roger Chaffee) - 미 해군 소령. 쿠바 미사일 위기 당시 쿠바 상공에서 정찰임무를 수행하였는데, U-2[14]를 조종했다는 설이 있고 A-3 스카이워리어를 조종했다는 설이 있지만 이 당시 미션들이 죄다 일급 기밀이라 공식적으로 밝혀진 바는 없다. 사고 당시 통신회선에 "화재다!"라고 외친 사람이다.

이 참사는 HBO 드라마 지구에서 달까지 2화 전체를 할애하여 자세히 묘사하고 있다. 참사의 원인은 그야말로 여러 가지 사소한 부분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사태를 키운 것. 우선 일부 배선 하네스가 점검용 패널 근처에 배치되어 패널을 여닫을 때 씹히면서 배선 피복이 벗겨져 전원 공급시 스파크가 튈 가능성이 있었다. 이 스파크가 조종석 하단의 나일론 망 등의 가연물질에 튀었고, 대기중에서는 그정도의 불꽃으로 큰 화재가 발생하지는 않겠지만 당시 아폴로 1호 사령선 내에는 100% 순산소가 공급된 상태였다. 그것도 무중력 하의 선내 압력조건 재현을 위해 가압된 상태로! 여기에 설상가상으로 해치가 안쪽으로 열리게 설계되어 선내가 가압된 상태[15]에서는 설사 해치 잠금장치를 제때 풀었더라도 해치를 열 수가 없는 상황이다.

이후 NASA는 계획을 잠시 중지하고 설계를 재검토했다. 화재에 대비해 가연성 재료를 불연성으로 교체하고, 배선을 보호물질로 덮었으며, 선내 기압을 조절하고, 해치를 여는데 걸리는 시간을 7초로 줄였다.

그리고 죽은 우주비행사들이 탑승한 우주선은 아폴로 1호가 되었다. 원래 이 미션은 AS-204라는 이름의 네 번째 임무였지만, 그 전에 실시된 3회의 임무는 AS-201, AS-202, AS-203으로만 불릴 뿐 아폴로 몇 호라는 식으로 불리지 않았다. 아폴로 1호 역시 원래 그러한 미션 가운데 하나였다. 그러나 사고로 희생된 우주비행사들의 유가족들을 달래기 위한 보상책의 일환으로 아폴로 1호로 명명되었다. 그리고 그때를 경험한 NASA 직원들은 이 사건을 '그 화재'로 가리키며 죽은 이들을 기린다고 한다. 하지만 이후로도 NASA의 인명피해는 계속 이어졌는데, 공교롭게도 이 사건 29주년 하고도 딱 하루가 지난 1986년 1월 28일 챌린저호가 발사 도중 폭발했고, 1월 중순 발사하느라 아폴로 1호와 챌린저호 추모식을 좀 일찍 치르고 우주에 올라갔던 컬럼비아호가 2003년 2월 1일에 귀환 도중 공중분해되었다. 어째 NASA의 사고들은 죄다 이 시기에 몰려있다...

2.2. 아폴로 4호, 5호, 6호

(ɔ) Maldoror from

새턴5호를 이용해 발사한 로켓들

아폴로 4호는 최초로 새턴 V 로켓을 사용해서 발사되었으며[16], 아폴로 5호는 새턴 1B 로켓에 의해 발사되었고 달착륙선을 테스트했다. 아폴로 6호는 다시 새턴 V 로켓으로 발사되었으며, 이들 모두는 무인비행으로만 테스트되었다.

그리고 아폴로 4호와 6호는 로켓이 분리되는 장면을 촬영함으로서, TV에서 새턴 V 로켓의 1단과 2단이 분리되는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2.3. 아폴로 7호

1968년 10월 11일새턴 1B 로켓에 의해 발사되었으며, 달 착륙선은 실려있지 않았다. 탑승한 우주비행사는 월리 시라(사령관)[17], 돈 아이즐리[18](사령선 조종사), 월터 커닝햄(달착륙선 조종사). 260시간(약 11일)간 지구 궤도를 돌면서 우주선의 기능을 테스트했는데, 우주비행사 3명이 모두 감기에 걸리는 문제가 생겼다. 콜록콜록 감기에 걸린 우주비행사들이 관제소의 지시에 항명에 가까운 짜증을 부리는 사태가 발생해, 그 후에는 우주비행사가 병에 걸렸을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우주선에 태우지 않는 지침이 생겼고, 그 피해자가 아폴로 13호의 원래 사령선 조종사로 정해졌던 켄 매팅리.

그러나 소련도 가만있지는 않았다. 1968년 초, 소련은 달 착륙선의 개발을 거의 다 끝내고 N-1로켓을 테스트하고 있었던 것이다. 소련이 준비를 거의 다 했다는 첩보가 들어오자 NASA는 달로 가서 10바퀴 돌고 오자는 도박을 감행한다.

2.4. 아폴로 8호, 그리고 크리스마스


2.5. 아폴로 9호

1969년 3월 3일에 새턴 V 로켓으로 발사되었으며, 지구 궤도를 돌면서 달착륙선과 우주복의 안전성을 시험했다. 탑승한 우주비행사는 제임스 맥디비트(사령관), 데이비드 스콧(사령선 조종사), 러셀 슈바이카트(달착륙선 조종사). 우주복 안정성 시험을 위한 우주유영 준비 중 슈바이카트가 구토를 하는 바람에 잠시 임무가 지연되었으나 모든 임무는 성공적으로 수행되었다. 이 중 스콧은 아폴로 15호 사령관으로 달에 착륙하였다.


2.6. 아폴로 10호

달착륙을 한 역사적인 아폴로 11호의 바로 직전 미션이었다. 아폴로 10호는 아폴로 11호의 리허설에 해당하는 미션으로 달착륙 및 달에서의 이륙을 제외한 모든 미션이 수행되었다. NASA에서는 아폴로 10호의 우주비행사들이 최초의 달착륙 기록을 차지하기 위해 지시를 어기고 달에 착륙하는 경우가 일어날까 진지하게 우려하기도 했다.

실제로 NASA에서는 아폴로 10호를 달 착륙 시키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달 착륙선이 아직 완전한 상태로 개발되지 못했기 때문에 아폴로 10에 탑재된 달 착륙선은 실제 달 착륙 후 이륙이 불가능한 것이었다.

1969년 5월 26일에 발사되었으며, 사령선 찰리 브라운에서 분리된 달착륙선 스누피가 고도 15.6km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왔다. 착륙하지는 않은 이유는 이 임무가 리허설이었기 때문이며, 찰리 브라운과 스누피의 이름은 만화 <피너츠>에서 따왔다. 탑승한 우주비행사는 토머스 스태퍼드(사령관), 존 영(사령선 조종사), 진 서넌(달착륙선 조종사)이다.[19]. 사령선 조종사 존 영은 아폴로 16호, 달 착륙선 조종사였던 서넌은 아폴로 계획의 마지막 미션이었던 아폴로 17호의 사령관을 맡았다. 스태퍼드는 문레이스가 끝난 뒤 아폴로-소유즈 테스트 프로젝트 아폴로 측 사령관이 되었다.

아폴로 10호에서 벌어진 대화내용의 녹취본에 따르면 우주선 내에 누군가의 똥이 둥둥 떠다니는 사건이 발생한 적이 있는 모양이다. 승무원 3명 모두 자신이 한 짓이 아니라고 극구 부인했다. 결국 그 똥을 치우긴 했는데, 불과 몇 분 뒤 스태퍼드가 또 하나의 똥이 공중을 떠다니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

apollo10txt.jpg
[JPG image (87.32 KB)]

▲ 녹취록 일부. 똥이 공중에 떠다니는게 기밀사항이라니

아폴로 우주선에는 화장실이 존재하지 않으므로, 볼일을 보려면 비닐 주머니를 몸에 붙인 후 배설물을 회수해야 한다. 똥이 떠다녔다는 소리는 누군가가 주머니를 제대로 단속하지 못했다는 뜻이지만, 누가 그런 실수를 했는지는 영원히 밝혀지지 않을 것이다.(...)[20] 두번씩이나 일어난걸 보면 고의성이... 일보다 똥 끊기가 좀 힘들긴 하지만 그래도 좀 참지

1969년 5월 26일 지구로부터의 순간 상대 속도 기준으로 39,896 km/h까지 기록했다. 이는 지금까지 만들어진 모든 유인 우주선 중 가장 빠른 기록. 이는 여러 단위로 환산해보면 11.1 km/s, 24,790 mph[21], 음속의 약 32배, 광속의 0.0037%에 해당하는 기록이다.[22]

2.7. 아폴로 11호. 독수리는 내리다

인간이 최초로 지구 외의 천체에 발을 디디게 한 역사적인 미션. 아폴로 11호 참고.

2.8. 아폴로 12호

SCE를 Aux로!
MCE를 Aux로? 그게 뭔데?[23]


2.9. 아폴로 13호

간단히 말하자면 아폴로 13호는 폭발했고, 우주비행사 3명은 죽을 뻔했으며, 지구에서 가장 멀리 나가본 인류로 기록되었다. 미션 목표는 실패했으나 귀환에는 성공하여 Successful Failure라고 이름붙여졌다.
자세한 것은 아폴로 13호 참고.

2.10. 아폴로 14호

1971년 1월 31일에 발사되어 2월 5일에 프라 마우로 크레이터에 착륙했다. 이곳은 아폴로 13호가 착륙하려다 실패한 곳이며, 우주비행사는 앨런 셰퍼드(사령관), 스튜어트 루사(사령선 조종사), 에드거 미첼(달착륙선 조종사)이다.

그러나 쉽게 가지는 못했다. 달로 가기 위해 사령선과 달착륙선을 도킹시키는 과정에서 결합부분의 고장으로 실패를 거듭한 것이다. 여러 번의 실패 끝에 간신히 결합에 성공했으며, 무려 1시간 42분이 소요되었다. 다행히 그 후론 도킹 장치가 오작동을 하진 않았다. (일설에는 도킹 장치가 그 후로 고장이났다고 하는 말이 있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 http://en.wikipedia.org/wiki/Apollo_14#Launch_and_flight_to_lunar_orbit)

정작 진짜 문제는 그 후에 벌어졌는데, 성공적으로 사령선에서 달 착륙선이 분리된 뒤, 비상시에만 작동해야 하는 비상 취소 장치가 냉납현상[24]으로 인해서 오작동을 일으켜서 착륙 취소 대기 상태에 돌입해 버린 것. 이 상태로는 착륙을 위해서 역분사를 시도하면 곧바로 사령선이 대기중인 고도로 복귀해 버리기 때문에 취소 장치를 꺼야 했다. 그런데 꼭 고물 TV마냥(...) 컴퓨터를 퉁퉁 치면 잠시동안 정상으로 돌아갔다가 도로 먹통이 되는 일이 계속 되자, NASA측에서는 착륙선의 소프트웨어를 재프로그래밍해서 잘못된 신호를 무시하도록 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고, 앨런 셰퍼드와 에드거 미첼이 구두를 통해서 NASA측이 불러주는 대로 착륙선을 그 짧은 시간 동안 재프로그래밍하는데 성공해서 일단락 되는 듯 싶었다.

그런데 엎친데 덮친 격으로 달 표면에 터치다운하는 과정 중, 착륙용 레이더가 고장을 일으켰다. 간신히 고도 5500미터 상공에서 레이더가 재부팅 되긴 했는데, 시간이 간당했던 탓에 셰퍼드가 수동으로 착륙선을 착륙시켜야 했다고 하는데, 놀랍게도 그 누구보다도 예상 목표 지점에 가장 가깝게 착륙시킬 수 있었다고 전해진다. 역시 셰퍼드 옆에서 쫄아서 지켜보던 미첼은 훗날 레이더가 제때 재부팅이 안되었어도 셰퍼드는 수동으로 착륙을 했을 것이라고 회고하고 있다(...).

아폴로 14호의 사령관인 앨런 셰퍼드는 머큐리 계획에도 참여한 아폴로 계획 우주비행사 중 최고참이며,[25] 동기 7명 중 유일하게 달에 다녀온 인물이 되었고, 6번 아이언 골프채와 골프공을 달에 몰래 반입하기도 했다. 그 덕에 셰퍼드는 세계 최초로 달에서 골프를 친 사람이 되었다.[26]...아니 잠깐 그럼 골프공은 대체??; 아직 비행중... 그런데 달 전체가 벙커인 셈이라 겨우겨우 날렸다는게 함정 그 외에도 셰퍼드는 헬멧과 양 팔, 양 다리에 붉은 띠를 넣은 우주복을 최초로 착용하였는데, 이것은 지상의 관제소에서 두 우주비행사를 사진만으로 구분하는 것이 어려웠기 때문에 사령관이라는 표시를 한 것이며 그 후의 우주비행사들도 이런 표시를 따라하게 된다.[27]

그리고 아폴로 14호의 우주비행사들은 달 탐험 최초로 손수레를 이용했다.

2.11. 아폴로 15호

1971년 7월 26일에 발사되었으며, 데이비드 스콧(사령관), 앨프리드 워든(사령선 조종사), 제임스 어윈(달착륙선 조종사)이 탑승했다. 신형 우주복을 사용한 첫 임무이고, 로버(rover)라는 이름의 월면차를 사용한 최초의 달 탐험대이며, 3회의 선외활동을 행한 최초의 미션이다.

f0018015_4e7dea06d96f8.jpg
[JPG image (36.19 KB)]

아폴로 15호가 가져온 제네시스 록(Genesis rock).

이들의 목적은, 달에 가서 돌아다니는 것 자체를 넘어 과학에 기여할 수 있는 활동을 하는 것이었다. 때문에 매우 많은 월석을, 그것도 고퀄리티의 레어템들로 골라서 가져왔다.[28] 그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위 사진에 있는 제네시스 록이다. '창세기의 바위'라는 이름답게 이 돌의 나이는 46억 년으로, 달이 얼마나 오래되었는지를 보여주는 돌이 되었다.

다만 아폴로 15호의 우주비행사들은 나중에 징계를 받아야했다. 그들이 몰래 달에 가져갔던 우표가 우표 판매업자에게 넘어갔고, 이것이 비싼 값에 팔리면서 문제가 된 것이다. 이외에도 지나치게 사적이거나 보고하지도 않은 선외활동, 사익 추구 등의 여러 사건사고가 많이 밝혀졌고, 달 탐사의 상업성 논란으로까지 불거질 수 있었기에 이 팀은 디크 슬레이튼에게 혼쭐이 나고 이후의 우주 비행 자격을 박탈당했다. 원래 예정대로라면 폴로 17호의 백업 팀으로 내정될 수 있었지만... 뭐, 나중에 법정에서는 "대원들이 규정을 좀 위반하긴 했는데 무슨 심각한 불법행위는 아니다"는 판결을 받기는 했다.

또한 의미있는 퍼포먼스도 있었다. 그동안 NASA와 소련에서 우주 비행사 훈련/임무 수행 도중 희생된 이들의 넋을 기리고자 이들의 이름이 적힌 알루미늄 판을 해들리 산에다 가져다 놓았다. 거스 그리섬 같은 폴로 1호 멤버들은 물론이거니와 소련 우주인들도(유리 가가린, 블라디미르 코마로프) 있었다. 다만 소련의 기밀 유지 정책 때문에 아폴로 15호 당시까지 존재가 알려지지 않던 순직 우주인 두명은 이름이 적히지 못했다. 이들의 이름은 발렌틴 본다렌코, 그리고리 넬류보프였으며, 데이비드 스콧은 이후 인터뷰에서 이들의 이름을 뒤늦게야 알았다며 아쉬워했고, 소련도 이들에게 감사를 표하기도 했다. 다만 이 알루미늄 판 역시 제작자와의 마찰이 있어서... 하여간 이래저래 말썽이 많았던 미션이었다.

한편, 달에 갔다왔던 제임스 어윈은, 말 그대로 죽을 뻔 했다. 달에서부터 그의 심박수가 이상 징후를 보이기 시작했는데, 관제센터에서는 심장마비 우려를 표하는 의료진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고, NASA 우주 프로그램 역사상 최초로 우주에서의 사망자가 나오는가 하며 NASA 관계자들의 똥줄이 타기 시작했다. 결국 귀환은 다행히 문제 없이 마쳤는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어윈은 몇달 후 심장마비로 응급실에 실려가며 사경을 헤매야 했고, 겨우 살아난 이후에는 종교에 귀의하여 선교 활동을 하며[29] 여생을 보냈지만 결국 그 심장질환 때문에 1991년 8월 8일을 일기로 달에 갔다온 우주비행사들 중 가장 일찍 사망하였다.

2.12. 아폴로 16호

1972년 4월 16일에 발사되었으며, 승무원은 존 영(사령관), 켄 매팅리(사령선 조종사), 찰스 듀크(달착륙선 조종사)이다.[30]

다른 아폴로 미션과 마찬가지로 이 임무에서도 약간의 사고가 있었지만,[31] 아폴로 16호는 임무를 완수하고 귀환했다. 달궤도에서 EVA(우주유영)을 행했고, 월면차 속도기록인 시속 18km도 달성했다. 존 영이 케이블을 밟아서 쓰러지는 바람에 실험 하나가 실패하기는 했다

찰스 듀크의 가족사진

참고로 찰스 듀크는 그의 가족사진을 플라스틱 백에 담아 가져갔고 달을 떠나기 전에 그곳에 놓아두고 왔다. 하지만 이 사진은 아무래도 태양빛 때문에 색이 바래서 망가졌을 가능성이 높다. 지구상에서 잘 간직해도 햇빛을 조금씩이나마 수십년 받으면 색이 바래는데 달에는 햇빛을 막아줄 대기도 없으니.

한편, 30년 넘는 시간이 지난 2006년에 허리케인 에르네스토가 노스캐롤라이나주를 후려친 뒤, 케빈 섄지(Kevin Schanze)라는 열한살 꼬마가 아폴로 16호의 바다로 버려졌던 1단 로켓 조각(대략 91cm 정도)이 해변에 휩쓸려 온 것(그것도 미션 로고가 찍힌 채로!)을 발견하여 NASA에 제보하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몇년간은 케빈이 보물(?)로 간직하고 있었지만, 2011년에 NASA 측에서 돌려줄 것을 부탁하여 케빈에게 케네디 우주센터 VIP 견학을 시켜줬고, 최후의 우주왕복선 미션인 STS-135 발사에도 초청하였다.

2.13. 아폴로 17호

아폴로 17호 40주년 트리뷰트. 이후로 인류는 40년이 넘도록 달에 다시 가지 않았다.

"As I take man's last step from the surface, back home for some time to come - but we believe not to long into the future... I'd just like to (say) what I believe history will record, that America's challenge of today has forged man's destiny of tomorrow, and as we leave the moon at Taurus-Littrow, we leave as we came, and God willing, as we shall return, with peace and hope for all mankind. Godspeed, the crew of Apollo 17."
나는 달에서 인류로서의 마지막 발걸음을 떼며, 다시 올 그 날을 기다리며, 그 날이 너무 멀지 않으리라 믿으며, 역사에 기록되길 바라는 말을 남기고 싶습니다. 미국의 오늘날 도전은 인류의 내일의 운명을 바꿔놓았습니다. 우리는 타우루스 리트로우 계곡에서, 처음 왔듯이 떠납니다. 그리고 신의 뜻대로, 우리는 돌아올 것입니다. 전 인류의 평화와 희망과 함께.
아폴로 17호 승무원들에게 축복을.

- 아폴로 17호 사령관 진 서넌[32]

아폴로 17호는 마지막 달 착륙 미션이었다. 임무 종료 이후 아직까지 인류 최후의 유인 달 탐사이다.[33] 1972년 12월 11일에 출발하였으며, 승무원은 유진 서넌(사령관), 로널드 에반스(사령선 조종사), 해리슨 슈미트(달착륙선 조종사)이다.[34]

특기할 점은 아폴로 17호의 달착륙선이 달에서 이륙하는 장면이 월면차의 카메라를 통하여 제대로 생중계되었다는 것이다[35].

2.14. 스카이랩 계획

아폴로 13호의 실패 이후 아폴로 계획은 20호까지였던 원래 계획에서 17호까지로 축소되었지만(취소된 아폴로 미션들 항목 참조 바람.), 이미 만들어진 아폴로 우주선은 카이랩 계획에 재활용되었다. 아폴로 우주선 3대(3개 팀이 다녀왔으므로)가 사용되었으나 아폴로 00호라는 이름 대신 스카이랩 2호, 3호, 4호(스카이랩 1호는 스카이랩 본체)라는 번호가 붙여졌다. 우주 정거장 항목 참조 바람.

2.15. 아폴로와 소유즈의 조우(ASTP)

최후의 아폴로 미션으로, 1975년 7월 15일에 발사되었다. 아폴로 우주선의 승무원은 토머스 스태퍼드(사령관), 밴스 브랜드(우주선 조종사), 디크 슬레이튼(도킹모듈 담당)이다.[36] 소유즈 우주선의 승무원은 알렉세이 레오노프(사령관)와 발레리 쿠바쇼프이다.[37] 이 미션에서도 귀환 도중 밸브 고장으로 로켓 산화제인 산화질소가 사령선 안에 흘러들어오는 바람에 세 우주비행사가 하마터면 사산화질소 중독으로 사망할 뻔한 사고가 있었다.

이 임무가 끝난 이후, 아폴로 계획에 사용된 LC-39A 발사대는 폐쇄되었다.

2.16. 결산

아폴로 계획은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유는 실패한 미션이 2개(아폴로 1호, 아폴로 13호) 뿐이고, 사망자도 아폴로 1호 미션의 3명 외엔 없었기 때문이다. 아폴로 13호는 연료전지의 이상으로 기계선이 폭발하는 사고를 겪었지만, 승무원들이 달 착륙선으로 대피해 우주선을 수동으로 조종한 끝에 결국 지구로의 귀환에 성공하였다. 이는 후에 영화로도 나오게 된다. [38]

미소의 문레이스에서는 미국이 승리함으로서 최초의 인공위성과 유인우주선 발사를 성공시킨 소련에 설욕했다.

세르게이 코롤료프는 아쉽게도 문레이스 도중 사망하여 그 끝을 볼 수 없었고, 그 이후 소련의 우주개발부를 맡은 바실리 미신 시대에 아폴로가 달에 착륙함으로서 소련은 패배한 것이다. 그러나 소련은 유인 달착륙 대신 우주 정거장에 매달렸고, 1970년대는 살류트, 1980~90년대는 미르를 운용했고, 2000년대부터 운용한 ISS에서도 거대 물주로 부상하였다. 문 레이스는 미국의 승리지만, 스페이스 레이스 전체를 미국의 승리로 볼 수는 없다.

2.17. 성과

f0022370_4a5745ed264a8.jpg
[JPG image (35.81 KB)]

총 250억 달러를 들인 아폴로 계획을 통해 미국은 385kg의 월석과 월토를 비롯한 각종 유무형의 성과를 얻었다. 달에 설치한 지진계를 통해 달의 내부 구조가 지구와 유사하다는 점을 파악했고 레이저 측정기를 통해 달과 지구의 거리 및 달의 궤도를 보다 정확히 알아낼 수 있었다. 또한 월석과 월토의 분석을 통해 달에 매장되어 있는 자원이나 달의 생성연도 등을 추정하기도 했다. 과학자들은 월토에서 생명체 반응이 나오길 기대했지만 박테리아조차 발견되지 않았다고 한다.

아폴로 11호가 가져온 월석은 사카 세계 박람회를 통해 최초로 민간에 공개되었고 지금도 스미소니언 등 각국의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참고로 아폴로 우주비행사들은 달에서 골프도 쳤고 월면차를 이용해 드라이브를 하기도 했다.

2.18. 달 경쟁의 이면

소련 역시 유인 달 탐사 계획을 진행했으며, 그 결과물이 바로 N-1이다.

그러나 이 로켓은 1969년 3월 7일에 폭발하고 말았다.[39] 소련은 어떻게든 계획을 지속하려고 했지만 그 해에 7월에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하면서 경쟁은 끝났고, 남은 부품도 모조리 해체되고 말았다.

그 후 소련은 로봇 탐사선 루나호를 이용한 무인 탐사 쪽에 더 주력하는 한편 우주 정거장에 올인해서 살류트, 미르 등의 걸작 우주정거장을 만들었다. ISS(국제 우주 정거장)도 비록 하드웨어는 미국이 대부분 제공했지만, 운영은 러시아의 노하우 덕분에 돌아간다.

원래 아폴로 계획은 아폴로 20호까지 계획되어 있었지만, 베트남 전쟁과 사회복지 프로그램들로 인해 달착륙을 목적으로 한 마지막 3개의 미션은 취소되었다. 그러나 18호[40]는 달에 가는 대신 폴로-소유즈 계획에 사용되어 우주에서 소련의 소유즈 19호와 파이널 퓨전 도킹을 했고[41] 다른 한 대의 새턴 로켓은 개조되어 카이랩 발사에 사용되었다. 남은 로켓 한 대는 휴스턴 우주 센터에 누워있고 기타 남은 하드웨어들은 미국 각지의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NASA는 오리온이라는 새로운 유인탐사선으로 달에 다시 가려고 했지만 2010년에 예산문제로 백지화되었다. 하지만 오리온 우주선 자체는 우주왕복선 퇴역 후의 사용을 위해 계속 개발되는 중이다.

3. 이미지로 보는 아폴로 계획

concept.jpg
[JPG image (64.06 KB)]

계획 초기의 각종 개념안과 결정안.

Apollo_sys.jpg
[JPG image (92.15 KB)]

달궤도에 들어서는 실질적 아폴로 우주선의 구성.[42]

apollo_con.jpg
[JPG image (64.9 KB)]

아폴로 계획의 개념도.

apollo_docking.jpg
[JPG image (19.61 KB)]

비행중 사령,기계선과 달착륙선의 도킹 개념도.

lunar_landing.gif
[GIF image (147.35 KB)]

아폴로 11호에서 17호까지의 착륙지가 표시된 달사진.

4. 우주인은 얼마나 고생을 했는가?

달에 다녀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아폴로 우주선에 타더라도, 달에 가기 위해서는 여러 난관을 넘어야 한다.

  • 달에 내리는 사람은 두 명이므로, 달을 밟고 싶으면 달착륙선 조종사가 되거나 사령관이 되어야 한다. 사령선 조종사가 된다면 공기화지못미. 농담이 아니라 어지간히 관심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아폴로 11호에서 버즈 올드린까지는 기억해도 콜린스는 기억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 사실 짬밥이나 비행 경력으로 따지면 사령선 조종사의 능력이 더 좋다고 보는 것[43]이 적절함에도 세간의 이목은 달에만 가 있다(...)
  • 아폴로 우주선은 매우 좁다. 의자 세 개가 있는 비좁은 사령선 안에서 1주일 넘게 버텨야 한다. 아침부터 밤까지 남자 세 명이 어깨를 맞대고 지내보면 우주비행사가 얼마나 대단한지 깨닫게 될 것이다.
  • 화장실? 그런 거 없다. 배설물을 몸에서 내보내고 싶으면 몸에 비닐 주머니를 붙이고 힘을 준 후, 비닐 주머니 입구를 잘 막고 처리해야 한다. 제대로 막지 않으면 똥이나 오줌이 선실을 둥둥 떠다니는 비극이 일어난다. 위의 아폴로 10호의 대화문을 봐도 그러하다(...). 게다가 아폴로 13호는 오물을 밖으로 내보냈다간 우주선 궤도가 비뚤어질 수 있어서 밖으로 내보내지도 못했다(...)[44] 제대로 된 화장실이 설치된 곳은 우주왕복선이나 우주 정거장 정도다.
  • 화장실에서 목욕도 못하고 1주일 이상 지내면 내부 공기가 굉장히 탁해진다. 산소가 모자라는 건 아니지만(...).
  • 우주 식량은 맛이 없다.
  • 목숨을 위협하는 사고가 최소한 한 번 이상 일어난다.
  • 달에서 무슨 일을 만날지 모른다.
  • 운석과 충돌할 수도 있다.

경우는 좀 다르지만 우주 비행사들의 아내들 역시 정신적인 고통이 매우 심했다. 랭크 보먼의 아내는 알코올 중독으로 치료를 받아야 했고, 닐 암스트롱, 트 콘래드, 존 영, 토머스 스태퍼드 등 수많은 우주 비행사들은 끝내 아내와 갈라서야 했으며, 드 화이트의 아내는 남편이 살아있을 때에도 언론의 스포트라이트 등으로 많은 스트레스를 받다가 남편의 사망 이후 재혼을 했음에도 정신적 방황이 이어지다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온갖 험한 꼴을 다 겪으면서도 조강지처와 함께 자식도 많이 낳고 손주도 많이 보며 백년해로하는 짐 러벨 같은 사례는... 그냥 이쪽이 인생의 승리자인 것.[45] 아내들의 눈물겨운 이야기는 드라마 지구에서 달까지의 11화에 묘사되어 있다.

5. 기타

사실 아폴로 계획은 실행되지 않았다는 아폴로 계획 음모론이 있다. 반대 방향의 음모론으로 "사실 아폴로 계획에서 외계인의 증거를 발견했거나 실제로 접촉했지만 숨기고 있는 것"이라는 음모론도 있다.

아폴로 우주선에 탑재된 유도컴퓨터, 소위 AGC는 클럭스피드 2048KHz 컴퓨터로 키보드도 없이 여러개의 토글 스위치를 올렸다 내렸다 하며 사용하는 물건이었다. 그나마도 11호 미션에선 달에 착륙을 시도하는 중에 고장이 나서, 암스트롱이 손으로 계산을 하며 달표면에 착륙을 했다고.

아폴로 계획의 달착륙선은 착륙후 귀환시 하드웨어 분리 없이 달궤도에 진입이 가능한 인류가 만든 몇안되는 발사체중 하나다. 이른바 SSTO. 소련 달계획의 몇몇 착륙선 또한 하드웨어 분리없이 달궤도 진입이 가능하다. 달의 적은 중력때문에 가능한 것.

아폴로 11호가 가져온 월토 중 일부는 40년이 넘도록 빛을 보지 못한 적이 있다. NASA 측에선 연구를 위해 각 대학 연구소에 월석 및 월토들을 배분해 주었는데, 이 중 캘리포니아 버클리 대학 연구소에서 월토 샘플을 연구한 뒤 행정 착오로 NASA에 반납하지 않고 연구소 보관 창고에 방치한 것. 이 샘플은 2013년에야 발견되었다.

대한민국의 전 천문학자인 고 조경철 박사의 별명이 여기서 따 온 아폴로 박사이다.[46]

구글 어스에서 보기메뉴에서 탐색영역을 달로 설정해서 실제 아폴로 착륙장소를 3D, 파로라마, 이동경로등을 볼 수 있다. 특히 아폴로 11호 미션의 가이드를 볼 경우 달착륙선의 시점에서 착륙하는걸 볼 수 있다.

6. 대중매체에서의 아폴로 계획

푸른 유성 SPT 레이즈너에선 아폴로 X라는 가상의 프로젝트가 존재한다. 아폴로 11호 달착륙 전에 과연 착륙해도 안전한가를 알기 위해 일본계 미국인 비행사 혼자 탑승한 편도 우주비행을 나사가 시행했고 죽을 줄 알고도 달에 도착한 이 우주비행사는 달에 때마침 와 있는 그라도스군과 접촉, 구조되고 그후 자신의 아들인 주인공 에이지에게 지구에 그라도스 침공을 알리게 한다...

Mythbusters에서는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한 뒤, 닐 암스트롱이 달 표면에 착지하는 모습이 조작이라는 설에 대해서 시즌6 에피소드2 NASA Moon Landing편에서 다룬 바 있다. 물론 전문가들의 의견과 실제적인 실험을 한 끝에 결론은 "진실". 사진에서의 그림자 문제, 영상조작문제, 깃발의 흔들림, 달에서는 선명한 발자국이 찍힐 수 없다.를 고루고루 다루면서 음모론자들을 깠다.

동방프로젝트에서 월인들은 이 계획을 '달 침공'으로 생각한다. 동방맹월초 시작 전에는 월인들이 아예 아폴로 계획 깃발을 뽑아다 지구로 던져버렸고 이 성조기는 환상향에 떨어져 루나 차일드가 가져갔다. 쌀나라가 이 내용을 싫어합니다.

문명시리즈에서 게임을 승리할 가장 이상적인 방법이다. 아폴로 계획을 완성한 이후부터 알파 센타우리행 우주선의 부품들을 각각 제작할 수 있고, 이 부품을 모두 완성시킨 후 조립하면 우주로 이민선을 발사, 우주로 진출한 인류의 모습이 나오며 게임이 끝난다.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작품 <>에서 이걸 그대로 가져와버렸다.

반다이어른의 초합금 제1탄으로 아폴로 11호 & 새턴 V호 로켓이 출시되었다. 로켓 발사부터 사령선의 귀환까지 달 착륙의 모든것을 재현할 수 있는 굉장한 물건. 스케일은 1/144. 전고 76cm의 거체를 자랑한다. 덧붙여 그 2탄은 무려 1/144 동 스케일의 스페이스 셔틀. 그런데 여기에 홍콩 프라모델 메이커 드래곤 모델이 강펀치를 날렸으니, 무려 1/72 스케일의 새턴 V호 로켓을 출시한 것. 높이가 1.5미터나 된다! 드래곤 모델은 그전부터 닐 암스트롱의 12인치 피규어나 1/72 스케일 아폴로 우주선 금속제 모형 등을 이미 발매하고 있는데 퀄리티가 무척 좋은 편이다.

톰 행크스 주연의 영화 아폴로 13은 위에 언급된 아폴로 13호의 사고 사례를 극화한 것이다. 이 뒤를 이어 제작된 HBO의 드라마 지구에서 달까지(From the earth to the moon)는 아폴로 계획 전체를 주제로 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공중파를 통해 방영된 적이 있으며, DVD로도 발매되었다.

이 외에도 2010년 들어 외계인 소재 헐리우드 블록버스터에서도 곧잘 아폴로 11호를 소재로 삼는다. 트랜스포머 3편이라든지 맨 인 블랙 3편이라든지. 아무래도 미국인들에게는 자랑스럽고 뿌듯한 역사인지라.

알드노아. 제로에서는 아폴로 17호가 달에서 화성인들의 유적인 하이퍼 게이트를 찾아내 화성개척의 시발점을 만들어 낸다는 설정이다.

인터스텔라에서는 우주에 대한 도전정신을 가지지 못하게 하기 위해 아예 미국에서 소련에 앞서가기 위한 선전용 사기극이라고 학교에서 가르치고 있다.
----
  • [1] Lewiston Morning Tribune 1957년 2월 25일자에 실린 인터뷰에서. 원문은 이렇다. "To place a man in a multi-stage rocket and project him into the controlling gravitational field of the moon where the passengers can make scientific observations, perhaps land alive, and then return to earth—all that constitutes a wild dream worthy of Jules Verne. I am bold enough to say that such a man-made voyage will never occur regardless of all future advances." "사람이 다단계 로켓에 타고서 대기권을 벗어나서 과학적 관측을 한 다음에, 지구로 무사히 돌아온다는 것은 쥘 베른의 엉뚱한 상상 속에서나 가치있는 일이죠. 저는 미래가 어떻게 발전하던지, 인간이 그런 항해를 할 수 없으리라고 장담합니다."
  • [2] 잘 알겠지만 달에는 바람도 물도 없어서 침식이 되지 않으므로 해당 발자국은 지금까지도 남아있다.
  • [3] 올드린 본인의 사진과 마찬가지로 닐 암스트롱의 것으로 잘못 알려진 경우가 많다. 인류 최고의
  • [4] 패전한 독일의 V2로켓 기술을 아주 마르고 닳도록 연구했다 한다.(...) 이건 소련도 마찬가지. 양쪽 모두 V2 로켓의 복제와 개량부터 우주개발이 시작되었다.
  • [5] 미국 GNP의 4%(!)까지 달한적이 있다는 출처불명의 루머도 있다. 아마 연방정부 예산의 4%가 와전된 것으로 추정.
  • [6] 소련의 보스토크는 지구를 한바퀴 돌고 왔다. 반면 프리덤 7호는 궤도에 살짝 올라갔다가 그대로 귀환했다. 이후 리버티 벨 7호(스 그리섬)까지도 탄도비행에 그쳤고, 3차 우주비행인 프렌드십 7호(존 글렌)에서야 겨우 궤도비행에 성공했다.
  • [7] 참고로 후기의 루나 탐사선들은 달 표면에 착륙해 샘플을 채취한뒤 복귀했다.
  • [8] 지정된 지점까지 낙하하면서 사진을 촬영해 전송하는 것이 임무였다. 표면에 충돌해서 파괴되는 것으로 레인저의 임무는 끝이 난다.
  • [9] 레인저와는 달리 달 표면에 착륙해서 조사를 하는 것이 가능했다. 여담으로 아래에도 나오지만 아폴로 12호에서 서베이어 중 한대의 부품을 일부 회수했다.
  • [10] 100% 산소는 인화성 물질로, 약간의 티끌과 탈 것이 있기만 해도 폭발적으로 불이 붙는다.
  • [11] 해치를 한 번 열려면 최소한 90초가 걸린다. 우주선 내부의 압력을 낮춰야 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인데, 화재발생 후 15초만에 우주선이 폭발했다. 우주비행사들은 폭발하기전에 모두 질식사했다.
  • [12] 머큐리 우주선의 경우 해치에 내장된 폭약을 터뜨려 해치를 날릴 수 있었다. 아래에도 나오지만 오작동을 일으키는게 확인되어 아폴로 사령선에서는 이걸 제거했다.
  • [13] 가스를 분출해 작용 반작용의 원리로 우주유영이 가능하게 해주는 도구.
  • [14] U-2는 공군 기종이긴 했지만 상식적으로 우주비행사로 뽑힐 정도의 엘리트 테스트 파일럿들을 인류의 존망이 걸린 실전에 투입할 때 소속을 일일이 구분할 이유는 없다.
  • [15] 거기에 화재와 내부 온도 상승으로 선내의 압력은 더욱 올라간다.
  • [16] 새턴 5호는 당시 최대의 크기였다. 높이 100m, 300만개의 부품, 약 370만 리터의 연료를 실을 수 있었다.
  • [17] 여담이지만 한국의 연기자 채시라의 아버지가 아폴로 7호의 비행을 보고 시라 선장의 이름을 따서 채시라의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 [18] Don Eisele. 이 발음이 은근히 까다로워서 제임스 웹 NASA 국장은 린든 B. 존슨 대통령에게 7호 승무원들을 소개하다가 말문이 막혔다고(...)
  • [19] 스누피라는 별명은 우주비행사들이 쓰는 머리보호용 천 모자의 가운데가 하얀색이고 양쪽이 원형으로 검게 된데서 나왔다. 우주복 항목에 사진이 있으니 참조 바람.
  • [20] 더러운건 더러운거대로 문제이긴 하지만(...) 그 이전에 똥의 물질이 떠다니다가 우주선의 기체에 들어가 잘못하면 결함을 일으킬수 있다.
  • [21] 메이저리그의 불꽃 좌완 아롤디스 채프먼의 메이저리그 최고 구속이 106mph, 170km/h 정도다.
  • [22] 무인 우주선(그러니까 인간이 쏘아보낸 모든 물체) 중에서는 헬리오스 태양탐사선이 가장 빠른 기록을 세웠다. 태양 공전궤도 근점에서의 순간 최고속도가 70.22 km/s = 252792 km/h. 다만 지속적으로 속도를 내는 것 중에는 보이저 1호의 17.26 km/s = 62136 km/h 기록이 가장 빠르다.
  • [23] 콘래드가 SCE를 잘못 알아듣고 한 말. SCE가 뭔지조차 몰랐기 때문에 잘못 알아들은 것이다.
  • [24] 납땜이 골룸하게 돼서 떨어지면 안될 온도에서 납땜이 녹아 떨어지는 것.
  • [25] 탄도비행이기는 했지만, 미국인 최초로 우주에 간 사람이기도 하다. 귓병으로 인해 제미니 계획에서 비행불가 판정을 받고 행정직을 전전했으나 수술을 받고 10년만에 복귀했다.
  • [26] 그리고 골프는 달에서 플레이된 최초이자 마지막 스포츠가 되었다.
  • [27] 셰퍼드의 재미있는 발언 중 하나로 이런 게 있다. "달에 가기 전에 나는 썩어빠진 개자식(rotten son of a bitch)이었지만, 지금은 그냥 개자식이 되었다" 실제로 셰퍼드는 성질이 더럽기로 우주비행사들 사이에서도 유명했다고 한다. 귓병 때문에 행정직으로 밀린 설움도 있고 자기 후배들이 자기보다 더한 경험을 하면서 역사에 이름을 남기는걸 보면서 한이 맺혀 성격이 심하게 괴팍해졌다고.
  • [28] 지구에서 달까지의 10화에 이들이 겪어야 했던 전혀 새로운 경험이 담겨져 있다. 끽해야 항공공학 공부한 테스트 파일럿이었던 군인들을 교수가 직접 오지 협곡으로 끌고 다니며 지질학적 마인드를 심어준다. 착륙지점에 대해 논쟁이 있을 때도 안전한 곳에 가기보다는 지질구조 연구에 있어 큰 보탬이 될 곳을 고르는등 15호부터 17호까지는 여러모로 대놓고 과학자들이 연구하려고 보낸 미션들이다. 이들에게 지도교수를 소개해줬던 15호 백업 승무원이었던 해리슨 슈미트는 17호에서 정말 달에 가게 되며, 이는 과학자로서는 최초였다.
  • [29] "나는 달에서 걸으며 신의 권능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예수께서 지구를 걷는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같은 여러 어록을 남겼다. 다른 우주비행사들의 회고에 나오는 말들과는 좀 이색적인 행적인데, 아무래도 갑자기 몸에 문제가 생기며 목숨이 위태로웠던 입장인지라 심정적으로 신에게 많이 의지했던듯.
  • [30] 존 영은 우주왕복선 컬럼비아호가 처음 발사될 때 사령관이 된 인물이기도 하며, 켄 매팅리는 '홍역에 대한 면역이 없다는 이유로' 아폴로 13호의 탑승자격을 박탈당했던 바로 그 사람이다. 그리고 찰스 듀크는 아폴로 13호의 예비 승무원으로 있다가 홍역에 걸려 매팅리를 물먹인 그 사람이다. 기분 참 묘했을듯...
  • [31] 사고가 안 난 미션은 하나도 없다. 이 항목에 기재되지 않았을 뿐이지 조금만 악화되었다면 우주선의 안전을 위협했을 사고는 꼭 발생했다.
  • [32] 지구에서 달까지 12화에서는 문장과 말투가 보다 극적이게 다듬어졌다. 휴스턴 관제센터에서는 관제실의 모든 이들이 서넌의 마지막 말을 들으며 말을 잇지 못하며, 무릇 우주덕들은 서넌의 이 대사를 들으며 눈시울을 붉혔다.
  • [33] 귀환 도중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리처드 닉슨이 승무원들에게 금세기의 마지막 달 탐험을 축하한다고 했었다. 그러나 '마지막'이라는 말을 들은 NASA 직원들의 기분은 결코 좋지 않았으며, 달 탐사를 재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우주비행사들도 나왔다.
  • [34] 해리슨 슈미트는 아폴로 계획으로 달에 착륙한 우주비행사 중 유일한 과학자이다.
  • [35] 월면차를 최초로 이용했던 15호부터 이륙장면 촬영은 계속 시도되었으나 카메라를 적시에 움직이지 못하는 등 제대로 촬영되지 못하고 있었다. 지구에서 달까지의 12화에서 모두가 가슴이 먹먹한 가운데 이륙 몇초 전 카메라를 움직여야 한다는 강박관념으로 똥줄태우는 카메라 담당자의 모습이 묘사된다.
  • [36] 이들 중 슬레이튼은 머큐리 계획에 참가했던 인물로, 원래대로라면 7번째로 머큐리 우주선에 탑승해야 했지만 심장 이상으로 우주에 올라가지 못했고 대신 우주비행사 팀장으로 지상근무를 했다. 그후 슬레이튼은 각고의 노력으로 심장병을 극복했고, 나는 우주에 가고 만다는 일념으로 마지막 기회를 잡은 것이다.
  • [37] 인류 최초로 우주유영을 했고, 돌아오던 도중 죽을 뻔한 그 레오노프의 팀이다. 원래 소유즈 11호에 탑승할 예정이었지만 쿠바쇼프의 결핵 오진(...)으로 교체되었는데, 하필 그 팀이 우주에서 재돌입하던 도중 사망하였다. 아폴로-소유즈 미션도 이 때 스태퍼드가 NASA측 조문사절로 소련에 가서 관을 운구한 것이 인연이 되었다.
  • [38] 소유즈에 비해 아폴로가 안전해보일 수도 있지만, 소유즈도 1967년 1호 발사에서 귀환도중 사망한 1명, 11호에서 1971년 츄리닝 차림으로 내려오다가 감압이 안돼 사망한 3명을 제외하면 사망자는 전무하다. 통계로 따지면 128회 발사되어 4명이 사망한 소유즈가 아폴로보다 훨씬 안전하다.
  • [39] 새턴 5형 로켓의 1단이 대형 로켓 5개를 묶은 형태인데 반해 N-1 로켓은 소련 공업능력의 부족으로 중형 로켓 30개를 묶어서 겨우 원하는 추진력을 얻는 복잡한 구조였기 때문에 로켓 하나의 고장이 곧 폭발로 연결되어 버렸다.
  • [40] 정식 명칭은 아폴로 18호가 아니라 Apollo-Soyuz Test Project의 약자를 딴 'ASTP Apollo'이다.
  • [41] 이 계획에는 여러 어려움이 있었는데 소유즈와 아폴로는 선내에서 호흡할때 쓰는 공기의 기압과 산소와 여타 대기가스의 비율이 달라서 다른 우주선에 탄 사람이 갑자기 옮겨 타면 잠수병이 생길 수 있었다. 그래서 두 우주선을 연결하는 장치는 우주인들이 서로 다른 기체에 적응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고 한쪽 우주선에서 다른 쪽으로 넘어가려면 통로에서 잠시 대기해야 했다.
  • [42] 사령선, 기계선, 달착륙선 그리고 우주비행사 3명.
  • [43] 예를 들어 11호의 멤버는 원래 올드린이 사령선 조종사였고 착륙선 조종사는 초짜인 레드 헤이즈가 맡았지만 이런 중대한 미션에는 더 능력있는 파일럿이 필요하다며 콜린스를 사령선 조종사로 배치한 뒤 올드린을 LM으로 보내고 헤이즈를 제외하였다. 또한 8호와 9호, 10호, 11호, 12호, 14호의 사령선 조종사들은 모두 이후 미션에서 사령관 직위를 보장받았다.(13호의 잭 스와이거트는 귀환 후 NASA를 나와서 헤이즈가 대신 19호 사령관으로 예정되었다) 물론 딕 고든과 헤이즈와 스튜어트 루사는... 아폴로가 죽었슴다ㅡㅡ;;;
  • [44] 아폴로 13 영화에서 사고 나기 전에 한번 나오긴 한다. 유-라이언자리(Constellation U-rine)라는 희대의 개드립과 함께(...)
  • [45] 한국을 비롯해 여러 나라의 공군 조종사들이 의무복무만 채우고 칼전역하는 이유 중에는 민간항공사로의 이직 등의 이유도 있지만 이런 고달픈 가정사가 매우 큰 이유를 차지하고 있다. 우주 비행사들은 대개가 늘 사선을 넘나드는 직종인 테스트 파일럿 중에서도 최고의 엘리트들이기에 가족들의 정신적 부담도 매우 심하다. 8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배출되기 시작한 여성 우주 비행사들 중에는 아예 독신인 이들도 적지 않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 [46] 아폴로 11호 착륙 생중계 당시 해설을 담당했다. 어느 방송사였는지는 추가바람.
Valid XHTML 1.0! Valid CSS! powered by MoniWiki
last modified 2015-04-12 20:35:35
Processing time 0.3717 se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