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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골라

last modified: 2015-09-11 16:59:39 by Contribu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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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 이래 채택하고 있는 국기. 빨강은 독립 투쟁, 검정은 아프리카, 노랑은 국부(國富)를 의미하여, 톱니바퀴는 공업과 노동자, 칼은 농업과 농민, 별은 단결과 진보를 의미하는 데 별과 톱니바퀴, 칼의 모습이 지금은 사라진 어느 나라의 국기 문양과 닮았다.이는 공산 앙골라의 집권당이었던 앙골라 해방인민운동(MPLA)의 당기를 바탕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1]

(ɔ) ColdIn02492 from

2003년 제안된 국기 시안(試案). 귀엽다. 다만 제안만 되고 채택은 되지 않았다. 어째 윗동네 삘...

ANG골라
포르투갈어: República de Angola (헤푸블리카 드 앙골라)

공식명칭 앙골라 공화국(República de Angola)[2]
면적 1,246,700km²
인구 1849만 8000명(2009)
공용어 포르투갈어
국가언어 콩고어, 초퀘어, 남부 음분두어(움분두), 북부 음분두어(킴분두), 강겔라어, 콰냐마어
정치체제 공화제, 형식적으론 다당제
국가원수 조제 에두아르두 두스 산투스(José Eduardo dos Santos) 대통령(1979년 이래)
수도 루안다
1인당 GDP 5,873$(2012 명목)
통화 콴자

Contents

1. 개요
2. 역사
3. 경제
3.1. 풍부한 지하 자원과 빈부 격차
3.2. 중국인의 경제 장악
3.3. 빈약한 제조업
4. 스포츠
5. 외교 관계
6. 기타

1. 개요

아프리카 남서부에 위치한 국가. 콩고 민주 공화국, 잠비아, 나미비아와 접하고 있으며 본토에서 떨어진 카빈다(Cabinda) 주를 통해 콩고 공화국과도 접하고 있다. 국토면적은 124만 7,000㎢, 인구는 약 2000만 명. 수도는 루안다(Luanda). 언어는 주로 제르콩고어족에 속하는 토착언어들이 사용되기도 하며 공용어인 포르투갈어도 쓰인다.

2. 역사

16세기 포르투갈인도 무역을 할 때 반드시 지나가는 거점 지역이었으며, 포르투갈의 브라질 식민지 개척에 필요한 노예의 공급지였다. 앙골라의 대서양 연안 도시들 대부분은 이런 목적으로 포르투갈인들이 개척한 것으로, 수도인 루안다는 물론 벵겔라, 루방고, 그리고 본토에서 떨어져 있는 카빈다 모두 마찬가지.

이런 역사적 조건으로 앙골라는 포르투갈의 식민지가 되었으며,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립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났다. 특히 1960년 독립한 이웃나라 콩고가 사회주의를 채택한 탓도 있어서 콩고, 소련, 쿠바 등의 지원을 받아 독립전쟁을 치렀다. 이 때 독립전쟁을 지도한 앙골라인민해방운동(MPLA)과 앙골라전면독립민족동맹(UNITA)이 격렬한 전투를 치르며 독립전쟁을 주도했다.

1974년, 포르투갈에서 살라자르 독재정권이 붕괴하자 독립하였다. 1975년, 앙골라는 20년 이상의 독립전쟁 끝에 가까스로 독립을 쟁취했으나 곧바로 앙골라의 풍부한 지하자원을 노린 열강에 의해 내전에 빠졌다.

MPLA는 소련과 쿠바, 콩고의 지원을 받아 사회주의 정권인 앙골라 인민 공화국을 수립했으나, 소련과 대립하던 중국, 그리고 미국남아공은 UNITA를 지원해 내전이 격화되었다. 이 내전은 냉전이 계속되던 1980년대 치열하게 전개되어 수많은 민간인 희생자를 낳았고 국토는 황폐해졌다.

1991년, 소련 붕괴로 냉전이 끝나자 앙골라 포괄 평화협정이 체결, 1992년 신헌법이 제정되고 국명도 지금처럼 바꾸었다. 그러나 대선에서 다시 정부(MPLA계열)와 UNITA의 대립이 격화되어 다시 내전이 터졌다.

앙골라 내전이 1975년 이래 끝나지 않았던 이유는 정부(MPLA)와 UNITA가 앙골라의 풍부한 지하자원을 각각 장악하여 경제력이 괜찮았기 때문이다.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앙골라는 산유국이며, 다이아몬드 산출량도 높다.(다이아몬드 생산량 세계 4위) 특히 석유는 매장량이 100억 배럴+a로 추정되어 세계 석유산업계가 군침을 삼키고 있다.

또 다른 결정적인 요인은 부족 대결이다. UNITA는 오빔분두족이 주도하며 MPLA는 다른 유력 부족이 이끌고 있다. 이처럼 양대 부족이 각각의 이념 및 자원 대결을 펼치면서 내전은 끝나지 않고 계속되었던 것이다. 그 결과 150만 명이 사망하고 1993~94년 사이에는 하루 평균 1천 명이 희생되는 악순환이 이어졌다. 30년의 내전으로 국토 전역이 지뢰밭이 되어 세계 최악의 대인지뢰 피해국이라는 오명까지 얻었다.

이런 상황은 2002년에야 겨우 해결의 실마리가 열려서, UNITA의 리더였던 조나스 말레이루 사빔비(Jonas Malheiro Savimbi)[3]가 전사하면서 UNITA 세력이 약화, 정부와 UNITA는 정전 각서를 교환했고 가까스로 국가는 안정되고 있다. 그러나 2010년 독립을 주장하는 카빈다 지역에서 토고 축구대표팀이 테러를 당하는 등, 국가 치안은 여전히 불안하다.

현 대통령인 제 에두아르두 두스 산투스는 1979년 이후 현재까지 장기집권하고 있는데 이 사람은 로버트 무가베보다 더 오래 집권중이지만 1975년부터 집권 중인 카메룬의 폴 비야, 비록 미승인국이지만 모하메드 압델 라지즈가 1976년부터 집권 중인 서사하라같이 더 장기집권 중인 나라도 있다.(모두 아프리카 나라이다)덤으로 나이도 같은 테오도로 오비앙 응게마 음바소고(둘 다 1942년생)가 똑같이 1979년부터 집권 중인 적도 기니도 있는데 음바소고가 한달 더 집권을 빨리하여 산투스보다 더 오래 집권중이다. 이는 집권당인 MPLA[4]의 수장인 산투스가 내각책임제 국가의 내각대표로서 집권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전 이후 앙골라 경제가 급성장 하고 있는 가운데 역시 산투스와 그 측근을 중심으로 부정부패 문제가 심각한 상황이다. 앙골라 전체 국부의 30%를 대통령 일가가 소유하고 있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 그의 딸인 이자벨 두스 산투스는 앙골라 국내는 물론 과거 식민지 종주국인 포르투갈 및 유럽 내에서 여러 회사를 소유하고 있고, 아프리카 대륙 내 유일한 여성 억만장자로 알려져 있다. 최근에는 부정부패로 체포되어 포르투갈에서 조사받고 있는 정부 각료 문제로 양국간 정상회담이 취소되는 등 외교 분위기가 험악해진 상황이다.

3. 경제


3.1. 풍부한 지하 자원과 빈부 격차


석유다이아몬드 외에도 막대한 양의 철광석과 석탄이 매장되어 있으며, 국토 대부분은 사바나이다.

아프리카 최대 산유국이자 OPEC 가입국. 아프리카 제5의 경제대국(남아공, 나이지리아, 이집트, 알제리 순).
더욱이 경제성장은 연 10%를 넘는 매우 빠른 성장을 보이고 있다. 1인당 GDP가 5천달러이고 PPP로는 6100달러인데, 이게 5년전에는 2500달러였다. 하지만 1인당 GNI (국총소득으로 국총생산인 GDP와는 다르다.)는 4800달러 정도로 소폭 내려간다.

그런데 현실은 시궁창이다. 문제는 어마어마한 양극화 때문.
2007년 당시 앙골라 인구의 70%는 하루 2달러 미만의 수입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이게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이라 1인당 PPP GDP는 세계 113위인데 인간개발지수 (HDI)는 세계 148위로 35계단이나 낮다. 인간개발지수는 GDP만으로는 국민들의 생활수준을 판단하는데 한계가 많기 때문에 교육 연수와 평균 수명을 고려한 지표인데, 1인당 GNI 4812달러, 예상교육연수 10.2년, 실제 평균 교육 연수 4.7년, 평균수명 51.5세[5]로 나온 최종 점수가 0.508.

3.2. 중국인의 경제 장악


2002년 내전이 끝나자마자 중국인들이 대거 유입되어 도매시장을 장악해버렸다(...)..[6] 여기에 중국 정부가 2004년 10월 정부개발원조(ODA) 명목으로 융자한 20억 달러는 앙골라가 날마다 석유 1만 배럴씩 17년 동안 중국에 제공하는 조건으로 지원되었는데, 이 20억 달러 규모의 프로젝트를 중국 국영기업이 수주하고 설비, 자재, 심지어 하급 건설 인부 같은 노동자 마저도 몽땅 중국에서 가져다 써서 정작 지원 대상인 앙골라에는 한푼도 돌아가지 못했다(...).[7] 원자바오 전 총리가 2006년 직접 방문했을 정도로 중국의 관심이 지대하지만, 이런 식으로 중국 정부와 중국인들이 노골적으로 돈과 자원을 노리고 접근하고 있기 때문에 가뜩이나 생계가 막막한 중하층민을 중심으로 중국인에 대한 적개심이 커지고 있다. 결국 반정부 시위까지 벌어지고 일부 반정부 세력이 이런 시위대를 통하여 지금 정부를 뒤엎자고 하는 탓에 겁먹은 정부가 이게 죄다 칭총 앙골라 현지는 '시누아(포르투갈어)'로 불림이라고 책임을 떠넘기면서 혐중이 깊어졌다. 중국-아프리카 관계 참고.

거기에 중국 대규모 곡물 농장이 늘어나는 것도 문제. 대대로 작게 농사를 짓고 살아가던 이들에게 한푼 보상도 없이 땅을 빼앗아 정부가 준 탓에 여론이 폭발했다. 실제로 이렇게 땅을 빼앗긴 어느 앙골라 민중 한 사람이 그 분풀이로 중국인 농장 직원을 낫으로 찔러죽인 적도 있다. 그리고 수천여명 민중들이 모여서 그의 석방을 부르짖기도 했다.[8]

3.3. 빈약한 제조업


앙골라를 비롯한 대부분 아프리카 국가들이 가진 문제로써 빈약한 제조업으로 인해서 전자나 기계 제품 가격이 무시무시하게 비싸다 한국산 자동차 부품이 현지에 오면 10배가 된다 덕분에 싸구려 중국 제품을 포함해서 그나마 좀 괜찮은 브라질과 남아공에서 오는 제품이 시장에 많은데 이 마저도 없어서 못쓴다. 그래도 2013년부터 대형 마트가 생기면서 물류 유통이 활발해지면서 상품이 많아졌다.

원래는 식민지 시절 포르투갈에서 대규모로 투자를 하여서 충분한 인프라와 제조 설비가 있어 오히려 농업에 집중하던 본국보다 경제 사정이 나았을 정도였지만 내전으로 모든 것.[9]이 파괴가 되었고, 식민지 청산이라고 하여서 공장을 유지 보수하는 포르투갈 인들을 대거 쫓아내면서 공장이 문을 닫고 내전으로 황폐화 되었다.

4. 스포츠

스포츠로는 축구농구가 인기가 많다. 올림픽이나 세계 농구 선수권 대회 나오면 동네북이지만 그래도 아프리카 예선을 거치면서 꾸준히 올라왔다는 건 아프리카 농구 강호라는 걸 알 수 있다. 아닌게 아니라 아프리카 선수권 대회(FIBA Africa Championship)만 봐도 최다 우승국가이자 1989년 첫 우승을 시작으로 11회 우승으로 역대 최다 우승국가이다. 그것도 1989~1995(4회 연속 ),1999~2009(6회 연속) 우승같이 연속으로 마구 우승한다. 2011 마다가스카르 대회에서 튀니지에게 패해 7회 연속 우승은 좌절됐지만 2013 코트디부아르 대회에선 이집트를 17점차로 이기며 통산 11번째 우승을 거뒀다. 역대 2번째 우승국가인 이집트와 세네갈이 거둔 5회씩을 합친 것보다 많은 기록.

세계 대회에서는 부진했었으나 2000년대 들어서 이젠 앙골라도 무시할 팀이 아니게 되었다. 2002년 미국에서 열린 농구 월드컵에서 처음으로 2라운드 진출한데 이어 2006년 일본에서 열린 월드컵에선 개최국 일본을 87-62로 뭉갰으며 뉴질랜드는 95-73으로 압승했고 덕 노비츠키가 분전한 독일과 연장전 끝에 103-108 패, 우승한 스페인에게 83-93으로 분전할 정도로 솜씨를 뽐내며 사상 최고성적인 10위를 기록했다.

2010년 터키에서 열린 농구 월드컵 대회에서 요르단을 이기며 역시 16강에 진출하여 3회 연속 월드컵 2라운드 진출을 이룩했다. 그만큼 무시못할 상대이거늘 1994년 이 대회에서 한국이 13-14위 결정전에서 75-71로 이긴 아득한 옛날 일(한국은 13위, 앙골라는 꼴지인 16위)만 기자들이 거론하며 2014 스페인 농구 월드컵에서 한국과 같이 D조에 속해서 그나마 한국팀이 1승을 노릴 상대라고 썼다. 그러나 아프리카 최강급인 만큼 방심은 금물이었고 결국 69:80으로 앙골라에게 패했다. 그렇지만 앙골라는 이 대회에서 아깝게도 16강 진출은 실패했는데 최종순위 17위를 기록했다.

2012 런던 올림픽 여자농구가 본선에 진출했고 남자농구는 최종예선 8강까지 진출했지만 러시아에게 65:80으로 패하며 탈락했다.

5. 외교 관계

대한민국과는 한때 사회주의 국가 성향 때문에 외교관계를 맺어오지 않았다가 1993년에 정식 외교관계를 맺었으며 이전 1988년 서울올림픽에 공식 참가했던 적이 있다.

북한과는 독립 후인 1976년에 수교하여 우호적인 관계를 맺어졌으며[10], 국제 공항에 한국말 하는 사람 중에 북한 사람이 있으니 주의가 필요함 북한 의사들이 대거 앙골라에 파견이 된 상태로써 현지에서 높은 대우를 받는다. 그래도 월급이 적어서 전화 선불 카드 등을 팔면서 생계를 유지한다.

6. 기타

2011년 미스 유니버스 라일라 로페즈를 포함, 국제 미인대회에서 아주 괜찮은 성적을 보여준다. 국제대회 참가 기간이 고작 10여년인데 한명의 미스 유니버스와 3명의 탑16위 진출, 미스 월드대회에서 3명의 세미파이널의 성과를 거두었다.이들이 백인 취향에 맞는 비욘세풍의 백인 얼굴에 검은 피부의 마른 여성인지라 뚱뚱한 여성이 선호되는 자국에서는 이해를 못하기는 한다

현재, 화폐 개혁을 하여서 액수 단위는 다양하게 있는데 (10 , 50 , 100 , 1000 , 2000 , 5000 콴자) 대개 1달러에 100 콴자를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팁 단위는 1,000 콴자(10 달러, 한국 돈으로 약 10,000원 이상)를 요구하는 현지인이 많다. 공항에서 대개 짐을 찾거나 나르는데 도와주는 사람이 있는데 잘못해서 짐을 맡겼다가 팁으로 100달러를 요구하는 놈들이 있으며 어설프게 1달러를 꺼내면 따지는 현지인도 많으니 주의 요망

신정환이 룰라 1집을 마치고 군입대하여 육군 제203특공여단에 배치되었는데, 정훈병으로 상대적으로 널널하게 보내다가 파병에 자원했는데 UN평화유지군 소속으로 이 앙골라에서 군생활을 했다. 파병은 100% 지원으로 심사를 거치고 파병을 가서도 위험한 상황에서의 임무수행과 강도높은 훈련을 요구하므로 이 당시 여론도 신정환의 파병소식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Example.jpg
[JPG image (64.43 KB)]


이 때는 현역입대+파병생활로 신정환의 방송이미지에 많은 도움이 되었었다.

2015년 8월 이슬람교를 완전히 금지하기로 결정했다. 세계 최초로 이슬람을 완전히 금지하게 되었으며, 국내에 존재하는 80여개의 이슬람 모스크를 모두 파괴할 에정이라고 한다. 앙골라에서는 이슬람을 종교가 아닌 (Sect, 사이비 종교)로 정의하였다.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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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무리한 도전 오프닝에 크게 등장한다.
  • [2] 포르투갈어. 현지에서 쓰이는 콩고어와 음분두어로는 Repubilika ya Ngola
  • [3] 미국이 반공 및 우익계열이라고 지지했으나 나중에 엄청 후회했던 인물이다. 악랄한 독재자였기 때문이다. 하긴 미국이 지금도 지지하는 무수한 독재자가 그렇지만. 이 작자는 자기에게 구호품 절반을 내놓지 않았다고 UN구호물품을 싣은 수송기를 격추시키까지 했다. 게다가 다이아몬드 광산을 독차지하면서 일꾼을 악랄하게 부려먹었고, 소년병을 약물 중독시켜 살인하게 만들기도 했다. 이러다 보니 앙골라에서도 증오를 많이 받았고, 1992년에 중재로 이뤄진 합법적 선거에서도 지가 압도적으로 패하자 다시 내전을 일으키면서 10년이나 다시 앙골라를 수렁에 빠지게 했다. 결국 국제적 비난에 시달리던 미국도 지원을 전면 철회하면서 실상은 내전에서 승리를 앞두고 그 동안 지원한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들의 요구를 거절하고 '앙골라의 자원은 전부 앙골라인(나)의 것이다. 선언해서 이 틈을 타서 MPLA(앙골라 공산당)쪽이 서방측과 손을 잡아서 밀리게 되었음 싸움에 패해 달아나던 길에 부하에게 배신당해 사살당했다...죽어서도 목이 잘려져 거리에 매달릴 정도로 미움을 많이 받았다. 참고로 사망일이 2002년 2월 22일이다.
  • [4] 과거 앙골라인민공화국 시절엔 마르크스-레닌주의, 현재는 민주사회주의를 표방하는 정당으로 인민공화국의 수립부터 현재까지 장기집권 중이다.
  • [5] 참고로 1인당 GNI가 1684달러로 앙골라의 1/3 수준인 가나의 인간개발지수는 세계 135위. 나머지 세 지표는 각각 11.4년, 7년, 64.6세인 것과 비교해 볼 때 앙골라는 소득 수준에 비해 교육 및 의료 등 시설이 열악함을 알 수 있다.
  • [6] 전체 인구의 1/4 정도 해당되는 천만명이 들어 있다고 말할 정도로 중국인이 많아서 대도시 곳곳에 중국인 찾기가 어렵지 않으며, 노동 비자 발급 절차가 까다로와 졌다. 그런데 이마저도 괜히 짱개라고 불릴 정도로 선량한 이들이 아니라서 불법으로 위조해서 '앙골라 내무부 산하 이민국' 직원만 아시아인들 상대로 용돈벌이(반쯤 강도)에 좋아라 하고 있다
  • [7] 앙골라 프로젝트라고 할 정도로 중국 정부가 많은 투자를 하여서 특히 사회인프라 공사를 많이 했는데 전기를 이동 시키는 송전선이 너무 얇아서 중간에 끓어져 정전이 나는 경우도 흔하고, 중국 업체에서 깔아 놓은 고속도로는 1년이 아니라 거의 매월 아스팔트 바닥이 주저 앉아서 구멍이 나며, 건물의 경우 외부는 그럴싸 한데 안에 들어가면 아무것도 없고 콘크리트 바닥에 벽돌로 개판이라 현지인들은 불만이 많다
  • [8] 원래 공산주의 국가이기 때문에 땅의 소유는 전부 국가이며 땅을 사더라도 장기 임대권을 구입하는 것이지 자신의 소유가 되는 것이 아니다.(또한, 누구 땅인지 몰라서 한 땅에 주인 10명도 나타나서 싸우기도 하는데 덕분에 한인 중에 사기 당한 사람이 많다) 그래서 정부 입장에서는 정부의 땅을 중국 업체에게 임대를 해준 것이라서 그 나라 법적으로 합법한 조치이다. 무엇보다도 선량한 피해를 보는 농사꾼도 있지만 대부분이 한다리 걸쳐서 돈을 뜯어먹으려는 사기꾼들이 대다수이다
  • [9] 농업의 경우 피해가 더욱 심각해서 앙골라 고유 종자마저 전부 내전으로 사라짐
  • [10] 수도 'Luanda'에 가면 아프리카판 '주체사상 탑'을 볼 수 있는데 그것을 북한에서 설치를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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