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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런 튜링

last modified: 2015-03-15 21:59:26 by Contribu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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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개요
2. 생애와 업적
3. 성격
4. 최후
5. 트리비아
6. 대중문화 속 모습
7. 관련 항목


"인공지능의 발명이란 자동차에서 바퀴를 떼어낸 뒤 그 자리에 발을 달기 위해 고심하는 것이다."[1]

1. 개요

Alan Mathison Turing. 1912년 6월 23일 ~ 1954년 6월 7일. 영국수학자, 공학자.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엔 독일군을 격파하기 위해 암호해독을 맡기도 했다. 허나 이러한 공적에도 불구하고 동성애자라는 꼬리표 때문에 말년은 영 편치 못했다. 현대 전산학과 정보공학의 아버지로도 불린다.

2. 생애와 업적

어릴 땐 3주만에 읽기를 배웠고, 미적분을 배우지 않고도 미적분 고등수학문제를 풀기도 하는 등 명석한 두뇌를 자랑했다고 한다. 그러나 중고등학교 때는 그렇게 큰 점수를 받진 못했다고.(...) 이런 점을 보면 아인슈타인과 마찬가지로 전형적인 천재과는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물론 아인슈타인과 튜링이 청소년 때 공부 못했다고 하는 건 우등생 그룹 사이에서라는 게 함정 그래도 영국의 명문대인 케임브리지 대학교에 입학한다.

케임브리지 대학교 킹스칼리지 재학 중에 쓴 논문 <On Computable Numbers, with an Application to the Entscheidungsproblem>(1936)은 튜링 머신 이론과 노이만형 컴퓨터에 있어서 이론적 토대를 제시한 것으로 유명하다. 미국 프린스턴 대학에 유학하여 박사학위를 획득했다. 이 때 교수로 있던 존 폰 노이만과 만났다.[2]

1939년 독일군에니그마 암호를 해독하는 GC&CS(후일 블레칠리 파크로 불리우게 되며 현재 블레칠리 파크는 박물관이 되었다)에 참여해 독일 해군 암호를 해독하는 Hut 8 책임자가 되어 기존의 봄브(Bomby)[3]해독기를 개량한 튜링 봄비(Turing Bombe)라는 장치를 개발했다. 이 튜링 봄비는 후일 개발되는 콜로서스라는 프로그래밍 가능 전자 컴퓨터의 기술적 토대가 되기도 했다.[4][5] 이 컴퓨터는 군사 기밀로 꽤 오랫동안 일반에 알려지지 않았다.

전후 튜링은 초기 디지털 컴퓨터 개발(맨체스터 대학의 맨체스터 마크1)에 참여했고 영국 최초로 프로그램 내장형 컴퓨터(폰 노이만형 컴퓨터) 구조에 대한 논문을 발표하기도 한다. 특히 1950년엔 인공지능에 대한 중요한 논문 <Computing machinery and intelligence>을 발표, 거기에서 현재 튜링 테스트라 불리는 인공지능 실험을 제안한다.[6]

이 이론은 수많은 찬동자와 반대자들을 만들게 되는데 특히 철학계는 일치단결하여 이 테스트를 논파하는데 사력을 다했다.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은 미국 철학자 존 설이 1980년에 제시한 '국어 방(Chinese Room) 논증'[7]일 것이다. 다만 중국어 방 논증조차도 또다른 수많은 논쟁을 만들면서 튜링 테스트가 세기를 넘어 과학계 영원의 떡밥으로 남는 데 일조한 감이 없지는 않다.

튜링 머신은 컴퓨터의 실현 가능성에 대한 것으로 명제의 증명가능성에 대한 연구에서 처음 이용된 개념이다. 튜링은 러셀의 역설이나 불완전성 정리처럼 '나는 유한번의 논리처리로는 증명 안 됨'이라는 명제가 존재함을 증명하는데, 중간에 튜링은 칸이 나눠진 긴 종이띠와, 이 위의 데이터를 읽고 바꿔쓰는 기계가 읽은 데이터에 대해서 바꿔쓰는 결과를 설정할 수 있는 기능이 있다면 이게 수학적 증명, 인간의 지능과 동일하다는 것을 증명한다. 전후에 튜링은 이 '만능기계'를 완전히 실현하려다 실패하고, 약간 변형된 형태가 폰 노이만에 의해 실현되어 지금의 컴퓨터가 된다.

참고로 튜링이 16세 때, 리스토퍼 모컴이라는 수학의 재능이 뛰어난 친구를 만났는데, 모컴도 수학에 상당한 재능을 가졌었다. 둘이 같이 어려운 수학문제를 푸는 것을 좋아했는데, 모컴이 1930년 사망하자 모컴의 뇌에 있던 지능을 저장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전달할 방법을 생각하다가 계산이론을 창안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튜링은 전산학의 기초가 되는 논문들뿐만 아니라, 자살하기 전에는 형태형성의 화학적인 토대(The Chemical Basis of Morphogenesis)라는 논문을 저작하였다. 이 논문에서 튜링은 생물의 발생에서 새로운 형태가 생겨나는 과정인 '형태형성'을 모의 실험하였고, 지금은 당연한 유전자에서 태아가 발생하는 부분을 그 시기에 예측했으며, 또한 이 논문은 카오스 이론에서 중요한 '대칭 붕괴' 와 '분기 붕괴' 란 현대적 개념을 미리 파악한 것이기도 하다. 간단하게 말해서 생물학을 정밀한 학문인 수학과 물리학, 화학을 통해 설명하였고, 카오스 이론의 중요한 부분을 이미 예상하였다.

2015년 개봉한 그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에 의하면, 사학자들의 추측으로는 그와 동료들의 에니그마 해독은 전쟁을 2년 이상을 단축시키고 약 1400만 명의 목숨을 구했다고 한다[8].

3. 성격

성격은 매우 독특(나쁘게 말하면 괴팍)해서 타인과 잘 어울리지 않고 자신의 일에만 집중하는 성격이었다고 한다. 한 예로 2차대전 당시 정보부에서 근무할 때, 동료들이 자신의 컵을 자꾸 사용하는 것에 짜증이 났는지 쇠사슬로 라디에이터 같은 곳에 묶어놓았다가, 장난이 지나치다며 동료들이 자물쇠를 풀자 그들에게 총을 쏘고(...) 도망쳤다고 한다. 그런데 워낙 극비 중에 극비 취급을 받는 과학자라, 경찰에서도 수배용 사진 하나 구할 수 없었고 결국 사건은 각하되고 말았다. 그리고 돌아온 튜링에게 이후 다시 장난을 거는 동료 수학자들은 없었다고.(...)

그 외에도 봄철이면 꽃가루를 조심해야 한다며 방독면을 쓰고(?) 자전거 출근을 하는 등 종종 기행을 일삼았다고 한다. 하지만 또 지나치게 내성적인 건 아니었는지 나이에 맞지 않게 젊은 육체를 지니고 항상 운동을 하는 스포츠맨이었고, 또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거리낌없이 말하고 다니기도 했다고.

여성을 극도로 혐오했다고 한다. 인간의 사고를 남성적 사고와 여성적 사고로 나눠놓고 여성적 사고의 특징을 전략의 부재라고 했으며, 동성애자가 된 것도 여자사랑하는 참변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라는 말이 존재할 정도다.

4. 최후

아 글쎄 가슴이 나오는 게 아닌가! [9]

그 명성과 달리 말년은 비참했다.[10] 튜링은 한때 아널드 머리라는 19세 소년과 애인 관계를 맺고 동거를 했었는데, 그 소년은 사실 소년범죄단과 연루되어 있었다. 어느날 튜링이 집에 돌아와보니 온갖 물건들이 도난당하고 방은 엉망이 되어 있었는데, 동거하던 소년과 그 일행의 짓이었다. 튜링은 이를 경찰에 신고했고, 또한 자신이 동료 과학자들에게 당당하게 말하고 다녔던 것처럼, 도둑과의 관계(동성애)를 경찰에게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그리고 이것이 기사화 되면서 튜링의 인생을 망가뜨렸다.

진보적이었거나, 혹은 튜링의 능력만 중요시 여기던 동료 과학자들의 생각과는 상관없이 당시 영국의 동성애 금지법에 의하여 앨런 튜링은 어쨌든 범죄자였다. 동성애자임이 만천하에 공개된 그는 당연히 대중으로부터 범죄자 취급을 받게 되었고, 심지어 소련 스파이일지도 모른다는 추잡한 누명까지 덮어쓰게 되었다.암호해독 피똥싸게 해줬더니 당시 튜링은 체스나 보드 게임을 매우 즐겼는데 케임브리지 재학 중 튜링의 게임 상대에 훗날 KGB의 거물간첩이 된 킴 필비를 비롯한 케임브리지5가 포함되어 있었다. 이전부터 1급 컴퓨터 공학자라는 위치 때문에 영국 정보부의 감시까지 받았다.

결국 법원에서 동성애 혐의에 대해 여성 호르몬 투여를 통한 화학적 거세 형벌을 받게 된다. 그 후 몇년 되지 않은 1954년에는 청산염 중독으로 의문사한다. 사과에다 독약을 주사한 뒤 동화 속의 백설공주처럼 사과를 깨문 것이다.

시안화칼륨이 주사된 한 입 베어문 사과가 시신 옆에 있었기에 자살로 결론이 났지만 사실 지금도 정확한 사인은 밝혀지지 않고 있다. 가족들은 사고사라고 하지만, 튜링의 해외 탈출을 두려워한 당시 영국 정보부가 암살한 것 아니냐는 음모론도 종종 나돈다. 이 사과문양에서 애플 로고가 만들어졌다는 속설도 있다. 하지만 공식적으로 애플社는 물론이고, 애플 로고의 디자이너도 앨런 튜링과 애플의 로고는 전혀 관계없다고 밝히고 있다.[11] 스티브 잡스 자서전의 저자인 월터 아이작슨은 딸에게 이 속설을 듣고 직접 잡스에게 디자인의 유래에 대해 물어봤다는데 잡스가 답하기를 "그런 것까지 고려하였다면 좋았겠지만, 아쉽게도 사실이 아닙니다."라고 답했다. 애플社 명칭의 유래와 로고 디자인의 계기는 그의 자서전에 모두 서술되어있으니 궁금하면 읽고 참고해보자.

여튼 이렇게 허무하다면 허무한 죽음과 함께 그의 존재는 서서히 잊혀지는가 싶었는데, 2000년대 들어 영국의 동성애자에 대한 인권 의식이 개선되면서 튜링에 대한 사죄 청원 운동이 힘을 얻기 시작했다. 노동당이 집권했던 2009년에 고든 브라운 총리는 영국 정부 차원에서 튜링의 부당한 죽음에 대해 정식으로 사죄하였다. 영국 우체국은 2012년 2월에 발행할 우표에 담을 '위대한 영국인 10명' 가운데 앨런 튜링을 포함시켰다.. 한때 범죄자였지만 동성애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또 그의 업적에 좀더 비중을 두면서 인식이 몇십년만에 확 바뀐 것이다.

또 탄신 100주년이 되는 2012년을 튜링의 해로 만들려는 운동도 있었다. 하지만 영국 하원은 이런 움직임에 찬물을 제대로 부어버렸는데 2월 6일 영국 하원에 상정된 앨런 튜링에 대한 국가적 사죄와 사면 결의안이 부결되어 버린 것이다. 아무래도 보수당을 중심으로 한 데이비드 캐머런 내각 입장에서는 튜링에 대한 사면이 동성애에 대한 용인으로 비쳐질 것이라는 우려 때문에 튜링에 대한 사면을 거부하는 게 아닌가라는 해석이 나왔다.[12] 하지만 2013년 12월 23일, 스티븐 호킹을 비롯한 수만명의 청원이 접수되면서 영국 정부는 결국 백기를 들었고, 여왕 특별 사면령으로 튜링은 공식적으로 복권되었다.

5. 트리비아

튜링의 업적을 기려 컴퓨터계의 노벨상으로 불리우는 튜링 상(A. M. Turing Award)이 1966년부터 수여되어지고 있다. 또한 튜링 테스트를 통과하는 인공지능 구현화에 수여되는 뢰브너상(Loebner Prize)도 있다.

2012년 6월 23일, 앨런 튜링 탄생 100주년을 맞아 구글에서는 기념로고를 제작했다. 튜링 머신을 흉내낸 일종의 게임이다. #하러가기

영국의 신스팝 그룹 Pet Shop Boys의 He dreamed of machines.은 바로 앨런 튜링에게 바치는 노래. #

6. 대중문화 속 모습

WoD: 메이지 디 어센션에서는 트레디션 분파 버추얼 어댑트의 일원이며, 최초의 전산망을 만들기도 한 버추얼 어댑트에서 존경받았던 사람이다. 버추얼 어뎁트가 아직 테크노크라시에 속했을 때, 뉴 월드 오더가 튜링에게 동성애자라는 오명을 씌우고 암살했으며 의식만 가까스로 가상공간으로 날아갔다. 안 그래도 버추얼 어뎁트는 테크노크라시 지도부와 제2차 세계대전에 대한 의견이 갈려서 사이도 안 좋았는데(테크노크라시는 2차대전 초기에는 추축국을 밀어줬는데 튜링과 버추얼 어뎁트 일부는 연합군을 지원했다) 이 사건까지 터지자 분노하면서 바로 트레디션 쪽으로 돌아섰다. 보통 유명한 사람은 마법사로 안 만들고, 유명인의 친구나 후원자로 나오는 정도인 WoD에선 드문 일이다.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에서도 등장. 성당기사단의 일원이었으나, 시대를 너무 앞서간 발명품인 로봇을 만들어내려다가 로봇에 의한 실업을 우려한 기사단 상부의 저지를 받았다. 하지만 튜링은 상부의 지령을 무시하고 연구를 계속했고, 결국 성당기사단은 자살로 위장하여 튜링을 살해한다.

메탈기어 솔리드 피스 워커에서도 언급된다. 스트레인지러브 박사와 인연이 있는 것으로 나온다. 스트레인지러브는 극도의 남성혐오(라기보다 사실 하는 짓을 보면 멸시로, 튜링의 성반전 버전이나 다름없다)자임에도 불구하고, 튜링은 보통 남자들과 달랐다며 튜링의 천재성을 존경하는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실제 튜링의 성격으로 보면 그녀와 사이가 좋았을리는 없을 듯하다. 허나, 위 에이다 러브레이스 백작부인 이름을 열거할 정도라면, 성별을 떠나서 재능에 대한 점에서는 선입견이나 자기 고집은 과감히 접을 줄 아는 인물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사적으로는 몰라도 공적인 인연은 상당히 강했을 것이다.

하트 오브 아이언 시리즈에서는 영국의 테크진으로 등장한다. 높은 기술 등급과 핵, 미사일, 수학 기술을 보유하고 있어서 유니크 테크진 중 하나의 속한다.

아웃라스트에서는 베르니케 박사와 함께 월라이더 개발에 참여했던 것으로 보인다.

할리우드에서 앨런 튜링의 일대기를 담은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이 제작되었다. 2014년 초 크랭크인하여 영국에서는 11월, 한국에서는 2015년 2월 말 개봉. 주인공 튜링 역은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연기했으며, 2015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본작이 각색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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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Alan Turing, the Enigma of Intelligence P.404.
  • [2] 노이만은 튜링의 동성애 사실을 알고서도 계속 친구로 남았으며 튜링이 동성애가 범죄인 영국에 되돌아가기보다는 미국에 남기를 충고했다. 튜링은 노이만의 조교직을 제안 받았으나 튜링은 조국을 위한다는 일념으로 귀국했다.
  • [3] 폴란드 정보부가 개발한 에니그마 해독기. 폴란드어라 봄비가 아닌 봄브.
  • [4] 튜링은 콜로서스 개발에는 관여하지 않았다.
  • [5] 콜로서스 문서에는 관련되었다고 나온다 정확히 아시는분께서 수정바람
  • [6] 이 논문에서 에이다 러브레이스 백작부인의 이름을 언급하였다.
  • [7] 컴퓨터가 우리에게 만족할 만한 대답을 한다고 해서 컴퓨터가 그 대답을 실제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는 내용.
  • [8] 다만 이름이 명기되지 않은 '사학자' 의 '추측' 이라는 점에 유의할 것. 즉 추정치이니만큼 실제와 크게 다를 가능성도 있는데다, 누가 무슨 근거로 추측한 것인지가 제공되지 않는 정보를 무조건 믿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특히나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영화인 만큼, 비교적 신빙성 있는 추정치보다 되도록 긍정적으로 평가한 추정치를 제시했을 가능성도 높다. 즉 '우왕 굿' 하고 끝내지 말고, 이런 이야기도 있다더라... 라는 식으로 참고하는 것이 현명하다.
  • [9] 앨런 튜링이 자신의 친구에게 보낸 편지의 내용 중 일부이다. 여성 호르몬제 투여의 영향.
  • [10] 튜링이 자살하고 나서 영국의 신문에 정말 조그만하게 기사가 하나 났었다. "천재 과학자의 비참한 죽음"이라고.
  • [11] 초기 애플의 로고는 오히려 아이작 뉴턴의 사과를 연상케 하는 그림이었다. 항목 참조
  • [12] 그런데 웃기게도 튜링에 대한 사죄와 사면 결의안을 부결시킨 영국 하원이 2013년 2월에 동성결혼 합법화 법안을 통과시켰다.(...) 그래서 동성애에 대한 거부감보다는 그냥 국가의 잘못을 인정하기 싫어하는 영국의 종특 때문 아니냐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기도 했다.(...)한국과 똑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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