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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호포드

last modified: 2015-02-25 03:56:32 by Contributors


애틀란타 호크스 No.15
알프레드 조엘 호포드 레이노소
(Alfred Joel Horford Reynoso)
생년월일 1986년 6월 3일생
208cm(6 ft 10 in)
체중 113kg(250 lb)
출신학교 플로리다 대학교
포지션 센터/파워포워드
드래프트 2007년 드래프트 1라운드 3순위
애틀란타 호크스 지명
소속팀 애틀란타 호크스(2007년~현재)
등번호 15번
수상내역 All-NBA Third Team (2011)
NBA All-Star 2회 (2010,2011)
NBA All-Rookie First Team (2008)
NBA Shooting Stars champion (2011)

Contents

1. 개요
2. 커리어
2.1. 대학리그 제패
2.2. 애틀란타 호크스
3. 플레이스타일
4. 이것저것


1. 개요

NBA의 농구선수. 도미니카 공화국 출신의 빅맨으로, NBA의 대표적인 무관심구단 애틀란타 소속에 에이스가 될 만한 폭발력이 있지는 않아서 스포트라이트를 많이 받지는 않지만 기복없는 활약을 해 주는 준수한 선수로 인정받고 있다.

2. 커리어

2.1. 대학리그 제패

알 호포드는 도미니카 공화국 푸에르토플라타에서 태어났다. 호포드의 아버지 티토 호포드는 최초의 도미니카공화국 출신 NBA 리거로 3시즌을 뛴 전적이 있는 농구선수로, 호포드는 자연스럽게 아버지를 따라 농구를 하게 된다. 호포드와 가족들은 2000년에 미시건 주 랜싱으로 이주했고 호포드는 그랜드 레지 고등학교에서 본격적인 농구선수가 된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호포드는 2004년에 플로리다 대학교에 진학한다. 당시 4학년인 데이비드 리가 이끌고 있던 플로리다 게이터스에 조아킴 노아, 코리 브루어 등과 함께 들어온 호포드는 신입생때부터 팀의 스타팅 멤버로 뛰면서 팀의 사우스이스턴 컨퍼런스 우승에 공헌한다. 2학년부터는 노아와 콤비가 되어 골밑을 사수하게 되는데, 나중에 둘 다 NBA올스타가 되는 노아 듀오를 막을 팀은 없었기 때문에 플로리다 대학교는 승승장구하며 NCAA 토너먼트 결승에서 UCLA를 73-57로 꺾으며 우승한다.

그대로 NBA에 입단하기에 충분한 경력을 세웠지만 호포드와 친구들은 3학년까지 같이 뛰기로 하고 다시한번 대학무대에서 신나게 날뛴다. 플로리다 대학교는 또다시 NCAA 결승에 진출하고, 호포드는 그 도중에 SEC 토너먼트 MVP를 차지한다. 결승전 상대인 오하이오 주립대의 슈퍼루키 그렉 오든이 왼손만 가지고도 25득점 12리바운드라는 괴물같은 활약을 했지만 결과는 84-75로 플로리다의 승리. NCAA 2연패라는 위업을 달성하고 호포드는 2007년 NBA 드래프트에 참가한다.

2.2. 애틀란타 호크스

07년 드래프트 최대어는 장차 리그를 이끌 센터감이라고 주목받던 오하이오 주립대의 그렉 오든과 대학선수가 받는 상이란 상은 싸그리 휩쓸어간 텍사스 대학의 케빈 듀란트였고, 이 둘이 사실상 1,2픽 확정이었다. 오든과 듀란트를 제외하면 호포드가 가장 NBA에 준비된 선수라는 평가를 받았고 아니나다를까 애틀란타 호크스가 3픽으로 호포드를 지명한다.

애틀란타는 호포드 드래프트 전까지 2000년 이후 단 한번도 플레이오프 진출을 못하고 있던 약체였다. 수준급 슈팅가드인 조 존슨과 운동능력이 좋은 포워드 조쉬 스미스가 끙끙대고 있었지만 06-07 성적은 30승 52패로 부진했고, 게다가 05년 드래프트에서 마빈 윌리엄스, 06년 드래프트에서 쉘던 윌리엄스를 뽑으면서 포워드진이 바글바글했다. 거기에 또다시 파워포워드인 호포드를 뽑은 상황.

그러나 호포드는 이전의 실패작들하고는 달리 데뷔하자마자 주전 센터 자리에 잘 적응을 했고 시즌 평균 10.1 득점 9.7 리바운드로 더블더블에 가까운 준수한 성적을 거둔다. 신인상 투표에서 2위를 했으며 만장일치로 루키 퍼스트팀에 선정되며 성공적인 데뷔를 마친다. 팀인 호크스 역시 37승 45패의 성적으로 플레이오프에 턱걸이 진출에 성공, 1차전에서 빅3를 결성한 보스턴 셀틱스를 7차전까지 물고 늘어지면서 만족할만한 성과를 기록했다.

다음시즌부터 애틀란타는 안정적인 전력을 구축하면서 꾸준히 플레이오프 진출을 하는 팀으로 변모했고 호포드는 솔리드한 활약을 하는 빅맨으로 정착, 애틀란타의 골밑을 지키면서 공격에서도 데뷔 이후 계속 스탯이 상승하면서 데뷔 3년차인 09-10 시즌에 처음으로 올스타에 선정되고, 이듬해에는 NBA 서드팀에도 뽑히며 스타플레이어 대열에 합류한다. 애틀란타는 이에 5년 $60M이라는 적절한 계약으로 보답한다.

2012년 1월, 호포드는 흉근 부상 때문에 남은 시즌동안 뛰지 못하는 악재를 겪었고 보스턴과의 플레이오프 4차전에서 복귀했지만 애틀란타의 1라운드 탈락을 막지는 못했다. 팀이 구조조정을 시작하면서 조 존슨이 브루클린 네츠로 떠난 12-13시즌, 커리어 사상 처음으로 더블-더블 시즌(17.4득점 10.2 리바운드)를 경험하지만 7할은 넘겨주던 자유투 성공률이 64%까지 떨어졌고 올스타하고 NBA팀에 선발되지도 못했다. 이후 조쉬도 디트로이트 피스톤즈로 트레이드되면서 다음 시즌부터는 팀의 리더에 취임할 예정.

13-14 시즌 평균 18.6득점 8.4 리바운드를 기록하면서 애틀란타의 기둥으로 버티고 있었으나 12월 27일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전에서 오른쪽 가슴근육이 찢어지는 부상을 당하면서 무기한 아웃을 당하고 만다. 이후 한때 3위까지 경험했던 애틀란타는 기나긴 DTD를 겪으며 8위로 추락했다.

다음 시즌에 복귀는 했으나 팀 전술의 주도권이 폴 밀샙과 제프 티그에게 넘어간 뒤라 두드러진 활약은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다만 애틀란타는 멤버들의 고른 활약을 토대로 동부 컨퍼런스의 최고 팀으로 올라선 상태. 밀샙과 티그가 빠진 1월 13일 경기에서 커리어 첫 트리플 더블을 기록했다.

3. 플레이스타일

공격할때는 교과서적인 포스트업과 또는 정확한 미들슛을 기반으로 한 효율 높은 득점이 가능하고 부지런한 움직임으로 스크린을 열심히 걸어주며, 넓은 시야를 가지고 있어 패싱 게임도 잘할뿐만 아니라 기동력도 나쁘지 않아서 트랜지션 상황에서 잘 달린다. 욕심이 많지 않아 무리한 공격을 하지 않는게 큰 장점. 힘이 세고 근성도 있어서 페인트존 수비를 튼튼하게 해내고 박스아웃에 능해 리바운드를 잘 지켜낸다. 다재다능하면서도 궂은일을 꺼리지 않는 알토란같은 자원이라 할 수 있다.

호포드의 신장은 케빈 듀란트보다 작은데, 아무래도 NBA에서 센터 역할을 하기에는 조금 작은 편이고 호포드 본인도 대학시절까지는 파워포워드였으나 애틀란타의 팀 사정상 어쩔 수 없이 센터로 뛰고 있다. 장신 센터 하나 들여서 파포로 뛰는 호포드가 보고 싶다는 사람들도 꽤 되지만 이번에 새로 골밑 파트너가 될 선수가 언더사이즈 포워드인 폴 밀샙. 센터롤에서 벗어나지 못할듯 하다.영원히 고통받는 호포드 그 외에 플레이상으로는 흠잡을곳이 없는 선수지만 "이 능력이 대단하다!" 라고 할 수 있는 특화된 포인트는 없으며, 에이스 역할을 맡을 수 있는 폭발력은 부족하지 않느냐는게 중평. 조 존슨과 조쉬 스미스가 나가서 애틀란타의 대장이 된 13-14 시즌부터 클래스가 확정될 듯 했지만 또 가슴부상을 당하면서 평가는 보류.

4. 이것저것


'NBA에서 잘생긴 선수' 를 뽑아보라면 자주 나오는 미남이며, 거기에 미스 유니버스 출신의 아멜리아 베가와 2011년에 결혼식을 올렸다. 오오 인생의 승리자 오오. 2015년 2월에 득남.

2012년 런던올림픽 농구 최종예선 2차전에서 도미니카 공화국 대표팀 소속으로 대한민국 대표팀과 맞붙었다. 전반에는 설렁설렁하는거같더니 3쿼터부터 폭발하면서 30득점 12리바운드를 기록해 클래스 인증을 했다.

UFC 챔피언인 존 존스에게 덩크를 가르쳐주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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