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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카에다

last modified: 2015-02-20 20:29:30 by Contribu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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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개요
1.1. 설명
2. 조직사
3. 아랍 민주화 혁명과 알 카에다
3.1. 알 카에다는 실존하는가?
4. 이야기거리
5. 관련 항목



1. 개요


모든 이슬람 근본주의 단체들의 표상
종교를 가장한 악질 테러단체

القاعدة(al-qāʿidah).

1.1. 설명


오사마 빈 라덴을 수장으로 하는 이슬람교 수니파의 국제 테러리즘 네트워크. 그렇지만 하는 행동의 과격성을 보면 와하브파에 더 닮았다. 실제로 빈 라덴을 필두로 주요 멤버의 대부분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와하브의 영향을 받은 사람이다.

이름인 "알 카에다"에서 "알"은 아랍어의 관사이고, "카에다"는 아랍어로 앉다의 의미를 가진 동사 "카아다(qáʕada)"에서 파생된 단어로 "기반, 근본"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서 알 카에다는 영어로 쓰면 "The Fundamental", 우리 말로는 "기반"이나 "근본" 정도로 번역이 가능할 것이다.

지부는 이라크, 북아프리카, 차드, 수단, 필리핀, 태국 등 다양하게 퍼져 다국적 테러리스트들이 서방 곳곳에서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인터넷을 이용해 폭탄제조법, 검문통과법 등을 한큐에 뚝딱 배우고 있다.

하는 짓이 워낙에 커맨드 앤 컨커 제너럴의 테러집단 GLA와 닮아서 리얼 GLA로 불리기도 한다. 애초에 GLA의 모티브도 이 작자들이라고 봐도 된다. 근데 현재는 아예 대놓고 드러낸 이슬람 국가에게 이 별칭은 뺏겼다(...).

나이지리아에서 활동하는 테러 단체인 보코 하람과 아프가니스탄 최악의 테러단체 탈레반과 더불어서 가장 위험한 테러단체로 손꼽혔지만, 2014년 들어선 이들을 뛰어넘은 테러학살을 당당하게 자행하는 ISIS가 수면위로 떠올라 2순위로 밀렸다. ISIS가 하는짓이 얼마나 막장이냐면, 알 카에다가 적대할 정도이다.

2. 조직사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 당시, 미국은 돌풍작전(Operation Cyclone)이라는 이름으로 소련에 저항하는 아프간 내 무자헤딘에게 ISI(파키스탄 정보부, Directorate for Inter-Services Intelligence) 자금과 무기지원을 하고 있었다. 이슬람국가들도 이에 동참하였는데, 사우디아라비아는 매년 600만 달러를 지원하는 위엄을 보여주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ISI의 집중적인 지원을 받은 단체가 마크탑 알-키타맛(MAK,Maktab al-Khidamat)인데, 이 단체는 무슬림 형제단 단원이었던 압둘라 아잠(Abdullah Azzam)과 오사마 빈 라덴에 의하여 창설되었다. 이 단체는 막대한 자금을 이용해 무기를 공급하고 해외에서 오는 무자헤딘들을 훈련시켰다.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미국이 배후에서 지원을 하고, ISI가 이를 현장에서 지휘했으며, 사우디아라비아는 무자헤딘 알선책 역할을 담당했다. 즉, 사우디아라비아가 아랍 국가에 득시글한 실업자들을 막대한 돈으로 고용해 아프가니스탄에 무자헤딘으로 보내고, ISI는 미국에서 오는 지원의 분배 및 이슬람 국가에서 고용된 실업자들을 무자헤딘으로 아프가니스탄에 투입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이 당시 사우디아라비아 주재 파키스탄 대사관에서는 하루에 수백명의 사람들에게 비자를 내주었다고 한다. 사우디아라비아와 파키스탄는 하루에만 비자를 수백명씩 받아갈 정도로 극도로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나라도 아닐 뿐더러, 하루에 비자 수백개를 발급한다는 것은 실상 제대로 확인도 안 하고 마구 비자를 '퍼주었다는' 의미다.

전쟁 이후, MAK는 막대한 자금력을 이용하여 많은 이슬람 원리주의 단체들을 끌어들었으며 미국으로부터 수백만 달러씩 지원받던 이슬람 무장단체인 '헤즈비 알 이슬라미(Hezb-e Islami)'가 1990년대 초부터 빈라덴과 손을 잡기 시작하면서 세력은 급속도로 커졌다.

압둘라 아잠은 MAK가 본격적인 이슬람 무장단체로 발돋움하길 원했고, 빈 라덴은 배후에서 무장단체들의 자금줄을 맡는 네트워크를 계속 유지하는것을 원했다. 1988년 중반 이후 갈등은 극에 이르렀는데,이에 빈라덴은 우선 자기 세력을 가지고 알카에다를 창설한다. 1989년 압둘라 아잠이 암살된 이후 MAK는 알카에다에 흡수된다.

1988년 이후, 아프가니스탄에 투입된 해외 무자헤딘들은 투쟁 방향을 상실하고 혼란에 빠져 있는 상태였다. 주적 소련이 물러난 이후, 본국으로 돌아가기도 마땅치 않은 상황이었고, 그렇다고 아프가니스탄에서 누구를 위해 누구와 싸울지 목표가 없어져버렸기 때문이었다. 당시 아프가니스탄에 투입된 해외 무슬림들은 주로 이집트, 알제리, 모로코 등 북아프리카 아랍 국가들 출신이었는데, 이들 국가에서는 이들 무자헤딘들이 돌아오면 감시, 체포, 감금을 일삼고 있었으며 당장 이집트만 해도 사다트가 이슬람 원리주의자의 손에 암살되었다. 그리고 무자헤딘 입장에서 본국에 돌아간다고 해서 실업 문제가 해결되는 상황도 아니었다. 즉, 언제 터져도 이상하지 않을 폭탄이 되어버렸는데, 문제는 아랍 국가 안에서 아랍 민족주의와의 대결로 터질 폭탄이[1] 서로 지향점이 아예 다를 뿐더러 서로를 실상 가장 큰 위협 대상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아랍에서 공화국들은 모두 한결같이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을 철저히 탄압하고 있다. 미국의 판단미스로 모두 미국을 향하게 된 것. 그리고 그 판단 미스가 미군의 사우디아라비아 주둔이었다.

미국과 긴밀한 관계였던 것으로 보이는 알 카에다가 언제부터 반미, 반유태주의를 표방했는지는 정확하지 않으나, 대체로 걸프전 이후로 보는게 지배적이다. 걸프전 이후 미군이 두 성지(메카, 메디나)의 수호국인 사우디아라비아에 진군했는데 미국은 지속적으로 사우디아라비아에 주둔하게 해달라고 사우디아라비아에 요구했으나 사우디아라비아는 기독교 국가 군대가 자국 영토에 주둔하는 것을 절대 허락할 수 없다고 반대했다. 그러나 걸프전에서 사담 후세인의 야욕 및 확전 의지를 확인한 사우디아라비아는 결국 이라크로부터 자국을 지키기 위해 미군의 사우디아라비아 주둔을 허용했다. 이 미군의 사우디아라비아 진군에 빈 라덴이 격노했고, 반미주의 노선을 확립함과 동시에 테러단체로서의 변환도 꾀한다.

오사마 빈 라덴의 분노 여부를 떠나, 미군의 사우디아라비아 주둔은 많은 무슬림들에게 반발을 가져왔고, 이는 투쟁 방향을 상실한 아프가니스탄 참전 무슬림들에게 새로운 투쟁 방향을 제시하는 효과를 일으켰다. 이로 인해 오사마 빈 라덴의 알 카에다는 이 시기에 빠르게 조직을 키울 수 있었다.

90년대 이후 알 카에다는 미국을 겨냥한 테러사건을 잇달아 일으켰다. [케냐 미 대사관 폭탄 테러| 1997년 케냐탄자니아의 미국 대사관에 폭탄 테러를 가했으며], 빌 클린턴 정부는 이에 대한 보복으로 알 카에다의 거점으로 간주되던 아프가니스탄의 훈련기지와 수단의 제약 공장에 토마호크 미사일 공격을 가함으로써 미국과 알 카에다의 갈등은 극단에 이르게 된다. 다만 수단의 제약공장과 알카에다 간에 실제로 커넥션이 있었는지는 논란이 있으며 이 제약공장이 남수단 쪽의 거의 유일한 제약공장이라서 되려 남수단 아이들에게 필요한 백신 보급을 끊어버렸다는 비난이 거셌다.게다가 당시 터진 클린턴과 르윈스키의 성추문을 덮어버릴 전투라는 음모론까지 나오면서 이걸 토대로 왝 더 독이란 영화까지 나와버렸다.

사우디아라비아 등의 경고가 있었지만 미국은 알 카에다에 대한 초기 대응을 확실히 하지 않았다. 그 이유로는 먼저 이들을 너무 만만하게 보았고, 두 번째로 90년대에는 오직 미국을 겨냥한 테러만 잇달아 일어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아랍 민족주의 정부들을 향한 무수히 많은 테러 속에서 미국과 연관된 몇 건의 테러가 있었던 것이었다. 세 번째로 소말리아 파병의 참담한 실패로 국제적인 군사 개입을 꺼리고 있었으며, 네 번째로 동구권의 몰락으로 인한 미국의 독주와 이에 대한 전세계적인 반미감정에 시달리고 있었기 때문에 독자적, 적극적으로 알 카에다를 하기에는 껄끄러운 상황이었다.

즉, 미국이 알 카에다에 대한 초기대응을 제대로 하지 못한 이유는 당시 미국이 대외정책 및 대외관계에서 잇따른 병크를 저지르고 있는 중이었고, 이슬람 내부 국가에서 자기들끼리 싸우다 불똥이 미국에게 튀는 일은 그 전까지 계속 있어왔던 일이었기 때문에 알 카에다를 초기에 때려잡는 게 아니라 여지껏 그래왔던 것처럼 아랍 국가 정부를 지원해 아랍 국가가 알아서 때려잡도록 소극적인 대응을 했던 것이다. 이는 걸프전에서도 나타난다. 사담 후세인이 무조건 항복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라크 영토에 다국적군을 단 하나도 배치시키지 않았다.

2000년에는 자폭 보트를 이용해 예멘에 주둔한 미 군함 cole(cole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101 공수사단의 장교 이름이다.)호의 오른쪽 선체에 구멍을 내고 미 해군 17명을 죽게 하고 30명을 부상시키는 등(콜호 자살폭탄테러) 알 카에다의 테러는 과격을 치달았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알 카에다는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지진 않았으나 2001년 9월 11일, 보통 9.11 테러라고 부르는, 4대의 여객기를 납치하여 뉴욕 세계무역센터와 워싱턴 펜타곤에 박아버리는 테러를 일으킴으로써 알 카에다의 이름은 전 세계인들에게 각인되었다.

조지 워커 부시 당시 미 대통령은 알 카에다를 겨냥하여, 전 세계 모든 테러를 근절하겠다는 소위 테러와의 전쟁을 선언하고 알 카에다의 본거지로 알려진 아프간을 공격한 데 이어, 알 카에다와 후세인이 연관이 있다는 억지를 부리면서 이라크를 침공하는 사태로 이어졌다. 정작 후세인은 아랍 사회주의자라서 이슬람 원리주의자를 철저히 탄압하고 있었다. 단지 미국과의 전쟁을 이슬람과 기독교 십자군의 충돌로 바꾸어 미국이 이라크를 직접 침공하지 못하게 하기 위한 목적으로 이슬람을 이용하려 했을 뿐이었다. 그래서 우습게도, 이 사태는 오히려 부시 대통령이 다음 대선에서까지 당선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이라크전은 알 카에다에게 오히려 호기를 만들어주어 다수의 테러리스트들이 이라크에 잠입하여 게릴라전과 테러를 일으키게 된다. 부시 대통령이 말한대로 테러가 근절되기는 커녕 오히려 테러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어 버렸으니 아이러니한 일.

2009년 10월, 이들은 리얼 커맨드 앤 컨커 제너럴를 실현하려고 중국위구르 사태에 개입하겠다고 하면서 세계를 긴장시켰다. 이어서 2010년 4월 10일, 이들은 6월 남아공 월드컵에 테러를 가하겠다고 경고했다. 목표는 6월 12일 열린 C조의 영국-미국 경기. D조에 속한 독일과 프랑스도 테러목표물로 언급되었다.

"경기장에 관중이 가득 찬 가운데 미국-영국전이 생중계되는 도중 폭발음이 진동하고 경기장이 아수라장이 되면서 수십, 수백 명의 시신이 뒹굴게 되면 얼마나 놀라운 사건이 될 것인가"

하지만 2010년 남아공 월드컵은 테러없이 무사히 마무리되었다.

그러던 2011년 5월 2일, 끈질긴 추적 끝에 파키스탄에서 오사마 빈 라덴이 미군과의 교전 중 사살당하면서 리더를 상실하였다. 당시 빈 라덴 사후 알 카에다를 이끌 유력 후보로는 조직 내 2인자인 알 자와히리와 뛰어난 화술로 '설교 전문가'로 자리매김한 안와르 알 올라키가 꼽혔다.
결국 안와르 사다트의 암살을 뒤쪽에서 조종한 실력자인 아이만 알 자와히리가 공식적으로 알 카에다를 이어받았다. 알 자와히리는 아잠과의 내분에서 빈 라덴의 편을 들은 심복이며, 이집트에서 지하 무장단체를 이끌며 무바라크에 대항하였다. 알 자와히리는 수니파 극단주의자인만큼 대외적으로는 이란을 비난하였지만, 무바라크 정권을 전복시키기 위해 이란과 협력을 했다고 한다. 이와 관련하여 알 자와히리에 반발을 들고 있는 알 카에다 세력도 있기는 있다.

그리고 소말리아 지역의 책임자이면서 알 샤바브 민병대의 최고 지휘자인 파줄 압둘라 모하메드(Fazul Abdullah Mohammed)가 소말리아에서 사살되었다.

현지 시간으로 2011년 6월 8일에 알리 데레(Ali Dere)와 함께 4만 달러와 의약품, 랩톱, 휴대전화와 여권을 차에 싣고 아프구예(Afgooye) 부근을 지나던 도중에 소말리아군의 검문소에서 정지하지 않자, 소말리아군이 즉시 사격을 가해 두 사람 모두 사망했다고 한다. 소말리아와 미국 관리들이 죽음을 확인했다.

빈 라덴 이후 2인자로 부상한 아티야 압드 알-라흐만(Atiya Abd Al-Rahman)이 2011년 8월 22일 파키스탄에서 무인기 공습을 받고 사살당했다. 파키스탄 내에 있는 알카에다는 괴멸적인 타격을 받았으며 세력이 약화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2011년 9월 30일 안와르 알 올라키가 예멘에서 CIA가 무인기를 대거 동원한 폭격을 받고 사살되었다. 알 올라키의 영향력을 생각해 보면 이 작전의 성공은 빈 라덴의 사살에 이어 알 카에다의 세력을 약화시키는 데 큰 효과가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나이지리아에서는 알카에다와 연계된 단체인 보코 하람(Boko Haram)이 테러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이들은 주로 북부 나이지리아에서 활동하며 니제르를 비롯한 서아프리카에 훈련캠프를 차리고 무기를 공급받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2011년 8월 26일 유엔본부를 테러해 악명을 떨쳤으며 같은 해 12월 25일 교회를 공격했다. 계속된 공격에 나이지리아는 2012년 1월 1일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다. 하지만 보코 하람 항목을 봐도 알겠지만 나이지리아 정부군도 막장이라 보코 하람에게 이득이 되는 일이나 해주고 있다.

3. 아랍 민주화 혁명과 알 카에다

2010-2011 아랍권 민주화 운동으로 혁명 열기가 뜨거운 아랍권으로 알 카에다가 다시 세력을 확장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견들이 나오고 있다. 국가가 모든 기능이 정지되고 혼란이 일어나면서 알 카에다가 사회에 침입할 기회가 늘어나는 것이 아니냐는 것.

하지만 시민 혁명이 성공하면 오히려 알 카에다에게 큰 타격이 된다는 분석도 있다. 알 카에다에 들어오는 자들은 억압된 사회에 분노해 들어오는 이들이 많은데 튀니지 혁명으로 테러가 아니더라도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인식이 아랍 주민들에게 퍼지기 시작했다는 것. 시민 운동으로 사회를 바꿀 수 있다면 굳이 테러 단체에 들어갈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또한 알 카에다는 원리주의 집단이라 민주화를 이슬람과는 양립할 수 없는 것이라고 여기고 있기 때문에 민주화에 대해서 부정적이다. 대놓고 테러는 몰라도 민주화는 안된다#고 성명을 발표할 정도. 어찌 보면 알 카에다에게는 미군과의 전투보다 더 큰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본인들은 리비아 민주화 운동은 전폭 지원 하겠다고 발표했지만, 말과는 달리 많은 것을 하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무시할 수는 없는 것이, '리비아 이슬람 전사단'같은 알카에다와 연계된 단체가 혁명군으로 참전하기도 했으며, 유출된 무기들이 다량으로 예멘 내 알카에다로 흘러들어간 것이 확인되어 리비아에서 알카에다가 개입한 것은 기정사실이다.

예멘에서는 알카에다 아라비아반도 지부(AQAP)가 혼란을 틈타 예멘 내 무자헤딘 세력과 결합하여 샤리아의 군대(Ansar Al-Sharia)라는 이름으로 남부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다. 소수지만 장갑차나 탱크 같은 기갑전력도 확보한 것으로 보이며 살레의 정부군이나 민주화 세력을 구분하지 않고 다 공격하고 있다. CIA가 드론공격으로 견제하고 있지만 이들을 막기엔 역부족인 것이 현실.

시리아 민주화 운동을 돕기 위해 이라크에서 시리아로 병력을 이동 중이라고 한다(…).

하지만 정작 이들의 하위조직으로 시작했다가 독립한 이라크 시리아 이슬람국가가 더 큰 영향력을 가지고 젊은 층들을 끌어들여 결국 칼리프를 선언하고는 이슬람 국가를 세워버렸다. 이라크에서 알 카에다 직속인 알 누스라 전선이 이슬람 국가와 교전을 벌이기도 하는 상황이지만 주도권을 잡고 있다고는 할 수 없을듯.

사실 빈 라덴을 시작으로 알 카에다의 핵심 간부들이 미국의 공격으로 차례차례 사살되는 등, '알 카에다'를 내건 활동은 미국의 지속적인 암살과 무인기 공격으로 심각한 압박을 받고 있다. 현재의 알 카에다 간부들은 테러 활동을 꾸미기보다는 숨어다니기 급급한 것이 현실이다.

그나마 빈 라덴은 이름값이라도 있었지, 빈 라덴 생전에 제2인자로 현재 빈 라덴의 후계자로서 알 카에다를 이끄는 알 자와히리는 원래 빈 라덴 만한 카리스마가 없었던 데다가 숨어다니면서 변변한 활동을 하지 못한 탓에 9.11 테러로 쌓았던 테러 계에서의 ''도 점점 빛이 바래고 있다. 이대로는 알 카에다는 신세대 지하디스트들에게 주도권을 빼앗기고 그저 들의 모임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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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국가: (알 카에다에게) 저리 비켜라, 꼬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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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예측은 이슬람 국가가 알 카에다의 시리아 내 하부조직인 알-누스라 전선의 영토를 무혈로 삥뜯고 주민들을 추방하면서 현실이 되고 말았다(...)

이 같은 위기 상황(?)을 타계하기 위해서인지, 아직 알 카에다에 우호적인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의 탈레반들과 협력하여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으며, 인도, 동남아시아로 지부를 확대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2014년 9월 6일, 미국을 공격하기 위하여 파키스탄 군의 해군 함정을 탈취하려는 목적으로 침투를 시도했다가 들통났다.기사

3.1. 알 카에다는 실존하는가?

과연 조직적인 실체가 존재하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많다. 실제로 반미 과격 테러리스트들의 중소조직들이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는 형태라고 보는게 일반적인 이슬람 연구가들의 시각이다. 일각에선 CIAS가 반미 과격 이슬람 테러리스트들의 조직들을 데이터화한 데이터베이스에 불과하다는 주장도 하고 있지만 오사마 빈 라덴의 명백한 존재 때문에 이러한 주장은 일반적이지 않다.

가장 일반적인 설명은, 원래는 각 지역의 테러조직이나 반군들이 알 카에다와는 별도로 독립적으로 존재해 왔으며, 오사마 빈 라덴이 이들 조직들을 하나로 묶는 구심점 역할을 하면서 새로운 방향성을 설정하여 만들어진 것이 국제적 테러조직인 알 카에다라는 것이다. 람캄행? 이 새로운 방향성이란 바로 미국을 공격하는 것이다. 각 지역의 테러조직이나 반군들은 당연히 자기 나라 정부와 맞서 싸우는 것이 목표였는데, 오사마 빈 라덴은 이들 지역 정부는 미국의 괴뢰이므로 이들을 무너뜨리기 위해서는 먼저 미국을 무너뜨리지 않으면 안 된다고 주장하면서 '미국에 대한 테러'라는 새로운 공통의 목표를 부여하여 이들 지역 테러조직들을 하나로 묶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알 카에다를 하나로 묶어주는 오사마 빈 라덴에 맞먹는 카리스마 있는 지도자가 없다면 금방 연대가 붕괴되고 각자 자기 지역 일에만 신경쓰는 점조직들로 되돌아갈 것이라는 예상이 많다. 미국이 오사마 빈 라덴 찾기에 그렇게 혈안이 되었던 것도 단순히 복수를 완수했다는 상징성만이 이유는 아니었던 것이다. 실제로 2014년에 시리아 내전에서 이슬람국가가 알 카에다의 통제에서 벗어나면서 이러한 예상은 현실이 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런 점 때문에 오사마 빈 라덴이 테러를 하지 않고 사업을 했다면 유명한 기업가가 되었을지도 모른다고도 한다. 당연히 실제로도 수많은 기업을 거느리고 알 카에다의 돈줄을 충당했다. 실제 빈 라덴은 사우디의 재벌 가문 출신으로 그의 형제들은 지금도 사우디에서 중장비와 유통사업 등을 하고 있다.

4. 이야기거리

주로 어떤 사건이 일어나면 인터넷 상에 자신들이 그 사건을 일으켰다는 식으로 성명서를 발표하는게 일반적인 패턴이다. 문제는 아랍권의 대표적 뉴스 채널인 알 자지라를 통해서 이런 발표를 하는 탓에 서구에선 알 자지라가 알 카에다의 선전방송국이라고 인식하고 있다(…).

초거대 자가속기에 근무하던 과학자중에 알 카에다 일원이 발견되었다. 하필이면 입자가속기라 하프 라이프를 생각한 오덕이 적지 않았던 듯. 그러나 그 과학자는 가속기에 대한 테러보단 공격 시설이 될 만한 프랑스 시설들의 정보를 내보내는게 임무였다.

테러 조직 중에서도 이름 있는 조직이지만, 이들마저도 테러와 암살 때문에 도저히 살지 못하는 곳이 있었으니….

그러나 최근에는 급진적 이슬람 단체 알샤바브가 알 카에다와 연계하여 소말리아의 알 카에다 테러단체로 활동 중이다. 알 카에다의 조직이 대체로 그렇듯이, 이는 알 카에다가 소말리아에 진출했다기보다는 기존의 이슬람 군사조직이 알 카에다와 연계한 것이다. 7천명 규모로 정부군, UN군과 전투 중이며 해적산업에도 관련이 있으며 우간다에서 연쇄테러를 일으키고 모가디슈 근처에서 군 퍼레이드까지 펼쳤다. #

알 샤바브는 2011년 동아프리카 대기근 사태에서 구호단체들을 '서구제국주의의 첨병'이라고 간주하여 쫒아내는 병크를 저질렀고, 결국 그들이 점령중인 소말리아 남부지역은 최악의 식량부족을 맞게 되어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목숨을 걸고 탈출하는 일이 빚어졌다. 이는 2012년에도 현재진행중.

참고로 영원한 지도자 쯤 되시는 오사마 빈 라덴은 정작 자식들한테 절대 알 카에다에 가입하지 말고 서방대학에서 공부, 졸업후 직장을 얻고 아내(남편) 얻고 잘 살아라.라고 유언을 남겼다(…).

이들이 만드는 선전물로 Inspire이라는 영문잡지가 있다. 이곳에는 사제폭탄을 만드는 방법이 상세하게 나와있고 미국 내에 자생적 테러리스트를 만드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러한 테러리스트들은 알카에다와 연관이 없으므로 추적하여 잡기도 힘들기 때문에, 미 정보당국의 새로운 골칫거리로 떠오르고 있다.

퓨 리서치 센터의 2012년 조사를 보면 중동 사람들도 알카에다에 대해 호의적이지 않다고 한다. "Unfavorable"이라 답변한 비율이 이집트에선 71%, 터키에선 73%, 레바논에서는 98%에 달했다. 이는 이상할 것도 없는 현상인데, 전세계적으로 아랍인을 알 카에다 조직원으로 싸잡아보는 경향이 생기는 바람에 아랍인들이 전세계 곳곳에서 더욱 차별을 받게 되었기 때문이다.

실제 사건들을 바탕으로 한 게임 메달 오브 아너(2010)와 후속작 메달 오브 아너: 워파이터에서 등장한다. 메달 오브 아너 리부트작에선 막상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의 원인임에도 "저 멀리의 친구들" 미션 이전까진 코빼기도 안 비치며 사실 군복과 전통복장을 혼용하거나 두건과 민무늬 군복 조합이란 것만 빼면 사용하는 언어로나마 탈레반과 구분할 수 있는 플레이어가 많지 않을 것이므로 대개는 나오는지도 몰랐을 것이다(...). 후속작 워파이터에선 비중이 커져서 아라비아 지부(AQAP)가 주적으로 등장. 두목은 빈 라덴이 아니라 다른 사람으로 나온다.

왠진 모르겠지만 뜬금없게도 개막장 게임으로 악명높은 포스탈2와 포스탈3에서도 등장. 특히 포스탈3에선 어떻게 미국으로 들어왔는지 중동 전통 복장으로 미국 길바닥에서 총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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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원래 아랍 민족주의와 이슬람 원리주의는 원수지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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