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알폰소 소리아노 (Alfonso Guilleard Soriano) |
생년월일 | 1976년 1월 7일 |
국적 | 도미니카 공화국 |
포지션 | 2루수[1] → 좌익수 |
투타 | 우투우타 |
프로입단 | 1995년 히로시마 도요 카프 입단 |
소속팀 | 히로시마 도요 카프(1995~1997) 뉴욕 양키스(1998~2003) 텍사스 레인저스 (2004~2005) 워싱턴 내셔널스 (2006) 시카고 컵스 (2007~2013) 뉴욕 양키스(2013~2014) |
2004년 메이저리그 올스타전 MVP | ||||
개럿 앤더슨 (애너하임 에인절스) | → | 알폰소 소리아노 (텍사스 레인저스) | → | 미겔 테하다 (볼티모어 오리올스) |
2.1. 일본프로야구 시절 ¶
1995년 일본프로야구 팀인 히로시마 도요 카프가 도미니카 공화국에 세운 야구 학교인 '카프 아카데미'[2]에서 재능을 인정받아 히로시마 도요 카프 2군에 합류하여 일본 리그 커리어를 시작했다. 하지만 별다른 활약은 보이지 못했고 97년에 1군에서 9경기를 뛰며 타율 .118 출루율 .211 OPS .329를 기록하는데 그쳤으며, 1998년 연봉 차이로 인해 임의탈퇴 공시되었다.
2.2. 뉴욕 양키스 시절 ¶
이후 소리아노는 잠시 도미니카로 돌아갔는데, 그의 재능을 눈여겨본 뉴욕 양키스 측에서 히로시마 도요 카프에 310만 달러의 이적료를 지불하고 소리아노를 데려오게 된다. 입단 후 마이너리그에서 실력을 쌓다가 1999년 처음으로 메이저리그에 콜업, 2001년에는 주전 2루수였던 척 노블락이 어깨부상을 당해 그를 대신하여 2루수로 발탁, .268 18홈런 73타점 43도루를 기록하며 스타 탄생을 알렸다.[3]
2002년에는 홈런 1개 차이로 40-40을 놓치는 등[4] 전년도에 비해 기량이 보다 발전한 모습을 보였으나, 삼진도 157개나 당하며 선풍기도 아낌 없이 돌렸고, 돌글러브급 수비도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그리고 타율 3할을 기록했는데, 이는 2013년 현재까지 커리어 중 최고 타율.
2003년에도 38홈런-35도루를 기록하며 2년 연속 30-30 클럽에 가입했다. 이 시즌에 선두타자 홈런 기록을 경신하기도 했다. [5] 하지만 월드시리즈에서 4차전까지 9삼진을 기록하는 등 최악의 부진에 빠졌고, 결국 5차전에서는 선발 라인업에서 제외되기까지 했다.
2.4. 워싱턴 내셔널스 시절 ¶
워싱턴 내셔널스로 트레이드 된 후 포지션을 좌익수로 바꿨는데, 2006시즌 시범경기에서 좌익수 수비를 거부하며 시합을 보이콧하기도 했다. 구단측은 너 수비 안들어가면 월급 안준다?라고 협박했고 결국 소리아노는 이에 항복, 좌익수 수비를 들어가게 되었다.
정규 시즌에서는 1번타자로 주로 출장, 8월 19일 필라델피아 필리스와의 경기에서 개인 통산 4번째 30-30 클럽을 달성했고, 9월 16일 밀워키 브루어스와의 경기에서 드디어 개인 통산 첫번째이자 MLB 역대 네번째 40-40 클럽에 가입하게 되었다.
이 시즌에 통산 200도루를 달성하기도 했다. 시즌 최종 성적은 .277 46홈런 95타점 41도루.
2.5. 시카고 컵스 시절 ¶
첫 해에는 33홈런을 기록하며 그럭저럭 했지만 그 이후 부상에 시달리며 타율/장타력/주루능력이 점점 하락했다. 특히 2009시즌에는 2할 4푼대의 타율에 20홈런을 겨우 쳐내는 부진에 빠지기도. 컵스에서의 모습은 20홈런 이상 쳐주는 준수한 장타력을 가졌지만 2할 중반대의 타율과 타율에 비해 높지 않은 출루율, 떨어지는 주루 능력으로 가치가 그리 높지 않은 공갈포형 타자라 할 수 있다.
2012년에는 연봉보조를 많이 포함한 트레이드가 예상되어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가졌는데, 배리 지토 부럽지 않은 잔여연봉 탓에 트레이드는 무산되었고, 대신 컵스에서 어영부영 공갈포짓을 하더니 30홈런-100타점을 달성했다. 타율도 낮고 타율 대비 출루율도 꽝이지만 장타력이 부활해 그나마 트레이드 가치를 올렸다. 잘만 하면 어떤 팀 하나 낚여서 트레이드될 수 있다! 버논 웰스가 그랬듯이
2013년에도 결국 보는 사람 혈압 오르게 하는 공갈포 짓만 하다가 7월 말 트레이드 데드라인에서 과거 소리아노가 한 시절을 보냈던 뉴욕 양키스2013년 7월 웰스와 A로드를 거느리고 있는 그 팀 맞다가 컵스에게 소리아노의 트레이드를 문의했고, 결국 7월 25일 트레이드가 확정되었다. 물론 연봉보조가 많이 포함되어 있다.
2.6. 뉴욕 양키스 복귀 ¶
양키스 복귀 후 포지션은 컵스 시절과 마찬가지로 좌익수와 지명타자 겸임. 복귀 후 고작 20경기 남짓 출장하는 동안 3할 타율에 8홈런 26타점의 맹타를 휘두르며 정신을 차린데다, 수비마저 향상된 모습을 보였다. 타격 부활보다 이게 더 대단하다 다만 시즌 후반이 지나도록 20볼넷도 못 뽑고 삼진은 100개를 돌파하는 등 보는 이들의 눈을 썩게 만드는 선구안은 여전하다.
8월 27일 토론토 블루제이스 원정경기에서 1회, 3회 연타석 홈런을 날리며 개인 통산 400홈런을 달성했다.
양키스에서의 2013시즌은 루징팀이던 컵스와는 달리 동기부여를 찾았는지, 홈런을 뻥뻥 날리며 다른 모습을 보였다. 2013시즌에 컵스에서 93경기 동안 17홈런 51타점을 올렸는데, 양키스 이적 후 58경기에서만 17홈런 50타점을 올렸다.
2014년 5월 12일 뉴욕 메츠와의 경기에서 메이저리그 역사상 7번째로 양대 리그 1000안타 달성에 성공하면서 동시에 500득점/500타점/100홈런/100도루를 달성한 첫 번째 선수라는 진기록을 세우게 되었다.
그런데 2014시즌에는 67경기에서 .221 .244 .367 6홈런 23타점이라는 형편없는 성적을 내다가 지명할당되었고, 지명할당 이후 얼마 되지 않아 방출되었다.
2.7. 은퇴 ¶
2014년 11월 4일, 마침내 은퇴를 선언하면서 16년간 쌓아오던 메이저리그 커리어를 마감했다.
통산 성적은 .270/.319/.500, 2095안타, 412홈런, 1159타점, 289도루.
3. 플레이 스타일 ¶
40-40 1회 달성, 30-30 3회 달성으로 대변되는 전형적인 호타준족의 선수. 호리호리한 체구에 걸맞지 않는 강한 손목힘으로 장타를 무수히 양산해냈으며, 2002, 2004, 2005년에는 2루수 부문에서, 2006년에는 외야수 부문에서 실버슬러거를 수상했다. 하지만 선구안이 좋지 못해 한 시즌당 120개 내외의 삼진은 기본으로 깔고 가면서 시즌 평균 볼넷은 끽해야 40~50개 선에 그치는 등 BB/K 비율 면에서는 주전급 선수들 중에서 가장 나쁜 수준에 속한다. 워싱턴 내셔널스 시절에는 40-40 대기록을 위해 마구 휘둘러대다보니 160삼진을 당하기도 했다. 출루율도 주로 1번으로 나온 것 치고는 상당히 좋지 않은 편. 3할 타율을 기록했던 2002년에도 출루율은 고작 .332에 그쳤다.
수비력 역시 2루수 시절에는 돌글러브로 유명했다. 외야수로 전업한 이후에도 그다지 좋지는 못했는데, 2009년에는 외야수로 뛰면서 에러 11개를 기록하기도 했다. 이는 공을 캐치한 뒤(거의 반사적이다) 습관적으로 살짝 뛰는 것 때문이라고 지적당하기도 했다. 2루수에서도 좌익수에서도 캐치 뒤 뛰고 스텝 후 송구하는데 이 '깡총점프' 때문에 글러브에서 볼이 빠지기도 하고, 2008년엔 이 스텝 밟다가 부상(...)당하는 일도 있었고... 그래도 2010년부터는 UZR 점수가 +를 기록하는등 수비가 약간이나마 개선된 모습이었지만 좋지 않은 무릎 때문에 그다지 오래 가지는 못했다.
뇌를 갈아끼우시는 분의 MLB버전이라고 생각... 하기에는 장타력에서 너무나 큰 차이를 보이기 때문에 소리아노에게 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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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5년까지는 2루수를 맡았다.
- [2] 카프 아카데미 출신 메이저리거로는 소리아노 외에 뉴욕 메츠에서 외야수로 뛰었던 티모 페레즈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불펜투수 라몬 라미레즈(2번 항목) 등이 있다. 여담이지만 에스마일린 카리대(...)도 이곳 출신이다.
- [3] 하지만 이때부터 돌글러브의 기질이 보였다. 시범경기에서도 악송구를 연발하며 불안감을 야기시켰다.
- [4] 이때 소리아노는 시즌 마지막 경기를 남겨둔 상황에서 홈런 1개가 부족한 상태였고 아직 기록 달성의 가능성은 남아있었다. 그러나 순위 결정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경기는 취소되는 메이저리그의 관행 때문에 양키스의 마지막 경기는 취소되었고 소리아노는 상당히 아쉬워하였다. 비슷한 사례로 2011년 맷 켐프가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와 워싱턴 내셔널스의 경기가 취소되어버리면서 39홈런-40도루에 머무른 바 있다.
- [5] 종전 브래디 앤더슨의 12개 기록을 13개로 경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