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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젤리나 졸리

last modified: 2015-04-09 07:30:53 by Contribu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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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졸리나 졸리나

Angelina Jolie-Pitt[1]

할리우드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지닌 여배우 중 한 명
모든부부들의 워너비인 브란젤리나 커플.[2]]

미국배우이자 감독. 1975년 6월 4일생. 키 170cm.

Contents

1. 누구인가?
2. 할리우드 배우가 되기까지
3. 자선활동
4. 연애사
5. 여담

1. 누구인가?

배우 존 보이트[3]와 배우 마셸린 버트런드의 1남 1녀 중 둘째이다. 그러나 예전에 아버지의 성 '보이트'를 공식적으로 지웠다. 부모의 이혼 사유가 아버지의 불륜이었기 때문. 졸리가 아주 어렸을 때 보이트와 버트런드가 이혼했는데 이혼한 후에 보이트는 전처 버트런드가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어렵게 사는데도 전혀 돌봐주지 않았고 자연히 졸리는 아버지를 심하게 원망했다. 또한 존 보이트[4]가 졸리가 유명해진 후 미디어에 그녀의 사생활을 폭로하고 뒷담을 수차례 늘어놓는 바람에 둘은 사이가 더 벌어졌다. 그러나 부녀는 2007년에 화해했다.

아버지쪽으로는 독일인과 슬로바키아인, 어머니쪽으로는 프랑스캐나다인, 네덜란드인, 독일인, 아메리카 원주민의 혈통을 물려받았다. 참고로 딸의 목을 조르고 싶을 정도라고 말할 정도로 아버지와의 사이는 나쁘나, 아이러니하게도 영화 <툼 레이더>에서 사이 좋은 부녀로 출연해 애틋한 연기를 펼쳤다(…)역시 배우들
은퇴 계획을 밝혔다.

이 항목에서는 의외로 외모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는데,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전세계에서도 인정하는 미국의 대표 헐리웃 여배우들 중에서도 가장 영향력 있는 스타라면 말 다했다. 또한 누구도 닮기 힘든 매우 독보적인 비주얼을 소유한 지라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2. 할리우드 배우가 되기까지

어린시 절부터 대중들은 잘 모르지만 개인사에 우여곡절이 많았던 배우이다.

원래 머리색깔은 아버지 존 보이트를 닮아 금발이었으나 어머니가 졸리가 4살 때 갈색으로 염색. 그게 맘에 들었는지 이후 이 색깔을 유지한다고.

딸이 파티에 가서 마약에 손댈까봐 걱정이 된 엄마는 14살때 남자친구와 졸리방에서 동거하는것을 허락했다고 그래도 걱정이 됐는지 옆방에 잤다고 한다.우리나라에선 상상도 못할 일

어렸을 때는 사람들과 껴안는 걸 싫어했다고 한다. 심지어 엄마와 껴안는 것도 싫어했다고.
10대 후반엔 우울증에 시달렸고, 면도칼로 자해하기도 했다. 인터뷰에서 "당시 난 다른 인간과 어떠한 유대감도 느낄 수 없었다"고.

첫 영화 출연은 7살 때인 영화 'Lookin' to Get Out'에서. 아버지와 함께 출연.

10대 초에 연기 학교에 들어갔으나 2년 만에 중퇴했다. 당시 '장의사'가 꿈이었던 졸리는 '시체 방부 처리법'을 공부했다. 하지만 이 시절 남친과 헤어지고 나서, 연기학교로 돌아갔으며 ,16세때 모델로 연예계에 입문했다. 검은 옷만 입는것 으로 유명했다고 한다. 이후 뉴욕대학교 예술학과에 진학 졸업까지 하여 연기공부를 착실히 했다. 섹시함으로 어필하는 여배우지만, 의외로 모르는 분들이 많은데, 2000년 <처음 만나는 자유>로 골든 글로브와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연기파 배우다.

1997년 《조지 웰러스》로 골든 글로브상을 받으면서 전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졸리는 게리 시니스가 연기한 알라버마 주지사 조지 웰러스의 두 번째 아내 코르넬리아 윌러스 역을 맡았다. 영화는 평론가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으며 골든 글로브상 최우수 미니시리즈/ 텔레비전 영화를 비롯해 여러 상을 수상했다. 또한 졸리는 에미상 후보로 오르기도 했다.

1998년 졸리는 HBO의 《지아》에서 슈퍼모델 지아 카란지 역으로 출연했다. 영화는 1980년대 중반 헤로인에 중독되면서 삶과 경력이 파괴되고, 에이즈로 삶을 마감한 카란지의 일생을 다룬 전기 영화이다. 이 영화로 골든 글로브상과 에미상에 2년 연속으로 후보로 지명되었으며, 미국 배우 조합상에서 처음으로 수상했다.

이후 출연한 영화의 질이 좀 미묘했지만 (<툼 레이더> 시리즈라든가.) 상업적으로 크게 성공하여 여성 액션 스타로써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여러모로 섹시함으로 유명한데도 007 시리즈에서 본드걸이 되는건 관심없다고 한다. 왜냐면 제임스 본드역을 맡고 싶어서.# 그리고 2010년 스파이 영화 <솔트>에서 주연을 맡으면서 그 염원을 이루었다.

사실 <툼 레이더> 이전까지는 그리 유명한 편은 아니었고, 주로 TV 드라마나 인디 영화에서 활약했었다. 그러다 <본 콜렉터>와 <처음 만나는 자유>로 슬금슬금 주목을 받더니 <툼 레이더>로 성공을 거두었다. 여러모로 조니 뎁하고 비슷한 경력. 지금까지 많은 라라 크로프트 모델들이 나왔지만, <툼 레이더> 영화에서 원작 게임의 주인공인 라라 크로프트의 '썰면 한 접시' 입술을 완벽하게 재현해낸 인물이라고 인정받고 있다.

2008년엔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체인질링>에서 부패한 정부관료들에 의해 어처구니 없이 자기 아이를 바꿔치기당하는 상황을 맞은 아줌마를 열연하며 관객들을 감동시켰으며,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도 올랐었다. 그러나 한국 흥행은 신통치 않았다.

2013년 5월에 양측 유방 절제술을 받았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 가족력상 유방암 유발 유전자가 있어서 그대로 지낼 경우 유방암 발병 확률이 87%나 되었기 때문에 내린 선택이었다고 한다. 실제로 졸리의 어머니 마셸린 버트런드는 유방암으로 2007년에 사망했다. 배우 활동을 계속하기 위해서 성형(유방 재건)수술을 통해 유방의 외형은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3. 자선활동

유니세프 친선대사로 임명되는 등 인권운동가로도 활동중이다. 국제적 봉사활동 공로를 인정받아 UN 국제시민상의 최초 수상자가 되었으며, 수많은 국제인권상을 수상했다. 또한 2014년 영국 왕실로부터 훈장을 받았다.[5]

현재까지 유니세프에 개인이 낸 가장 큰 금액을 기부했으며, 10여년간 자비로 캄보디아, 시에라리온, 탄자니아, 파키스탄 등 30여개국의 난민 캠프를 방문하여 이들의 처지를 알리고 국제적 원조를 받도록 도왔다. 수단의 종교탄압을 비판하다가 수단정부에서 방문을 금지당하기도 했다. 또한 미 국회에 접촉하여 국제 난민을 위한 법을 지정하기 위한 운동을 벌였다. 현재 캄보디아와 이디오피아 고아 셋을 입양하여 피트와 함께 키우고 있다. 2005년에는 큰아들의 이름을 딴 매덕스 졸리 재단을 통해 캄보디아 최빈곤층에게 거주지, 수자원, 교육, 의료 등을 지원하는 밀레니엄 빌리지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이 재단은 이후 매덕스 졸리-피트 재단으로 명칭을 바꾼 후 아프리카에서 밀레니엄 빌리지 프로젝트를 확대해나가는 중이다. 또한 캄보디아, 케냐, 아프가니스탄 등에 15개 이상의 어린이 학교를 세웠으며, 딸의 고향인 이디오피아에 자하라 어린이 병원을 건립하여 에이즈에 감염된 어린이를 치료하도록 돕고 있다. 출처

이러한 활동의 결과 <피플>의 2012년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인물 순위에서 1위로 선정되기도 했다.

4. 연애사

첫 남편 조니 리 밀러하고 1996년에 결혼해 1999년에 이혼했으며, 두번째 남편 빌리 밥 손튼(나이차가 엄청나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과 2000년에 재혼했으나 2003년에 이혼했다. 그리고 2005년에 현재의 약혼자인 브래드 피트를 만난다. 여담으로 양성애자이며, 첫 남편인 밀러와 결혼하기 전에 일본계 모델이자 배우인 제니 시미즈와 사귄 적이 있었다. 그러나 피트와 사귀고 나서 여자와의 관계를 더는 갈구하지 않게 되었다고 밝혔다. 배우 이미지도 양성적인 매력이 있어서, 레즈비언 역도 꽤 잘 소화해냈고 여성 팬도 일반적인 여성 섹시 스타와 달리 꽤 많다.

브래드 피트와는 2005년작 영화 <미스터 & 미세스 스미스>의 포스터를 나란히 함께 장식했다. 영화를 같이 찍은 해 전처 제니퍼 애니스톤과 피트와 엮이는 스캔들을 일으키면서 더욱 유명세를 탄다. 덕분에 포털 사이트에서 졸리 관련 기사가 인기 뉴스로 뜨면, 댓글에서는 꼭 졸리가 나쁘다느니 피트가 나쁘다느니 애니스톤이 불쌍하다느니 하는 댓글이 우수수 나왔었다. 덕분에 귀네스 팰트로는 묻혔다... 사실 직접적으로 증거는 없고 그러려니 추측에 불과할 뿐이다. 일단 엮인 세 명은 물론 주변 사람들은 그런 일이 없다고 일축했고.[6]

연애 초기까지만 해도 졸리의 괴팍하고 불같은 성격을 피트가 감당하지 못하리라는 예상이 많았지만, 의외로 무난한 생활을 보내고 있다. 특히 부부가 기부와 봉사활동에 자주 참여해 이미지가 엄청 좋아졌다. 할리우드의 대표 잉꼬 커플로 손꼽히며 둘이 합쳐 '브랜젤리나'라고 불릴 때가 많다. 피트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이들인 존(샤일로)[7], 녹스, 비비언, 입양한 아이들인 매덕스, 팩스, 자하라까지 모두 여섯 명이다. 지금도 추가 입양을 고려 중이라고 하지만 아직 입양 소식은 없다. 쌍둥이를 낳은 후, 잡지 '피플 앤 헬로'에 쌍둥이 사진을 판매했다. 무려 1400만 달러에! 이는 가장 비싼 유명인 사진으로 역사에 기록됐다. 이 돈은 졸리-피트 재단에 기부됐다.

2009년 별거와 결별설이 나돌았으나 본인들은 이를 완전히 부정하며 오히려 기자들 앞에서 대놓고 염장을 질렀다(…) 별거설이 나온 이유는 피트가 유모랑 같이 있는 걸 졸리가 보고 바람피는 걸로 오해해서 싸웠기 때문인데 이제 풀린 것 같다.

2010년 1월 24일부터 이혼이 공식적으로 확인되었다는 루머가 널리 퍼졌었다. 두 사람은 재산을 분할하기 위해 유명한 변호사에게 이혼 소송을 수임하고, 육아 문제에서는 공동 양육권을 갖기로 했다 카더라. 이로써 피트가 애니스톤과 다시 합칠 가능성을 점치는 사람들이 있었다. 허나 두 사람은 애초에 결혼한 적이 없으니 이혼이니 뭐니부터가 웃긴 이야기.[8] 게다가 소문의 근원지가 되는 영국 신문사는 가십거리라면 뭐든지 싣고 보는 습성이 있어서 소스 신뢰성이 한없이 떨어진다. 그리고 이 커플의 대변인도 이별설은 사실무근이라고 일축했다.

피트-애니스톤 재회설이 간간히 제기되었지만, 애니스톤은 나름대로 다른 남자와 잘 사귀고 있다. 현재 애니스톤은 저스틴 셔룩스와 약혼한 상태. 그리고 비단 졸리가 아니더라도 한국에 흔히 번역되는 헐리우드 연예인들의 기사는 대부분 신빙성 없는 루머를 확인도 안하고 퍼오는 것이다. 졸리-피트-애니스톤 셋을 가지고 거의 소설수준의 기사가 나는 것이 한두 개가 아니다(…) 공식 인터뷰라든지 영상이 있는 것이 아니라면 신뢰하지 않는 게 정신건강에 좋다.

2012년 브래드 피트가 청혼했지만, 두 사람은 미국 전역에서 동성결혼이 합법화하기 전까진 결혼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피트 지못미 2013년 미국 연방대법원은 동성 결혼을 인정하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고, 2014년 8월 23일 브란젤리나는 프랑스의 가족 예배당에서 아이들이 참석한 가운데 결혼식을 올렸다. 관련기사

5. 여담

어머니 버트런드는 2007년 오랜 투병 끝에 난소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위에선 유방암이라더니? 어머니는 난소암으로 사망한 것이 맞고, BRCA 돌연변이 유전자는 유방암, 난소암, 자궁내막암 등을 일으키는데 졸리는 어머니에게 이 유전자를 물려받았다 항년 56세였다. 이때의 고통스런 기억으로, 사전에 졸리는 유방암을 예방하기 위한 유방절제술을 받았다. 유방암 걸릴 확률이 높은 인자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졸리는 왕성한 자선 사업을 펼치고 있다. UNHCR 친선대사였고, 이때 공로로 UN 기자단으로부터 '세계시민상'을 받기도 했다.

졸리는 수입의 3분의 1은 쓰고, 3분의 1은 남한테 주고, 3분의 1은 저축하는 자신의 룰을 만들어 엄격히 지키고 있다.

3개 국가의 시민권을 갖고 있다. 미국, 캄보디아, EU. 캄보디아에서 펼친 자연보존 노력으로 캄보디아 왕으로부터 시민권을 부여받았고, 보스니아 전쟁 후 펼친 전후 복구 노력으로 유럽 명예 시민권을 받았다.

파일럿 면허를 갖고 있고, 경비행기를 소유하고 있다.

2013년 6월 루퍼트 머독이 소유하고 있는 계열사 중 두 곳인 News Corp & News International에 졸리-피트 부부가 소송을 제기했다.# 2004년부터 2005년 한창 이 둘의 관계를 놓고 떠들썩한 와중에 졸리 주변인과 졸리의 휴대전화 메시지와 통화를 도청 해킹한 혐의를 받고 있다. 또한 결별설을 크게 터뜨렸던 것 역시 이쪽 회사였다고.

턴트 대역을 쓰기 싫어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라라 크로프트' 역을 할 때는 스턴트 연기의 80%를 본인이 직접 했다.

문신을 많이 하는 배우다. 한자 死(죽음)와 勇(용기)도 새겨져 있다.

PR을 담당하는 개인 퍼블리스트가 없다. 졸리 같은 A급 배우가 PR 담당자를 두지 않은 건 상당히 이례적. 모두 자기가 알아서 처리한다고 한다.

한때 살짝 막장이었다. 친오빠와 공석에서 딥키스를 해서 근친상간 루머가 돌거나, 몸에 예삿일처럼 문신을 새기거나, 피를 담은 병을 남편과 교환해서 가지고 다니는 등, 상당히 눈에 띄고 괴팍한 행동으로 숱한 이야기거리를 만들고 다녔다. 사실 미국인들이 진짜로 경악했던 것은 기행보다는 나이가 20대 중반에 접어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대중들 앞에서 친오빠와 혀를 집어넣는 딥키스를 하고 자랑스러워하거나. 생방송 인터뷰에서 빌리 밥 손튼과 함께 등장하면서 "오 우리 방금 안에서 씹질하고 왔어요"라고 방금 성행위를 하고 왔다는 이야기를 하는 등, 사람들 앞에서 넘쳐나는 허세를 도저히 감추지 못하고 칠칠치 못하게 구는 그녀의 유치한 중2병이었다. 흑역사

아버지와의 사이가 안 좋았던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데, 우선 아버지 존 보이트와 어머니 마셸린 버트런드은 졸리가 1살이 되던 해 이혼했다. 이후 졸리는 어머니 마셸린의 손에서 힘든 어린 시절을 보냈고, 아버지가 여러 가지로 딸의 생활에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은 상태에서 자랐었다. 이후 오프라 윈프리 쇼에 출연한 보이트가 졸리를 정신 이상자로 모는 발언을 하며 둘 사이의 관계에 금이 가기 시작했으며, 이후 캄보디아 아이를 입양하는 과정에서 마찰이 생겨 둘 사이는 완전히 돌이킬 수 없이 진행되어 약 7년 간 교류가 없다가 예비사위 피트의 중재로 그럭저럭 좋아진 상태. 2009년 12월 인터뷰에서는 "메간 폭스는 내 딸하고 비교도 안 된다"라고 밝힌 것을 보면 관계를 많이 회복한 것으로 추측한다.

그러다 철이 든 계기가 된 것은 2001년도에 툼 레이더를 찍기 위한 캄보디아 방문이었다. 내전으로 인한 비참한 상황을 목격한 졸리는 자신이 너무 편하게 살았음을 깨닫는다. 이 때부터 캄보디아를 정기적으로 방문하며 빈민 지원과 환경보호 운동을 시작했다. 또한 이 과정에서 졸리는 첫 아이인 덕스를 만나게 되었는데, 매덕스를 입양하여 어머니가 된 후 자신은 새로운 사람이 되었다고 한다. 원래는 자신을 학대하는 성격이라 아이를 올바르게 키울 수 없을 것 같아서 육아를 포기하고 있었으나 캄보디아에서 봉사하며 아이들을 돌보았던 경험에서 마음을 고쳐먹게 되었다고 한다. 이후 매덕스를 키우며 캄보디아를 중심으로 봉사활동을 계속했고, 피트와 사귀기 시작하면서 둘이서 함께 국제적으로 선행의 범위를 넓혀나갔다.

2011년에는 《피와 꿀의 땅에서》로 영화 감독 데뷔를 했다. 2014년, 감독한 영화 <언브로큰>이 개봉을 앞두고 있다. 본 영화의 주요 캐스팅 중에는 미야비도 포함되어 있다. 이 영화의 경우, 실제 주인공인 루이 잠페리니와 안젤리나 본인이 가까운 곳에 살고 있었던 것으로 밝혀져 화제가 되었다.

日本 이미지 훼손했다며 안젤리나 졸리 악마로 규정 안젤리나 졸리는 한국의 사주를 받은 반일 운동가 심지어 "안젤리나 졸리가 한인 3세다" 뭐 이런 이야기를 한 사람도 있다고..노답

2014년 6월 3일 US위클리는 졸리가 최근 영국 BBC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새영화‘클레오파트라’만 하고 은퇴하겠다는 의향을 표시했다고 2일(이하 현지시간) 보도했다. #

그리고 조만간 정계진출을 할것이며 사회운동가로 전업할것을 선언하였다.고로 빵형이 이제 집안경제를 홀로 책임져야함
최근 난소제거 수술을 받았다. 관련기사 졸리는 모계로부터 유방암과 난소암 발병율이 매우 높은 유전자를 물려받았고, 어머니를 비롯 외가에서만 3명이 관련 암으로 사망한 바 있었다. 졸리의 경우에도 최근 난소에서 악성 종양이(암은 아니라고 한다) 발견되었고, 이미 폐경기에 접어들었기에 난소절제술을 받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대신 자궁에 여성 호르몬 패치 삽입 시술을 받았음을 밝혔다.
최근 성을 안젤리나 피트로 바꿨다. 관련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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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원래는 Angelina Jolie Voight였지만 보이트(Voight)라는 성을 공식적으로 지운 상태. 2015년에 남편인 브래드 피트의 성을 따라 피트로 바꾸었다.
  • [2] 배우 제니퍼 로렌스는 두 부부를 두고 미국의 왕과 여왕이 되야 한다고 표현했을 정도다.
  • [3] <미션 임파서블>의 팀장, <아나콘다>의 뱀 사냥꾼,<에너미 오브 스테이트>의 NSA간부 역 등으로 익숙한 배우.왠지 전부 악역이다. 그래도 진주만의 루즈벨트 대통령이나 트랜스포머의 국방장관 같은 선역도 곧잘했다럼스펠트 닮은 건 안자랑.
  • [4] 2014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시에도 미디어에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편지를 보내는 등, 관심병 기질이 좀 있어 보인다.
  • [5] 외교무대에서 주어지는 훈장인 '세인트마이클앤드세인트조지 훈장' 2등급을 명예 훈장 형식으로(honorary DCMG) 받은 것이다. 이와 같이 영국에서 외국인에게 훈장을 부여할 때는 정원에 구애받지 않는 명예 훈장 형식으로 주어서, 그것이 2등급 이상의 훈장이라도 기사작위(Sir or Dame)와는 관계가 없도록 한다. 외국인이 영국의 군주에게 기사로서 충성할 필요가 애초에 없기 때문이다. 다만 졸리는 자신의 이름 뒤에 이번에 받은 훈장의 약칭 'DCMG' 를 명기하는 식으로 수훈사실을 표시할 수 있다. 첨부된 기사 본문 내용 중 "졸리는 이에 따라 이름 뒤에 'DCMG'를 사용할 수 있지만, 영국 국민이 아니기 때문에 스스로를 '데임 앤젤리나'라고 부를 수는 없다."가 바로 이런 의미이다.
  • [6] 애니스톤의 절친인 코트니 콕스도 둘은 결혼생활동안 서로에게 충실했다고 했을 정도다.
  • [7] 원래 이름은 샤일로였지만, 부모가 존(샤일로) 본인의 뜻을 받아들여 존이란 이름을 쓰기로 했다. 샤일로의 남성적인 행동에 대해서는 오빠들에 대한 동경 등등 이야기가 많지만 사실 외할머니대부터 내려온 집안 내력이라고 한다. 졸리 자신도 어린시절 그렇게 행동했다고. 관련뉴스
  • [8] 미국의 동성애자들을 포함한 모든 사람이 합법적으로 결혼할 수 있을 때까지 자신들은 결혼하지 않겠다는 뜻을 내비췄다. 참고로 둘은 영향력 있는 LGBT 서포터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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