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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드루 잭슨

last modified: 2015-11-07 22:01:26 by Contributors

역대 미국 대통령
6대 7대 8대
존 퀸시 애덤스 앤드루 잭슨 마틴 밴 뷰런

(ɔ) Thomas Sully from


1824년, 토머스 설리가 그린 초상화.

(ɔ) Mathew Brady from



풀네임 Andrew Jackson
출신정당 민주당
생몰년 1767년 3월 15일 ~ 1845년 6월 8일
재임기간 1829년 3월 4일 ~ 1837년 3월 4일
서명
(ɔ) Andrew Jackson from

미국의 7대 대통령. 출신으로나 걸어간 행보나 미국사에서 꽤 특이하고, 또 큰 영향을 끼친 대통령이다.

Contents

1. 올드 히커리(Old Hickory)
2. 대통령으로서
3. 인물됨과 일화
4. 총평 - 얄팍한 폄하보다 훨씬 위대한 인물
4.1. 평범한 사람들의 민주주의
4.2. 행정학의 태동에 기여하다
5. 미디어에서

1. 올드 히커리(Old Hickory)


20달러 지폐의 이미지

이전의 미국 대통령들이 농장주 출신이거나 좋은 집안 출신이였던 것과 달리 어렸을때 별 기반도 없었고 어렵게 살았지만 자수성가해 150명의 노예를 거느리는 대농장주가 될 정도로 성공했고 테네시 주 의원에 오르면서 정계에 몸을 담기 시작한다. 이후 6년간 지방 판사일을 하다가 민병대 소장이 되었는데 그가 사령관을 하던 1812년 미영전쟁이 벌어진다.

미영전쟁은 결국 양국이 겐트 조약을 맺으며 종료되었지만 당시 교통사정상 종전 소식이 전해지지 않아 각지에서는 여전히 전투가 벌어졌다. 그 중에서 가장 격전지인 뉴올리언스에서 잭슨은 지형지물과 포대를 활용하여 영국군 2000여명을 죽이고 민병대는 전사자가 고작 21명밖에 안되는 엄청난 전과를 거두면서 일약 전쟁영웅으로 떠오른다. 여기에 인디언 토벌전에서도 공을 세우면서 자수성가한 인물이라는 점까지 겹쳐서 올드 히커리(Old Hickory)[1]라는 별명과 함께 엄청난 인기몰이를 하게 된다.

그러나 처음 출마한 대통령 선거에서는 존 퀸시 애덤스에게 패배했는데 선거에서는 1위를 차지했으나 선거인단 과반수를 차지하지 못해 의회 투표를 치루게 되자 애덤스가 다른 후보인 헨리 클레이와 연합해 의회 투표에서 승리했기 때문이다. 이때 잭슨은 클레이와 애덤스가 서로 야합했다고 비난하고 다녔으며, 다음 선거에서 애덤스의 재선을 저지하고 대통령이 되었다.

그러나 이 사건을 계기로 민주공화당 내의 잭슨 지지파는 민주당, 반대파는 국민공화당(휘그당과 현 공화당의 전신)으로 갈라섰다.[2] 미국의 유서깊은 양당제는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2. 대통령으로서

1845년 촬영. 안경을 낀 모습이 새롭다.

대통령이 된 후 잭슨은 그동안 말이 많았던 미국은행의 허가를 거부해버렸고 그동안 있으면서도 잘 쓰이지 않았던 대통령의 권한(거부권 등)을 발동하면서 의회와도 대립하였다. 그러면서도 잭슨은 자신의 지지층들을 계속 끌어안는 지도력을 발휘했고 결국 그러한 결과 재선에서도 압도적인 차이로 승리하게 된다.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난 후에는 고향의 농장에서 지내다가 1845년 6월 8일 7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가 대통령이 되고 난 후 미국은 정치, 사회적으로 대격변을 치른다. 그의 시대에는 산업혁명과 서부개척이 이뤄지면서 엄청난 사회적 변화가 시작되고 있었다. 이 시기 노동운동은 격화되어 갔고 노예제 문제로 인한 남부와 북부의 대립은 서서히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또한 잭슨은 관료제 개혁, 시민권 확대, 기회의 균등을 보장하는 정책들을 내세웠고 이 시대부터 좀 더 대중주의적인 정치가 시작되었다고 평가받고 있다. 물론 동시에 관료제 개혁은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엽관제의 시작이고, 아메리카 원주민과 노예 문제는 무시했던 데다 독불장군적인 모습도 많이 보였던 점은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잭슨은 대통령으로 재임하던 시절 강한 연방주권(=대통령의 권력)을 추구하면서도 경제적으로는 불간섭적인 정책을 추진했다. 많은 주들의 주 헌법을 개정하여 주 법관들의 임기를 축소하고 권력을 약화시키고, 직선제를 채택하는 한편, 배심제를 대폭 강화시켰다. 도리어 그런 성격 때문에 제2 중앙은행 출자를 그만두고 그 돈을 "애완용 사설 은행(pet banks)"[3]에 넣어놨다가 퇴임 후에 이 돈을 못빼서 1837년 대공황의 벼락맞았다. 시장에 대한 규제를 중시하는 20세기 이후의 미국 민주당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3. 인물됨과 일화

1844년 혹은 1845년에 찍은 사진.
딱 봐도 꼬장꼬장한 노장군이다.

살아 생전 13번의 결투를 치렀을 정도로 성질이 뭐같았다(...). 그중 유명한게 아내인 레이철과 관련된 것인데 레이철은 잭슨과 결혼 전에 이미 결혼했던 적이 있던 이혼녀였는데 이혼할 때 뒤처리가 이상하게 되었는지 법적으로는 아직 유부녀였던 상황에서 잭슨과 재혼을 하게 되었다. 이에 대해서 세간에서 불륜이네 뭐네 하면서 씹어대자 열받은 잭슨이 결투를 벌였고 비방한 상대를 죽였다(...).

몇몇 파란만장한 캐삭빵결투의 역사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1803년 테네시 주지사 존 세비어와 결투. 둘 다 다치지 않았음
  • 1806년 내슈빌의 부호 찰스 디킨슨과 결투. 원인은 위에 언급된 아내와 관련된 일. 잭슨은 디킨슨의 총에 갈비뼈를 다치고 디킨슨은 사망.
  • 1813년 토머스 벤턴, 제시 벤턴 형제와 현피. 왼쪽 팔에 총알을 맞음.
그 후유증으로 재임 기간 내내 몸 속에는 총알 2발을 박고 살았는데 1발은 벤턴 형제와의 결투 중에 맞은 총알이였고 나머지 1발은 대통령 시절 잭슨을 암살하려던 리처드 로런스(Richard Lorence)가 쏜 총알이였다. 이때 진짜 죽을 뻔했지만 아슬아슬하게 급소를 피해 살아남았고 이 사건은 미국 역사상 최초의 대통령 암살 시도 사건으로 역사에 남았다[4]. 그 이후 어떻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지만, 어느 소문에 의하면, 잭슨이 곧바로 자기 지팡이를 들고 리처드 로런스를 쫓아가 패려고 했다. 흠좀무. 당황한 로런스는 도주하다가 얼마 안가 잡혔다고 한다.

또한 위에서 말한 아내 레이철 잭슨과의 금실도 매우 좋았다고 한다. 사실 그렇지 않았으면 결투도 안했겠지(...). 나는 불같은 서부의 사나이, 하지만 내 여자에겐 부드럽겠지? 레이철이 죽은 후에는 레이철이 좋아하던 집의 정원에다가 장사를 지냈으며 잭슨이 죽은 뒤에는 아내와 합장했다.

재임 당시 사우스 캐롤라이나 주가 1828년과 1832년에 제정된 관세법에 반발하여 연방법 집행 거부 사태 (Nullification Crisis) 를 일으키자 군대를 파견해 관세법을 집행하는 초강경대응을 보여주었다. 당시 토머스 하트 벤턴의 회고록에 따르면,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에서 찾아온 손님이 잭슨 대통령에게 '친구들에게 전할 말이 있냐?'고 묻자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그래 있네. 자네 주에 있는 내 친구들에게 안부를 전하고 이렇게 전하게. '만약 미합중국의 법에 반대하여 단 한 방울의 피라도 뿌려진다면 그런 반역행위를 한 자 중 내 손에 닿는 첫 사람을, 내가 갈 수 있는 가장 가까운 나무에다가 매달아 버리겠다.'고 말일세." [5] 이후 사건이 마무리된 1833년 5월 1일자의 일기에다가 잭슨은 사태의 본질을 꿰뚫어보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관세는 구실일 뿐이며, 진짜 목적은 연방의 해체와 남부연방이다. 다음 구실은 흑인이나, 노예제 문제가 될 것이다. 그의 예상은 이후 남북전쟁으로 정확히 들어맞았다. 결과적으로, 연방법 집행 거부사태도 남북전쟁으로 가는 사건 중 일부였기 때문이었다.

그의 별명은 '올드 히커리'가 유명하지만 정적들에게는 '앤드루 왕 1세' '폭군' 등으로 불렸다고 한다. 모두 거칠고 고집불통인 성격에서 비롯된 것. 그러고보니 미국 대통령 중에는 앤드루 존슨도 있긴 했다

대통령에 취임한 후 하버드 대학교에서 그에게 라틴어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하자 정적들은 "철자법도 모르는 사람에게 박사 학위라니?"라며 비난했다. 학위 수여식 당시에 잭슨이 몇 마디 아는 라틴어 단어를 뜻도 모르면서 내뱉었다는 일화가 있는데 이는 악의적인 표현. 실제론 잭슨은 "라틴어 학위를 받긴 했지만, 유감스럽게도 내가 알고 있는 라틴어 라곤 E pluribus unum[6] 뿐이오."라며 겸손하게 말했다.

4. 총평 - 얄팍한 폄하보다 훨씬 위대한 인물

4.1. 평범한 사람들의 민주주의

이원복먼나라 이웃나라 미국편에서 장점은 없이 무식하고 당파정치만 한 사람으로 묘사해 놨다. 교양이 없고 당파적이었던 건 맞는데, 애초에 당시 평가가 완료되지 않은 현직 대통령에 겹쳐놓은건 대대적 무리수. 애초에 저 때 미국과 요즘 한국, 물론 요즘 미국과도 사회상이 크게 다른 만큼 겹쳐보는 것 자체가 무리수다. 당시는 미국의 정치적 풍토나 미국 연방 정부의 구조도 지금과는 많이 달랐고, 현대의 한국과는 당연히 더욱 큰 차이가 있다.

사실 먼나라 이웃나라 미국 대통령편의 경우는 카리스마틱 리더를 포퓰리스트보다 훨씬 높게 평가 하고 있다. 전임자이자 잭슨의 정적인 존 퀸시 애덤스의 문제점은 쏙 빼놓은 것만 봐도 잘 드러난다. 사실 이 편 자체가 공화당 대통령을 미묘하게 높이 평가하고 민주당 대통령을 상대적으로 혹평하는 경향이 있다.[7]

말년
잭슨은 미국사에서 중요도나 업적으로나 인기로나 높으면 높았지 낮은 사람이 절대 아니다. 미국정치사에서 잭슨은 건국의 아버지들 (워싱턴-애덤스-제퍼슨-매디슨-먼로)과 링컨 사이의 약 40~50년간 가장 중요한 대통령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리고 굳이 서열을 매긴다고 해도, 워싱턴-제퍼슨을 제외하면 나머지 건국의 아버지들에 비해서도 그다지 평가가 밀리는 사람이 아니다. 미국 초기 대통령의 중요도로 따진다면 다섯손가락에 반드시 들어가는 인물이다. 이 당시 미국의 민주정치가 기틀을 잡기 시작했는데, 잭슨이 이렇게 기틀을 잡아가던 미국식 민주정치에 끼진 영향은 링컨이 나오기 전까지 가장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지금도 민주당에서 잭슨으로 부터 내려온 정신이라며 묵수의 가치로 옹호되고 있다. 20달러 지폐 도안에도 그의 얼굴을 사용했을 정도. 잭슨식 민주주의(Jacksonian Democracy)는 그야말로 대중 민주주의의 상징이라고 불러도 될 정도였다는 점에서도 잭슨의 위치는 확고하다. 정치외교학과에서 '미국정치'나 '정당론'이라는 과목에서 미국 정당의 역사를 다룰때 항상 언급되는 부분이다. 단적으로 기존의 미국 선거법은 일정한 재산 이상을 소유한 사람에게만 투표권을 주는 형태였는데 이는 고대 그리스[아마도]로부터 유래된 유구한 민주정형태로서 유산자 정치(티모크라시)라 불리웠다., 이걸 보통선거로 돌려놓은 사람이 잭슨이다. 백인 남성뿐이긴 했지만, 그게 어딘데! 이때까지 스스로를 각주에 속한 주민州民[9]으로 여기고 중앙정치는 각주의 대표들의 몫으로 여기던 미국인들을 미국이란 커다란 틀로 융합시켜 각개인의 의사로서 미국의 장래를 묻는 표퓰리즘의 시작이 여기서 부터이다. 실제로 포퓰리스트당이라는 정당이 19세기 말 미국 서부에서 활약하기도 했고. 한마디로 미국 정치를 보통민주정(Democracy-by the people)으로 확립시켜 놓은 사람. 아이러니컬하게도 이것은 각주의 주권을 강하게 주장하는 민주당보다 연방의 통합을 강조하는 공화당의 성격에 가깝다(...)

이때문인지 공화당 대통령인 에이브러햄 링컨이나 시어도어 루스벨트같은 이들은 잭슨을 대단히 높이 평가했다. 특히 시어도어 루스벨트와는 전쟁영웅 출신이라는 것과 괄괄하고 모험을 좋아하는 대담한 성격이었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4.2. 행정학의 태동에 기여하다

엽관제 자체는 워낙 부정적인 면이 부각되어서 문제지만, 당시의 관료제 시스템 자체가 일정수준 이상의 교육과 재산이 없으면 관직에 나갈 길을 봉쇄하는 제도였다는 점에서 정무직을 선발하는 선거법의 개정과 같은 맥락에서 볼 여지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엽관제의 기반이 되는 4년 임기제는 조지 워싱턴 시기부터 존재하는 제도 였다. 즉 애초부터 제도가 대통령의 임기와 맞물려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앤드루 잭슨 시대에 엽관제가 두드러지냐면, 이전에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동부의 상류층에서만 관료가 나왔기 때문이었다. 연방주의건 공화주의건 결국 동부지방 상류층이라는 좁은 리그에서 움직였기 때문에 인재 풀에 한계가 있었던 것이다. 그걸 앤드루 잭슨이 서부 개척민들에게 확대한 결과, 선거를 도운 중하류층 출신들도 정계의 중심부에 진입할 수 있었던 것. 이후 미국 정치의 판도가 동부 중심 일변도를 벗어난 것은 앤드루 잭슨의 이런 시도가 중대하게 영향을 미쳤고, 이런 정치적 기반 때문에 앤드루 잭슨은 퇴임한 후에도 큰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정치 외에 일선 행정관료도 정치적으로 몰아넣어서 평가해야 되냐고 묻는다면, 이 시기에는 이란 개념 자체가 없었다고 대답해줄 수 있다. 독일 관방학에 기원을 둔다고 하는 미국 행정학은 이 시기 정치의 일부로 존재하고 있었다. 당시에는 누구는 기술관료, 누구는 정치가라는 개념이 나올 수가 없었다[10].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서 언급된 먼나라 이웃나라에 대해서는 이런 점에 대해서는 싹 무시했다. 행정학의 경우도 행정학을 창시한 우드로 윌슨 자체가 엽관제의 폐단을 지적하면서 등장한 학문이라서 엽관제의 단점이 상당히 강조되고 있지만, 현재도 정무직 지명직의 자리에는 엽관 임용이 이루어지는 등 필요불가결한 부분이 없지 않다. 엽관제가 태어난 것 자체가 정치 제도의 발달 과정 중 하나이다. 반대로 말하자면 이전에는 이런 기준이나 체계 자체가 없었다는 말이기도 하다.

5. 미디어에서


위에 서술했듯이 앤드류 왕 1세로 묘사되기도 했다. 해당 그림은 당시 만평. 이 만평에서 앤드루 잭슨은 한 손에는 왕권을 상징하는 셉터를 들고 있고 다른 손에는 대통령의 고유 권한인 Veto, 즉 거부권을 들고 있으며 갈기 갈기 찣겨진 미국 헌법을 밟고 서있다.

1812년 전쟁을 다룬 웹툰 플린트 락 머스킷뉴올리언스 사령관 소장으로 출연한다. 실제 역사처럼 완고하고 딱딱한 인물로 묘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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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회초리히코리나무처럼 꺾이지 않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부하들이 지어준 별명이다. 한국어의 '옹고집'에 해당하는 별명.
  • [2] 휘그당은 유래 자체가 영국의 그 휘그당과 같아서, "반왕정", "반연방" 당이다. (휘그당의 전신인 국민공화당을 만든 존 퀸시 애덤스의 아버지가 연방주의자 그 자체인 존 애덤스이고, 또 휘그당의 후신인 공화당도 역시 연방주의를 주장했다는 걸 생각하면 격세지감이 든다. - 하지만 이런 정당의 성향 변신은 미국사에서 매우 흔한 일이다. 여당이 되면 연방주의를, 야당이 되면 반연방주의를 주장하게 되는 경향이 있달까.) 쉬운말로, "야당"을 자처한 당이라고 하겠다. 휘그당에는 국민공화당 외의 별별 잡세력이 다 모였는데, 심지어 반프리메이슨세력 조차 있었다(...)
  • [3] pet banks란 애완동물 은행정부출자금을 예치받은 은행들을 말한다. 미국 제 2은행(Second Bank of the United States)의 출자금을 빼서 각 주의 공인은행에 예탁했는데 이 은행들 중 일부가 여당의 영향력하에 있었으므로 이런 멸칭이 붙은 것. 더 자세한 내용은여기를 참고
  • [4] 최초로 암살된 미국 대통령은 에이브러햄 링컨이다.
  • [5] Yes I have; please give my compliments to my friends in your State and say to them, that if a single drop of blood shall be shed there in opposition to the laws of the United States, I will hang the first man I can lay my hand on engaged in such treasonable conduct, upon the first tree I can reach.
  • [6] 미국 의회의 표어.'다수로 이루어진 하나'라는 뜻
  • [7] 이것은 공화당-북부산업화 벨트,노예해방주 , 민주당-남부 농업벨트,노예주의 도식적 이분법에 의한 것이라 할수 있다. 이는 이원복이 역사를 만화로 표현하기 위해 그리고 역사적 해석의 논란을 피하기위해 단순화,계량화를 꾀한 결과라 할것이다.
  • [아마도] 중장기보병 민주정을 실시한 스파르타
  • [9] 미국 독립전쟁 당시도 각주에서 보내진 의용군들이 주단위로 편재되어 싸웠다.
  • [10] 사실 과거의 현상으로 설명하기도 뭐한게 현대에 오히려 이런 경향이 다수 강조되고 있다. 지역별 인재할당제도니 양성평등 목표제니 하는 것이 이런 것으로, 직업공무원제의 기반에 엽관제적 요소를 어떻게 결합시켜서 행정의 민주성을 이룩할 것인가라는 것은 현대 행정의 주요한 화두중의 하나가 된지 오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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